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back Mountain]을 봤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
여러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행복하지 못했다.
왜?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알면서도 두려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 망할놈의 두.려.움.

1963년 여름. Ennis랑 Jack은 함께 캠핑을 하며 양을 방목한다.
양들을 지키며 매일매일 함께 생활하는 20살 또래 Ennis와 Jack.

넓디 넓은 Brokeback mountain에 두 사람만이 있다.
술을 많이 마신 어느날 밤...
Ennis랑 Jack은 같이 잔다.

다음 날 아침, 당황한 Ennis는 말한다.
" I'm no queer."(queer = homosexual)

Ennis를 쳐다 보며 Jack이 대답한다.
"Me neither."

두려움과 강박관념, 의무감으로 가득한
불쌍한 남자 Ennis.
20년이란 긴 시간동안 스스로도 행복하지 못했고,
Jack과 아내, 잠깐 사귄 여자친구까지 다 불행하게 했다.

자기 딴엔 모두에게 잘하려고 했다.

아내와 두 딸을 부양하려 최선을 다했고,
(아내가 Jack과의 관계를 오래 전 부터 알았고, 그 일로 괴로워했다는 것도 모르고...)
Jack하고 가끔 만나기 위해 평소에 더 열심히 일했다.

Jack은 이혼을 하고 둘이 같이 목장을 하자고 했지만,
두려움에 사로 잡힌 Ennis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일년에 한두번 만나 같이 캠핑을 하는게
Ennis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서....Ennis는 모두를 불행하게 했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여름 한철 방목이 끝나고 4년 후에 처음 만났을 때,
Ennis랑 Jack은 서로를 얼마나 원하고 있었는지를 몸으로 깨닫는다.

그렇게 절실한데도,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서로 보지 못한 4년이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Ennis는 가끔 만나는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절대,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고....

이 때 Jack이 내뱉는 절규.
" Often? Every fucking 4 years? "

그렇게 원하는데도....
Ennis랑 Jack은 1년에 한두번 겨우 만났다.20년 동안...

그리고....
Jack이 죽고 나서야 후회한다.
Jack이 죽고 나서야 Jack을 향한 사랑을 맹세한다.

다 그 두려움 때문에...
그 망할 놈의 두려움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포기한 적....나도 있다.아니 많다.

두려워서,
자신이 없어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무서워서,
지키지 못했고, 포기했다.
그리고는 그 소중한 것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미련에 시달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Ennis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Ennis는 어떻게 할까?
온갖 불안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Jack을 선택할까?
두개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하나는, 남보기 멀쩡하지만 Jack의 부재에 헉헉한, 텅빈 삶.
다른 하나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지만 Jack과 함께 하는 삶.

사족) 처음부터 끝까지 "절제미"가 느껴지는 보기 드문 영화다.

Ennis가 Jack이랑 헤어지고 혼자서 벽을 치며 오열할 때,
Jack이 이번 주말에는 만날 수 없다는 Ennis의 말을 듣고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혼자 운전할 때,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지 알았다.

감독이 동양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절제미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올 수 없었을 것 같다.

존경한다. 이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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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3-1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부끄러운 나의 치부를 모르는 척 건드려 주고 나중에는 안아주기까지 한 영화였습니다. 두려움 앞에서 몸 사리면서 무수히 많은 고통과 불행을 타인에게 전가한 지난 과오들 때문에 나는 뼈가 시리게 아프고 또 슬펐더랬습니다.

kleinsusun 2006-03-1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이 영화 보면서 내내 아팠어요. 제가 참....비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Ennis가 몹시도 미웠어요. 이런걸 "투사"라고 한다죠?

이리스 2006-03-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밉다기 보다는 보는 것 자체가 괴로웠던것 같아요.
내 경우엔..나의 의지가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또한 두려움 앞에서 그렇게 초라하게 무너지는 것인지를 너무도 일찍 깨달았던 탓일까요. 한때나마 목숨같았던 소중한 인연을 그렇게 스스로 등돌리고 난 뒤에 몇번씩 앓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 꼭 4년이 지났군요. 영영 끊어져버린지.


kleinsusun 2006-03-1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nnis랑 Jack도 꼭 4년만에 만났죠?
낡은구두님에게도 4년이 지났군요.
그동안....많이 힘드셨죠?
4년이 지난 지금, 낡은구두님이 그저 환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봄도 오는데...꽃도 피는데....님도 예쁜, 환한 미소 지으시길...

다락방 2006-03-1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거 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보고 있었거든요. 수선님 덕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또 물씬! 아흑~ 제가 보기 전에 내려지지 않기만 바랄뿐예요.

moonnight 2006-03-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봤는데 무척 울었어요. 정말 가슴 아프죠.

kleinsusun 2006-03-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극장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빨리 보세용!^^

달밤님도 이 영화 보면서 많이 아프셨군요.
전 Ennis한테 자꾸 감정이입이 되서 보면서 힘들었어요.
월욜 시작 어떠세요? 이번주가 06년의 11번째 주랍니다. 기분 좋은 한주 보내 Boa요!^^

코마개 2006-03-1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근데 자막 번역 좀 그렇지 않던가요? 백두대간이 돈이 없어서 그랬나....

kleinsusun 2006-03-1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번역이 쫌 허접했죠. S대가 젤로 웃기더군요.ㅎㅎㅎ

다락방 2006-03-1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저 어제 이 영화 봤어요. 혼자 강남에 가서 :)

kleinsusun 2006-03-14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보셨군요. 어떠셨어요?

다락방 2006-03-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감동 받아 눈물 흘리고 싶었는데 전혀 한방울의 눈물도 고이질 않더라구요.
뭐랄까..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영화였어요.

kleinsusun 2006-03-14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고! 저도 그랬어요.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원래 디따 잘 우는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