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생각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6
천양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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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는 인생을 나이별로 정리했다. 10대는 충년(沖年), 20세는 약관(弱冠), 30세는 이립(而立), 40세는 불혹(不惑), 50세는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이순(耳順), 그리고 70세는 고희(古稀) 또는 종심(從心)이라 했다. 고희는 시인 두보(杜甫)가 읊은 곡강(曲江)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시에서 두보는 인생 칠십에 이르는 삶은 드문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백 세 인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균수명이 길어졌다. 종심은 논어에 나오는 단어이다. 공자는 칠순이 되면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성숙해진다고 말했다. 그만큼 삶이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거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청춘만이 아름답고 특별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칠순도 좋은 나이임이 분명하다. 천양희 시인을 보면 그렇다. 10대의 순수함과 20대의 열정을 품고 있는 시인의 글은 매력적이다. 간결한 문장에서 강력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아마도 시인의 나이에 대한 질문은 우문(愚問)일 수 있겠다. 나이가 많아서 무엇을 못 한다는 것은 핑계이다. 시가 잘 써지는 때는 있어도 시가 잘 써지는 나이는 없다. 시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틀려도 배짱 있게 시를 쓴 칠곡 할매들이 있다. 올해 구순을 맞은 김남조 시인은 열여덟 번째 시집 충만한 사랑(열화당)을 냈다.

 

일흔의 나이에 접어든 시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 나이에도 생에 대한 미련이 얼룩처럼 자잘하게 번져나, 아직도 쓰고 싶은 시나 못다 한 말들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과거에만 매달린 채 허송세월하는 모습일까. 천양희 시인은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정립해 나간다.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는 연륜에서 우러난 지혜와 성숙한 삶의 교훈으로 치장하고 있다. 시집에는 원로 시인의 권위나 위엄은 찾기 어렵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느낌을 허물없이 표현한 시인의 모습에서 공자가 말하는 종심의 경지, 즉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도 자기 스스로 돌아볼 줄 아는 원숙한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일흔 살의 인터뷰전문, 56~57)

 

 

모든 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통과의례를 거친다. 여러 번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서야 최종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청춘의 시기를 평탄하게 넘어서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냥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 현실을 받아들 것인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난 뒤에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곧 찍게 될 인생의 종점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시인은 달관의 자세로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인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일흔 살의 인터뷰)라고 말하는 시인의 유연한 고백은 세월의 흐름을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안정된 문단의 원로의 그늘에 벗어나 아무도 돌보지 않는 깊은 고독에 바치는”(시작법) 시 쓰기에 몰입한다. 안주(安住)를 포기하고 외로운 마음으로 시 쓰기의 고단한 길을 걷는 셈이다. 그것은 곧 그녀가 아무 것에도 귀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생 동안 시 쓰기란 나에게는

진창에서 절창으로 나아가는 도정이었고

삶을 철저히 앓는 위독한 병이었다

그래서 의연하게 고독을 살아내면서 나아가지만

 

시는 달리는 이들에게 멈추기를 요구하네

빠름보다는 느림을 준비하네 그러므로 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깊은 고독에 바치는 것이네

그게 좋은 시를 읽어야 할 이유

이 세상에 눈물 가득한 예지는 이것뿐이네

 

 

(시작법(詩作法)부분, 100)

 

 

고독을 인내하는 의연함이 그녀의 시를 가능케 한다. 그녀의 시 쓰기는 창작을 위한 고통, ‘좋은 시를 얻기 위한 수고로움이다. 그녀의 시는 고단함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야시를 써야할 이유를 찾는다.

 

 

잘못 자란 생각 끝에 꽃이 핀다지요 그것이 시()라지요

 

 

(이처럼 되기까지부분, 70)

 

 

쓸쓸한 영혼이나 편들까 하고

슬슬 쓰기 시작한 그날부터

왜 쓰는지를 안다는 말 생각할 때마다

세상은

아무나 잘 쓸 수 없는 원고지 같아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

 

쓴다는 건

사는 것의 지독한 반복 학습이지

치열하게 산 자는

잘 씌어진 한 페이지를 갖고 있지

 

 

(시라는 덫부분, 88)

 

 

시는 시인의 마음에 난 상처에서 피는 이다. 문학은 인간의 불완전성, 불행과 실패에 맞서는 과감한 항변이다. 삶을 몸서리치게 체험한 시인은 남모르는 곳에 홀로 숨어, 남모르는 상처를 제 혓바닥으로 핥아 몰래 치료한다. 독자는 시를 써본 적이 없어도 천양희 시인의 시에서 공감 이상의 감동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불행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만이 삶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시인의 저항에 감동한다. 시인에게 고독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철저한 작문은 곧 문학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정신적 성숙을 의미한다. 나는 시를 위해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고, 치열하게 시를 쓰려는 의지를 드러낸 시인의 ‘자기 선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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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6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7 16:52   좋아요 0 | URL
그때 저는 뭐하고 있을까요? 70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sprenown 2017-11-16 1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는 시인의 마음에 난 상처에서 피는 ‘꽃’이다‘ 아주 훌륭한 표현입니다. 고독을 좀 더 견뎌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cyrus 2017-11-17 16:55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면 고독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니까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마음이 통하는 지인과 친하게 지내는 일이 어려워요.

서니데이 2017-11-16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행과 실패를 만나도 역경을 이겨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늘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듣더라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7-11-17 16:58   좋아요 1 | URL
살면서 미래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여기서부터 마음이 흔들리면 극복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

페크pek0501 2017-11-1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끝문장처럼 저도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cyrus 2017-11-20 11:08   좋아요 0 | URL
시인은 대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직업입니다. 우리나라가 시를 애독하는 사회가 아니라서 그런지 시인을 그저 그런 직업, 소설가보다 못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로마가 등장하기 전 이탈리안 반도에 에트루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고대 국가다. 에트루리아인의 역사를 알려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들의 기원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역사(도서출판 숲, 2009)

* 헤로도토스, 김봉쳘 역 역사(, 2016)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에트루리아인의 선조가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의 고대 왕국 리디아(Lydia)인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 유전자 DNA 검사 결과 헤로도토스의 견해가 사실임이 확인되었다.[1]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1(푸른역사, 2013)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2(푸른역사, 2014)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은 이탈리아 초기 민족을 이아퓌기아인’,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인으로 분류했다. 로마에 에트루리아의 문화 및 관습을 전파한 로마의 전설적인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는 에트루리아인으로 알려졌는데, 몸젠은 이 전설적인 내용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인에 대한 몸젠의 평가가 야박하다.

 

몸젠의 역사관은 실증주의 역사학이다.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가 이끈 실증주의 역사학은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료에 주목한다. 랑케는 오로지 실재했던 사실만을 기술하고자 했다. 사료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통해 그는 문헌 안에서 역사적 사실만을 가려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랑케의 후계자들은 실증주의 역사관을 교묘히 이용하여 애국심을 강요하는 민족주의를 표방했다. 몸젠은 실증주의에 입각해 로마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지만, 역사적 상상력이 반영된 전설이 연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몸젠은 그리스 정신을 이어받아 발전한 로마를 치켜세우는 반면 에트루리아를 그리스 정신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2% 부족한 나라로 평가했다. 그는 실증주의라는 학문적 외피를 쓴 채 로마 문명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에트루리아 문화를 저평가했다.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1(이학사, 2005)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2(이학사, 2005)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종교가 있었고, 주술적 성격을 갖는 종교의식이 성행했다. 고대 그리스 도시 엘레우시스 주민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를 숭배했고, 1년에 두 번씩 여신을 숭배하는 축제를 벌였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그리스인들의 관심은 엘레우시스 비의(Eleusinian Mysteries)’라는 비밀종교를 탄생했다. 로마에는 주신(酒神) 바쿠스(Bacchus,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에 해당)를 숭배하는 밀교가 유행했다. 바쿠스는 이탈리아 남부와 로마 및 에트루리아 등의 이탈리아 전반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에트루리아 인들은 전조와 기적을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번개 해석법과 내장 해석법 등 비의(悲意) 해석법이 생겨났으며,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복채를 뜯어내려는 욕심을 엿볼 수 있다. (1권 제12258~259)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인간이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종교 행위라고 말했다. 고대의 종교 제의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풍요로운 희망을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다. 에트루리아의 주술 문화를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부정적인 문화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무역과 해적질로 일찍이 커다란 부를 축적한 에트루리아에서만 오직 예술이, 혹은 그렇게 부르길 원한다면 기술이 일찍이 뿌리내렸다. (1권 제15336)

 

 

에트루리아 인들의 작품은 라티움이나 사비눔 사람들에 비해서 그 합목적성이나 실용성뿐만 아니라 내면성과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 트루리아 사람들은 희랍의 호화 건축을 모방했으되 저열한 수준이었다. 에트루리아 예술은 수공업적 훈련과 적응의 숙련도를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증거일 뿐, 중국 사람들처럼 천재적 수용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 예술의 역사에서 에트루리아를 맨 앞자리에서 맨 뒷자리로 밀어내 버릴 것을 단호하게 결심해야 할 것이다. (1권 제15339~340)

 

 

에트루리아 예술 작품의 일반적 성격은 재료와 양식에 있어 일정하게 나타나는 지나친 천박함과 내적 발전의 완전한 결여다. 희랍 장인이 대강 소묘한 곳에 에트루리아의 제자는 학생다운 땀을 쏟았던 것이다. 희랍 작품들의 가벼운 재료와 절제된 비례 대신 에트루리아 작품들에선 과시적 크기와 사치스러움 혹은 단순한 진기함만이 강조된다. (2360)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로마 미술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했다. 특히 로마사 1에서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이탈리아 예술사의 뒷자리로 밀어내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견해만 보고 에트루리아 미술을 후진적 문화로 평가해선 안 된다.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리스 미술을 로마에게 전해준 에트루리아 미술의 영향력를 무시할 수 없다.

 

 

 

 

 

 

 

 

 

 

 

 

 

 

* 낸시 H. 래미지, 앤드류 래미지 로마 미술(예경, 2004)

* 토마스 R. 호프만 로마 미술, 어떻게 이해할까?(미술문화, 2008)

 

 

 

몇몇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들과 무역을 한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문화를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축적한 부를 통해 사치스러운 예술품 또는 장신구를 제작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스에 대리석과 석회암이 풍부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보존성이 뛰어난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는 대리석과 석회암처럼 단단한 재질의 암석이 부족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흙벽돌과 목재를 건축물 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온전한 형태의 에트루리아 시대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고, 겨우 파편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에 에트루리아가 대리석과 석회암 지대였다면 그리스와 로마 중심으로 서술된 고대 미술사의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다. 에트루리아의 조각 예술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표현과 양식을 발전시켰다. 에트루리아 등신상은 그리스 등신상보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에트루리아 미술이 로마 미술의 발전 양상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에트루리아 미술의 수준을 확인해보면 에트루리아 미술과 로마 미술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역할과 개성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한 시대에 등장한 예술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개성에 대한 이해이며, 그 시대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의 가치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한다. 몸젠은 사실과 해석이 공존하는 절충주의 방식으로 에트루리아 미술을 평가했으나 자신의 감상에 치중한 주관적 견해에 머무르고 말았다.

 

 

 

[1] [연구팀 결국 헤로도투스 견해가 맞았다”] 연합뉴스, 200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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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이병도를 비롯한 실중주의 사학자가 득세한 이후 아마 지금까지도 주류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7-11-16 17:09   좋아요 0 | URL
이병도를 비판하는 사회주의 역사학자들은 서울대학교에서 활동한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의 권위주의적 활동을 비꼬기 위해서 ‘서울대 학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AgalmA 2017-11-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지적을 해 주셨네요. 많은 예술 사관들이 문화의 특정 부분의 우수성을 강조하는데, 그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사는 환경과의 관계를 간과하는 게 꽤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에트루리아인이 흙벽돌과 목재로 건축물을 지은 것이나 기타 등등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특수성을 더 중심으로 봐야겠지요. 비교가 객관성이나 정확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가치 판단적일 때가 많죠.

cyrus 2017-11-17 17: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예술사를 논할 때 과거 예술사조를 후대의 예술사조와 비교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짜라투스트라 2017-11-1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에트루리아까지... 역시 멋져요!!

cyrus 2017-11-17 17:04   좋아요 0 | URL
역사학에서 로마가 워낙 많이 언급되는 주제라서 에트루리아를 살피지 못하고 간과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책을 다시 읽으니까 처음 읽었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

transient-guest 2017-11-17 0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저의 로마라고 할 만큼 훌륭한 해상문명을 이룩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로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에서는 대부분 로마를 셋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몸젠을 (지루한 책) 권위자로 내세우며 quote하기를 즐긴 시오노 나나미나 몸젠의 자세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결국 비슷한 성향과 목적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고대 중근동을 얘기할 때 유대민족/유대신에 대한 책은 많지만 다곤, 바엘, 아세라를 숭배했던 부족/국가/문명에 대한 책은 얼마 없는 것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도 드네요.

cyrus 2017-11-17 17:07   좋아요 1 | URL
몸젠의 《로마사》가 완역되면 로마를 바라보는 몸젠의 시선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1, 2권만 봐서는 로마를 치켜세우는 몸젠의 서술 방식을 판단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지만, 일단 저는 그게 불편하게 느꼈어요.
 

 

 

주말에 집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내가 원하는 책이 집에 가까운 도서관에 있으면 좋다. 하지만 동네 도서관에 없는 책도 있다. 이럴 때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책이 있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대구공공도서관 통합도서 서비스회원카드 하나만 있으면 대구 지역에 속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할 수 있다. 타 도서관 반납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대구 A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대구 B 도서관에 반납하는 것이다. 타 도서관 반납 서비스가 없었으면 집에서 멀리 있는 도서관에 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집이 속한 구()대구 서구이다. 서부도서관이 우리 집과 가깝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도서관은 달성도서관이다. 버스로 갈아타서 가야 하는데, 가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하철로 환승하는 경로가 없다는 점이다. 엄청 더웠던 올여름에 달성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는데, 마치 시외버스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도원도서관, 용학도서관도 한 번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하철로 환승해도 50분 정도 소요된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버스 타는 것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버스 좌석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로마 미술에 관한 책을 알아보기 위해서 용학도서관에 갔다.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서 버스를 타고 수성구를 지날 때마다 새롭다. 가끔 이곳을 지나가다가 뜻밖의 장소를 발견할 때가 있다. 지난주 토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서점을 발견했다. 마음 같았으면 당장 버스에서 내려서 서점 규모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저녁에 선약이 있어서 눈으로만 확인했다. 처음 본 서점의 정체가 궁금해서 그다음 날인 일요일에 다시 수성구로 향했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서점은 만촌동에 있는 아이북114’라는 중고도서 전문 서점이었다. 매장 운영뿐만 아니라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http://www.ibook114.com/),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 등에서도 책을 판매하고 있다. 부자(父子)가 서점을 운영한다. 내가 서점에 갔을 때 부자가 손님들이 주문한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알라딘을 제외한 중고도서 전문 서점에는 아동도서가 많은 편이다. 매장에서 책을 고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 등록된 판매도서가 뭐 있는지 미리 확인했다. 그래서 미리 점찍어둔 책들이 어디 있는지 다 파악한 후에 천천히 매장 내부 전체를 구경했다. 역시 매장에 아동도서가 많았다. 판매도서 사전 조사를 미리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에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 등록되지 않은 책도 있다. 이럴 때 서점 운영자에게 책의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봐야 한다. 이곳도 구하기 힘든 절판본을 정가 그대로 또는 정가보다 비싸게 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장에서 뜻밖의 보물을 건지려면 원하는 책들을 넉넉히 할 수 있는 비용을 두둑이 챙겨야 한다.

 

 

 

 

 

절판본 세 권, 출간연도가 오래된 책 한 권, 총 네 권의 책을 샀다. 그러자 책값을 계산한 서점 운영자(아들)님이 책값이 조금 비쌀 텐데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쿨하게 ‘Sure, Why Not?’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급한 금액은 28천 원이다.

 

 

 

 

 

* 정상용, 이해찬, 송선태, 유시민 외 광주민중항쟁(돌베개, 1990)

정가: 6,500, 판매가: 5,000

 

5·18 민주화운동 10주년에 맞춰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의 집필진에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정상용2012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 문화국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책이 나왔던 1990년 당시 정상용은 평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고, 그의 보좌관이 송선태였다. 송선태는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해찬, 유시민은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추천사는 언론인 청암 송건호가 썼다. 책의 시작점은 19791026,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던 날이다. 10·26 사태 이후 불안정한 국내 정세, 이 틈을 노려 국가 전체를 장악한 신군부, 그들에 맞선 광주 시민들의 투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출간연도가 오래됐어도 5·18 민주화운동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충실한 내용 구성이라 확신한다. 부록도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12·12 사태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체계도, 광주 진압군 지휘 체계도, 1980년 이후 신군부 세력의 행보, 마지막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 사망자 명단으로 구성되었다.

 

 

 

 

 

 

 

 

 

 

 

 

 

 

 

 

 

 

* 하신 신의 기원(동문선, 1990)

정가: 14,400, 판매가: 6,000

    

 

신의 기원은 중국 원시 신화의 기원을 각종 유물과 문헌 등을 토대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하신은 신화 연구를 통해 중국 전통 문화의 뿌리를 밝혀내려고 했다. 이런 책이 절판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언젠가 중국 신화 서적을 읽게 되면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샀다. 책의 목차만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거다 러너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평민사, 1998)
정가: 14,000, 판매가: 13,000

 

 

 

개정판이 있어서 안 살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저자가 거다 러너였기에 안 살 수가 없었다.

 

 

 

 

 

 

 

 

 

 

 

 

 

 

 

 

 

거다 러너(Gerda Hedwig Lerner)는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변천 과정을 추적한 가부장제의 창조(당대, 2004)라는 책을 펴낸 역사가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은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가부장제의 창조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여성사를 주제로 한 2부작인 셈이다. 러너는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에서 중세에서 1870년까지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여성들의 주요 활동을 소개했다.  

 

 

 

 

 

 

 

 

 

 

 

 

 

 

 

 

 

 

 

* 데이비드 골래허 할례, 포경수술, 성기훼손(문화디자인, 2004)

정가: 13,000, 판매가: 4,000

 

 

 

포경수술을 비롯한 할례의 역사를 정리한 책. 이런 내용은 역사교과서에 찾아볼 수 없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법으로 행해지는 여성 할례에 반대한다.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는 이집트의 소설가 나왈 엘 사다위.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여성 할례가 성행하는 국가 중의 한 나라이다. 사실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여성 할례를 허용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슬림 남성 대부분은 할례를 여성의 성적 욕망을 막기 위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을 위한 전통이 오래 지속하다 보니 할례가 꾸란에 명시된 율법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할례, 포경수술, 성기훼손은 포경수술, 할례를 둘러싼 찬반 입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요긴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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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5 08:55   좋아요 1 | URL
‘읽는 행위‘를 실천하는 애서가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

syo 2017-11-1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이라면 저는 남부-중앙-두류의 삼각코스를 이용합니다.
아니, 이용했습니다.

이제는 열람실만 이용할 거예요-_ㅜ

cyrus 2017-11-15 09:01   좋아요 0 | URL
남부도서관 주변에 산, 공원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에요. 두류도서관 리모델링 작업, 대봉도서관 장소 이전 작업한다는 소식 들었습니까? ㅠㅠ

공부하다가 독서로 머리 식히세요. 생각날 때마다 글 쓰시고요. ^^

transient-guest 2017-11-15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이나 인천 같은 수도권도 그렇고 한국의 대도시는 내부의 이동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송파에서 강남까지도 2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고, 엄청 시달리면서 다닌 기억이 나네요. 대도시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교통시스템의 문제도 크다고 봅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보물을 건지는 cyrus님이 부럽네요.ㅎ 전 딱 한번 낡았지만 구하기 어려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영문판을 6-7불에 산 기억이 나네요. 일러스트레이션도 좋고 책주머니에 들어있는 고풍스러움도 좋았고, 무엇보다 First Edition이라는..ㅎㅎ

cyrus 2017-11-15 09:07   좋아요 0 | URL
거리가 멀고, 교통 체증까지 생기면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대구는 심해요. 번화가 쪽은 차선이 많지 않아서 차가 많이 몰리면 지옥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퇴근길이 괴롭습니다.. ㅎㅎㅎ

일러스트가 있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영문판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시간 나면 그 책 공개해주세요. ^^

sprenown 2017-11-1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성구 만촌동은 제가 군의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던 곳이라 반갑네요... 그나저마 정말 책을 사랑하시는 군요..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cyrus 2017-11-15 17:45   좋아요 0 | URL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해서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
 
잠에 취한 미술사 - 달콤한 잠에 빠진 예술가들
백종옥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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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다. 인간이 잠을 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낮 동안 고단하게 활동한 신체를 쉬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학습능력을 높이는 데는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뇌는 낮에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수면 중에도 풀기를 계속한다. 8시간 자면 문제가 쉽게 풀릴 수도 있다고 한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꿈은 창조적 힘을 발휘할 때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꿈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었다.

 

달콤한 잠에 빠진 예술가들이라는 부제를 단 잠에 취한 미술사는 바로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은 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잠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넘나들며 자료를 폭넓게 수집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미술이 서양미술에 치중되어 있지만, 잠과 꿈의 세계를 다채롭게 표현한 작품들이 수록됐다.

 

 

 

 

 

 

저자는 몰타 공화국의 고대 도시에 발견한 조각상 잠자는 여인을 잠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의 시조로 본다. 세계 최고(最古)의 조각상이라 할 수 있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풍요와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하나의 상징이듯이 잠자는 여인도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인간의 꿈과 소망을 표현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책의 1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묘사된 잠에 주목하고, 그것을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아리아드네(Ariadne)는 적국인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에게 반한 비운의 공주이다. 그녀는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s)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낙소스 섬에 잠든 아리아드네를 혼자 남겨둔 채 아테네로 돌아간다. 테세우스가 탄 배가 섬을 떠나는 줄 모르고 잠에 빠진 아리아드네의 모습은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사랑에 배신당한 여성의 상심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프시케(Psyche)와 에로스(Eros) 이야기는 신의 사랑과 인간의 영혼을 아름답게 대비시키는 그림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프시케가 잠든 에로스 곁에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도 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프시케는 매일 밤 찾아와서 새벽과 함께 사라지는 남편의 얼굴이 궁금했다. 에로스의 얼굴을 너무도 보고 싶은 나머지, 프시케는 잠든 에로스의 얼굴에 등불을 비춘다. 프시케의 실수로 잠에서 깨어난 에로스는 그녀의 행동에 실망하여 멀리 떠나게 된다. 에로스와 함께 지낸 나날은 달콤하고 행복한 꿈이었으나 사소한 실수 하나로 악몽으로 변한다.

 

 

 

 

 

 

 

2부에는 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나온다. 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꿈이 미래를 예지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인들은 꿈이 신의 계시이거나 성령의 영감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Freud)는 꿈이란 인간 내면의 무의식에 자리한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헨리 푸젤리(Henry Fuseli)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당한 뒤 꿈을 꿨다. 그 꿈을 그린 작품이 바로 악몽이다. 이 그림에서 화가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악마는 배신한 여인에 대한 성적 욕구와 공격성을 동시에 지닌 푸젤리의 모습이다. 말은 성적으로 흥분된 화가의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세계를 회화에 도입하고, 회화를 통해 정신분석학을 탐구했다. 달리는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달리는 자신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꿈과 환상의 세계를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이른바 편집증적 비평을 이용해 기괴한 상상과 환각의 세계를 표현하려 했다. 꿈속 이미지는 기묘하고 행동은 통제되지 않는다. 꿈을 꾸지 않는 상태를 기준으로 보면 꿈은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에 가깝다. 꿈의 비논리성은 달리뿐만 초현실주의자들이 선호한 소재였다.

 

3부는 일상적인 잠을 표현한 작품들, 즉 그림의 해석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보기 편안한 그림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눈을 감는 순간 뇌에 커다한 변화가 생긴다. 뇌의 네 가지 영역 중 하나인 후두엽은 보이는 것을 해석하는 일을 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인간이 받아들이는 시각정보를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눈을 감는 이 단순한 행동 하나가 뇌에게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창조적 영감과 꿈의 연관성을 허튼소리로 치부한다. 꿈이 언제나 영감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잠은 바쁜 일상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재충전 시간이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꿈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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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을 과식했는지 오후되니 졸리군요.. 창조적 영감님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눈치보지 않고, 늘어지게 한숨 푹 잤으면.. ^^

cyrus 2017-11-14 19:26   좋아요 0 | URL
이제 날씨가 슬슬 추워지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요.. ^^;;

2017-11-14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4 19:28   좋아요 0 | URL
다음날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전날 밤에 잠이 안 와요. 군 생활했을 때 선잠자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
 

 

 

미국의 여성 운동가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여성의 신비에서 이렇게 썼다.

 

 

 

 

 

 

 

 

 

 

 

 

 

 

* 베티 프리단 여성의 신비(이매진, 2005)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이 문제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여성들이 이것을 표현하려고 애쓸 때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체 어떤 것이었던가? 때때로 어떤 여성은 무언가 공허하고…‥불완전한 기분이 들어요라고 했다. 또는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여성은 가끔씩 진정제를 사용해 그런 느낌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중략] 어느 여성은 때때로 감정이 너무도 격해져서 집을 뛰쳐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아니면 집안에 처박혀 울기도 한다.[1]

 

 

 

1960년대 미국의 전업주부들은 집 안을 청소하고, 장을 보고, 자녀들을 돌보고, 남편의 곁에 누우면서도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세 아이를 둔 프리단은 당시 전업주부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우선 동창들을 인터뷰하면서 문제점을 밝혀냈다. 5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한 끝에 그녀는 여성의 신비를 펴냈다. 이 책은 어머니또는 아내역할에 만족하는 여성들을 흔들어 깨운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신비는 미국 여성들을 괴롭히는 강박적 관념이다. 프리단은 여성을 남편과 자녀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신비에서 프리단은 여성들에게 여성을 신비화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주체성을 확립할 것을 호소한다.

 

 

 

 

 

 

 

 

 

 

 

 

 

 

 

 

 

 

 

 

 

 

 

 

 

 

 

* [구판]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한신문화사, 1995)

* [개정판]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한신문화사, 2000)

* 카트린 칼바이트 20세기 여인들 : 성상, 우상, 신화(여성신문사, 2001)

* 김호기 세상을 뒤흔든 사상 : 현대의 고전을 읽는다(메디치미디어, 2017)

 

 

 

프리단은 보부아르(Beauvoir)2의 성을 읽고 여성 운동에 헌신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페미니즘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보부아르는 글을 쓰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거부했다. 그녀는 전업주부의 일을 여성 노예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2] 반면 프리단은 페미니즘과 결혼 및 가정이 공존하길 원했다. 여성의 경제적 · 사회적 자립이 가능한 가정이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향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자 프리단은 중도적인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그녀는 자신이 창설한 전국여성조직(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회장직에 물러났고, 남성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했다. 프리단은 1981년에 펴낸 <2의 단계(The Second Stage)>를 통해 페미니즘 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것을 촉구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회를 원했으며 남성에 대한 투쟁적 여성 운동 노선을 포기하는 입장을 취했다.

 

 

 

 

 

 

 

 

 

 

 

 

 

 

 

 

 

*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민음사, 2014)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민음사, 2017)

 

 

 

프리단은 직장과 집안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슈퍼우먼(superwoman), 슈퍼맘(supermom)의 등장을 바랐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일과 가정 모두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여성을 부담스럽게 한다. 그리고 프리단이 지향한 슈퍼우먼은 중산층 백인 여성을 위한 대안적 역할에 불과했다. 프리단은 인종차별 · 성소수자 · 계급 문제 등 백인 여성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안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왔다. 특히 그녀는 페미니즘이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노선(레즈비언 페미니즘, Lesbian Feminism)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여성의 신비는 약점이 있음에도 페미니즘 운동을 빛나게 해준 교과서로 추앙받는다. 이 책이 세상에 끼친 영향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이 성전(聖典)으로 취급하는 것에 불편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그녀의 입장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여성의 신비한 권으로 변화가 많은 프리단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다.

 

 

 

 

 

 

 

 

 

 

* 나왈 엘 사다위 스핑크스의 여인들(한마당, 1995)

 

 

 

여성의 신비보다 훨씬 늦게 나왔지만, 스핑크스의 여인들(원제: Femmes Egyptiennes)은 프리단의 책에 비견될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책은 이집트의 여성 운동가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가 가부장제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이집트 여성들과 상담했던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다.

 

 

 

 

 

 

 

엘 사다위는 정신의학을 전공했으며 1969년에 <여성과 성(Women and Sex)>이라는 책을 발표하여 가부장제에 억압당한 여성의 성적 권리와 성생활을 공론화했다. 이 책이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되자 이집트 정부는 그녀를 위험인물로 경계했다. 엘 사다위는 정부 권력층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 운동을 펼쳤다. 여성 할례 금지 운동에 앞장섰으며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를 거부했다. 결국 1981년에 그녀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정부는 그녀의 집필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자국의 탄압으로 엘 사다위의 글은 이집트보다 유럽에 더 많이 알려졌다.

 

엘 사다위의 여성운동은 보부아르가 지향하는 여성운동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엘 사다위는 여성의 희생을 부추기는 결혼 제도에 반대했으며 여성의 글쓰기 행위를 예찬했다. 여성의 글쓰기 행위는 여성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활동이다. 남성이 차지하고 만들어낸 권력은 여성의 창조행위를 막는다. 여성의 창조행위는 사회적 제도에 질식하여 죽어가는 여성을 진정한 인간으로 부활하게 만드는 힘이다.

 

 

 

 

 

엘 사다위가 스핑크스의 여인들을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은 17. 엘 사다위는 열여섯 명의 이집트 여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녀들의 우울증과 불안한 감정 등을 분석했다. 스핑크스의 여인들여성의 신비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 위주 사회에 억압받는 여성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다. 프리단과 엘 사다위는 여성의 정신 상태를 정신병광기로 규정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섣부른 진단을 비판했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프로이트 정신분석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프리단과 엘 사다위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1985년 케냐 나이로비에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를 통해 엘 사다위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어려움에 처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프리단은 엘 사다위가 발언을 하지 못하게 말렸다.

 

 

그녀는 내가 팔레스타인 여성들에 관해 연설을 하려고 하자 말렸습니다. 그건 정치적 문제이므로 페미니즘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했지요.” [3]

 

 

유대계 미국인이었던 프리단은 유대인 정통국가인 이스라엘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프리단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프리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 차별에 대한 주제로 연설을 했다. 본인은 페미니스트로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해놓고선 엘 사다위의 발언을 제지한 것이다. 엘 사다위는 프리단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에 실망했고 소신 있게 발언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의 일화는 1세계 페미니즘(유럽 백인 중심 페미니즘)이 제3세계 페미니즘을 대하는 시대착오적 반응을 잘 보여준다.

 

 

 

 

 

 

Trivia

 

 

 

 

 

 

 

 

 

 

 

 

 

 

 

알라딘에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를 검색하면 1996평민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과 2005년에 재출간된 이매진 출판사 판본, 두 권이 나온다. 검색 결과만 보면 1996년 평민사 판본이 국내 첫 번역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996년 번역본은 중판이며 초판은 1978년에 나왔다. 초판과 중판의 역자는 동일 인물. 그리고 이 책의 번역본 일부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대모이효재 이화여대 전 교수가 엮은 여성해방과 이론과 현실(창비, 1989)에 수록되었다. 1978년 평민사 판본의 4장을 발췌한 내용의 소제목은 여성 자아의 위기이다.

 

 

 

 

 

최근에 문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를 방문한 이효재 씨를 만났다. 이효재 씨는 엘 사다위보다 3년 늦게 태어났고, 현재 나이는 93세이다. 세 분이 함께 모여 찍은 사진, 정말 보기 좋다.

 

 

 

 

[1] 여성의 신비62~63

[2] 20세기 여인들78

[3] 20세기 여인들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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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1-1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크 제 얕음인가요....페미니즘과 디자이너 동명이인을 떠올리다가 마지막에...

이처럼 좋은 글을 기꺼이 모두에게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7-11-14 13:13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여성운동가 이효재님을 몰랐어요. 헌책방에 이분이 쓴 책을 발견하면서 알게 됐어요. 7, 80년대 국내 여성운동 저작물을 수집하는 중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지 않은 페미니즘 책들이 많습니다. ^^

표맥(漂麥) 2017-11-1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신 비 저 책을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놨다간 웬지 성희롱 행위로 문책 당할 듯한... 실제로 그럴거란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극보수와 페미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제가 살짝 도외시하는 영역이라 항상 배움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11-14 13:15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좀 난감했어요. 그래서 《여성의 신비》 혼자 빌리기가 뭐해서 《여성의 권리 옹호》와 같이 빌렸어요.. ^^;;

sprenown 2017-11-1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역시 매우 정치적이군요.. 하긴 모든 주의와 이즘은 정치영역에서 벗어날수 없는 숙명이긴 하겠지만..^^

cyrus 2017-11-14 13:19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운동이 정치에 영향을 준 사실은 무시할 수 없어요. 시기가 많이 늦었지만, 여성의 투표권 확보를 위해 노력한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stella.K 2017-11-14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신비는 2005년도 판도 절판됐네.
요즘 같이 페미니즘이 활성화된 때에
이 책이 절판이란 건 좀 아이러니 해.
그런데 표지는 좀 거시기 해.
할게 없어서 저런 표지를 썼나?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별로라고 생각한다.
<스핑크스의 여인>도 다시 나와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이효재 교수 정말 많이 연로해 보인다.
모르면 위안부 할머니 중 한 사람인 줄 알겠어.
언제 청와대 간 걸까?

cyrus 2017-11-14 13:22   좋아요 0 | URL
《여성의 신비》 표지 저도 별로예요. 엘 사다위의 대표작이 소설 《영점의 여인》이에요. 저는 그녀의 소설이 번역됐으면 좋겠어요. ^^

10월 말에 만났어요. 저는 대통령 부부와 이효재님의 만남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