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최명희의 《혼불》이 10권으로 완간된 지 스물 번째 해다. 1990년에 1부와 2부 내용을 담은 네 권의 책이 한길사에서 선보였고, 1996년 12월에 5부 여섯 권의 책이 나왔다. 한길사 판본은 절판되었고, 2009년에 판권이 매안 출판사로 옮겨 재출간되었다.

 

《혼불》 1부는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 공모전 상금은 2천만 원. 그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상금 액수이다. 정식 작가가 되기 전에 최명희는 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였다. 그런 그녀가 1980년대 초 한국 문단에 파란을 일으키면서 등장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듬해에 최명희는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한국 문단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겼다. 그 작품이 바로 《혼불》 1부다. 《혼불》로 주목받은 최명희는 1988년 9월부터 1995년 10월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 2부에서 5부까지 연재했다. 소설이 연재되는 데 걸린 세월은 만 7년 2개월.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 연재 기록이다.

 

그녀는 난소암 투병 중에도 펜을 끝까지 놓지 않은 채 원고지에 매달렸다. 병마와 싸우는 고통스러운 집필 끝에 5부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혼불》 10권 완간 이후로 최명희는 5부 이후의 이야기 구상을 염두에 두었으나 그녀의 몸속에 있는 혼의 기운이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 결국, 소설을 끝맺지 못하고 1998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혼불》은 일제 강점기 남원지방을 배경으로 종가를 지키는 여인 3대의 삶을 추적했다. 제목의 ‘혼불’은 사람이 죽기 전 몸에서 빠져나가는 생명을 뜻한다. 작품에서의 혼불은 이른바 정신의 불이며 존재의 불꽃으로 한 인간 혹은 한 민족의 핵이 되는 요체를 상징한다. 안타깝게도 영원히 끝내지 못한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문장마다 스며든 우리말 가락과 치밀하게 복원된 민속 풍습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혼불》 1부는 1983년 동아일보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신동아> 연재 시절에 《혼불》을 접한 독자들의 현재 나이는 대략 50세 초반에서 60대 후반이다. 이들은 동아일보사에 나온 1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한길사 《혼불》을 알게 된 독자들은 동아일보사 판본의 존재를 잘 모를 수 있다.

 

 

 

 

 

 

 

 

 

 

 

 

 

 

 

 

 

 

사실 나도 《혼불》 1부가 따로 출간된 적 있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 윤성근 씨의 책 《심야책방》(이매진, 2011)에 《혼불》의 역사를 정리한 글이 있다.

 

 

 

 

 

동아일보사 판본은 매안 출판사 판본으로 읽을 수 있는 《혼불》 1부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한 권의 책을 원하는 독자가 있다. 동아일보사 《혼불》 1부는 《혼불》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책이다. 당연히 애서가들은 더 이상 구하기 힘든 최초의 책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동아일보사 《혼불》 1부도 온라인 헌책 중고가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더욱이 초판일 경우, 책의 값어치가 더 오른다. 기본적으로 중고가 금액이 5만 원이며 가장 비싼 가격은 십만 원이 훌쩍 넘는다.

 

나는 동아일보사 《혼불》 1부의 존재만 알고 있었다가 어제 운 좋게도 대구시청 근처에 있는 헌책방 ‘평화서적’에서 샀다. 이 책은 잔뜩 쌓아 올린 책 무더기 제일 밑에 깔렸었다. 이걸 발견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진짜 이 짜릿한 기분 때문에 헌책방을 안 갈 수가 없다. 악명 높은 금액의 희귀도서를 싸게 살 때가 기분이 더 짜릿하다. 지불한 돈은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이었다. 이제 《혼불》 10권을 갖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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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1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그 짜릿함...작가의 부재가 더해지네요....

cyrus 2016-04-12 11:21   좋아요 0 | URL
정말 엄청난 소설을 남기고 떠나셨지요. 박경리의 《토지》와 쌍벽을 이루는 여성 작가의 대하소설입니다. 아마도 다음 시대에는 《토지》와 《혼불》 같은 작품을 쓴 여성 작가가 나오기 힘들 겁니다.

오후즈음 2016-04-10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득템 하셨네요! 이런 득템도 뭘 알아야 할수 있는것 같아요.

cyrus 2016-04-12 11:22   좋아요 0 | URL
헌책방을 자주 찾는 분의 블로그에 정보를 많이 얻습니다. ^^

stella.K 2016-04-1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완전 득템이구만.
혼불이 절판됐나? 이런 건 어느 출판사에서라도 계속 나와야하는데 말야.
오래 전에 1권 읽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게 결국 못 읽는 신세가 됐군.
변명이지만, 책이 워낙 많이 나오니 뭐 하나를 진득하게 못 붙들고 있겠더군.ㅠ

cyrus 2016-04-12 11:24   좋아요 0 | URL
아니요. 매안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건 지금도 판매되고 있어요.

중학생 때 한길사 판본 1권을 읽으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라도 완독 도전해볼 걸 그랬어요. ㅠㅠ

표맥(漂麥) 2016-04-1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 장길산... 토지... 객주...
저에겐 같은 레벨로 와 닿습니다...^^

cyrus 2016-04-12 11:26   좋아요 0 | URL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있지요. 다섯 작품 모두 읽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제가 독서 집중력이 딸려서요. ㅎㅎㅎ
 

 

 

 

 

 

현재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가로와 세로 길이 모두 0.75mm. 22쪽으로 이루어진 책 속에 꽃 그림과 꽃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맨눈으로 책 속의 내용을 볼 수 없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올해 3월에 기네스북 공식 기록보다 더 작은 책이 공개됐다. 러시아의 미니어처 예술가가 만든 러시아 알파벳 책과 러시아 전설 모음집의 크기는 0.07~0.09mm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작은 책이 궁금해서 한국 기록원(KRI)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는지 찾아봤다. 검색창에 가장 작은’, ‘도서를 입력해봤지만, 가장 작은 책기록은 없었다.

 

 

 

 

 

 

 

비공식적이지만 뉴우월드 미니 영한사전은 한국에서 가장 작은 판매용 출판물 혹은 가장 작은 사전이다. 이 영한사전은 30년 전에 나왔다. 놀랍게도 이 미니 사전은 비매품이 아니다. 가격은 250. 1970년대 동전 10원이면 아주 시원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었다. 100원짜리 동전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순두부 백반의 가격이 99원 이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발행처는 시사영어사. 영어교육 전문 출판사로 시작하여 어학학원을 운영하는 거대 주식회사로 성장했다. TOEIC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는 시사영어사보다 와이비엠(YBM)’이 더 익숙하다. 1961민영빈(閔泳斌) 회장이 시사영어사를 설립했다. YBM은 민영빈 회장의 영문 머리글자다. 1974년에 뉴우월드학원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학원사업을 시작했고, 1979년에 <시사 엘리트 한영대사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YBM 공식 홈페이지의 회사 연혁을 보면 미니 영한사전에 대한 기록이 없다. 작은 크기의 책을 비매품이 아닌 정식 판매용으로 선보였으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역사적인 출판물일 텐데 조금 늦게 나온 <시사 엘리트 한영대사전>보다 대접을 못 받는 실정이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어서 책의 가로세로 길이를 자로 재어보지 않았다. 사전 크기가 내 새끼손가락 크기에 못 미친다. 사전을 펼칠 때 손가락 힘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 험하게 책을 펼치다가는 책등이 쉽게 망가질 수 있다. 당연히 A부터 Z까지 알파벳으로 시작되는 단어가 수록되었다. 시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맨눈으로 단어와 뜻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크기가 작다는 특징 외에는 보통 사전의 구성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사전은 잘못 만들어진 파본이다. 사전 뒤표지를 펼치면 머리말과 A로 시작하는 첫 장이 나온다. 내용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책의 앞, 뒤표지 도안 상하(上下)가 거꾸로 되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면 위 사진을 보시라. 사진은 Y로 시작하는 단어가 배열된 장을 펼친 상태이다. 사전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앞표지 도안이 뒤에 나오고 말았다. 앞표지 도안 상하 위치가 뒤바뀐 채 나왔다. 이 미니 사전은 모든 게 다 거꾸로 되어 만들어졌다. 정말 보기 드문 가장 작은 초판 파본이다.

 

미니 사전은 선물로 받은 것이다. 지난주에 희귀도서 제본을 원하는 분에게 책을 잠시 빌려준 적이 있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남성 B 씨는 내가 예전에 썼던 희귀도서 관련 글을 보고, 메일로 그 책을 양도해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B 씨의 양도 제안을 거부하고, 책을 팔 생각이 없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B 씨는 제본이라도 하고 싶다면서 책을 보내달라고 다시 한 번 제안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책 빌려주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B 씨의 간절한 마음에 우편으로 책을 보냈다. 나는 B 씨의 진실함과 양심을 믿었다. B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이틀 전 그에게 빌려준 책이 집으로 돌아왔다. 고맙게도 B 씨는 상태가 안 좋았던 희귀도서를 튼튼한 상태로 제본해서 돌려줬다. 그리고 소포 봉투 안에 미니 사전이 들어 있었다. 봉투 안을 제대로 안 살펴봤으면 미니 사전이 있는 줄 모르고 쓰레기통에 버릴 뻔했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으로부터 보낸 책 선물을 받아왔지만, 이렇게 가장 작은 책선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B 씨는 내 특이한 취향을 어떻게 알았을까. 가장 작고 특이한 선물인 만큼 보관을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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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8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09 07:33   좋아요 1 | URL
미니 사전을 만든 이유가 진짜 궁금해요.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치고는 너무 작아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4-0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저 사전 느무 귀여운데요...
근데 그 분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책 제목은 뭡니까 ? 무슨 책이관데...

cyrus 2016-04-09 07:38   좋아요 0 | URL
《세계의 요괴도감》이라는 책입니다. 일본에서 만든 요괴도감을 번역한 겁니다. 인쇄가 조악하지만, 오컬트에 관심 많은 분들은 이 책을 구하고 싶어합니다. ^^

singri 2016-04-0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런 책선물 ^^

cyrus 2016-04-09 07:39   좋아요 0 | URL
잊지 못할 특별한 선물입니다. ^^

stella.K 2016-04-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아, 정말...! 좋겠다.
그런데 네 손이 이렇게 생겼구나. 남자 손 치고 예쁘네.
손톱도 정갈하고.ㅋㅋㅋㅋ

cyrus 2016-04-09 07:41   좋아요 0 | URL
손톱에 때가 잘 껴서... ㅋㅋㅋ  손톱 관리를 세심하게 합니다. 관리라고 해봤자 손톱 깎는 게 전부에요. ^^

해피북 2016-04-08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손이 이렇개 예뻐도 되나요 ㅋㅋㅋ
이렇게 훈훈한 소식 참 좋네요^^

cyrus 2016-04-09 07:44   좋아요 0 | URL
어제 책을 선물한 분과 전화 통화를 했어요. 만족스러운 목소리를 듣게 되니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 문장은 흔하게 보아 예사롭게 지나쳤던 것들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강조한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큼지막한 꽃들에 먼저 눈길을 건넨다. 자연의 미인계에 끌리면 자잘한 야생화들에는 눈길도 나누지 않는다. 이름 없는 들꽃이 보잘것없다고 여기니 마음이 당기지 않는다.

 

독일의 삽화가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은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오래 보아야 더 아름답다. 그림 앞에 오랫동안 붙박여 그 그림이 주는 감동을 음미해야 한다. 막스라는 이름의 화가는 자신이 ‘순간을 채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부흐홀츠의 오너캐(작가 자신을 대입한 인물)다. 막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막스의 풍경화가 예사롭지 않다. 눈 내리는 마을에 눈코끼리 무리가 지나가는 장면이 보이는가 하면, 거대한 피리가 밤하늘 위에 붕붕 떠다니기도 한다. 막스는 자신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소년에게 자신의 그림을 맡긴 채 돌연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처음에 소년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기가 아쉽다는 느낌에 젖는 순간이 다가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각각의 그림마다 뭔가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러면서도 내 시선을 꼭 붙들어 매서 그림 속으로 자꾸만 자꾸만 나를 빨려 들어가게 하는 특이하고, 정확히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순간을 채색하는 내 영혼의 팔레트》 36쪽)

 

 

소년은 막스의 그림을 보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림 속 세상이 현실과 딴판이다. 우리는 중력을 거부하고 공중에 부양한 서커스 마차와 목장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선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다. 막스의 그림은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상상하게끔 한다. 그렇지만 그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막스가 아닌 바로 그림을 보는 우리의 손에 쥐고 있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자유롭게 그림 속 풍경을 훨훨 날아다닌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그림의 비밀을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느낌이 오면 하염없이 들여다보면 된다. 시간이 자꾸 옆에 재촉하면서 기다리더라도 마음 놓고 그림을 봐야 한다.

 

부흐홀츠의 그림의 매력을 한 문장만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소년의 말을 빌리자면 ‘특이하고, 정확히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림의 해석은 무의미하다. 자신만의 방법으로도 충분히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다행인지 몰라도 부흐홀츠는 그림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간접적으로 화가가 채집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교감한다. 보면 볼수록 부흐홀츠가 묘사한 세계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차원으로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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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0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그림 같은 사진 한번 찍어 봤으면 ㄷㄷㄷㄷ좋겠습니다.^^..

cyrus 2016-04-08 15:17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은 지금도 멋진 사진을 찍고 계십니다. ^^

2016-04-07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08 15:1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마지막 평일 잘 보내세요. ^^

시이소오 2016-04-0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네요. 이야기가 그려질듯 합니다 ^^

cyrus 2016-04-08 15:18   좋아요 0 | URL
그림 속 이야기는 독자 마음대로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

꽃핑키 2016-04-0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코끼리떼를 미처 못봤지 말입니다ㅋ 저의 무신경함에 깜짝 놀라서, 오래오래 바라보다 갑니다. 좋은 그림과 리뷰 고맙습니다 ♡

cyrus 2016-04-08 15:19   좋아요 1 | URL
제가 웹사이트에 저장한 사진을 올려서 그림의 매력이 덜 나왔어요. 그림책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 송수권 ‘산문(山門)에 기대어’ -

 

 

 

지금으로부터 십이 년 전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0교시가 있었다. 1교시 시작 전에 자습했다. 나는 그 시간에 문학 문제집을 펴서 읽었다. 공부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예습을 빙자한 시간 흘러 보내기에 가까웠다. 문학 문제집에 있는 현대 시나 한시를 읽었다. 그러니까 미리 문제를 풀지 않고 문제집 지문만 들여다본 것이다. 밑줄 치기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만난 시가 참 좋았다. 문학 소년의 가슴을 살짝궁 두드리게 한 시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송수권 시인의 ‘산문에 기대어’였다. 산 위에 날아가는 기러기 때를 죽은 누이의 눈썹으로 치환하는 시적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을 접하는 학생들은 탁월한 시적 표현이 주는 찰나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눈썹’의 의미를 암기한다. 왜 기러기 때가 누이의 눈썹으로 변하는지 알지 못한다. 시를 읽어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시의 의미를 칠판에 적어줘야 제대로 이해한다. 그리고 칠판에 적힌 내용을 공책에 따라 적으면서 머릿속에 주입한다. 시를 느끼면서 읽는 것과 시를 억지로 해석하면서 보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말이 너무 길어졌다. 학창 시절 내가 좋아했던 시를 만든 시인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비록 시인의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산문에 기대어’ 이 시 한 편은 내 가슴속에 감동의 무늬로 남아 있다. 시인은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누이를 만났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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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4-0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수권 시인의 시는 제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시인이 타계했다는 소식은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송 시인이 쓴 몊 편의 시는 알고 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새아의서재 2016-04-05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뉴스에서 보고 알았습니다. 수능 일세대라. 스능언어영역 풀면서 공부했었던 시네요. 저역시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6-04-06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6-04-06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돌아가셨군요.ㅠ 오래전 시인이 우리동네 평생교육원에 강의하러 오셔서 뵈었는데...
 

 

 

 

 

 

 

 

 

 

 

 

 

 

 

 

 

 

 

 

작년 2월쯤에 《아라비안나이트》(동서문화사)를 읽기 시작했다가 말았다. 독서를 포기한 이유가 많다. 완독을 향한 집중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수록 재미없었다. 이야기 속의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진 《아라비안나이트》는 독자를 질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매력이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정리한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의 주석 또한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도 각주가 아닌 미주인 점이 독자를 곤란하게 하는 책의 함정이다. 독자는 본문과 각주를 번갈아 보는 방법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버튼의 주석을 읽지 않는다. 무식하게 주석을 꼼꼼히 읽다가는 제풀에 지쳐 책을 덮어버린다.

 

버턴은 중동 지역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 문화 및 풍습 그리고 언어와 관련된 지식을 주석으로 소개했다. 그렇지만 남성우월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한 시대의 프리즘을 통과한 주석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모든 주석을 다 씹어 먹으면서 완독할 자신이 있으면 말이다.

 

샤리아르 왕은 동생의 아내가 시녀, 노예들과 함께 난교를 일삼는 장면을 목격한다. 버턴은 흑인 노예를 여성의 육체에 흥분하는 음란한 존재로 묘사했다.

 

 

숲 속 한 그루 나무 위에서 거대한 몸집의 검둥이 하나가 눈알을 뒤룩거리고 침을 흘리면서 사뿐히 내려왔다. 백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39쪽)

 

 

버턴은 이 문장에 주석을 달았는데,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적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독자의 얼굴을 붉히게 할 정도로 민망하다. 인용문에 언급된 ‘필자’는 나다.

 

 

음탕한 여자들이 흑인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음경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소말릴란드(영국이 지배했던 소말리아 북부 지역-필자의 주)에서 어느 흑인의 것을 보았는데, 여느 때에도 거의 6인치였다. 이것은 흑인과 아프리카산 동물, 이를테면 말의 한 특징이다. 그에 비해 순수한 아랍족(사람도, 동물도)은 평균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집트인은 아랍인이 아니고 살결이 약간 흰 흑인이라는 점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하고 있다. 이 거대한 음경은 발기된 동안 본디의 크기에 비례하여 굵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성행위가 이루어지며 여성의 쾌감이 매우 높아진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인도의 진지한 이슬람교도는 대부분 여자들을 데리고 잔지바르(탄자니아에 위치한 항구도시-필자의 주)로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그곳에서 여자들이 큰 매력과 유혹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사정(射精) 지연과 ‘쾌락의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으리라.

 

 

자, 다시 39쪽에 있는 문장을 보자. 주석을 확인했으니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라는 구절이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페니스에 대한 버턴의 주석은 문제가 많다. 그의 주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살펴보자.

 

흑인 남성의 평균 페니스 사이즈가 백인보다 크기는 하지만 페니스의 크기가 가지각색인 것은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일반화에 사로잡힌 유럽인들은 흑인의 페니스가 아주 크다고 믿었다. 버튼 이전에 나온 문헌들에서도 흑인의 거대한 페니스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유럽인들은 이를 근거로 흑인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백인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영국 백인 버턴이 보기에는 소말릴란드 흑인의 페니스가 흉측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버턴도 그렇고, 오늘날 남자들이 많이 착각하는 성 상식 중 하나가 페니스가 클수록 성관계에 유리하다는 믿음이다. 크기의 열세를 극복하려고 페니스를 확대하는 시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크기에 집착하다가 자신의 소중한 그것을 돌팔이 의사에게 맡기는 순간 고자가 될 수 있다. 단순하게 페니스를 삽입한다고 해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건 아니다. 아직도 페니스 삽입이 최고로 여기는 남자를 만나면 그가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거나 야동으로 성을 배웠다고 보면 된다. 야동은 남성의 성 의식을 왜곡하고, 잘못된 환상을 부추긴다. 여성의 성감대는 무궁무진하다. 남성이 애정의 손길로 여성의 몸을 어루만져주면 여성은 오르가슴을 누릴 수 있다.

 

《아라비안나이트》 완역본은 선정적인 묘사가 지나치게 많고, (남성우월주의에 비롯된) 성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이 반영된 내용이 더러 있다. 버턴의 아내는 남편이 편집한 《아라비안나이트》가 못마땅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라비안나이트》 저작권을 가진 아내는 야한 장면만 삭제한 《아라비안나이트》를 재출간했다. 아내가 손 된 판본이 바로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아동용 《아라비안나이트》의 시초다.

 

 

 

 

+ 한 가지 더, 오류가 있는 버턴의 주석

 

 

근친상간은 문명국 대도시의 인구 밀집 빈민지대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언어도단적인 행위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결합은 이집트의 아시스 신과 오시리스, 아시리아인, 고대 페르시아인 같은 고도의 고대문명을 가진 민족 사이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며 합법적이었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부모가 체질상의 결함을 갖고 있지 않은 한 해롭지 않다. 부모가 건강하기만 하면 하등동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 자식은 키울 수 있고 건강하기도 한다. (1권 280~281쪽)

 

 

1885년에 버턴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발표했을 당시 영국은 화려한 제국의 시절을 누렸다. 영국인들은 좋은 시절을 ‘빅토리아 시대’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정작 빅토리아 여왕은 불행한 사건을 맞이했다. 1882년에 ‘알바니 공작’으로 알려진 넷째 아들이 혈우병으로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혈우병은 옛날 왕실에서 많이 발병했다. 근친혼이 많았던 당시 왕실 간의 혼사를 통해 발병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왕가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혈우병 보인자였던 여왕의 딸들은 스페인, 독일, 러시아 왕족과 결혼함으로써 그들 자손 또한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 알렉세이가 혈우병으로 고생했다. 그 당시 생존 확률 0%인 불치병을 고쳐 준 사람이 바로 훗날 러시아의 국정을 쥐고 흔들었던 요승 라스푸틴이다.

 

라스푸틴이 나왔으니 그의 페니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병원은 표본 통에 있는 라스푸틴의 페니스를 보관하고 있다. 보통일 때 23cm라고 한다. 발기 상태가 되면 평소보다 길이가 더 나오겠지. 자신의 페니스를 믿은 라스푸틴이 수많은 러시아 귀족 부인들을 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병원에 보관된 페니스의 주인이 정말 라스푸틴이 맞는지 논란은 있지만, 라스푸틴의 딸은 1977년에 사망할 때까지 아버지의 페니스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라스푸틴은 죽어서도 이름뿐만 아니라 거대한 페니스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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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4-0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거 읽다 말았어요..ㅋㅋ 완전 지루해서 데지는 줄 알았다니까요..ㅋㅋ 아마 한 7년 전이었을 거라는..ㅎ

cyrus 2016-04-06 13:10   좋아요 0 | URL
이야기가 병맛스럽거나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고 싶은 이상한 집착이 있어요.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재미없는 소설인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4-0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봐도 이런 성실 리뷰는 사이러스 님이 갑입니다. ㅎㅎㅎㅎㅎㅎ 페니스를 보관하기도 하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6-04-06 13:12   좋아요 0 | URL
라스푸틴의 페니스 사진도 봤습니다. 나무위키에 ‘라스푸틴’을 검색하면 링크된 사진을 볼 수 있어요. ㅋㅋㅋㅋ

yureka01 2016-04-0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야동보다 야설이 지루한가 봐요.
읽어 본적은 없지만.사이러스님 덕분에 이런것도 있엇구나 싶었습니다.ㅎㅎㅎ

cyrus 2016-04-06 13:13   좋아요 1 | URL
제가 B급 소재에 관심이 많아요. <아라비안나이트>를 소개하는 글에 페니스를 언급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저밖에 없을 겁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