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킹미디어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Sell me this pen ! "

"자살해서 보험금으로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자살하면 나오는 보상금이 8억인데 그걸로는 빚을 못 갚더라고요. 죽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방송에서 청담동 주식부자로 소개되었던 이희진 주식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한 말이다.

몇 년 전 아내와 이혼한 그는 지금도 빚을 갚느라 다리도 제대로 못 뻗고 고시원 쪽방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이희진의 말빨에 속아서 노후 자금을 모두 탕진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쪽방촌에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희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그는 출소 후 걸그룹 출신 연습생 여자와 결혼하여 250억짜리 청담동 펜트하우스에서 신혼을 즐기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직업군이 바로 사기꾼이다. 그는 출소 후 프로 골퍼 자격증도 획득하여 골프 지도자 자격도 갖췄다. 그의 일상을 포착한 인스타 이미지는 온통 골프와 시계와 스포츠카가 전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에는 물음표 백만 개가 생성되어 집 나간 개처럼 여기저기 떠돌고 있을 것이다. 이희진 재산은 피해자의 피해 보상을 위해 국가가 몰수한 것이 아니냐고요. 천만에, 그럴 리가 ! 네버, 앱쏘루뜰리, 언빌리버블, 나무아미타블. 나랏말쌈이듕국과달라서로사맛디아니.......... 사기꾼들에게는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차명이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있지 않은가. 이희진은 잘 살고 있다. 맞은 놈이 다리 뻗고 자는 시대는 끝났다.



마틴 스콜세이즈 감독이 연출한 블랙코미디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2014 >> 의 주인공 주식 브로커 조던 벨포트(실존 인물이다)는 영락없이 이희진을 닮았다. 감독은 사기꾼인 조던 벨포드라는 인물에 집중하기보다는 미국 월가의 생태계에 집중한다. 이곳은 징글징글한 욕망의 정글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조롱하고 싶었던 대상은 인물이 아니라 미국 월가의 생태계와 인간의 집단적 욕망이다. 황금만능과 신앙에 가까운 속물근성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영화답게 영화는 온통 황금색(옐로)이다.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황금에 눈이 멀어 얼굴이 누렇게 떠 있다.

배우들의 약 빤 연기와 도파민 터지는 연출은 몰입도를 높인다. 나도 모르게 마틴과 레오의 브로맨스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스콜세이즈 영화 중 가장 웃긴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FBI 요원으로 나오는 배우 카일 챈들러의 착한 얼굴은 감동적이다. 욕망의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실존 인물 조던 벨포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 가짜 주식을 팔던 벨포드는 출소 후 동기부여 강사가 되어 대중의 진짜 욕망을 팔며 다시 활활 비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몰락을 상품(월가의 늑대들에게 속지 않는 법)으로 판매하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하면 망합니다잉 ~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냐면 ㅡ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기 계발 강사가 되어 청중 앞에서 동기부여라는 상품을 판다. 그 장면은 마치 복음주의 교회 부흥회 같다. 그는 양복 속주머니에서 볼펜 한 자루를 꺼내 강의 수강생에게 건네며 이렇게 묻는다. " 나에게 이 볼펜을 팔아 보세요. " 이를 바라보는 수강생들의 눈빛은 신앙인에 가깝다. 그가 양복 속(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볼펜 한 자루가 아니다. 욕망이다. 성공하고 싶은, 반짝반짝 빛나는, 동기부여와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눈이 멀어 누렇게 뜬 그 욕망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안무치도 유만수


현대에 와서 영웅은 슈퍼맨이나 베트맨처럼 힘센 사람을 대표하지만 그리스 비극에서 영웅은 헤라클레스가 아니다. 헤라클레스는 그냥 힘이 센 사람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 헤라클레스는 여자에 미쳐서, 나중에는 광기에 사로잡혀 자식들을 죽인 난봉꾼이다. 왕년은 휘황찬란했으나 말년은 정신 착란 했던 클래스.....


오히려 그리스 비극 서사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는 오이디푸스다. 자기 서사의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스스로 눈알을 도려낸 그야말로 비극적 영웅이다. 오이디푸스의 잘못된 행위는 온전히 그의 잘못이 아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운명 앞에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순응했을 뿐이다. 그는 신이 두는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는다. 그는 어쩔 수가 없다 _ 라는 변명 대신 스스로 눈을 도려냄으로써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을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다는 프레임은 반드시 어쩔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만수는 최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최악( 세 번의 살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병헌의 동네 목욕탕 동굴 보이스로 발화된 독백 속에서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은 최선과 최악 사이에 놓여진 무수한 차선(책)이다. 인간의 욕망은 누구나 다 최선책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현실은 무수한 차선책 중에서 하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릴 적 꿈은 대통령이었지만 성인이 되면 9급 공무원 시험 합격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수는 차선을 선택(어쩔)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최악의 인간이다.


오이디푸스의 한국어 이름이 명백한 오대수( : 올드보이)와 유만분수1에서 이름을 따온 것처럼 보이는 유만수( : 어쩔수가없다)는 서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다. 오이디푸스의 오(이)대(푸)수는 신탁에 의해 정해진 운명을 따른다. 그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 신이 정한 길을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근친상간은 그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신의 잔인한 놀이 탓이다. 반면에 유만(분)수는 정리 해고라는 신탁( : 정리해고는 신자유주의의 신탁이다)을 거스르는 캐릭터다. 그에게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자 하는 강력한 자유의지가 있지만 그 자유의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한다.


그의 행위는 전형적인 후안무치도 유(만)분수요, 적반하장도 유(만)분수다. 그는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선택함으로써 최선을 다시 획득한다. 형식적으로는 악인의 최종 승리로 끝이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는 것은 죄의 전이다. 가족은 남편 혹은 아버지의 죄를 목격한다. 정원에 심은 사과나무가 사체의 양분을 토대로 무럭무럭 자라날 때마다 가족은 은폐된 죄의 공모자라는 인식을 지우지 못할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경찰 신문 조사에서 흔히 하는 변명 중 하나가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라고 한다. 후안무치도 유만수다.



                                  

1)  有萬分數 : 유(만)분수 ㅣ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원더랜드 작품집 : MOVIE ARTBOOK
김태용.김대식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를 만났다 :

영화 << 원더랜드, 2024 >> 는 말 그대로 놀라운 영화'다. 이 영화는 공상과학이라는 외피를 둘렀을 뿐 유사 러브 액츄어리'다. 보는 내내 지루해서 정지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계속 고민하면서 보았다. 참다 참다 참다가는 결국 참치가 될 것만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서 결국 마지막 5분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인내심의 한계라기보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공상과학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공상과 과학이지 멜로가 아니다. 멜로는 공상과 과학이라는 설정이 만든,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숟가락이 만찬의 주인공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영화는 크게 딥러닝 기술로 복원된 탕웨이(에피소드)와 박보검(에피소드)이 중심인 메인 플롯과 주변부의 서브 플롯이 첨가된 옴니버스 형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영화가 재현하고 있는 장소다. 죽은 자를 딥러닝으로 복원한 아바타 탕웨이와 박보검이 머무는 장소는 사막과 우주다. 문제는 인물과 장소가 맺는 관계 설정이 농밀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탕웨이는 직업과 상관 없이 어릴 적 장래 희망이 고고학자였다는 이유로 가상 현실에서는 사막에서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된다. 박보검은 더욱 황당하다. 비행기 승무원이었던 박보검은 우주비행사가 되어 있다. 장소에 대한 애착이 없다 보니 인물과 장소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서로 융합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사막과 우주라는 공간은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이발소 벽에 걸린 그림처럼 예쁜 장식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스펙타클하기는커녕 입체감 없이 납작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공간에 대한 고독과 경외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풍경만 이국적인 관광 엽서 같다. 공간이 입체감이 없다 보니 그 공간을 점유한 캐릭터가 납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캐릭터가 납작해지는 순간, 그 영화는 망하게 된다. 이 영화를 싸구려 이발소 그림 혹은 500원짜리 관광 엽서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에는 배우들의 빛나는 외모도 큰 몫을 차지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생명력은 시들시들하다. 특히, 공유가 연기한 캐릭터는 관객이 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이다.

보다 보면 : 동서식품 카누 광고의 영화 버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캡쳐 해서 카누 로고를 붙이면 영락없이 동서식품 광고다. 그는 영화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찍고 자빠졌다(박보검-수지 커플은 의류 CF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배우의 잘못인가, 감독의 잘못인가 ? 당연히 감독의 능력 부족 탓이다. 지금까지 내가 침에 입이 마르도록(의도적 오기다) 투덜댔던 단점들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짜진짜 문제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산 자의 사연만 해도 구구절절한데 죽은 자마저 한마디 거드니 구구절절X2인 영화라 할 수 있다)에도 불구하고 사연만 둥둥 떠다닐 뿐 인간에 대한 서사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인간 없는 서사는 곧 서사 없는 잔상만 남는 영화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공유는 영화에 등장하여 카누 광고나 찍고 자빠졌고, 탕웨이는 낙타가 보이는 사막에서 의미 없이 흙만 파고 자빠졌고, 박보검은 중력 없는 공간에서 어화둥둥 떠다니기만 한다. 두 쌍의 메인 플롯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의 서브 플롯은 겉돈다기보다는 헛돈다. 공유만 헛발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유미와 최우식이 소개하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영화의 카메오가 아닌 서브 플롯의 주연인데 카메오처럼 소비된다. << 원더랜드 >> 는 AI가 만든 가상 세계를 다룬 영화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AI가 이 영화를 만든다면 인간이 만든 이 영화보다 잘 만들 수 있을까 ? 후자의 경우에 전 재산 500원을 걸겠다.

■ 덧대어 투덜대기

이 영화를 다룬 언론 기사를 읽다가 빵 터졌다. 다음과 같다. " 연출과 더불어 탕웨이 등 주요 출연진의 절제된 열연은 '원더랜드'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려, 구닥다리 신파 멜로 대신 시적인 느낌을 지닌 유럽산 SF수작의 길로 이끈다. 특히 탕웨이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파트너 없이 홀로 연기하다시피 하는데, 그럼에도 박보검-수지 커플을 능가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 기자는 왜 이 영화를 두고 시적인 느낌을 지닌 유럽산 SF 수작이라고 표현했을까 ?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한국이라는 지역의 정체성보다는 이국적인 이질성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가 뒤섞여 있고 공간도 사막과 우주다. 한국 영화이기는 한데 한국인으로서 느낄 만한 공감은 없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 낮다. 사막과 우주를 체험한 한국인이 얼마나 있겠나. 좋게 말하자면 세계의 보편성에 근접한 영화라고 표현할 수는 있으나 나쁘게 말하자면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진 산신령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영화다. 시골로 낙향해서 텃밭 가꾸며 사는 것 같은 정유미의 부모는 숟가락과 젓가락 대신 수저와 포크로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다. 식탁 위에는 바게트와 와인 잔에 담긴 포도주가 놓여 있다. 생각해 보니 이 영화에서는 식사를 하는 장면이 몇몇 등장하는데 한식인 밥과 찌개가 나오는 장면은 한 장면도 없다. 공상 과학 영화에 쌀밥에 된장 찌개가 등장하면 예쁜 화면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묻고 싶다. 감독님, 쌀밥이 그렇게 부끄러워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한 번 헤어질 결심















페니스를 라틴어로 팔루스'라고 합니다. 팔루스는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가죽 인공물입니다. 고대 연극에서 팔루스라는 장식 도구를 착용한 등장인물은 권력자라는 뜻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절대반지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 제가 누굽니까. 대한민국 제1호 범성론자로서 팔루스 감별사 아닙니까 ? 영화 << 헤어질 결심 >> 예고편에 등장하는 산 정상을 보았을 때 느낌이 오더군요. 아, 저, 저저저것은 팔루스로구나. 

 

추락 사고가 발생한 산 정상을 보십시오. 누가 봐도 딱딱한 남근상(팔루스)이죠. 저는 우뚝 솟은 바위산 정상의 갈라진 틈을 보고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오모모. 박찬욱 감독, 참 에로틱하게 디테일 허시다. 거시기하죠. 실제로 저 장소가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귀두봉이라고 부를 겁니다. 팔루스의 정상에서 여자가 남자를 떨어뜨려서 죽인 행위는 상징적 거세를 뜻합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몇 번이나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남성 성기를 거세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을 " 바기나 덴타타 " 라고 합니다. " 이빨 달린 질 " 이란 뜻이에요. 여성 성기에 이빨이 달려서 남성이 삽입하는 순간, 뜨아 !!!!!!!!!! 


그런 점에서 여자 서래는 바기나 덴타타 괴물입니다. 그녀는 이빨 달린 여성 성기 요괴죠. 원래, 요괴라는 것이 굉장히 아름다운 괴물이에요. 대표적인 바기나 덴타타 괴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모두 아는 괴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 세이런입니다. 안개 자욱한 바다에서 사람 귀를 홀리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뱃사람들은 그 소리에 홀려 뱃머리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다가 난파하죠. 설화 속 바기나 덴타타는 주로 축축한 늪의 검은 동굴에 삽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검은 동굴과 축축한 늪이라는 표현에서 감 잡으셨을 겁니다. 그래요, 여성 자궁의 은유죠.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상징적 장소를 보여줍니다. 산과 바다죠. 설명했다시피 산은 팔루스의 지정학적 장소이고 바다는 바기나 덴타타의 지정학적 장소입니다. 저의 과도한 해석이 아닙니다. 두 가지 버전의 영화 포스터를 보십시오. 박해일의 뒷 배경은 산이고 탕웨이의 뒷 배경은 바다입니다. 뭐,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한 감독의 결심인 셈입니다. 



종합하면  :  이 영화는 팔루스 vs 바기나 덴타타의 빅 매치인 겁니다. 킹콩 vs 공룡의 대결 같은 것이죠. 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국어사전은 남성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남성 언어'의 결정체라고 말이죠. 한국어 사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유교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서열입니다. 모든 단어는 여성보다 남성이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사전에 남녀라는 단어는 있지만 여남이라는 단어는 없죠. 심지어 Ladies and gentlemen 을 번역하면 숙녀 신사 여러분이 아니라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번역이 됩니다. 하지만 딱 한 번, 여자가 남성보다 상위 포지션을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궁금하시죠 ? 두구두구두구두구,,,,,,, 욕 할 때 순차의 역차가 발생합니다. 그 단어가 바로 " 연놈 " 이라는 낱말입니다. 사전에서 " 놈년 " 이라는 단어 보셨습니까 ? 단어가 욕으로 사용될 때에는 여자가 남성보다 앞섭니다. 조상 어르신의 꼼꼼한 꼼수에 혀를 차게 되죠. 꼼꼼허시다. 사전이야말로 남근중심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결정체입니다. 철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남성은 이성(로고스)을 상징하고 여성은 감정(파토스)를 대표했습니다. 로고스는 이성과 함께 언어로 발화된 말이라는 뜻으로 로고스는 파토스보다 우월합니다. 이것을 로고스 중심주의라고 합니다. 남근중심주의와 로고스 중심주의는 모두 남성성의 우월을 강조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남근중심주의와 로고스중심주의를 합쳐서 " 팔루스로고스중심주의(남근이성중심주의) " 라는 개념을 고안하고서는 사냥개처럼 남근이성중심주의(팔루스로고스중심주의)를 비판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자 주인공 서래는 남근이성중심주의 시각에 반대하는 여성 괴물이므로 바기나파토스중심주의의 주체라고 할 수 있죠. 서래西來, 서쪽(중국)에서 온 여자는 국어사전의 체계를 비틀어버립니다. 서래가 발화하는 " 마침내 ㅡ " 의 뜻은 국어사전의 그 뜻과는 미묘하게 다르고,  발화된 마침내를 받아들이는 형사들은 서래가 사용한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해 합니다. 서래는 그 모습을 보면 재미있다는 듯 웃습니다. 저는 이 행위를 남근이성중심주의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의 체계를 파괴하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제가 언젠가 그런 주장을 했었죠 ? 페미니즘의 시작은 국어사전에 기록된 남성중심주의 언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여성학보다는 언어학에 가깝다고 말이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그것을 자살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서래는 바다에 익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던 집으로 컴백홈 한 겁니다. 


말했잖아요. 서래는 서쪽에서 온 바기나 덴타타 바다 괴물이라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 한바탕, 신나게 놀고 가요. 여러분 ~ "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2-07-20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곰발 님 글 올만에 봅니다.
헤어질 결심, 얼릉 봐야하는데, 아직까지 못봤다는...근데, 저 포스터 배경이 참으로 심오한 상징을 가졌구료~
가만 보니, 사진이 아닌 그림같기도 합니다..어쨌거나 반갑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0 15:31   좋아요 0 | URL
오, 야무 님. 방가방가 ~ 야무 님이야말로 얼릉 돌아오십셔.

포스트잇 2022-07-20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엔딩해석이 기가 막힙니다^^ 그러네요.
컴백홈이네요.

그리고, ‘연놈‘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아니, 그런 건 어떻게 찾으신답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0 15:33   좋아요 1 | URL
전 화장실 수건함에 수건 대신 국어사전이 있어요. 화장실 갈 때마다 국어사전을 펼쳐서 한 꼭지 읽는데 연놈이라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전 이게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선인 2022-07-20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영화 꼭 봐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1 15:17   좋아요 0 | URL
평점 높은 걸 보니 이견은 없을 듯합니다.

감은빛 2022-11-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어요.
나중에 다시 한번 더 봐야 제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이 서재에 놀러와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

마음의 꿈 2023-07-1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못했던 시각으로 해석한 ‘헤어질 결심‘ 공감이 가는 해석입니다. 감사^^

마음의 꿈 2023-07-1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헤어질 결심 인가?...잽을 한번 날려 봤지만 아직은 공존할 수 없는 현실이라 일단 한발작 물러설수 밖에 없는...
 












스미스는 왜 록의 뺨을 때렸나 ?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유명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상대로 농담을 던진다. 카메라는 이미 크리스 록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크리스가 입을 떼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윌 스미스 부부를 향한다. 그리고는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그리고 불꽃 싸다구.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의 뺨을 풀스윙으로 후려친 것이다. 와우. 가십 천국인 할리우드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꽃 싸다구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다. 


한국인의 반응은 대체로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와 가해자가 때릴 만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 편에 선 이유는 가족주의다. "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못 참지 ㅡ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도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윌 스미스를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윌 스미스를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윌 스미스, 이 새끼. 너무 좆같다. " 종종 페미니즘 관점에서 크리스 록의 살인 조크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핑계로 윌 스미스를 옹호하는 것이다. 


윌 스미스는 가족을 대표하는 남편이자 여성을 지켜야 하는 남자라는 것이다. 놀라운 해석이다. 오히려 이러한 해석은 페미니즘적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에 대한 열렬한 옹호처럼 보인다.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이 왜 반드시 윌 스미스여야 할까 ?  제이다의 인물 파워(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 진행자다) 역시 남편 못지 않은 데 말이다. 크리스 록의 조크에 화가 났다면 따귀를 때릴 사람은 제이다이지 윌 스미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윌 스미스는 제이다와 그 어떤 상의도 없이 그녀를 대변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자신의 아내는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 것처럼. 


내가 이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윌 스미스의 남성성 과시'였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서 "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남자 " 를 연기한 것이다. 그는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는 스스로 자신이 멋져보였을 것이다. 이 초유의 사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카메라맨이다. 카메라맨은 크리스 록이 무대에 오르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그가 제이다를 향해 입을 떼자마자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카메라는 미리 제이다의 반응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크리스 록의 즉흥적 농담이 아니라 미리 대본에 의해 정해진 발화라는 것을 말해준다.  크리스의 선 넘은 농담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따귀를 맞을 정도로 해악하다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용인한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더 나쁜 놈들이다. 가족주의의 핵심은 가부장제'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의 핵심은 폭력적인 아버지'다. 폭력적인 아버지 없이는 가부장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권위적인 가부장제 없이는 가족주의도 없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가족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가부장제의 오랜 폭압에 길들여져 있어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하여 관대하다. 골때리는 지점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증오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폭력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지키는 힘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이중적 태도란 말인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초원 2022-04-03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글은 늘 시원시원합니다. 저도 이 소란을 보며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더 반갑게 읽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일 없이 걷고 뛰어도 좋은 일요일 오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곰곰생각하는발 2022-04-07 14:17   좋아요 1 | URL
아, 초원 님.. ㅎㅎ 잘 지내고 있습니다. 초원 님도 무탈하시지요 ? 댓글이 늦었네요. 자주 오는 편은 아니어서....

. 2022-04-2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잘 보내고 계십니까? 갑자기 옛 생각에 그리워서 글 남기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여.

고라니 2022-06-02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습니다. 곰발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제 생각에는 코미디/농담에 대한 수용 문화의 차이가 더 큰 거 같은데요. 미국도 마초적이고 가족주의적인 면이 있는건 한국 이상이기도 하고.. 미국에선 아무래도 농담의 수위에 대해 더 관용적이죠. 우리나라에선 부모 욕(싸우다가도 엄마욕 한 쪽이 무조건 잘못)이 엄청 큰 잘못이지만 your mama 조크가 미국에선 흔하거처럼요. 그리고 미국에서는 싸우스 파크나 패밀리 가이 같은 쇼가 무려 TV에서 방송하고 수십년째 장수하는데 이건 한국에선 없는 일이니까요.. 일례를 들면 패밀리 가이에선 졸업 무도회에 여학생이 무도회장 쓰레기통에 버린 신생아가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노래하는 조크가 있고 싸우스 파크에서는 카트맨이 자기를 괴롭히던 애의 부모를 죽여서 믹서기로 갈아서 요리한 다음에 속이고 먹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걸 한국에서 (특히 tv에서) 시도했다간 그야말로 엄청난 스캔들이 되겠죠.. 방송이 되지도 않겠지만. 하지만 미국에선 저런 쇼가 그냥 평범하게 tv에 나올뿐만 아니라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 때문에.. 코미디에서 가능한 수위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훨씬 관용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저렇게 코미디에 관용적인 미국 사회에서 겨우 대머리 조크로 뺨을 때린건 심한 무리수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은 안 건드는게 상례고 농담의 수위에 훨씬 엄격하니까 미국 코미디 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좀 엇나간 반응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6-01 11:18   좋아요 1 | URL
고라니 님, 댓글 읽다 보니 미국 청소년들은 크면 부모를 욕하면서 집을 떠나고 한국 청소년들은 크면 부모에게 붙어서 집에 안주한다는 뭐 그런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그러한 성향이 이번 사태의 반응이 상대적으로다르게 나타난 것 같네요. 아마도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미국 스탠딩 코미디 보면...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도 있고.. ㅎㅎㅎㅎ 뭐, 그렇습니다.

고라니 2022-06-02 17:02   좋아요 1 | URL
네 그렇기도 하죠 ㅎㅎ 우리나라에선 결혼 안 한 성인 자녀가 부모랑 같이 사는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닌데, 미국에서는 basement dweller라고 심하게 조롱 당하니까요. 근데 미국이나 유럽도 주택 문제가 심각해서 점점 용인되는 분위기인거 같긴 합니다.. ㅎㅎ
제목을 다시 보고 생각난 건데, 처음에 ‘스미스가 록의 뺨을 때렸다‘는게 그룹 The smiths가 록음악의 뺨을 때렸다는 얘긴 줄 알고 들어왔었네요. ㅎㅎ 글 재밌게 읽고 있으니 바쁘셔도 가끔씩 써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