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조제 > 에  대하여   :










위스키의 바디감










내가 싫어하는 영화 부류는 슬픈 장면에서 슬픈 배경음악을 과도하게 삽입한 경우다. 이런 영화는 십중팔구 배경음악이 전체 사운드를 잡아먹는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음악을 활용하여 관객 몰입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자 하는 수작이다. 감독은 슬픈 표정을 짓는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후 슬픈 음악의 볼륨을 점점 높이면서 관객과 밀당을 펼친다. " 자, 이제 울어 ! 안 울어 ?  이래도 안 울래 ? " 관객이 울지 않으면 주인공을 더욱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넣겠다는 태도다. 이것은 감독이 슬픔을 볼모로 관객을 협박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격렬비열도에서 태어난 죽방멸치 새끼라면 콧방귀도 안 뀌겠지만, 관객 대부분은 그 장면에서 가거도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하게 된다. 타인의 비참에 대하여 슬픈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관객이 눈물을 보였다고 해서 그 장면(그 영화)이 작품성을 갖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관객이 꼴렸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반드시 훌륭한 에로 영화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마찬가지로 관객이 크게 웃었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반드시 훌륭한 코미디 영화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품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영화적 재현의 윤리이다. 


내가 장애인을 다루는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장르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들에게 장애인은 웃음 코드와 감동 코드로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에 불과하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프레임에는 동물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저변이 깔려 있듯이 장애인보다도 못한 비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은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차별이 깔려 있는 태도'다. 그리고 이성애를 다루는 사랑 영화 속에서 여성은 " 여자에게는 사랑이 전부 " 로 등장하지만  현실 속에서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없다. 가난을 다루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상을 타자화할 때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런 오류들이 발생하는 영화는 대부분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다루고, 남성 감독이 여성을 재현하고, 가난한 적이 없는 자가 가난을 병풍처럼 활용할 때 발생한다.  무지할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 영화 << 조제 >> 는 이 오류와 기만과 무지가 만든 최악의 영화'다. 관객들은 프라이팬 대신 다리미로 스팸을 굽는 조제의 장면이 등장할 때 웃었지만 나는 그 장면이 빈곤에 대한 무지와 조롱처럼 보여서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가난이 결핍의 세계라 해도, 낯선 남자 앞에서 다리미 위에서 스팸을 굽는 궁상을 보여주고 싶은 여자가 있을까 ?  


감독은 그것이 꽤나 신선한 영화적 상상력이라며 낄낄거렸겠지만 재현에도 윤리가 있는 법이다. 감독은 가난을 병풍처럼 세워놓고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감독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위스키의 바디감과 커피의 바디감1)을 남발할 때마다 나는 그 옛날 박근혜 정권 때 워싱턴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윤창중의 그립감 발언이 떠올랐다. 영화는 조제의 빈곤과 비참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화면으로 모든 장면을 채웠지만 그것은 마치 6성급 호텔 만찬회에서 산해진미를 맛보며 세계의 가난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가난과 장애와 여성을 병풍처럼 세워놓고는 정작 위스키와 커피의 바디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낮게 속삭였다. " 아이, 시발. 격렬비열도의 죽방멸치만도 못한...... " 




​                               


1)    위스키와 커피의 공통점은 살롱 문화의 오브제라는 점이다. 위스키가 중산층 남성의 (룸)살롱 문화를 대표하는 오브제라면 커피는 중산층 여성의 살롱 문화를 대표한다. 감독이 위스키와 커피의 바디감을 소재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는 것은 그가 살롱 문화에 익숙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장르는 멜로가 아니라 살롱 영화'다. 살롱에 모인,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위스키와 커피의 바디감을 즐기며 문학을 이야기하며 예술을 논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만 다리미 위에서 스팸 굽는 여자를 안줏거리로 사용하지는 말자. 부탁이다. 시바.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20-12-31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벌써 2020년이 다 지나가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한 해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12-31 21:34   좋아요 1 | URL
겨호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고양이도 건강히 잘 지내고, 따님도 항상 신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han22598 2021-01-02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생각을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선 했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비장애인인 나는 장애인을 대변할 수 없다고....거의 불가능한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1-02 20:49   좋아요 0 | URL
실격..... 이 책이 아마 작년에 나온 책이죠 ? 인상 깊은 책이었습니다.

후부키 2023-07-1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는 다리미 위에 스팸굽는 장면이 없는데요? 소설을 읽어보고 글을 작성하신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