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혐오 발언을 생산한다 :
다음 침공은 어디 ?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자는 멍청하다고 배운다. 일일 드라마 속 주변부 여성 캐릭터를 분석하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 속 여성은 눈치가 없고, 수다스러우며, 욕심이 많고, 아둔해서 현명한 남편으로부터 핀잔을 받기 일쑤'다.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아내를 제지하는 역할은 남편 몫이다. " 내 아내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 이런 시츄 ~
드라마에서 남자는 여자에 비해 똑똑하고 예의바른 편이다. 없다고 무시하는 쪽은 금시계 찬 사장님보다는 알반지 낀 사모님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역을 맡았던 수많은 중년 여성 탤런트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뿐인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주인공은 캔디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남성 의존형 캐릭터'다. 캔디형 캐릭터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상대역은 대부분 백마 탄 왕자'다. 백마 탄 왕자'가 캔디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곱창이 필요하다. 태어나서 곱창 한 번 먹어본 적 없는 왕자는 주저하는 마음과는 달리 젓가락질은 주저하지 않는다. 한때 똥물이 흐르던 곱창은 캔디와 백마를 이어주는 밴드가 된다.
이런 미역 줄거리 같은 드라마는 내용이 뻔해서 왕자의 신분이 노출되기 마련. 여자는 신분을 속이고 서민 행세를 했던 재벌 2세'에게 " 날 가지고 놀지 마세요 ! " 라고 계급 의식을 드러내며 저항하지만 결국 재벌 2세는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것으로 끝난다. 그토록 당당하고 독립적이던 여자는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심순애로 변한다.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만 사장님 사모에게 없다고 무시받던 그녀는 결국 사장님 사모가 된다는, 이런 미역 줄거리 ~ 이 편견은 고스란히 김치녀, 된장녀, 개똥녀로 투사된다. 이들은 전체 중 일부이지만 한국 사회는 부분을 전체로 받아들인다. 주디스 버틀러의 말을 살짝 비틀자면 시스템이 혐오를 생산한다.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장면은 모 알라디너의 " 나야 좋지, 쌍년 " 이라는 말이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상대 여성이 성적으로 호감을 보이자 혼잣말로 내뱉은 말이다. 성 경험 혹은 성에 적극적인 여성을 쌍년 취급하는 건축학개론형 남성은 흔하디 흔한 풍경이어서 새삼 놀랄 일은 아니지만 정작 내가 놀랐던 지점은 욕 자체가 아니라 여성 회원이 많은 알라딘에서조차 눈치 볼 필요 없이 지껄일 수 있는 남성의 자유에 있었다. 여성은 때와 장소에 따라 남성 눈치를 보지만 남성은 때와 장소에 관계 없이 여성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남성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영화 << 건축학개론 >> 은 남자 주인공은 여자가 선배와 잤다고 믿는 순간 쌍년 취급을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한 데에는 남성 관객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분석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멜로 영화는 여성 관객들이 주요 소비층인데 반해 << 건축학개론 >> 은 특이하게도 남성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남성 관객의 전폭적인 지지가 공감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한국 남성은 남자 주인공의 쌍년론에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 << 다음 침공은 어디 >> 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여성이 정치/사회 영역에 많이 진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이 다큐를 보고 되묻곤 한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남성 대통령일 때보다 최악인 이유가 무엇인가 _ 라고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해 할라 토마스도티어 전 아이슬란드 상공회의소장은 말한다. " 국제적인 연구에 의하면 이사회에 여성이 3명 이상이 되면 문화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1명이나 2명은 안 돼요. 왜냐면 1명은 형식적이고 2명은 소수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3명이 되면 갑자기 집단 역학이 변합니다. 대화 방법이나 토론 주제가 변하죠. 테이블 주위에 여자가 많이 있으면 균형이 깨진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어요. 모든 이해 당사자들에 대해 더 많이 묻기 시작합니다. 전 이걸 별개의 도덕관과 윤리 나침반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오늘날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이런 것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사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여성이 정치 / 사회 영역에서 많이 진출할수록 지금의 한국 정치 / 사회 문화는 바뀔 수 있다. 1975는 아이슬랜드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총파업이 진행되었다. < 여성 파업 > 이었다. 그중 90%는 직업이 없는 여성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거의 모든 시스템이 멈췄다. " 집구석에 쳐박혀서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여성 " 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작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학교가 문을 닫고, 기업이 문을 닫고, 버스가 문을 닫았다. 현재 아이슬랜드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이며 여성이 가장 행복한 나라이기도 하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사회,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 어른보다 아이가 행복한 사회, 남성보다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건강한 사회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