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쯤에 《아라비안나이트》(동서문화사)를 읽기 시작했다가 말았다. 독서를 포기한 이유가 많다. 완독을 향한 집중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수록 재미없었다. 이야기 속의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진 《아라비안나이트》는 독자를 질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매력이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정리한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의 주석 또한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도 각주가 아닌 미주인 점이 독자를 곤란하게 하는 책의 함정이다. 독자는 본문과 각주를 번갈아 보는 방법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버튼의 주석을 읽지 않는다. 무식하게 주석을 꼼꼼히 읽다가는 제풀에 지쳐 책을 덮어버린다.

 

버턴은 중동 지역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 문화 및 풍습 그리고 언어와 관련된 지식을 주석으로 소개했다. 그렇지만 남성우월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한 시대의 프리즘을 통과한 주석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모든 주석을 다 씹어 먹으면서 완독할 자신이 있으면 말이다.

 

샤리아르 왕은 동생의 아내가 시녀, 노예들과 함께 난교를 일삼는 장면을 목격한다. 버턴은 흑인 노예를 여성의 육체에 흥분하는 음란한 존재로 묘사했다.

 

 

숲 속 한 그루 나무 위에서 거대한 몸집의 검둥이 하나가 눈알을 뒤룩거리고 침을 흘리면서 사뿐히 내려왔다. 백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39쪽)

 

 

버턴은 이 문장에 주석을 달았는데,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적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독자의 얼굴을 붉히게 할 정도로 민망하다. 인용문에 언급된 ‘필자’는 나다.

 

 

음탕한 여자들이 흑인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음경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소말릴란드(영국이 지배했던 소말리아 북부 지역-필자의 주)에서 어느 흑인의 것을 보았는데, 여느 때에도 거의 6인치였다. 이것은 흑인과 아프리카산 동물, 이를테면 말의 한 특징이다. 그에 비해 순수한 아랍족(사람도, 동물도)은 평균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집트인은 아랍인이 아니고 살결이 약간 흰 흑인이라는 점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하고 있다. 이 거대한 음경은 발기된 동안 본디의 크기에 비례하여 굵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성행위가 이루어지며 여성의 쾌감이 매우 높아진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인도의 진지한 이슬람교도는 대부분 여자들을 데리고 잔지바르(탄자니아에 위치한 항구도시-필자의 주)로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그곳에서 여자들이 큰 매력과 유혹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사정(射精) 지연과 ‘쾌락의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으리라.

 

 

자, 다시 39쪽에 있는 문장을 보자. 주석을 확인했으니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라는 구절이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페니스에 대한 버턴의 주석은 문제가 많다. 그의 주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살펴보자.

 

흑인 남성의 평균 페니스 사이즈가 백인보다 크기는 하지만 페니스의 크기가 가지각색인 것은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일반화에 사로잡힌 유럽인들은 흑인의 페니스가 아주 크다고 믿었다. 버튼 이전에 나온 문헌들에서도 흑인의 거대한 페니스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유럽인들은 이를 근거로 흑인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백인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영국 백인 버턴이 보기에는 소말릴란드 흑인의 페니스가 흉측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버턴도 그렇고, 오늘날 남자들이 많이 착각하는 성 상식 중 하나가 페니스가 클수록 성관계에 유리하다는 믿음이다. 크기의 열세를 극복하려고 페니스를 확대하는 시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크기에 집착하다가 자신의 소중한 그것을 돌팔이 의사에게 맡기는 순간 고자가 될 수 있다. 단순하게 페니스를 삽입한다고 해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건 아니다. 아직도 페니스 삽입이 최고로 여기는 남자를 만나면 그가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거나 야동으로 성을 배웠다고 보면 된다. 야동은 남성의 성 의식을 왜곡하고, 잘못된 환상을 부추긴다. 여성의 성감대는 무궁무진하다. 남성이 애정의 손길로 여성의 몸을 어루만져주면 여성은 오르가슴을 누릴 수 있다.

 

《아라비안나이트》 완역본은 선정적인 묘사가 지나치게 많고, (남성우월주의에 비롯된) 성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이 반영된 내용이 더러 있다. 버턴의 아내는 남편이 편집한 《아라비안나이트》가 못마땅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라비안나이트》 저작권을 가진 아내는 야한 장면만 삭제한 《아라비안나이트》를 재출간했다. 아내가 손 된 판본이 바로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아동용 《아라비안나이트》의 시초다.

 

 

 

 

+ 한 가지 더, 오류가 있는 버턴의 주석

 

 

근친상간은 문명국 대도시의 인구 밀집 빈민지대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언어도단적인 행위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결합은 이집트의 아시스 신과 오시리스, 아시리아인, 고대 페르시아인 같은 고도의 고대문명을 가진 민족 사이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며 합법적이었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부모가 체질상의 결함을 갖고 있지 않은 한 해롭지 않다. 부모가 건강하기만 하면 하등동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 자식은 키울 수 있고 건강하기도 한다. (1권 280~281쪽)

 

 

1885년에 버턴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발표했을 당시 영국은 화려한 제국의 시절을 누렸다. 영국인들은 좋은 시절을 ‘빅토리아 시대’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정작 빅토리아 여왕은 불행한 사건을 맞이했다. 1882년에 ‘알바니 공작’으로 알려진 넷째 아들이 혈우병으로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혈우병은 옛날 왕실에서 많이 발병했다. 근친혼이 많았던 당시 왕실 간의 혼사를 통해 발병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왕가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혈우병 보인자였던 여왕의 딸들은 스페인, 독일, 러시아 왕족과 결혼함으로써 그들 자손 또한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 알렉세이가 혈우병으로 고생했다. 그 당시 생존 확률 0%인 불치병을 고쳐 준 사람이 바로 훗날 러시아의 국정을 쥐고 흔들었던 요승 라스푸틴이다.

 

라스푸틴이 나왔으니 그의 페니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병원은 표본 통에 있는 라스푸틴의 페니스를 보관하고 있다. 보통일 때 23cm라고 한다. 발기 상태가 되면 평소보다 길이가 더 나오겠지. 자신의 페니스를 믿은 라스푸틴이 수많은 러시아 귀족 부인들을 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병원에 보관된 페니스의 주인이 정말 라스푸틴이 맞는지 논란은 있지만, 라스푸틴의 딸은 1977년에 사망할 때까지 아버지의 페니스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라스푸틴은 죽어서도 이름뿐만 아니라 거대한 페니스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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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4-0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거 읽다 말았어요..ㅋㅋ 완전 지루해서 데지는 줄 알았다니까요..ㅋㅋ 아마 한 7년 전이었을 거라는..ㅎ

cyrus 2016-04-06 13:10   좋아요 0 | URL
이야기가 병맛스럽거나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고 싶은 이상한 집착이 있어요.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재미없는 소설인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4-0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봐도 이런 성실 리뷰는 사이러스 님이 갑입니다. ㅎㅎㅎㅎㅎㅎ 페니스를 보관하기도 하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6-04-06 13:12   좋아요 0 | URL
라스푸틴의 페니스 사진도 봤습니다. 나무위키에 ‘라스푸틴’을 검색하면 링크된 사진을 볼 수 있어요. ㅋㅋㅋㅋ

yureka01 2016-04-0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야동보다 야설이 지루한가 봐요.
읽어 본적은 없지만.사이러스님 덕분에 이런것도 있엇구나 싶었습니다.ㅎㅎㅎ

cyrus 2016-04-06 13:13   좋아요 1 | URL
제가 B급 소재에 관심이 많아요. <아라비안나이트>를 소개하는 글에 페니스를 언급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저밖에 없을 겁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