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 스타일, 시인





▷ 위험사회 :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초가집에서 큰불이 나는 경우는 없다. 초가삼간 다 타봐야 빈대 몇 마리 죽을 뿐이다. 큰불은 대궐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킬 때 발생한다. 층이 쌓일수록, 그리고 높이가 높을수록 그 건물의 리스크도 그것과 비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는 청개구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결핍을 숨기기 위해 되레 선빵을 먼저 날린다. 새우깡이라는 과자 이름은 새우깡이 없다(결핍)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광고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붕어빵이라는 이름도 붕어가 없다는 결핍을 숨기기 위한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마천루 광고는 하나같이 편리와 안전을 강조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광고가 청개구리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천루가 불편과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그러니까 하이테크 방제 시설과 보안 시설을 갖췄다고 광고하는 건물은 정반대로 가장 위험한 공간인 셈이다.  /  주제 사마라구 소설 << 눈먼 자들의 도시 >> 는 도시가 마비되면 살기에 가장 불편한 곳이 마천루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곳은 전기만 끊겨도 지옥이요, 변기에 물이 공급되지 않아도 지옥이 되는 곳이다.  변기가 막힌 채 타워팰리스에서 열흘만 견뎌 보시라. 하여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또한 영화 << 다이 하드 >> 는 최첨단 방제 시설과 보안 시설을 갖춘 초고층 빌딩에 인간 " 버그 " 가 침입하면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1). 결과적으로 외부 침입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나카토미 빌딩이 자랑하는 하이테크 방제 시스템은 경찰의 빌딩 내 진입을 차단함으로써 테러범을 보호하고 인질을 더욱 곤경에 빠지게 한다. 안전하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증거다.






 

 

 

 


 



▷ 박근혜의 침대 : 자세가 태도를 결정한다

총은 위험한 무기이고 칼은 조심스러운 도구다(불도 마찬가지이다). 총과 칼을 다루는 사람은 운전면허를 갓 딴 초보운전자와 비슷해서 처음에는 이 위험한 도구를 섬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익숙하게 숙련되었다고 방심하는 순간에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에 칼(총, 불)을 손에 익힐수록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스타일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끝이 뾰족한 촉이나 칼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감안한다면 스타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무기가 되기도 하고 도구가 되기도 한다. 좋은 스타일, 좋은 디자인, 좋은 문장은 여러 구성 요소를 조심스럽게 다룰 때 발생하는 아우라'다 / 스타일이란 까다로운 녀석이다. 과잉을 강조하게 되면 키치가 되고 결핍을 강조하면 컬트가 된다. 한껏 멋을 내겠다고 온갖 악세서리를 몸에 걸치고 천안 삼거리를 워킹하는 사람은 << 세상에 이런 일이 >> 에 나오기 딱이다. 스타일 결핍보다 촌스러운 것은 스타일 과잉이 아닐까 ?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스타일이란 녀석은 꽤나 까다로운 녀석. 결핍을 보완하되 과잉으로 빠지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과잉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결핍을 꺼내들면 촌스러워진다(스타일이란 기본적으로 과시적 욕망인 과잉에 기초한다). 그러니까 과잉을 기초로 하되 과잉처럼 보이지 않는 방식이 세련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좋은 예가 애플사에서 출시된 아이폰이다. 얼핏 보기에 아이폰은 디자인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밋밋한 디자인이다. 그냥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이다. 하지만 바로 아이폰의 디자인 결핍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스타일 과잉의 예이다. 왜냐하면 복잡한 디자인보다 훌륭한 디자인은 심플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루이비통 가방이다. 남대문 짝풍 루이비통과 진품의 차이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짝퉁 루이비통은 누가 봐도 루이비통 가방이라는 정보를 외부인에게 제공한다. 가방에 대문짝만 하게 루, 이, 비, 통이라는 로고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비교적 화려하다. 반면, 진품은 상품 로고의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비교적 심플하다. 루이비통 가방 중에서도 가장 비싼 제품은 무인상품 디자인을 닮았다. 로고는 가방을 열어야 비로소 보인다. 가방 안에 로고가 박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방을 열어 명함을 주고받는 이들만이 그 가방이 루이비통이라는 사실을 안다. 홍라희 여사가 굳이 자신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루이비통이라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과시할 필요는 없으니깐 말이다. 쉽게 말해서 끼리끼리 놀겠다는 심산이 반영된 디자인이다  /  좋은 문장도 과잉을 기초로 하지만 결핍처럼 보이게 만드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멋진 문장을 완성하겠다고 부사, 조사, 접속사, 감탄사 따위를 남발하는 문장은 모자, 목걸이, 스카프, 팔찌, 카우보이 혁대, 체인 따위를 모두 두른 과잉 패션과 같다. 아따, 멋쪄부러 ~ 환장하게 멋쪄부려 ~ 페루애, 멋쪄부러잉~                 그러나 액세서리는 각자 훌륭한 패션 조미료 역할을 담당하지만 액세서리들의 총합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50도인 물과 50도인 물이 합치면 물 온도가 100도가 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기는 한껏 멋을 낸다고 하지만 그가 걷는 길은 쁘레따뽀르떼가 아니라 세상에 이런 길 위를 걷는다  /  패션에서 결핍보다 촌스러운 것이 과잉이라는 사실은 멀리 볼 것 없다. 내 꼬락서니를 보면 답은 나온다. 좋은 패션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미학적으로 뛰어난 의자가 사실은 불편한 의자인 것과 같다. 몸뻬가 촌스러운 옷의 상징인 이유는 몸뻬가 너무 편하다는 데 있듯이 컴퓨터 의자가 싼 의자의 상징인 이유 또한 그 의자가 너무 편하다는 데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불편한 의자에 앉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불편은 지속적으로 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태도와 자세를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시시각각 교정이 가능하다.  내가 인간 관계에서 불편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자세를 잊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 이런 길을 걷게 된다  /  가구 중에서 가장 편한 것은 침대요, 가장 편한 장소는 화장실이다. 21세기 성인 중에 " 우선 눕고 볼 일 " 과 " 우선 누고 볼 일 " 에 집착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침대의 여왕, 박근혜'다.  침대는 자세를 허물어뜨린다는 점에서 나쁜 자세를 유도한다. 좋은 자세가 좋은 태도를 유지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을 리가 없다.

 




 

 

 

 

 

▷ 시 : 무학의 힘

시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좋은 사회 같지만 사실은 시인이 없는 곳이 낭만적인 사회다. 대한민국 출판 시장에서 해마다 새 시집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것은 문학이 부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반대로 문학이 쇠락하고 있다는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명징한 증거다. 십자가가 많을수록 부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구원이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암시하듯이 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시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부족은 인디언이었다. 언어는 있으나 문자는 없는 인디언 부족은 < 친구 > 라는 말을 " 내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자 " 라고 부른다. 여기에 수우 족은 < 12월 > 을 " 나무껍질이 갈라지는 달 " 이라고 부르고 < 1월 > 을 " 해에게 눈을 녹일 힘이 없는 달 "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 이름은 " 오줌을 눌 때 휘파람 소리가 나는 자 " 라고 부르는 식이다(참고로 내 인디언식 이름은 어쩌다 낳은 한숨이다). 이 정도면 박목월도 울고 갈 서정이다. 이들이 나누는 일상 대화를 상상하면 아찔하다. " 내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자여, 눈 녹일 힘이 없는 달이 차면 오줌을 누면 휘파람 소리가 나는 자와 함께 술이나 한 잔 하세 " 인디언 사회에서는 만득이도, 삼식이도, 영구도 모두 시인이다. 시는 언어는 있으나 문자는 없는 세계에서 빛이 난다. 그렇기에 문자를 배우기 전의 아이들이 말할 때 시적 아우라가 발생하는 이유이다. 시의 본질은 무학이다. 하여 나는 이토록 가방끈이 긴 세대가 이토록 많은 시인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이 영 못마땅하다. 인디언의 시적 언어에 감탄한 여행객이 그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언 시인은 누구인가요 ? "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 시인이 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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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맥클레인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죽도록 고생하는 사나이.  실벳탸 스텔론이 용병이 되어서 베트남에서 싸울 때 브루스 윌리스는 형사가 되어서 뉴욕에서 흰 쫄티와 맨발로 악당과 싸운다. 전자는 해외 용병이고 후자는 자치 경찰'이다. " 아사리판 나와바리. 오오,  오호츠크 시밤바들아 "  이 두 마초가 닮은 점은  타자의 사유지   에서 폼 나게 총싸움(질)을 한다는 점이다한 방 쏘면 해결될 걸 열 방 쏜다. 어차피 그들은 돌아갈 고향이 있으니 싸움터가 심해 밑바닥 뻘보다 더 참혹한 폐허가 되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쏘가리도 아니면서......  닥치는 대로 쏜다.

미국이 내세우는 전쟁 전략은 언제나 동일했다. " 남의 나라에서 폼 나게 싸우기 " 미국 본토가 < 적 > 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경우는 일본 가미가제 공격과 알카에다 공격이 유일했다.  가미가제가 모더니즘적 증후라면 9.11테러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증후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카토미 전투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펼치는 대리전 이다.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고개 숙인 남자'가 될 판이.  < 그 > 는 직장에서는   ① 골치 아픈 동료였고, 아내에게는 ② 무능한 남편이었으며,  딸에게는 ③ 유령'이나 다름없는 아저씨에 불과하다. 가정은 위기일발 상황에 놓여 있다. 나카토미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아내는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처녀적 이름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   

그러니깐 아내는 < 홀리 맥클레인 > 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결혼 전 이름인 < 홀리 제네로 > ​로 처녀 행세를 하는 것이다.   맥클레인 형사는 나카토미 빌딩 로비에 있는 방문자 명단에서 아내가 처녀적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린다.  맥클레인 가문을 부끄러워하는 아내.  설상가상, 참기름처럼 생긴 회사 동료가 아내인 홀리를 " 홀리 " 는 더러운 꼴도 본다.  맥클레인'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아내로부터 제거(거세)된 상태'다.  지금 그의 페니스는 발기와 거세 사이에 있는 것이다잘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꼴린 것도 아닌 상태.  마치 휴대폰 표시창에 방전을 알리는, 깜박거리는 아이콘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남근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존 맥클레인 형사, 추락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습니꺄 ?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역설이 돋보인다. 전쟁터의 주요 무대인 < 나카토미 빌딩 > 은 하이테크 벙커로 최고의 방재와 보안 시설을 자랑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테러리스트는 오히려 디지털화된 보안 시스템 때문에 보호받는다. 경찰은 나카토미 하이테크 보안 시스템 때문에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 빌딩 철문은 먹이를 문 악어의 입처럼 열릴 줄을 모른다.  다시 말해서   :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철통 보안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적을 보호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역설은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하이테크가 오히려 위험을 강화하는 역기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기술 발전은 리스크의 파이'를 키운다.  초가집이 불타면 단순한 화재가 되지만  초고층 빌딩이 불타면 재앙이 되는 법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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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공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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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잃어버린 삶



 

 

                                                                                                       대한민국은 저녁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장년이 퇴근을 미루고 야근을 하면 " 열심 " 히 일하는 사람이 되고, 청년이 퇴근을 미루고 야근을 하면 " 열정 " 이 되며, 소년이 방과 후 학원을 유령처럼 배회하다가 아빠보다 늦게 집에 오면 " 열공 " 이 된다.

과부하에 걸린 노동 사회를 열심, 열정, 열공 따위로 선전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리 없다. 한술 더 떠, 이런 사회를 역동적'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시부럴 놈들, 뭐가 중헌지도 모른 채 국가 브랜드 이미지 광고는 온통 " 다이나믹 코리아 ! " 란 구호만 넘쳐났다. 노동자 계급에게는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 " 라고 말하는 현대 카드 광고 카피'는 머나먼 쏭바강 얘기처럼 들린다. 박근혜는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지만 " 슬퍼할 시간 " 마저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슬퍼한 시간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이다.

한국인 모두가 슬퍼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것은 아니다. 죽도록 일만 하는 노동자 계급이 있는가 하면, 죽도록 한가한 유한 계급(有閑階級)도 있다. 남는 것이 시간과 돈이다 보니 독서 대신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며 여가를 즐긴다. 반대로 무한계급(無閑階級)은 만화책 읽을 시간도 없다. 미국이 1인당 한 달에 책을 6.6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인 반면에 한국은 1.3권으로 최하위권(166위)에 속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성인의 35%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는 결국 10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 독서량이 OECD 국가 중 꼴찌인 이유는 " 근성의 문제 " 로 접근하기보다는 " 근로의 문제 " 로 이해하는 쪽이 합당할 듯하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을 반기는 쪽은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맑스나 푸코 서적처럼 읽고 나면 말랑말랑한 마음을 딱딱하게 만드는, 석고 반죽 같은 책보다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히로뽕 같은 " 최루성 신파 이빠이 감성 졸라 에세이 " 를 읽으라고 주문한다. 최근, 이기주의 << 언어의 온도 >> 가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은 비극이다.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의 " 경제적 공포 " 를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계급에게 유리한 제도와 정책을 유지하려 든다.

좋은 예가 원전 마피아들이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며 내세우는 논리이다. 그들은 그동안 원전 정책으로 인해 값 싼 전기료를 공급했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기료 상승이 예상된다면서 경제적 공포를 유포시킨다. 쉽게 말해서 별 탈 없이 무탈하게 돌아가는 원전 시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잉 대응한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위험 시설에 대해서는 < 늑장 대응 > 보다는 차라리 < 과잉 대응 > 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모두 다 공감한다. 엎질러진 물보다는 엎질러지기 전에 컵을 치우는 것이 합리적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손보는 게 합리적 대응이니까.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괴담도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경제적 공포를 이용한 사례이다.

국민 기본 소득 정책을 위한 전 단계인 최저 임금 7530원을 두고      :       언론이 자영업자의 몰락, 또는 공장 6곳 중 3곳 폐쇄 검토 운운하며 경제적 공포를 유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전이 폐쇄되면 전기료가 상승된다고 걱정하기 전에 대기업에게 무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공급되는 국가의 전기 정책을 상기할 필요가 있고, 최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 세금 4조 원을 투입하는 것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가가 대기업에 투입되는 세금 126조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지나친 특혜가 아닌지 재검토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  자신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당연한 것이고 서민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은 포퓰리즘인가 ?

슬퍼한 시간조차 없는 사회보다는 슬퍼한 시간이 주어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며, 일하지 않고도 빌어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가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말하는 사회보다 더 빌어먹을 사회에 가깝다. 일하지 않고 빌어먹을 권리만 주장하는 것이 염치의 문제라면 일하지 않고도 빌어먹을 권리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정치의 문제이다. 그리고 경제적 공포를 주장하는 놈일수록 배부른 놈일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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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1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입니다. 이 날에 공연 보러 가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날이 평일인데다가 야근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2 15:46   좋아요 0 | URL
문화가 있는 날.... 이거 올해 7월까지만 적용되는 것이죠 ? 문화가있는날은 아마도 박근혜가 만든 문화 혜택일 겁니다..

cyrus 2017-07-22 16:20   좋아요 0 | URL
‘마지막 주 수요일‘에서 ‘마지막 주 모든 요일‘로 확대 적용된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이 바뀌게 되었군요.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

양손잡이 2017-07-23 00:53   좋아요 0 | URL
문화의 날이 그렇게 바뀌는군요!! 동네 도서관은 마지막주 수요일에 대출한도를 두 배로 늘려주던데 그럼 매일 14권을 빌릴 기회가 있는 걸까요 ㅎㅎ 어차피 그만큼 못 읽지만요...

표맥(漂麥) 2017-07-2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부하에 걸린 노동 사회를 열심, 열정, 열공 따위로 선전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리 없다... 공감 백배...^^

곰곰생각하는발 2017-07-22 15:47   좋아요 0 | URL
ㅈ긋지긋하죠. 뼈빠지게 일해야 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정상적으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 노동을 하면 빈둥빈둥 노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 참 문제죠..

2017-07-24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4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4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나무 2017-08-2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낳지 않는 사회, 과음하는 사회.놀이문화가 없는 사회..이 불행한 현상과 일맥상통하느 거라고 봅니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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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애 란   단 편 , 입 동  : 




 



사상누각


                                                                                                                                                                                                                                                                                                                                                                                                                         중심은 한자 中과 心으로 구성된 단어'다. " 中 " 이라는 잣대는 좌표와 무게의 중간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 心 " 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중심은 " 엿장수 마음대로 " 다.   중심은 암세포처럼 상황과 처지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전이된다.  무릎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무릎이 그 사람의 중심이 되었다가 당뇨로 발끝이 썩어가게 되면 발끝이 그 사람의 중심이자 전체가 된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中이라는 가치중립적 평가는 온전히 편향된 마음(心)에서 나온다, 결핍이 중심이다 !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  한쪽으로 평형추가 기울어진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중심'이다. 그렇기에 온통 마음을 어떤 특정 대상에게 쏟는다는 것은 항상 위태로운 것이다.



김애란 소설집 << 바깥은 여름 >> 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 < 입동 > 에서는 " 분양면적 이십사 평, 실면적 십칠 평에 지은 지 이십 년 된 아파트 (12쪽)" 를 장만한, " 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했(13쪽) " 던 부부가 주인공이다. "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를 내린 곳(33쪽) " 이니,  그에게 실평수 십칠 평이라는 공간은 아내의 중심'이자 전부이다.




              아파트를 얻은 뒤 아내는 휴일마다 베란다에서 계속 무언가를 자르고, 칠하고, 조립했다. 우리가 십 년 가까이 쓴 침대와 의자, 식탁과 수납장을 리폼했다..... 아내는 영우가 톱이나 못, 망치 근처로 오지 못하게 베란다 문을 꼭 잠그고 일했다...... 이사 후 몇 달 동안 집에서 페인트와 접착제, 광택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북유럽 스타일 가구 ' 또는 ' 스칸디나비아 패브릭 ' 을 알아보다 가격에 낙담한 아내가 나름 택한 자구책이었다. 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 아내가 인테리어에 가장 정성을 쏟은 공간은 단연 거실과 부엌이었다 ( 단편, 입동 16쪽 ) 


아내의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애)는 없는 살림에 이십 년간 셋방살이하면서 겪은,  서러운 결핍의 결과가 반영된 서정이다. 그것은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에서 살았고 졸업 후에는 학습지 교사로 일하며 독서실을 전전했던, 결혼 후에는 다섯 번의 이사 끝에 얻은 " 집 " 에 대한 애착이다. 이 애착은 평형추가 기울어진 곳에 세워진 중심이라는 점에서 불안하다. 아내는 난임 치료를 받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영우를 마음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그림 같이 예쁜 집을 꾸미는데 정신이 없다.




                (영우) 아직 어려서 그런지 글씨를 쓰라고 손에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쥐여주면 여기저기 형체를 알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아내가 애써 청소해놓은 바닥을 더럽히곤 했다. 평소 언성 높이는 법이 별로 없는 아내는 자신이 힘들여 가꿔놓은 공간을 아이가 어지럽힐 때마다 소리를 질렀따. 어느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랬다 ( 17쪽)


...... 그리고 지난봄, 부부는 사고로 영우를 잃는다. 비로소 아내는 삶의 축이자 중심이 집이 아니라 영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집에 대한 애착은 거실 바닥에 떨어진 갈색 고무나무 이파리처럼 시든다. 단편 < 입동 > 의 끝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위태로운 삶을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부부의 다짐으로 끝난다. 부부는 자정이 넘는 시간에 도배를 한다.



- 여보, 저기 종이 운 것 같은데.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 어디 ?

- 저기.

- 괜찮아. 며칠 지나면 흡착될 거야.

- 저기는 ? 삐뚤어진 거 같은데 ?

- 어디 ?

- 난 잘 모르겠는데 ?

- 아니야, 이쪽으로 살짝 기울어졌어.

- 어, 그러네. ( 33쪽)

 


부부는 입동을 앞둔 계절 앞에서 생각한다.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삶도 기울어지게 붙인 도배지를 살짝 떼어 균형을 맞춘 뒤 제자리에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풀이 금방 마르지 않아 교정이 가능한 도배지처럼 기울어진 삶도 !  첫 번째 소설집 << 침이 고인다 >> 와 두 번째 << 달려라, 아비 >> 에 수록된 단편이 주로 1인용 방에 대한, 셋방(곁방)에 대한 이야기라면 단편 < 입동 > 은 셋방에서 벗어나 집을 장만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주거 불안정에 따른 불안은 집을 장만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흉흉한 소문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대출 빚으로 집을 장만한 부부는 집값에 발목이 묶여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스무살 무렵에 글을 쓰기 시작한 김애란은 이제 서른 중반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시간의 변화만큼 문체도 변했다. 명랑하게 딴청을 부렸던 스무살 소녀는 이제 진지해졌다. 이 변화는 무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입동을 앞둔 계절이 되면 종종 성대 " 도어즈 " 를 찾곤 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찾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혼자 가게 되는 곳이다. 그때마다 절실히 깨닫게 된다. 공간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는 인테리어는 좋은 가구보다는 함께 있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내가 얻었던 가장 좋은, 결이 고운 나무로 만든 ■














부록 ㅣ 오늘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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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1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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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1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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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06-30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말씀대로 유머와 딴청이 사라진 자리에 진지한 태도가 생겨났다는 것은 분명 ‘무죄‘이자, 작가의 원숙미에 뒤따르는 긍정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김애란은 마라톤 선수(장편소설)가 되는 데에는 일시적인 실패를 겪었지만 여전히 단거리 선수(단편)로서는 믿음직한 인상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때로는 조영일 평론의 말처럼, 저는 김애란이 너무 영리하게(만) 소설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작품에 바로 그 영리함(만)이 돋보이면 저는 별점을 하나씩 깎아버리고 싶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4:51   좋아요 0 | URL
분석의 대가는 수다맨 님이시죠. 전 문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대충 느낌만 받습니다.
이 글은 소설집 중에서 < 입동 > 과 < 노찬성과 에반 > 이라는 두 단편만 읽고 쓴 글입니다.
수다맨 님 말씀처럼 너무 영리하게 쓴 글은 치열하게 쓴 글에 못 미치죠.

제게는 전자가 김영하 같고 후자는 뭐.. 다들 아시다시피 손창섭 같고...


노찬성과 에반은 무척 실망스러운 작품이었고, 입동은 좋더군요.. 선물 받은 책이라
단편 중심으로 몇 리뷰 더 올려야 겠습니다.

요즘은 눈이 나빠져서 책을 오래 읽지 못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4:54   좋아요 0 | URL
전 이 단편을 통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중심이라는 거...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결국 결핍의 힘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들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삶의 중심이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죠..

2017-07-0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3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냄비  뚜껑이  유리였던  이유 :




 

 

 

 

옷이라는 낱말과

비슷한말은 사람이다



 


                                                                                                                                                                                                선고합니다 ! 주문, 피정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얼큰한 해물탕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마포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한 곳이라 하니 음식 맛은 보장한다는 코멘트도 덧붙였다.

식당 안은 티븨에서 탄핵을 선고하는 이정미 재판관와 낭랑한 목소리와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재잘대는 목소리가 섞여서 시끄러웠다.  앉자마자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니 무엇보다도 냄비 뚜껑이 눈에 띄었다.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식당은  깨질 위험이 있고 무거워서 잘 사용하지 않는 유리 재질의 냄비 뚜껑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살아있는 낙지 한 마리가 냄비 뚜껑에 빨판을 붙여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수족관 속 물고기를 들여다보듯, 사람들은 유리뚜껑 밑에서 흐느적거리는 낙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종업원은 불을 붙여 가열을 하기 전에 손님에게 냄비 뚜껑을 손으로 꾹 눌러달라고 당부했다. " 손으로 뚜껑을 꽉 누르셔. 낙지 요놈이 힘이 장사여서 뚜껑도 뒤집는다니까.

주저앉은 병든 소도 낙지 먹으면 다음날 벌떡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저희 가게는 싱싱한 해산물 아니면 취급을 안한다니까. 호호 "  열이 오르자 낙지는 유리뚜껑 밑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비로소 이 가게의 냄비 뚜껑이 투명한 유리로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어가는 과정을 전시하는 상업적 전략인 것이다. 잠시 후, 온갖 해산물이 가득 찬 냄비가 도착했다. 냄비 속에 낙지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


< 옷 > 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무릎 탁, 치고 아, 하게 된다.  설핏, " 졸라맨 " 캐릭터 같아서 문자보다는 그림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이 그린 낙서처럼 보인다. 절묘하다. 몸에 걸치는 옷이라는 단어가 사람 형상을 닮았으니 우연치고는 기묘하다. 옷을 의미하는 상형문자인 한자 < 衣 > 가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양을 본뜬 글자라는데 이리저리 뜯어봐도......     아니올시다. 닮은꼴로 보자면 아무래도 한글 < 옷 > 의 승리가 아닐까 싶다. " 비슷하다 " 는 말은 두 개의 대상이 크기, 모양, 상태, 성질 따위가 똑같지는 않으나 닮은 구석이 있다는 점에서,  < 옷 > 이라는 글자와 가장 비슷한말은 의복'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여, 나는 당당하게 말하련다. < 사람 = 옷 > 이다.  옷을 입는다는 행위는 문명화된 사회에 동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리 명망 높고 위엄 있는 인간이라 해도 벌건 대낮에 벌거숭이가 되어 거리를 돌아다니면 광인 취급을 받을 뿐이니까. 아감벤의 호모사케르 1) 개념을 적용하자면 옷을 입지 않은 것은 " 벌거벗은 생명(nuda vita) " 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제한( 혹은 제외) 하는 것'이다. 법외 인간'이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정치적 질서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외부자'다.

독가스를 살포했던 아우슈비치 수용소나 고문실에서 수감자의 옷을 벗기고 나서 고문을 하는 행위는 옷을 입은 자신과 그들을 분리하기 위해서이다. 여기 벌거벗은 생명이 있다,  물고기는 다른 종에 비해 " nuda vita " 을 대표하는 종이다. 물짐승은 길짐승이나 날짐승과는 차이가 있다.  길짐승과 날짐승은 (깃)털이라는 털가죽 옷을 입고 있지만 물짐승은 털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  길짐승과 날짐승은 동물 보호법에 의해 법적 보호를 받곤 하지만 물짐승은 법외 존재로 취급된다. 물고기를 잡거나 죽일 때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옷도 없고, 털도 없고, 심지어 깃털조차 없는 벌거벗은 생명에 대해 우리는 그것들이 지능도 없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

 

 

지금껏 출간된 수많은 어류 관련 서적들은 물고기의 다양성, 생태학, 생식력, 생존전략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많은 서점들에는 낚시에 관한 낚시에 관한 책과 잡지가 넘쳐난다. 그러나 아쉽게도 물고기의 입장에서 쓴 책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멸종위기종의 곤경을 애도하거나 어족자원 남획을 지적하는 환경보호활동가들의 고리타분한 메시지를 열거할 생각은 없다. 독자들은 혹시 아는가 ? 남획이라는 단어가 적당한 어획을 합리화하고 자원이라는 말이 물고기를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을. 이 책의 목적은 물고기에게 사상 유례가 없었던 발언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물행동학, 사회생물학, 신경생물학, 생태학의 획기적인 발달에 힘입어, 물고기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글은 << 물고기는 알고 있다 >> 의 서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인 조너선 밸컴은 상어를 잡아 지느러미와 꼬리만 잘라낸 다음 몸통을 바다에 버리는 상어 피싱'이란 행위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어부들은 상어의 지느러미만 잽싸게 도려낸 후 , 아직 살아있는 상어를 바다에 내던진다. 지느러미와 꼬리가 없는 상어는 헤엄을 칠 수 없기 때문에 목숨만 붙어 있을 뿐 통나무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상어들은 심연으로 가라앉으며, 출혈과 질식, 그리고 수압 등 온갖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사망하게 된다(같은 책, 305쪽)

 

 

이 책을 읽으면 물고기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희노애락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펄펄 끓는 물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낙지를 보고 즐거워하는 당신은 과연 상어 피싱 작업 방식을 비판할 수 있을까 ?  죽음은 그 어떤 방식으로든 볼거리로 전시되어서는 안된다. 상처 입은 존재는 통증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같다는1)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통증은 인간만이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숨탄것은 모두 통증을 느낀다는 점에서 사람이라는 낱말과 비슷한말에는 물고기도 포함되어야 한다. 하여, 나는 이정미 헌법 재판관의 말투를 빌려 여기에 쓴다. 선고합니다! 주문, 사람이라는 낱말과 비슷한 말의 범주에 물고기도 허용한다 ■

 

 

 

 

 

 

 

 

 

                                  

 


1)        성스러운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낱말의 의미와 달리 고대 로마법에서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형벌을 받은 죄인을 가리킨다.

  

2)       같은 책,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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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1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어류권..이건 한번도 본적이 없었네요..ㄷ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7-03-18 12:13   좋아요 1 | URL
샥스핀 먹지 말자는 캠패인이 있었습니다. 상이 지르러미만 자르고는 산 채로 상어를 버린다고 하네요.
상어는 수영을 할 수 없으니 심해로 내려가는데, 수압이라는 것 때문에.. 그 압력으로 내장이 터지고, 막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합니다... 그걸 먹지말자는 캠패인.. 우리도 이제는 법적으로 이런 거는 규제를 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낙지보고 즐거워하다니...

samadhi(眞我) 2017-03-18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은 또 어떻게 찾아내셨대요?
목숨 가진 모든 것에 대한 곰발님의 애틋함이 귀합니다. 얼마 전에 제 별 것 아닌 생각에 누군가 ˝귀하다˝ 라고 말해주어서 무지 송구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3-21 15:09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며칠 좀 바빴습니다...
귀하다는 말, 참.. 좋죠. 좋은 사람이라는 말보다는 귀한 사람이라는 말이 더 느낌이 옵니다..ㅎㅎ.
글구보니 저는 태어난 이후 귀한 사람이라는 말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업군요..

samadhi(眞我) 2017-03-21 15:27   좋아요 0 | URL
귀한 생각을 가지면 귀한 사람이지요. 곰발님이 여태 그런 말을 못 들어보셨다는게 이상한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3-21 15:41   좋아요 0 | URL
평생 미운오리새끼로 살았습니다...ㅎㅎㅎㅎㅎ

samadhi(眞我) 2017-03-21 16:40   좋아요 0 | URL
그건 저랑 비슷하네요. ㅋㅋ 오리동지

북프리쿠키 2017-03-1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중에 옷을 입고 다니는 괴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네요ㅎ
˝옷˝으로 인해 진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3-21 15:11   좋아요 1 | URL
짐승도 엄밀히 말하면 털옷이 있는데, 물고기는 말 그래도 벌거벗은 생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 신기한게 고문할 때는 항상 옷을 벗겨요.. 신기하죠... 일종의 거리두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 아니다라는 자기최면을 위해 일부러 고문자는 고문당하느 사람을 벗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

2017-03-20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1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3시 2017-03-2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지요 페루애님!
저도 잘

곰곰생각하는발 2017-03-21 15:13   좋아요 0 | URL
이거 너무 오랜만에 오신 것 아니십니까.. ㅎㅎ 저야 잘지내죠. 향유 님도 잘지내시죠 ? 어찌 지내시나요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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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속사정을 내가 알 수는 없다



 


                                                                                                          숫자 2, 40, 120, 1000의 공통점은 ? 워워. 고민하지 마시라. 당신이 아무리 아이큐가 높다 해도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맞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니까. 이 수열은 수학 영역도 아니고 아이큐 테스트도 아니다. 정답은 냉장고'다.

대한민국 4인 가족의 경우, 한국인은 평균 냉장고 2대를 가지고 있으며 냉장고 문은 하루에 40회 정도 여닫는다고 한다. 120L로 시작된 럭키금성 냉장고 용량은 이제 1000L 대용량 양문 냉장고로 " 싸이즈의 쓰빽따끌 " 을 키웠고, 결국에는 승자가 되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가족 구성원은 그대로이고 냉장고 보유 수가 늘었으며 용량도 커졌다면 냉장고 속은 넉넉해졌을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더구나 당신이 살림을 하는 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냉장고 속 공간 여유는 없다 가 되리라는 사실을. 

모 방송 제작팀에서 현재 자기 집 냉장고에 보관 중인 음식을 모두 소비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실험한 적이 있다. 제작팀은 2주 정도 예상했으나 냉장고 음식을 모두 소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일이었다. 이 결과를 참고한다면 이런 반문이 가능하다. 냉장고는 정말 신선 제품을 보관하는, 혹은 신선도를 연장시키는 물건일까 ?  어머니는 늘상 음식물로 꽉꽉 찬 냉장고'에 불만이 많았다. 가장 큰 냉장고에 속했지만 냉장고가 작다고 불평을 늘어놓았고, 그 화살은 돈벌이가 시원찮은 아버지를 향했다. 그리고 그 불평의 결과는 양문냉장고를 구입하는 것으로 끝났다.

부피가 그만큼 늘어났으니 공간의 여유가 생길 만도 하지만 결론은 ?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 그대로'다. 어머니는 또다시 냉장고의 성능보다는 용량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 불평의 결과는 ? 김장 100포기를 저장할 수 있는 김치냉장고 대용량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대용량 냉장고는 3대로 늘어났으며 모두 음식물로 가득찼다. 식구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먹을 식량은 냉장고 용량에 맞게 크게 늘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혹시, 냉장고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 먹을 음식 " 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 버릴 음식 " 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대용량 냉장고 오따꾸인 어머니는 김장을 6,70포기나 담그지만 실제로 우리 가족이 소비하는 김장은 한해에 6,7포기 정도이다(소비되는 김장김치의 절반은 명절 때 김치만두 속으로 사용되지만 그것도 만두 속 절반은 냉동고에 보관되다가 여름에 버려진다). 나머지는 모두 버려진다. 냉동고에 보관 중인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비싼 생태를 한 궤짝으로 대량 구매해서 시중 생물 가격보다 1/2로 사서 한두 마리는 소비하고 나머지는 냉동고로 직행하게 된다. 기약은 없다. 대부분 한두 마리는 그해 동태로 소비된다. 동태탕 맛이 어떠하냐고 묻지 마시라. 냉동고에 섞인 냄새 맛이 팔 할'이니까.

그나마 동태로 소비된, 한때 싱싱한 생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나머지는 이내 잊혀져서 몇 년을 냉동고에서 보내다가 버려진다. 얼어죽을 동태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비싼 생태를 절반 가격에 사서 값싼 동태로 소비하는 방식을 어머니는 버리지 못한다. 이 기이한 소비 형태'는 무슨 심리일까 ? 내가 내린 결론은 일종의 손실 회피 편향 1)이다. 냉장과 냉동이 일체형이었던 냉장고를 버리고 용량이 2배 커진 양문형 냉장고를 비싼 가격에 구매한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한 소비가 합리적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신형 냉장고를 구입한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새로 구입한 양문형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물이 전에 사용하던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물 부피와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합리적 소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꼴이 된다. 즉, 손실을 경험하게 된다. 소비자는 그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더 많은 음식물을 가득 채움으로써 자신의 선택한 결과가 합리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가 비싼 돈 주고 생태를 사서 나중에는 동태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제철에 맛있게 식량을 소비하는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 궁여지책으로 당신은 먹을 음식이 아닌 버릴 음식으로 냉장고를 채우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지금 버리기 위해 산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는 그해 60포기의 김장김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김장을 60포기나 한 것이다. 소비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소비자를 조종한다. 당신은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물건(의 종류와 크기)를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장사꾼의 정언명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노예와 다르지 않다. 냉장고 용량과 음식물 용량이 비례하듯이, 아파트 평수와 소유한 물건의 수와 부피도 비례한다. 보다 넓은 아파트는 보다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한다. 몽골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평균 300개 정도이고 일본인은 6000개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보다는 합리적 소비를 한다는 독일인'조차 10,000개의 물건을 집이라는 냉장고 속에 보관한다고 한다. 

물건이 늘어난 수만큼 우리는 행복할까 ?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행복하십니까 ?








​                                          



1) http://blog.naver.com/unheimlich1/220913085592 : 손실 회피 편향 ㅣ 200달러를 내고 20달러를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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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7-02-1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곰발님 글보면서 적극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 덧대어 저도 몇자 적어볼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16 15:5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심플하게 살고 싶습니다. 양복 한 벌, 구두 하나, 넥타이 한 개, 책은 백 권 이내.....

2017-02-16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6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물건은 줄이라면 줄일 수 있는데, 책은 절대로 줄이지 못하겠습니다. ㅎㅎㅎ 근 두 달 동안 책을 열 권 이상 팔긴 했습니다만 그 중에 몇 권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02-17 10:3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전 한 1000권 팔고 버리고 주고 했습니다만.... 여전히 많습니다. 액기스만 모아놓았는데... 이거 걱정니네요..호

stella.K 2017-02-17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1호나 202호나 사는 모습은 똑같다더니
읽으면서 곰발님이 우리집 얘기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ㅎㅎ
정말 울엄마는 젊을 때부터 살림을 크게 하셔서 손이 작아지질 않는가 봅니다.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7-02-17 14:42   좋아요 2 | URL
어디에나 똑같은 풍경이군요.. 저희집은 왜 그 비싼 법성포 굴비를 왜 냉동고에다 썩히는지 이해 불가능입니다.
동그랑땡 속재료와 만두 속재료.. 지금 냉동실에서 썩고 있습니다...ㅎㅎㅎㅎㅎ...

stella.K 2017-02-17 14:4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가끔 집밥도 드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어머니가 그런 음식 놓아주시지 않으십니까?
아무래도 곰발님은 눈밖에 난 아드님이신가 봅니다.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02-17 14:53   좋아요 2 | URL
어머님은 냉동고기보다는 생고기가 맛있다는 이유로 냉동고기보다 비싼 돈을 주고 생고기를 사시지만 사오자마자 냉동실에 둡니다. 결국은 냉동고기 먹는 꼴.... 이해불가입니다..ㅎㅎㅎㅎ

samadhi(眞我) 2017-02-2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뿐하게 소로우처럼 유목민(?)처럼 여행생활자처럼 제 몸 하나만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현실은 뭔가 편리한 물건이 나왔다면 그걸로 교체해서 쓰고 기존 물건도 아까워서 못 버리고 물건은 두 배로 늘어나지요.

자꾸 버려서 자기 자신밖에 없어질 때까지 버리는 것이 답일 듯해요.
자신마저 버릴 수 있다면 그게 수행의 끝이라고 보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2-20 12:17   좋아요 0 | URL
미니멀하게 살아야죠. 쌓아두고 사는 거.. 정말 이젠 좀
지친다고나 할까요..
어차피 정답은 비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채워서 득이 되는 것은 사랑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