카페 공곶이 이야기

- 그곳에 길이 있고 꽃이 있네

 

 

 

 

 

 

 

 

 

 

 

 

 

 

 

 

 

   

공곶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몇 가지가 될까.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는 봄이면 노란 얼굴을 내미는 수선화가 계단식 밭을 메우는 공곶이가 있다.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계절 따라 동백나무, 종려나무, 조팝나무 등 50여 종의 나무와 꽃이 손님을 맞이한다. 19세기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의 피난처였기도 하다. 천주교신자들의 묘지도 있는 공곶이에 꽃밭이 조성된 건 노부부의 신념과 수고가 이뤄낸 공(悾)이다. 공곶이는 2007년 거제의 추천명소 8경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매력적인 풍광을 품고 있다.

 

 

 

 

 

험한 언덕을 오르려면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공곶이 언덕을 오르기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눈앞이 툭 트이는 언덕 꼭대기에 이른다. 조붓한 산길을 걷다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면 검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넓게 펼쳐진다. 흰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파도와 그 비명소리를 가슴으로 마주서면 바닷길은 멀리 한려수도로 이어진다. 몽돌 사이 널브러진 바다새의 주검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명랑한 아베크족들과 대조된다. 극명한 생과 사의 풍경에 크게 놀라진 말자. 한숨을 돌리고 오른쪽 숲으로 연결된 데크계단을 올라가 새소리 호젓한 숲길을 걸어 내려가면 한 바퀴 걷기에 딱 좋은 힐링코스가 된다. 방향을 바꾸어 걸어도 괜찮은 길이 되겠다.

 

툭 트인 바다도 좋지만 아담한 포구는 마음을 한껏 당긴다. 와현해수욕장을 지나 공곶이길로 들어서서 공곶이 언덕으로 좌회전하지 말고 조금 더 가면 작은 포구, 예구가 나온다. 고양이낮잠처럼 나른하게 시간이  멈춘 예구에 서면 잔잔한 바다도 눈부신 하늘도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어 마음속에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비좁은 마음자리에 너른 길 하나 내어주게 된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공곶이를 지키는 부부가 있다. 공곶이를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이곳에서 뜻밖의 하얀 성모입상을 처음 본 건 오래 전이다. 공곶이 언덕으로 오르는 초입 오른쪽으로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층집 마당에 성모상은 서 있었다. 저 멀리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비 그친 마당엔 사람이 다녀간 흔적마저 희미했다. 호기심에 젖은 흙마당까지 걸어 들어가 집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주인도 없는 집에 별 다른 게 없었다. 그로부터 몇 해 후, 이곳이 공곶이언덕 펜션으로 리모델링되어 탄생하였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이 건물의 주인장이 개인사정으로 한동안 펜션일을 미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목공 손재주가 예사롭지 않은 주인장이 손수 꾸민 펜션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안주인의 세심하고 깔끔한 손맵시다. 공곶이 언덕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길에 들러도 좋고, 편안한 컨트리풍 펜션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브런치나 티타임을 가지기에 더없이 좋은 카페가 있다. 올해 3월 노란 수선화가 한창일 때 부부는 공곶이 이야기라는 이름의 카페를 펜션 한모퉁이에 마련했다. 물론 주인장이 일일이 자재와 소품을 구하여 하나하나 만들고 다듬고 꾸민 공간이다.

 

 

 

 

여름휴가철 정점에 친구들과공곶이 이야기를 찾아갔다. 우드 코티지 풍의 카페 문을 열자, 일본의 젊은 스님 류노스케가 쓴 <생각버리기 연습>을 읽고 있던 주인장이 책장을 덮으며 반색을 한다. 구석구석 주인장의 손길로 만들어진 공간에 밝은 분위기의 앙증맞은 소품과 부담 없이 읽을 만한 도서들 그리고 구석에 세워져 있는 낡은 통기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방은 오픈되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안에서 주문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안주인의 맑은 미소만큼이나 정갈하다.

 

주인장이 손수 만들어 판매도 하는 우드 트레이와 우드 쟁반들이 눈길을 끈다. 목재질의 강도와 특성에 따라 트레이의 두께를 조절하고, 손잡이도 만들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게 했다. 창가 한구석에 세워둔 트레이가 눈에 들어와 물어보니 느티나무로 만들었다며 나뭇결이 정말 멋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마을의 수호수, 아낌없이 주는 정령, 수령 높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주인장의 애정이 담긴 우드 트레이 하나로 연상되었다.

 

 

 

 

테라스도 좋지만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실내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섬과 바다와 구름이 그려내는 한폭의 수채화가 테라스에 내려앉은 늦은 오후의 그림자와 함께 그야말로 그림이다. 진한 카페라떼에는 하얀 하트가, 블루베리 스무디에는 깜찍한 꽃이 얹혀 나왔다. 꽃은 먹으라는 말과 함께. 연보라색 스무디 위에 앉은 하얗고 빨간 작은 꽃이 깜찍하다. 나로선 처음 보는 꽃이다. 주인장이 얼른 나가더니 그 꽃을 뜯어서 들고 들어온다.

   

체리세이지! 그가 해보라는 대로 작은 잎을 손으로 만져 코끝에 갖다 댔다. 싱그러운 초록향기가 퍼진다. 허브 종류인 체리세이지는 일조량과 공기의 온도에 따라 꽃잎의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주인장의 설명은 좀 다르다. 원래의 체리세이지는 빨간색이고 변종 체리세이지가 그렇게 하얀 색이 섞이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앙큼하지만 어쩌면 지혜로운 본성이 아닐까.

 

꽃잎의 변색이야 아무렴 어떠냐 싶지만, 고 작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생명을 애지중지하는 따스한 심성이 엿보인다. 집 잃은 개 몇 마리와 오래 동거하는 걸 보아도 섬기고 보살피는 은사를 베풀고 사는 마음이 순하게 전해진다. 알고 봤더니 눈빛 맑은 안주인이 천주교 신자이다. 성모상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주인장은 어떤가. 한때는 주말이면 미친듯이 전국의 산을 찾아다녔지만 아킬레스건을 다친 이후로 반(半)자발적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 자유는 물리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지 않을까. 이런 곳에서 친구같은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라면 자유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 모른다.

 

 

 

 

 

몇 시간 수다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저 아래 바다 위로 놀이 지고 있다. 붉은 꽃잎이 수평선 위에 엎드린 듯 황홀하게도 수굿해지는 시간이다. 풀도 눕고 태양도 그 기세를 꺾는다. "해거름이면 나는 집으로 가고 싶어져요."  놀이 붉게 타는 신선대부두 고가도로를 차로 달리다 울컥해져서 해거름이면 저는 마음이 막 이상해져요, 라는 내 말에 노문우가 단칼에 뱉은 대사가 환청처럼 들린다. 놀을 배경으로 선 안주인과 카페 간판이 역광으로 빛난다.

     

우리도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카페 입구 길섶에 낮달맞이꽃이 연분홍 고운 자태로 낮게 피어 있다. 체리세이지 꽃잎이 온도를 따르듯 열정에도 따라야 할 온도가 있다. 누구의 어떠한 삶이든 삶이 아름답다면 이야기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야기의 온도가 있어서일 것이다. 느긋하고 선한 두 사람이 말없이 전하는 공곶이 이야기를 나와  '바람의 언덕'으로 희미한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차 안에서 길과 꽃, 그 열정의 방향성을 새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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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8-08-1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초 고등동창들과 큰마음 먹고 1박2일의 여행을 계획중이에요.
아이들 키우느라 늘 친구들과의 여행을 뒤로 미루다 보니 거의 20년만에 떠나게 된 것같습니다.
그 첫장소를 사람들이 덜 붐비면서 풍경좋은 장소로 거제를 선택했죠.
팬션을 잡아야 하는데~~라며 고민중이었는데 마침 프레야님의 ‘공곶이 이야기‘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친구들에게 한 번 의견을 내보야겠습니다.
공곶이 이야기^^

2018-08-11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