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조제 > 에  대하여   :










위스키의 바디감










내가 싫어하는 영화 부류는 슬픈 장면에서 슬픈 배경음악을 과도하게 삽입한 경우다. 이런 영화는 십중팔구 배경음악이 전체 사운드를 잡아먹는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음악을 활용하여 관객 몰입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자 하는 수작이다. 감독은 슬픈 표정을 짓는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후 슬픈 음악의 볼륨을 점점 높이면서 관객과 밀당을 펼친다. " 자, 이제 울어 ! 안 울어 ?  이래도 안 울래 ? " 관객이 울지 않으면 주인공을 더욱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넣겠다는 태도다. 이것은 감독이 슬픔을 볼모로 관객을 협박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격렬비열도에서 태어난 죽방멸치 새끼라면 콧방귀도 안 뀌겠지만, 관객 대부분은 그 장면에서 가거도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하게 된다. 타인의 비참에 대하여 슬픈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관객이 눈물을 보였다고 해서 그 장면(그 영화)이 작품성을 갖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관객이 꼴렸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반드시 훌륭한 에로 영화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마찬가지로 관객이 크게 웃었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반드시 훌륭한 코미디 영화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품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영화적 재현의 윤리이다. 


내가 장애인을 다루는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장르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들에게 장애인은 웃음 코드와 감동 코드로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에 불과하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프레임에는 동물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저변이 깔려 있듯이 장애인보다도 못한 비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은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차별이 깔려 있는 태도'다. 그리고 이성애를 다루는 사랑 영화 속에서 여성은 " 여자에게는 사랑이 전부 " 로 등장하지만  현실 속에서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없다. 가난을 다루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상을 타자화할 때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런 오류들이 발생하는 영화는 대부분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다루고, 남성 감독이 여성을 재현하고, 가난한 적이 없는 자가 가난을 병풍처럼 활용할 때 발생한다.  무지할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 영화 << 조제 >> 는 이 오류와 기만과 무지가 만든 최악의 영화'다. 관객들은 프라이팬 대신 다리미로 스팸을 굽는 조제의 장면이 등장할 때 웃었지만 나는 그 장면이 빈곤에 대한 무지와 조롱처럼 보여서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가난이 결핍의 세계라 해도, 낯선 남자 앞에서 다리미 위에서 스팸을 굽는 궁상을 보여주고 싶은 여자가 있을까 ?  


감독은 그것이 꽤나 신선한 영화적 상상력이라며 낄낄거렸겠지만 재현에도 윤리가 있는 법이다. 감독은 가난을 병풍처럼 세워놓고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감독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위스키의 바디감과 커피의 바디감1)을 남발할 때마다 나는 그 옛날 박근혜 정권 때 워싱턴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윤창중의 그립감 발언이 떠올랐다. 영화는 조제의 빈곤과 비참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화면으로 모든 장면을 채웠지만 그것은 마치 6성급 호텔 만찬회에서 산해진미를 맛보며 세계의 가난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가난과 장애와 여성을 병풍처럼 세워놓고는 정작 위스키와 커피의 바디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낮게 속삭였다. " 아이, 시발. 격렬비열도의 죽방멸치만도 못한...... " 




​                               


1)    위스키와 커피의 공통점은 살롱 문화의 오브제라는 점이다. 위스키가 중산층 남성의 (룸)살롱 문화를 대표하는 오브제라면 커피는 중산층 여성의 살롱 문화를 대표한다. 감독이 위스키와 커피의 바디감을 소재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는 것은 그가 살롱 문화에 익숙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장르는 멜로가 아니라 살롱 영화'다. 살롱에 모인,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위스키와 커피의 바디감을 즐기며 문학을 이야기하며 예술을 논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만 다리미 위에서 스팸 굽는 여자를 안줏거리로 사용하지는 말자. 부탁이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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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12-31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벌써 2020년이 다 지나가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한 해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12-31 21:34   좋아요 1 | URL
겨호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고양이도 건강히 잘 지내고, 따님도 항상 신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han22598 2021-01-02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생각을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선 했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비장애인인 나는 장애인을 대변할 수 없다고....거의 불가능한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1-02 20:49   좋아요 0 | URL
실격..... 이 책이 아마 작년에 나온 책이죠 ? 인상 깊은 책이었습니다.
 
야구소녀 파랑새 영어덜트
변은비 지음, 최윤태 원작 / 파랑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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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아리스토텔레스가 << 시학 >> 에서 한 말이다. 사실, 두 개의 전제는 모두 가능하지 않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사뭇 다르다. 


전자( :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는 논리적 검증의 영역에 속하지만,  후자( :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는 텍스트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허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태도에 방점이 찍힌다. 중요한 것은 신뢰감과 설득력이다. 핍진성에 대한 문학적 장치는 영화에도 적용된다.  내가 영화 << # 살 아 있 다 >> 를 시간 날 때마다 물고-뜯고-씹는 이유는 감독이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서사를 버리고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서사를 연출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길이가 24미터나 되는 로프를 이용하여 A동 4층과 맞은편 B동 4층을 수평으로 연결했을 때 동력 장치가 없는,  


로프에 매달린 식량 가방이 무서운 속도로 미끌어져 내려갈 때 관객은 영화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는다.  자전거 패달을 밟지 않고서 오르막을 신나게 내달렸다는 신소리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그것은 곧 생산자가 수용자에게 보내는 설득력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수용자가 생산자에게 보내는 신뢰감이 깨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화사가 많은 제작비(순제작비 70억)를 투입하여 분장과 특수효과로 좀비의 핍진성을 살렸다고 해도 한 번 깨진 믿음과 신용은 복원되기 쉽지 않다. 관객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충무로 놈들아.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             


영화진흥공사에서 지원하는 제작비(1억 2천)로 만든 저예산 독립 영화 << 야구소녀 >> 는 아마추어 운동선수가 프로야구 구단 팀에 문을 두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추어 야구선수가 프로 구단 2군 육성 선수로 구단에 입단할 가능성은 대략 4%라고 한다.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프로 2군 팀 육성 선수가 프로 1군에 진입하는 경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결국 1%의 선수가 프로 무대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의 도장 깨기'가 앞날에 대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프로 무대에서 주전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희박한 확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 모든 가능성은 야구 소년'에 국한된 데이터이다.  야구 소년이 아니라 야구 소녀라면 가능성의 가능성의 가능성에 대한 데이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에둘러 말할 필요 없이, 여성 운동선수가 프로야구 선수가 될 가능은 없다.  여자 프로야구 선수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 프로야구 구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가능한 설정을 "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 " 로 관객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는 야구 소녀가 프로 구단에 입단하여 한국 시리즈 마지막 경기 9회말 2아웃 상황에 등장하여 상대 팀을 제압하는,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서사를 버리는 대신에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서사를 선택한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 도전과 성공 > 이 아니라 < 도전과 성장 > 이었다. 성공담 대신 성장담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입봉(데뷔)한 감독은 적은 제작비로 효율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종종 어디선 본 듯한 장면과 몇몇 오글거리는 대사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어디서 개수작이야 _ 라는 태도로 일관했던 관객은 어느덧 정자세를 하고 소녀를 응원하게 된다. 빅토리 ! 빅토리 !!  븨, 아이, 씨이, 티이, 오, 알, 와이 !!! 주수인 퐈이팅 ~ 



+

야구보다 재미없는 스포츠가 있을까 ?  3시간짜리 스포츠를 관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연장전이 이어지면 6시간 동안 혈투를 펼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스포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야구를 보는 이유는 " 욕하면서 보는 재미 " 를 버릴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팬이라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 선수에게는 격려와 칭찬을, 반대로 상대 팀에게는 욕과 저주를 퍼붓기 마련이지만 엘지 팬인 나는 주로 앨지 선수들을 욕한다. 반대로 상태 팀 선수를 욕한 기억은 거의 없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황홀했고 타자 앞에서 빠르게 휘는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곤 했다. 욕하면서 보다 보니 염장이 터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엘지는 천국이자 지옥이었으며 빛이자 그림자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구라는 스포츠의 최대 장점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저주를 퍼붓는 잦은 경험을 통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쪼잔한 인간인가라는 사실을 각인하게 만드는 재주가 아닌가 싶다.  나는 야구를 볼 때마다 속 좁은 내 인성에 종종 놀라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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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와 화폐





드라큘라는 독점 자본가'를 대표한다피 는 화폐 에 대한 은유다그러니까 드라큘라는 “ 피 를 빠는 것이 아니라 호주머니에서 “ 화폐 를 뺏는 것이다드라큘라는 사람 목숨을 빼앗는 데는 관심 없다그는 인간을 자신의 노예로 부리기 위해 이용할 뿐이다그는 필요한 만큼만 빨아먹는다그가 치사량에 가까운 피를 흡혈하지 않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소량의 피)만 흡혈하는 이유는 그들을 살려두어야지만 피(화폐)를 계속 공급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드라큘라가 귀족 계급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금을 투자하는 사업가로 소개된다. 그뿐이 아니다. 하수인으로 등장하는 조나단 하커는 부동산업자이고, 인격화된 자본인 드라큘라 백작이 즐겨 읽은 책은 애덤 스미스의 << 국부론 >> 이다.  피를 훔친다(착취한다,강탈한다)는 점에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인 셈이다.  또한 흡혈귀가 강할수록 살아 있는 사람은 약해진다는 설정은 독점 자본이 강할수록 서민은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 자본론 >> 에서 맑스는 " 자본은 흡혈귀처럼 오직 살아 있는 노동을 빨아먹어야 살 수 있으며

더 많은 노동을 빨아먹을수록 더 오래 사는 죽은 노동이다 " 라고 지적한다. 드라큘라가 자본가를 대표한다면 좀비는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 그들은 죽은 자'이기에 더 이상 자본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생산할 수도 없는 노동자이기도 해서 무능자이기도 하다. 강신주가 중앙일보 칼럼에서 서울역 노숙자를 향해  "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어 있는 좀비처럼 보인다 ㅡ " 라고 지적한 것은 평소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그가 철저하게 자본주의 입장에서 화폐 경쟁에서 밀려난 노동자를 좀비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논리 모순이다.

좀비 떼의 출현은 경제 공황에 따른 기층민의 폭동을 연상하게 만든다. 소비 능력과 생산 능력이 모두 전무한 좀비는 주권자로서 국가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좀비 영화 장르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욕망을 따른다. 이처럼 좀비 영화 장르는 프로이드 정신분석학보다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가깝다. 좀비물이 전무했던 한국 영화'에서 연상호 감독의 << 부산행, 2016 >> 이 천만 관객이라는 기적을 연출한 것은 동시대적 불안이 반영된 탓이다. 1%의 독점 자본이 99%의 노동자를 지배하는 " 헬조선 " 이라는 신조어가 2014년에 탄생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비 바이러스가 서울역 노숙자 집단에서 발생했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 서울역 >> 은 강신주의 서울역 노숙자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좀비는 독점 자본의 축적 위기로 인한 불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한 2000년대 이후  되살아난다. 주로 미국에서 생산하던 좀비물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파국이 전지구적 위기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가의 송곳니에 피(화폐)를 빨린 기층민은 좀비가 되어 신선한 피와 살점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좀비는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이거나 혹은 죽은 거나 다름없지만 마지 못해 사는 불가촉천민이면서 동시에 파산자'이다. 

연상호 감독의 좀비 3부작 마지막 편인 << 반도, 2020 >> 가 1000만 달러가 든 트럭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 또한 정신분석학보다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욕망으로 읽힌다. 좀비는 자본의 노예라기보다는 자본의 독점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반면에 헬조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영화는 그들이 금융 자본 천국이자 심장인 미국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들은 반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것이 성공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좀비 아포칼립스는 다중 채무자의 몰락 때문에 다다르게 되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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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젯
김광빈 감독, 하정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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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시발 됐고 !




 


                                                                                                        집에서 영화 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모니터를 켜 놓은 채 돌아서(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비몽사몽, 잠들다 보면 망한 영화가 내 꿈에 스며들어서 근사한 영화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 죽어가는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살리곤 했다.  


그런데 종종 " 재미가 없는 차원 " 을 훌쩍 뛰어넘는 영화가 있다. 영화 << 살아있다 >> 가 대표적이다. 깊은 빡침이...... 두 주먹 불끈 쥐다 보니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이런 영화는 " 돌아서 ㅡ " 잠을 자는 차원을 떠나서 아예 " 돌아버리게 ㅡ " 만드는 구석이 있다. 영화 << 클로젯 >> 은 관객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오. 주여 ! 혹여,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내 글이 재미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이 영화를 볼 생각일랑 하덜덜 마쇼. 뇌출혈로 사망할지도 모르니까. 뭐, 엄복동 같은 희대의 망작은 그냥 웃으면서 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똘레랑스를 기대하면 안된다. 


당장이라도 모니터 안으로 난입해서  하정우고 김남길이고 나발이고 간에 멱살 잡고 하드캐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 시바. 영화 상영 내내 나는 뜬금뉴스의 개그맨 안상태 특파원에 빙의될 수밖에 없었다.  난... 오컬트인 줄 알고 갔는데 하정우는 저승에서 청승떨며 놀고 있고. 감독은 무섭다고 난리인데 난... 우스워서 물방귀만 나올 뿐이고. < 살아있다 > 에서 진라면 처먹는 장면에서 학을 뗐는데 이 영화에서는 남길이가 진라면에서 진정성을 느낀다고 진지하게 고백해서 난... 화딱지가 났을 뿐이고, 남길이는 닝기미 내 속도 모르고 처묵고. 계속 처묵고. 내 속은 허파 뒤집어지고. 아이, 시발 됐고 !   


이 영화는 감독이 장르에 대한 이해도 없고 장르에 대한 애정도 없을 때 발생하게 되는 총체적 난국'이다. 하정우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기보다는 아예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연기를 하고 김남길은 띨띠리 연기를 펼치는데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눈 감고 봐야 했다. 도대체 어르신들이 아역 배우보다 연기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이여. 참, 한심하다. 내가 그동안 귀신이 나오는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귀신에게 칼 던지는 인간은 처음 봤다. 감독에게 정말로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귀신에게 칼 던지면 귀신이 칼에 맞아 뒈지니 ? 이건 아니자나, 이건 아니자나, 이건 정말 아니자나. 흙흙. 


아, 그리고 ㅋㅋㅋㅋㅋ 감독아, 고라니와 까마귀는 대체 무슨 죄니 ?  꼭 이런 영화에서는 까마귀가 유리창에 충돌해서 피를 묻히고 죽더라 ?  아니, 까마귀가 무슨 죄야. 어찌 된 게 한국 공포 영화에서 고라니는 죄다 달리는 차에 돌진해서 죽고, 까마귀는 죄다 유리창에 돌진해서 죽어요. 이거 상상력 빈곤 아니냐 ?  이 타이밍에서 안상태 특파원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안상태 특파원 !!!   까마귀는 감독이 시켜서 돌진했을 뿐이고.  난... 그런 까마귀가 불쌍할 뿐이고.  고라니는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사고로 고자 됐고. 고라니는 터진 불알 잡고 내가 고자라니 _ 소리치며 울고 있고. 난... 그런 고라니에게 미안할 뿐이고. 허파 뒤집어지고.


감독아, 고라니와 까마귀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  까마귀, 너희도 그래. 이 정도면 너희들도 동물 보조 출연 권익위를 결성해서 이런 게을러빠진 인간 감독들을 싹 다 고발해야 하는 것 아녀 ?  콩밥을 좀 먹여야 다시는 이런 연출 안 한다. 이런 인간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너희를 흉조라고 흉보는 거야. 수수방관할 거야 ?  에휴. 너희들도 게을러빠진 거다. 이놈의 새(끼)들아. 반성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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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계절
마이크 리 감독, 레슬리 맨빌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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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행복합니다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산다

- 브레히트








   스 티븐 킹의 중편소설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문장이 나온다. 어쩌면 이 문장 때문에 이 소설 전체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인간 관계를 다루는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은 개인이 살아온 시간과 그 사람이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느꼈던 사회적 압력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렇기에 심리학자가 환자의 짓눌린 마음결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질학자가 지층의 단면을 관찰하는 일과 같다.  공교롭게도 영화 << 세상의 모든 계절 >> 에 등장하는 중산층 부부 톰과 제리는 직업이 지질학자(: 톰)와 심리상담사(: 제리)다.  노년의 부부는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산다.  주중에는 직장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과 압력의 영향을 연구하고 주말에는 가족 농장에서 텃밭을 가꾼다. 


부부는 직장 생활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도 환상적일 정도로 모범적이다. 또한 교우 관계도 원만하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친구와 이웃을 초대하여 키친 싱크 토크1)를 즐긴다. 선량한 부부는 그들에게 진심이 담긴 우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톰과 제리 부부가 행복을 대표한다면(프로타고니스트) 불행을 담당하는 쪽은 매리'다(안타고니스트). 주정뱅이와 말실수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매리는 늘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다.  철딱서니 없다고나 할까 ?  그녀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표와 기의가 어긋난 언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기에 걸리는 일과 사랑에 빠지는 일보다 더욱 숨기기 어려운 것은 행복을 숨기는 일이다. 행복은 눈에 잘 띠는 형광색이다. 키친 싱크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은 영화 << 세상의 모든 계절 >> 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행복의 시점으로 불행을 관찰한다. 톰과 제리 부부는 불행한 사람들을 연민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연민에는 한계가 있다. 


매리가 톰과 제리 부부의 가족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자 부부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부부는 매리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웃과 동료를 초대했던 부부는 그해 겨울에 매리를 초대하지 않는다.  이 선량한 부부가 이웃에게 보내는 조건 없는 선의는 위악도 아니고 위선도 아니다.  그것은 타자라는 한계가 가지고 있는 운명적 배타성이다.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내뱉는 말은 불행한 사람에게 위로보다는 상처를 주기 쉽다.  행복한 사람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불행한 적이 없으니까.  


톰과 제리 부부의 완벽한 행복 때문에 자신의 불행이 더 커 보이는 매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이 클수록 톰과 제리 부부에게 매달리지만 그럴수록 불행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반면에 톰과 제리 부부는 이웃의 불행을 통해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매리가 아니라 어쩌면 톰과 제리 부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훌륭한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의 엔딩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모임에 초대받지 않은 매리는 초대받은 가족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카메라는 가족 모임에서 소외된 매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식탁 주변의 즐거운 소음이 묵음으로 전환될 때 어떤 관객은 비로소 매리에게 동일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면 마치 압핀에 고정된 메모지처럼 꼼짝달싹 못한 채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자신을 본다. 신랄하지만 씁쓸하고 쓸쓸한 장면이다. 국내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10개 구단 응원가 중 가장 유명한 응원가가 한화 이글스의 "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 라는 사실에 모두 다 동의할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화는 경기에 지기 위해 탄생한 구단. 


그런 구단의 팬들이 날마다 지는 경기를 보며 행복할 리는 없다. 하지만 자신은 항상 행복하다고 말한다, 불행했던 매리가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불행은 행복에 대하여 관심이 많지만 행복은 불행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불행한 사람은 행복을 좇고 행복한 사람은 불행을 멀리하기보다는 오히려 곁에 두고 지켜본다.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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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itchen-sink Realism  :  이는 말 그대로 부엌의 싱크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리얼리즘 드라마를 말한다. 하층계급 가정 내의 문제점을 보여줌으로써, 영국사회 전체의 모순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만든 사회성 짙은 드라마다. 가족 간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에 있다 보니, 중요한 장면들이 주로 부엌에서 진행됐고, 그래서 키친-싱크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영화의 대부분이 집 몇 채, 심하게는 집 한 채에 있는 몇 개 방과 부엌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작품들도 있다. 부엌. 우리에겐 여전히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영국의 리얼리스트들은 생존의 절대조건으로 부엌을 상정했고, 부엌에 정치성을 부여했다. 토니 리처드슨, 카렐 라이츠, 린제이 앤더슨 같은 쟁쟁한 감독들은 1960년대 영국 영화계에서 키친-싱크 리얼리즘을 이끈 선구자들이다. 잘생기고 멋진 사람들이 아니라 노동자, 빈민 같은 이 사회의 문제적 계급이 주인공으로 나와, 그들 특유의 투박한 악센트로, 마치 현실 그대로의 기록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덕분에 영국의 리얼리즘 미학은 확실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만 트뤼포의 공세에 맞설 영화 담론의 대중적 영국 스타가 없었던 게 그런 편견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 한창호,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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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11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십시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5:45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