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철학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영혼을 팔면 권력을 얻고,
양심을 지키면 시련을 준다.
히틀러 정권 아래에서 히틀러'에게 영혼을 판 철학자는 많았다. 양심을 팔면 빵을 얻을 수 있었고 영혼을 팔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학교에 남아 있는 철학자들은) 나치에 협력하면 빵과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쥐새끼처럼 재빨리 간파했다. 그런 식으로 교수직을 얻은 철학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를 통해 그 이름을 열거하지는 않으련다. 왜냐하면 독일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상, 이들 이름을 아는 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일 내에서 떵떵거리며 권세를 누렸으나 세계 지성인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기껏해야 나치 정권의 나팔수 취급을 받았다. 스스로를 " 철학적 지도자 " 라며 떠벌리고 다녔던 히틀러에게는 보다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히틀러'는 " 출력이 낮아 앵앵거리는 나팔(핸드마이크) " 를 쥔 나팔수(핸드마이커 : 내가 방금 지은 신조어'다)에 만족하지 않았다. 변희재, 지만원, 조갑제 따위가 박근혜 지지 선언을 한다고 해서 " 그네 " 가 크게 기뻐할 리는 없다. 오히려 김지하의 지지 선언이 그네에게는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는 칸트와 바그너 그리고 니체를 나치와 연결해 줄 동시대 철학자'를 간절히 원했다. 기회주의자였던 그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이 철학교수는 1933년 5월 1일 나치당에 입당한다. 당원번호는 3,125,894번'이었다. 그는 변희재, 지만원, 조갑제처럼 고만고만한, 앵앵거리는 < 핸드마이커 > 가 아니었다.
그는 엄청난 출력을 자랑하는 호박 나이트클럽 JBL < 대형스피커 > 였다. 한번 지껄이면 세계로, 세계로, 세계로 뻗었다. 히틀러, 보기에 좋았어라. 그는 세계 철학계의 거성이었다. 슈퍼스타였다. 영혼을 팔면 권력을 얻고 양심을 지키려는 자에게는 시련을 준다고 했던가 ! 그가 히틀러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얻은 것은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자리'였다. 신임 총장이 된 그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휘날리는 연단에 올랐다. 나치 제복 차림이었다. " 하일, 히틀러 ! ! ! " 그는 나치식 거수경례를 한 다음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총장이라는 자리는 대학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선생과 학생의 충성심은 오직 대학의 정신 속에 담긴 진정한 공동의 뿌리를 통해서만 깨어나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의 정신이 명백함과 탁월함, 권력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도자, 즉 총통 스스로 가장 먼저 앞서 나가야 합니다. 달리 말해서 독일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통해 독일의 역사를 표현하라는 정신적 명령을 주저 없이 우리의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 176쪽 )
그가 바로 마르틴 하이데거'였다 !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다. 하이데거는 나치에 < 협조 > 했다기보다는 차라리 열정적으로 나치에 < 충성 > 을 바쳤다. 그가 총장이 되고 나서 한 일은 유대인 철학자를 대학에서 내쫒는 일이었다. 철저한 기회주의자였고 나치 당원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철학계의 천재였다. " 독일의 서정주 " 라고 할까 ? 이본 세라트의 << 히틀러의철학자들 >> 은 출세를 위해 히틀러에게 영혼을 판 철학자들을 다룬 책이다. 동시에 하이데거 같은 인간 때문에 고난을 겪었던 철학자도 다룬다. 발터 벤야민은 게슈타포를 피해 변방을 떠돌다가 " 말 한 마리를 죽이기에 충분한 " 모르핀을 삼키고 죽었다. 그가 남긴 것은 손때 묻은 낡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반면 < 철학계의 찰리 채플린 > 이었던 아도르노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곳에서조차 그는 외롭고 높고 두려웠다. " 자신의 표현을 발리자면 아도르노는 < 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새 > 였다 ( 276쪽 ) " 그리고 또 한 명,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있었다. 그녀는 " 한때나마 사랑했던 유부남 " 의 조국인 독일을 벗어나 망명길에 올랐다.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한 때는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부남은 서른 여섯 살 교수였고, 아렌트는 겨우 열여덟 살 제자'였다. 그들은 불륜 관계'였다. 스승은 쪽지를 통해 제자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시간 순으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아렌트 양! 오늘 저녁 꼭 내 연구실로 들러줘요. 내 진심을 말하고 싶어요.
▶ 저녁에는 계획에 없던 모임이 생길 수 있어서 어찌될지 모르겠어요.... 이 쪽지는 찢어서 없애버려요.
▶ 내 사랑..... 일요일 밤 9시 이후에 와줘요
▶ 나의 한나 ! 이번 주 일요일 밤에 올 수 있어 ? ...... 9시쯤 !
▶ 당신을 향한 나의 욕망을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있어
열여덟 살 소녀를 사랑했던 남자는 누구일까 ? 눈치가 빠른 이라면 " 설마 ?! " 라며 도리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하이데거'였다. 그렇다, 나치주의자 하이데거와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 연인 관계'였었다. 독일 패전 후, 나치에 동조했던 인물들은 죗값을 치뤘다. 핸드마이커'들은 규모에 걸맞게 꾀죄죄한 형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대형 스피커에 해당하는 하이데거는 어떻게 되었을까 ? 열혈 나치주의자'였던 하이데거도 재판을 받았다. << 나의 투쟁 >> 을 읽어봤냐는 반나치위원회의 질문에 하이데거는 " 내용이 혐오스러웠다 ! " 고 답변했다. 연합군은 그에게 명예교수직을 박탈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내린 형벌은 약간의 경제적 제재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작은 고통 앞에서 불만이 많았다. 그는 동료들에게(심지어 유대인 동료들에게도) 지지를 호소했다. 거대한 출력을 자랑했던 호박 나이트클럽 JBL 스피커는 이처럼 핸드마이크보다 초라한 모습으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자신을 보호하며 앵앵거렸다. 유대인 동료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데 말이다. 그는 끝끝내 유대인 동료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 히틀러의 철학자 >>는 제목만 놓고 보았을 때( " 맙소사, 정치와 철학'의 조합이라니 ! " ) 는 무척 따분할 것 같지만 예상 외로 쉽게 읽힌다. 오히려 소설보다 재미있다. 읽다 보면 역사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을 추천한 신간평가단에 감사하다. 예상치 못한 빅 재미를 선사한 책이다.
이 책을 고리타분한 인문학서로 오해할 독자를 위해서 마무리는 < 저자의 서문 > 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매조지하겠다.
이 책은 관련된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역사적인 시대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쓰여졌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 책은 논픽션이다. 공문서에서부터 편지, 시진, 그림, 구두 기록, 설명문 같은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해 사실을 바탕으로 썼으며 자료의 출처는 참고문헌 목록에 전부 밝혀두었다. 하지만 서술방식은 독자가 위험천만한 1930년대의 독일에 실제로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소설 속의 사건을 묘사하는 형식을 따랐음을 미리 밝혀둔다.
- 저자 서문 중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