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하지만 꽤 근사한 플랫폼 얼룩소에서 유려한 문장을 자랑하시는 강부원 님께서 <<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 이라는 책을 내셨다.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은 산통과 같은 것, 벌써 여러 권의 책을 만드셨으니 자식 농사에 자부심을 가지실 만도 하다. <<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 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거시적 서사에서는 아쉽게도 빠질 수밖에 없는 미시적 서사의 사건들도 적재적소에 배치를 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인다.
개인적으로 거시사보다는 미시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읽는 내내 흥미롭게 읽었다. 마치 옛날 신문의 사건 사고를 스크랩해서 모은 스크랩북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건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광주대단지 사건(1971)를 다룬 챕터 < 유기당한 빈민들의 원한과 분노가 낳은 도시 > 다. 박정희 정권은 수도 서울의 경관을 미화하기 위하여 빈민들이 모여 살았던 청계천과 서울역(그 외 기타 등등) 빈민들을 하루아침에 차에 태워 내쫓는다. 명분은 있다. 새 삶을 살 수 있는 약속의 땅에 살 수 있도록 장만을 했다는 것.
도착한 곳은 서울 동남부 외곽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하지만 약속의 땅이라는 정부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것은 허허벌판이었고 집은커녕 상하수도와 전기 시설도 없는 곳이었다. 국가의 폭력이 낯선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폭력적일 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주도했으니 이것이 바로 " 광주대단지 사건 " 이다. 저자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두고 " 한국 빈민운동의 원점이자 기원 " 이라고 평가한 후 " 한국 현대사에서 가난을 주체화하고 빈곤을 사회화한 역사적 기점이라고 기술한다.
내가 정작 이 사건을 두고 깜짝 놀랐던 것은 < 광주대단지 > 가 바로 성남이라는 곳이다. 천당 아래 분당과 강남 옆에 판교가 있다는 성남의 유년이 고스란히 각인된 사건, 그리고 이재명이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한 곳이 바로 광주대단지였던 것이다. 두 개의 지역적 중첩이 묘하게 멜랑꼴리하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안락은 사회적 약자의 희생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삶이다. 광주대단지의 빈민운동이 지금의 인권 의식 향상을 가져왔고, 똥물 세례까지 뒤집어쓰며 투쟁했던 동일방직 여직공의 위대한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동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현세대는 전 세대의 불행을 먹고 사는 기생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론에 갇혀서 전 세대를 단순하게 86세대라거나 꼰대라고 지적하기에 앞서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성장의 뒷면을 살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