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신 이 미 약 하 여 :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조두순이 경악할 만한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법정에서 했던 변명은 심신미약이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 이 뻔뻔한 변명은 놀랍게도 법정에서 정상 참작( : 법률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법원이 그 형을 줄이거나 가볍게 하는 것)의 사유로 적용된다. 술을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 형벌의 봄맞이 大바겐세일 " 이 가능하니 범죄자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내뱉는 레퍼토리이다. 이 변명에 덧대어 반성문 몇 장을 법원에 제출하면 판사는 " 반성의 기미 " 가 엿보인다는 이유는 죄를 경감한다. 닝기미, 반성문 쓴다고 반성이 되면 반기문 쓰면 반기문 되냐 ?
심신미약 주장과 반성문 제출은 범죄자들에게는 약방의 감초인 셈이다(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과 입양아를 살해한 양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들은 사후에 잡힐 것에 대비해서 사전에 미리 음주가무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나서 범죄를 저지르는 놈도 있다. 판사님, 사실 내가 너무 술을 많이 마셔 기억이 안 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1). 신경숙이 << 아버지에게 갔었어 >> 라는 신간 소설로 복귀하면서 기자 간담회에서 했던 변명은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신경숙은 옹알과 웅얼 사이에서 이렇게 중얼거리시었다. " 젊은 날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에 사과드립니다아. "
두 눈을 의심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이라니 ?? 쉽게 말해서 : 신경숙은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독자에게 사과드린다는 애티튜드는 범죄자들이 법정에서 내뱉는 전형적인 변명이라는 점에서 " 격렬비열도의 추자도에서 잡히는 꼴뚜기 " 같다. 추잡스럽다는 뜻이다. 심신미약은 형법적 개념으로 시비是非를 변별하는 능력이 상당히 감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소설가가 시비를 변별할 능력마저 상실했다면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자질 문제를 떠나서 자격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다.
문장 실력은 둘째치고라도 적어도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별할 수 있는 사리 판단은 해야 하지 않을까 ? 신경숙은 변명과 사과의 차이를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진정한 사과란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서 상대에게 용서를 바라는 것이지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고서는 하는 사과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사과문은 and 보다 but를 남발하게 되면 더 이상 사과문이 아니다. "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 이라는 표현은 누가 봐도 " 빠져나갈 구멍 " 이자 but으로 시작되는 구질구질한 문장의 시작점으로 보인다. 이 정도 수준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 쓴 소설에 대하여 작품성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 대한 남진우의 평론이 궁금하기는 하다. 자못, 아니 매우 궁금하다.
1) 학수고대하던 날 / 백현진 : 아, 참말로 나는 왜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까 ? 내 문학적 취향을 반영한다면 "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ㅡ " 는 상투적 표현과 엄살을 싫어할 법하지만 이상하게도 백현진이 부르면 간절해진다. 그래. 나도 동명항 방파제 선술집에서 막창 2인분에 맥주 13병 마신 적이 있어. 이 노래를 듣다 보면 황지우의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이라는, 징글징글한 사랑 시가 생각난다. 텔레토비처럼 동산에서 오고가다 다 만나면 그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종로 3가에 사는 남자가 을지로3가에 사는 여자와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는 될 수 있어도 멜로는 될 수 없다. 러브 스토리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훌륭한 서사가 된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 사랑은 애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기다린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너는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오고 있다고. 나와 너가 만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영겁의 세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럴수록 애절해지는 것.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집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