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 편


 

 


 


1. 넘버3

유한계급은 재산이 많아서 생산 노동 활동은 하지 않고 오로지 한가롭게 백수 생활을 하며 유희와 쾌락에 탐닉하는 계급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불한당이 바로 유한계급이다. 불한당(不汗黨)이라는 단어가 땀(汗)을 흘리지 않는(不) 무리(黨)를 뜻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유한계급과 불한당은 닮았다. 인간 고라니 가족 대한항공 JOSSY FAMILY'(조씨 패밀리)가 대표적인 불한당'이다. 한국의 재벌 상류층은 유한계급이자 불한당이며 조폭이고 양아치'이며 무산 계급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층이다. 대한민국 노블레스 계급의 현주소이다. 피 빨아먹는 고라니라니. 당최, 이게 뭐라니 ?              << 유한계급론 >> 의 저자 베블린은 " 유한계급은 평화에서 호전적 생활 습관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출현했다 " 고 지적한다. 소수인 유한계급이 다수인 노동계급 사회 전체를 자지우지(좌지우지)하는 현상은 곧 한국 사회가 " 평화적 ㅡ " 이라기보다는 " 호전적 ㅡ " 문화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태왕이 되는 사회로 변모하였고, 자라나는 청소년의 꿈은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조물주를 섬기는 목사조차 그의 장래희망은 대형교회 건물주'다. 그들은 조물주를 팔아서 건물주가 되고자 열심히 평화를 외친다.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건물주는 무노동의 환상을 도착적으로 현실화하려는 욕망의 투사 대상이 되었다. 이제 한국인의 장래 희망은 불한당이 되는 것이다 !  영화 << 넘버 3 >> 는 유한계급이 되기 위한 하빠리-들의 무간지옥을 다룬다. 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꿰뚫는 송능한 감독의 통찰과 성찰에 있다. 영화 << 하녀, 1961 >> 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컬트라면, << 넘버 3 >> 는 당대의 유이무이한 컬트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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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밀양

영화 << 밀양 >> 에서의 " 미용실 "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내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골머리를 앓던 행간이었는데, 김영민은 이것을 신애가 반만 용서하는 행위(영화 속에서 신애는 머리를 반만 깎인 상태에서 미용실을 뛰쳐나온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닌, 중단이다. 용서는 중단되었지만 그렇다고 용서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원수를 완벽하게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만지는 일이 워낙에 금기와 관련된 탓에 원수의 딸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도록 용인하고 그 절반을 자르도록 허락한 것은 용서의 의도가 있었으나 중간에 중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학원 원장과 신애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였다면, 신애와 학원 원장 딸의 관계에서 신애는 더 이상 피해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 학원 원장 딸은 신애보다 더 낮은 약자의 위치에 있다. 살인자의 딸은 도시의 한켠 구석에서 또래 남자애들에게 얻어맞는다. 그는 살인자의 딸이기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다. 신애가 약자라면 원장 딸은 그보다 낮은 희생양이다. 그렇기에 신애는 원장 딸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위대한 한국 영화 한 편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 영화를 선정하겠다. 보면 볼수록 사유의 폭이 넓고 깊다.   






3. 기생충

노릇은 롤(: ROLE )에 가깝고, 버릇은 룰(: RULE )에 가깝다. 무릇, 노릇은 역할 놀이이다. 아비 노릇, 자식 노릇, 사위 노릇 따위에서 알 수 있듯이 노릇은 직위에 대한 책무의 무거움이 투사된 낱말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 대통령 못해 먹겠다 ! " 라고 한 소리도 알고 보면 < 노릇 > 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한 하소연인 셈이다. 반면에 버릇은 습관이 고착화된 행위 일반이다. 그렇다면 노릇과 버릇은 서로 상반될 수밖에 없다. < 노릇 > 은 나이가 듦에 따라 역할이 바뀐다. 자식일 때는 자식 노릇을 해야 하고, 아비일 때는 아비 노릇을 해야 한다. 만약에 아비 노릇을 해야 할 때 자식 노릇을 하면 철없다는 소리 듣기 쉽다. 즉, 직위(노릇)에 따른 책무도 나이가 듦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반면에 버릇은 불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 노릇을 해야 하는, 인간으로 둔갑한 천 년 여우가 밤마다 닭의 생간을 먹는 것은 생래적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버릇의 불변을 상기시킨다. 바디 체인지'를 다룬 영화 << 내 안에 그놈, 2018 >> 은 노릇과 버릇이 충돌하는 영화이다. 양아치 아재와 겁쟁이 고딩이 우연한 사고로 인해 몸이 바뀌게 되는데, 이런 류의 영화는 노릇과 버릇이 혼동을 일으키며 발생하게 되는 왁자지껄을 다룬다. 겁쟁이 고딩의 몸으로 들어간 양아치 아재'는 고딩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만 아재 때 습속을 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형이 거기서 왜 나와 ?! 그 역(逆)도 마찬가지'이다. 양아치 아재의 몸으로 들어간 겁쟁이 고딩은 아재 노릇에 충실해야 하지만 부지불식 간에 고딩 때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툭 튀어나온다. 영화 << 기생충 >> 도 일종의 노릇과 버릇이 뒤섞일 때 발생하게 되는 곤경을 다룬다. 하류층 가족이 상류층 가족과 동화되기 위해서는 하류층의 버릇을 감춘 채 상류층 노릇을 모방, 흉내, 척하기와 같은 연기를 해야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불쑥 하류층의 버릇이 튀어나온다. 상류층도 마찬가지'이다. 상류층은 종종 부지불식간이 상류충(ㅡㅡ蟲)을 드러낸다. 뭐, 아님 말고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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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 기생충 >> 과 관련된 리뷰는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고 쓴 글이다( 영화 예고편 한 편 본 게 전부다. 이 영화와 관련된 리뷰나 기사 그리고 평론도 읽지 않았다 ). 읽지 않고 읽은 척하는 기술을 터득하다 보면 보지 않고도 본 척하는 내숭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김영민은 알면서 모른 척하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그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보다 상위는 "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 " 이다. 그거시 바로 관심법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본 척하는 글에 화가 나서 가래침을 툭 내뱉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 누가 지금 가래침 뱉는 소리를 내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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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9-06-15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곰발님의 재치는 이미 스타일이 되었군요.
저는 어떤 글이 좋은가... 그런 것들을 구별하지 못해요. 대개 책을 읽을 때도 읽기 어려우면 필사를 하고 읽을 만 하면 그대로 읽고 하는데, 곰발님 글을 읽을 때는 음성 지원이 되는 경험을 해요. 곰발님의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저도 뭔가 스타일을 만들어 볼까 봐요. 야무진 꿈이지만요.
(하나 물어도 될까요? 김영민 씨의 ‘알면서 모른 척‘이 어떤 맥락일까요. 곰발님이나 김영민 씨는 어떤 때 알면서 모른 척할까요. 곤란한 질문이라면 이 글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15 18:2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반갑네요. 초원 님 ! 잘 지내십니까, 저는 늘 그렇습니다..




공자는 셋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스승으로 모실 만하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공자는 사람의 관계를 스승으로 모실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별을 하는데 이것은 곧 인간 관계를 수직 서열화하는 태도인데, 김영민은 그렇게 되면 셋이 동무가 될 수 없다면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15 17:58   좋아요 0 | URL
글구보니 누군가 초원 님과 똑같은 소리를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도 내 글이 음성지원되는 독특한 문장이라고 하더군요 ^^

초원 2019-06-17 21:08   좋아요 1 | URL
답변 감사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목소리 들려주세요.

*몇 마디 더 덧붙여였었는데,
제가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서 댓글을 수정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주의할게요.
 
괴물 [VCD]
봉준호 감독, 고아성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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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괴물에 대하여    :



 




잔디밭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너무 빨리 다가온 타자는 괴물이 되고 영영 오지 않는 타자는 메시아가 된다1)


 

 

 

 

                                                                                                    조용필과 괴수(물)의 공통점은 둘 다 피날레를 풀샷으로 장식한다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조용필은 피날레 무대에 올라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하늘에서는 박이 터지며 색종이 날리고, 무대에서는 박수 터지며 환호를 날린다.

삼 파장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이 내장된 럭키금성 티븨 모니터 화면에 엔딩 자막이 뜬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  다음에 또 만나요 !  괴수(물)가 등장하는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괴수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저잣거리를 염탐하는 < 거리 두기 방식 > 을 선호한다. 그렇기에 관객이 괴수의 전신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장르적 약속이자 관습이다. 관객은 절정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괴수 신체의 편린-들'만 볼 수 있다. 관객에게 전부가 아닌 부분만 살짝살짝 보여주는 열쇠 구멍 수법은 " 감질나 " 지만 또 나름 그것이야말로 괴수물의 " 감칠맛 " 이기도 하다. 그래, 이 맛이야 !

일종의 절편음란증적 관습을 즐기는 경우이다.  장르 마니아라면 장르 영화 패턴이 똑같다며 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익숙함에 대한 무저항이 바로 장르 마니아의 미더덕'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괴물, 2006 >> 은 장르의 익숙한 순서를 180도 뒤집는다. 괴물은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낮에 보란듯이 전신을 드러내며 한강 공원의 고른 잔디밭을 들쑥날쑥한 쑥대밭으로 만든다. 여담이지만  :  한강 공원 잔디밭이 딸기밭이라 한들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보고 있나, 신 작가 !     관객은 예상치 못한 등장에 당황하게 된다. 장르적 습속에 익숙했던 관객은 마음의 준비도 없이 불쑥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물에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너무 빨리 다가온 타자는 괴물2)이 되고,  영영 오지 않는 타자는 메시아가 된다는 점에서 봉준호의 << 괴물 >> 은 너무 빨리 등장한 타자이다. 감독은 관객이 방심하고 있을 때 허를 찌른 후 냅다 도망친다. 일격인 셈이다. 봉준호의 치밀한 전략 앞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절정이 맨 앞에 배치되다 보니 김 빠진 전개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영화가 장르적 재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괴물의 한강 공원 난입 사건이 사실은 진짜 절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 제목은 << 괴물 >> 이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다.

진짜 오르가슴이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가짜 오르가슴이라고 밝혀졌을 때 관객은 일종의 보너스를 얻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관객 마음을 사로잡는 < 가짜 오르가슴 > 은 노래방에서 마지막 노래를 열창하고 나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노래방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마음씨 좋은 노래방 주인이 보너스 타임을 넉넉하게 넣어줄 때의 환희와 같다.





​                              

1)   김영민, 집중과 영혼 962쪽  

2)   인간과 짐승은 모두 < 곁 > 이라는 이름의 고유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 이 영토(거리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친밀하지 않은 낯선 타자가 자신의 동의 없이 곁을 침범하며 팔짱을 끼거나 허리를 감싸는 행위는 불법인 것이다(성범죄가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너무 빨리 다가오는 타자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봉준호의 괴물은 그 어떤 동의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인간의 곁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괴물이 너무 빨리 다가온다면 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다. 신이 인간의 권선징악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신은 인간에게 관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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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리 안   데 쓰   드 라 이 브  :


 

 

 

 

 



죽을 맛입니다



                                                                                                한국 사회는 죽음에 대한 강박적 언어 습관을 가진 문화에 속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배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배고파 죽겠고, 목말라 죽겠고, 외로워 죽겠고, 바빠서 죽겠다고 말한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 가능한 영역이다. 배 고파 죽을 수도 있고, 목 말라 죽을 수도 있으며 바쁘면 과로사로 죽을 수도 있고, 외로우면 괴로우니 죽을 수도 있는 아이러니. 아니 그러니 ?

그런데 우스워 죽겠고, 행복해 죽겠고, 예뻐 죽겠고, 미워 죽겠고, 심심해 죽겠다 _ 라고 말하면 복잡하다. 죽을 일이 많기로서니 바빠서 죽고, 우스워 죽고, 행복해 죽고, 심심해 죽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미워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은 아스트랄하다. 심심한 상황을 좋아하는 나는 심심해 죽겠다 _ 라는 경고성 멘트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러다가 나 정말 죽는 거임 ?!  이처럼 한국인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죽음 직전까지 간다.  주성치 영화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 웃다가 죽는 꼴을 상상하면 정말 웃기는 상황이어서 몸서리나게 된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결국 생에 대한 강한 의지가 표출되는 모양이다.

한국인은 보신을 위해서라면 개불 알까지 뜯어먹을 기세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니 거시기를 뜯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할 때마다 " ~ 해서 죽겠어 ! "  라는 한국 특유의 죽음 충동(코리아 데쓰 드라이브 ?!)을 자주 언급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건강 염려증 환자의 럭키금성 삼 파장 발광 다이어드적 초정밀 극성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아따, 참말로 찌릿찌릿하다. 오호통재다. 자주 죽는 남자가 있다. 유덕화는 영화 속에서 자주 죽는다.  << 천장지구 >> 에서 코피를 흘리며 죽기 시작하더니 << 복수만가 >> , << 지존무상 >> , << 용재강호 >> , << 결전 >> , << 삼국지 : 용의 부활 >> , << 무간도 >> 에서도 죽는다.

대부분 장렬하게 죽지만 때론 비렬한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장렬하게 죽는다. 그는 멋지게 죽는 데 최적화된 배우이다. 그의 연기 철학은 목련처럼 지저분하게 죽느니 동백꽃처럼 단칼에 죽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입만 열었다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징징거리는 캐릭터라면 이룰 수 없는 폼사의 경지'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 죽을 맛 " 이라고 하는가 보다. 제작자가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유덕화는 자주 죽는다......        폼생보다 어려운 것은 폼사'다. 그는 영화 속에서 언제나 폼생폼사한다. " 폼生 " 은 자기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지만 " 폼死 " 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다. 사람들은 개똥밭에서 뒹굴지언정 멋지게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니 말이다. 살아서 " 폼생 " 을 성취할 기회조차 없었던 나는 유덕화가 멋지게 죽을 때 항상 감탄하게 된다. 나에게 폼생폼사는 불가능한 판타지이기는 하나 적어도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는 생의 의지는 없다. 적멸(寂滅)하는 것이 내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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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8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돈, 2019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 갈등(葛藤 ㅣ 칡 갈, 등나무 등) " 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서로 상반되는 괴리'가 발생할 때 내면 갈등이 발생하고 개인 대 조직이 갈등할 때에는 내부 갈등이 발생한다. 

주인공과 갈등하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고부 갈등,  노사 갈등,  계급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갈등의 종류가 무엇인가에 따라 드라마의 성격도 어느 정도 결정된다.   관객은 주인공이 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니까 장르 불문하고 칡과 등(나무)이 제대로 얽혀야 좋은 희극과 비극이 탄생한다.  이것은 극작법의 ABC.  그런데 드라마에 갈등 요소가 없으면 죽도 밥도 아닌 MBC가 된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란 말이시.   영화 << 돈, 2019 >>  에는 " 갈등 " 이라는 핵심 요소가 빠져 있다.  이 영화는 갈등은 없고 해소'만 거창하다.

번호표(유지태 분)의 범죄 제안에 증권사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 분)은 고민도 없고 갈등도 없이 두꺼비가 파리를 잡아채듯이 악마의 유혹을 덥석 문다. 그런데 조일현의 " 망설임 없는 조력 " 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가 처음부터 "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비호감 캐릭터 " 였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만 조일현이라는 캐릭터의 초기 설정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착한 소시민 캐릭터'라는 데 있다. 그에게는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죄를 지어야 하는 " 간절한 결핍 " 이 부재하고,  또 마찬가지로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 간절한 야망 " 도 보이지 않는다.

간절한 욕망의 파이(π) 가 작다 보니 갈등이 선명하지 못하고,  갈등이 선명하지 않으니 전결(기/승/전/결'에서) 부분에서는 설득력을 잃는다.  지하철역에서 돈 뿌리는 장면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해소한다기보다는 헛웃음만 나오게 한다. 그리고 조일현이 번호표에게 느닷없이 던지는 훈계의 말'은 설득력 제로'이다. 평범한 소시민이 과시적 소비와 만나게 되었을 때의 판타지에 집중했으면서 갑자기 계롱산 산신령처럼 뒷짐 지고 훈계질'이라니......         강렬한 오르가슴을 얻기 위해서는 공을 들인 전희가 필요한데 이 영화에는 애국가 타임라인 섹스를 선보이고는 황홀하지 ?

라고 되묻는 교회 오빠의 성스러운 근자감을 떠올리게 만든다. 충고 한 마디 하자면 : 섹스,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예 ?                 영화는 생각 없이 보기에는 그럭저럭 재미있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생각을 하고 본다면 그럭저럭 우럭하다.









이 영화에서 소비되는 여성 이미지는 남성이 욕망을 성취한 후 얻을 수 있는 성과물이다. 배우 원진아가 연기한 박시은 대리'는 하루종일 섹시하다. 이마에 나 섹시함 ? 어때요. 졸라 섹시함 ??!  이란 표 딱지를 붙이고 있다. 남성의 원기 회복용 캐릭터는 몸은 섹시한데 교양은 난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는 이 여자의 육감을 집요하게 부각한다. 여성 감독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한심하다, 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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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한 골든 히트쏭




 


                                                                                                       한때 노래가 테이프에 담겨 유통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저작권이 없었기에 가수 불문하고 듣기 좋은 곡만 모아서 녹음한 불법 B자 테이프가 " 길보드 차트 " 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곡 선별은 불가능했다. 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테이프에 녹음된 노래 전곡을 끝까지 들어야 했다. 쿵따리 샤바라 같은 디스코 댄스곡 다음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슬픈 발라드곡이었다. 선곡 순서에 따라 감정도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었다. 조울증 걸리기 쉬운 조합이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우리는 그것을 << 한국인이 사랑하는 골든 그레이트 히트쏭 >> 이라고 불렀다. 단순한 히트쏭이 아니다. 무려 한국인이 사랑하는 그 ! 레 ! ! ! 히 ! 트 ! 쏭 ! 이다 보니 명반이 될 만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조합(컴필레인션 음반)은 이사 갈 때 제일 먼저 버려지는 품목 1호'이다.

영화 << 마약왕, 2018 >> 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올렸던 것은 한국인이 사랑한 골든 히트쏭이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면면은 요즘 충무로에서 방귀 깨나 뀐다는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 출연이라고 하기에도, 우정 출연이라고 하기에도, 깜짝 출연이라는 표현도, 형이 거기서 왜 나와 _ 라고 말하기에도 모호하다. 밑도 끝도 없이 " 갑툭튀 " 한 배우들은 이두삼과의 불꽃 튀는 " 케미 " 도 없이 갑자기 소멸하니 결국은 " 듣보잡 " 캐릭터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 << 마약왕 >> 은 화려한 출연자 구성만 놓고 보면 2018 울트라 메가 히트쏭 컴필레인 음반'처럼 보이지만 결론은 쓰레기다.

어느 네티즌의 20자 감상평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캐비어로 알탕을 끓인 꼴이 되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 들은 모두 다 납작하다. 마약왕 이두삼은 나약왕처럼 보여지고,  정의감에 불타는 김인구 검사는 밑도 끝도 없이 정의, 정의, 정의만 외치다 보니 정의감에 물타려는 캐릭터1)로 보인다. 배두나가 연기한 로비스트 역도 마찬가지'다. 주변인의 입을 빌려  : 그녀를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얻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며 그 희소성을 강조하더니 그녀는 알고 보니 금사빠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쉽게 이두삼과 사랑에 빠진다.

신을 향한 나으~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어요. 당신을 향한 나으 사랑은 특, 끄으읍 !!!! 사랑이어요 ~               그녀는 낮이나 밤이나 그가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달려간다. 아아. 속절없는 부나비 사랑이어라.  영화 속에서 그들이 각자 맡은 캐릭터는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성만 가졌을 뿐 동기도 없고, 동기가 없다 보니 깊이도 없고, 깊이가 없다 보니 비극도 없다. 그들의 몰락이 비극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것은 관객이 긴장감을 완벽하게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트 1층 난간에서 뛰어내려 죽겠다고 고함치는 영화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 2시간 20분 동안 이 깊이 없는 몰락을 지켜본다는 것은 꽤나 엿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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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나리오 초고가 만들어지면 시나리오 품평회에서 사람들이 집요하게 물고 뜯는 것은 행위의 동기'이다. 동기가 분명하면 행위는 정당성을 부여받지만 동기가 불분명하면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기 일쑤'다. 이 영화에서 김인구 검사(조정석 분)는 물불 안 가리고 정의감에 불타는가 _ 에 대한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시나리오 작가는 일반적으로 이런 캐릭터의 행위에 그럴싸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여동생이 마약으로 목숨을 잃었다 따위의 서사를 밑바닥에 깔아둔다).  범죄극에서 범죄자의 사연이 구구절절할수록 그를 쫓는 형사의 사연도 구구절절해야 박자가 맞는 법이다. 김인구 검사는 두께가 없고 깊이도 없어서 얇은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가 시나리오 점검 회의에서 검열 없이 통과되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에 이 심각한 오류를 알면서도 영화를 제작했다면 제작진는 관객을 호떡으로 아는 것이다. 허허. 걱정 마세요. 한국 관객은 개떡같이 말해도 호떡같이 알아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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