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일











첫눈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니 생일이 다가오나 보다. 어머니, 김장을 담그시다가 나를 낳으시던 날. 젖을 물리며 물끄러미 밖을 보는데 첫눈이 내리더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날이 되면 어디에선가 눈이 내리고는 했다. 첫눈은 무척 내성적이어서 소리 없이 내려 흔적 없이 사라지곤 했다. 내리되 쌓이지 않고 내리되 녹지 않는다. 그해 누군가는 첫눈을 보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첫눈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소리 없이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존재를 좋아했다. 첫눈처럼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떠나고 싶다. 부코스키의 말처럼 우린 얼른 뒈져서 여길 떠나주는 게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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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가성비에 대한 환상






비비케이(BBK)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사회에서라면, 거의 반년 안에 스무 권이 넘는 논픽션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종이 100만부나 팔리고 그게 시중의 화제가 되고 칼럼에 오르내리는 사회가 <엄마를 부탁해> 같은 소설이 100만부나 팔리는 사회보다 훨씬 바람직할 수도 있다.
 
ㅡ 장정일





                                                                                                                                                                                                                  자본주의 상품 가운데 " 가성비 " 가 가장 낮은 것은 책'이다. 책이라는 상품은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큰 효용(실용)을 주지 못한다. 투자 비용과 독서를 위해 소비된 시간을 감안하면 쾌락(만족)은커녕 오히려 고통을 선사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 스터전의 법칙 > 을 생각한다.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 ! 


그중에서도 가성비가 최악인 상품은 제임스 조이스의 << 더블린 사람들 >> 일 것이다. << 더블린 사람들 >> 은 읽는다는 행위가 고문의 한 형태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제품이다. 독서 행위가 마라톤 경주라고 했을 때, << 더블린 사람들 >> 에는 깔딱고개가 수십 개 등장한다. 완주할 수 있을까 _ 라는 의문이 계속 들지만 의문이 계속될수록 결승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목표는 기록 경신이 아니라 완주'가 아니던가 ! 독서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다. 고로 간서치는 마조히스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성비가 낮다는 것은 좋은 상품이라는 의미'이다. 


260억이 넘는 스위스 파텍필립 수제 황금 회중시계는 실용과 효용적 측면만 놓고 보면 형편없다. 시간을 보기 위해 이 시계를 구매하는 억만장자는 없다.  이 시계는 오로지 감상용일 뿐이다.  반대로 가성비가 높다는 것은 하품(下品)을 의미한다.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박리다매 전략을 통해서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사고 읽는 행위는 럭셔리한 것이다. 한승태 노동 에세이이자 르포 문학이라 할 수 있는 << 고기로 태어나서 >> 는 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다(문학 분야에서는 애나 번스의 << 밀크맨 >> 을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한국 출판문화에서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르포르타주에서 이룩한 뛰어난 성취라 무엇보다도 반갑다(출판 문화 강국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논픽션이다). 평소 소설과 시만이 위대한 문학 예술이라고 믿는 문인(문단)의 지랄같은 허세가 역겨웠는데 이 작품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다. 첫 번째 장편소설로 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픽션 대신 논픽션을 선택한 로이는 문학 한다고 힘 주는 작가들에게 묻는다. " 대체 언제부터 작가들이 논픽션 쓰기를 포기했는지요 ? " 


이 책은 저자가 몸소 체험한,  고기로 태어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닭/돼지/개 농장 현장을 다룬 르포인데 심각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문학적 재능에 힘입어 쉽게 읽힌다. 사육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다. 이 책을 읽다 보면 " 사육장 " 이라는 단어는 " 살육장 " 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한 나치의 언어규칙(Sprachregelung)화'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나치는 < 학살 > 이라는 표현 대신 < 최종해결책> 이라는 단어로 은폐했다). 저자는 동물농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동물을 기르기 위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기 위한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장이 늦은 병아리와 돼지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리, 도태, 청소된다. 동물 복지 윤리에 따른 애도도 없고 절차도 없다. 병아리 다리를 잡고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내리치는 것이 전부다. 새끼 돼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명이란 질긴 것이어서 머리가 으깨진 병아리 더미에서도 아프다고 밤새 운다고 한다. 우리가 가격 대비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라고 찬양하는 치느님의 고단한 일생인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민 치느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 표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들이 찬양하는 치느님은 닭 농장에서 평균 35일을 산다. 닭이 13살까지 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짧은 생'이다. 


얼마 전, 키우던 개가 죽었다. 대형견이어서 수혈 1회 비용이 150만 원이었고 하루 입원비는 40만 원이었다. 개에게는 피가 필요했고 그럴수록 나는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돈 때문에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개가 죽은 후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다짐이 영원한 결의가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개 한 마리 입양해서 키울 생각이다. 젊은 녀석보다는 늙은 녀석을, 예쁜 녀석보다는 흉한 녀석을, 순종보다는 믹스견을 입양의 조건으로 고려해 보아야 겠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으면 한다. 한국 출판 문화에서 훌륭한 르포르타주를 만난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행운이다. 이 책은 기(록하는)자의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고 소설가의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다. 저자 한승태는 기자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지만 둘 다 해냈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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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1-1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승태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만 찰스 부코스키가 자신의 산문집인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에서 썼던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끔찍한 일이다. 우린 얼른 뒈져서 여길 떠나주는 게 제일 좋다.˝
사실 환경보호와 동물존중에 갈음할 수 있는 말은, 인간절멸이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2019-11-18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틱번뇌보이 2019-11-18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한승태님의 ‘인간의 조건‘과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두 르포를 읽고 공장식 축산방식에 경악함과 동시에 작가의 글맛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르포 작가의 표본이 있다면 이런 분이 아닐까 싶어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전 장정일 작가님께서 독서일기에 적었던 글이 생각나네요.
˝바람직한 사회는 예컨대 천안함-세월호 사건 직후, 거기에 대한 논픽션이 20여권이나 쏟아져 나오는 사회다.(중략)
논픽션은 민주 사회를 지키는 보루이며, 나아가 공공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필요한 무기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8 18:25   좋아요 1 | URL
한국 출판 문화가 낙후되었다는 명징한 증후가 바로 르포르타주죠. 일본만 해도 르포가 많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유독 한국 출판은 황무지입니다. 천시하는 경향도 있고요. 순문학을 숭배하는 이상한 꼰대 정신이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한승태의 이 책은 발견이었습니다. 조은의 << 사당동 더하기 22 >> 라는 르포르타주도 좋죠. 이런 르뽀 많이 출간되었으면 합니다. 장정일의 말에 100% 동의합니다..

기록이야말로 진실의 가장 강력한 힘이죠.

에로틱번뇌보이 2019-11-19 13:34   좋아요 1 | URL
5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삼풍백화점붕괴사고 관련 르포도 2016년 출간된 <1995년 서울, 삼풍> 1권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서울문화재단의 기획과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르포르타주가 관련 사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기억하는 제의의 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는 타인의 비극에 무감하고 되려 천시하는 끔찍한 사회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사당동 더하기 22>>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복날에 삼계탕 먹는 게 잔망스럽다1)












                                                                                                   꼬들꼬들한 낙지를 좋아했다. 어금니로 살짝 힘을 주면 튕겨나갈 것 같은 낙지의 탄성에 탄성을 내지르고는 했다. 탄성에 탄성을 지르니 칠성 사이다. 몇 해 전, 사당동 해물탕집에서 술자리를 가진 적 있다. 최근에 맛집으로 급성장한 가게'여서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만석에 가까웠다.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각종 해산물이 큰 냄비에 가득 찼다. 플레이팅의 화룡점정은 산 낙지'였다. 뒤늦게 직원이 오더니 이미 세팅이 완료된 해물탕 요리 냄비 위에 꿈틀거리는 낙지를 넣었다. 그리고는 이내 투명한 유리로 된 냄비뚜껑을 닫고 불을 올렸다. 열이 오르자 낙지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냄비뚜껑이 유리여서 우리 일행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입에 침이 고였다.  맙소사, 고통 중에서도 화상이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이라는데 우리는 그 고통 앞에서 침이 고이는 것이다.  맛집 주인이 냄비뚜껑을 투명한 유리로 고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손님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충격이었다.  지옥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냄비 속 짐승을 보며 침이 고이다니 !  우리의 식욕과 주인의 욕심이 만든 리얼 버라이어티 쇼'였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내 식욕을 해소할 목적으로 죽음을 전시하는 식당은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낙지를 주재료로 하는 식당에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가 산 낙지가 죽은 소도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는 소리'이다.  한국인은 낙지 요리를 삼계탕이나 영양탕(사철탕)처럼 보양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일일일식을 5년째 실천하고 있는 내가 통렬하게 자각하는 사실은 " 보양식은 없다 " 이다.  


한국인은 복날마다 잃어버린 원기를 되찾기 위해 보양식을 찾는데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이 저지르는 가장 한심한 자기 위로'이다. 현대인이 원기를 잃는 까닭은 영양 결핍 때문이 아니라 영양 과잉 때문이다. 복날에 원기를 되찾겠다고 보양식을 먹는 것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여름에 펄펄 끓는 삼계탕을 먹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참, 시원하시쥬 ?    오히려 복날에는 공복의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 낙지가 죽은 소를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는 소리는 개소리이고 민어나 장어가 정력에 좋다는 소리는 오소리'다. 오히려 이 세상에 슈퍼푸드는 없다는 말이 유일한 똑소리'다. 


이들 식재료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모든 식재료는 딱 그만큼의 영양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소리이다. 이러한 신화들은 모두 술집 장삿꾼들이 유포한 허세2)이다. 모두 복날에 삼계탕을 권할 때, 나는 당신에게 복날에 공복을 권한다. 슈퍼푸드는 없다 !








​                         


1) 황광해, 한식을 위한 변명 ㅣ " 고백하자면, 삼계탕을 즐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계탕이 삼계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삼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닭이다. 삼계탕의 닭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닭이 아니다. 20여 일 자란 병아리, 병아리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생명체를 먹고 내 몸을 보양한다는 것이 잔망스럽다. 영계는 우리 시대 식문화의 천박함을 보여준다. " 36쪽


2)  텍사스에 사는 카우보이는 사격 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10점 만점에 10점 ! 금발의 백인, 백발에 백중 ! 그는 늘 과녁 정중앙을 맞췄다. 표적지를 보면 총알이 지나간 자리를 중심으로 한 치 오차도 없이 동그라미가 주위에 그려져 있었다. 단 한 번도 표적지를 벗어난 적도 없으니 그대 이름은 명사수 ! 하지만 그것은 사기였다. 이 카우보이는 표적에 총을 쏜 후 총알 자국 주위로 동그라미를 그려 왔던 것이다. 이것을 "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 " 라고 한다. "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 는 말이 있다. 흔히 듣는 말이다 보니 속담이라 여기는 이가 있으나 사실은 날조한 프레임이다. 전어는 옛부터 가장 흔한 생선으로 맛이 없어서 잘 먹지 않는 생선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가을 하면 전어가 생각나고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어가 맛이 있기에 가을에 전어를 찾는 것일까, 아니면 가을에는 전어라는 프레임에 세뇌되어 기계적으로 전어를 찾는 것일까 ?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총을 쏘고 난 후 과녁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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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7-19 14:0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옛날은 말 그대로 영양이 부족하여 복날이라도 고기 먹고 힘내자인데... 이건 하루종일 에이컨 바람 쐬면서 보양식 먹으러 뭘 먹을까 고민하는 거 자체가 참 웃긴거죠. ㅎㅎㅎㅎ 이해가 안 갑니다.... 차라리, 좋은 사람 만나서 팥빙수 한 그릇 먹으면서 하하호호 하며 행복한 시간 보내는 게 보양식 아니겠습니까... ㅎㅎ

수다맨 2019-07-19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 사회에서 영양식이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이야 재정적인 문제도 있는 데다가 가축을 대량 생육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고기 섭취량이 한정적이었고, 특정 날만을 지정해서 육식을 했을 테니 이 경우에는 영양식이 맞지요. 그런데 지금은 인구 대다수가 육식을 즐기는 시대인데 특정 음식에 ‘원기 회복‘이나 ‘영양 보충‘과 같은 말들을 붙이는 것은 우습다고 생각합니다.
 
















                              


F A C T F O O L E S S E S  :










사실과 진실



                                                                                                       내가 아는 사람(A씨)은 음식을 싱겁게 먹는다. 그는 라면 1개를  끓일 때 2인분 분량의 물을 붓고는 라면 스프를 1/2만 넣는다. 다른 사람은 그가 끓인 라면은 싱거워서 한두 번 젓가락질하다가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사람들은 그를 싱거운 사람이라 부른다. 허어, 이 싱거운 사람 보게나 ! 그런데 그는 한 끼를 먹을 때 라면 10봉지를 먹는 대식가'다. 그는 싱겁게 먹는 사람일까, 아니면 나트륨을 과다 섭취하는 사람일까 ?  라면 스프 1개가 나트륨 1일 섭취 제한 권고량2000mg을 웃돈다는 점에서 그는 한 끼 식사만으로도 1일 섭취 권고량보다 5배 많은 나트륨을 섭취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 팩트 = 진실 > 이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각론으로 보자면 A씨는 라면 1개를 끓일 때 라면 스프를 1/2만 넣기( = 팩트)에 A씨는 음식을 싱겁게 먹는다(=진실). 하지만 총론으로 보자면 A씨는 한 끼에 라면 10봉지를 먹기에 나트륨을 과다 섭취한다( = 진실). 즉, 팩트와 진실은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니다(팩트 ≠ 진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현대는 풍부한 곡물 생산으로 인해 굶주림이 감소했다는 수치를 통해 세계는 더 좋은 쪽으로 진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반대로 세계는 더 나쁜 방향으로 흐른다고 경고하는 것은 가짜 뉴스일까 ?


현재, 세계 인구는 77억 명이지만 식량 생산량은 120억 명이 먹고도 남을 식량을 과잉 생산하고 있다. 수치만 놓고 보면 굶어서 죽는 인구는 없어야 하지만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9명 중 1명은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10살도 안된 아이들은 5초에 한 명씩 죽어가고 있다. 지금 당신이 내 문장을 읽느라 소비한 그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한 아이가 굶어서 죽었다. 그리고 이 사실에 놀라서 깊은 한숨을 쉬며 정말 ? _ 이라며 스스로 되묻는 사이에 또 한 아이가 굶어서 죽었다. 그렇다면 과잉 생산된 식량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 과잉 생산된 식량에서 상당수는 글로벌 식량 기업이 곡물 가격 하락을 우려하여 밤에 몰래 바다에 버린다. 


그리고 전세계 음식물의 1/3도 버려지고 있다. 유통 기한은 지났으나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식품은 노숙자나 저소득층 가정에 분배되지 않고 전량 소각된다. 식품 회사는 회사 이미지를 고려하여 재고 사실을 은폐한다. 과거에는 먹을 식량이 없어서 1000명이 굶어죽었다면 지금은 인구 대비 2배에 가까운 식량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특정 계급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식량은 고의적으로 버려진 끝에, 100명이 굶어죽는다.  당신이 보기에는 어느 쪽이 더 잔인한 결과인가 ?  다윈은 << 비글호 항해기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 이 책의 저자가 새겨들어야 할 다윈의 말이다. 이 책은 현대인이여, 옛날에 비하면 굶어죽는 일은 없으니 불만 따윈 가지지 말고 매사에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루 수입 2달러 벌이는 중간 소득 계급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입장을 보고 있노라면,  최저임금 시급 만 원'을 놓고 줄다리기 하는 한국 노동자의 어마어마한 탐욕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전경련이 좋아할 내용이어서 누가 내게 이 책에 대한 20자 감상평을 작성하라면 이렇게 적겠다. " 전경련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 "  아닌 게 아니라 현대 정몽규 회장이 이 책을 읽고 크게 감읍하여 신입 사원 전원에게 무료로 책을 배포했다고 한다. 그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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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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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를 위한 변명








누구는 부사(副詞)를 이해하고 누구는 부사를 오해한다. 혹은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해하고 있는 이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스티븐 킹은 "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 " 고 강조한다. 부사를 많이 사용하면 문장이 촌스러워진다는 경고'이다.  그는 << 유혹하는 글쓰기 >> 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붕 위에서 목청껏 외치라고 해도 기꺼이 하겠다. 달리 표현하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튼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 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 완벽하게, 어지럽게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그때쯤이면 그 모두가 실제 그대로 흔해빠진 잡초로 보일 뿐이지만 그때는 이미ㅡ으헉!!ㅡ 늦어버린 것이다1).


- 유혹하는 글쓰기 중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 (민들레가)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 는 고백이다. 그러니까 스티븐 킹은 무조건 부사를 뜯어버려 _ 라고 으르렁거리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는 투덜대다가 끝에 가서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 뭐..... 나도 대개는 부사를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 "  반면에 철학자 김영민은 부사를 매우 좋아한다. 그는 << 보행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부사는, 우선, 나머지 문장 전체와 독립해 있으면서도, 이를테면 원격 조종으로써 일거에 그 문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사는 일종의 메타어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내가 지식인의 입지로서 늘 강조해온 ‘ 독립하되 고립되지 않는다 ’는 형국과 너무나 유사해서 사뭇 유쾌하다.  부사는 기존의 문장과 독립해 있으면서도, 그 문장 전체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메타적 연계를 유지한다. " 나는 부사라는 녀석에 대해 양가적 입장이다.  계륵 같다고나 할까 ?  내가 내린 결론은, 김영민 특유의 문장 스타일을 훔쳐서 말하자면,  부사를 사용하되 남용하지는 말자. 대체로 부사가 문장을 촌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 ㅡ 좋다 " 앞에 강조와 허세가 가미된 부사가 투입되면 문장은 확실히 촌스러운 모양이 된다. 


너무 좋다, 정말로 좋다, 참 좋다, 가장 좋다, 굉장히 좋다, 엄청 좋다, 졸라 / 조낸 / 조또 / 좆나 좋다 따위의 문장은 요리로 치자면  화학조미료 미원, 쇠고기 다시다, 라면 스프, 향신료 따위로 감칠맛을 뽐낸 요리다. 맹물에 과립형 알갱이 한 숟가락 넣었을 뿐인데...... 그래, 이 맛이야 ~             만약에 당신이 쓴 문장이 싱싱하다고 자부한다면 굳이 화학 조미료나 마늘, 생강, 파 따위로 맛을 더할 필요는 없다. 싱싱한 꽃등심은 양념 없이 불에 구워 먹는 것이 최상이다. 반대로 품질이 떨어지는 부위는 주로 간장, 고추장 따위의 강한 양념으로 요리한다. 주재료 본연의 맛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문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  강도와 빈도를 강조하는 부사를 남용하는 문장은 문장의 빈곤한 내용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부사가 모두 마늘이나 생강처럼 강한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부사'도 많다. 예를 들어 " 넌지시 - " , " 살포시 - " , " 사뿐 - " 따위는 문장 전체를 부드럽게 만든다. 억양이 부드러운, 소극적이며 정적인 부사는 향기로운 허브 같다. " 즈려밟다 " 는 문장과 " 사뿐이 즈려밟다 " 라는 문장은 서로 다른 문장'이다. 한국인에게 " 사뿐이 " 가 빠진 " 즈려밟다 " 라는 문장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스티븐 킹의 말에 대하여 나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할 수 없다. 


김애란도 부사의 쓰임에 대하여 고민을 한 모양이다. 일품 요리사는 화학 조미료로 맛을 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듯이 일품 문장가는 부사의 사용을 부끄러워한다. 문장 강화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부사는 저잣거리 입말에서나 쓰는 품사라고 말이다. 산문집 << 잊기 좋은 여름 >> 에서 김애란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실로 오래 전부터 훌륭한 문장가들은 우리에게 부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 왔다. 나는 부사가 걸린다. 부사가 낭비된 걸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문장을 고쳐 읽게 된다. 한 번은 문장 그대로, 또 한 번은 부사를 없애고. 그러고는 언제나 나중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문장 안에 부사가 있었다는 걸, 부사가 없는 자리를 보며 기억한다. 부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모른다. 나는 부사- 하고 발음해본다. 그 이름, 어감 한 번 지루하다. 부사는 가볍다. 부사는 크다. 부사는 단순하다. 부사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좀, 이상한 품사 같다.  나는 부사를 쓴다. 나는 부사를 지운다. 나는 부사가 걸리고, 부사가 창피하다. 나는 부사에 주의한다. 나는 부사가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손가락을 모으며 이 말을 아주 조그맣게 한다. 글 짓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사를 '꽤'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매우' 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 이후로, 한 문장 안에 이렇게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 산문집 << 잊기 좋은 여름 >> , 부사와 인사 中

 


김애란은 부사에 대하여 오만가지 감정을 나열한다. 부사는 동사처럼 활기차지도 않고 명사처럼 명료하지도 않지만, 그는 부사라는 품사에서 무능하고 과장이 심한 성품을 읽지만 안간힘이 있어서 미워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런 고백은 그의 첫 번째 소설집 << 달려라 아비 >> 를 관통하는 정서'이다. 그런 점에서 << 달려라 아비 >> 에 등장하는 아비는 부사를 닮았다.



부사는 그게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저것! 저것!' 한다. 그것은 설명보다 충동에 가깝고, 힘이 세지만 섬세하지 못하다. 부사는 동사처럼 활기차지도, 명사처럼 명료하지도 않다. 그것은 실천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만날 큰소리만 치고, 툭하면 집을 나가는 막내 삼촌을 닮았다. 부사는 과장한다. 부사는 무능하다. 부사는 명사나 동사처럼 제 이름에 받침이 없다. 그래서 가볍게 날아오르고, 큰 선을 그린 뒤 '그게 뭔지 알 수 없지만 바로 그거'라며 시치미를 뗀다. 부사 안에는 쉽게 설명해버리는 안이함과 함께,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안간힘이 들어 있다. '참', '퍽', '아주' 최선을 다하지만 답답하고 어쩔 수 없다는 느낌. 말(言)이 말(言)을 바라보는 느낌. 부사는 마음을 닮은 품사이다. 나는 부사의 다급함이 좋다. 그것은 무언가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에서부터 출발한다. 계속 지울 부사를, 자꾸 쓰게 되는 건 모두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김애란이 부사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헤밍웨이의 말을 경청했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 옳은 말이다. 나도 부사를 참, 정말, 퍽, 아주, 꽤나, 많이, 너무 좋아한다. 얼씨구 ~           옛날에는 국광이나 아오리를 최고로 쳤으나 이제는 무조건 부사'다. 부사는 쓰지 않고 달며 상큼하다. 사과 하면 역시 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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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가끔 스티븐 킹 할베가 저런 비유를 사용하면 미치는 경향이 있다. 찰지다, 찰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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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7-1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기 좋은 이름, 짱 좋다 ! 올 여름은 잊기 좋은 이름으로 !

수다맨 2019-07-15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사가 많이 들어간 문장을 쓰는 작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예외가 있다면 이문구와 필립 로스 같은 문인들입니다. 이런 작가들은 간결체를 거부하면서 문장 단위에 토속어를 전격 배치(이문구)하거나 복문과 중문을 장황하게 구사(필립 로스)하는데 단순한 정보 전달에 주력하기보다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운율과 정서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인물과 풍경의 내/외면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형상화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 같더군요.
다만 이런 사람들이야 대문장가들이고, 문장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면 스티븐 킹의 조언을 우선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7-15 15:45   좋아요 0 | URL
그들의 특징은 구어체 특유의 맛깔을 잘 담는 작가들이잖아요. 고수이기에 문장이 빛이 나는 것이지 그냥 적당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부사 남발하면 죽음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