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달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 미야자와 리에 외 출연 / 올라잇픽쳐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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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여자







가끔 배우 한 명이 관객 멱살을 하드캐리해서 끌고 가는 영화가 있다. 배우 전도연이 이 진상 짓을 잘한다. 감독 필요 없어요, 연출 필요 없어요, 조연 필요 없어요. 내가 멱살 잡고 끌고 갈게요. 난, 소중하니까. 히힝. 이런 경우는 답 없다. 감독은 괄약근 풀고 배우가 하는 짓을 너그럽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다 된 밥에 숟가락 얹는. << 종이달 >> 의 미야자와 리에도 그런 경우다.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혼신의 힘을 발휘한 필생의 연기라고나 할까. " 간바레, 미야자와 리에 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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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주인공 리카(미야자와 리에 분)는 10년 차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은행에서 경단녀 우대라는 구인 광고를 보고 입사한 계약직 직원이다. 그녀는 주로 노년층 고객 편의를 위해 가정 방문하여 은행 업무를 보는 일을 담당이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자신이 맡은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직업에 대한 성취욕은 없다. 그녀는 20년이 넘는 업무 경력을 가지고 있는 직장 선배(고바야시 사토미 분)의 별 볼 일 없는 직장 생활을 보면 자신의 미래를 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능력이 좋아도 여자에게는 승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나이가 들면 한직으로 밀려나 퇴사 압박을 받는다는 사실. 이때 리카 앞에 나타난 것은 잘생긴 20대 대학생 청년이다. 모든 욕망을 거세한 채 살았던 그녀 앞에 나타는 청년과 보낸 뜨밤은 상상하지도 못한 결말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무한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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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의 티라면 무미건조한 삶에 딱성냥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불싸지르는 청년 역을 담당한 배우가 매력이 없기는 하나( : 내가 보기에는 매력이 1도 없다) 그 모든 것은 미야자와 리에가 커버한다. 그녀는 애인과의 호화스러운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 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불행은 시작한다. 최고급 호텔에서 3박 4일 휴가를 보내는가 하면, 애인에게 명품 시계 필립파텍을 선물하기도 한다. 함께 살 집도 장만한다. 이 모든 돈은 고객의 돈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 젊은 청년과 바람난 유부녀가 벌인 은행 공금 횡령 사건 "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간단한 한 줄 요약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오묘한 지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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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증식한다. 자신의 욕망이 불온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통을 끊고 싶지만 욕망이란 아메바 몸통과 같아서 끊겨진다기보다는 새로운 개체로 증식한다. 남편에게서는 채울 수 없는 육체적 욕망은 젊은 애인과의 불륜으로 채우는 것에 만족하다가 이내 금전적 욕망으로 채우게 된다. 하지만 훔친 돈으로 재현한 욕망들은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미야자와 리에는 리카의 열성적이며 극성적인 불온을 연기하지만 우아하며 단호하다. 막나가는 여자 캐릭터이지만 우아하다. 다시 말해서 리카라는 캐릭터는 우아하지만 막나간다. 관객은 이 지점에서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이 재수없는 여자를 응원하게 된다. 그녀각 은행 통유리를 깨고 도망칠 때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외쳤다. " 리카, 뛰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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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치, 치치치치치명적인 매력이다. 뜨거울 때 공허한 표정으로 열기를 식힐 줄 아는 배우와 불성실하고 불쾌할 수 있는 캐릭터를 관객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한 감독의 힘이다. 욕망과 생활이 충돌할 때 발생하게 되는 좌절을 감독은 탁월한 연출력으로 재현하고 있다. 무기력한 진짜 생활을 가짜 욕망이 집어삼킨다고 해서 무기력한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욕망이란 아메바의 몸뚱이와 같아서 버려진 잘린 몸뚱이에서 머리가 자라고 꼬리가 자라서 되돌아온다. 진짜는 가짜를 이길 수 있지만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다. 욕망은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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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 종이 달 " 은 가족이나 연인들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 가짜 달이 그려진 배경 앞에서 찍었다 하여 생겨난 표현으로 행복했던 한 때를 의미한다고 한다.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종이 화폐로 대표되는 가짜 욕망과 사진관에 걸린 종이 달로 대표되는 진짜 행복. 가짜 욕망으로는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 진짜 달과 종이 달의 차이는 빛의 유무일 것이다. 빛이 없는 허영(가짜)은 음영(그림자)조차 만들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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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풀슬립 700장 넘버링 한정판 - 엽서(5종)
팀 밀란츠 감독, 킬리언 머피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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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mall, Good Thing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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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아일랜드, 어느 작은 마을에서 석탄 보급소를 운영하는 빌 펄롱(킬리언 머피 분)은 아내와 다섯 딸을 둔 중년 남성이다. 80년대는 유럽에서 가장 빈국이었던 아일랜드에 설상가상 경제 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일랜드 국민들은 빵이 없어 기아에 허덕이고 석탄과 땔감이 없는 이들은 추위에 몸을 떨었다. 빌 펄롱은 누구보다도 성실했기에 그나마 굶주림과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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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색이 깊고 말이 없는 조용한 남자라는 점에서 스토너1)를 닮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난한 이웃에게 연민을 보낼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세면대에서 석탄 배달 일로 더러워진 검은 손을 씻으면서도 가정의 평온과 안온이 신의 은총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선의와 신의를 시험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수녀원에 강제로 감금된 소녀의 간절한 " 외침 " 을 듣고 그 호소에 응답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소녀의 외침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할 것인가 ? 여기에는 수녀원과 지역 마을을 둘러싼 복잡한 지정학적 관계가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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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수녀원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이 수녀원은 매춘 여성, 미혼모, 고아 소녀를 강제로 입감 시켜서 노동력 착취와 인권 유린을 했던 곳이다. 강제 노역은 물론이거니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미혼모의 아이들은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 팔렸으며, 성폭행과 살인이 수시로 발생하곤 했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지만 몇몇 장면으로 그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수녀원에서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지역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수녀원과 지역 주민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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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배달을 하는 빌 펄롱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미혼모 아들로 태어나 마을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그는 집주인의 보살핌과 일꾼 네드로부터 조건 없는 타자의 환대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들의 친절과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평온과 안온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1) 되는 자신의 결심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지만 양심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바로 그 결심을 시작하는 데에서 끝이 난다.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펄롱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의 고뇌하는 얼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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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속 캐릭터를 연기한다기보다는 펄롱이라는 인물에 대한 존중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 연기 " 를 하는 것이 아니라 " 실천 " 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어떤 숭고함을 닮았다. 펄롱이 선을 대표한다면 악을 대표하는 수녀원장 역을 연기한 에밀리 왓슨의 절제된 현현도 탁월하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악에도 품격이 있다면 에밀리 왓슨이 연기한 수녀원장에게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이지 않지만 교묘하고 적나라하다. 이 모든 것은 배우의 힘이다.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 스토너 >> 와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을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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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 스토너 > 주인공 이름

2) 레이몬드 카버 단편 소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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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앤씨
엘렘 클리모프 감독, 알렉세이 크라브첸코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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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기가에 앞서

이 글은 허세 가득한 동네 형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컨셉으로 쓴 글이다. 약간의 독자 모독과 약간의 독설과 약간의 쿨병이 섞인 지랄병맛체 영화 리뷰'다. 비록 쿨병 작렬하는 지랄병맛체로 쓴 고약한 리뷰이나 영화만큼은 최고 수준의 전쟁 영화라는 점은 명백하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서 밥을 먹는 심정으로 눈치 보면서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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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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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 지옥의 묵시록 >> 봤나1) ? 영화 좀 본다는 새끼들이 항상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영화지. 그런데 난 말이야. 이 영화가 상당히 역겹단 말이지. 몇 번을 봤는 데도 정말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쳐.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잖아. 내용이 굉장히 철학적이지. 철학적이라는 게 뭐냐 ? 에휴. 내가 너희들 수준을 너무 높게 봤구나. 닥쳐 이 새끼들아. 궁시렁거리지 말고. 형아가 설명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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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의 묵시록 >> 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를 찾지. 영화 보다 보면 굉장히 사유적이잖아. 그런데 이 형아는 이 꼬라지가 굉장히 역겹다는 거야. 미국 새끼들, 솔까말 얘기해 보자. 전쟁 범죄자들이잖아.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서는 고뇌하는 지식인 흉내를 낸단 말이야. 그 누구냐. 커트 대령. 이 새끼. 말론 브란도가 뚱뙈지로 나오잖아.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어. 영화에서 보면 말론 브란드는 절대 악이자 순수 악으로 등장하잖아. 그런데 말론 브란드는 너무 뚱뚱해서 그냥 초고도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 환자처럼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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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도 엉망이야. 호러, 호러, 호러 _ 이 지랄하는데, 아니 이게 대사야 ? 잤니, 잤어, 잤냐구 !! 영화는 엉터리인데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원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음, 저 인물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군. 음, 저 인간은 전쟁의 야만적 폭력성을 의미해. 앗, 저 고장난 시계는 이성적 세계가 멈추고 야만의 시간이 돌아왔다는 은유가 아닐까 ? 하. 이런 개지랄. 에라이 ~ 얼핏 보기에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반성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그냥 베트남 전쟁은 그럴싸한 배경일 뿐, 사실은 허세를 부리고 싶은 거야.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포는 진짜 공포가 아니라 멋진 공포야. 지적 공포, 쿨한 공포. 재수없는 공갈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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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진짜 전쟁 영화 한 편 소개할게. 영화 << 컴 앤 씨 >> 추천한다. 꼭 봐라. 이 영화의 특징이 뭔 줄 아냐 ? 이 영화는 << 지옥의 묵시록 >> 과는 달리 깊은 사유를 하면서 이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왜냐하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거든. 이 영화 보면서 이 캐릭터는 무엇은 상징하고 저 장면은 무엇을 은유한다는 식의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어. 진짜 공포는 생각을 마비시키거든. 정말 이 영화를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전쟁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진행이 돼. 생각은 사치야. 바로 내 눈 앞에서 죽음과 살육이 진행되는데 그곳에서 무슨 사유를 한다는 거야. 이 영화는 마치 소년이 셀카봉 들고 학살을 라이브로 송출하는 유튜브 채널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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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여서 생각 없이 끝까지 압도적 공포 속에서 영화를 지켜보다가 영화가 끝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생각을 하게 돼. 마치 방학이 끝나는 날 하루 전에 방학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학생처럼 말이야. 이 영화 속 공포는 멋지지 않아. 사람을 질리게 만들거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전쟁을 볼거리로 만든 자극적인 작품이라거나 전형적인 러시아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욕을 하지만...... 하, 시부랄놈들. 알고 좀 시부러. 이 영화가 단순히 러시아를 옹호하는 프로파간다 영화였다면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8년 내내 소련 당국의 검열과 싸우지는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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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독일군에 대해서 자비 없이 잔혹하게 묘사했지만 그렇다고 소련군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도 않아. 오히려 잔인할 정도로 냉소적이지. 나중에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이 안 가. 이 영화를 끝으로 감독은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하게 돼. 이래도 국가 선동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욕을 할래 ? 내가 본 전쟁 영화 가운데 << 컴 앤 씨 >> 는 라리사 세피트코 감독이 연출한 << 고양, 1977 >> 과 함께 최고의 걸작 전쟁 영화라고 자부할 수 있어. 재미있는 사실은 두 감독이 부부라는 사실이야. 이 영화에 비하면 지옥의 묵시록, 플레툰,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는 개 같은 영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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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국주의 할리우드 영화 속 공포는 예뻐. 존나 예뻐. 뭔가 근사해. 영화 보고 나면 관객인 내가 꽤 근사하고 선량한 도덕주의자가 된 것 같잖아. 뭐, 쉰들러 리스트가 너의 인생 영화라고 ? 그러니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 달라고 ?? 조까라마이싱이닷. 됐고. 이 영화 한번 봐봐봐봐, 꼭 !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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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면서 내린 결론은 " 무지의 폭력 " 이었습니다. 전쟁 범죄자 아이히만은 도덕성이 결여되었다기보다는 무지無知,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무지막지(無知莫知)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내린 최종 결론은 " 가장 질이 나쁜 악은 무지에서 태어난다 " 였습니다. 제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 지옥의 묵시록 >> 을 비판하는 이유는 악을 탐구한다는 미명 아래 악을 영웅시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커츠 대령이라는 절대 악을 찾아, 그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맡은 윌러드 대위의 모험담을 담은 영화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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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영웅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오디세이 식의 모험극에 불과합니다. 전쟁의 화신인 커츠 대령은 어둠 속에서 사유의 감옥에 갇힙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군인보다는 철학자에 가깝습니다. 그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는 점에서 아이히만과는 정반대인 캐릭터입니다. 감독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악의 본성을 탐구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가 싸질러놓은 것은 악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미치광이 커츠 대령은 좆같지만 왠지 멋있어 ! _ 영화는 줄곧 그런 태도를 유지합니다. 전범 국가의 자기 반성은커녕 자아 성찰에 가깝습니다. 제국주의자 특유의 뻔뻔한 태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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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사유의 늪에 빠진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내뱉는 대사에서 영화의 주제를 찾으려 애를 쓰지만, 말론 브란도의 대사는 아무 의미 없는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걸을 때마다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뚱뚱한 몸으로 촬영장에 나타난 그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습니다. 대사 한 줄 외우지도 못했고, 결국 감독은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 그의 즉흥적 혼잣말을 화면에 담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이성을 상실한 광기와 초현실적인 악몽을 재현하려는 목표를 이루었다기보다는 중간에 자포자기한 영화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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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실패한 영화입니다. 반면에 엘렘 클리모프 감독이 연출한 전쟁 영화 << 컴 앤 씨, 1985 >> 는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영화 << 지옥의 묵시록 >> 이 월러드 대위의 우아한 오디세이 여행이라면 << 컴 앤 씨 >> 에서 소년이 그저 정신없이 떠도는 영화입니다. 목적지도 없고, 서사도 없고, 플롯도 없습니다. 또한 영웅도 없고 희생도 없으며 교훈도 없습니다. 적과 싸우면서 민중을 고무하는 감동적인 연설도 없습니다. 위안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오직 압도적인 죽음만 병열로 나열될 뿐입니다. 끝으로 희망조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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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자칫 선동 영화(프로파간다)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 지옥의 묵시록 >> 이야말로 비열하고 졸렬한 선동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은 겉으로는 반전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영웅주의에 대한 찬양입니다. 전쟁이라는 지옥도에 과도한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고 그 서사에 구원과 희생을 담는 행위야말로 선동적이입다. << 지옥의 묵시록 >> 를 보고 나면 남는 것은 반전 메시지가 아니라 황홀한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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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풀슬립 일반판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크리스티안 프리델 외 출연 / 디온(The On)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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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죄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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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인 독일군 장교 루돌프 회스 아내 헤트비히 회스는 어머니를 집으로 초대한다. 자신이 꾸민 그림 같은 집을 어머니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긍심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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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이만큼 자수성가했다는( : 어머니는 유대인 집 하녀였다), 보통 사람의 뿌듯함이 엿보인다. 이 뿌듯함에는 소박한 정취와 건강한 생의 의지'마저 느껴져 인간적이다. 부유한 유대인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어머니 또한 성공한 딸의 행복 앞에서 행복하다. 오, 행복. 행복. 행복하여라. 딸은 어머니를 모시고 정원의 높은 담을 지나가고 있다. 담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각장이다. 일반 가정집 천장 높이인 높은 담 너머로 붉은 지붕 소각장의 굴뚝이 보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의 안온과 死의 절멸이 교차하고 있다. 아내는 행복한 미래를 설계한다. 내년에는 더 아름다운 정원을 꾸밀 거예요. 엄마, 나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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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회스 가족이 설계한 생의 의지 옆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써 생의 의지다. 죄수이기에 죄수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죄수복을 입었기에 죄수가 된 수용자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로 지옥을 견딘다. 딸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서 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수용자들에게는 하루에 만 명씩 소각되는 장소의 벽이니깐 말이다. 딸은 엄마에게 집이 맘에 들어요 ? _ 라고 묻지만 담은 가족의 죄를 증명하는 증거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수용소 담을 가릴려고 포도 덩굴을 잔뜩 심어 뒀어요. 죽음의 수용소 담벼락을 예수의 피(포도)로 은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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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내가 뽑은 가장 중요한 시퀸스다. 감독의 과시적인 허세( :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에서 쉰들리리스트 이후 가장 훌륭한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평가했는데 유감스럽게도 < 존오브인터레스트 > 는 쉰들러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라 그냥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다. 스필버그는 < 쉰들러 리스트 > 에서 온갖 기교를 자랑하며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강조했지만 그 화려한 기교에는 어딘지 모를 지랄 같은 감독의 과시적 허세가 엿보여서 불쾌했다. 흑백 화면 속에 붉은 옷을 입은 소녀만 컬러로 보여주는 장면은 촌스러웠다)도 없고, 재난의 전시도 없고, 노골적인 메시지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하다.


또한 서사보다 스타일이 강조되지만 그 형식 때문에 오히려 서사에 깊이를 더한다. 일반적인 영화는 관객의 " 심리적 몰입(감정 이입) " 을 유도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과 인물 간 거리 두기를 통해서 " 심미적 거리 " 를 유지하는 소격 효과(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를 강조한다. 형식이 서사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주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독창적인 걸작이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1)는 홀로코스트라는 " 지옥 " 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옥과 함께 천국( 아내 : " 17살부터 꿈만 꿨던 삶을 마침내 이뤘어 ! 애들도 건강하고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해 해 ! " ) 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레베카 솔닛은 << 이 폐허를 응시하라 >> 에서 낙원은 지옥 속에서 출현한다( 지옥 속에 출현하는 낙원 A Paradise Built in Hell )고 희망을 품고 말했는데 이 말을 뒤집어서 절망적으로 말하자면 : 이 영화에서 지옥은 낙원 속에서 출현한다. 영화에서 제노사이드 장면은 오로지 생활 소음2)으로만 묘사된다. 시각은 철저하게 배제된 채 희미한 청각으로 재현된 학살은 담 너머 일상 생활 속으로 침투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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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활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반대로 의미 없는 생활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현병의 증후다). 지옥은 천국 속에서 출현하듯이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사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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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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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함 밤하늘 아래 루돌프 회스 가족 가정집 야외 정원에서 휴식을 즐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압적이다. 가족의 야회 장면은 캄캄한 밤하늘의 압도적인 비율 때문에 짓눌려 있다. 이 포스터는 왜 기괴해 보일까. 아시는 분 ? 정답은 별이 없기 때문이다. " 별 볼 일 없다 " 라는 표현을 영어로 번역하면 " 디제스터 disaster " 다. 참사, 재난, 엄청난 불행이란 뜻인데 이 단어는 별과 연관이 있다. 이 단어( = disaster)는 별( : astro)이 없는( : dis-) 상태에서 유래한 말이다. 화산 폭발이나 대형 자연 화재 때 검은 재가 하늘을 덮쳐 밤하늘의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별이 없는 밤하늘은 지옥이다. 철학자 고병권은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철학적인 영화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 내가 작년에 본 최고의 영화 포스터 디자인이다.



2)

영화 속 한 장면. 남편은 퇴근이 늦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폰 너머로 아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 나 지금 야근 중이야. 미리 전화 못해서 미안. 회사에 급한 일이어서. " 남편은 직감적으로 아내가 외간 남자와 모텔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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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의심이 가는 한 남자를 떠올린다. 친구다. 그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왜 ? 지금 내 아내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테니까.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다. 받지 않는다. 남편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남편의 직업은 사운드 슈퍼바이저(음향 감독)다. 그는 아내의 통화음이 5평 내외의 닫힌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작은 공간에서 울리는 진동과 넓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진동의 차이를 그는 알고 있다. 또한 아내와의 통화음에는 일상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생활 소음이 제거되어 있다. 마치 후시 녹음을 위해 녹음실에서 대사만 녹음한 테이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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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생활 소음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생활 기기의 기계음,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귀뚜리마 소리 등등 x100. 생활 소음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것 같지만 막상 생활 소음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평화롭기보다는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생활 소음은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이것을 백색 소음ㅡ 화이트 노이즈라고 한다. 남편이 아내의 외도를 확신했던 것은 대사(아내의)만 있고 화이트 노이즈(생활 소음)은 제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텔 방이 일종의 녹음실 부스 역할을 했던 것.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생활 소음을 따로 녹음해서 대사와 믹싱을 한다. 이것을 영화 용어로 엠비언트 사운드라고 한다. 이 일은 영화 스탭 중에서 사운드 슈퍼바이저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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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소음은 세뇌의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돈 드릴로의 눈부신 걸작 소설 << 화이트 노이즈 >> 에서 주인공 가족은 미디어 속에서 송출되는 메시지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무작위적으로 적용되며, 무의식적으로 세뇌된다. 그들은 불안의 방식을 쇼핑으로 해소한다. 미디어는 명령하고 인간은 좀비처럼 따른다.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이 연출한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은 인공적인 기괴한 음향과 생활 소음을 적극 활용하여 영화의 주제를 부각한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 산다. 유리 온실이 있고 수영장도 있다.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꽃과 나무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넝쿨은 집을 둘러싼 높은 담을 초록으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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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은 루돌프 회스의 가정집 담이면서 동시에 하루에 몇 만 명을 소각시킬 수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담이기도 하다. 관객은 수용소 안의 유대인을 볼 수는 없지만 가정집 담 너머로 들리는 생활 소음만 희미하게 듣는다. 이 생활 소음이 무엇인지 현대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시각은 제거된 채 희미하게 청각만으로 침투한 소리의 홀로코스트를 지켜보고 있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익숙한 소음이다. 그들은 하루에 4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소각로에서 불에 태워질 때 나는 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단잠을 잔다. 누군가에게는 제노사운드(제노사이드+사운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안온한 ASMR이다. 이 얼마나 몸서리 쳐질 정도로 끔찍한 역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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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자신이 만든 << 쉰들러 리스트 >>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칭찬했지만, 이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라 그냥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모습이 심히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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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우의 연기를 평가할 때 유심히 보는 것 중 하나가 " 걸음걸이 " 다. 대사 연기와 표정 연기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배우들이 오열하는 장면을 명연기라고 칭찬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하기 쉬운 연기가 바로 눈물 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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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인들도 타이밍에 맞춰 눈물을 흘린다(정청래 이 새끼의 눈물 연기는 압권이다). 훌륭한 배우는 대사와 표정 연기는 물론이고 걸음걸이도 캐릭터에 맞춰 연기한다. 사람들이 걷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순히 다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몸통 움직임도 동반이 되고 팔도 움직인다. 종합하면 걸음은 전신 운동이다. 그렇기에 걸음을 연기한다는 것은 온몸 연기인 셈이다. 걸음걸이야말로 고난이도 연기다. 걸음걸이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인장이 있다. 타고난 성격, 사회적 지위, 계급적 특징 그리고 그날의 마음이 뒤섞여서 다양한 걸음걸이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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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레니 감독의 영화 << 길 >> 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짐파노(안소니 퀸 분)가 어두운 밤 바닷가를 걷는 장면이었다. 성큼성큼 걷던 걸음이 휘청거리며 무너질 때 관객은 그의 비통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본 것이나 다름없다. 휘청거리는 걸음이 무너진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자전거 도둑 >> 을 만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에게 어느 영화 담당 기자가 물었다. " 왜 전문 배우 대신 비전문 배우'를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하셨습니까 ? " 그 질문에 대하여 감독은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전문으로 배운 배우가 특정 계급의 삶을 연기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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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만큼은 연기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걸음이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아는 감독이었다(마르크스였다면 계급의 환유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브르디외였다면 몸짓의 아비투스 ?!).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대답에 나는 감동했다. 내가 < 자전거 도둑 > 을 보면서 정말 좋아했던 것은 그 가난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의 걸음걸이였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울림은 그가 걸을 때 보여지는 몸의 움직임에서 파생된다. 배우 김윤석이 연출한 영화 << 미성년 >> 에서 이정은이 등장하는 짧은 장면은 이 배우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인지를 보여준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오직 걸음걸이 하나로 모든 것을 증명한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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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장면을 보다가 너무 흥분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던 이유는 이 짧은 등장 장면만으로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10초짜리 약사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로우 앵글로 방파제를 걸어오는 여성의 걸음을 비춘다. 이 여성의 걸음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무너진 무릎 관절과 허리 디스크 그리고 술독에 빠진 걸음. 균형을 잃고 절뚝거리는 삶을 살아온 여성 캐릭터를 이정은 배우는 정교하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효율적인 연출이 또 있을까 ? 어쩌면 연기력만으로 전도연과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는 이정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탁월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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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UuRGzsm3FJU?si=WdsUmpoNizqn0G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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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6-09-29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곰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사부터 드렸어야 되는데 그간 잘 지내셨죠?

걸음걸이는 생각 못 해봤었는데 앞으로 연기를 볼 때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게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예시로 올려주신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이정은 배우 연기가 진짜 너무너무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6-09-29 20:36   좋아요 1 | URL
요즘 슬슬 알리딘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ㅎㅎㅎ
사람들이 연기 하면 대본 연기와 얼굴 표정 연기가 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연기는 몸 연기예요. 걸음걸이는 온몸 연기 중 하나거든요. 연기 잘하는 사람들은 캐릭터에 맞는 걸음 연기를 합니다. 대표적인 배우가 송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