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도 한철 :  

 

 




설리, 가희 그리고 주희 씨의 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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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말 사진을 우연히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시대 여성 사진인데,  사진 속 여성은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가슴을 의도적으로 밖으로 내보였다. 온몸을 다 감쌌으나 유방만 드러나니 이상했다. 목욕탕에서 불이 나면 가슴 먼저 감싸고 빠져나오는 현대 여성과는 많이 다른 것 1) 이었다. 배경으로 보아 장터 저잣거리'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또한 옷차림으로 보아 기생은 아니었다. 평범한 백성이었다. 그 사진 밑에 달린 댓글이 웃겼다. 동방예의지국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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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진은 구글링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여자의 가슴이 성적 대상이 아닌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모유 수유를 해야 했던 조선 시대 여인들에게 있어서 가리개는 더운 여름에는 불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서양 중세 시대에는 풀어헤친 머리를 성적 기호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는 잠자리에서나 머리를 풀어헤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여성이 머리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매음녀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자를 유혹했다. 그 당시 여성을 그린 초상화들을 보면 머리를 묶어 치장을 하거나 머리를 가릴 수 있는 캡을 썼다. 외간 남자(화가) 앞에서 신분 높은 여성이 머리를 풀어헤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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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모나 리사 >> 그림을 얼핏 보면 모나 리사'가 머리를 풀어헤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투명한 캡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빈치 형님의 꼼수로 읽힌다. 이처럼 성적 기호는 시대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요. 걸그룹 fx의 설리가 노브라 차림으로 사진을 올려서 구설수에 올랐다. 가슴을 노출했다는 말은 아니다. 트레이닝복을 입었으나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모양이다. 가슴을 노출한 것도 아니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토록 저열한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 ? 조선 시대 여인의 토플리스를 생각하면 노브라는 양호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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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모 알라디너가 있다.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나야 좋지 쌍년 _ 이라고 말했던 사람도 그이고, 여러 사람 앞에서 품평회를 하듯  저 여자 귀엽지 않나요 _ 라고 말해서 해당 여성이 싸움 끝에 블로그를 폐쇄한 것도 그 사람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한수철이다.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자주 내뱉는 말이 " 주희 씨의 유방 " 이다. 아침 먹고 녹즙 먹고, 점심 먹고 녹즙 먹고, 저녁 먹고 녹즙 먹고 맥주 먹고 티븨 봤다는 내용이 전부인 시시껄렁한 페이퍼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주희 씨다.  그는 모종의 관계로 그녀와 만나 술을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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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그는 블라우스 속에 감춰진 주희 씨의 유방을 슬쩍 훔쳐보거나 모양을 상상한다. 한두 번이 아니라 워낙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보니 글에 주희 씨만 나오면 주희 씨의 유방을 상상하는 문장을 예측할 정도가 되었다. 성추행의 범위에는 특정 부위, 예를 들어 가슴 따위를 지속적으로 바라보아 상대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성추행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주희 씨는 가상의 인물이기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침 먹고 녹즙 먹고 점심 먹고 녹즙 먹고 저녁 먹고 녹즙 먹고 축구 보고 티븨 보는 것을 날마다 기록하는 cctv형 일기에 가상의 인물인 주희 씨를 등장시켜서 희롱하니

 

그가 보기에는 이런 스타일이 현실과 판타지의 꼴라보적 발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주희 씨가 허구적 인물이라고 한다면 이 판타지는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  다시 말해서 주희 씨의 유방은 상상 속 인물의 유방이니 마구 지껄이는 음담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성적 대상은 허구적 인물일지 모르지만 그 성적 대상을 소비하는 주체는 실존 인물이기 때문이다. 주희 씨의 유방은 남성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호명된 성적 대상의 환유이다. 물론 상상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가 주희 씨의 유방을 소비하는 방식은 여성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모멸적이다. 정가은의 모유 수유 사진도 누리꾼에게 비난을 받았다. 선정적이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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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유를 수유하는 장면(더군다나 그 사진은 갓난아이에 가려져 있다)을 선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에는 가슴을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선정성이 아닐까 싶다. 유감스럽지만 여자의 가슴은 오롯이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봉사하는 오브제가 아니다. 설리 씨의, 주희 씨의, 가은 씨의 가슴을 슴가로 보지 말고 가슴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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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욕탕에서 불이 나 옷을 챙기지 못하고 빠져나올 때 가장 현명한 여성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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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18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거 원 어이가 없군요.
알라딘이 언제부터 찌질한 딸딸이의 안방이 됐습니까?
질 떨어지게...ㅉ

예전에 맥라이언이 무슨 영화에서 노브라로 나온 적이 있어요.
그때 유난히 흔들리는 그녀의 가슴을 보면서 순간 당황한 했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적어도 맥라이언을 비롯해서 거기 영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
그런 영화 현장의 자유로움이 차라리 좋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적어도 그들은 유방이 누구의 성적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이란 확고한 인식이 있기에
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식이 판이하게 다르군요. 일부러 노브라 운동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누구를 위한 브라냐면서...

옛날엔 정말 엄마들이 누가 있거나 말거나 애기가 울면 당장 가슴을 열고 젖을 물렸어요.
애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거지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미친년 소리를 들었겠죠.
아니 일부러 그래도 그렇지. 옛날에 무슨 속옷이 그리 발달했다고...
게다가 아들을 낳은 여자들은 더 당당하게 가슴을 드러냈다는 말도 들었는데...
상황에 맞게 용도가 정해졌다면 그것 이상으로 보거나 이하로 보는 건 옳지 못한 태도죠.
그런 부분은 정말 의욉니다. 옛날 남자들은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요즘 남자들이 발끈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09:46   좋아요 0 | URL
구구절절 옳습니다. 이달의 댓글로 선정합니다아 :

만화애니비평 2016-08-1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인상적이었죠.저 책 두권 사서 각각 다른 두사람에 주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09:45   좋아요 0 | URL
악플러 두 놈 때문에 오히려 인기가 상승한 만애비 님, 이달의 매너상으로 선정합니다.

cyrus 2016-08-1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히 고통 받는 모 알라디너... ^^;;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비너스 여신상이 나체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리스 조각가들은 투명 옷을 입은 여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전에 서양미술 관련 책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신의 나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09:48   좋아요 0 | URL
저 모나리사 그림 보다가 깜짝. 가만 보면 투명 망토가 쓰여있더군요.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었는데....


평소 궁금하긴 했습니다. 모나리사가 왜 낯선 화가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쳤을까 ?
그런데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2016-08-18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9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08-19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을 먹이는 것을 성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지요. 지들도 다 젖먹고 컸으면서.
브래지어 강박증은 우리나라가 심하지요. 프랑스만 해도 가슴 작은 여자들을 부러워한다던데, 브라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성 강박(?)이 심한 나라에서 살기 힘듭니다. 뭔들 나은 게 있겠습니까마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13:19   좋아요 0 | URL
오. 그 소리 들었습니다. 프랑스 여자들은 오히려 작은 가슴을 좋아한다고.. 큰 가슴은 아무래도 무게 때문에 생활 자체에서도 큰 부담이 가죠. 가슴이 크면 무게 때문에 디스크가 잘 온다고 하더군요.. 가장 나쁜 폭력은 사실 무지죠. 남성들은 일상에서 내뱉는 성 차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 이 말이죠..

samadhi(眞我) 2016-08-19 13: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러다가 순식간에 페미니스트로 몰아댑니다. ˝따지는(?)˝ 여자를 참지 못 하더라구요. 일단 소통이 안 되니까(싸우는 게 피곤하니) 그런 얘기를 피하게 되지요. 그럴 땐 그 사람들을 불쌍하다 여기고, 대등하게 즐겁게(?) 얘기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단정 짓고 맙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13:34   좋아요 0 | URL
무지가 가장 큰 죄가 아닐까 싶습니다.

samadhi(眞我) 2016-08-19 14:02   좋아요 1 | URL
곰발님이 그런 사람들 모아놓고 특강 좀 하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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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의 핵심은 " 먼 곳 " 이다. 김추자는 위스키와 말보로 레드로 숙성시킨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았던가. 님은 먼 곳에 있다고, 영원히 먼 곳에 있다고 말이다. 이 기본 설정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멜로는 멜로가 아니라 메로나다. 예를 들어 봉천동에 사는 남자와 바로 옆 동네인 신림동에 사는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재회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다. 무릎 나온 츄리닝 입은 봉천동 남자가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이제 막 목욕탕을 나온 신림동 여자와 우연히 재회한다면 ? 참.... 애틋하시겠다. 애틋혀.
 

사는 바닥이 좁아서 오고 가다 자주 만나면 그것은 텔레토비요, 갑돌이갑순이새마을농어촌문예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텔레토비는 얼라들이나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니들이 사랑을 알어 ?? 텔레토비가 꼬꼬마들이나 보는 방송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세상 밖으로 시야를 확장시켜야 한다. 멜로의 격정적 서정은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떠나야 한다. 그것이 멜로의 공식이다. 그래야 두 남녀 간에 < 거리감 > 가 생기니까. 거리감 때문에 헤어지고(여기에는 심리적 거리감도 포함된다), 거리감 때문에 그리워하다가, 그 아득한 거리감 때문에 다시 만난다. 이 거리감이 멜로의 이야깃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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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애프런 감독이 연출한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머무는 거주지가 각각 시애틀과 뉴욕이라는 설정(시애틀과 뉴욕은 극과 극에 위치한다. 거리가 3875km) 또한 멜로와 거리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멜로의 원형은 단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저승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먼 거리가 어디 있을까. 반면에 봉천동 남자와 옆 동네 신림동 여자의 운명적 격정 멜로는 좀 우습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갈라파고스 ? 남극 ?? 우리에게 가장 먼 곳은 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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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있어서 북한은 달나라보다 먼 나라다. 2019년에 방영된 명랑멜로코믹드라마 << 사랑의 불시착 >> 은 남한 여성과 북한 남성의 사랑을 다룬 멜로 드라마다. 제작진은 " 멜로 = 거리 " 라는 공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갈 수 없는 나라에 사는 남녀가 사랑을 한다 ? 이 설정에서 출발한 장거리 연애는 현실성 없는 만화적 상상력(웹툰의 서사)을 더해 무리없이, 뜨겁게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현빈과 손예진의 앙증맞은 연기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연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북한 동네 에미나이와 군부대 간나새끼들이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현빈 - 손예진의 알콩달콩만큼 알콩달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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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도덕 없는 남조선 에미나이 손예진의 호박씨 까는 연기와 북조선 간나새끼 표치수의 후라이 까는 전쟁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입말의 장관이다. 이 드라마는 한심할 정도로 상투적이기는 하나 바로 그 맛이 이 드라마를 살렸다. 불량식품은 저렴한 맛으로 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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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침개를 뒤집다가 공중에서 제대로 회전하지도 못한 채 떨어져 안 익은 면과 안 익은 면이 겹쳐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동그란 부침개가 반달 모양이 된 것이다. 이 정도 두께면 부침개가 아니라 팬케이크'였다. 실수를 어떻게 해서든 만회하려고 두 면을 떼려고 수작을 부렸지만 익지 않은 면끼리 붙은 부침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중략) 가끔, 뒤집기에 실패해서 반달 모양이 된 부침개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익지 않은 한쪽 면이 익지 않은 한쪽 면과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뜨거운 몸으로 서로를 녹여서 붙어버린 부침개를 보면서 사랑을 읽어내는 내 감성은 아마도 실패한 사랑을 경험한 남자의 뼈아픈 후회일 것이다. 결국 뜨겁고 지독한 사랑이란 설익은 것과 설익은 것이 만날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다 익은 부침개는 겹쳐 놓아도 붙지 않으니까( 500일의 썸머, 설익은 것과 설익은 것이 만날 때 中 ㅡ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30282821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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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익은 면과 안 익은 면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실패한 부침개를 보다가 문득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지독하다. 더럽고 징그럽다. 이해 당사자들은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 믿는 편이다. 롤랑 바르트도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질병이라고 말이다. 더럽고 징그럽고 지독한 사랑은 죽기 살기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한다. 설익은 면과 설익은 면이 만나면 떨어지지 않는 부침개처럼 사랑 또한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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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 사랑의 대표적 소설 << 폭풍의 언덕 >> 을 보라. 히스클리프의 익지 않은 한쪽 면과 캐서린의 익지 않은 한쪽 면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뜨겁게 녹여서 붙어버린 부침개다. 익지 않았기 때문에 붙는다. 사랑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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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책 읽기가 게을러졌다. 내가 알라딘 활동이 뜸한 이유에는 시력 저하가 크게 한몫했다. 어쩌겠는가. 나이가 드니 말이다. 한때 라텍스보다 쫀쫀한 괄약근과 철근 부럽지 않은 남근의 소유자였으나 이제는 가슴에 힘을 주지 않으면 젖가슴이 되고 에스트로겐의 과다 분비로 영화 보면서 질질 짜는 남자가 되었다. 빌어먹을, 이 세상은 왜 이렇게 슬픈 거야. 분하다. 세월 이 자식아.  됐고 ! 책을 읽고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리는 곳이 알라딘이다보니 영화에 대한 글을 이곳에 남길 때마다 살짝 부담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뻐꾸기 알이라고나 할까. 시력이 저하되다 보니 옛날보다 자주 영화를 보게 되고, 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알라딘의 트러블메이커로 다사다난했던 나를 기억해 줄 뉘 있을까마는 행여, 내 소식이 궁금한 이웃을 위해 짧은 공지 하나 남긴다. 요즘 나는 얼룩소라는 글쓰기 플렛폼에서 글을 쓴다. 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영화를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내 이야기를 하거나. 이곳에서 나는 " 악담 " 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공격적인 글을 쓰다가 글이 삭제되는 경험도 했다. 하여튼, 됐고. 가끔 안부가 궁금하시다면 내방하시라. 


글쓰기 플렛폼 얼룩소, 악담

https://alook.so/users/QPtwW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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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8-1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오랫만입니다.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네요. 모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고 그곳에서도 영화와 관련하여 시원한 글 남기시길 응원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3-08-16 15:24   좋아요 2 | URL
옛날에는 깔롱 부린다고 도수 없는 안경 쓰고 그랬는데 막상 눈 나빠서 안경 쓰니 그렇게 불편하네요. ㅎㅎㅎ

나와같다면 2023-08-1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생각하는발님 반갑습니다
케빈에 대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몇 가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틸다 스윈튼의
I want you to tell me, why?
이 대사가 한참을 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북플에서도 가끔 뵐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3-08-28 14:52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가끔 찾아올게요..
 


모두 다 입이 닳도록 인간만이 희망 _ 이라고 말할 때 김영민은 인간만이 절망 _ 이라고 말했다. 그의 직설적인 도그마에는 어느 정도 시니컬한 농담이 내재되어 있으나 본질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에게 있어서 그 막막한 절망을 견디는 힘은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부정성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의 절망에 동의한다. 오은영은 자타가 공인하는(아프리카의 사바나 치타마저 인정하는) 대한민국 3대 대통령 : 백종원, 강형욱, 오영은)이다. 전파를 타고 금쪽이를 처방하는 교육법은 진리가 되었으니 방정환 이후로 어린이의 세계에서 가장 추앙하는 위인일 것이다. 그는 이런 어룩을 남기시었다. " 아이의 행복, 안정감,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학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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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말이어서 감동적이기는 하나 이 말은 자칫 위험한 범주의 덫에 빠질 수 있다. 금쪽에게 홀딱 빠진 학부모들은 오은영의 솔루션을 공교육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나쁜 아이가 교사에게 침을 뱉고, 쌍년이라고 욕을 하고, 주먹으로 교사의 얼굴을 강타해도 교사는 아이의 행복과 안정감 그리고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 감내해야 된다고 믿는다. 왜 ? 오은영 박사가 이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고 주장하니깐 말이다. 그것은 강형욱이 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강형욱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해야 더 많은 견주들이 희망을 가지고 행동 교정을 받기 위하여 비싼 상담료를 지불할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

오은영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고 말을 해야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 사업체를 방문하는 품행 장애 아동을 둔 학부모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가이기에 앞서 사업가다. 오은영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이 세상에 나쁜 아이는 많다, 너무 많다. 교육을 통해서 나쁜 아이를 좋은 아이로 개선할 수 있다는 계몽적 시선은 천진난만하기는 하지만 현실을 왜곡한다. 학부모들은 오은영이 문제 아동을 1 대 1로 상담하는 개인사업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서는 교사를 개인 과인 선생으로 여긴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사는 1인용 맞춤 교육을 하는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공교육 교사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자신의 나쁜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면 찾아와 교사 멱살을 잡고 오은영을 들먹이는 것이다. 다시 오은영의 말을 상기하자. 공교육에서 교사들은 교실에 모인 모든 학생들의 행복한 학습권을 위해서 문제 아동의 행복을 제한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학대가 아니라 공교육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다. 이 세상에 나쁜 아이는 많다. 대한민국 3대 대통령인 오은영에게 한마디하고 싶다. " 은영 씨, 한 아이의 난동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학습권을 침해받는다면 그 아이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입니다. 현장 속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학대 운운하며 훈장질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하신다면서 학부모와 면담하면서 받는 상담료가 100만 원이 넘는다는 것은 무엇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 적당히 합시다. "

​

​

+

인문학의 핵심은 부정성을 배우는 것이다( 그 반대의 영역은 자기계발서이다. 자기계발서의 핵심은 긍정성이다).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문학은 인간의 부정성을 각인하고 반성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김영민은 인간만이 절망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오은영은 아이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을 절대악으로 취급을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서 부정성마저 배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힘을 기른다.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 실패하는 감정, 부정당하는 감정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이 모든 감정들을 배제한 채 긍정성만 배우도록 강요하는 오은영은 전형적인 행복 전도사들을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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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7-23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전에 듣기론 7~80선이었는데... 100이요?
대체 몇프로가 인상된거죠?
그니까요. 자식을 잘못키운 부모도 같이 벌을 받아야한다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7-24 10:55   좋아요 0 | URL
요즘은 오은영 스티커도 팔더라고요. 한류스타 되셨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7-24 10:55   좋아요 0 | URL
요즘은 오은영 스티커도 팔더라고요. 한류스타 되셨어요.

1905 2023-07-3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은영 잘 모르고 그렇게오은영 프러그램 한편도 보지 않었는데.. 오은영이ㅜ저렇게 주장해도 정치권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 했어야 한다고 봐요. 교육청에서 교권 겅화 입법안을 내도 국힘에서 반대했다면서요. 이건 경찰관들이 권총을 들고 있어도 함부로 제압 못 하는 거랑 마찬가지라 봐요. 가해자를 건드리면 바로 손배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이 몸 사리는 거라고.. 손배금액이 몇 천이니깐 몸 사린다고 하는데.. 교권을 제도적으로 정치권에서 마련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발님도 아주 드문드문 오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8-16 13:43   좋아요 0 | URL
아이고 댓글 늦어 죄승합니다. 제가 알라딘은 거의 잘 안 와요. 바쁜 것은 아닌데... ㅎㅎㅎㅎ 잘 지내시죠 ? 네네. 당연히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지 무조건 개인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