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리  엄 마 는  안  그 래  :







분리 불안 장애








                                                                                                        에스비에스 간판 오락 프로그램은 뭐니 뭐니 해도 << 티븨 동물 농장 >> 이다. 티븨 동물 농장은 에스비에스'판 모닝 선데이 데이 대표 전국 노래 자랑'이다. 일요일 아침엔 동물 농장, 점심엔 짜빠게티, 저녁엔 치맥 ~


온갖 동물이 출연하여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성과 부성과 인성을 보여주니 눈물이 주르륵 !   동물 행동에 대한 논문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로렌츠 박사는 동물을 의인화해서 휴머니티'를 유도하는 방식을 경고했지만 동물 윤리의 불모지에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이 방송 프로그램이 주는 좋은 영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 농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흔히 겪는 증상은 분리 불안 장애'이다.  집사가 출근하고 나면 혼자 남은 견/묘'는 애착 대상(집사님)과 분리되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발달 수준에 비해 부적절하게 심한 수준의 공포와 불안 반응을 보여 적응상 문제를 초래한다. 


하루 종일 목 놓아 울거나 주변 물건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혹은 평소와는 달리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애착 대상과의 분리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인 셈이다.   분리 불안 장애'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경험이 있는 엄마라면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애끓는 이별 별곡'이다.  하지만 이 분리 불안 장애는 대부분 나이가 들면 사라진다.   어릴 때에는 애착 대상이 집과 엄마'였지만 질풍노도의 기후 변화를 겪고 나면 애착 대상이 또래와 이성 친구에게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그 옛날에 미아리 고개를 넘으며 하울링 하던 항문기 시절에 고착되는 경우이다. 


항문기 고착이란 나이는 성인인데 정신은 항문기(만 1세 ~ 3세)에 머무른 경우를 말한다.  항문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바탕으로 설명되는 성격 발달의 두 번째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항문이 성적 쾌감을 주는 원천이 되는 시기이다. 연령으로 보면 대개 1~3세까지이며 이 시기 동안 유아는 배설기관에 의한 성적 쾌감을 즐기며 배설 과정에 대한 독특한 관심을 갖게 된다.  항문기에 고착된 성인은 고집불통, 구두쇠, 수집벽(패티시즘) 등의 성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인물은 " 박근혜 " 다.  변기 때문에 < 세계 핵 안보 정상 회담 >  도중'에 자리를 떠났다는 박근혜의 그 유명한 일화'는 


그가 항문기 고착'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박근혜가 특정 변기 디자인과 쌍팔련도 생활용품을 고집했다는 점에서 " 70년대 새마을 레트로 패티시 " 이다. 박근혜가 항문기 고착'이라면,  그가 아버지에게 집착했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에게 있어서 " 청와대  그 옛날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본가'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다 큰 성인이 집과 엄마(아빠)에게 집착하게 되면  볼성사나운 꼴을 연출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한국 성인 남성 거개는 어릴 때 애착 대상이었던 집(혈통)과 엄마와의 관계를 분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결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가 제일 좋고, 우리 엄마가 해준 집밥이 제일 맛있다고 착각한다. 


아내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음식을 주물럭거리면 혀부터 끌끌 찬다. 이 사람아, 음식은 손맛이야 !!!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엄마가 해준 집밥의 비결은 손맛이 아니라 미원과 소고기 다시다 맛이었으며,  가사 노동에 지친 엄마는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은 손맛이고 지랄이고 간에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말한다는 사실을 아들은 모른다는 점이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남편은 대뜸 우리 엄마는 안 그래 _ 라고 외치곤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애착 대상이었던 엄마와의 완벽한 분리에 실패한 데에서 발생한 증상'이다. 성인 항문기 고착 아들은 엄마와 아내'가 서로완벽한 타인'이란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한다. 


또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역할이 동일한 조건과 비슷한 입장의 동등한 정치적 동료'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의 신뢰는 무너지고 번뇌는 우레처럼 요동친다. 결혼 생활, 이게 뭐래 ?  결혼 생활'을 20자 내로 정의하자면 :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   결혼이란 어릴 적 애착 대상이었던 집과 엄마와 결별하고 타인과 새로운 집을 짓고 사는 과정이니 말이다. 혼자의 힘으로 숲속 오두막집을 지어본 사람은 안다. 새집을 짓는다는 것은 언제나 고생이며 저 푸른 저 하늘에 그림 같은 집을 지으려고 할수록 더, 더더더 개고생'이란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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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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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    닝    썬          사     태       :

 

 

 

 

 

 

 

 


 

                                                정준영, 승리하다 !


 

 

 

 

 


                                                                                             < 나비효과 > 를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욥,8 :8) _ 로 요약할 수 있다. 약쟁이라면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마약하리라 _ 일 터이고, 풍각쟁이라면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솔솔, 라라라, 시시, 도도하리라 정도 ?!  버닝썬 사태'가 그렇다.

나이트클럽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시비와 다툼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력을 과시하는 불알후드가 이익 집단과 결탁하게 되면 불미스러운 사건은 대부분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시시하게 끝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스토리텔링이었기 때문이다. " 오고가는 주먹질 속에 싹 트는 쌍방 과실 " 로 끝나야 할 서사'가 태풍의 눈으로 둔갑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일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던 일이 어느새 이삼사오육칠팔구로 확장되었다. 이제 불타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승리'였다.  승리 했기에 실패한 이상한 서사로 둔갑한 것이 버닝썬 사태'다.

 

훗날, 이 사태에 대하여 사람들은 나비효과'를 " 승리하다 " 라는 신조어로 부를 만하다. 정준영 사태는 전형적인 " 승리하다 " 이다. 옛날에는 정준영이 " 죄송한 척이라도 할 수 있었 " 는데  지금은 " 죄송한 척도 할 수 없을 " 만큼 일이 커졌다. 불미스럽다(不美-) _ 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역겨운 성범죄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정준영의 도덕불감증을 비판하는 것은 다 된 밥에 밥숟가락 드는 꼴이니 굳이 내가 잣 까면서 수박 씨 발라먹는 소리로 시일야방성대곡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이의 글을 참조하시라. 굳이 한마디 거들자면 우리는 추악한 한국 남성 문화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중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지적처럼 과학기술 발전은 현대인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선사했다. 몰카가 대표적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상대방을 속인 채 성행위 동영상을 찍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섹스 동영상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여성에게 위험요소로 작동한다. 반면에 몰카 가해자인 남성에게도 과학기술 발전은 위험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가해자인 남성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온갖 자료를 삭제한다 해도 삭제된 증거를 다시 복원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이 발전했으니 이 또한 위험요소이다.

울리히 벡은 이 점에 주목한다. < 위험 > 은 성공적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고,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과학기술과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나타나며, 무엇보다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것이다. 이 위험 요소를 줄이는 방법은 원시적일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삶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당신이 SNS에 남기는 모든 흔적은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명탐정 홈즈 시리즈'가 독자에게 남기는 교훈은 매우 단순하다.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나서 생각 없이 내 블로그 댓글 창에 남긴 댓글'이 나중에 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다. 당신에게 울리히 벡의 사회학 명저 << 위험사회 >> 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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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3-15 16:42   좋아요 0 | URL
ㅎㅎ 정말 딴나라 세계인 것 같습니다..
 
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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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한 환각의 출현 :

 

 

 

 

 

 

 

 

 

​악어 이야기

 

                                             

                                                                                                                   훌륭한 이야기에는 항상 " 악어 " 가 등장한다. 만약에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책에서 악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다. 그런 책은 재미없어 !

악어가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재담'이다)  :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불평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  여자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침대 밑에는 악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 악어 있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이대 나온 여자라고요 ~   하지만 의사는 도시에서 악어 출현은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시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도 그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불평을 하지만 남자는 지난번 진단과 같은 처방을 내린다. 와, 악어 없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정신과 의사라고요 ~               

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약속했던 환자가 나타나지 않자 의사는 환자의 망상이 사라졌다며 기뻐한다.  만약에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뒤, 의사는 환자 친구인 k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k가 말한다.  그 악어한테 잡아먹힌 그 사람 말하는 겁니까 ?  침대 밑에서 악어가 살았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에서 < 악어 > 는 현실 공동체 질서 안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환각'에 불과했지만,  현실 속에서 " 실현된 환각 " 으로 나타나면서 서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악어는 스토리텔링1)에서 매우 중요한 오브제이다.

이명박 스토리와 박근혜 스토리가 매우 흥미진진했던 까닭도 인간의 눈에서 악어의 눈물이 흐른다는 데 있다. 아, 아아아아아악어의 눈물이라니. 그것은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맥주가 쏟아지는 것과 같은 꼴이다. 쇼킹하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흘린 박근혜의 눈물을 보았을 때 우리 모두는 당황했었다. 어, 어어어어어어...... 닭이 아니라 악어였어 ???!!!!  이처럼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악어 한 마리 정도는 비장의 카드로 숨겨놓아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어느 하드보일드 작가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권총을 등장시키면 된다고 충고했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글을 쓰다가 막힌다 싶으면 악어 한 마리를 등장시키라구.

그런데 악어가 한 마리가 아니라 악어가 떼로 등장하는 만화가 있다.   바로 << 악어 프로젝트 >> 라는 프랑스 만화'이다.  이 책에서 남자는 모두 초록색 악어로 등장한다.   악어 떼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사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그리고 있는데 양성 평등 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초록색 악어들은 호시탐탐 여자들을 잡아먹을 궁리만 한다.  " 남자는 모두 다 늑대(악어) " 라는 말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만국공통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남성 입장에서 보면 모든 남성을 포식자인 초록색 악어로 묘사해서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느낌이 드니까.


작가 토마 마티외는 " 악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주의,  성적 고정관념,  남성의 성적 욕망,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거리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 고 한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되지 않은 NON·REAL(IZE) " 환영에 불과하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된 환각 NON·ILLUSION(ED)" 으로써 라캉의 실재 the Real  2)에 가깝다. < 초록색 악어 > 는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리얼리티 없는 리얼이다.  이처럼 the Real(실재계)은  the reality와는 다른 개념으로 실제(實際)도 아니고 실재(實在)도 아니요, 실체(實體)도 아니다. 

그것은 the Nothing에 접근한 공허(空虛, the void)에 가깝고,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한 히치코크의 얼룩이자 오점에 해당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면, 남성인 당신은 지난날에 대하여 반성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고,  읽는 내내 불쾌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면 당신은 a son of a bitch crocodile'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말머리에서 소개한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 익살스러운 재담에서 환자를 여성으로, 그리고 의사를 남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신과 의사는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의 말을 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진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   세상의 절반이 악어인데 말이다.  혹시...... 그도 또 다른 악어 한 마리는 아니었을까 ■


​                             


1)      최근에 개봉한 영화 << 도어락 >> 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히스테릭한 여자 이야기의 변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원룸 안에 누군가 있다고 말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여자와 동일인이다. 그리고 경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형사(김성오 분)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리는 범인은 악어'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 들'은 예외 없이 모두 경민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대하여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고 말하지만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은 < 실현 가능한 환각 > 이 되어 관객 앞에 출현한다.


2)   " 라캉의 실재(the Real)는 현실(the reality)이 아니다. 라캉의 실재는 상징계의 밖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실 밖에 있는, 현실이 아닌, 현실 너머의 어떤 것이다. 라캉의 실재는 경험적 실재와 구별되고, 초감각적 세계의 추상적 실재와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경험적 실재란 우리 주변의 모든 구체적 물건들을 뜻하고, 추상적 실재란 ‘자유’, ‘정의’ 같은 추상 명사들을 뜻한다. 그러나 라캉의 실재는 이것들 중 그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상징계가 언어적 세계라면 실재계는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 밖의 세계이다. 우리의 현실은 언어로 된 세계인데, 실재는 언어로 매개되지 않는 세계이다. 그것은 언어에 포함되지 않고, 언어 외부에, 또는 주체 외부에 있는 성(性)과 죽음의 차원이다. 결국 실재계는 불안의 대상이다. 그 세계 앞에 서면 모든 단어들이 얼어붙고 모든 범주들이 추락하는, 그런 불안의 대상이다.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즉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실재계는 표상이 불가능하다. 상상할 수 없고, 상징계 안에 통합시킬 수도 없어서, 우리는 도저히 그 곳에 도달할 수가 없다. 현실 속에서는 결코 제시될 수 없지만 우리가 현실과 밀착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현실 끝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 너머로 속이 텅 비어 있는 심연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실재다. 실재는 우리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끔찍한 한계, 즉 그것을 건드리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한계이며, 동시에 그 너머의 공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생각해 보자. 연인 유리디체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해 나오는 오르페우스에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가 내려졌다. 돌아서서 뒤에 따라오는 연인을 바라보는 순간 연인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중간에 오르페우스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았고, 연인 유리디체는 죽었다. 실재의 은유로 이것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 실재에 가까이 가는 것은 치명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현실과 실재를 가르는 한계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표지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넘을 수 없고, 거기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죽는다. 그리고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다. 실재는 그러니까 실체도 없고, 물질성도 없다. 일체의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그 어떤 말로도 표상할 수 없다. 그러나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공허(空虛, the void)이다. 실재는 텅 비어 있는 빈 공간이다 "

ㅡ 박정자 칼럼에서 부분 인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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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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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주정뱅이에 가까웠던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술을 마시다 보니 오늘은 귀한 날이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사서 술상을 차렸다. 호박을 삶아서 믹서기로 갈은 호박 스무디를 만들어 맥주 500CC 잔에 채우고 호박으로 만든 부침개와 돼지고기 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와 밥 한 공기를 담았다.

맥주컵에 소주를 담고 그 위에 거품이 나지 않도록 맥주를 부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소맥을 탈 때에는 거품이 생길 때의 공간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소맥을 타기 위해 (소맥을 타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소맥 전용 젓가락 한 짝을 컵에 담고 다른 한 짝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이때에도 신중한 계산이 필요하다. 타악의 힘이 젓가락 쇠기둥에 미치는 영향과 맥주 탄산이 이에 반응하는 격랑의 소용돌이를 계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쉽지 않은 일. 거품을 만들어 거품을 맥주 유리컵 꼭대기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시시포스가 바위를 끌고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

이 작고 즐거운 수고를 위해 나는 오늘도 캄캄한 밤에, 컴컴한 방에 홀로 정좌를 하고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참선하는 마음,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맥을 24시간 동안 굶어서 허기진 위장에 쏟아 넣는다. 방은 고요하다. 티븨도 없다. 아름다운 여자를 생각했다. 알싸하게 퍼지는 술기운이 좋다. 안주로 호박 스무디를 마셨다. 놀라운 사실은, 아니 씨발.......  소맥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그만 인사불성이 되어 작별인사도 못하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는 사실이다.  한때 " 말술 " 을 먹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 벼룩(의 간으로 담근)술 " 에도 잠을 자는구나. 일어나 보니 새벽이다. 이 황망함. 뭐랄까 ?  고자가 된 듯한 느낌 ?!  내가...... 고자라니. 아, 내가 고자'라니.  

차라리 계룡산 쌍쌍봉 아랫골의 고라니로 살고 싶다아.  새벽에 일어나 남은 벼룩술을 마셨다.  벼룩의 간이 이런 맛이로구나. 문득, 사랑이라는 것도 소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라는 시금털털한 보리 맥주와 나라는 맑고 독한 소주가 섞이는 과정. 처음에는 서로의 밀도가 달라서 맥주 아래 소주가 가라앉으나 어느 순간 타악의 힘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치는 순간  맥주와 소주가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것, 그 하얀 포말.  아, 저 격랑.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듯이, 소맥을 말아먹지 않은 자는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소맥이 얼마나 맛있다고.

10년 전에 읽었으나 읽은 줄도 모르고 다시 읽은 소설(책 읽어주는 남자)을 생각했다. 이 소설이 오프라 윈프리 쇼의 북클럽 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패널 - 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스물한 살 차이가 나는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한나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_ 라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루밍'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질문을 받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화가 나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지적한 후,  유럽의 독자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하엘과 한나를 통해 전쟁 이전 세대와 전쟁 이후 세대의 세대 갈등을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 한나 " 를 이해하기로 했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아이가 문자 세계로 진입했는가 못했는가에 따라 상상계와 상징계로 분류했다.  상상계에 머무르는 아이는 당연히 문자 세계에 진입하지 못했기에 입말(구술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한나 슈미츠'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몸은 성숙한 여인이지만 구순기에 고착된 어린아이'이다.  그렇기에 그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나치 부역에 대한, 그에 따른 죄의식이 없다.  그녀는 순수한 의미에서 無知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은 그루밍'이 맞다. 

미하엘보다 한참 어린 이는 한나 슈미츠라는 갓난 여자아이'이다. 한나는 교도소에서 문자를 배운다. 

그녀는 힘을 잔뜩 주어 썼다. 한가운데를 접은 편지지의 아래쪽 면과 위쪽 면에 박힌 글씨 자국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255쪽

그것은 구순기 고착에서 벗어나 성인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상징이다. 비로소 한나는 성인이 되어 선악을 구별하게 된다.  결국 한나는 석방 예정일 전날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선택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행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는 어린이로서 사랑을 시작했고 어른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소맥 마시며 소설 읽기 좋은 새벽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좋은, 캄캄한 겨울 새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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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달이 참 아름답습니다 :











달이 참 밝네요














                                                                                                        작가 나쓰메 소세끼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다. 1900년 메이지 유신  시대, 그는 국가 장학생 자격으로 영국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 지식인으로 작가, 평론가, 영문학 교수였으며 당대 최고의 영문학 번역가였다.

그는 번역 작업 중 < i love you > 라는, 전 세계 누구나 해석 가능한 문장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 달이 참 밝네요 > . 달이 참 밝네요 _ 라는 뜬금없는 고백은 묘하게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_ 라는 직설적 고백보다 애틋하고 아따, 분홍분홍하다. 이처럼 멜로드라마에서는 서둘러 말하는 것보다는 에둘러 말할 때 정서적 울림이 크다. 에둘러 말하는 마음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소세키가 20세기 말 인간이었다면 달이 참 밝네요 _ 라는 문장 대신 어쩌면 라멘 먹고 갈래요  _ 라고 번역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일 바다 보러 갈래요 ? 

그래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른 오브제로 환유하는 방식 중에서 으뜸 of 으뜸 오브제는 < 달 > 일 것이다. 그의 대표작 << 마음 >> 은 선생님(男)과 학생(子)의 멜랑꼴리한 마음을 다룬다. 학생이 선생에게 느끼는 매력이 지적 탐구에 대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스승에 대한 단순한 선망인지, 혹은 동성애인지가 불분명하다. 독자 대부분은 일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 이 멜랑꼴리를 앎에 대한 동경 내지 스승에 대한 좋은 감정 따위로 치부했지만, 나는 단언하건대 소설 속 화자 < 나 > 가 느끼는 스승에 대한 감정은 동성애'다. 학생은 망설이다가 스승에게 이렇게 말한다. " 선생님, 달이 참 아름답습니다. "

영화 << 첨밀밀 >> 에서 가수 등려군이 부른 영화 주제곡 << 월량대표아적심 >> 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달에 비유한다. " 웨량따이뱌오워디씬 月亮代表我的心 :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었어요 ! " 등려군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_ 라는 말 대신 월량대표아적심이라고 말한다. < 달 > 이라는 오브제가 사랑을 환유하는 대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 거리 > 때문이다,  인간이 갈 수 없는 가장 먼 나라는 달나라'이니까.  나는 멜로드라마의 핵심은 거리'라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이 있던 당신이 가장 먼 곳으로 떠날 때 슬픔은 완성되고, 가장 먼 곳으로 떠났던 당신이 가장 가까이에 서 있을 때 사랑은 다시 완성된다.  

종로 3가에 사는 여자와 남자가 사랑을 나누다가 남자가 을지로 3가로 떠나면서 헤어지자고 이별을 고할 때, 그 누가 절절한 마음으로 슬퍼하랴. 그렇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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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3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작년 이맘때쯤 이 책 읽으면서, 선생님과 나 사이의 감정을 동성애라고 우길 수 있는 단서들을 세어 보자는 마음으로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였는데 거의 60 문장 정도에 붙였드랬습니다.

써야지 써야지 하고 있었는데, 곰발님한테 당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8-01 16:01   좋아요 0 | URL
제가 개인적으로 소세키 문학을 좋아합니다.
뭐가 이 양반 소설에는 엘리트적 찌질함을 포획하는 힘이 있어요.
읽다 보면... 인간들 쪼존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전 이 소설을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반대 버전이라느 생각이 듭니다..

라로 2018-08-01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달달달한 글이라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8-01 16:0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멜로는 달달한가 봅니다.

레삭매냐 2018-08-0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긴 한데
정작 일본에서는 잘 읽히지 않는 작가라고
하더라구요.

한국 여행을 하면서 쓴 여행기인지 산문
이 있다고 하는데 궁금해지네요.

아무래도 식민지 체험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8-02 15:15   좋아요 1 | URL
고전에 대한 그 유명한 정의가 있잖습니까.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책...

하긴 우리도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제대로 읽은 이가 있었겠습니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