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









사진의 역사를 다룬 개론서나 영화의 역사를 다룬 개론서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다. 그는 24개의 사진기를 이용하여 달리는 말을 연속적으로 촬영하는데 성공한다. 최초의 연속 사진이다. 이 연속사진을 환등기로 영사하면 최초의 동영상이 된다.

말의 이름도 기록에 남아 있다. 이름은 샐리 가드너, 암말이다. 그렇다면 말 위에 올라탄 기수의 이름은 ? ........ 없다.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그 어떤 기록도 없다. 말 이름도 기록된 마당에 기수 이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질문은 " 알고도 모른 척하는 능청 " 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 흑인은 동물(샐리 가드너)보다 가치가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조던 필 감독이 연출한 << 놉,2022 >> 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영화적 도구로 활용하는 조던 필은 무명의 흑인 기수에게 이름을 부여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지워진 흑인 선조의 발자취를 탐험한다. 

흑인 기수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흑인에게 개인의 서사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다. 고유의 이름이 부여되면 캐릭터에 생명력이 만들어지고, 그 캐릭터의 개성과 이미지가 생성된다. 남성 중심의 백인 주류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이름 없음 ㅡ 전략은 여성에게도 적용된다. 현대의 주류 상업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벡텔 테스트를 통과한 현대 영화는 많지 않다). 그들은 다방 아가씨이거나 접대부, 여의사, 여선생, 여류시인, 동네 아줌마 그리고 피해자1,2,3,4,5,6,7,8로 등장한다. 이처럼 비주류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욕망은 주류의 욕망이다. 

그들은 최대한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를 지연시킴으로써 비주류의 존재를 투명 인간으로 취급한다. 내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를 비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뫼르소 재판 과정에서 카뮈는 “ 아랍인 한패가 담배 가게 진열장 앞에 기대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우리를 마치 돌이나 죽은 나무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라고 묘사했지만 인격체를 비인격체(돌, 나무)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의 주체는 사실 뫼르소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차용하자면 시선의 주체가 전이된 것이다. 쉬운 저잣거리 입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법. 

평소, 뫼르소는 아랍인을 돌이나 나무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기 때문에 지레짐작으로 아랍인도 자신을 비인격체로 바라볼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 이방인 >> 에서 죽은 피해자는 " 아랍인 " 이라는 단어로 스물다섯 번이나 등장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이름이 호명되지는 않는다. 카뮈가 애써 아랍인의 이름을 삭제한 이유도 어쩌면 대상을 비인격화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뫼르소의 이유 없는 살인이라는 기존의 가설은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싸움을 말리는 도중에 발생한 우발적 총격이라는 말도 그다지 설득력은 없다. 왜냐하면 우발적 격발 이후에 뫼르소는 " 굳어버린 몸뚱아리 위에 ㅡ " 네 방을 더 쏜다. 

뫼르소가 굳어버린 몸뚱아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아랍인의 죽음을 확신한 것 같은 데에도 불구하고 뫼르소는 죽어서 굳어버린 몸뚱아리 위에 네 번의 총격을 더 가한다. 죽이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이는 네 발의 총성을 두고 과연 우발적 격발이라 할 수 있을까 ? 그것은 어쩌면 잠재된 무슬림 혐오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아니었을까 ?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한 것처럼 제국주의 시대에 집필된 서구 문학 정전들은 반드시 제국주의에 대한 의식적 정당화를 내포하고 있다. << 이방인 >> 을 읽을 때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것은 뫼르소가 아니라 굳어버린 몸뚱아리로 그 어떤 발언권도 얻지 못한 채 죽어간 아랍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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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02-13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헛... 그렇군요! 우리가 기존의 프레임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깨닫기가 또 얼마나 어려운지요... ㅜㅜ

고양이라디오 2023-02-15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2023-03-14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0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4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름 없는 죽음








그 마을과 주변 마을 주민을 모두 합하면 4,000명이었다. 점령군은 이 마을과 주변 마을 주민 모두 학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학살을 감행한다. 학살자의 눈을 피해 운 좋게 생존한 사람은 단 3명뿐이었다. 늙은 노인 한 명과 젊은 청년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가 전부였다( 이 아이는 커서 작가가 된다). 죽은 사람 중에는 갓난이도 많았다. 프랑스 군은 집집마다 일일이 수색하면서 집에 숨어 있는 주민들을 보는 즉시 사살했다. 

자비는 없었다. 죽은 사람 중에는 임산부도 있었다. 말 그대로 마을 주민 섬멸 작전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군이 알제리를 점령했을 때 발생한 전쟁 범죄 중 하나'다. 이 사실 하나만 보아도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 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는 결코 나치의 전쟁 범죄에 뒤지지 않는다. 알제리 전투에서 죽은 피에 누아르(알제리에 터를 잡고 살면서 이슬람교를 지배하며 통치자로 군림했던 프랑스인(군인+민간인)을 통틀어 피에 누아르'라고 한다)는 6만 명이지만 알제리인은 150만 명이다(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그 당시 알제리 전체 인구수는 600만 명이었다). 대부분은 학살과 고문으로 인해 살해당했다. 

식민지 독립군의 독립 투쟁을 테러로 규정하는 프랑스와 제국의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 중에서 당신은 누구를 지지해야 할까 ? 자, 이제부터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하자. 피에 누아르를 대표하는 문학 작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알베르 까뮈'다. 그의 대표작 << 이방인 >> 과 << 페스트 >> 가 모두 알제리가 주요 배경이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답게 알제리 문제에 대하여 수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카뮈는 프랑스를 지지하며 알제리의 독립을 적극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머니가 알제리에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 카뮈의 출세작 << 이방인 >> 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주인공 뫼르소가 알제리 해변에서 죽인 사람은 아랍 무슬림이다. 살해 이유는 없다. 그저 태양이 눈부셨기 때문이다. 뫼르소가 쏜 총에 죽은 아랍인은 이름도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애써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살인 사건의 가해자에게는 이름을 부여하지만 정작 피해자에게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피해자의 서사는 완벽하게 발골 한 채 가해자의 서사만 덧댄 소설인 셈이다. 

우리는 이 소설의 주제를 실존적 허무주의라고 배웠지만 어쩌면 뫼릐소가 이유도 없이 충동적으로 아랍인을 죽인 것은 무슬림 혐오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백인이 이유 없이 흑인을 죽이는 것처럼 말이다. 뫼르소는 아랍인이 자신을 나무 막대기 보듯 바라보았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뫼르소가 아랍인을 보는 시선에 가깝다. 그러니까 뫼로소의 범죄 행위는 인종 혐오 범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뫼르소가 피에 누아르라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들은 식민지에서 온갖 특혜를 누리며 이슬람을 억압했으며 식민지 국민을 " 쥐새끼 " 라는 차별 용어로 불렀다.

우리가 카뮈의 << 이방인 >> 과 << 페스트 >> 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랍인의 이름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의 서재에 << 이방인 >> 과 << 페스트 >> 가 꽂혀 있다면 그 책을 꺼내서 그 소설에 등장하는 아랍인 이름을 정확히 열거한다면 내가 가진 전재산 500원을 당신에게 주겠다. 그들은 이름이 없는 무명으로 어쩌다 등장하거나 아예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한다. 소설 << 페스트 >> 에서 등장인물들이 구하고자 했던 것은 알제리 사람이 아니라 피에 누아르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 제국의 식민 통치로 고통을 받는 알제리 민중 입장에서 보면 뫼뢰소는 식민지의 지배자이자 정복자이며 약탈자이다. 그리고 인종 혐오주의자'다. 그렇기에 카뮈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고약한 경험이자 악몽이다. 한때, 그를 사랑했다. 아무렴. 어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르.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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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3-02-12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은 프랑스 파리 방식의 제목이고 <무법자>가 맞다고 한 글을 읽었어요.
곰발님, 잘 지내시나요.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주말 보내고 계시길 바래면서 인사 남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3 18:23   좋아요 1 | URL
그럭저럭 지내지요. ㅎㅎㅎ‘
늘푸른초원 님도 안녕하시기 바랍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2-1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곰발님 이야기를 들으니 느낌표가 떠오르네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3 18:25   좋아요 1 | URL
전 카뮈가 조금 불편합니다. 이방인도 그렇고 페스트ㅡ도 그렇고...

기억의집 2023-07-3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고전이 무조건 좋다는 그런 평가는 사라져야 할 것 같아요. 눈이 부셔서 사람을 죽였다는 건 어떤 정당성도 없지요. 어릴 때는 모르고 읽으며 대단한 작품이다라고 퍙가한 저도 우습긴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3-08-16 13:44   좋아요 0 | URL
저도 멋 모르고 읽었을 땐 캬, 눈이 부셔셔 죽였다니 멋저부러.. 뭐, 이런 태도였는데 가만 보니 굉장히 이상한 거예요. 이거 묻지마 살인하고 뭐가 다른가요..
 
백야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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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 카라마조프 형제들 >> 오디오북을 1시간 정도 듣는다. 열두 밤을 보냈으나 갈 길이 멀다. 이 오디오북의 녹음 시간은 무려 43시간이니 말이다. < 죄와 벌 > 을 읽고 경악했고, < 카라마조프... > 를 읽고는 대작가의 대작에 경탄했으나 정작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소품들이다. < 지하생활자의 수기 > 를 읽는 내내 지하생활자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힘들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때 발생하게 되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해졌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찌찔함을 가장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단편이라 하기에는 중편에 가까운 << 백야 >> 라는 작품도 내가 사, 사사사사사사 좋아하는 작품이다. 도스토 예프시 키가 이토록 달달한 애정 소설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누군가가 공작새의 날갯죽지 깃털로 내 심장을 살살 간질이는 것만 같다. 심장아, 나대지 마 ~ 어제는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이 연출한 << 백야,1954 >> 을 보면서 계속 욕을 했다. 내 성정머리가 왜 이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찬사를 쏟아내야 할 때 욕을 하게 된다. " 와, 시바. 개 미쳤다. 아놔, 진짜 이 작품 뭐냐. 와, 개비스콘인지 비스콘티인지 하여튼 천재. 시바. 인정한다. 비스콘티 개 부럽. 개 천재 !!!! " 

온갖 감탄을 쏟아내며 이 영화를 감상했고,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더 봤다. 걸쭉한 욕과 함께 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수많은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훌륭하다는 데 500원 건다. 이웃이여, 쩨쩨하게 500원이 뭐냐고 비웃지 마라. 내 전 재산이니 말이다. 영화 속 남자는 수줍음 많고 소심한 성격 탓에 연애 고자'로 사는 남자다(마르첼로 마트로얀니). 흙흙흙, 내가 고자라니...... 어느 날 밤. 그는 다리 위를 거닐다가 운명적 여인(마리아 쉘)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1년 전 사랑의 언약을 깨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다리 위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변심한 남자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 편지를 연애 고자에게 부탁한다. " 사랑의 전령사가 되어 주세요. " 과연 변심한 그 남자는 약속 장소에 나타날까 ? 비스콘티는 이 달달한 연애 사건을 제한된 공간 안에서 완벽하게 장악한다. 제한적인 공간 때문에 단조로울 수 있는 깊이감은 마술에 가까운 조명의 힘으로 극복한다. 무엇보다도 마리아 쉘,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 핀 목련꽃 같다. 그녀만 바라보면 언제나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이 영화에 필 받아서 다용실에 쌓아 둔 박스(책을 담은 박스들)를 모두 뜯어내서 드디어 도스토옙스키의 << 백야 >> 라는 책을 찾아내서 읽었다. 한겨울 밤에 읽는 꿈결 같은 사랑의 백일몽이라니. 좋다, 비스콘티도 천재이고, 도스토옙스키도 천재구나. 시바. 세상은 넓고 천재도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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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1-3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 책, 영화 얼른 보고 싶네요!!!

첫 문단 너무 공감갑니다. 저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도스토예프스키 형님을 처음 만났는데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마치 저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죄와 벌>은 정말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공의 방에 저도 함께 앉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대작이죠. 다시 읽으라고 하면 선뜻 손이 안갑니다만ㅎㅎㅎ

어제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를 재밌게 읽고 곰발님 생각나서 찾아왔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 짱짱!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2 07:11   좋아요 1 | URL
그렇죠 ? 저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라더라고요.,,
전 이 작품 읽으면서 아, 진짜 도스토는 천재구나. 했습니다. 원래 대작가들은 웅장하잖아요. 거대 담론으로 이끌어가는 솜씨하며.. 하지만 도스토는 정말 찌질해요. 돈돈돈, 여자여자여자.. 만날 그런 타령하는 소설인데... 위대합니다. 진짜 위대해요. 이런 작가 없을 겁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2-13 10:2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ㅎ 제가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입니다ㅎ

심리묘사에 있어 아직까지 도스토옙스키 따라가는 소설가는 못 본 거 같습니다ㅎ 내가 몰랐던 무의식까지 깊이 파고들어가서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치밀하고요ㅎㅎ

han22598 2023-04-21 0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마, 백야 바로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젓지 않되 흔드는 법 !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ㅡ 서서비행 148쪽, 금정연



작가의 문장 스타일을 보면서 가끔 작가의 술버릇을 상상하곤 한다. 꺾어 마실까 ? 흔들어서 마실까 ? 아니면 맛있게 말아서 ?? 예를 들어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의 마르셀 프르스트는 술집에 가면 왠지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 흔들지 말고 빨대로 저어주세요오오오옹. ” 그러고는 프랑스 조개과자 안주 서비스 없냐고 묻겠지. 홀짝, 홀짝, 홀짝. 참새처럼 칵테일 한 모금에 입술을 적시며 조개과자 반 쪽. 그는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면서 조개과자에 대해 장장 세 시간에 걸쳐 혼잣말을 할 것이다. 뭐, 조개과자를 앞에 둔 한 남자의 내면 고백이라고나 할까.


반면에 << 보봐리 부인 >> 의 플로베르는 파티 모임에 참석하여 얼음과 각종 과일을 둥둥 띄운, 대형 유리그릇에 담긴 과실주를 커다란 국자로 휘저으며 퍼마실 것 같다. 엄지와 검지로 체리를 건져 올리고는 음, 맛있다해, 맛있다해. 띵호와~ 땅호와 ~ 프랑스 사람이 비단 장수 왕 서방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글이 사실적 근거는 조또, 아니 1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의 느낌이 시냅스를 타고 섹시한 등골을 지나 여름 장마철 북상하는 태풍의 이동 경로처럼 빠르게 5번 척추와 6번 척추를 강타한 후 나의 뇌하수체에 삼 파장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아, 됐고.


여기 한 사내가 있다. 바의 구석진 곳에 앉은 그는 말이 없다. 바텐더가 묻는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사내는 말한다. 소삼맥칠(소주3 맥주7), 젓지 말고 흔들어서 묻지 말고 따블로 !! 이 사내의 이름은 조지 오웰.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여성. 그에게로 다가간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챙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여자가 담배연기를 남자의 얼굴에 냅다 쏟아내며 수작을 건다. “ 어머, 우리 귀여운 말라깽이 영국 아저씨래 오데로 가는 길이실까나 ? ” 사내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 위건 부두 가는 길(1936)이오. ” 바텐더는 여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정보를 흘린다. “ 버마 시절(1934), 경찰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얼마 전에 그만 뒀디요. 그 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1933)을 하시었습네다. ” 여자는 영국 남자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소맥을 젓지 않고 흔들어 마신 남자는 짖지 않고 (꼬리나) 흔드는 푸들은 되고 싶지 않았소 _ 라고 대답한다. 점점, 그 남자가 사용하는 하드보일드한 랭귀지의 조탁 능력과 피 끓는 웜바디에 빨려드는 여자. 여자는 남자에게 정열의 빨간 추파춥스를 던진다. 무림고수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치, 치치치명적 필살기. “ 오늘 저와 뜨밤 어때요? ” 남자는 냉정하다. “ 우린 서로 어울리지 않아(하이스미스 소설 제목) ” 민망한 여자, 신경질적이다. “ 어머, 나 이대 나온 여자야아아악 !!! 겁 없이 까칠하시다. 아니, 까칠해서 겁이 없나. 호호호.” 남자는 술에 취한 듯 혼잣말을 한다. “ 위선 말고 오로지 직선 !! ” 


조지 오웰의 책 세 권(위건 부두로 가는 길, 버마 시절, 나는 왜 쓰는가) 속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그는 이런 모습이었다. 그는 핵심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지만 조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다. 또한 진지하지만 정색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오웰의 문장은 감성에 젖지 않되 마음을 흔들 줄 안다. 전형적인 내유외강의 문장이다. 앗, 외유내강이었던가. 이런 그가 달달한 칵테일이나 홀짝홀짝 마실 것 같지는 않다. 공업용 알코올이 그대의 오장육부를 녹이더라도 잔을 꺾는 법은 없으리라. 그는 무조건 스트레이트 원 샷 풀 배팅하는 남자. 허억,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으으. 물론 이것은 오로지 나만의 느낌적 느낌의 느낌이다. 느낌..... 아니까 !


명료한 언어의 적은 위선이라고 강조했던 오웰은 << 나는 왜 쓰는가 >>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중략)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문장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20세기 영국 작가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작가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조지 오웰을 뽑고 싶다. 제국의 개가 되어 불의에 짖지 않고 (꼬리나) 흔드는 일을 거부했던 조지 오웰은 내게 “ 감성에 젖지 않되 마음을 흔드는 방법 ”을 가르쳐준 인물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소맥을 탈 때 (젓가락으로) 젓지 않되 (맥주잔만) 흔들어서 맛있게 주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웽?! 캬, 이 맛에 소맥을 만다. 이게 다 오웰 덕분이다. 


그는 문학사에서 언과 행이 완벽하게 일치했던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평소에는 입 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도 정작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다가도 느닷없이 이빨을 드러내기 마련. 프랑스적인 너무나 프랑스적인 카뮈는 죽을 때까지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했다. 제국의 시민이었던 그의 변명이 명불허전이다. 프랑스 제국으로부터의 알제리 식민지 독립이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엄마의 안녕이오, 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카뮈에게 실망했다. 엄마가 죽었다, 라는 문장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그가 피식민지 국가의 자유보다 우리 엄마 개인의 안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마마보이였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이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 시절을 경험했던 한국인으로서 솔직히 카뮈에게 죽빵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죽은 알제리 사람은 1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주로 프랑스 군경이 자행한 고문과 집단 학살의 결과였다. 고다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마오이스트라고 부르고 철저하게 사회주의 노선을 주장하며 제 3세계 식민지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외쳤던 그는 정작 베니스 영화제에서 알제리의 독립 투쟁을 그린 걸작 << 알제리 전투 >> 가 상영되자 항의 표시로 그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 영화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메시지인 셈이다. 그들은 결정적 순간에는 제국주의 승냥이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제국주의의 위선을 낱낱이 고발했던 오웰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을 한 것이다. 오웰은 1950년 1월 21일,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조지 오웰을 추천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묻지 말고 오웰로 가. 이유는 없어. 오웰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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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1-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근데 1984읽고 조금 오웰을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1-19 11:41   좋아요 0 | URL
오, 반가워요. 기억 님. 1984에 대한 다른 생각이 궁금하네요.

기억의집 2023-01-20 11:26   좋아요 2 | URL
저도 오디오북으로 1984 다시 들었는데 여성을 묘사하는 부분이 너무 실망해서.. 이게 젊었을 때는 그걸 못 느꼈는데. 첫장면은 솔직히 강간 시도거든요. 범죄고.. 만약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 다음으로 그건 범죄다라고 인식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1984의 첫장면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었을 건데.. 명백히 범죄자의 마인드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오늘 내려가서 바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2 07:14   좋아요 0 | URL
헉, 그래요. 전 이 작품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생각이 나지 않넹ㅅ,
그 당시에는 확실히 여성에 대한 인식이 성립되지 않았었죠.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읽어야겠네요.
댓글 늘 늦어 미안해요. 제가 알라딘 방문이 뜸해서요. 건강하시죠 ?

기억의집 2023-02-12 11:14   좋아요 0 | URL
네~ 건강 한 것 같은데, 이번에 장염 걸려서 엄청 고생했어요. 장염인데 오한과 근육통과 헛구역질때문에… 감기인 줄 알고 오인해서… 아무래도 저 때 여성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야할 개인으로 보기엔 힘들었을 것 같긴 해요. 유럽이 여성참정권도 늦게 도입돼서.. 우리 나라가 생각보다 근대화나 현대화 과정이 빠른 나라더라고요!! 곰발님도 건강하세요!!! 늦는 답변에는 그렇게 신경쓰지 않어요!!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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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객관화라는 환상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던져보자. " 사실적 ㅡ " 와 " 사실 ㅡ " 은 동일한 말일까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결론을 말하자면 " 사실적 표현 ㅡ "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유사성)을 했다는 뜻이지,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공부하고 나서 8시에 술집에서 소주를 급하게 병나발 분 후 식당 종업원과 싸운다. 그리고 9시에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두고 "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도서관에 남아 공부했다. 그는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 라고 했을 때 이 문장은 사실적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 


사실을 나열하는 것과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것은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혼동한다. 책(이나 영화) 읽고 나서 잘난 척하기로 유명한 내가 1년 전에 에니 아르노의 << 단순한 열정 >> 이라는 책을 읽고도 그동안 안 읽은 척했던 이유는 이 소설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웃들이 이 소설을 극찬했던 터라 똥물을 붓고 싶지 않았던 것. 그래서 뒤늦게 느닷없이 고백한다. " 난 이 책, 존나 구렸어.... " 


이 소설을 소개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멘트를 친다. " 에니 아르노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 다시 말해서 에니 아르노는 " 사실적 ㅡ " 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제거하고 " 사실 " 만을 적시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 문학에서 유행하는 오토 픽션1)의 대가라는 것. 오, 마이, 갓. 지저스, 크리스마스, 이브다야.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사실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 단순한 열정 >> 은 자전 소설이 아니라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에 100% 솔직할 수 없다. 완벽한 자기객관화란 허상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종류의 오토 픽션에 대하여 시큰둥한 편이다. 일단, 재미가 없다. 자기 스스로를 굉장히 솔직하다고 믿고 있는(착각하고 있는) 작가에게 조금 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에세이로써는 훌륭할지는 모르지만 문학으로써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나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야, 라고 자랑하는 작가보다는 차라리 내 구라에 속았지롱, 이라고 말하는 스티븐 킹이 낫다. 소설의 궁극적 재미는 뻥이다.







1) 내가 모 이웃에게 남긴 댓글 : 라면을 끓였다고 했을 때 보통 그것을 " 자신이 만든 요리 " 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식품 공장에서 만든 상품에 불과하니까요. 스프를 넣고 면발을 익혔다고 해서(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단순히 음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만든 요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실이라는 재료 몇 개를 정직하게 이어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문학적 문장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면이 요리가 되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 고유의 레시피가 요리에 반영이 되어야만 합니다. 라면을 끓일 때 콩나물도 넣고, 전복도 넣고, 재료를 넣는 순서도 독창적이어야 아무개표 요리가 되죠. 저는 이 과정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라는 재료(면발, 스프)에 덧대어 콩나물,전복, 조미료 첨가, 불의 세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적재적소에 적용할 때 좋욘 문학적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오토 픽션이라는 게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토 픽션 주장하면서 트위터에서 쓰던 글 무단으로 인용해서 작품이랍시고 내놓는 작가들 보면 아 이 인간들은 라면을 끓이고는 " 아, 나 오늘 집에서 열심히 라면 요리를 만들어서 먹었어. "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웃기더라고요. 작가라면 적어도 음식과 요리의 차이는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멍청아, 그것은 너의 요리가 아니라 농심에서 만든 신라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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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