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 그대 속으로 시작시인선 385
김민서 지음 / 천년의시작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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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란 느리게 말하는 통증





소설이 " 구라의 세계 ㅡ " 라면 시는 " (자기) 성찰의 세계 ㅡ " 를 다룬다. 그렇기에 시인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고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 고백 > 이란 " 느리게 말하는 통증 " 에 가까워서 쉽게 읽히지 않는 시집은 나쁜 시집이 아니라 좋은 시집에 가깝다. 독자가 책을 펼치자마자, 손에서 책을 놓을 시간도 없이,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면 그것은 소설(가)에게 크나큰 미덕이 되겠지만 그 속도는 시(인)에게는 모독이 아닐까. 둘 중 하나다. 독자가 시를 오독했거나 시가 가짜이거나 !  차이 밍량은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_ 라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이고 인류의 먼 미래를 걱정하는 영화는 나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그의 말을 적용하자면 좋은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폭로하고 나쁜 시는 세계의 내면을 폭로하는 척한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의 내면은 숨긴 채 세계의 안위만 걱정하는 시인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김민서 시집 << 내 안으로 그대 속으로 >> 는 관통의 기술에 충실하다. 시 < 약식 회고록 > 에서 시인은 자신의 약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열둘 " 에 " 쌀을 씻기 시작 " 해서 " 스물둘 " 에 " 서울에서 가장 멀리 가는 밤 기차를 탔다 " 고 고백한 시인은 " 신문지를 재단해 호떡집 봉투를 붙였다 // 날마다 정치면에 실리던 대통령 얼굴 / 내 입에 풀칠하기 위해 / 그 얼굴에 날마다 풀칠을 했다 " 고 말한다. 그리고 " 오십 대 / 9센티미터 힐을 신었다 " 라고 마무리한다. 여기서 9센티미터 힐은 생에 대한 의지로 읽힌다. 우리가 이 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나이듦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일 것이다. 그녀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탱고에 눈을 뜬다. " 홑겹의 실크 드레스로 소름을 감추고 / 새빨간 스틸레토 힐을 신고 / 자정 근처 고비로 " 간 그녀는 " 반도네온의 심장을 딛고 / 바이올린의 선율을 따라 " 탱고를 춘다(고비의 탱고). 시 < 고비의 탱고 > 에서 " 고비 " 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된다. 그것은 고비 사막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절정, 곤경, 위기, 고개를 뜻하기도 한다. " 식혜 밥알처럼 " 각각의 개별자로 존재하는 사막의 모래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뿌리를 내린 삶을 선택할 것인가, 뿌리를 버리고 노마드의 삶을 살 것인가. 시인은 < 우산을 들고도 > 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 뿌리를 버리고 자유를 얻을까 / 색을 입고 생을 얻을까 " 이 시집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책은 공교롭게도 << 그리스인 조르바 >> 였다. 그녀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 생활의 활력이, 춤추는 조르바를 닮은 것이다. 시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라는 장르는 시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비밀 일기를 폭로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 시인은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 실패를 누설( 장미의 누설 ) "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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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08-10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르바 마지막 장면인가요... 남자 둘이서 춤추던 장면... 멋지단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차이 밍랑은 자기를 구원하고자하는 사람 말고 세상을 구하겠노라 공언하는 이들이 빈껍데기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는 분이네요. 젊은 시절에 누구나 꿈꿔볼만한 치기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눈이 좀 어두워져 ㅋㅋ 그런지 ‘세상구하기‘ 철학이 이제는 의심스럽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8-12 14:25   좋아요 1 | URL
저는 거대 담론을 강박적으로 이야기하는 문학에 대해 늘 회의적입니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이따위 자긍심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됴. 과대망상이 심하구나, 작가들이... 뭐, 이런 생각.. ㅎㅎ
 

















                                


너 를   기 다 리 는   동 안  :












수고대하던 날1)



                                                                                                                                                                                                         영화에서 장소 선정은 중요하다. 특히 멜로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와 같이 " 사랑 " 이 주제인 경우는 장소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화양연화 >> 라는 영화도 보고 나면 남는 것은 비좁은 골목길이거나 비좁은 건물 복도 이미지'이다. 이 공간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충분한 넓이가 아니어서 가는 길과 오는 길의 교차점에서는 서로 어깨를 사선으로 틀어야 부딪히지 않을 수 있다.  닿을 듯 말 듯,  카메라는 이 미묘한 어긋남을 느린 화면으로 잡는다. 이 영화에서 " 좁은 골목, 좁은 복도, 좁은 자리, 좁은 틈 " 은 두 여남의 사회적 거리를 강제로(운명적으로) 개인적 거리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이자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사랑은 곧 장소애( TOPOPHILLIA ) 이다. 멜로 영화가 만날 듯 만날 듯 하다가 어긋나는 관계 설정이 주를 이룬다면 로맨틱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는 주로 우연히 혹은 어쩌다 자주 마주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걸작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에서 앙숙인 두 사람은 우연히, 어쩌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세상 참..... 좁다 _ 란 말이 나올 만하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 싸우지만 결국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선호하는 로케이션은 텔레토비 마을이다. 우연한 만남을 관객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텔레토비 마을은 동네가 워낙 작아서 오고가다 다 만난다. 지금껏 보라돌이, 나나, 뚜비, 뽀가 서로 약속을 정하고서 약속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린다는 상황극을 본 적이 없다. 꼬꼬마 들은 항상 우연히 만나거나 어쩌다 마주친다. 텔레토비 동산은 약속이 필요 없는 곳이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만들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좋은 로케이션은 없다. 꼬꼬마-들이 다 큰 성인이 된다면 꽤 밝고 명랑한 로맨틱 코미디 걸작을 생산했을 것이다. 이처럼 로맨틱은 오고다가 다 만나는 서사가 핵심이다. 반면에 멜로는 어긋남의 서사이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 " 멜로는 엇갈림의 서사다. 엇갈리지 않고 오다가다 다 만나면 그건 텔레토비지 멜로가 아니다. 멜로는 시간, 공간, 벡터,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물리적으로 달라야만 성립한다......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만날 듯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빠르거나 느리다. "     많은 사람들이 멜로에 대한 정의를 내렸지만 김영하보다 명쾌한 해답을 내놓은 이는 없다. 그렇다. 그렇다 !  멜로란 시간, 공간, 벡터가 서로 물리적으로 달라야만 성립한다. 또한 멜로의 격정은 시간과 공간과 벡터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애절하다. 


이와지 순지 감독이 연출한 << 러브 레터 >> 가 멜로의 걸작인 이유는 하늘에 있는 그 남자와 땅 위에 선 그 여자의, 가닿을 수 없는 멀고 먼 거리감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의 간극보다 먼 거리가 또 있을까 ? 종로 3가에 사는 그 여자가 을지로 3가에 사는 그 남자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는 될 수 있어도 멜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채플린의 그 유명한 명언을 빌리자면 로맨틱 코미디는 클로즈업이고 멜로 드라마는 익스트림 롱쇼트'이다.  황지우의 시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은 사랑에 대한 감각이 거리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집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시인은 말한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공간),  너는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나에게 온다(시간)고. 너에게 가기 위해 기다린다고. < 아주 먼 데 ㅡ > 라는 공간의 벡터 x좌표와 < 아주 오랜 세월 ㅡ > 이라는 시간의 벡터 y좌표는 어느 세월에 만날까. 살아생전에 어느 한 지점에서 랑데뷰할 수 있을까 ?  시인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간극을 최대한 확장함으로써 애끓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다. 날마다 살 부대끼고 살면 때론 환멸을 느끼지만 멀리 떨어지면 환상이 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동명항 방파제 포장마차에서 한 여자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 적이 있다. 약속을 정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녀가 올 리 만무했지만 나는 그녀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담을 했고 술에 취했다. 그해. 노무현이 죽던 날에 애인은 내 기억에서 자신을 지워달라고 애원했다. 그녀가 기억에서 나를 지워갈 수록 내 생은 지옥같았다. 나는 눈이 내리지 않는 따스한 봄밤의 방파제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찰싹 찰싹, 따스하고 부드러운 파도가 내 뺨을 때렸다. 




​                   

1) 백현진 ㅣ 학수고대하던 날   막창 2인분에 병맥주 13병 대신 봉골레 파스타에 와인이라고 했으면 이 맛이 안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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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1-03-16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텔레토비. 역시 김영하다운 발상이네요. 김영하의 창의성은 정말 감탄하게 돼요. 김영하의 번뜩이는 기발함이란.

곰곰생각하는발 2021-03-17 12:44   좋아요 0 | URL
김영하가 정말 글은 잘 쓰죠. 인정인정 ~
 














                              


심 신 이    미 약 하 여    :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조두순이 경악할 만한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법정에서 했던 변명은 심신미약이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  이 뻔뻔한 변명은 놀랍게도 법정에서 정상 참작( : 법률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법원이 그 형을 줄이거나 가볍게 하는 것)의 사유로 적용된다.  술을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 형벌의 봄맞이 大바겐세일 " 이 가능하니 범죄자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내뱉는 레퍼토리이다.  이 변명에 덧대어 반성문 몇 장을 법원에 제출하면 판사는 " 반성의 기미 " 가 엿보인다는 이유는 죄를 경감한다. 닝기미, 반성문 쓴다고 반성이 되면 반기문 쓰면 반기문 되냐 ? 


심신미약 주장과 반성문 제출은 범죄자들에게는 약방의 감초인 셈이다(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과 입양아를 살해한 양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들은 사후에 잡힐 것에 대비해서 사전에 미리 음주가무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나서 범죄를 저지르는 놈도 있다. 판사님, 사실 내가 너무 술을 많이 마셔 기억이 안 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1).  신경숙이 << 아버지에게 갔었어 >> 라는 신간 소설로 복귀하면서 기자 간담회에서 했던 변명은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신경숙은 옹알과 웅얼 사이에서 이렇게 중얼거리시었다. " 젊은 날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에 사과드립니다아. " 


두 눈을 의심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이라니 ??  쉽게 말해서 : 신경숙은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독자에게 사과드린다는 애티튜드는 범죄자들이 법정에서 내뱉는 전형적인 변명이라는 점에서 " 격렬비열도의 추자도에서 잡히는 꼴뚜기 " 같다. 추잡스럽다는 뜻이다. 심신미약은 형법적 개념으로 시비是非를 변별하는 능력이 상당히 감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소설가가 시비를 변별할 능력마저 상실했다면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자질 문제를 떠나서 자격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다. 


문장 실력은 둘째치고라도 적어도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별할 수 있는 사리 판단은 해야 하지 않을까 ? 신경숙은 변명과 사과의 차이를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진정한 사과란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서 상대에게 용서를 바라는 것이지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고서는 하는 사과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사과문은 and 보다 but를 남발하게 되면 더 이상 사과문이 아니다. "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 이라는 표현은 누가 봐도 " 빠져나갈 구멍 " 이자 but으로 시작되는 구질구질한 문장의 시작점으로 보인다. 이 정도 수준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 쓴 소설에 대하여 작품성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 대한 남진우의 평론이 궁금하기는 하다. 자못, 아니 매우 궁금하다. 





​                          

1)  수고대하던 날 / 백현진   :   아, 참말로 나는 왜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까 ?  내 문학적 취향을 반영한다면 "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ㅡ " 는 상투적 표현과 엄살을 싫어할 법하지만 이상하게도 백현진이 부르면 간절해진다. 그래. 나도 동명항 방파제 선술집에서 막창 2인분에 맥주 13병 마신 적이 있어. 이 노래를 듣다 보면 황지우의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이라는, 징글징글한 사랑 시가 생각난다. 텔레토비처럼 동산에서 오고가다 다 만나면 그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종로 3가에 사는 남자가 을지로3가에 사는 여자와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는 될 수 있어도 멜로는 될 수 없다. 러브 스토리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훌륭한 서사가 된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 사랑은 애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기다린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너는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오고 있다고. 나와 너가 만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영겁의 세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럴수록 애절해지는 것.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집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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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3-12 14:58   좋아요 1 | URL
저는 한국의 형법 기준이 이해가 안 갑니다. 어린아이 11명을 성폭행한 놈이 15년 형 선고 받았어요. 똑같이 11명을 성폭행한 영국 놈은 몇 년 받았는지 아십니까 ? 최소 100년 이상이더군요. 15년 형 선고 받은 이유가 감형인데
반성문 썼다고 반성하고, 공개수배해서 할 수 없이 자수했는데 자수했다고 감형. 수사 협조에 순순히 협조했다고 또 감형... 이거 미친 거 아닙니까 ? 하, 이해가 안 가요. 이해가......

2021-03-14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3-17 12: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이해가 안가요. 이해가.....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형법은 이해가 안 갑니다. 반성문 쓰면 반성했다나 ? 과연 반성문 써서 반성하는 인간이 있긴 있을까요 ?
 
















​                             


받침 위에 찻잔을 얹는 일  :








이마에 손을 얹는 일









한쪽 어깨가 주저앉았다는 사실은 인천의 어느 양복점에서 알게 되었다.  동생 결혼식 때 입을 양복이 없어서 맞춤양복을 전문으로 하는 양복점에 갔는데 몸 치수를 재던 재단사'가 그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재단사의 지적을 받고 나서 거울 앞에서 내 몸을 관찰하니 아닌 게 아니라 왼쪽 어깨는 콧대가 주저앉은 권투선수의 코처럼 푹 꺼져 있었다.  오른쪽 어깨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데 반해 왼쪽 어깨는 완만한 곡선으로 미끌어지다가 어깨 끝에 다다라서는 산사태로 유실된 벼랑처럼 아래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평생 내 알 몸을 봤지만 사실은 모르는 몸이었던 것이다(이 문장에서 유머를 발견한 사람은 내 언어유희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 옛날, 싸우다가 왼쪽 어깨가 부러졌던 그날이 생각났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뜨니 어마어마한 통증이 몰려왔다.  다행히도 바로 옆 건물에 일반 가정 내과 병원이 있어서 무작정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몇몇 사람들이 대기표를 받고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 직원에게 내 속사정을 말하니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사무적인 말투로 대기 손님이 여럿 있으니 기다려야 된다는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 감기에 걸린 사람과 어깨가 부러져서 죽을 것 같은 사람 중에서 누가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합니까, 네에 ? "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자 진찰실 문이 열리더니 의사가 나와서 내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먼저 치료를 받도록 조치를 내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우 부끄러운 짓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너무 아파서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물며 생사를 오가는 응급실 상황은 어떨까 ?  아마도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이다.  환자는 많고 의사가 부족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응급실은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받지 않는다.  팔이 부러진 사람보다는 칼에 복부를 찔린 사람이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는 기다리다가 지친 환자와 격무에 시달리는 응급실 의사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성마른 환자를 탓할 일도 아니다.  제시간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란 막연한 공포는 체면 따위를 생각할 여유를 지운다. 그럴 때마다, 어느 응급실 전문의는 손으로 환자의 이마를 짚으며 열을 체크한다고 한다. 손으로 열을 체크하기보다는 온도계로 열을 체크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자신을 적대하던 환자들이 그 순간만큼은 순한 양이 된다고 한다. 의사의 환대에 환자의 적대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 마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ㅡ 허은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허은실 시인이 < 이마 > 라는 시에서 "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 ㅡ  " 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아플 때마다 내 이마에 손을 얹었던, 젊었던 어머니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죄 지은 자의 머리에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그 죄를 사(赦)할 수 있는 것처럼 손은 갱생과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배가 아플 때 할머니가 손주의 배를 쓰다듬으며 내 손이 약손이다 _ 라고 주문을 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치유가 되는 경험을 가진 이라면 모두 다 동의할 것이다. 


무늬가 같은 받침 위에 찻잔을 올려놓는 것이 게스트을 환영한다는 호스트의 예의라면1),  아픈 이의 이마에 손을 얹는 일 또한 아픈 이에 대한 조건 없는 환대'일 것이다. 펄펄 끓는 이마 위에 손을 얹는 일은 받침 위에 찻잔을 얹어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일과 같다. 





​                          


1)   아무리 비싼 찻잔이라 해도 차받침이 없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단순한 용도로만 보면 받침은 실용보다는 장식에 가까워서 찻잔의 부속에 불과하지만 받침이 없는 찻잔은 빛을 내지 못한다. 냄비도 마찬가지다. 냄비뚜껑이 없는 냄비와 냄비뚜껑이 있는 냄비 중 가격을 후하게 받는 쪽은 후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찻잔과 차받침(혹은 냄비와 냄비뚜껑)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한몸인 셈이다. 허은실의 시 < 이마 > 를 읽다가 깨닫게 된다. 이마와 손바닥의 관계는 찻잔과 차받침의 관계와 같다는 사실. 시인이 " 이마의 크기가 /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고 고백할 때 나는 냄비의 둘레에 이가 잘 맞은 냄비뚜껑을 덮는 장면을 떠올렸다. 펄펄 끓는 이마 위에 손을 얹는 것은 펄펄 끓는 냄비 위에 뚜껑을 닫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김새와 쓰임새만 놓고 보면 이마와 손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시인이 "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 라고 고백하는 순간, 이마의 유사어는 손이 된다. 그것이 바로 시적 마술이다. 이마의 유사어는 손바닥이다. 


2)   왠지 이 글에는 버둥의 < 이유 > 라는 노래가 어울릴 것 같아 첨부한다. 한 번 듣고 홀딱 반했던 노래다. 버둥의 데뷔 앨범 << 조용한 폭력 속에서, 2018 >> 은 가장 주목할 만한 시선 중 하나이다. 가사의 깊이가 탁월하고 연출도 드라마틱하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버둥은 겉멋을 부리기 위해서 가사를 쓰기 보다는 소리와 주장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다. 버둥,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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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마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ㅡ 허은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허은실 시인의 < 이마 > 라는 시를 읽다가 문득 빈집에서 나홀로 나흘을 앓다가 서러워서 한 소금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일을,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열을 동반한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나흘을 앓았(던 적이 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독거사로 죽는, 그런 사회면 기사가 떠올랐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감기 따위로 죽지 않을 자신감과 감기 따위로 죽어도 아깝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으니까. 그냥......  끙끙 앓았다. 무료했던, 어느 삼경 즈음. 라디오에서 심야 방송 디제이가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소개했는데 이민자의 악전고투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녀도 나처럼 머나먼 타관(라디오 속 사연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었다)살이에 지쳐 있었다고. 결혼은 실패하고 사업도 망했으니 부모 볼 면목이 없던 그녀. 빈 방에서 심한 감기로 누워 있었는데...... 죽기로 결심했던 터라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고 그저 우주보다 캄캄한 방에서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고. 그때였다고 한다, 캄캄한 천장이 스크린이 되어 한국에서 즐겨 먹던 순댓국이 북위 37도 전갈자리 전방 19도에 위치한 sk인공위성 불빛처럼 선연하게 떠올랐던 순간.  죽기로 결심했던 여자는 눅눅한 비린내에 말캉거리는 비계를 떠올리니 침이 고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날, 그녀는 아픈 몸을 추스리고 통장에 남아 있는 잔고를 금성 탈수기처럼 탈탈 털어서 택시를 타고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고. 그리고 따순 국밥 위에 씨뻘건 김치를 얹어 입에 넣는 순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녀에게 인생 음식은 순댓국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몸을 추스리면 순댓국을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1). 오소리감투 듬뿍 넣어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녀처럼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던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순댓국을 먹었다. 감기따위로 죽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비로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허기'가 아니라 차갑고 텅빈 마음을 따스하게 녹일, 단순한 온기'였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로 그녀처럼 나 또한 몸이 아프면 순댓국 생각이 난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것은 식욕을 돋우는 음식이 아니라 단순한 온기'였다. < 이마 > 라는 시를 관통하는 서정도 " 단순한 온기 " 다. 앓는 이의 이마를 짚는 행위는 그의 체온을 체크하기 위한 행동이지만 반대로 앓는 이가 타인의 손바닥 온기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레이몬드 카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픈 사람의 이마를 짚는 것은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1)이 된 " 다.  앓는 이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갓 구워서 따스한 빵과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  환대하는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 시인은 마음이 "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 ㅡ " 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어느 " 세밑의 흰 밤 " 을 떠올린다. "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 벙어리처럼 울었 " 던 기억. 타자의 환대도 없이.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캄캄한 밤. 빈집에서 홀로 펄펄 끓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던, 춥고 쓸쓸해서 설웁던 그 밤. 




​                      


1)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몬드 카버 :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은 위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소설에는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날 뺑소니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생일이 지나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고객 맞춤 주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화가 난 빵집 주인이 등장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소한 약속(생일 케이크)을 챙기기에는 아들의 죽음은 거대한 불행이었고, 그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빵집 주인은 생일이 지났는데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이 미워서 수시로 재촉 전화를 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한다. " 이제는 스카티(아들 이름)를 잊어버린 모양이군 ! "  한쪽은 아이의 죽음 때문에 혼이 나간 상태이고 한쪽은 상한 케이크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다.  이 불협화음은 어두컴컴한 터널처럼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빵집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부짖는 젊은 부부 앞에서 늙은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일단, 사과의 말은 건네지만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울고 있는 부부를 어떻게 위로할지는 모른다, 사과와 위로는 다른 말이니까.  그는 부부 앞에 철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앉게 한 후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어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됩니다. 더 있어요. 다 드세요. 먹고 싶은 만큼 드세요.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 있으니...... "  극심한 고통 때문에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던 부부는 비로소 롤빵을 먹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따스한 빵이다. 아내는 롤빵을 세 조각이나 먹는다. 부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고 거짓 감정도 없이 진심을 다해 사과를 전하는, 위로의 말 없이도 위로를 전하는 빵집 주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소설은 새벽 동 트는 창밖의 풍경을 묘사하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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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1-03-07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찬바람이 불면 뜨거운 국밥 생각이 간절하죠. 호호 불어 천천히 식혀가며 먹으면 될 것을 급하게 털어넣느라 입천정을 데어가며 그래도 좋다고 웃으며 먹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7 21:25   좋아요 1 | URL
반갑습네다. 진아 님. 잘 지내시지요 ? ㅎㅎ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이마와 손은 서로 닮은 구석은 없지만
솥과 솥뚜껑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마와 손바닥의 크기가 비슷하듯이 솥 둘레와 솥뚜껑도 같은 크기이니 말입니다.

samadhi(眞我) 2021-03-07 21:58   좋아요 1 | URL
그 시를 쓴 시인처럼 곰발님 연상도 참신한데요.
제가 찬바람이라고 한 건 제겐 찬바람이 외로움이고 그리움이어서요. 어릴 땐 삐쩍 말라서 추위를 많이 타 추운 걸 싫어했는데 살이 붙으니까 제 속에서 지방장군(?)들이 든든히 버텨줘서 추위를 좋아하게 됐어요. 저는 찬바람이 불면 사람이 그립더라구요. 그래서 일부러 춥게 입고 다녀요. 그러면 사람들이 막 짠하게 보고 애틋한 눈길을 던져주면서 챙겨준답니다. 그러면 이때다 하고 앵겨요. ㅋㅋㅋ 그럼 하나도 안추워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8 18:38   좋아요 1 | URL
저도 옛날에는 추위에 강했는데... 이제는 봄날에도 추워서 오들오들하니... ㅎㅎㅎㅎ

samadhi(眞我) 2021-03-08 19:30   좋아요 1 | URL
곰발님은 1일1식 효과(?)인거죠. 지방장군이 못견디고 달아나버려서. 장군님을 아껴줬어야죠.

바람돌이 2021-03-07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이먼드 카버의 저 소설 정말 별것아니지만 위안이 되었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죠. 정말 위안이라는건 별거 아니구나. 내가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동감하면 되는거구나... 나에게 저 소설이 위안이 되었듯 나역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안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막 결심했던.... 그대로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팠던 곰곰님에게 순대국을 배달로 보내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내일부터 또 월요일인데 남은 하루 편안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7 21:26   좋아요 0 | URL
이 단편, 읽었을 때 정말 큰 감동을 줬죠. 작가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도움이 되는 작은 환대라고 말하지만 이 소설은 별것 아닌 것 같은 줄거리지만 엄청 큰 감동을 준... 저의 1등 단편입니다..

막시무스 2021-03-07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 따뜻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이마를 가리는 손에서 전달되는 단순한 온기가 이마를 통해서 내려오면서 가슴 깊은 곳에선 온정이되네요! 초코파이 마음이라고 해야할까요?ㅎ 카버의 저 단편 읽고 퇴근길에 롤캐익과 캔맥주 사서 먹으며 가슴속에 이는 찡함을 감동이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곰발님 글을 보니 단순히 피상적 위로가 아니라 제게 결핍되었던, 제가 받고 느끼고 싶었던 위로의 온기였네요! 온기라는 환대!
즐거운 한 주되셔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8 18:39   좋아요 1 | URL
카버의 단편은 인생 단편이었죠. 정말 별것도 아닌 내용인데 묘하게 카버의 단편은 감동적인 구석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