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 문장은 흔하게 보아 예사롭게 지나쳤던 것들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강조한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큼지막한 꽃들에 먼저 눈길을 건넨다. 자연의 미인계에 끌리면 자잘한 야생화들에는 눈길도 나누지 않는다. 이름 없는 들꽃이 보잘것없다고 여기니 마음이 당기지 않는다.

 

독일의 삽화가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은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오래 보아야 더 아름답다. 그림 앞에 오랫동안 붙박여 그 그림이 주는 감동을 음미해야 한다. 막스라는 이름의 화가는 자신이 ‘순간을 채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부흐홀츠의 오너캐(작가 자신을 대입한 인물)다. 막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막스의 풍경화가 예사롭지 않다. 눈 내리는 마을에 눈코끼리 무리가 지나가는 장면이 보이는가 하면, 거대한 피리가 밤하늘 위에 붕붕 떠다니기도 한다. 막스는 자신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소년에게 자신의 그림을 맡긴 채 돌연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처음에 소년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기가 아쉽다는 느낌에 젖는 순간이 다가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각각의 그림마다 뭔가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러면서도 내 시선을 꼭 붙들어 매서 그림 속으로 자꾸만 자꾸만 나를 빨려 들어가게 하는 특이하고, 정확히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순간을 채색하는 내 영혼의 팔레트》 36쪽)

 

 

소년은 막스의 그림을 보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림 속 세상이 현실과 딴판이다. 우리는 중력을 거부하고 공중에 부양한 서커스 마차와 목장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선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다. 막스의 그림은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상상하게끔 한다. 그렇지만 그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막스가 아닌 바로 그림을 보는 우리의 손에 쥐고 있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자유롭게 그림 속 풍경을 훨훨 날아다닌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그림의 비밀을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느낌이 오면 하염없이 들여다보면 된다. 시간이 자꾸 옆에 재촉하면서 기다리더라도 마음 놓고 그림을 봐야 한다.

 

부흐홀츠의 그림의 매력을 한 문장만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소년의 말을 빌리자면 ‘특이하고, 정확히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림의 해석은 무의미하다. 자신만의 방법으로도 충분히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다행인지 몰라도 부흐홀츠는 그림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간접적으로 화가가 채집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교감한다. 보면 볼수록 부흐홀츠가 묘사한 세계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차원으로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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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0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그림 같은 사진 한번 찍어 봤으면 ㄷㄷㄷㄷ좋겠습니다.^^..

cyrus 2016-04-08 15:17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은 지금도 멋진 사진을 찍고 계십니다. ^^

2016-04-07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08 15:1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마지막 평일 잘 보내세요. ^^

시이소오 2016-04-0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네요. 이야기가 그려질듯 합니다 ^^

cyrus 2016-04-08 15:18   좋아요 0 | URL
그림 속 이야기는 독자 마음대로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

꽃핑키 2016-04-0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코끼리떼를 미처 못봤지 말입니다ㅋ 저의 무신경함에 깜짝 놀라서, 오래오래 바라보다 갑니다. 좋은 그림과 리뷰 고맙습니다 ♡

cyrus 2016-04-08 15:19   좋아요 1 | URL
제가 웹사이트에 저장한 사진을 올려서 그림의 매력이 덜 나왔어요. 그림책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