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 8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 알라딘 신간 평가단 14기 활동
1.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로마 제국 원형경기장, 경기장 안으로 전쟁 포로와 노예들이 끌려나온다. 우우, 객석의 로마인들이 야유를 보낸다. 이어서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열흘 굶은 사자들이 원형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다. 포로들은 사자를 피해 도망가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닫힌 철문과 장벽뿐이다. 아비규환. 팔 다리가 뜯겨나간다. 와와, 흥미진진한 게임을 보며 로마인들은 즐거워 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학살 사건을 보면 그 옛날 로마 원형경기장이 생각난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둥굴게 에워싼 분리 장벽은 원형경기장'이다. 그곳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은 전쟁 포로이거나 노예들이다. 그리고 미사일은 굶주린 사자를 닮았다. 온누리에 터진 미사일은 굶주린 사자의 이빨과 발톱이 되어서 팔 다리를 뜯어낸다. 와와, 이스라엘 사람은 지금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애비나 새끼나 똑같다. 테러범을 낳은 것은 여자이니 팔레스타인 여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야 한다는 소리도 한다. 그들은 지금 불꽃 축제 중이다. 홀로코스트를 제노사이드로 되갚는 증오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한국 언론은 이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학살 사건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 교전 " 이라고 정의를 내린 듯하다. < 교전 > 이란 사전적 의미로 " 서로 대등한 병력을 가지고 전쟁을 함 " 이다. 좋다, 백 번 양보해서 " 교전 " 이라고 하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가자에서는 지난달 8일부터 25일째 이어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천500여명의 사망자와 8천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중 대다수는 여성과 아이를 비롯한 민간인들이라고 유엔은 밝혔다. 이스라엘에서는 군인 60여명과 민간인 3명이 목숨을 잃었다.지금 팔레스타인 학살 사건은 대등한 병력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융단 폭격을 가하는 것이다. 교전이 아니라 대학살이다. 성인 격투기 선수가 다섯 살배기 꼬마를 두들겨 패고서는 " 서로 치고받고 다투는 중 " 이라고 말하는 꼴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경치 좋은 해변가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아름다운 불꽃이지만 팔레스타인 백성에게는 죽음의 불꽃이다. 채플린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이다. 펑 ! 지금 이 순간에도 밤하늘에 불꽃 하나 터진다. 유대인이여, 아름다운 밤입니까 ? ( 역사 분야 )
2. 닭이 지배하는 사회 ?!
정은영의 << 대한민국 치킨전 >> 은 치킨 발전사로 본 대한민국 사회상을 다루는 미시사 분야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 미각의 역사 " 따위는 온통 바깥 나라 사람이 쓴 미식견문록'이니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인이 쓴 한국 식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 닭의 계보학'이라고 할까 ? 닭은 진화했다. 백숙에서 전기통닭구이로, 전기통닭구이에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으로, 켄터기 후라이드 치킨에서 양념 치킨으로 진화를 거듭했고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닭이 청와대 주인이 되자 마을도 온통 닭이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계급을 A, B, C로 나눈다면 A계급은 닭을 시키고, B계급은 닭을 튀기고, C계급은 닭을 배달한다는 우스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열외 계급인 특권층(재벌, 정치가 따위)을 포함하면 D계급은 닭을 섬긴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닭 공화국이다. 청와대 안주인도 닭이요, 동네 가게를 점령한 것도 닭 가게'이니 말이다. 닭 가게'라는 말이 나와서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 이름이 " 닭고기 맛있어 " 가 아니었던가 ! ( 인문 분야 )
3. 어느 완벽주의자의 회고담
스탠리 큐브릭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찰리 채플린과는 달리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 장르 " 를 실험했다. 그에게는 한 우물만 파야 된다는 10,000시간의 법칙 따위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팠다. << 배리 린든 >> 은 인공 조명 없이 자연 조명만 가지고 만든 시대물 영화였고, << 샤이닝 >> 은 스테디 캠 카메라를 사용하여 효과를 극대화한 공포 영화였다. 잘 알려졌다시피 위대한 걸작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 는 별다른 특수효과 없이 만든 완벽한 SF영화였다. 그는 평생 장르에 뼈를 묻은 감독보다 장르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만들면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가 되었다. 그는 시대를 한 발 앞선 감독이 아니라 최소한 두 발 앞선 감독이었다. 훌륭한 감독은 평론가가 좋아하는 감독과 감독이 존경하는 감독으로 나뉘는데 스탠리 큐브릭은 평론가가 좋아하는 감독이면서 동시에 감독이 존경하는 감독이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장인'이었다. ( 예술 분야 )
4. 구름 추적자 !
구름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혼합한 오브제'다. 구름을 감상하기 위해서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내 소유는 아니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마음 놓고 구름을 감상할 수 있다. 구름은 공공재'다. 하늘이 루브르 박물관 벽이라면 구름은 벽에 걸린 그림'이다. ( 구름과 그림'이라는 낱말이 서로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 그림 종류도 다양하다. 뭉게구름, 거먹구름, 꽃구름, 매지구름, 삿갓구름, 열구름, 새털구름, 비늘구름. 아, 그리고 김애란 때문에 알게 된 비행운'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땅만 보고 살았다. 병아리도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본다는 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구름 읽는 책 >> 은 다양한 구름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쓴 개빈 프레터피니는 구름 감상 협회(Cloud Appreciation Society ) 설립자라고 한다. 오오, 마음에 든다. 여러모로 일상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인 것 같다. 구름 형태를 보면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니, 구름 그림 보고 일기 예보 듣는 꼴이다. 책 겉표지도 잘빠졌다. 책 디자인이 훌륭하다는 점은 출판사가 그 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문방구에서 파는 흰색 마분지로 책 겉표지를 만드는 동문선의 핵폭탄급 디자인 테러'에 비하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이냐. ( 과학 분야 )
5. 땀은 정직하다
<< 괴짜 사회학 >> 으로 좋은 인상을 남긴 수디르 벤카테시'가 신간을 내놓았다. 탁상공론에 의해 만들어진 통계 수치'가 얼마나 엉터리였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사회학자는 거리와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외쳤던 수디르 벤카테시는 여전히 거리와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발언한다. 그 결과가 바로 << 플로팅시티 >> 다. 문득 조은 교수의 작업 방식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디르 벤카테시가 시카고 빈민가에 뛰어들어 10년 간 갱단과 생활했듯이, 조은 교수는 사당동에서 만난 한 가족을 25년 동안 함께 동행하며 관찰했다. 그 결과가 << 사당동 더하기 25 >> 였다. 내가 올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탁월한 책이었다. 조은 교수 또한 탁상공론보다는 현장 비평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회학자'였다. 다 필요 없다. 사회학에서 중요한 것은 통계가 아니다. 툭 하면 통계를 들먹이는 정치가는 현장을 알지 못하는 사이비 정치인이다. 믿을 것은 땀이다. 쏟은 만큼 값지다. ( 사회 분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