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초 소 생 과 청 출 어 람 :
acknowledged by Ellison's work
오따꾸는 자신이 허벌나게 빠져버린 분야에 대하여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골목의 미친년은 나야 _ 이런 마인드를 가진 부류이다. 그렇기에 와이어-액션으로 화려한 율동을 선보이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는 액션으로 치지도 않는다.
그것은 < 그림 > 이지 < 액션 > 이 아니다. 줄에 매달려서 이단옆차기 하는 게 무슨 액션인가. 꼭두각시야 ? 그거슨 아이스크림 액션이라구. 그들이 보기에 진짜 액션은 " 노 - 와이어 애크로바틱 하드, 하드, 하아아아드 액션 " 이다. 버스터 키튼, 이소룡, 성룡, 토니자는 그들이 섬기는 액션스타'이다. 그들은 우람한 체격은 아니나 잘 훈련된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으로 거대한 남근을 뚝, 부러뜨린다. 주인공이 악당의 불알을 터트릴 때 아, 하게 된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물리친 촛불민중도 일종의 액션영화'다. 민중의 이두박근(혹은 삼두박근)으로 거대한 이명박근'을 뚝, 부러뜨렸으니 말이다.
그 맛에 액션 영화를 본다(고 그들은 말한다). 횃불을 든 군중은 외쳤다. 시바, 봤냐 ? 나도 한때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는 영화 오따꾸'였다. 액션 오따꾸들이 와이어 액션을 그림따위로 하찮게 취급하듯이 나 또한 컴퓨터그래픽으로 떡칠한 화면은 이발소에 걸린 피카소 그림따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단, 예외는 있다. << 반지의제왕 >> 시리즈는 CG로 떡칠했으나 나는 그 예술성만큼은 인정한다). 남들이 << 아바타 >> 에 대하여 열광할 때, 더군다나 평단마저 숟가락 얹으며 동조할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 영화는 화려한 CG 그림만 빼고 보면 새로울 것 하나 없다.
이발소에 피카소 그림이 걸렸다고 해서 그 이발소가 미술관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반신 마비를 당한 전직 해병대원이 아바타를 이용해 판도라 행성에 투입된다는 설정은 하바신이 마비된 남자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신체를 이용해 행성을 탐사한다는 폴 앤더슨의 SF 소설 << 콜미조 >> 와 판박이'다. 또한 지구인 남자가 행성 원주민의 문화에 동화되어 나중에는 원주민 편에 서서 싸운다는 설정마저 똑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며 엄지 척을 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영화, 재미없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창발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빛을 발하는 대목은 " 오리지날 " 이 아니라 " 리바이벌 " 이다.
그는 남이 만든 원작을 바탕으로 속편을 만들 때 빛이 난다. << 에이리언 2 >> 는 뛰어난 원작 못지 않게 뛰어난 속편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만든 << 터미네이터 >> 보다 더 뛰어난 << 터미네이터 2 >> 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출세작 << 터미네이터,1984 >> 는 오롯이 감독의 오리지날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할란 앨리슨 작가의 << 아우터 리미트 >> 를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에는 영화 크레디트에 영화 원작자로 할란 앨리슨을 올려야 했다. 터미네이터 크레디트 끄트머리에 보면 이런 표기가 눈에 들어온다. acknowledged by Ellison's work !
제임스 카메론의 우라까이 정신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오히려 그의 우라까이 정신이 높이 사는 편이다. 오리지날만이 예술적 아우라를 획득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원본에 대한 재해석의 영역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근대와 그 이전이 불초소생의 미학( : 아버지보다 뛰어난 자식은 없다)이었다면 근대 이후는 청출어람의 미학( : 아버지보다 자식이 더 뛰어나다)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조이다. 복사된 모나리자 그림에 수염 하나 그으면 예술이 되고, 모나리자 그림을 서른 개 연속으로 배치하고는 < 서른이 하나보다 낫다 > 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기도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 하나 없다. 모두 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니까. 할란 엘리슨,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