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는 의자다. 예쁘다. 공공 기구라기보다는 조형물에 가깝다. 의자 신분에서 조형예술로 승격했으니 몸값도 비싸보인다. 의자계의 샤넬 ? 이 의자 하나를 만드는 비용이라면 최소한 일반 공원 벤치 의자 10개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예쁜 디자인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기괴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끄러운 돌로 만든 의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 ① 평면이 아니라 달걀처럼 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기울어진 좌석인 셈이다.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들(임산부나 노약자)은 엉덩이가 의자에서 미끄러지기 쉽다. 의도는 명확하다. " 오래 앉아 있지 말라 ! " ② 하물며 이 의자에 눕지도 못한다. 노숙자를 배제하기 위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 노.... 숙자여, 눕지 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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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여기에 팔걸이나 등받이도 없다. 허리가 안 좋은 노인에게는 일어나는 데 무리가 따른다(팔걸이와 등받이는 앉거나 설 때 팔의 지지대 역할도 담당한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이런 의자가 개인 소유 건물 안에 설치되어 있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의자가 국가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 시설이라면 문제가 있다. 이 의자 디자인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계되었다면 공공 시설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셈이다. 여러분, 이런 의자를 보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지 말라. 이 의자를 보다가 문득 학폭 문제로 떠들썩했던 아이돌 가수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얼굴 뒤로 숨은 잔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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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이 연출한 << 엣 더 벤치, 2024 >> 는 주인공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뭉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섯 에피소드로 역은 옴니버스 영화다. 주인공이 누구냐구 ? 공원 벤치'다. 특별한 사람이 등장하지도 않고, 특별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이신 공원 벤치는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인생 상담소 역할을 하고, 또 어떤 날은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이 되어주기도 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노숙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장시간 머무는 집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공원 나무 의자)는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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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첫 번째 소개한, 조형물에 가까운 의자가 배타적 악의를 품은 의자라면 영화 속 낡은 나무 벤치는 포용적이다. 전자는 적대이고 후자는 환대다. 벤치는 도시의 선물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옆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좋은 거리란 비싼 점포가 즐비한 곳이 아니라 벤치가 많은 곳이다. LA보다 뉴욕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 하나다. 거리의 벤치다. 그리고 성수동 거리보다는 내가 사는 동네 거리가 더 아름답다. 오늘도 내가 사는 동네 벤치에 앉아 낙엽이 떨어지는 풍경을 보며 시집을 읽다가 집에 왔다. 좋은 동네다.


바닥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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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Paolo Bonacelli - Salo, or the 120 Days of Sodom (살로 소돔의 120일) (1975)(한글무자막)(Blu-ray)
Various Artists / Criterion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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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멘탈 붕괴 3대장 영화( : 세르비안 필름, 마터스, 돌이킬 수 없는)가 있다. 보고 나면 전두엽과 해마가 땅에 떨어져 있다. 안 돼, 죽지 마 ! 멘탈 바사삭 ~ 나의 영화적 호기심만큼은 눈만 뜨면 자위하는 14세 소년의 왕성한 성욕보다 높아서 보게 되었지만 좋아하는 작품들은 아니다. 세 작품 모두 남성 폭력을 통해서 여성 신체를 파괴하는데 집중한 영화들인데 보는 내내 불쾌했다. 불쾌감의 유통 기간이 1년은 지속된다. 약자의 고통을 소비하고 나면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파졸리니 감독이 연출한 << 살로 소돔의 120일 >> 은 악명 높은 멘탈 붕괴 3대장 영화보다 악명이 높기로 악명이 높다. 이 작품은 멘탈 붕괴 영화의 끝판왕 ' 타노스' 라 할 만한 영화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종류의 음란한, 가학적인, 더러운, 역겨운, 혐오스러운, 학대적 쾌감의 유한한 상상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불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 불쾌 " 하다기보다는 내내 " 불편 " 한 감정이 내 고혈압을 자극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 << 살로 소듬의 120일 >> 은 똥과 섹스 그리고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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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독자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 20년 전 본 영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내용을 상술할 것이다. 기억의 오류로 잘못된 재현도 있을 수 있으나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네 명의 남자가 탁자 위에서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에 패배한 파시스트 잔당들이 모여서 작은 국가를 건국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한다. 최상위 권력층인 대통령, 대법원 판사, 국회의장, 가톨릭 대주교가 그들이다. 이들의 계획은 죄 없는 소년과 소녀들을 납치해서 성에 가두고 옷을 벗겨 질펀하게 노는 것이다. 이 계획에는 매음굴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뚜쟁이 마담 4명도 동참한다. 음란한 섹스는 나에게 맡겨주세용. 호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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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저녁 6시만 되면 홀에 모여 야한 이야기 경연 대회를 연다. 누가누가 더 야할까 ? 첫 번째 마담이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이야기한다. 온갖 음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흐, 흐흐흐흥분한 권력자와 소년병들이 홀 식당에서 소녀를 집단 겁탈한다. 이제부터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대환장 음란 판타지가 펼쳐질 것 같지만 감독은 관객의 헤모글로빈이 사타구니로 남하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이 대회를 주최한 의장이 식당에서 느닷없이 바지와 팬티를 내리더니 식사 중인 소년소녀들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국화무늬 항문을 보여준다. 그러고는 겁탈 당하는 소녀를 질투한 나머지 자신을 겁탈해 달라고 애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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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벼락 맞을 장면이란 말인가 ? 소년병들에게 집단적으로 강간당하는 최고 권력자 ! 그의 눈동자에는 희열이 가득 차 있다. 아. 여기서 멘탈이 붕괴되면 안 된다. 첫째 날은 둘째 날에 비하면 약과가 아니라 천안 휴게소 호두과자다. 두 번째 매음굴 마담의 이야기 주제는 똥이다. 이때부터 대환장 쑈가 펼쳐진다. 두 번째 마담은 흥분하면 똥을 먹는 여자다. 모든 음식에는 맛의 차이가 있는 법. 여자는 맛있는 똥과 맛없는 똥 이야기를 한다. 소년의 똥은 맛있고 늙은이 똥은 냄새가 난다나 어쩐다나. 똥 맛집도 소개한다. 흐, 흐흐흐흥분하는 최고 권력자들. 식욕이 성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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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권력자 남성들은 소년소녀의 똥을 요강에 받아서 다 함께 똥을 먹기에 이른다. 접시 위에 똥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포크와 나이프로 맛있게 똥을 먹는다. 영화는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나 또한 먹고 싶....... 됐고 ! 셋째 날은 고문 학살의 밤이다. 똥 싸는 게 수치스러워서 몰래 버린 인질들과 평소 말을 잘 듣지 않는 인질들은 고문의 대상이 된다. 혀가 잘리고, 머리 껍질이 벗겨지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끄집어낸다.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라 관객이 받을 충격을 완화시키고자 감독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 의도적으로 관객과 작품 사이에 거리를 두는 방식)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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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느닷없이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하는가 하면 심각한 장면에서는 비전문 배우들이 키득키득 웃기도 한다. 정상적인 영화 문법을 따랐다면 NG였을 장면인데도 감독은 편집 없이 삽입시켜서 관객의 감정 이입과 몰입을 방해한다. 그렇기에 내용만 봤을 때에는 충격적이지만 형식적인 측면을 보면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다. 파시스트에 대한 격렬한 경멸을 담고 있는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얼마 후 거리에서 괴한들의 습격으로 살해당한다. 파시스트의 공격으로 추정된다. 누구보다도 정치적 입장을 자유롭게 말했던 파졸리니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내게 있어 진정한 우상은 리얼리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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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 : 일반판 - 싱글투명케이스 + 양면자켓
오승욱 감독, 전도연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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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오 " 잡는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장르가 " 하드보일드 느와르 " 일 때는 사정이 다르다. 느와르는 캐릭터들이 가오를 잡아야 제대로 서(?)는 장르다. 대사는 가급적이면 생략하고 담배를 피울 때도 멋지게 꼬나물고(피우고) 말보다는 주먹이, 생각보다는 행동이 빠르게. 그리고 칼빵 맞았다고 징징거리지 않기. 사랑하는 애인에게 칼에 찔려 죽을지언정 그래도 잘 살라는 인사는 하고 가기 등등. " 그래, 쌍년아. 어디 나 없이 잘 사나보자. 새해 복 많이 받아라. " 폼생폼사, 그렇게 가는 게 느와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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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감독이 연출한 << 무뢰한 >> 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하드보일드 느와르 투머치 격정 멜로 장르답게 캐릭터마다 가오를 잡는다. 깡패도 가오를 잡고, 형사도 가오를 잡고, 창녀도 가오를 잡는다. 가오의 과잉을 경계할 필요는 있으나 이 영화에서 각각의 가오들은 멋진 합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단란주점 새끼 마담 역을 연기한 전도연 연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가오를 보여준다. 밀린 외상값을 받기 위해 고객 사무실을 찾아가 고객님의 불알을 터져라 움켜쥐며 " 나 김혜경(전도연)이야 !! 나 김혜경이라구 !!!! " 라고 소리쳤을 때에는 목에 불쑥 솟은 핏줄이 너무 섹시해서 졸도할 뻔했다. 한마디로 전도연 연기에 지렸다. 그동안 전도연 최고 연기는 << 밀양 >>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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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한국 영화계는 어떡할 뻔했나. " 만약에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지금의 << 무뢰한 >> 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전도연의 영화다. 내가 전도연 연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말하지 않고도 연기되는 언어들이 있다. 배우의 연기는 오롯이 대사와 표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도연은 대사나 표정 연기뿐만 아니라 얼굴 근육, 피부의 미세한 흠집들, 눈가의 그늘과 잔주름이 많은 깊은 허방, 그리고 입가의 주름마저 모두 연기 언어로 창조하고 있다. 성형 수술용 칼로 얼굴 근육을 난도질하거나 온갖 미용 시술로 만들어진 얼굴에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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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내내 전도연의 얼굴을 감탄하면서 감상했다. 아, 배우의 가오란 이런 것이구나. 충무로 영화판에서 날고 긴다는 배우들이 몰려와도 전도연은 맞다이로 상대할 멋짐이 있다(기자회견장에서 장애인 비하하는 XXXX 남발하며 꼬라지 부리던 민희진의 가오는 가오도 좆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도연의 힘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돼지국밥에 찬 소주 2병 정도 마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자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고 형사는 칼에 맞아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피 묻은 손으로 멋지게 담배 한 대 꼬나물고, 비틀거리지만 쓰러지지는 않기. 그리고 내 뱃속에 식칼을 꽂아넣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덕담하기. " 그래, 쌍년아. 새해에는 복 많이 받아라. 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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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밤ㅡ 미리 냉장고에 소주 2병 넣어두고, 이 영화를 감상하시라. 놓치면 반드시 후회할 영화다. 이제 전도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아니라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전도연 만세다, 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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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드라이브 마이 카 : 알라딘 단독 리패키지 한정판 (2disc) - 풀슬립아웃박스/엘리트 투명 더블 케이스+스페셜 북(36p)+포토카드 4종 세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니시지마 히데토시 외 출연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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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의 차를 운전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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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ㅡ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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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의 핵심은 " 나 " 였다( : 과거형임을 명심하라).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_라고 선언한 이후, 서구 철학은 < 나 > 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코기토(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자기 중심 철학의 타노스였다. 하지만 < 나 > 라는 주체에 대해 별것 아니라는 증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니체는 " 주체는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만들어져 첨가된 것, 그 뒤에 숨겨진 것이며, 그 본질은 허구로 정신도, 이성도, 사고도, 의식도, 영혼도, 의지도, 진리도 없다. 이들은 모두 쓸모없는 허구다 "라고 말했다. 니체는 망치를 들고 서양 정통 철학에서 그토록 예찬했던 주체를 과격하게 때려부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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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 는 데카르트의 코키토에서 배제된 타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 " 드라이브 마이 카 " 에서 생략된 것은 who 다. 누가 나의 차를 운전하는가 ? 이 영화에서 빨간 자동차는 가후쿠의 도플갱어다. " 빨간 차 = 가후쿠 " 다. 그렇다면 낯선 이( 미사키)에게 내 차의 운전대를 맡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그것은 타자성의 윤리1)를 강조하는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강조하는 타자 - 되기'다. ‘나’라는 중심을 비워내고 온전히 타자가 되어봄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갖는 것이다.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역지사지의 태도가 타자 되기'다. 가수 김건모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 "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시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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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쿠는 분신( 그 잡채)인 차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맡김으로써 타자 - 되기를 경험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는 죽은 아내를 용서하기로 마음 먹는다. 남의 말을 경청(듣기)하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아니 첫 번째 관문이 아니라 알파와 오메가 그 잡채다. 그래서 가후쿠는 차 안에서 반복적으로 죽은 아내가 녹음한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타자의 말을 듣고, 듣고, 또 듣는다. " 듣기 " 는 연극 워크숍에서도 지겹도록 반복된다. 연극에 참여한 배우들은 대본 읽기를 반복한다. 그들은 서로 언어(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심지어 수화까지)가 다르지만 타인의 목소리에 몰입하다 보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감정적 교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언어 없이도 소통은 가능하다. 대화에서 표정은 최초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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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밝혔듯이 언어의 장벽은 작고 사소한 차이일 뿐이다. 이 영화를 한층 신비롭고 다층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는 가후쿠의 아내 오토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오토는 시나리오 작가로 섹스를 통해서만 창작의 영감을 얻는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 이야기 " 는 남자와의 섹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이야기를 임신하고 이야기를 출산한다( : 오래 전 아이를 잃은 이후, 부부 사이에 아이는 없다). 이 설정은 그녀가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생산(출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임신한 이야기의 절반은 남성 타자의 몫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오토의 이야기는 그녀가 생산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남성이 만들어 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레비나스의 타자성 개념이 여성성을 출발점으로 해서 추구되었다는 점에 매우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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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쿠의 타자 - 되기 체험은 두 여자인 오토와 미사키를 통해 경험되어진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오토가 두 남성( : 남편과 다른 남자)을 통해 만들어 낸 이야기는 무엇일까 ?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은 " 전생에 칠성장어였던 소녀 " 이야기다. 다음과 같다. 전생에 자신이 칠성장어였다고 믿는 소녀는 같은 반 남학생을 짝사랑 한다. 소녀는 몰래 소년이 사는 집에 침입하여 자신이 사용하던 탐폰이나 팬티를 벗어 옷장 속에 숨겨 놓기도 하고 소년의 침대 위에서 자위를 하기도 한다(하루키스럽지요잉?). 이때 소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년일까, 소년의 아버지일까, 아니면 소년의 어머니일까 ? ㅡ 여기까지는 오토가 남편과 섹스를 통해 임신한 이야기의 전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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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쿠는 이야기 속 소녀는 아내이고 소년은 자신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가후쿠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을 훔쳐보는 장면과 소년의 집에서 소녀의 자위를 훔쳐보는 소년의 이야기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의 외도 장면을 눈으로 직접 보았지만 이 사실을 모른 척한다.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생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가 자신을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내의 외도를 외면한 것이다. 다음은 그녀가 다른 남성과 섹스를 통해 잉태한 이야기다( : 불륜남은 차 안에서 남편 가후쿠에게 자신이 그녀와의 잠자리를 통해서 듣게 된 이야기 후반부를 들려준다). 소녀의 자위 행위를 훔쳐본 자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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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자위를 훔쳐보고 있던 사람은 소년이나 소년의 가족이 아니라 도둑이었다. 도둑이 그녀를 강간하려하자 소녀는 연필로 도둑의 오른쪽 눈을 찔러 죽인다. 시체를 방에 두고 황급히 소년의 집에서 빠져나온 소녀. 다음날, 소녀는 살인 고백을 하려 하지만 소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녀를 대한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 만약에 소년이 정말로 모르고 있다면 살인은 소녀의 환상이었을까 ? 전반부가 가후쿠와 오토가 합작한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불륜남과 오토가 합작한 이야기'다. 남편인 가후쿠는 전반부 이야기에서 소녀가 사랑한 소년이 자신이라고 믿었지만 후반부 이야기에서 소녀가 사랑한 소년은 자신이 아니라 불륜남이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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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소녀를 강간하려고 했던 도둑이 가후쿠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가후쿠는 의사로부터 왼쪽 눈에 녹내장이 진행 중이어서 차후에 실명이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는데 오토가 만든 후반부 이야기에서 도둑은 가후쿠와 마찬가지로 왼쪽 눈을 찔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토의 이야기에서 전반부와 후반부가 상이하게 다른 이유는 그녀가 접촉하는 타자의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후쿠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아내도 자신 못지 않게 남편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편의 외면은 아내의 외도와 같은 강도의 고통이라는 사실. 남편은 비로소 죽은 아내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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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라는 감정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명이라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입장 바꿔 타자가 되어 보기. 타자성의 윤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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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체성의 반대 개념이 타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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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S.E (2disc)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나카타니 미키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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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로 보이는 50대 여자가 공원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무차별적 폭행에 따른 피살로 보인다. 그녀 이름은 마츠코. 영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의 주인공이다. 인생을 얼마나 험하게 살았길래 마츠코는 사람들에게 혐오스런 여자로 낙인이 찍혔을까 ? 마츠코 고모를 한번도 본 적 없는 조카 쇼는 그녀가 남기고 간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녀가 살았던 발자취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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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중학교 교사로 첫 번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제자가 저지른 절도 사건을 감싸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교직에서 물러난 후 홧김에 가출을 한다. 이 잘못된 선택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후폭풍으로 돌아올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다자이 오사무를 동경했던 첫 번째 남자는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마츠코가 보는 앞에서 기차에 투신하여 자살을 하고, 두 번째 남자는 유부남으로 불륜 관계를 유지하다 남자에게 버림받는다. 세 번째 남자는 사창가의 핌프다. 마츠코는 그와 돈 문제로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칼로 찔러 죽인다. 그들과의 관계가 나쁜 쪽으로 더 나쁘게 끝날 때마다 마츠코는 습관처럼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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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자는 마츠코가 교사로 있었던 학교 제자(절도 사건의 주범)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채웠으니 마지막 단추를 제대로 채울 리 없다. 그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일. 나쁜 남자(불량 학생)는 더 나쁜 남자(야쿠자)가 되어 그녀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그녀는 남자를 만날 때마다 온몸을 바쳐 헌신했지만 처절하게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영화 속 남자들은 철저하게 여자를 착취한다는 점에서 신파를 정조준한 여성 잔혹사-서사의 전형을 따른다. 이 영화는 루비 구두와 에메랄드 시티 그리고 노란 벽돌길과 마법사 오즈가 등장하지 않는 < 오즈의 마법사 > 다. 마츠코는 성인이 된 도로시다. 그녀가 집을 떠나 겪게 되는 " 사랑 찾아 삼만리 이야기 " 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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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시작해서 불륜녀, 매춘부, 살인자로 폭주하는 마츠코의 약사는 얼핏 보면 혐오스러운 일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츠코는 상냥하고, 명랑하며, 밝은 마음을 가진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의 잘못이라고는 선택의 연속된 실패뿐이다. 마츠코는 사랑에 실패할수록 더욱더 사랑에 집착하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최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면 상처는 반대로 차곡차곡 쌓이는 법. 마츠코의 실패는 타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라 나(마츠코)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츠코를 누구보다 혐오했던 것은 마츠코다. 마츠코는 자기혐오에 빠진 인물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타자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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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사랑을 쟁취하고자 치열하게 분투하는, 실패를 거듭하는 루저의 서사가 눈물 나기 때문이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관계가 비로소 끝이 보일 때 희망을 얻듯이,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지듯이, 마츠코는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절망할 때마다 실낱같이 환한 희망을 갖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12월에 내리는 폭설처럼 펑펑 울면서 소리쳤다. 두 주먹 불끈 쥐고, 괄약근에 힘을 주며 외쳤다. " 간바레 !!! 마츠코 짱!!!!!!!!!!! " 눈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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