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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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작 새 와    만 연 체   :











깃털들, 레이몬드 카버







                                                                                               아름다운 새의 대명사는 " 공작새 " 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 아름다운 새의 대명사 " 라는 수식어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좋다, 양보해서 공작은 아름다운 새의 명사, 조사, 형용사, to부정사 정도'라고 하자. 하여튼 공작새는 아름답다(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공작새는 조금 징그럽고 약간 괴상하며 너무 과도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작의 화려한 " 날개 " 는 사실은 " 꽁지 " 이다.  날개보다 꼬리가 크다 보니 비행술도 최악이다.  멋을 과도하게 부리다가 나중에는 새의 본능도 상실한 것이니 주객이 전도된 삶이다.  그리고 울음소리도 듣기 좋은 음색이 아니다. 불혐화음에 가깝다.  지나치게 " 투머치-스럽다 " 라고나 할까 ?  공작(수컷)이 하늘을 멋지게 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비행기의 디자인이 오로지 날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장식을 최소화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작새는 무거운 꽁지 깃털을 모두 다 뽑아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몸이 가벼워지니깐 말이다.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깃털들 >> 의 주인공 '나(잭)'는 프랜의 긴 금발머리와 잘록한 허리에 반해 결혼한다. 젊고 매력적인 신혼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고 즐겁게 살자고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인 버드와 올라 부부의 초대를 받고 그들의 집을 향한다. 잭과 프랜 부부를 맞이한 것은 버드와 올라 부부가 애지중지 키우는 공작새'였다. 미적 취향은 제각각이어서 잭과 프랜 부부는 공작새가 조금 징그럽고 약간 괴상하다고 느낀다. 


버드와 올라 부부의 아기는 공작새보다 조금 더 징그럽고 괴상하다. " 여태 본 적 없는 못생긴 아이 " 이다. 너무 못생겨서 차마 예쁘다는 흘림말조차 할 수 없다. 잭과 프랜 부부는 촌스럽고 못생긴 버드와 올라 부부를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그 행복감은 비교 우위를 선점한 자의 우월감이다.  잭은 "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고 느낀다 " 이처럼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잔인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발견할 때 느끼게 되는 것은 행복'이다.  마치, 잭과 프랜 부부가 그날 밤에 느꼈던 행복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  그날 밤,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낀 잭과 프랜 부부는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임신을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  출산한 아내는 긴 머리를 잘랐고 뚱뚱해 졌다.  그리고 아이는 음흉한 구석이 있다.  가족은 어딘지 모르게 뚱뚱한 공작새를 닮았다. 





+

단편소설 << 깃털들 >> 은 레이몬드 카버 자신이 이룩한 문학적 성취에 대한 불안으로 읽힌다. " 공작새의 깃털들 " 은 카버가 그동안 갈망했던 미니멀한 문장과는 결을 달리하는 만연체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작가가 보기에 공작새의 깃털(화려한 만연체)은 솎아내야 할 악덕이다. 카버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간절함을 잃어버린 순간 자신의 문장에 덕지덕지 붙게 될 만연체'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단편집 << 대성당 >>  은 걸작이다. 여기에 덧대어 약간 과장하자면 압도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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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18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버의 대성당 작품집이 걸작이라는데 동의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0-06-19 12:02   좋아요 0 | URL
읽다가 기절할 뻔했습니다.. ㅎㅎㅎ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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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위로한답시고 한 말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위로가 지나치면 충고가 되고 진심이 없으면 하나 마나 한 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때 긴장하게 된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한마디 건네야 할 때에는 좌불안석이 된다. 죽음에 가까운 슬픔 앞에서 일상을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일까 ?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은 위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소설에는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날 뺑소니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생일이 지나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고객 맞춤 주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화가 난 빵집 주인이 등장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소한 약속(생일 케이크)을 챙기기에는 아들의 죽음은 거대한 불행이었고, 그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빵집 주인은 생일이 지났는데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이 미워서 수시로 재촉 전화를 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한다. " 이제는 스카티(아들 이름)를 잊어버린 모양이군 ! "  한쪽은 아이의 죽음 때문에 혼이 나간 상태이고 한쪽은 상한 케이크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다.  이 불협화음은 어두컴컴한 터널처럼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빵집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부짖는 젊은 부부 앞에서 늙은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일단, 사과의 말은 건네지만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울고 있는 부부를 어떻게 위로할지는 모른다, 사과와 위로는 다른 말이니까.  그는 부부 앞에 철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앉게 한 후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어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됩니다. 더 있어요. 다 드세요. 먹고 싶은 만큼 드세요.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 있으니...... "  극심한 고통 때문에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던 부부는 비로소 롤빵을 먹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따스한 빵이다. 아내는 롤빵을 세 조각이나 먹는다. 부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고 거짓 감정도 없이 진심을 다해 사과를 전하는,  


위로의 말 없이도 위로를 전하는 빵집 주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소설은 새벽 동 트는 창밖의 풍경을 묘사하며 끝이 난다. 불협화음이 환해지는 순간이다. 소설은 끝이 나도 잔상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불쑥 이 글을 쓴다. 좋은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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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20-06-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로버트 알트만 영화 <숏컷>에 삽입돼 있었는데 넘나 감동적이었어요ㅜ 아이 엄마 역이 앤디 맥도웰. 박완서 선생님도 어디 수필에서 언급하셨어요. 원작 제목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6-17 22:35   좋아요 0 | URL
아 ! 그래요. 앤디 맥도웰이 엄마로 나왔던... 아, 그개 영화 숏컷의 한 장면이었군요. 이제야 생각이 납습니다.. ㅎㅎ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













    십 세기말, 디카( : 디지털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필카( :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들은 모두 짐승털카메라를 비웃었다. 하지만 디카는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고 필카는 추억의 물건으로 몰락하고 말았다(이제 필름 카메라는 한강 미사리 밤 카페 진열대에 놓인 인테리어 소품으로 남아 그나마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캔 로치는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지구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손으로 필름을 다루며 편집했던 직업군 또한 종말을 고했다. 필름이여, 안녕 !  


전자책과 종이책의 대결도 이와 유사했다. 업계에서는 필카의 전광석화 같은 몰락을 예로 들며 전자책이 곧  세계를 지배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물성과 지적 허세를 자랑하고 싶은 독자의 " 가시성의 욕망 " 이 겹치다 보니 종이책은 죽지 않아 !  종이책은 한숨 깊은 문학소녀에게 이렇게 속삭이리라. 오빠는 몸 성히, 성히, 성히 잘 있단다.  종이책을 단순하게 상품의 흥망성쇠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왜냐하면 종이책은 오래된 상품의 한 종류'라기보다는 인류 문명과 함께 한 문화적 자산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 밀리의 서재 >> 가 전자책 플랫폼이라는 사실은 친애하는 이웃의 글을 통해서 알았다. 눈동냥으로 밀리의 서재라는 이름을 간혹 보긴 했으나 책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려니 했다. 호기심이 생겨 살펴보니 정액제로 월9,900원을 내면 전자책 30,000권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일단 " ㅡ 9,900원 " 이라는 박리다매의 자본적인 너무나 자본적인 자본주의적 센티멘탈에 빈정이 상했다.  또한 " ㅡ 무제한 " 이라는 표현도 눈에 거슬렸다. 마치 무한리필 고깃집 마케팅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인당 9,900원을 내면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괴깃집의 전략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 


어떤 이는 밀리의 서재 플렛폼 방식을 두고 시대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공유 경제 형태의 소비 방식'이라고 주장했으나 무제한이라는 타이틀을 단 무한리필이 21세기 공유 경제의 최신 버전이라면 무한리필 삽겹살집도 21세기 최첨단 공유 경제 플렛폼이라고 주장해도 된다. 고무줄 바지 입고 무한리필 식당에서 품질 낮은 고기를 허겁지겁 배 터지게 먹다 보면 차라리 좋은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우아하게 여유있게 칼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비자의 식욕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소위 전문가라는 고독한 미식가'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신이 고독한 미식가라면 박리다매로 파는 식당 때문에 정직한 맛으로 승부를 거는 작은 식당이 문을 닫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소설가 김영하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밀리의서재 광고 문구는 "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 " 이다.  책 사러 서점에 가는 행위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20세기 쇼핑 행위'라는 뉘앙스로 읽힌다.  마치 백종원이 " 요즘도 동네 골목 식당에서 식사하세요 ? 이제 더본호텔 푸드코트1)에서 식사하세요 ! "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볼에 헛바람 넣고 " 작은 독립 서점 응원합니다, 뿌잉뿌잉 ! " 했던 김영하2)가 돌변하여 " 시발, 아직도 서점에서 책 사냐? " 라며 타박이나 하고 있으니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어 오늘도 나는 달콤쌉싸래한 씀바귀.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글을 써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인기 작가'가 광고 욕심에 부나방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박리다매 플랫폼에 뛰어드니 그 꼴이 참 장관. 영화 << 해바라기 >> 에서 열연을 펼쳤던 김래원의 성대모사를 빌리자면 " 꼭 그렇게 했어야만 했냐 ? " 책을 팔아서 노후 걱정 없이 살 만큼 부를 쌓았던 인플루언서라면 그동안 자신의 문장을 따스하게 품었던 종이책과 동네 책방'에 대한 리스펙트는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  내가 이 광고를 통해서 느끼는 것은 " 예의 상당히 졸라 없음 " 이다. 마시던 우물에 침 뱉고 떠난 꼴이다. 


사람들은 전자책의 장점으로 종이책에 비해 여러 방면에서 읽기에 편리하다는 점을 뽑는다. 달리 말하면 종이책은 전자책에 비해 불편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불편하다는 것은 독서 행위에 있어서는 단점이 아니라 최대 장점이라는 점이다. 나는 종이책이 전자책에 비해 불편하기 때문에 애써 종이책을 읽는다. 








​                         


1)  백종원이 운영하는 호텔


2)  문학동네와 전속 계약을 맺었던 김영하 작가'가 최근 출판사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된 모양이다. 야구 용어를 사용하자면 FA 신분인 셈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김영하 1인 출판사(임프린트 출판사)를 차릴 것 같다는 소식이다. 김영하 출판사의 첫 책은 밀리의서재에서 종이책 특별 한정판으로 나오는 모양. 이제 그는 작가에서 출판사를 굴리는 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 신분이었을 때에는 동네 책방과의 상생을 그토록 강조하더니 사장이 되고부터는 요즘 누가 서점 가서 책 사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밀리의서재에서 출간하는 종이책은 일반 서점에 배포되지 않고 회원들에게만 판매되는 한정판이기 때문이다). 사업가 부심 쩐다. 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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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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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7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7 18: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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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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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9-12-17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김영하 정도의 파워가 있는 작가가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라는 말이 담긴 광고를 찍을 때는 생각 좀 해야 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덧붙인 글 2)번 내용을 보니 하, 그가 그럴만 했구나 싶군요. 휴....

암튼 ‘이십 세기말,‘ 이거 왠지 김영하 묘하게 까는 말 같아서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7 11:23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글 쓰면서 알게 되었네요. 2) 각주 내용 말이죠. 그러니 서점 가봐야 내 책 없어 ! 구닥다리 서점 갈 생각 말고 밀리 가입해 어성.. 뭐, 이런 시추에이션인데... 좀, 자신이 몸 담았던 곳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이십 세기말... ㅎㅎㅎㅎㅎ 아시는군요. 잠자냥 님은 그 묘한 뉘앙스를..

雨香 2019-12-17 1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밀리의 서재 광고가 자꾸 뜨는게 불편합니다.
제가 책을 돈 주고 사는 이유는 그래야 좋은 책이 계속 출간될 것이란 생각 때문인데,
과연 구독형/정액형 서비스가 그런 역할을 할지 의문입니다.
블로그성 책들이 난무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책은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한 미끼?)

처음엔 전자책이 눈에 안들어왔습니다만(전자책도 구매합니다.)
꾸역꾸역 보다 보니 이젠 좀 적응이 되었습니다.
물리적 한계(집에서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지다 보니)때문에 전자책을 종종 구입합니다만,
종이책을 읽을 때 ‘약간 앞쪽 좌측 하단에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라는
기억을 전자책에서는 느낄 수가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7 11:25   좋아요 3 | URL
맞아요. 가끔 어떤 문장을 찾아야 할 떼가 있어 종종 읽었던 책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 이 정도쯤에 그 문장이 있었지, 하면 대충 거의 맞더라고요.

하지만 전자책은 그게 불가능해요.

코끼리 2019-12-1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적입니다. 공감.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7 18: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쎄인트saint 2019-12-17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한리필 고깃집 ; 니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니?

#무한리필 밀리네 ; 니가 읽어봐야 얼마나 읽겠니?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7 18:42   좋아요 1 | URL
딱이지 않습니까 ? 일종의 무한리필이에요.

레삭매냐 2019-12-17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다 시원합니다 -

뭐 그닥 선호하는 작가가 아니다
보니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신속한
태세전환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전 죽을 때까지 종이책을 고집하렵
니다. 오늘도 헌책방 가서 몇 권
털어 왔습니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
카우와 빌헬름 켐프의 추억의 씨디
도 한 장씩 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7 18:43   좋아요 0 | URL
전 김영화 소설을 좋아하긴 하는데
이번 방식은 좀 노골적이엇씁니다. ㅎㅎ

가넷 2019-12-18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더라, 책의 미래를 말하는 다큐에 나오는 것 같던데. 재미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8 21:20   좋아요 1 | URL
그 방송에서 그의 멘트가 인상 깊었습니다. ˝ 나도 이런 곳에서 서점하고 싶다아 ~ ˝

카알벨루치 2019-12-19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이책이 얼마나 좋은데, 김영하 작가 좋아하는데 곰곰님 글읽고 “그거슨 아니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공감 만개 누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21 23:59   좋아요 1 | URL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이죠. ㅎㅎ
 
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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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문   과       권    력    :











풍문으로 들었어







네가 자초한 거야. 그 습관 고치라고 말했는데

길에서 걸으면서 책 읽는 거 말야


- 밀크맨 中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 날이었다 ㅡ 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문장치고는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드는 << 밀크맨 >> 의 첫 문장은 작가를 꿈꾸는 예비 독자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소설 도입부의 이 첫 문장 때문에 500페이지에 가까운 장편 전체에 긴장감을 주면서 끈질기게 독자의 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레이먼드 챈들러(아마도....)는 독자가 지루하다 싶으면 일단 총부터 등장시키라고 충고했는데 애나 번스는 시작부터 " 총 - 찬스 카드 " 를 꺼내든 셈이다.  위기 상황일 때 꺼내드는 것이 < 비장의 카드 > 라는 점을 감안하면 애나 번스는 과감하게 첫 문장부터 총을 꺼내들어 승부수를 띄웠으니 변칙이라면 변칙에 가깝다.  애나 번스는 축구 경기에서 경기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경기 후반부에 교체 투입되는 히든 카드 " 조커 " 를 전반전 경기 시작부터 선발 출전시킨 것이다. 이 작전은 훌륭했다. 첫 문장 덕에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왜 아무개 아들 아무개는 화장실에서 주인공 여자 가슴을 총으로 쿡쿡 찌르면서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욕을 했을까 ?  아무개 아들 아무개 씨의 진짜 이름은 아무개는 아닐 터이니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  밀크맨은 주인공과 어떤 관계일까 ?  밀크맨의 직업은 우유배달부인가, 진짜루 ??!  시작은 암살과 폭력이 난무하는 하드보일드 정치 스릴러'처럼 보였지만 읽다 보면 열여덟 소녀의 끊임없는 입말과 독백으로 이루어진 성장 소설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 " 나 " 는 가시적인 폭력 행위보다 비가시적인 소문이야말로 자신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복종하게 만드는 폭력의 한 형태'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 나 " 에 대한 소문은 성별화된 위계질서를 지지하는 지역 공동체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각색되어 유통된다. 총보다 무서운 것은 말이고 격발된 총알보다 빠른 것은 소문의 속도다. 이 소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을 모두 다 익명으로 처리했는데 익명 뒤에 숨은 소문의 폭력성을 강조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화자인 " 나 " 가 입말이라는 형식을 빌려 토해내는 또래 언어'가 시종일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생생하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읽다 보면 디스토피아 가상 소설처럼 보이지만 책을 덮고 뒤돌아서는 순간 이 세계가 한국 사회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걸으면서 책을 읽는 소녀가 꽃뱀으로 오해를 받는 가상의 사회보다 더 고약한 사회는 한 여성이 단지 브래지어 착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브래지어 착용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상한 여자'로 낙인을 찍어 기어코 살해하는 한국 사회다. 누군가는 설리의 죽음 앞에서 죄의식도 없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할지도 모른다. 네가 자초한 거야. 그 습관 고치라고 말했는데, 노브라로 걸으면서 돌아다니는 거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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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2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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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


- 사람 장소 환대 中, 김현경





210 크기의 실험실 상자 속에 쥐 8마리'가 산다. 물과 음식은 충분히 공급되고 고양이 같은 포식자가 없다 보니 쥐에게는 유토피아'다. 실험실 연구원이 질병 관리도 맡아서 늙어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을 수 있는 위험 요소는 모두 제거된,  과보호된 공간이다. 쥐 8마리로 시작한 개체 수는 2년 반 동안 2,200마리로 늘었다. 개체 수 증가는 곧 공간 부족을 야기한다. 그러나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먹이 공급은 충분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먹이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 영토를 지키는 것이다. 


마당 넓은 단독 주택에서 살던 쥐는 이제 협소 주택으로, 협소 주택에서 공동 주택으로, 공동 주택에서 반지하로, 반지하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쪽방촌으로, 쪽방촌에서 수용소로, 결국에는 수용소에서 길바닥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유토피아 같았던 " 주거 지역 " 이 어느 순간에 " 죽어 지옥 " 이 되었을 때 발생하게 되는 쥐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는 것이다. 공간 상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은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어 죽이기 시작한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좋은 장소는 더욱 치열하다. 


힘  쥐가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옆에 있는 쥐의 꼬리를 갉아먹는 동안,  또 다른 쥐는 동료의 꼬리를 갉아먹는 힘 센 쥐의 꼬리를 갉아먹는다.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그 결과, 개체 수는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존 B 칼훈의 쥐 사회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 쥐의 영토성(장소성) " 이다.  동물은 일정한 거리(공간)를 확보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주체는 객체(포식자)가 일정한 거리 안으로 침범하지 않으면 도주하지 않는다.  이것을 도주거리(안전거리)'라고 부른다. 


유토피아에서 평화롭게 살던 쥐가 서로를 물어뜯어 죽이게 되는 참사는 공간의 협소화로 인해 도주거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1).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자 부유했던 샌프란시스코가 똥 냄새 때문에 살기 힘든 도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 거리에는 똥 더미 때문에 걷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 현기증 >> 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경험한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금문교와 골든게이트 공원이 있는 도시가 << 눈먼 자들의 도시 >> 가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똥은 개똥이 아니라 사람 똥이다. 


미국인이 거리에 앉아서 똥을 싸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똥의 주범은 노숙자'다. 그렇지만 똥의 주범이 노숙자라고 해서 이 현상의 주범도 노숙자라는 말은 아니다. 주범은 따로 있다. 바로 치솟는 집값 때문이다. 엔리코 모레티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이 10% 상승할 때마다 지역 소비 물가는 6% 증가한다고 경고한다. 당연히 집값 상승은 거주부담능력(월세)을 상승시켜서 지불 능력이 없는 세입자는 결국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1명이 집을 사면 3명이 길거리 노숙자가 된다. 저학력 육체 노동자'가 노숙자가 된다는 편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또한 노숙자는 게으르다는 편견도 버리는 것이 좋다. 노숙자의 1/4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문제는 월급으로는 집세를 감당하기 버겁다는 데 있다. 노숙자 중에는 예일대를 나온 엘리트도 많다. 길거리에 차를 세워 두고 차 안에서 생활하는 어느 노숙자의 직업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집 없는 노숙자야말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영토마저 빼앗겼다는 점에서 존 칼훈의 실험 쥐를 닮았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상위 1%는 국내 전체 부동산의 55%를 보유하고 있고 상위 10%는 전체 부동산의 97.5%를 차지한다. 


반면에 소득 하위 50%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비율은 2%다. 질문이 질문에 질문에 꼬리를 문다. 이제 서울이라는 대도시도 샌프란시스코처럼 똥 더미에 오염되지는 않으리라 확신을 할 수 있을까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인분 밭'에 굴러도 마냥 이승이 좋을까 ?  재산권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영토마저 강탈하는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 << 연예가중계 >> 라는 프로그램에서 모 연예인의 부동산 재테크 순위를 나열하며 불로소득을 예찬하는 것을 보면 염치와 수치를 모르는 것은 화장실이 없어 길거리에 똥을 싸는 노숙자인지 아니면 그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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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 생활에서 사회 구성원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분과 직급을 이유로 상대방의 허락도 없이 그 사람이 설정한 고유 영토를 침범하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범죄이다. 



'제국' 미국의 집값 폭등과 노숙자 대란


 미국의 도시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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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2-14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빈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네 조상들이 이런 말을 사용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욕을 탐하지 않는 것이 깨끗한 삶이라면 반대로 말해서 물욕에(만) 집착하는 것은 누추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회 공통적인 인식이 그 시대에는 있었다고 봅니다.
예능을 잘 보지 않지만, 어떤 연예인 부인이 남편이 수백 억을 번다면서 자랑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인터넷의 실시간 이슈에 떠오르는 것을 보노라면 한숨이 나옵니다. 수익만 알뿐 수치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4 18:36   좋아요 0 | URL
올해 가기 전에 망년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