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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보기









1 코로나   :   는 라틴어로 왕관(crown)이라는 뜻이다. 왕관이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도상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석학 용어를 빌리자면 팔루스(Phallus)다. 그것은 페니스로 권력을 의미한다. 




2 마스크   :   의 기원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에서 비롯되었는데 신들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 바로 가면(mask)이다. 주술사는 가면을 씀으로써 신의 아바타(대리자)를 연기한다. 그렇기에 마스크 또한 팔루스다.



3 이만희   :   는 스스로를 재림 예수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는 신의 형상을 담은 가면을 쓴 주술사이자 분신이며 아바타다. 왕관을 쓴 그는 영원하며 거대한 팔루스다. 




4 코로나, 마스크, 이만희의 공통점은   :   남근 숭배'다. 




5 신천지와 코로나의 공통점은   :   접촉이다. 신천지는 그것을 전도라고 말하고 코로나는 전염이라고 말한다. 



6 이만희가 거대한 남근이라면 신도들이 이만희를 통해 욕망하는 것은 남근 숭배이다. " 영적 체험 " 에 대한 신도들의 갈망은 일종의 슈퍼 오르가슴이다. 

7 펜데믹  :   시대에 있어서 현대인이 마스크에 집착하는 이유는 죽음의 신을 속이기 위한 목적에 있다. 신을 닮은 아바타 행세를 해서 죽음(의 신)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8  이 모든 상징 해석은 억지'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해석 모두 얼토당토않는 과잉 해석인 것이다. 코로나는 그냥 코로나이고 우리가 쓰고 있는 마스크는 고대 주술사가 쓰던 그 가면이 아니며 신천지가 코로나의 집단 감염원이라는 사실도 우연일 뿐이다. 모두 다 엉터리다. 고로 7번 해석도 엉터리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엉터리인 것이다. 비말에 의한 감염이 코로나의 주요 감염 통로라면 마스크 미 착용에 따른 위험보다 위험한 것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순간이 더 위험할 것이다. 젓가락과 숟가락이야말로 타인의 비말이 서로 섞이는 도구가 아니었던가 ? 

9 신천지   :   는 신천지일 뿐이고 이만희는 이만희일 뿐이다. 그는 사기꾼일지언정 사탄은 아니다. 

10 마스크   :   는 마스크일 뿐이고 코로나는 코로나일 뿐이다. 그 외의 모든 상징 해석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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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전파자 31번에게



                                                                               소설 << 몽실언니 >> 에서 몽실이는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길 위에서 헤어진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몽실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름이 뭐예요 ?                그 순간, 여자 인민군에 불과했던 사람은 로동순이 되고 남자 괴뢰군 아저씨는 곽팔용이 된다. 몽실이는 왜 그토록 사람의 이름에 집착했을까 ?  


양돈장에서 처음 일하게 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새끼 돼지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 녀석은 똘똘이, 이 녀석은 촐랑이, 그 녀석은 얼룩이. 이름이 생기는 순간에 각각의 고유한 개성도 생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돼지를 키워서 도축장으로 보낼 때에는 마음의 상처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양돈장에서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일부러 짐승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혹은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다는 마음은 그 대상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마음가짐의 출발이다. 


반대로 격리 수용소 관리자들이 수형자에게 이름 대신 숫자를 부여하는 이유는 이름을 제거해서 대상을 " 비인격화 " 하려는 목적에 있다. 사육장의 노동자가 이름 없는 가축을 대하듯이 그들 또한 이름 없는 대상을 죄의식 없이 처리할 수 있다. 코로나 정국에서 언론이 코로나 환자를 확진자19, 20, 21, 22, 23, 24...... 31 따위로 호명할 때마다 언론 보도가 그들을 피해자로 인식한다기보다는 가해자 취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쓸쓸한 마음이 든다. 더군다나 동선 범위가 넓었던 확진자 31번은 " 슈퍼전파자 " 라는 혐오의 프레임에 갇혀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왜, 우리는 피해자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혐오하게 되었을까 ? 슈퍼전파자라는 이 극렬한 혐오의 표현을 자유롭게 배설할 수 있는 애티튜드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종식되었을 때 보건 당국의 역학조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80번째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가 다수 전파 환자였던 14번째 환자로부터 감염됐다. 162번째 환자는 2015년 6월11일께 삼성서울병원에서 80번째 환자의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 과정에 개인 보호장구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돼 감염됐다. 162번째 환자는 7월23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지만 80번째 환자는 기저질환(악성림프종)이 악화돼 11월25일 숨을 거뒀다. 마지막 80번째 환자의 죽음으로 메르스 사태는 종식됐다.”


80번째 환자는 병상에 누워 뉴스를 통해 자신의 이름 대신 80이라는 숫자로 호명된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이 사람 저 사람의 몸을 떠돌가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숙주가 자신이라는 점도 깨달았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 환자가 없어지면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종식된다고 선언했다. 뒤이어 메르스가 종식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경제적 손실은 ○○조 원이라는 보도도 이어졌다. 모두 다 메르스의 종식을 원했고 그것은 곧 숙주의 죽음을 의미했다. 숫자 80이 아닌, 매우 평범한 이름을 가진 그는 이 상황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슈퍼전파자 31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또한 얼마나 외로울까. 


건투를 빈다, 진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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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멋진 복장으로 신사답게 가겠다








                                                                                                                                                                                                       1912년 4월 14일 밤,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을 위기에 다다르자 사람들은 갑판 위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구명선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이 전체 승객의 1/2이었다는 점이다. 둘 중 한 명은 구명선에 오를 수 있지만 다른 한 명은 타이타닉 호에 남아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 탑승 순서는 어린이 다음에 여성 그리고 노인 순으로 이루어졌다. 



코로나 정국인 요즘, 내가 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의 행렬을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마스크와 구명선의 유사 관계 때문이다. 코로나 창궐 시대에서의 마스크는 타이타닉 호의 구명선이다. 대한민국의 1일 마스크 생산량이 1000만 장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제 활동 인구가 2800만 명이라는 점에서, 1명이 마스크 한 장을 구입하면 나머지 2명은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방역 마스크에 대한 우선권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주어져야 한다. 타이타닉 호 선장이 어린이, 여성, 노인 승객 순으로 구명선에 먼저 오를 수 있는 우선권을 인정했듯이 말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약자를 우선하는 태도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기저 질환이 없고 감기 증상이 없는 신체 건강한 청장년층이라면 방역 마스크를 대구/경북 거주자와 노약자에게 우선 배분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청장년층 세대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컴퓨터 활용 능력을 총동원해 하루에 수십장씩 마스크를 구매하고 있다. 반면에 전자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코로나 취약 계층은 약국 앞에서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결국에는 허탕을 치기 일쑤다.  디지털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세대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마스크를 구명선에 빗대 설명하자면 신체 건강한 청장년층이 구명선을 독점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방역 마스크 구매를 포기함으로써 취약 계층에게 마스크가 돌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 방역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과 디지털 정보 접근성을 활용하여 하루에 수십 장씩 구매하는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민폐'라고 할 수 있을까 ?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 ! " 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의 1등 객실 승객이었다.  그는 애인과 하인을 구명정에 태운 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선원의 요구도 거절했다. 


그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구명조끼 대신 턱시도를 입고 죽음을 기다렸다. 내가 벤자민 구겐하임과 같은 숭고한 희생을 당신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고작 치사율 0.5%에 불과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공포에 질려서 마스크 판매 쇼핑몰 이곳저곳을 순례하면서 광클하고 있는 젊은 당신이 한심해서, 너무나 한심해서 하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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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3-06 12: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의 국내 첫 사망자는 62세의 남자인데 조현병 때문에 20년이 넘도록 병상 생활만 했다고 하더군요. 최근 경향신문에 실린 고병권의 칼럼에 따르면 사망자는 사방이 막혀 있는 폐쇄 병동에서 살았고 연고자조차 없었으며 42킬로그램의 저체중 상태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고병권은 이 칼럼에서 그들(정신질환자, 장애인, 무연고자, 노령자 등등)은 바이러스로부터 격리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 사회에서 바이러스로서 격리된 이들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상황이 이쯤 되니 코로나19 자체의 위험성에 대한 의식이 엷어지더군요.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약자를 억압하는 방식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염치 부족한 사람들의 심리가 눈에 더 잘 들어옵니다. 말씀하신대로 숭고한 희생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부끄러움의 무게가 뭔지는 알아야 될 텐데, 그조차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인 듯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6 13:32   좋아요 0 | URL
지금 서구(미국, 호주)에서는 화장지 사재기에 의한 광풍이 불고 있다는데 이게 코로나 때문이랍니다. 둘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깨닫는 것은 그래도 한국은 서구보다 선진국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대구 시민 대단합니다. 폭동도 없고, 사재기도 없고, 탈출도 없고..
 







​                                 


그림의 왜상은 문장의 은유와 같다  :











죽은 자는 산 자 때문에 고통받았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정면에서 그림을 감상한다. 우리가 정면에서 그림을 보는 이유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시야각과 동일시하기 위해서이다. 한스 홀바인의 << 대사들 >> 이라는 그림을 보다 보면 사실주의에 감탄하기보다는 그림 하단에 위치한 이상한 " 왜상 " 에 신경이 쓰이게 된다. 보다 보면 점점 기분이 나빠진다. 도대체 저것은 무엇인가 ? 가름할 길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시야각을 90도(정면)에서 45도로 전환하면 된다. 이 그림을 사선에서 보면 왜상의 정체가 밝혀진다. 


 


바로 해골이다. 정면에서 보면 기괴하고 일그러진 " 왜상(anamorphosis) " 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 실상 " 이자 " 정상 正象 " 이 되는 것이다.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슬라보예 지젝은 이처럼 정면에서 사물을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때로는 대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그렇다면 화가가 초상화에 해골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  이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메멘토 모리. 부와 명성은 죽음 앞에서 한갓 헛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심하시오. 내 식대로 설명하자면  :  시바, 함부로 나대지 마라. 한순간에 좆되는 수가 있어 ! 


해골이라는 오브제가 상징하는 것은 분명하다. 죽음 the dead 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어서 일상의 매우 흔한 풍경이지만 그것은 공포와 혼란의 대상이기도 해서 정상 국가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조처한다. 그렇기에 시체는 국가의 엄격한 통제 아래 관리된다. 죽음의 소유권은 국가다. 그것은 세상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되는 오브제'다. 그래서 예술 작품은 해골을 은유의 방식으로 호명한다. 



 



한스 홀바인이 보이면 안 되는 오브제를 왜상이라는 방식으로 해골을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 물텀벙텀벙 >> 에서 해골의 왜상 역할을 하는 것은 하얀 물보라이다. 그림 대부분이 단색으로 매끄럽게 처리된 반면에 물보라는 거친 붓질로 처리되었다. 그림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흰색 붓질이 이질적이고 기괴한 왜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선 이 그림은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우측 상당에 우뚝 솟은 나무 두 그루는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이 매우 더운 날씨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좌측 중앙에 위치한 야외 비치 의자는 이곳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영장이란 사실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이 장소는 모두 직선으로 구성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정보는 주체의 부재'다. 빈 의자의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 우리는 쉽게 우측 하단에 불쑥 돌출된 직사각형 판이 다이빙대'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면 이 그림은 의자의 주인이 다이빙을 해서 물속으로 사라지는 찰나를 포착한 그림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순식간에 존재에서 부재로 전환하는 찰나를 그린 것이다. 


삐딱하고 다크하며 언캐니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그림이 존재에서 부재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실종을 떠올리게 만든다. 홀바인의 그림이 땅속에 은폐되어야 할 것이 지상으로 돌출된 해골 왜상을 다룬다면  호크니의 그림은 의자 주인이 수면 아래 잠겼다는 점에서 두 그림은 서로 상반된 왜상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 << 기생충 >> 에서 다송이 그린 그림은 한스 홀바인이 왜곡의 방식으로 그린 해골의 왜상'이다. 영화에서 이 그림을 어느 누구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은 모두 다 정면에서만 이 그림을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해골을 실상과 정상의 방식으로 재현하면 금기를 위반하는 것이기에 왜곡된 왜상으로 나타난 것이 다송의 그림이다. 이미지의 왜상은 곧 문장의 은유와 같다. 그림 속 얼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부분은 얼굴 전체에서 2/3를 차지하는 눈과 코이다. 눈과 코는 채색이 되지 않아서 서로 유기적으로 통일된 상태를 유지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채색되지 않은 부분은 남근을 닮았다. 


채색화에서 색이 채워지지 않은 채 공백으로 남는다는 것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남근이 채색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그것은 지하실 남자가 남근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지하실 남자는 거세된 남자다. 정신분석학에서 남근이 권력을 상징한다면 지하실 남자는 가부장 세계에서 추방된,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거세된 남자'다. 보이면 안 되는 해골이 지상으로 튀어나와 노출된 순간, 정상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하실 남자가 야외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는 썩은내가 진동하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배제와 추방의 방식으로 그들을 제거하는 방식은 결국 언데드의 출몰을 불러온다.  산 자는 죽은 자 때문에 고통받는다. 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자본론 서문에 쓰인 이 문장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죽은 자는 산 자 때문에 고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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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3-03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제 노트북에는 모든 사진이 ‘엑박(엑스 박스, 이 말 정말 오랜만에 써보네요)’으로 뜹니다. 북플로 접속해보니 사진이 보이지 않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18:54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이제 보이실 겁니다..

cyrus 2020-03-03 18:56   좋아요 0 | URL
오~ 빠른 피드백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18:58   좋아요 2 | URL
안녕하시죠 ? 대구 알라디너 힘내십시오 ~

cyrus 2020-03-03 19:02   좋아요 1 | URL
영화에 나온 해골 그림은 바스키아의 그림과 비슷하네요. 실제로 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사놓고 안 읽은 책들을 읽으면서 지내고 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19:12   좋아요 1 | URL
이럴 땐 집에서 잘 먹고 책 많이 읽고 영화 많이 보는 게 장땡이죠..ㅎㅎ

포스트잇 2020-03-03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 그린 다송이 아들내미죠? 아들내미는 지하실의 남자를 그렸다고 볼 수 있겠네요.
모르스 부호도 있고, ... 그 그림을 기태의 딸, 결국 살해되는, 기정(박소담)이 해석하는.. 뒤는 어떻게 좀 해보셔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4 14:4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다송이는 박사장 만내아들.. 엄마는 아들의 자화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하실 남자의 초상이죠.. ㅎㅎ

라로 2020-03-0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좋네요! ^^;; 그리고 곰발님의 해석은 더 멋지고!!^^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4 18:44   좋아요 0 | URL
비싼 그림이다 보니 흥미가 ㅋㅋㅋㅋㅋㅋ..
 










대한민국 만세다야 ~



                                                                국뽕에 대해 거의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내가( 내 정치적 성향은 아나키스트'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 대한민국 만세다, 야 ~ "  라고 소리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의 사태가 잠잠해지고 나면 세계는 대한민국 공중보건의학을 이끌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에게 노벨의학상을 수여할지도 모른다. 


이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확진자 숫자'가 아니고 검사 대상 숫자'다. 검사가 많을수록 확진자도 늘어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셈법이다. 검사와 확진은 서로 비례한다. 확진자 수가 많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한민국이 코로나 감염이 심각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확진자를 찾아서 골라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초등학교 소풍 놀이의 하나인 보물찾기( : 소풍이나 야유회에서 상품 이름이 적힌 종이쪽-들을 숨긴 후에 이를 찾아내는 아이에게 그 상품을 주는, 자본주의 승냥이들의 고품격 놀이 )에서 대한민국이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국가가 진두지휘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학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코로나 진단 검사비는 대상에 따라 무료다.  또한 무료 대상이 아니더라도 기껏해야 개인이 부담해야 되는 진단 비용은 16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코로나 진단 비용이 400만 원이라고 한다. 이는 공중보건의학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이윤만을 추구하는 민간 영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캐나다는 무상 의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검사를 받으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캐나다는 거북이 진료 속도로 유명한 곳이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진료 검사비가 베트남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다. 그렇다면 한 달 월급봉투를 몽땅 투자해서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건강한 사람이라면 콜록콜록 몇 번 하면 낫는 데 말이다(다른 나라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대부분 병원을 찾지 않는다. 김기 약을 처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 확진자 현황에서 코로나 청정 국가로 뽑한 국가들이 대부분 의료 빈곤 국가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코로나 확진자 수가 높은 쪽은 확진자 추적이 가능해서 격리 조치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보다 무방비 상태에서 손놓고 있는 세계'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질병이라는 대타자를 대하는 수준 높은 태도'다. 배제와 추방이라는 손쉬운 방법보다는 환대의 방식을 선택한 정부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자크 데리다가 살아 있었다면 쌍수를 들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교통 수단의 발달로 24시간이면 지구 반대편에 도달하는 지구촌에서 여전히 " 폐쇄된 국경이라는 환상 " 에 사로잡혀서 중국 입국 금지령을 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중국인을 입국 금지시켰던 이탈리아의 코로나 유행을 설명할 길이 없다. 코로나는 공공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의 공포를 이용해서 이윤을 챙기려고 하는 마스크 사재기 업자와 공포를 과대 포장하는 언론과 정치인'이다. 그들이야말로 병원균이다. 이 사회에는 악과 동일시 될 수 있고, 그 희생자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질병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의 문장이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진짜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 진짜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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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3-02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phantom menace 가 아니라
visible menace 가 더 위험한데...

색안경을 끼고 달려드는 어느
집단이 공동체의 진정한 위협이
라는 건 굳이 외신을 인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2 14:03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도 중국 봉쇄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중국만 봉쇄하면 끝인가 ? 이탈리아는, 프랑스는, 미국은, 일본은 ??

2020-03-02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2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2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2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3-02 17: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로나 확진자 검사가 시험 후 정답맞추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쓴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필사적으로 찾아내서 오답노트를 만드는 학생과 덮어놓고 ‘대충 다 맞은 것 같아‘ 이렇게 말하는 학생. 이 둘 중 어느 학생이 자신의 위치에 충실한 것인지는 자명하다 여겨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2 17:07   좋아요 1 | URL
정말 명쾌한 비유네요... ㅎㅎㅎ 맞습니다. 오답노트를 작성해야 성적이 오르죠. ㅎㅎ

고양이라디오 2020-03-17 13:06   좋아요 1 | URL
정말 적절한 비유네요^^

북다이제스터 2020-03-02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국가는 사회와 개인의 최대 적이라고 믿는 사람으로, 요즘 우리나라라는 국가에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를 매일매일 놀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자유주의 국가론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18:49   좋아요 0 | URL
역시 문제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메르스와 코로나는 확실히 다른 듯.

라로 2020-03-04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저도 진짜루 묻고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4 18:43   좋아요 0 | URL
저는 정말 여전히 중국 혐오론을 유포하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갑니다. 이 정도로 타자를 혐오해도 되는 것인가 ? 요즘은 차이나게이트 라면 국정 조사 요구하고 있습니다. 참, 기가 안 찹니다...

고양이라디오 2020-03-17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곰발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시원한 글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3 18:14   좋아요 1 | URL
세계가 서로서로 도와서, 증오와 혐오 없이 열심히 싸워서 빨리 코로나 물리쳤으면 합니다... 어느 나라 특정해서 누구 잘못을 따질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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