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인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2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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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


- 사람 장소 환대 中, 김현경





210 크기의 실험실 상자 속에 쥐 8마리'가 산다. 물과 음식은 충분히 공급되고 고양이 같은 포식자가 없다 보니 쥐에게는 유토피아'다. 실험실 연구원이 질병 관리도 맡아서 늙어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을 수 있는 위험 요소는 모두 제거된,  과보호된 공간이다. 쥐 8마리로 시작한 개체 수는 2년 반 동안 2,200마리로 늘었다. 개체 수 증가는 곧 공간 부족을 야기한다. 그러나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먹이 공급은 충분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먹이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 영토를 지키는 것이다. 


마당 넓은 단독 주택에서 살던 쥐는 이제 협소 주택으로, 협소 주택에서 공동 주택으로, 공동 주택에서 반지하로, 반지하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쪽방촌으로, 쪽방촌에서 수용소로, 결국에는 수용소에서 길바닥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유토피아 같았던 " 주거 지역 " 이 어느 순간에 " 죽어 지옥 " 이 되었을 때 발생하게 되는 쥐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는 것이다. 공간 상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은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어 죽이기 시작한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좋은 장소는 더욱 치열하다. 


힘  쥐가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옆에 있는 쥐의 꼬리를 갉아먹는 동안,  또 다른 쥐는 동료의 꼬리를 갉아먹는 힘 센 쥐의 꼬리를 갉아먹는다.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그 결과, 개체 수는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존 B 칼훈의 쥐 사회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 쥐의 영토성(장소성) " 이다.  동물은 일정한 거리(공간)를 확보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주체는 객체(포식자)가 일정한 거리 안으로 침범하지 않으면 도주하지 않는다.  이것을 도주거리(안전거리)'라고 부른다. 


유토피아에서 평화롭게 살던 쥐가 서로를 물어뜯어 죽이게 되는 참사는 공간의 협소화로 인해 도주거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1).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자 부유했던 샌프란시스코가 똥 냄새 때문에 살기 힘든 도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 거리에는 똥 더미 때문에 걷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 현기증 >> 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경험한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금문교와 골든게이트 공원이 있는 도시가 << 눈먼 자들의 도시 >> 가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똥은 개똥이 아니라 사람 똥이다. 


미국인이 거리에 앉아서 똥을 싸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똥의 주범은 노숙자'다. 그렇지만 똥의 주범이 노숙자라고 해서 이 현상의 주범도 노숙자라는 말은 아니다. 주범은 따로 있다. 바로 치솟는 집값 때문이다. 엔리코 모레티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이 10% 상승할 때마다 지역 소비 물가는 6% 증가한다고 경고한다. 당연히 집값 상승은 거주부담능력(월세)을 상승시켜서 지불 능력이 없는 세입자는 결국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1명이 집을 사면 3명이 길거리 노숙자가 된다. 저학력 육체 노동자'가 노숙자가 된다는 편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또한 노숙자는 게으르다는 편견도 버리는 것이 좋다. 노숙자의 1/4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문제는 월급으로는 집세를 감당하기 버겁다는 데 있다. 노숙자 중에는 예일대를 나온 엘리트도 많다. 길거리에 차를 세워 두고 차 안에서 생활하는 어느 노숙자의 직업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집 없는 노숙자야말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영토마저 빼앗겼다는 점에서 존 칼훈의 실험 쥐를 닮았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상위 1%는 국내 전체 부동산의 55%를 보유하고 있고 상위 10%는 전체 부동산의 97.5%를 차지한다. 


반면에 소득 하위 50%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비율은 2%다. 질문이 질문에 질문에 꼬리를 문다. 이제 서울이라는 대도시도 샌프란시스코처럼 똥 더미에 오염되지는 않으리라 확신을 할 수 있을까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인분 밭'에 굴러도 마냥 이승이 좋을까 ?  재산권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영토마저 강탈하는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 << 연예가중계 >> 라는 프로그램에서 모 연예인의 부동산 재테크 순위를 나열하며 불로소득을 예찬하는 것을 보면 염치와 수치를 모르는 것은 화장실이 없어 길거리에 똥을 싸는 노숙자인지 아니면 그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                                            


1)  사회 생활에서 사회 구성원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분과 직급을 이유로 상대방의 허락도 없이 그 사람이 설정한 고유 영토를 침범하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범죄이다. 



'제국' 미국의 집값 폭등과 노숙자 대란


 미국의 도시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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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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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와 양말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성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팬티가 아니라 양말'이(라고 한)다. 진료대에 눕기 전에 팬티는 이미 벗은 상태이기에 의사와 간호사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치대에 걸친 양말의 발바닥 상태인 것이다. 산부인과 진료실만큼 발바닥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타인에게 폭로되는 곳이 또 있을까 ? 발바닥을 보여준다는 것은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내가 아는 사람은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에는 여분으로 항상 새 양말을 준비한다고 한다. 반면에 공황 장애가 있는 사람은 팬티에 신경을 쓴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래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상. 나는 항상 외출을 할 때 양말보다는 팬티에 신경을 쓴다. 낡은 속옷을 타인에게 들킨다는 것은 부끄러우니깐 말이다. 어쩌면 알몸뚱이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더러워진 속옷인지도 모른다. 간밤에 꿈을 꿨는데 내가 있는 건물에 불이 났다. 건물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방송사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꿈이란 요상해서 불길에 내 겉옷은 홀랑 타고 팬티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속옷이 거지발싸개처럼 매우 낡고 지저분했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건물을 탈출해야 하는데 더러운 속옷 때문에 탈출을 미루고 있는 것이었다. 팬티를 입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팬티를 벗고 나갈 것인가 ?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다행히도 꿈은 거기서 끊겼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팬티만 입고 잤는 데에도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실내 온도는 후덥지근했다. 나는 꿈속 딜레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팬티 벗고 뛴다. 단, 조건이 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팬티 벗고 뛴다. 눈을 가린 채 뛰어도 당구공 같은 내 불알 두 쪽이 평형 감각을 유지하게 도와주리라. 낡은 속옷 빨랫감은 마당에 널지 않는 법이니까.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자기로 했다. 끊긴 꿈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꿈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잠은 포기하기로 하고 테드 창 소설집 << 숨 >> 에 수록된 <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이란 단편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 제목은 쇠렌 키르케고르의 그 유명한 문장을 빌렸다. 


키르케고르는 절벽이나 고층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의 불안 심리를 다루면서 두 개의 공포를 분석한다. 하나는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낳은 공포다. 여기서 두 번째 유형의 공포(불안감)은 뛰어내릴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할 절대적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각성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키르케고르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말한다. 문득, 무기력(無氣力)은 무력(武力)의 현기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그때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붉은 불빛이 창문을 뚫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내가 사는 빌라 전체가 사나운 맹수처럼 맹렬히 불타고 있었다.  6층에서 뛰어내린 이웃은 허리가 부러졌다. " 이런, 빌어먹을 !!! " 나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곳은 7층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이웃의 불행을 즐기기 위해 불구경 나온 사람들과 불행을 어떻게 하면 스펙타클하게 연출할까 고민하는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은 좋은 앵글을 잡기 위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저 비참을 로우 앵글로 잡을 것인가, 하이 앵글로 각을 잡을 것인가.  


바보들, 기초도 모르다니....... 불행은 무조건 드론 각이야 !  전지적 시점은 항상 웅장하거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위에서 보면 수난극처럼 보이거든 .                     캄캄한 복도는 흥건히 젖은 소화용수로 인해 미끄러웠지만 나는 불알의 무게추에 의지하기로 마음먹었다. 팬티 벗고 뛰기 시작했다. 물론, 손으로 얼굴은 가린 채. 





스웨덴 한림원은 테드 창을 단 한번도 노벨문학상 후보군으로 뽑지 않았는데 이 선택을 볼 때마다 의문이 든다. 테드 창만큼 서사를 장악하는 힘을 가진 작가는 드물다. 중2의 성적 판타지에 집착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선승 흉내 내지만 속물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은은 자주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되면서 테드 창이 후보군에 없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까 ?  테드 창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국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확장에 막혀서 어쩔 수 없이 리얼리티에 집착할 때 촌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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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49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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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    새







도루묵과 양미리


                            강원도는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입동과 대설 사이 어디쯤, 그해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김장철이어서 마당에서 김장을 하다 보면 빨간 양념이 더덕더덕 붙은 절인 배추 위로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가 이내 녹았다. 그날도 눈이 왔다. 첫눈은 아니었으나 첫눈이나 다름없는 눈이 내렸다. 귀빠진 날을 핑계로 서울에 사는 몇몇 친구를 불러서 속초 동명항 난전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그때 내가 먹은 안주는 양미리와 도루묵이었다. 동명항 난전은 고기잡이배에서 잡은 생선을 바로 그 자리에서 판매하고 요리를 했기에 다른 곳에 비해 생선이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그때 구워 먹은 생선이 양미리와 도루묵'이었다. 난전 포장마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연탄불에 생선 굽는 냄새는 고소했고 파도가 방파제를 두들기는 소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술 맛의 팔 할은 풍경이었다. 낮술부터 취한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짚업 후드를 입은 채 모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고 손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요동을 쳤다. 헛구역질이 계속 올라왔다.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하고 손을 씻었으나 비린내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손톱 깊숙이 박힌 생선 살점들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자 비린내는 더욱 강렬하게 쏟아졌다. 집업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물컹거리는 것이 손에 잡혔다. 꺼내 보니 양미리 한 마리'가 뭉개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혼자 집에 가서 혼술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양미리를 주머니에 털어서 가게를 나왔다는 것이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도 양미리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생선의 몸내를 통해서 생에 대한 비릿한 집착을 읽자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은 썩을수록 더 진한 향내가 나고 어떤 것은 썩을수록 더 진한 악취가 난다. 내 육신은 썩어서 얼마나 고약한 악취를 풍길까. 갑자기 하얀 쌀밥에 갓 담은 김장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소금으로 절인 배추가 하얀 눈에 녹아서 염도가 낮아진. 



갈치와 멸치

                      생선 이름이 " - 치 " 로 끝나는 것은 성질머리가 급해서 잡히자마자 죽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생선이 갈치, 멸치, 꽁치'이다. 이 생선들은 그물에 갇혀 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풀에 못 이겨 속이 새카맣게 문드러져 죽는다. 특히, 좁은 그물 안에 오랜 시간 동안 갇히다 보면 과호흡에 빠지게 되고,  서로 몸을 덮치고 밀치고 솟구치다 보니 찬란했던 은빛 비늘은 다 떨어져 상처투성이 몸이 되고 결국에는 애간장만 태우다가 죽는다. 갈치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먹갈치(부산에서는 흑갈치라고도 부른다)와 은갈치의 맛과 빛깔이 판이하게 다르기에 서로 다른 종류'라고 믿곤 하지만 사실은 같은 종류이다. 이 차이는 < 낚시로 잡느냐 > 아니면 < 그물로 잡느냐 > 에 달려 있다. 낚시로 잡은 은갈치는 몸에 상처가 없고 물 밖에 나오자마자 죽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먹갈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반면에 먹갈치는 그물에 갇혀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물에 갇혀 있는 동안 내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속은 문드러진다. 멸치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짧을수록, 몸에 난 상처가 적을수록 비린내가 적고 맛이 좋다. 영화 << 기생충 >> 을 보면서 은갈치와 먹갈치의 차이를 떠올렸다.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네 가족은 과포화 고밀도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반면에 지상의 집 한 칸 얻을 능력이 없어서 반지하 셋방으로 스며든 기택네 가족은 좁은 그물 안에 갇혀서 서로 밀치고 덮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먹갈치다. 박사장(이선균)이 맡는 " 냄새 " 는 바로 가난한 자의 새카맣게 타버린 속내'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속이 썩어갈 때 발생하는 그 먹갈치의 비린내를 박사장은 맡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은빛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상처 하나 없는 대저택의 인테리어 소품을 보면서 김난도의 << 아프니까 청춘이다 >> 라는 책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이 철딱서니 없는 양반아, 아프면 아플수록 비릿한 몸내가 진하게 나는 법이다 !



생선냄새증후군

                          양미리를 주머니에 넣은 짚업후드와 바지를 세탁했다.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세제와 더 많은 섬유유연제를 넣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몸에서는 항상 생선 비린내가 났다.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울증의 계절이 오면 비린내는 썩는 냄새로 악화되었다. 그때부터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현상은 트리메틸아민뇨증으로 생선냄새증후군으로 불렸다. 체내에서 트리메틸아민(TMA)을 TMAO(trimethylamine-N-oxide)로 바꾸는 대사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는 희귀질환으로,  트리메틸아민(TMA)은 생선이 썩는 듯한 냄새를 내는 화학물질로 트리메틸아미뇨증 환자의 소변이나 땀 그리고 호흡으로 과다하게 분비되어 악취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질병이 생선냄새증후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모텔 룸에서 고독사 한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나는 죽어서 영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었으나 정작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는 생선 냄새가 아니라 내 몸이 썩는 냄새'였다. 문득 짐 크레이스의 << 그리고 죽음 >> 이란 소설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생명이 사라진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온갖 벌레들로 들끓는, 죽은 내 몸을 보면서 0그램의 무게를 가진 내 영혼은 안도했다. 한동안은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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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07 14:17   좋아요 0 | URL
참치화 잘못 먹으면 배탈나기 좋다고 하더군요. 거, 뭐냐. 참치랑 매우 비슷한 생선이 있는데 그게 거의 지방덩어리라고 하더군요. 일반 사람은 잘 분간을 못해서 장사꾼들이 자주 속인다고.... 뭐, 참치 자체가 기름이 워낙 덩어리여서 참치 많이 먹으면 배탈납니다..ㅎㅎ
 
꽃집에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17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7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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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마음



                              사람이 너무 당황하게 되면 머릿속이 캄캄해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새하얗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옛날에 퍼펙트월드라는 영화감상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같은 건물 지하 당구장 아저씨가 이상 증세를 보인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갔더니 아저씨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바지가 젖어 있었는데 아마도 소변을 지리신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당구장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 119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죠 ? " 119 전화번호가 119인데 당황하다 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당 넓은 집에서 펄럭이가 한 살 때 일이었다. 터앝을 가꾸는데 사용했던 농약을 비닐봉지에 담아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개가 그것을 잡아뜯어서 농약을 삼킨 일이 있었다. 개는 불을 삼킨 듯 마당을 뱅뱅 돌며 뛰었다. 당황한 마음에 나도 개를 업고 뛰었다. 택시를 탔는데 당황한 마음에 지갑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당황한 마음에 핸드폰도 놓고 왔다는 사실 또한 뒤늦게 알았다.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잘못된 실수의 연속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동물병원 앞에 다다랐는데 이른 아침(늦은 새벽에 가까운)이라 문은 닫혀 있었다. 돈도 없고 핸드폰도 없었다. 그리고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이어서 행인도 없었다. 마침 길 건너편에 응급실이 딸린 병원이 보였다. 당황한 마음에 나는 개를 업고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물론, 알고 있다. 사람을 다루는 병원과 동물을 다루는 병원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당직 직원의 팔을 잡고 응급처치를 해달라고 소리쳤다. 그의 옷소매를 잡고 애원했지만 사실은 바짓가랑이 잡고 울며 매달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 그 당직 직원의 도움을 얻어 우여곡절 끝에 24시간 동물병원에 도착했고 다행히도 개는 기적처럼 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를 업고 뛰는 동안 슬리퍼 한쪽이 벗겨지는 바람에 한쪽 발이 맨발이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새하얗고 캄캄한 머릿속. 옛 애인과 헤어지던 날 밤이 그랬다. 절망은 벤치 위에 앉아 있고, 새하얗고 그렇게 캄캄한 밤이었다. 결별을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 캄캄한 밤이었는데 새하얘서 길을 잃던 밤. 




+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항상 자크 프레베르의 시 << 꽃집에서 >> 가 생각난다. 





+

어느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꽃을 고른다

꽃집 처녀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동시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돈이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떨어진다

꽃들은 부서져도

남자는 죽어가도

꽃집 처녀는 거기 가만 서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매우 슬픈 일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처녀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를

남자는 죽어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가지

해야 할 일이란 그토록 많아



- 자크 프레베르, 꽃집에서

 프레베르 『꽃집에서』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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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2-0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저도 반려동물이 갑자기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상황을 겪게 되면 당장 병원에 갔을 거예요. 반려동물은 종은 달라도 소중한 가족이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2-01 22:34   좋아요 0 | URL
10년 전 일이죠. 그 개는 올해 11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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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무     인  사  도     없  이     :












"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 "











                                                                                                발자크 소설 << 고리오 영감 >> 에서 19세기 파리 사람들은 위선자이며 돈에 굶주린 사람들로 묘사된다. 파리는 속물을 품어주는 소굴이다. 이 소설에는 출세만이 미덕이라고 믿는 프랑스 청년 라스티냐크가 등장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 "  이 당찬 결의 앞에서 나는 그때 그 시절의 파리가 생각났다. 믿을지 모르겠으나 한때 파리를 내 친구삼아 지낸 적 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난 적은 없지만 나는 당신보다 파리를 잘 알고 있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만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


“  김수희가 부릅니다. << 너무합니다 >>  ” 색소폰이 구슬프게 울리더니 김수희의 너무합니다 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 마지막 한 마디 그 말은 / 나를 사랑한다고 ”  시작부터 타령이다아니나 다를까, “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가세요 / 날 울리지 말아요 ~ /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 당신은 너무합니다. ”

​떠난 남자에 대한 원망이 알알이 박힌 노랫말'이노래 속 남자는 요샛말로 헤어지는 여자에게 희망 고문을 시키고 떠나는 유형이다飛鳥不濁水 비조불탁수1’ 라는 말이 있다날아가는 새는 노닐던 물을 더럽히지 않고 떠난다는 뜻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정희진의 << 정희진처럼 읽기 >> 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꼭지는 얀 마텔의 << 파이 이야기 >> 라는 소설에 대한 메모제목은 “ 아무 인사도 없이 ” 이다.

 

   

 1977년 7월 2거대한 화물선이 침몰한다힌두교도이자 무슬림이며 크리스천인 파이라는 사연 많은 이름의 인도 소년과 250킬로그램짜리 뱅골호랑이가 227일 동안 바다에서 표류한다둘은 멕시코 해안에서 구조된다아니소년은 구조되고 리처드 파커(호랑이 이름)는 뭍에 닿자마자 근처 밀림으로 들어간다소설과 달리 영화는 사라진 밀림 입구를 두 번 클로즈업한다통증이 느껴지는 압권이다소년은 엉엉 운다살아남은 감격 때문이 아니라 7개월 넘게 함께 했던 리처드 파커가 뒤도 안 돌아보고 “ 아무 인사도 없이(so unceremoniously) ” 떠났기 때문이다운동 경기 때 득점을 해도 세러머니를 하는 게 인간인데...... “ 나는 그가 내 쪽으로 방향을 틀거라고 확신했다날 쳐다보겠지귀를 납작하게 젖히겠지으르렁대겠지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매듭지을거야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밀림만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그러더니 고통스럽고끔찍하고무서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날 살게 했던 리처드 파커는 앞으로 나아갔다그렇게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 .... ( 중략 ) ... 인간이 급격히 외로워진 시기는 의미이성역사주의 따위를 앞세워 자연을 공격하면서부터다....... 사람은 인연 덕분에 산다하지만 그것은 인간 스스로 부여한 의미일 뿐 자연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아무 인사도 없이, 66~67쪽 

 

한쪽은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라고 말하고다른 한쪽은 인사 한 마디 정도는 하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원망 섞인 말을 한다.  둘은 서로 상반된 지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동일한 감정에서 파생한 넋두리이니 이심전심인 셈이다. 두 사람 모두 떠난 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두 사람이 보기에는 둘 다 "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한 "  사람이다. 이 감정(들)에는 원망이 섞였으나어디 미움뿐이랴. 사무친 정에 대한 깊은 회한이 짙게 남아 있으리라. 정희진은  리처드 파커의 거시무언(去時無言) 장면에서“ 나도 그 장면에서 울었다 ” 고 고백한다나는 정희진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본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 파이 이야기 >> 는 톰 행크스가 열연한 << 캐스트 어웨이 >> 와 닮은 구석2이 있다른 점이 있다면 250kg짜리 벵골호랑이 대신 250g짜리 배구공 윌슨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게가 아니지 않은가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척 롤랜드(톰 행크스)는 땟목 위에서 뜻하지 않는 일(폭우)로 망망대해에서 윌슨과 헤어진다척 롤랜드는 애타게 윌슨을 부르지만윌슨은 아무 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리처드 파커(호랑이)처럼 말이다척 롤랜드의 쇳소리 나는 울음에는 서운함과 그리움이 묻어 있다. 그는 울면서 외친다. " 아'임 쏘리, 윌슨 ! "  떠나는 자에게 남겨진 자가 먼저 미안하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나도 이 장면에서 울었다. << 캐스트 어웨이 >>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2년 전 성탄 전야로 되돌아가야 한다내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250그램짜리 배구공이 아니다.  그보다 더 작은 2.5그램에 대한 이야기다. 작다고 눈물의 염도나 싱거운 것은 아니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연이 길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서사이나,  웃으면서 읽어도 좋다.

 

깊은 밤티븨를 켰다오늘 같은 날은 볼 만한 영화'가 많지성탄 특선(特選)이니까 !  이제 막끝났는지 캄캄한 화면에서 엔딩 타이틀이 느리게 올라가고 있는 채널을 발견했다곧이어 다음 상영작을 예고하는 자막이 화면 오른쪽 상단에 떴다문득 이 영화는 특선 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많이 양보한다고 해도 성탄 에 어울리는 영화도 아니었다함박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무인도에 갇힌 벌거숭이 사내의 1인 모노로그'라니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성탄과 특선에 어울리는 작품을 물색했지만 마땅히 볼 만한 작품은 없었다하는 수없이 << 캐스트 어웨이 >> 를 보기로 했다시작은 딱히 재미있지도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지루하다 싶으면 책을 읽다가 책이 지루하다 싶으면 영화를 보았다내가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때는 배구공 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척 롤랜드(톰 행크스는 그 공 에게 윌슨 이라는 사람 이름을 부여한다그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빵이나 잼'보다는 친구 였다. 윌슨은 과묵한 친구였지만 척 롤랜드에게는 " 빵 터지도록 잼나는 친구 " 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혼잣말이 늘면 광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는 끊임없이 윌슨과 (혼잣말이 아닌대화를 한다그때부터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영화 내용'에 대한 데자뷰가 아니었다그것은 나의 과거 속 어떤 체험과 연결된 정서'였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를 깨닫지는 못했다하지만 이 수수께끼'는 이내 풀렸다.

척 롤랜드가 망망대해'에서 윌슨 을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나는 척 롤랜드'보다 많이 울었다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척 롤랜드를 연기한 톰 행크스'보다 척 롤랜드가 당시 처했던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내 눈물은 같은 아픔을 공유한 자만이 공유할 수 있는 연민이었다척 롤랜드에게 윌슨이 있었다면나에게는 크로넨버그'가 있었다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자유로움의 상징이었던나만의 파리 속초에서 < 1년 을 살았다내가 살던 곳은 모텔 105호 달방'이었다야심찬 계획으로 출발했으나 어느 순간우울증이 깊어서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노트북 모니터는 항상 텅 비어 있었다. 커서는 인적이 드문 길 위에서 기름이 떨어져 멈춘 자동차처럼 제자리에서 깜빡거릴 뿐 나아가질 못했다. 

불안을 동반한 불면이 깊어 갈수록 술 에 내 몸을 의지하게 되었다외롭고 낮고 쓸쓸했다. 이 낯선 타관에서 대화를 나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달방에 갇혀서 하루 종일 음을 소거한 채 낚시 채널을 시청했다유일한 낙은 낚시줄에 잡힌 대어를 보는 것이었다그때 날 찾아온 것은 파리 였다파리 한 마리가 내 달방으로 날아왔다당시 날씨는 겨울을 눈 앞에 둔 쌀쌀한 늦가을이었기에 파리가 살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한파를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은지구상에서 마지막까지 견딘, 지상의 마지막 파리'였던 것이다늦가을 모기는 잡는 것이 아니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내가 이 속담을 알게 된 계기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서였다나 또한 그 파리를 잡거나 쫓아낼 생각이 없었다.

둘째 날파리는 천장에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셋째 날도 마찬가지였다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다음날동네 마트에서 횟감을 사서 혼자 달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파리'가 내 주위를 윙윙 날아다녔다생선 냄새를 맡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며칠 동안 달방을 나간 적도 없고 창문을 연 적도 없었으니내가 며칠 전 본 파리가 분명했다. " 배가 고프겠구나 ! " 생선 회 한 조각을 바닥에 내려놓자 파리가 그 살점 아래 내려앉았다그것을 인연으로 해서 파리와 나는 달방에서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이름도 지었다. " 이제부터 넌 크로넨버그다 ! " 그렇게 보름을 함께 보냈다배구공을 보며 대화를 나눴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는 침대에 누워 맞은편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 소설가가 그러더라전쟁터에 나간 병사는 누구나 살아남기를 원한다고하지만 끝까지 살아서 제일 마지막에 죽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두려운 거지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두려운 거다...... 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지금 넌 두려운 거야이 지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파리이거든...... "

그러던 어느 날서울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서 잠시 서울에서 며칠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미룰 수는 없었다파리의 끼니가 걱정되어서 꿀물을 사발에 가득 담은 후 달방'을 떠났다내가 다시 달방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찾은 것은 파리였다하지만 파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얼어서 죽었니 ? 아니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거니 ?  몇 시간 동안 파리의 흔적을 찾아헤매다 지쳐서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눈물이 났다두려웠다그 감정은 고독도 아니었고 외로움도 아니었다. 적군이 우글거리는 적지에서 혼자 살아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나다니 살짝 배신감도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피식웃음이 났다파리가 떠났다고 슬퍼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

2015.12.2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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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티냐크와 달리 나는 파리와 경쟁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어깨죽지에는 날개가 없으니 말이다. 파리가 병원균을 옮기는 더러운 해충이기는 하나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것 하나 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파리가 해충이라면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해충이다. 인간은 항상 음식을 훔쳐 먹기 위해 손을 더럽히는 족속이다. 발자크는 << 고리오 영감 >> 에서 사기꾼 보트랭의 입을 빌려 인생은 지저분한 부엌보다 더 멋질 것도 없고 부엌만큼이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음식을 훔쳐 먹기 위해서는 손을 더럽혀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 시대의 도덕이라고. 


곁에 아무도 없다 보면 누구라도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때는 한 마리의 파리가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매달린 파리를 보다 보니 정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다가 아무 말 없이 떠난 파리를 그리워하며 우럭처럼 울었던, 정신 나간 한 남자의 멜랑꼴리한 센티멘탈'에 대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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