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 존중받지 못한 내 마음을 위한 심리학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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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벌에 번듯한 직장, 돈 많고 화려한 인생.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삶이다. 사람대접받기 위해 돈이 제일 중요한 지경이니, 개개인이 그렇게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 대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끔은 하나같이 획일적인 꿈들이 불편하게 여겨진다. 누구나 이를 꿈꾸어야 할 때 실패한 인생들이 수두룩해진다. 물론 많은 사람이 좌절을 딛고 일어선다. 좌절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장점을 상기하면서 자기 가치를 유지한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실패에 큰 좌절을 경험하면 불행하다고 단정한다.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크게 휘청댄다. 한 번도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최고라는 가치만을 추구해온 사람들이다.

 

항상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좌절을 향해 스스로를 내몬다. 그들에게 불만족은 습관이다. 하나의 성격이다. 불평과 불만,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삶 속에 함께하고 있다. 그들은 쓸데없이 힘을 소진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순간에 우울증에 빠져든다. 기꺼이 칭찬을 받아들이질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한다. 그들의 내면에는 항상 배고픈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내면의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거짓 자아를 만들어낸다. 세상과 타협해 사람들이 바라는 존재가 된다. 기대감에 떠밀려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눈을 감아버린다. 이때 자신의 본모습에서 너무 많이 떨어진 사람들은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 같은 두려움에 대한 모든 것들이 아마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된 두려움이 아닐까 한다.

 

요즘 심리학 키워드는 자기를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통찰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동을 찾는 일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결국,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되새겨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를 알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반성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자기 자신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올바르지 않은 자기반성이다. 불평을 털어놓는 과정을 통해 마음은 가벼워질지 몰라도, 자기를 알고 자아를 실현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리학을 공부한 박진영은 잘못된 자기 사랑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 거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그녀도 마음의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자기반성을 하지 않으면 건강한 인격이 향상되지 않아 자기애를 느끼지 못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마음 깊숙이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보려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완벽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남을 이기고 성취하는 자기 모습을 꿈꾸게 되는 삶은 강하고 화려하게 자기 모습을 부풀려 상처를 가리고자 한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고에는 거의 언제나 커다란 왜곡이 숨어 있다.

 

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외면한 채 오르막길만을 보여준다. 사람들끼리 상처와 기쁨을 나누면서 진솔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부나 명예와 같이 눈에 보이는 가치에 따라 사람을 존경하고 멸시하고 순위를 매긴다. 이렇게 잘난 자기 모습을 지키고자 늘 고군분투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 공허하고 쓸쓸한 그늘에 감정이 지배당한다. 너무나 외로워진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를 원한다. 만약 누군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준다면 스스로 엄격해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요즘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존감을 느끼고 있는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저 마음이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이거야말로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방법이다.

 

인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멋진 일인지 마음 깊이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럭저럭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임을 말입니다. (들어가며, 6)

     

앞으로 누군가가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물어보면,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대답하겠다. 부족한 점이 많아도 남의 행복에 억지로 흉내 내면서 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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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4-27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좋아_

cyrus 2016-04-27 22:18   좋아요 0 | URL
`그럭저럭`을 국어사전에 찾아봤어요. `충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라는 뜻이에요. 저는 이 말이 대충을 의미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부족해도 나만의 행복을 찾으면서 살아야겠어요. ^^

수이 2016-04-2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그만 읽고 자!!

cyrus 2016-04-27 22:18   좋아요 0 | URL
네. 편안한 밤 되세요. :)

알레프 2016-04-2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속마음을 들킨 기분입니다.

cyrus 2016-04-27 22:20   좋아요 0 | URL
제가 자존감이 약합니다. 이 책을 읽으니까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알레프 2016-04-2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부분에서 책은 위로가 되는 듯 합니다! 저도 저같은 부류를 뭐라고 칭하는지 책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ㅋㅋ

cyrus 2016-04-27 22:28   좋아요 1 | URL
독서가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지만, 전 책을 사거나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책이 완벽한 해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한 점을 책이 알려줄 때가 있어요. ^^

알레프 2016-04-27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규정을 해주니 문제해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게 책이라는 친구를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만 듭니다

cyrus 2016-04-27 22:34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사람 친구도 좋아하지만, 항상 제 곁에 있는 책 친구가 있으면 든든해요. ^^

즐거운상상☆ 2016-04-2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읽었어요~ 다른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신경쓰고산다라는 말이 와닿네요ᆢ 제가 그러고 있거든요ㅠ 조금 바꿔봐야겠어요 저두^^

cyrus 2016-04-28 18:52   좋아요 0 | URL
제 글보다는 책에 있는 내용이 좋습니다. 저도 남의 신경에 맞추느라 피곤하게 살았어요. 저도 고쳐야겠어요. ^^

2016-04-27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8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04-2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뭐라하든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내 길을 가겠노라, 하는 자세로 살겠습니당~~~

cyrus 2016-04-29 20:09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그런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ㅎㅎㅎ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는 ‘꿀노잼’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재미없지만 끝까지 보게 된다. 《비글호 항해기》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 여행기로 손꼽힌다. 그렇지만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재미있는 건 아니다. 다윈은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관찰했다. 문어, 곤충류, 스컹크 같은 포유동물, 신천옹 등의 조류, 물고기, 파충류, 양서류 등 낯설고 신기한 동물들의 습성과 생태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관찰한 것을 그대로 묘사한 문체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항해기에서 다윈이 언급한 생물들을 모두 세어보면 백여 종은 넘을 것이다. 부록으로 동식물 백과사전 한 권을 만들 수 있는 수다.

 

다윈이 영국 해군성 측량선인 비글호에 승선했을 때 그의 나이는 22살이었다. 의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의 권유를 완강히 거절하고, 비글호에 몸을 실었다. 사실 다윈은 생물학보다는 지질학에 관심이 많았다. 비글호의 좁은 선실에서 라이엘이라는 지질학자가 쓴 <지질학 원리>를 탐독했다. 바다에 사는 조개의 화석을 통해 지질의 변동을 유추했다. 그리고 산호초의 종류와 차이를 명확하게 파악해 산호초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밝혀냈다. 《비글호 항해기》의 하이라이트는 갈라파고스 군도에 만난 동식물에 대한 기록이다. 다윈은 섬마다 부리 모양이 조금씩 다른 핀치새들이 신기했다. 핀치들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독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대륙의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싹트게 된다. 이곳 핀치들이 동족이면서도 먹이 종류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은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펼치는 근거가 됐다. 다윈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나 사회제도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유럽인의 침략에 힘없이 무너지는 원주민들의 최후를 안타깝게 여겼다. 링컨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다윈은 노예제도를 비판했다.

 

 

 

 

 

다윈이 5년 동안 여러 지역을 항해하면서 정리한 공책의 수가 열여덟 권이나 된다. 그만큼 《비글호 항해기》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장순근 박사의 《비글호 항해기》는 주석과 부록이 있는 장을 제외하면 800쪽 넘는다. 최재천 교수가 감수한 《비글호 항해기》는 600쪽이 넘는다. 장순근 박사는 주석을 아주 꼼꼼하게 정리했다. 박사의 노고를 생각하면, 책이 재미없어도 안 읽을 수가 없다. 그런데 장순근 박사의 책은 무겁다. 완독하고 싶은 용기가 꺾이게 하는 엄청난 비주얼이다. 최재천 감수의 《비글호 항해기》는 읽기 편하게 편집되었다. 원주와 역주가 본문 아래에 배치되었다. 장순근 박사의 주석의 양과 비교하면 많지 않아서 주석을 싫어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번역본이다. 최재천 감수 번역본의 가장 큰 장점은 총 21장으로 이루어진 항해 기록을 요약해서 정리한 역자들의 글이다. 나처럼 항해 일지를 읽는 일이 지루하게 느꼈거나 책을 정독하기가 시간이 빠듯하다면 요약 정리한 글만 봐도 된다.

 

 

 

 

 

 

 

 

 

 

 

 

 

 

 

 

 

 

 

지난주부터 최재천 감수 번역본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발견한 오류는 한 개다. 132쪽에 있는 역주를 보면 장순근 박사의 번역본을 ‘장순근 박사의 1993년판 완역본’으로 소개했다. 역자가 장순근 박사의 번역본이 2013년에 새로 나온 사실을 깜빡 잊은 것 같다. 장순근 박사의 번역본은 1993년에 ‘전파과학사’ 출판사에서 처음 나왔다. 2006년에 가람기획 출판사에서 개정 2판이 나왔고, 2013년에 나온 것이 개정 3판이다. 2003년에 나온 《그림으로 보는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 이야기》의 분량은 완역본보다 적다. 이 책은 그림 위주로 된 축약본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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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4-2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꿀 노잼ㅎㅎ두께부터 노잼 포스에요.^^;;

cyrus 2016-04-27 21:47   좋아요 1 | URL
네. 관찰한 기록만 나오는 책이라서 지루해요. 배 타면서 있었던 일이라도 들려줬으면 좀 더 재미있었을거예요. ^^

바람머리칼 2016-04-2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cyrus 2016-04-28 18:54   좋아요 0 | URL
사실은 책을 대충 읽었어요. 끝까지 읽기가 지루해서 책 중간부터는 요약한 글만 따로 읽었어요. ㅎㅎㅎ

북깨비 2016-04-2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꿀노잼 ㅋㅋㅋㅋㅋㅋ cyrus님께서 꿀노잼 하시니까 넘 귀여워요. ㅎㅎㅎ 글쎄 제목만 보면 정말 흥미진진한 항해일지 같은데 말이죠.

cyrus 2016-04-28 18:55   좋아요 0 | URL
노잼인데,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읽고 싶어요. 다윈의 문체가 무미건조합니다. ^^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 - 셰익스피어 희곡을 두고 벌어진 200년간의 논쟁과 추적 걸작 논픽션 10
제임스 샤피로 지음, 신예경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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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골을 건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 이 돌을 그대로 두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니 / 선한 친구여, 내 이렇게 부탁하니 / 이곳에 묻힌 흙을 파내지 마시게.”

 

 

살벌한 느낌이 드는 묘비명이다. 묘비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꺼림칙하다. 묘지 주인은 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무덤이 파헤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이 묘비명의 주인공은 바로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한때 그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최고의 인물이었다.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누렸던 영국인들은 광활한 인도 땅과 셰익스피어의 능력을 맞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유명인의 유골에 신비하고 영험한 힘을 지녔다고 믿었다. 밤마다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들이 극성을 부렸다. 다행히 셰익스피어의 유골을 건드린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무덤 안에 있는 셰익스피어가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허구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희곡 37편과 소네트 150여 편. 셰익스피어가 남긴 작품의 수다. 52세에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작가가 썼다고 보기엔 실로 엄청난 양이다. 일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사용된 단어의 개수를 세어보면 약 2만 개가 넘는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건 그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대학 문턱을 밟지 않은 시골뜨기였다. 그의 천재적인 어휘력은 당연히 의심의 대상이 된다. 지금도 그의 생애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셰익스피어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18세기부터 제기돼 왔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주제다. 실제 작가를 두고서도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에드워드 드 비어(옥스퍼드 백작) 등의 다양한 설이 넘쳐나 문학계의 대표적 음모론으로도 꼽혀왔다. 그 뒤 논란은 논란을 낳았다. 심지어 셰익스피어가 실존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유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원작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거나 반대로 이를 부정하는 증거를 하나라도 찾으려고 했다. 여기에 너무 집착한 새뮤얼 아일랜드라는 수집가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들어간 각종 서류와 문서를 위조했다. 델리아 베이컨은 죽을 때까지 셰익스피어 연구에 매달려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와 동일 인물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작가 겸 전문 강연자로 명성을 얻었음에도 자신의 모든 능력을 셰익스피어에게 다 바쳤다. 말년의 델리아는 셰익스피어 연구로 마지막 인생 역전을 꿈꾸었다. 비록 성과가 미미했으나 그녀의 뒤를 이어 마크 트웨인, 헬렌 켈러 등이 베이컨 원작자 설을 신봉했다.
 
음모론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이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짧지만 않은 논쟁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유쾌하지가 않다. 셰익스피어 논쟁에 뛰어든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무한한 애정을 가졌다기보다는 죽은 위인을 이용하여 세간의 관심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들의 주장에 허점이 많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도 예외가 아니다. 에드워드 멀론은 셰익스피의 삶과 그의 작품을 하나로 융합해서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증명하려고 했다. 말이야 그럴듯하게 보이는 증명이지 사실은 자의적으로 끼워 맞춘 추정에 가깝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의 저자이자 모험 안내자인 제임스 샤피로는 셰익스피어 원작자 논쟁의 주요 주장들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한다.

 

사람들은 증명되지 않은 실재의 빈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상상력을 채워 넣어야 안심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현 시대의 모습에 맞춰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재구성한다. 모두가 셰익스피어의 사람들이 된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는 겉은 16세기 풍 복장을 하였지만, 속은 근대의 상상력으로 채워진 ‘박제가 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의 사람들은 근대의 박제품이 된 ‘셰익스피어’에 둘러 모여서 지금까지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쓸데없이 싸우고 있다. 박제품에 너무 집착할수록 셰익스피어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박제화된다. 이들은 소설이 작가의 자서전 하위 호환으로 여긴다. 작품을 읽음으로써 그 속에 작가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착각의 해석은 셰익스피어를 당혹스럽게 한다. 

 

뜻하지 않게도 셰익스피어를 함부로 건드린 자는 저주를 받았다. 아일랜드는 위조 사실이 적발되어 크게 망신을 당했고, 델리아는 셰익스피어 연구에 몰두하다가 정신병 질환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가족은 셰익스피어를 가짜라고 여기는 그녀의 주장을 정신병으로 인한 헛소리로 생각했다. 근거 없는 추정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려는 호사가들은 고인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은 단순히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가 아니다. 음모론의 함정에 빠져버린 무지한 인류의 역사다. 호사가들 때문에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셰익스피어를 위해서 묘비명을 새롭게 바꿔야 하지 싶다.

 

 

“셰익스피어를 함부로 건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 그를 그대로 두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니 / 착한 독자여, 내 이렇게 부탁하니 / 이곳에 묻힌 나를 파내지 마시게.”

 

 

 

 

※ 딴죽걸기

 

* 12쪽에 델리아 베이컨의 사망연도가 생략되었다.

 

* "그곳을 조사하라는 조언 받았다." (44쪽)

 

* 랠프 월도 엘리슨 (449쪽, ‘랠프 월도 에머슨’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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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2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존인물인지 전설인지 헷갈리기까지 하는 세익스피어..

전 책을 읽어도 글 나오기도 어려운데..하여간 그는 천재입니다.ㅋㅋㅋ^^

cyrus 2016-04-27 18:35   좋아요 0 | URL
저는 셰익스피어 원작자 설에 대해서 얼핏 들어봤어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진짜 별 희한한 가설이 많아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썼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암호도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다빈치 코드에 못지 않은 셰익스피어 코드입니다. ㅎㅎㅎ
 

 

 

http://noveltraveler.me/220671320943

서평도서 : 금희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창비)

 

 

좋은 내용의 서평 한 편을 소개해봅니다. 글쓴이가 만든 ‘퀘스천 홀(question hole)’이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어요. 이 서평을 작성한 분은 ‘오늘의 작가상’ 최종 심사 위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서평이 알라딘 블로그에 작성되었으면 ‘이달의 마이리뷰’에도 선정되었을 겁니다. 우수 서평으로 선정된 맥거핀님, 헤르메스님, CREBBP님 모두 축하드립니다. 이왕이면 세 편의 우수 서평도 링크로 연결해서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라딘 이벤트 당첨자 발표 게시판에 공개된 서평 대회 결과를 확인하면 당선작 링크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년 알라딘 서평대회나 물만두 서평대회가 열렸던 시절에는 당선작이 공개되었습니다. 요즘 대부분 닉네임, 실명(성과 마지막 글자만 공개, 이메일 주소(주소 뒤의 마지막 세 글자 비공개)를 공개하는 편입니다. 이러면 당선자가 누군지 잘 모르고, 당선작을 읽을 수 없습니다. 당선작을 공개하는 것이 프라이버시와 관련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서평대회와 관련된 글은 당연히 ‘공개 상태’여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쓴 글이라도 ‘비공개 상태’면 심사위원은 그 글을 보지 못합니다. 이벤트 당첨자를 알릴 때 닉네임과 당선작 링크만 공개하면 사람들은 당선작을 읽게 되고, 이벤트에 당첨된 글쓴이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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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4-2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가 벌써 끝났나?
좋은 블로그 소개해 줬네.
근데 퀘스천 홀. 멋진 말이긴 하지만 뭔가 전문가적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 블로그 주인장 요즘 핫한 젊은 평론가다. 어쩐지 싶었지.
그런 전문가는 이달의 당선작 되면 알라디너들은 어쩌라고...ㅠ

cyrus 2016-04-26 15:11   좋아요 0 | URL
어제 블로그에 있는 글들 쭉 읽어봤는데, 글 솜씨가 좋았어요. 제가 지금까지 썼던 글들이 초라하게 느꼈어요. ㅎㅎㅎ 역시 글쓰기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분이셨군요. 네이버에는 정말 글쓰기 고수가 많아요. 겸업으로 서평가로 활동해도 되겠어요. 그런데 누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최우수 서평 글쓴이가 정말 전업 문필가라면 선정 결과에 문제가 생길 수 있겠는데요. 독자를 뽑지 않고, 젊은 신인 평론가를 뽑은 거잖아요.

stella.K 2016-04-26 15:23   좋아요 0 | URL
그래.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거 아마추어를 위한 장 아니었어?
이상해. 뭔가 이상해. ㅉ

2016-04-26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26 15: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늘 있는 일이죠.. ㅎㅎㅎ

시이소오 2016-04-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 제 블로그 이웃입니다. 전업 문필가는 아닌걸로 알고있어요. 소설가 지망생이죠^^

cyrus 2016-04-26 16:5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수상자 선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겠어요. ^^

2016-04-26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6 1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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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1 2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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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03 13:1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수상작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죠. 서재지기님이 우수 서평작에도 링크를 만들어서 공개한다고 약속을 했는데, 곧 확인해봐야겠습니다.
 
공포특급 5 - 세계편
출판사 / 한뜻 / 1996년 6월
평점 :
품절


 

 

 

 

 

 

1993년, 93편의 무서운 이야기를 담은 《공포특급》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6월. 본격적인 여름철을 맞아 독자들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데 성공했다. 《공포특급》의 성공으로 괴담 전파의 물꼬를 텄다. 무더위를 잊기 위해 할머니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옛말이 됐다. 평범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집, 학교가 귀신들이 서식하는 오싹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괴담을 원하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이듬해에 나온 《공포특급 2》도 전작에 못지않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출판사는 공포특급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기로 한다. 《공포특급 3》은 국내 작가들이 쓴 공포소설을 선보였다. 주류 문학이 완전히 점령한 한국에 ‘공포문학’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공포특급 4 : 실화 편》은 일반 독자들이 참여해서 만든 특별한 책이다. 독자들이 겪은 으스스한 경험담이 소개되었다. 출판사의 도전은 거침없었다. 비록 후속작들이 1, 2권의 인기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출판사는 《공포특급》 출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포 이야기만 들려주면 식상하다. 출판사는 외국의 무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책이 바로 《공포특급 5 : 세계 편》이다.

 

오늘날 독자들은 1권을 많이 기억한다. 《공포특급》을 즐겨 읽었던 독자 중에는 후속작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 그렇지만 후속작을 기억한 독자도 많지 않다. 한뜻출판사에서 펴낸 《공포특급》 시리즈는 총 7권으로 되어 있다. 5권과 6권이 전작보다 인기를 얻지 못해서 그런 건지 마지막 7권은 1권처럼 도시 전설을 소개했다. 7권도 역시 망했다. 그때는 《공포특급》의 아류작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1993년의 명성을 되찾기가 불가능했다.

 

《공포특급 5 : 세계 편》은 외국 괴담 수록집이라기보다는 영미 작가들이 쓴 공포문학 작품 앤솔러지에 가깝다. 추리소설 번역가 故 정태원이 질적으로 우수한 공포 단편소설을 엄선하여 번역했다. 작품 중간에 외국 괴담과 공포 실화를 수록했다. 아무래도 한국형 괴담에 익숙하지만, 외국 공포문학 소설을 낯설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공포특급 5 : 세계 편》에 있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들의 이름을 보시라.

 

 

 

 

 

 

 

역시 정태원의 안목은 대단하다. 《세계 편》은 1996년에 출간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이십 년 전에 레이 브래드버리, 로버트 셰클리,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소개했다. 윌리엄 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은 공포문학 앤솔러지에 많이 등장하는 단골 작품이다. 말라비틀어진 원숭이 손의 저주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유명한 작품이니 꼭 한 번 읽어 보시라. 비록 공포심을 드러내는 극적 장면이 고전적인 플롯이 되었지만, 공포문학을 논할 때 이 작품이 빠지면 안 된다. ‘호러 킹’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을 모티프로 한 소설을 남기기도 했다.

 

로버트 블록《사이코》의 작가다. 그는 장편뿐만 아니라 공포를 소재로 한 단편작품도 남겼다. 로버트 블록과 어거스트 덜레스‘러브크래프트 서클’에 소속된 작가다. 특히 덜레스는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크툴루 신화를 체계적으로 확장한 장본인이다. 생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러브크래프트는 덜레스 덕분에 죽어서도 불멸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다만, 크툴루 신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독자들에게 덜레스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의 작품을 임의대로 크툴루 신화에 편입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SF 작가로 유명하지만, 생전에 공포문학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브래드버리는 1942년부터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장르문학 전문 잡지 <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을 통해 소설을 발표했다. 러브크래프트도 <위어드 테일즈>에 단편을 기고한 적이 있다. 브래드버리는 소규모 출판사 아컴 하우스(Arkham House)의 발행인으로부터 공포문학 단편집 출간을 제안 받는다. 아컴 하우스의 발행인이 바로 어거스트 덜레스다. 아컴(Arkham)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이름이다. 『비석』은 위어드 테일즈 1945년 3월 호에 발표되었다. 최근에 나온 브래드버리 단편 선집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숙소의 방 한가운데 비석이 놓인 불가사의한 상황을 공포심 있게 그려낸 전개가 일품이다. 

 

로버트 셰클리는 미국 출신의 SF 작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소설이 교과서에 수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폰의 먹이』는 195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고서점에서 괴물 그리폰을 관리하고 사육하는 방법이 적힌 책을 발견한다. 호기심이 많은 주인공은 책에 있는 내용에 따라 자신의 집에 그리폰을 사육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연출된다. 리처드 매드슨의 『하얀 실크 드레스』는 1951년에, 『귀뚜라미』는 1960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나폴리탄 괴담’ 장르의 이야기다. 나폴리탄(Napolitan)은 공포 단편소설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의 하나다. 이야기의 발단과 결말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 나폴리탄의 가장 큰 특징이다. 미지의 상황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공포심을 유발한다.

 

공포문학 앤솔러지 출간이 과거보다 많이 뜸해졌다. 그러므로 레이 브래드버리와 리처드 매드슨 같은 거장들의 공포문학 작품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절판된 책을 만나기가 어렵지만, 책을 직접 찾아서 읽어 보는 게 훨씬 낫다. 정태원은 《세계 편》의 목차에 이런 말을 남겼다. “기회가 다시 있다면 공포소설의 대표작들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서 전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너무 이른 그의 부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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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6-04-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슨 cyrus님은 책 백과사전 같습니다. 이제 모르는 책 있으면 물어봐야지.

cyrus 2016-04-26 12:12   좋아요 0 | URL
다른 독자 서평이나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서 정보를 찾아요. 저도 모르는 게 정말 많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