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내가 원하는 책이 집에 가까운 도서관에 있으면 좋다. 하지만 동네 도서관에 없는 책도 있다. 이럴 때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책이 있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대구공공도서관 통합도서 서비스회원카드 하나만 있으면 대구 지역에 속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할 수 있다. 타 도서관 반납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대구 A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대구 B 도서관에 반납하는 것이다. 타 도서관 반납 서비스가 없었으면 집에서 멀리 있는 도서관에 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집이 속한 구()대구 서구이다. 서부도서관이 우리 집과 가깝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도서관은 달성도서관이다. 버스로 갈아타서 가야 하는데, 가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하철로 환승하는 경로가 없다는 점이다. 엄청 더웠던 올여름에 달성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는데, 마치 시외버스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도원도서관, 용학도서관도 한 번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하철로 환승해도 50분 정도 소요된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버스 타는 것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버스 좌석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로마 미술에 관한 책을 알아보기 위해서 용학도서관에 갔다.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서 버스를 타고 수성구를 지날 때마다 새롭다. 가끔 이곳을 지나가다가 뜻밖의 장소를 발견할 때가 있다. 지난주 토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서점을 발견했다. 마음 같았으면 당장 버스에서 내려서 서점 규모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저녁에 선약이 있어서 눈으로만 확인했다. 처음 본 서점의 정체가 궁금해서 그다음 날인 일요일에 다시 수성구로 향했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서점은 만촌동에 있는 아이북114’라는 중고도서 전문 서점이었다. 매장 운영뿐만 아니라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http://www.ibook114.com/),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 등에서도 책을 판매하고 있다. 부자(父子)가 서점을 운영한다. 내가 서점에 갔을 때 부자가 손님들이 주문한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알라딘을 제외한 중고도서 전문 서점에는 아동도서가 많은 편이다. 매장에서 책을 고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 등록된 판매도서가 뭐 있는지 미리 확인했다. 그래서 미리 점찍어둔 책들이 어디 있는지 다 파악한 후에 천천히 매장 내부 전체를 구경했다. 역시 매장에 아동도서가 많았다. 판매도서 사전 조사를 미리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에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 등록되지 않은 책도 있다. 이럴 때 서점 운영자에게 책의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봐야 한다. 이곳도 구하기 힘든 절판본을 정가 그대로 또는 정가보다 비싸게 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장에서 뜻밖의 보물을 건지려면 원하는 책들을 넉넉히 할 수 있는 비용을 두둑이 챙겨야 한다.

 

 

 

 

 

절판본 세 권, 출간연도가 오래된 책 한 권, 총 네 권의 책을 샀다. 그러자 책값을 계산한 서점 운영자(아들)님이 책값이 조금 비쌀 텐데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쿨하게 ‘Sure, Why Not?’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급한 금액은 28천 원이다.

 

 

 

 

 

* 정상용, 이해찬, 송선태, 유시민 외 광주민중항쟁(돌베개, 1990)

정가: 6,500, 판매가: 5,000

 

5·18 민주화운동 10주년에 맞춰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의 집필진에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정상용2012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 문화국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책이 나왔던 1990년 당시 정상용은 평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고, 그의 보좌관이 송선태였다. 송선태는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해찬, 유시민은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추천사는 언론인 청암 송건호가 썼다. 책의 시작점은 19791026,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던 날이다. 10·26 사태 이후 불안정한 국내 정세, 이 틈을 노려 국가 전체를 장악한 신군부, 그들에 맞선 광주 시민들의 투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출간연도가 오래됐어도 5·18 민주화운동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충실한 내용 구성이라 확신한다. 부록도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12·12 사태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체계도, 광주 진압군 지휘 체계도, 1980년 이후 신군부 세력의 행보, 마지막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 사망자 명단으로 구성되었다.

 

 

 

 

 

 

 

 

 

 

 

 

 

 

 

 

 

 

* 하신 신의 기원(동문선, 1990)

정가: 14,400, 판매가: 6,000

    

 

신의 기원은 중국 원시 신화의 기원을 각종 유물과 문헌 등을 토대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하신은 신화 연구를 통해 중국 전통 문화의 뿌리를 밝혀내려고 했다. 이런 책이 절판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언젠가 중국 신화 서적을 읽게 되면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샀다. 책의 목차만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거다 러너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평민사, 1998)
정가: 14,000, 판매가: 13,000

 

 

 

개정판이 있어서 안 살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저자가 거다 러너였기에 안 살 수가 없었다.

 

 

 

 

 

 

 

 

 

 

 

 

 

 

 

 

 

거다 러너(Gerda Hedwig Lerner)는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변천 과정을 추적한 가부장제의 창조(당대, 2004)라는 책을 펴낸 역사가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은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가부장제의 창조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여성사를 주제로 한 2부작인 셈이다. 러너는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에서 중세에서 1870년까지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여성들의 주요 활동을 소개했다.  

 

 

 

 

 

 

 

 

 

 

 

 

 

 

 

 

 

 

 

* 데이비드 골래허 할례, 포경수술, 성기훼손(문화디자인, 2004)

정가: 13,000, 판매가: 4,000

 

 

 

포경수술을 비롯한 할례의 역사를 정리한 책. 이런 내용은 역사교과서에 찾아볼 수 없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법으로 행해지는 여성 할례에 반대한다.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는 이집트의 소설가 나왈 엘 사다위.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여성 할례가 성행하는 국가 중의 한 나라이다. 사실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여성 할례를 허용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슬림 남성 대부분은 할례를 여성의 성적 욕망을 막기 위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을 위한 전통이 오래 지속하다 보니 할례가 꾸란에 명시된 율법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할례, 포경수술, 성기훼손은 포경수술, 할례를 둘러싼 찬반 입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요긴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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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5 08:55   좋아요 1 | URL
‘읽는 행위‘를 실천하는 애서가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

syo 2017-11-1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이라면 저는 남부-중앙-두류의 삼각코스를 이용합니다.
아니, 이용했습니다.

이제는 열람실만 이용할 거예요-_ㅜ

cyrus 2017-11-15 09:01   좋아요 0 | URL
남부도서관 주변에 산, 공원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에요. 두류도서관 리모델링 작업, 대봉도서관 장소 이전 작업한다는 소식 들었습니까? ㅠㅠ

공부하다가 독서로 머리 식히세요. 생각날 때마다 글 쓰시고요. ^^

transient-guest 2017-11-15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이나 인천 같은 수도권도 그렇고 한국의 대도시는 내부의 이동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송파에서 강남까지도 2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고, 엄청 시달리면서 다닌 기억이 나네요. 대도시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교통시스템의 문제도 크다고 봅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보물을 건지는 cyrus님이 부럽네요.ㅎ 전 딱 한번 낡았지만 구하기 어려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영문판을 6-7불에 산 기억이 나네요. 일러스트레이션도 좋고 책주머니에 들어있는 고풍스러움도 좋았고, 무엇보다 First Edition이라는..ㅎㅎ

cyrus 2017-11-15 09:07   좋아요 0 | URL
거리가 멀고, 교통 체증까지 생기면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대구는 심해요. 번화가 쪽은 차선이 많지 않아서 차가 많이 몰리면 지옥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퇴근길이 괴롭습니다.. ㅎㅎㅎ

일러스트가 있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영문판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시간 나면 그 책 공개해주세요. ^^

sprenown 2017-11-1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성구 만촌동은 제가 군의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던 곳이라 반갑네요... 그나저마 정말 책을 사랑하시는 군요..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cyrus 2017-11-15 17:45   좋아요 0 | URL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해서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