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도 한철 :  

 

 




설리, 가희 그리고 주희 씨의 유방





                                                                                             조선 말 사진을 우연히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시대 여성 사진인데,  사진 속 여성은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가슴을 의도적으로 밖으로 내보였다. 온몸을 다 감쌌으나 유방만 드러나니 이상했다. 목욕탕에서 불이 나면 가슴 먼저 감싸고 빠져나오는 현대 여성과는 많이 다른 것 1) 이었다. 배경으로 보아 장터 저잣거리'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또한 옷차림으로 보아 기생은 아니었다. 평범한 백성이었다. 그 사진 밑에 달린 댓글이 웃겼다. 동방예의지국 맞아 ?!  

이러한 사진은 구글링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여자의 가슴이 성적 대상이 아닌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모유 수유를 해야 했던 조선 시대 여인들에게 있어서 가리개는 더운 여름에는 불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서양 중세 시대에는 풀어헤친 머리를 성적 기호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는 잠자리에서나 머리를 풀어헤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여성이 머리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매음녀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자를 유혹했다. 그 당시 여성을 그린 초상화들을 보면 머리를 묶어 치장을 하거나 머리를 가릴 수 있는 캡을 썼다. 외간 남자(화가) 앞에서 신분 높은 여성이 머리를 풀어헤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모나 리사 >> 그림을 얼핏 보면 모나 리사'가 머리를 풀어헤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투명한 캡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빈치 형님의 꼼수로 읽힌다. 이처럼 성적 기호는 시대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요. 걸그룹 fx의 설리가 노브라 차림으로 사진을 올려서 구설수에 올랐다. 가슴을 노출했다는 말은 아니다. 트레이닝복을 입었으나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모양이다. 가슴을 노출한 것도 아니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토록 저열한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 ? 조선 시대 여인의 토플리스를 생각하면 노브라는 양호한 것이 아닐까.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모 알라디너가 있다.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나야 좋지 쌍년 _ 이라고 말했던 사람도 그이고, 여러 사람 앞에서 품평회를 하듯  저 여자 귀엽지 않나요 _ 라고 말해서 해당 여성이 싸움 끝에 블로그를 폐쇄한 것도 그 사람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한수철이다.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자주 내뱉는 말이 " 주희 씨의 유방 " 이다. 아침 먹고 녹즙 먹고, 점심 먹고 녹즙 먹고, 저녁 먹고 녹즙 먹고 맥주 먹고 티븨 봤다는 내용이 전부인 시시껄렁한 페이퍼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주희 씨다.  그는 모종의 관계로 그녀와 만나 술을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블라우스 속에 감춰진 주희 씨의 유방을 슬쩍 훔쳐보거나 모양을 상상한다. 한두 번이 아니라 워낙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보니 글에 주희 씨만 나오면 주희 씨의 유방을 상상하는 문장을 예측할 정도가 되었다. 성추행의 범위에는 특정 부위, 예를 들어 가슴 따위를 지속적으로 바라보아 상대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성추행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주희 씨는 가상의 인물이기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침 먹고 녹즙 먹고 점심 먹고 녹즙 먹고 저녁 먹고 녹즙 먹고 축구 보고 티븨 보는 것을 날마다 기록하는 cctv형 일기에 가상의 인물인 주희 씨를 등장시켜서 희롱하니

 

그가 보기에는 이런 스타일이 현실과 판타지의 꼴라보적 발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주희 씨가 허구적 인물이라고 한다면 이 판타지는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  다시 말해서 주희 씨의 유방은 상상 속 인물의 유방이니 마구 지껄이는 음담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성적 대상은 허구적 인물일지 모르지만 그 성적 대상을 소비하는 주체는 실존 인물이기 때문이다. 주희 씨의 유방은 남성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호명된 성적 대상의 환유이다. 물론 상상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가 주희 씨의 유방을 소비하는 방식은 여성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모멸적이다. 정가은의 모유 수유 사진도 누리꾼에게 비난을 받았다. 선정적이라는 이유이다.

그런데 모유를 수유하는 장면(더군다나 그 사진은 갓난아이에 가려져 있다)을 선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에는 가슴을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선정성이 아닐까 싶다. 유감스럽지만 여자의 가슴은 오롯이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봉사하는 오브제가 아니다. 설리 씨의, 주희 씨의, 가은 씨의 가슴을 슴가로 보지 말고 가슴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 ?  





​                                                     

1) 목욕탕에서 불이 나 옷을 챙기지 못하고 빠져나올 때 가장 현명한 여성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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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18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거 원 어이가 없군요.
알라딘이 언제부터 찌질한 딸딸이의 안방이 됐습니까?
질 떨어지게...ㅉ

예전에 맥라이언이 무슨 영화에서 노브라로 나온 적이 있어요.
그때 유난히 흔들리는 그녀의 가슴을 보면서 순간 당황한 했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적어도 맥라이언을 비롯해서 거기 영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
그런 영화 현장의 자유로움이 차라리 좋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적어도 그들은 유방이 누구의 성적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이란 확고한 인식이 있기에
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식이 판이하게 다르군요. 일부러 노브라 운동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누구를 위한 브라냐면서...

옛날엔 정말 엄마들이 누가 있거나 말거나 애기가 울면 당장 가슴을 열고 젖을 물렸어요.
애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거지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미친년 소리를 들었겠죠.
아니 일부러 그래도 그렇지. 옛날에 무슨 속옷이 그리 발달했다고...
게다가 아들을 낳은 여자들은 더 당당하게 가슴을 드러냈다는 말도 들었는데...
상황에 맞게 용도가 정해졌다면 그것 이상으로 보거나 이하로 보는 건 옳지 못한 태도죠.
그런 부분은 정말 의욉니다. 옛날 남자들은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요즘 남자들이 발끈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09:46   좋아요 0 | URL
구구절절 옳습니다. 이달의 댓글로 선정합니다아 :

만화애니비평 2016-08-1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인상적이었죠.저 책 두권 사서 각각 다른 두사람에 주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09:45   좋아요 0 | URL
악플러 두 놈 때문에 오히려 인기가 상승한 만애비 님, 이달의 매너상으로 선정합니다.

cyrus 2016-08-1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히 고통 받는 모 알라디너... ^^;;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비너스 여신상이 나체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리스 조각가들은 투명 옷을 입은 여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전에 서양미술 관련 책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신의 나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09:48   좋아요 0 | URL
저 모나리사 그림 보다가 깜짝. 가만 보면 투명 망토가 쓰여있더군요.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었는데....


평소 궁금하긴 했습니다. 모나리사가 왜 낯선 화가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쳤을까 ?
그런데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2016-08-18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9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08-19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을 먹이는 것을 성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지요. 지들도 다 젖먹고 컸으면서.
브래지어 강박증은 우리나라가 심하지요. 프랑스만 해도 가슴 작은 여자들을 부러워한다던데, 브라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성 강박(?)이 심한 나라에서 살기 힘듭니다. 뭔들 나은 게 있겠습니까마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13:19   좋아요 0 | URL
오. 그 소리 들었습니다. 프랑스 여자들은 오히려 작은 가슴을 좋아한다고.. 큰 가슴은 아무래도 무게 때문에 생활 자체에서도 큰 부담이 가죠. 가슴이 크면 무게 때문에 디스크가 잘 온다고 하더군요.. 가장 나쁜 폭력은 사실 무지죠. 남성들은 일상에서 내뱉는 성 차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 이 말이죠..

samadhi(眞我) 2016-08-19 13: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러다가 순식간에 페미니스트로 몰아댑니다. ˝따지는(?)˝ 여자를 참지 못 하더라구요. 일단 소통이 안 되니까(싸우는 게 피곤하니) 그런 얘기를 피하게 되지요. 그럴 땐 그 사람들을 불쌍하다 여기고, 대등하게 즐겁게(?) 얘기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단정 짓고 맙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13:34   좋아요 0 | URL
무지가 가장 큰 죄가 아닐까 싶습니다.

samadhi(眞我) 2016-08-19 14:02   좋아요 1 | URL
곰발님이 그런 사람들 모아놓고 특강 좀 하세요. ㅋㅋㅋ
 









일일일깡


                                     릭 에슬리의 "Never Gonna Give You Up 란 뮤직비디오가 있다.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녀석이 동굴 목소리를 내며 노래하고 있다. 엉덩이는 좌우로 흔든다.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흔드는 것이 보인다. 요즘의 힙한 세대들이 보기에는 우스깡 !  재미를 느낀 아이들은 본문과는 상관 없는 이 뮤직비디오를 첨부해서 메일을 보낸다. 메일을 받는 사람이 클릭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촌스럽고 경박스러운 춤과 노래를 보게 된다. 와우, " 릭롤링 " 당한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는 하나의 인터넷 놀이가 되면서 릭롤링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뮤직비디오는 만우절에 가장 많이 호출되는 동영상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이 노래는 그 당시 전세계를 강타한 최고의 울트라 그레이트 히트쏭'이었다. 이처럼 문화 소비제는 20년만 지나도 구닥다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때는 그것이 힙했으나 지금은 합(죽이)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 밈 놀이'였던 릭롤링 현상을 비의 1일1깡과 비교하는 글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 깡 >> 이라는 노래는 불과 3년 전에 출시된 동시대 가요라는 점이다. 


릭롤링이 한물 간 전세대에 대한 조롱이라면 일일일깡은 동시대 문화에 대한 대중의 조롱인 셈이다. 그러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늙어버린 감성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늙어버린 감성인 것이다.  벤자민 버튼처럼 말이다.  가수 비는 << 힙 ㅡ 스러움 >> 과 << 끼ㅡ부리기 >> 를 혼동하고 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 남자가 사타구니에 주먹 넣고 잼잼하는 춤은 힙이 아니라 끼'다. 끼는 어릴 때 발현되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지 자신의 명성을 세계에 고추세웠던 이가 여전히 끼를 부리면 우스깡.  


어릴 때에는 자나깨나 사랑 타령을 하다가도 이제 나이가 들면 세계의 평화와 환경을 걱정하는 노래를 부르기 마련이다. 내가 깡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 스웩 " 이 아니라 " 우엑 " 이었다. 그는 여전히 사타구니에 주먹 넣고 잼잼하며 나 졸라 섹시하지 ? _ 라는 꾸러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정도면 철학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철도 없어 보인다. 힙합이란 장르를 사용하면서 정작 라임과 플로우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가사를 보다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스스로를 월드스타라고 말하는 비의 브랜드 가치라면 국내 최고의 스텝들이 의기투합했을 텐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그리고 진부할 정도로 상투적인 표현을 보라. 어떻게 된 게 한국의 가수들은 죄다 화려한 조명이 항상 자신을 감싼다고 주장하고 그놈의 무대는 항상 불이 꺼져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저씨, 무대 위에 불이 꺼졌으면 집에 가세요 !   이런 상투적인  가사를 쓰는 놈은 그놈의 상투를 잡고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쓰면 그 글에 맞는 동영상을 띄우기 마련이나 꼴도 보기 싫어서 가사만 올린다. 








덧대기


가사 내용에 " 수많은 영화 관계자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지 " 라고 말했을 때, 나는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고작 엄복동이냐 ? 






Yeah 다시 돌아왔지 내 이름 레인(RAIN) 스웩을 뽐내 WHOO! They call it! 왕의 귀환 후배들 바빠지는 중! 신발끈 꽉 매고 스케줄 All Day 내 매니저 전화기는 조용할 일이 없네 WHOO! 15년을 뛰어 모두가 인정해 내 몸의 가치 허나, 자만하지 않지 매 순간 열심히 첫 무대와 같이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 30 sexy 오빠 또 한번 무대를 적셔 레인이펙트 나 비 효과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시간이 멈추길 기도해 but, I’m not gonna cry yeah 불 꺼진 무대 위 홀로 남아서 떠나간 그대의 목소릴 떠올리네 나 쓰러질 때까지 널 위해 춤을 줘 허세와는 거리가 멀어 난 꽤 많은 걸 가졌지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지 귀찮아 죽겠네 알다시피 이 몸이 꽤 많이 바빠 섭외 받아 전세계 왔다 갔다 팬들이 하늘을 날아 WHOO! TV 드라마, 영화 yeah! I get it all 이젠 모두를 붙잡을 노래를 불러 볼륨은 올리고 재 등장과 동시 완전 물 만나 call me 나쁜 오빠 무대를 다시 한번 적시지 레인이펙트 나 비 효과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시간이 멈추길 기도해 but, I’m not gonna cry yeah 불 꺼진 무대 위 홀로 남아서 떠나간 그대의 목소릴 떠올리네 

나 쓰러질 때까지 널 위해 춤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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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29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저 가사 어쩔....;;; 정말 오그라드네요. 저런 노래 내놓다니 정말 뭔깡인지...

곰곰생각하는발 2020-05-31 15:41   좋아요 0 | URL
용기 있지 않습니까 ? 저것도 용기임..

수다맨 2020-05-31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 1일1깡이라는 말이 오르내려서 무슨 뜻인지 굳이 찾아보지 않았는데 여기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깡이 일종의 ‘깡다구‘ 같은 말인가 짐작했습니다.
막줄에 있는 ‘그래서 만든 영화가 고작 엄복동이냐‘는 문장을 보고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희대의 망작이라면서 엄청나게 비판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5-31 15:41   좋아요 0 | URL
욕하면서 보는 재미를 아는 분이라면 깡과 엄은 최고의 작품이죠.. ㅎㅎ
 






















내가 뽑은 빌리 아일리시 찐픽 !










옛날 옛적에, 스티븐 킹이 쓰다가 망친 미완성 원고를 케비넷에 넣어두고 오랫동안 방치한 적이 있다. 하루는 편집자와 식사를 하던 도중에 킹이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장편에 가깝고, 그렇다고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중편에 가깝지만 중편이라고 하기에는 차라리 장편에 가까운 애매모호한 분량의 원고들이 있는데 완성도가 형편없어서 아무래도 쓰레기통에 버려야 겠다는 푸념을 쏟아냈다. 편집자가 미완성 원고를 일단 읽어보겠다고 하자 킹은 남들에게 보여줄 만큼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편집자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중편 4개를 묶은 << 사계 >> 였다.  영화 << 쇼생크 탈출 >> , << 스텐 바이 미 >> , <<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 의 원작이 바로 이 작품집에 수록된 소설들이다. 독설로 유명한 장정일이 이 에피소드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독서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  스티븐 킹이  이 단편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빌리 아일리시가 집에서 오빠와 함께 << ocean eyes >> 를 만들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게 15살 때'다. 나이 서른을 훌쩍 뛰어넘어 사십 가까운 나이에 << 깡 >> 을 만든  가수 비'의 꽝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예술에 있어서 피나는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능력'이다. 스스로를 월드스타라고 말하는 아저씨는 지금도 "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싼다 ㅡ " 고 주장한다( 그리고 허구한 날 불 꺼진 무대 위에 왜 혼자 남아서 청승을 떠는지 모르겠다. 일 끝나면 일찍 집에 들어가세요, 아저씨 ! ). 그놈의 화려한 조명은 왜 항상 자신을 감싸고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 깡 >> 에서 보여준 극악스러운 우스깡스러운 촌스러움은 영원하리라 믿는다.   마이클 잭슨이 사타구니에 주먹 넣고 잼잼해서 세계를 정복한 지가 언제인데 비는 여전히 사타구니에 주먹 넣고 잼잼한다. 봤냐, 나 섹시하지 ?                   비 아저씨, 사타구니에 주먹 넣고 잼잼하지 마세요. 사타구니에 습진 걸려서 긁는 사람 같아요.  더러워요.  빌리 아일리시가 심심해서 집에서 오빠하고 대충 만들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곡이  << ocean eyes >> 라면 한국의 가수는 다 죽어야 한다.  202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빌리 아일리시가 올해의 신인,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 나이 겨우 1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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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한자 遇( : 만날 우) 는 만나다, 짝을 이루다, 합치다는 뜻과 함께 성교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 불우 不遇 > 라는 단어는 관계를 맺지 못하다, 결속으로부터 분리되다, 추방되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종합하면 관계를 맺지 못하고 결속으로부터 분리되어 추방된다는 의미가 된다.  조르주 아감벤의 사유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내집단 內集團 에 포섭되지 못하고 추방당한 호모 사케르(벌거벗은 생명)에 가깝다.  < 불우 > 가 경계 밖으로 추방된 영토라면 < 이웃 > 이라는 단어는 울타리 안에 포섭된 영토'다. "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서로 붙어 있음 " 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이,  < 이웃 > 은 불우의 반대 개념에 가깝다.  지정학적 시선으로 보자면 불우와 이웃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런데도 이 두 단어를 강제로 붙여서 만든 낱말이 바로 << 불우이웃 >> 이다. 


<< 불우이웃 >> 이라는 낱말이 지시하는 것은 명확하다.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 맺음에 실패하여 그 결속으로부터 분리되어 추방된 자'라는 뜻이다. 특정한 집단을 골라서 차이를 강조하고, 구별짓기를 시도하고,  대상을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이 단어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의심해야 한다. 그렇기에 연말이 되면 종을 딸랑거리며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 _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불쾌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단순하게 이웃을 도웁시다 _ 라고 말하면 될 것을 굳이 차이를 강조하고, 구별짓기를 시도하고, 대상을 타자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이다. 


불우이웃의 탄생은 내가 소속된 이웃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안에서 철저하게 소득 수준을 바탕으로 저소득 계층을 울타리 밖으로 추방한(혹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적 시선으로 인간 존재를 실격 처리한),  그럼으로써 계급과 신분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우리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다.  불우이웃을 이웃보다 낮은 계급으로 강등해야지만 대중은 비로소 그들을 도울 동정심이 생긴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_ 라는 구호가 탄생한 배경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인간 군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 인간은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을 추방하려고 애쓰는 존재다. " 



화 << 기생충 >> 에서 반지하 계급을 대표하는 기택 가족과 지하 계급을 대표하는 문광 가족의 대립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지하나 지하나 서류상으로는 모두 지층으로 표시되는 동일 주거 환경에 속하지만 두 가족은 서로 충돌한다. 두 하층 계급은 한정된 일자리와 잠자리를 놓고 제로섬게임을 펼친다. 문광이 충숙에게 우리는 모두 불우이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자 기택의 아내 충숙은 정색을 하며 이 사실을 부정한다.  그들은 박사장의 대저택에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을 추방하려고 애를 쓴다.  그것은 불우이웃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우리 이웃의 폭력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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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0-05-26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을 인용하니 더 와닿고 좋네요b

불우이웃이란 표현 삼가야겠습니다. 세심하게 바라보면 참 많은 것들이 보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5-27 16:05   좋아요 0 | URL
웃기잖아요. 그냥 우리의 이웃을 도웁시다, 하면 되는데 굳이 불우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기택(송강호 분) 가족의 모략에 빠져 직장을 잃고 대저택에서 쫓겨난 가정부 문광(이정은 분)이 되돌아오는 순간,  영화 << 기생충 > 은 장르를 180도 바뀐다.  자신의 삶이 바닥이라고 믿었던 기택 가족은 바닥 반지하 보다도 더 낮은 밑바닥 지하(실) 에 사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때 문광은 기택 부인 충숙(장혜진 분)에게 도움을 얻고자 손을 내민다. " 언니, 우리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 "  지하나 반지하나, 바닥이나 밑바닥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더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도긴개긴 아니냐는 논조다. 하지만 충숙은 문광의 말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자신이 속한 계급을 부정한다. " 내가 왜 불우이웃이야 ? "  충숙이 보기에 자신이 사는 반지하는 완전한 지하 공간이 아니다.  반지상'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을 부정함으로써 기택 가족은 문광 가족과의 연대와 결합에 반대한다. 


충숙은 지정학적 위치의 우위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신분의 우위를 주장한다.  밑바닥보다는, 그래도...... 바닥이 더 높아 !   하지만 이 기세는 문광이 자신이 해고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다시 역전된다.  충숙에게 " 언니 " 라는 윗 서열을 부여했던 문광은 자신을 동생이라 부르는 충숙에게 " 쌍년 " 으로 응수한다.  아가리 닥쳐, 쌍년아 !                   내가 이 장면을 주목한 이유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를 부정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서로 < 이웃 > 과 < 불우이웃 > 에 대한 구별짓기를 통해서 자신의 우위를 주장한다. 


이웃과는 이웃이 될 수 있지만 불우이웃과는 이웃이 될 수 없다는 태도다. <<파스타 가게 사장의 선한 영향력 >> 이라는 글은 파스타 가게 사장의 선한 의지'는 과연 좋은 행위인가에 대한 반문에서 시작된 글이었다. 내가 " 좆같다 ㅡ  " 는 쌍스러운 표현을 써가면서 파스타 사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차이를 부각해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목 때문이다. 그가 돕고자 하는 아이를 굳이 " 결식아동 " 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장면은 영화 << 기생충 >> 에서 내가 왜 불우이웃이냐고 반문하는 충숙의 애티튜드를 닮았다. 이웃이면 이웃이지, 


굳이 < 불우- > 라는 단어를 덧대는 심보는 아동이라는 단어 앞에 < 결식- > 이라는 단어를 강조함으로써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강조하는 마음과 닮았다. 그가 순결한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면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주민센터 복지과 직원과 혐업하여 식당과 아이들을 연결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식당 문 앞에 대자보를 붙이며 자신의 선한 의지를 광고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   돈을 주고 매식하는 사람과 가난해서 결식하는 사람을 구별하고 차이점을 부각하는 행위는 당사자에게 견딜 수 없는 굴욕감과 부끄러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간과했다. 


어찌되었든,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광고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상파 9시 뉴스에 전파를 탔으니 말이다. 묻고 싶다.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국가에서 주는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이'라면 당당하게 그 식당을 찾을 용기가 있을까 ?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나그네 입장에서는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지내 _ 라는 집주인의 말이 전혀 편하지 않는 것처럼  결식 아동은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그 식당의 공고문 또한 그 아이에게는 편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주고 매식하는 사람들 속에서 결식 아동이라는 신분을 감춘 채 밥을 먹어야 하는 그 아이는 외롭지 않을까 ?   배려랍시고, 혹은 위로랍시고 던진 한마디가 때로는 가장 폭력적인 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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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5-23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파스타 사장 9시 뉴스뿐만 아니라 어떤 예능에도 나와서 가게 홍보를 하더군요. 그리고 어제 인터넷을 훑다가 보았던 뉴스인데 익산에도 결식아동들에게 삼겹살을 무한으로 제공해주는 고깃집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고깃집도 파스타집처럼 식당문 앞에 대자보를 붙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5-23 16:53   좋아요 0 | URL
역겹죠, 이런 인간들 보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특히 가난은 어린아이들에게는 특히나 예민한 문제인데 상업적 이득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인간을 보면.... 그 파스타... 카, 정말 욕나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