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사회
옛날에는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 - 꾼 " 이라는 접미사를 부여했다. 살림을 잘하면 살림꾼이 되었고, 소리를 잘하면 소리꾼이 되었으며, 씨름을 잘하면 씨름꾼이 되었다.
그런데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한국 사회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 부여했던 < - 꾼 > 이라는 접미사를 밀어내고 < 프로 - > 라는 접두사를 수입했다. 씨름 대회는 어느새 " 프로씨름 "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배구, 농구, 축구 같은 운동 종목 앞에도 프로'라는 입간판을 달기 시작했다. 프로는 실력으로 말한다 _ 는 표어는 시대 정신이 되었다. 부하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사는 항상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 _ 라는 뾰족한 말풍선을 날리기 일쑤였다. 프로답게 행동하라 _ 는 말은 댁의 사정은, 난 모르겠고..... 어찌되었든, 일처리는 깔끔하게 마무리하슈 _ 라는 주문이었다.
예를 들면 언론은 소녀시대 멤버 중 한 명의 다리뼈가 부러졌는데도 무대 위에 올라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진정한 프로 의식을 보여줬다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또한 수습이라는 이름으로 밤새워 일하는 인턴 사원을 두고 프로 정신이 빛나는 열정 페이'라고 설레발을 친다. 쉽게 말해서 프로 정신은 사장님 마인드로 노동자에게 주문하는 과정은 내 알 바 아니고 결과만 보여다오 - 정신'이다. 이명박의 천박한 말투를 흉내 내자면 프로라는 외래종은 비즈니스 프랜들리한 용어인 셈이다. " 프로 " 라는 서구 자본주의의 근로정신이 수입되면서 전문가라는 직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철학과 문학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이 당대를 비평하고 세태를 논했다면, 지금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텍스트 해독의 결정권을 독차지한다. 소비자인 시민은 육아 문제는 육아 전문가, 부동산 재테크를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 비만 문제는 다이어트 전문가, 심리 문제는 심리 상담가, 원전 문제는 원전 전문가, 정치는 정치평론가'에게 자문을 구한다. 문제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티븨 앞에 나타난 그들이 진짜 전문가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문재인 정부가 최저 임금을 상향 조정하면서 4조원을 최저 임금 보전에 투입하겠다고 발표를 하자 자칭타칭 정치평론가와 경제평론가
그리고 언론인들은 개인의 가난을 국가가 보전할 수는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문가다운 전문 용어를 써가며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가장 가난한 계층에게 국가 예산 4조가 투입되는 것을 걱정하며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면서 정작 국가 세금으로 대기업에 투입되는 돈이 126조(대기업 특혜, 연구 개발 보조, 비과세 감면, 각종 보조금 혜택, 장기 저리 대출, 무상이나 다름 없는 에너지 사용)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가장 가난한 계층의 최저 생계를 위해 투입되는 4조가 깨진 독에 물 붓기라면, 가장 부유한 대기업에게 혈세 126조를 투입하는 것은 ?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전문가는 전문가가 아니다 라는 주장이 아니라 전문가와 지식인을 같은 등가 관계로 인식하지 말자는 것이다. 과거의 지식인이 정치적 연대 의식을 통해 실천을 고민했던 부류라면 티븨에 나와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현대의 전문가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지나치게 잘 적응한 외래어종 베쓰다. 그들이 내뱉는 말의 팔 할은 쓸모없는 잔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