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의 눈동자
피터팬픽쳐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쇼도시마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24개의 눈동자 영화마을을 추억하며.
쇼도시마는 일본 시코쿠, 다카마쓰 현에 속한 섬이다.
다카마쓰 여객터미널에서 나오시마와 쇼도시마로 가는 배를 각각 탈 수 있다.
봄날 설레며 찾아갔던 때묻지 않은 섬, 쇼도시마!

 

 

순수함이 주는 눈물어린 위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  / 기노시타 게이스케 / 1954

 

   

 

 일본 남쪽바다 세토내해에 있는 서른 개의 섬들 중 두 번째로 큰 섬 쇼도시마. 유월 어느 좋은 날, 다카마쓰 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그 길은 설렘이었다. 미풍이 밀어 준 배는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도노쇼 항에 도착했다. 느리고 깨끗하고 조용한 쇼도시마는 그 소박한 풍경만으로 무한한 위로가 되는 순수한 영혼이나 다름없었다.

 

서정성이 돋보이는 감독 기노시타 게이스케가 이 섬에 세트장을 마련하고 촬영에 들어간 영화 <스물네 개의 눈동자>1954년에 탄생해 여태껏 일본의 국민영화로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섬처럼 순연한 흑백의 필름이 어린 열두 명의 영혼과 온기 넘치는 오이시 선생의 수십 년 세월을 담담하고 투명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19284, 섬에 갓 부임한 여선생 오이시가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섬마을 어른들은 신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5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 분교로 출근한 예쁜 선생님을 초등학교 1학년 스물네 개의 눈동자들은 반기고 따른다. 오이시 선생님은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게 되어도 자신을 걱정해 먼 길을 걸어서 집까지 찾아온 아이들을 따뜻이 맞이해 먹이고 놀아준다. 영화는 이들이 맺는 소중한 인연을 따라 몇 십 년을 이어간다. 가난과 전쟁으로 상실의 고통을 딛고 신산한 삶을 사는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흑백의 필름 위에 맑은 눈물로 어룽거린다.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해 표독한 말을 드러내진 않지만 영화는 힘없고 순수한 사람들의 상처를 통해 오히려 강하게 말하고 있다.

 

쇼도시마로 무작정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무엇보다 ‘24개의 눈동자 영화촌을 가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나른한 마루켄 간장마을을 지나 당도한 그곳에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둔덕에 커다란 솥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저쪽으로 영화에서 본 교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나무바닥이 삐걱대는 복도에 신발을 벗고 올라 교실에 들어서니, 두 명씩 앉는 나무책상들이 낮게 배열되어 있고 출입문 쪽에는 풍금이 놓여 있었다. 햇살 따스한 교실의 격자창문 밖으로 잔잔하기 이를 데 없는 바다가 빛나고 있었다. 우리 마음에도 그처럼 고요한 정경이 늘 유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옆 교실에는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사진과 당시의 촬영기계들, 영화 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교무실 안에 오이시 선생님이 타고 다녔던 자전거 뒤에 자잘한 꽃무늬 수건에 싸인 도시락이 묶여 있었다. 안쪽으로는 선생님이 앉았을 소박한 나무책상 위, 나무 책꽂이에 분홍색 공책이 한 권 있고, 그 책상에 앉아 고개를 들면 보이는 벽에 괘종시계가 12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딱 그 때로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교실을 나와 입구 쪽으로 나오니 영화 상영관이 있고 그 옆으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 원작을 쓴 소설가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이 보였다. 사카에는 1952년 이 책을 내고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나온 작가라는 평을 들으며 높은 호응을 얻었다. 아담하고 정갈한 건물 안에 후박한 얼굴에 동그란 테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작가의 사진과 여러 가지 표지로 출판을 거듭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쓰보이 사카에는 전쟁은 불행만을 안겨준다고 생각했고 오이시 선생의 입을 빌어 말했다. 오이시는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을 겪으며 명예로운 야스쿠니가 되겠다는 다섯 명의 남자 제자들을 막지 못하는 슬픔을 겪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명예로운 전사 따위 필요 없어. 꼭 살아 돌아와야 해.” 18년이 지나 전쟁의 상흔과 가족의 상실을 겪은 선생님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그때 그 제자들의 아들딸들을 가르친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눈물 많고 여린 선생님이지만 더없이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기노시타 감독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낙관을 잃지 않았고 사람들간의 아름답고 단순하고 순수한 관계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관통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이들은 그저 무심하고 담담하고 분노할 줄 모른다. 쇼도시마의 깨끗하고 조용한 풍경이 아픔을 감내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을 더욱 진하게 전해준다.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을 어찌 다 닦을 수 있으랴. 꾸미지 않고 뽐내지 않고 부풀리지 않는 순한 마음과 그 마음이 전해지는 말과 눈빛은 언제나 수굿한 포옹이다. 그렇게 순연한 위안이 필요할 때면 이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본다.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고마워 영화> 중,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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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1-1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이 책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었는데.. 영화가 있었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8-01-12 16:59   좋아요 0 | URL
네, 비연 님 원작을 먼저 보셨군요. 오래된 흑백영화에 순수함을 담아냈어요.
일본 국민영화라고 하더군요.

비연 2018-01-12 21:31   좋아요 0 | URL
심지어 일어원서도 있답니다 ㅠ 못 읽고 한켠에 쳐박..ㅠ 영화가 네이버다운로더 이런 데 없어서 DVD를 사야하나 그러고 있슴다~

프레이야 2018-01-12 23:0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디비디를 구입해 보았어요.
일어 원서까지 갖고 겨시군요.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에 여러가지 표지가 있었어요.

雨香 2018-01-13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근대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겠군요. <24개의 눈동자> 를 보러 쇼도시마에 갔다는 블로그를 몇 편 봤습니다. 쇼도시마 정말 볼 것이 많은 곳이군요.^^

프레이야 2018-01-13 18:07   좋아요 1 | URL
네, 가보시면 아주 좋아하실거에요. 느리고 조용하고 깨끗해요

雨香 2018-01-14 10:57   좋아요 0 | URL
네.. 느리고, 조용하고,,, 제가 일본 시골, 소도시에 관심이 가는데, 딱 좋을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