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12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이라 디아나 마초니 지음, 정미희 옮김 / 해냄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클라시커(Klassiker)예술가’, ‘대가’, ‘고전등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 해외 축구 중계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를 모를 리가 없다.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를 대표하는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간의 축구 경기를 뜻한다. 그런데 현지 독일인은 데어 클라시커의 의미를 모를뿐더러 잘 쓰지도 않는다. 사실, 두 팀이 치열하게 맞붙은 역사가 길지 않다. 독일 축구팬들은 두 팀의 맞대결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국내 축구팬과 몇몇 언론들만 독일인이 모르는 단어를 쓰고 있다.

 

<클라시커 50>은 주제에 적합한 인물 50명 또는 지식 50가지를 선정, 연대기 방식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간결한 요약정리,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참고 자료 및 관련 정보 등이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볼 때마다 2% 부족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익숙하지 않은 외래어 표기,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 · 탈자는 이 시리즈의 감점 요인이다. 그리고 시리즈가 나온 지 십 년 넘었다.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는 고인(故人)이 있다. 출판사는 수정할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고 난 뒤에 책을 인쇄해야 한다.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위대한 여성예술가 50인의 삶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술가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남성 중심의 예술사에 가려지거나 부당하게 잊혀진 50인의 삶과 예술 정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술과 페미니즘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이 책이 페미니즘적인 규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성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예술가의 삶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은 페미니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작부터 이 책은 페미니즘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밑장을 빼는 건 아니다. 저자들은 게릴라걸스(Guerilla Girls)의 도발적인 질문을 인용했는데, 앞에서 보여준 밑장 빼기식 입장과 상반된 내용이다.

 

 

 

 

국제적인 전시회의 일정을 보면 새롭게 발견했거나 다시 평가된 여성예술가들이 예술사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여성예술가들은 선배 여성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들의 역사를 유추해 보기도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분노하는 여성 화가들의 폭발적인 힘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7)

 

 

 

게릴라걸스는 1985년 미국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예술가 집단이다. 이들은 고릴라 가면을 뒤집어쓰고 하는 퍼포먼스, 강의, 출판,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게릴라걸스는 앵그르(Ingres)의 누드화를 패러디한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문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게릴라걸스의 질문은 서양미술사 책에서 여성 예술가들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 향한 분노의 목소리다.

 

 

 

 

 

 

이 책에 선정된 50인의 여성예술가 대다수가 유럽, 미국 중심 백인이라는 사실이 아쉽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만이 유일한 유색 인종 여성 예술가다. 동양, 아프리카 대륙의 여성예술가가 단 한 명도 없다. 이 책 소개와 무관한 내용을 덧붙인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가 상이 터너 상(Turner Prize)’이다. 올해 터너 상 수상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의 여성 미술가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로 결정되었다. 그녀는 1980년대 영국 흑인 미술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여전히 잔존하는 식민주의 역사와 인종 차별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녀가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영국 출신의 젊은 백인 미술가에게 주어진 터너 상의 전통이 깨져버렸다. 미술계의 최신 동향이 반영된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개정판이 나온다면 히미드는 ‘50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50에 포함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생존 인물로 나와 있는데, 그녀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십 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50에 선정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50번째 여성 예술가로 소개된 독일 출신의 레베카 호른(Rebecca Horn)1944년생이다. 셔먼은 1954년에 태어났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02년에 셔먼은 왕성히 활동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 그녀가 이 책에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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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2-30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올해는 사이러스 님 때문에 알라딘에서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이곳에 올인하여 주십시오. 데이트 따윈 하지 마시고... 데이트 할 시간에 글 써서 올리셔야죠.. ㅋㅋㅋㅋ 농담이고요...

cyrus 2017-12-30 11:29   좋아요 0 | URL
헉.. 새해 인사 대신 저주인가요? ㅎㅎㅎ

저는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내 입맛대로 끄적거리는거리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곰발님의 글과 댓글을 볼 때마다 피식하면서 웃게 됩니다. 곰발님의 말장난을 좋아하거든요. 내년에도 날카롭고 유쾌한 글 써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표맥(漂麥) 2017-12-3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과 곰발님 글 읽는 재미로 알라딘에 붙어(?) 있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cyrus 2017-12-30 11:34   좋아요 0 | URL
같이 붙어서 이 추운 겨울을 지내보아요... ㅎㅎㅎ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서니데이 2017-12-30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내일을 지나고 나면 새해가 되니까요.
올해도 좋은 이야기와 인사 나누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 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엔 더 좋은 일들,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7-12-31 15:46   좋아요 1 | URL
2017년 마지막 하루가 몇 시간 밖에 안 남았군요. 내년에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저나 서니데이님이나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 꼭 좋은 결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18-01-0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를 못 나눈 것 같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시면 저는 열심히 읽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리뷰는 이미 읽었고 이제야 댓글을 씁니다.)

cyrus 2018-01-02 23:30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님. 요즘 북플에도 관태기를 느껴서 그런지 새해 인사를 잘 안하게 되네요. 새해 인사 없이도 제가 알고 지내는 모든 분들 복 많이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제 글을 열심히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글의 주제가 흥미롭지 않으면 패싱하면 됩니다. ‘코리아 패싱‘은 없어도 ‘사이러스 패싱‘은 가능합니다. ^^

AgalmA 2018-01-04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신디 셔먼이 없다니! 유색인종에 대한 지점도 잘 지적하셨네요. 온갖 구별짓기로 소외를 만드는 째째한 세상!
cyrus님 작년에도 덕분에 재미나고 유용한 정보들 많이 알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
2018년은 어떤 흥미로운 걸 찾아다니실지 기대가 되네요.
건강히^^/

cyrus 2018-01-04 10:32   좋아요 1 | URL
저는 ‘알쓸신잡’ 콘셉트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쓸모없는 정보만 찾아 다녀야겠어요.. ㅎㅎㅎ

AgalmA 2018-01-04 10:39   좋아요 1 | URL
제가 그런 글, 정보들을 좋아하니까요ㅋㅋ 계속 진행하셔도 환영입니다~
 

 

 

양주동의 수필집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193쪽에 보면 눈에 띄는 표시가 있다. 젊은 독자들의 눈에는 잘못 인쇄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중장년층 독자는 이 표시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 그렇다면 이걸 아는 나도 중장년층 독자란 말인가?)

 

 

 

 

 

 

 

 

 

 

 

 

 

 

 

 

 

 

 

* 양주동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 최남선 백팔번뇌(태학사, 2006)

   

 

주지하듯이 백팔번뇌는 그때 그가 조선이란 에게 바친 뜨거운, 뿌리 깊은 사랑괴로움의 노래로서, 그의 대표적 시조집으로, 조그만 책자이나 시조사상의 한 중흥 기념탑이 될 만한 역작이다. 거기는 춘원, , 위당 등 당시 문단 거벽들의 서(), ()이 즐비 되어 있고, 끝에 석전 박한영 사()의 한시 명작 제사(題詞)가 실려 있다.

 

 

 

백팔번뇌육당 최남선1926년에 발표한 시조집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육당은 국내 시조 역사의 시작점에 놓인 인물로 '과대 평가'를 받았다. 정확하게 바로 잡으면 백팔번뇌우리나라 최초 근대 시조집이라 해야 한다.

 

 

 

 

 

 

 

 

 

 

 

 

 

 

 

 

 

 

* 최남선, 황충기 해제 육당본 청구영언(푸른사상, 2013)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은 1728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이다. 청구영언은 총 7종의 이본(異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권이 육당의 손을 거친 육당본이다. 백팔번뇌서문에 육당은 1904년에 자신이 시조를 쓴 사실을 언급했다. 이 문장을 근거로 연구가들은 육당이 최초로 현대 시조를 썼다고 주장하지만, 이 작품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1906721일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대구여사(大丘女史, 필명만 알려졌을 뿐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혈죽가(血竹歌)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조로 보고 있으며 이 시조가 발표된 721일을 기념해 시조의 날로 제정되었다.[1]

 

각설하고, 책 속 본문에 있는 표시를 주목해보자. 본문에 가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벽원? 벽 동그라미? 내가 추측하건데, ‘벽초 홍명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육당,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조선 3대 천재(동경삼재, 東京三才)’로 이름을 날렸다.

 

벽초가 쓴 임꺽정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대하소설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탄압으로 조선일보가 강제로 폐간된 1939년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임꺽정1940년 월간지 <조광>에 옮겨 다시 연재되었으나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벽초는 월북하여 김일성의 공산당 정권 수립을 돕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북한에서의 행적 때문에 벽초는 남한에서 불순한 월북 작가로 낙인찍혔고, 임꺽정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분단 이후로 반공 정책이 더욱 강하되어 월북 작가 및 예술가들은 완전히 잊혀졌다. 심지어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래서 월북 작가의 이름이 인쇄물에 찍히면 이름 가운데 글자가 있는 자리에 ‘O’ 또는 ‘X’ 표시를 했다. 문주반생기가 발표된 해는 1960년이다. 냉전 반공체제를 유지했던 이승만 정권 시절이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월북한 춘원의 이름은 멀쩡하게 나와 있다. 사실 춘원은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북한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이 시기의 춘원은 병으로 심신이 쇠약한 상태였고 전란이 한창이던 1950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권영민 엮음 정지용 전집 1~3(민음사, 2016)

 

 

 

그런데 내가 봐도 월북 인사 이름 언급의 기준이 모호하다. 아니, 너무 불공평하고 억지스럽다. 반공 정부는 월북 인사의 행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북한으로 건너간 인사들을 친북 인사로 규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시인 정지용이다. 1988년에 월북 작가 및 예술가 해금 조치가 내리기 전까지 정지용은 잊힌 이름이었고, 어정쩡하게 X으로 알려졌다. 정지용의 시가 수능 시험 지문으로 출제되는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김진송 이쾌대(열화당, 1996)

* 국립현대미술관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돌베개, 2015)

 

 

 

최근 재조명받고 있는 화가 이쾌대도 분단의 비극에 희생당한 불운한 인물이다. 이쾌대는 뛰어난 서양화가로 인정받았으나 여러 복잡한 사정 때문에 월북을 선택했다. 남한에서 그의 이름은 였다. 1991년에 그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가 열렸다. 이쾌대는 경북 칠곡 출신이며 1928년 서울의 휘문고보(휘문고등학교 전신)에 진학할 때까지 대구에 거주했다. 이쾌대의 형 이여성은 대구에서 항일운동을 한 공산주의자이며 동생처럼 그림을 출품한 적이 있는 화가이다. 그도 월북하여 북한에서 학자 생활을 했으나 숙청당했다.

 

 

 

 

 

 

 

 

 

 

 

 

 

 

 

 

 

* 김상숙 10월 항쟁(돌베개, 2016)

 

 

 

현재의 경북, 대구는 반공 우파의 성지로 알려졌지만, 일제 강점기 대구는 좌파의 성지였다. 1946‘10월 항쟁은 미 군정의 식량 정책, 친일 인사 등용 등에 항의한 좌파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이 일으킨 대규모 무장 시위였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항쟁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와 민간인들이 사망했으며 남로당(남조선노동당) 간부 박상희도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박상희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형이다. ‘빨갱이를 무서워하는 어르신들은 대구 경북이 자랑하는 뛰어난 월북 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려나? 이쾌대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북한에 건너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욕할 수 없다. 씁쓸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이념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월북 인사들의 이름조차 입에 담기 싫어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은 죽은 형의 복수를 위해 남로당에 가입했고,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한 군인 박정희를 아시려나? ‘빨갱이를 엄청 싫어하는 그분들의 단순한 기준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도 빨갱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를 철저히 숨기고, 모른 쇠하는 민족 역시 미래는 없다. 아니, 답이 없다.

 

 

 

 

 

[1] [721일은 시조의 날현대시조 100주년 맞아 선포] 국민일보, 200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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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2-28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중장년층 독자’가 되고 마는군요...^^

cyrus 2017-12-28 17:39   좋아요 1 | URL
저는 아재 독자입니다... 요즘 젊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젊은 작가들이 누구 있는지 잘 몰라요.. ㅎㅎㅎ

[그장소] 2017-12-2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이 자꾸 보인다 싶었는데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범우사 ㅡ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 가 힙했다면 과거엔 양주동 님의 문주반생기도 만만찮죠!!

cyrus 2017-12-28 17:41   좋아요 1 | URL
초판본의 옛 글자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나왔습니다. 이해 안 되는 단어를 설명하는 각주가 있지만, 조금 읽기 힘들었어요. <안녕 주정뱅이>는 제목만 들어봤습니다. 제가 젊은 저자나 작가의 책을 잘 안 읽는 편이에요. ^^;;

[그장소] 2017-12-28 17:46   좋아요 1 | URL
권여선 작가는 젊은 ( 등단 10년정도를 기준이라고 하면) 작가보단 중견 작가에 가까운 듯 싶지만 , 취향이겠죠 ..아마도~
멋진 작가입니다 . 이 권여선 작품들도 ..
개정판이 표지도 그렇고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요 . 아마 그걸 노린 마케팅 같기도 하네요. ^^

레삭매냐 2017-12-28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방 공간에서 대구가 한 때 동양의 모스크바
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하네요.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조선공산당 평전>을 보
니 안동 풍산 소비에트에 대해서도 나오고요.

반공 보수우파의 성지가 된 모습과는 격세지감
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cyrus 2017-12-28 17:45   좋아요 1 | URL
대구에서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합동북이라는 헌책방에 가면 8, 90년대에 나온 마르크스, 레닌 관련 서적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사회주의 관련 출판물이 한창 나왔던 시절에 대구에서도 사회주의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 많았을 거예요.

지금행복하자 2017-12-28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저는 청년? 아니죠~ 지식이 짧은거라죠~^^

cyrus 2017-12-28 17:53   좋아요 1 | URL
지식의 범위보다는 세대 차이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2017-12-2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8 17:49   좋아요 1 | URL
대구는 서울과 비교하면 문화적, 경제적 면으로 뒤쳐져 있어요. 이런 열악한 곳에 대구 출신 문인들의 모임, 일반인들의 독서 모임이 이루어지는 서점 등이 생겨서 위안이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

이하라 2017-12-2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장년층 독자 안하겠습니다--; 초보 독자로 남을래요^^;;

cyrus 2017-12-29 08:04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어서도 스펀지로 흡수하는 것처럼 신선한 지식을 흡수할 줄 아는 젊은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전업 작가가 되려면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적어도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예술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시사를 담고 있다. 울프가 말한 ‘방’이란 예술가로서의 창조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울프는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여 경제적 자립과 독립적 공간의 확보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길 바랐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2006)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코리아, 2015)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2016)

 

 

 

그렇다면 여성이 화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기본적으로 그림 그리는 작업실, 물감, 화구(畫具)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준비 요건을 모두 갖추려면 돈이 많이 든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맞물려 여성 예술가들의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으리라 기대한다면 갈 길이 아득히 멀다. 여성 예술가들은 갖가지 오해와 편견을 받는다. 또 가사와 양육으로 지속적인 예술 활동이 불가능하다.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 (해냄, 2003)

*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 (아트북스, 2006)

*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아트북스, 2017)

 

 

 

예나 지금이나 예술계에도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 있다. 오늘날에 널리 알려진 여성 예술가들은 외부의 유리 천장뿐만 아니라 내면의 유리 천장까지 뚫으면서 예술가로서의 신념과 내면의 힘을 스스로 길렀다. 하지만 현실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야망이 넘쳤고, 예술가가 지녀야 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끝내 재능의 날개를 펼치지 못한 채 요절한 여성 예술가도 있다. 그림을 그리려고 파리로 건너온 러시아의 젊은 화가 마리 바슈키르체프(Marie Bashkirtseff)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바슈키르체프는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러시아 귀족의 딸이었다. 열아홉 살의 바슈키르체프는 그나마 여학생 입학을 받아준 줄리앙 아카데미(Académie Julian)에 등록하기 위해 파리에 가기로 했다. 그녀의 파리 생활은 혈혈단신으로 시작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파리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리려는 바슈키르체프가 못마땅했다. 여학생이 내야 할 줄리앙 아카데미의 등록금은 남학생 등록금보다 두 배나 높았고, 또 해부학 강의를 들으려면 수강료를 내야만 했다. 이렇듯 19세기 여성이 마주해야 할 예술계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도 많았다. 전문 화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술학교에 등록한 여학생의 수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파리의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바슈키르체프에게 미술을 가르쳐준 사람이 로자 보뇌르(Rosa Bonheur)이다. 보뇌르는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다. 1865년에 보뇌르는 여성 미술가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여성의 미술계 진입 상황이 썩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교육을 받는 여성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미세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감지한 바슈키르체프는 ‘여성 화가의 작업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881년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 화가들의 염원을 담은 『작업실 안에서』를 제작했다. 바슈키르체프의 이 그림 속에 미술을 공부하는 열여섯 명의 여학생들을 그렸다. 물론, 이 그림에 바슈키르체프 본인의 모습도 있다. 그림 속에 화가를 찾아보시라. 힌트는 바슈키르체프의 ‘자화상’이다.

 

 

 

 

 

 

 

 

 

『작업실 안에서』는 여성 화가가 처한 열악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 ‘화가의 작업실’은 남성 화가들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호모 소셜(Homo social)’의 장소로 묘사되었다. ‘화가의 작업실’을 주제로 한 쿠르베(Courbet)와 프레데릭 바지유(Frédéric Bazille)의 그림을 보라. 남성 화가의 개인 작업실은 넓고 쾌적하다. 작업실에는 화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가 직접 사들인 동료 화가의 그림들도 걸려 있다. 여성보다 경제적 지위가 높고, 그림 그리는 재능을 가진 남성은 화가가 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화가들은 남성의 경제적 지위에 의존해야만 미술을 배울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또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여성 화가들은 좁은 작업실에 모여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쿠르베의 그림 중앙에 서 있는 누드모델은 ‘남성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Muse)’인 동시에 그림 내부 또는 그림 외부에 있는 남성 감상자들을 위한 성적 대상화가 된다. 그림 오른쪽에 부유해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있으나 그녀도 감상자일 뿐이다. 그녀는 남성 감상자 무리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상태다. 벌거벗은 누드모델과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무척 대조된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하층 여성(공장에 일하는 여성, 매춘부 등)들은 '투 잡(two job)'으로 누드모델 일을 했다. 쿠르베의 그림 속에 있는 두 여성은 19세기 프랑스 여성 인구의 극심한 빈부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 메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책과함께, 2012)  

 

   

 

바슈키르체프는 열세 살 때부터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일기를 썼다. 그녀는 일기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고, ‘여성’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굴레에 속박되어 살아가면서 느낀 심정을 기록했다. 그녀 사후에 공개된 일기가 워낙 유명해지는 바람에 그녀는 ‘화가’보다는 ‘작가’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메릴린 옐롬(Marilyn Yalom) 《아내의 역사》(책과함께, 2012)에 바슈키르체프를 ‘작가’로 소개했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의 딸 줄리 마네(Julie Manet)도 바슈키르체프의 일기를 즐겨 읽었다. 줄리 마네는 자신의 일기에 바슈키르체프를 ‘호기심 많은 여성’, ‘마음이 유연하고 머리가 좋은 여성’, ‘상상력이 풍부한 여성’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녀의 적극적인 사교성과 비범한 능력에 거부감을 느끼는 남성들이 있었다. 특히 ‘여성 혐오’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는 바슈키르체프 같은 여자는 ‘번화가에서 공개적으로 엉덩이를 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드가 선생,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코 찡긋) 성격이 착했던 줄리 마네는 드가를 ‘친절한 어른’으로 생각했다(실제로 드가는 베르트 모리소와 그의 딸을 무척 잘 대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본 드가는…‥ 그냥 한 20미터 정도 떨어져서 보기엔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친구로 지내라면 조금 힘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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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7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8 08:38   좋아요 1 | URL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보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하나는 말씀하신, 예술가가 죽고난 후에 재평가받는 것, 또 하나는 생전에 인정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예술가. 다 빈치나 피카소처럼 천재 예술가는 살아있을 때 명성을 얻었도 죽어서도 본좌급 명성을 얻고 있죠.

서니데이 2017-12-27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날씨가 추웠는데 내일까지는 추운 날이 될 것 같아요.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7-12-28 08:40   좋아요 0 | URL
추운 날씨 때문에 오히려 퇴근길이 출근길보다 두렵습니다.. ^^;;
 
문주반생기
양주동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는 식민지 시대 조선의 ‘3대 천재라 일컬었다. 그들이 천재로 군림하던 시대에 이 세 사람을 능가하는 새로운 천재가 등장했다. 무애 양주동. 어려서부터 익힌 한학에 능통했던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향가 25수 전편을 해석했다. 선생은 생전에 스스로 천재이자 국보임을 내세웠다. 그의 언행을 요샛말로 하면 자뻑(자화자찬을 의미하는 은어)’에 가까운 셈이다. 그렇지만 선생은 자칭 국보라고 불릴 만큼 공부의 깊이나 재능이 비상한 사람이었다.

 

데카르트(Descartes)는 천재란 후천적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재를 이미 태어날 때부터 선험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통해 능력이 발휘되는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양주동 선생처럼 후천적 노력으로 천재가 된 사람들도 있다. 선생의 수필집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를 선생을 위해서 제목을 다시 짓는다면, 나는 어떻게 천재가 되었는가라고 붙여주고 싶다. 천재성의 바탕에는 포기를 모르는 학구열이 있었다. 소년 시절 선생은 영어를 독학했는데 ‘3인칭이 이해되지 않아 겨울날 아침 20(7km)를 걸어 일본인 교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교사의 설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선생은 ‘3인칭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고, 반복해서 읽었다.

 

문주반생기를 읽어야지 한평생 문학의 숲에서 자유롭게 노닌 문학인의 진득한 진지함에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언 양주동이지만, 그의 삶에 거쳐 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선생은 이 책에서 2, 30년대 문인과 문단의 다채로운 풍경을 생생하게 되살려놓는다. 대구에서 항일 운동을 펼친 시인 백기만, 선생의 술 동무 횡보 염상섭, 잊힌 요절 시인 이장희, 선생이 사랑했던 문학소녀로 알려진 강경애 등 그와 함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눈 문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 문주반생기는 문고본 형태의 발췌본으로 남아 있어서 술을 중심으로 한 문인들의 일화를 담은 회고록 정도로 알려졌다. 사실 문주반생기범인(凡人)’으로서의 독자들이 읽기 힘든 책이다. 한시, 동양고전, 서양문학 등을 인용 · 언급한 문장은 선생의 박람강기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으나 독서 몰입을 방해하는 단점이 있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과 한문은 상세한 설명 없이는 도저히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리하여 최측의농간 출판사는 초판본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되 문장 이해를 돕는 1,996개의 각주를 달았다.

 

지금은 조금 가라앉혔지만, 작년 출판계에 초판본 복간 열풍이 불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원본의 진본성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눈으로 보는 책의 근본적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초판 복각본은 독자가 소유하고 싶은 책일 뿐이다. 독자의 초판본 소유욕이 읽는 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최측의농간이 새롭게 편집한 문주반생기초판본 복간작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세대 불문하고 '읽는 독자를 위한 초판본이다. 문주반생기편집을 위해 출판사 관계자들은 오랜 세월 걸쳐 옛 판본을 읽었다. 수많은 국어사전, 참고문헌을 활용하며 꼼꼼한 교정을 거친 출판사의 노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읽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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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었구나. 그런데 좀 어려웠나 보군.
그러니까 나도 좀 주춤해지네.
그냥 너의 리뷰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cyrus 2017-12-27 16:18   좋아요 0 | URL
어렵다기 보다는 읽기가 힘들었어요. 선생이 너무 많이 인용을 하셔서... ㅎㅎㅎ

2017-12-27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7 16:21   좋아요 2 | URL
양주동 선생이 아주 어린 나이에 한문을 떼고(조금 과장된 면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다섯 살 때부터 술의 맛을 알기 시작했을 정도면 조숙한 천재의 기질이 있었을 것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애주가로 유명한 선생이 문장을 달달 외우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재인 건 확실합니다. ^^;;
 
오트란토 성 환상문학전집 2
호레이스 월폴 지음, 하태환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고딕(Gothic)은 중세에 세워진 뾰족한 첨탑에서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다. 지금도 이 건축물들은 세월의 때가 켜켜이 앉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고딕이라는 단어는 인상파’, ‘빅뱅(big bang)’처럼 처음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 · 로마 미술 문화에 심취한 학자들은 고딕을 야만스러운 건축 양식이라고 비난했다. 고전주의와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가 굳건하게 유지되는 시대 속에서 고딕은 ‘B급 문화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중세 기사도 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한 낭만주의자들은 고딕 양식에 열광했다. 젊은 시절의 괴테(Goethe),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 등이 고딕 건축물의 위엄에 감탄한 인물들이다.

 

 

 

 

 

월폴은 영국의 고딕 덕후였다. 그는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이라는 이름의 고딕풍 별장을 세웠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별장 안에는 월폴이 직접 수집한 골동품으로 가득했고, 자신과 미적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골동품을 감상하기도 했다. 월폴이 살았던 18세기 영국에 고딕 양식뿐만 아니라 고딕 소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딕 소설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딕 소설의 정의를 아주 쉽게 말하면 중세풍 공포소설 또는 환상소설이다. 고딕 소설의 특징은 딱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중세 시대의 고성이나 수도원은 고딕 소설에서 꼭 나오는 장소 배경이다. 두 번째, 고성과 수도원 안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한다. 세 번째, 그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 인물들은 이성을 상실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신 줄을 놔서 미쳐 버린다…‥.

 

고딕 덕후월폴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소설 한 편을 발표했는데, 그 소설이 바로 오트란토 성(Castle of Otranto, a Gothic Story)이다. 이 작품 하나로 월폴은 고딕 소설의 창시자’, ‘영국 공포문학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오트란토 성은 이 소설의 무대인 중세의 고성이다. 이 성의 주인은 만프레드 대공이다. 가족관계로는 아내인 히폴리타와 슬하 11녀의 자녀(장녀 마틸다, 차남 콘라드)를 두고 있다. 열다섯 살의 콘라드는 만프레드 대공의 상속인으로 비첸자 후작의 딸 이사벨라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콘라드가 거대한 투구에 깔려 사망한다. 마침 사고 장소에 있던 농부는 콘라드의 죽음이 오트란토 성의 전 영주인 알퐁소 르 봉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그러자 대공은 농부의 말에 노발대발하고, 정신 줄을 놓게 된다. 알퐁소 르 봉과 관련된 어둠의 힘에 두려워하던 대공은 개차반이 돼가고 있다. 아들의 죽음을 아내 탓으로 돌리고, 마틸다를 자신의 새 아내로 삼으려고 한다. 대공의 광기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대공의 심기를 건드린 농부다. 사실, 그는 테오도르라는 인물로 알퐁스 르 봉 가문의 피가 섞인 영주의 후예이다. 소설 중반은 만프레드 대공과 테오도르의 대결 구도 양상으로 흘러간다.

 

한때 전국을 웃긴 개그도 시간이 지나면 유치하게 보이듯이 큰 인기를 얻은 공포소설도 지금까지 쭉 읽히는 건 아니다. 즉 공포소설의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즘 같이 영상의 시대에 만들어진 공포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고딕소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오트란토 성번역본의 뒤표지에 있는 출판사 책 소개 내용을 보라. 과장 홍보’를 경계해야 한다.

 

 

박진감 넘치는 짧은 소설

오늘날에도 역사를 초월한 재미로 읽는 이를 사로잡을 것이다.

 

 

짧은 소설은 맞는데, 서양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내가 봐도 박진감 넘치는건 아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지나치게 질질 끄는 묘사 몇 군데 보인다. 작가가 고딕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고딕 분위기 연출을 위한 묘사에 너무 힘을 들었다. 역사를 초월한 재미…‥? 에이, 그건 좀 아니다. 오트란토 성이 주는 공포감이 현대의 독자들(특히 공포’, ‘호러마니아들)에겐 만족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소설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힘에 점점 제압당하는 인물(만프레드 대공)의 심리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말고…‥.)

 

만프레드 대공은 가부장의 힘을 내세워 전처와 친딸을 내팽개치고, 죽은 아들의 약혼녀를 아내로 삼기 위해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변명을 한다. 대공 입장에서는 어둠의 힘은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 만프레드 가문의 대를 끊어버린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그리하여 대공은 가부장의 힘으로 어둠의 힘앞에 저항해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전처를 외면하고, 아들의 약혼녀와의 결혼을 강제로 실행하기 위해 고집을 부릴수록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추잡한 욕망을 드러내는 독재자로 변한다. 대공은 사악한 충동을 절제하지 못해 비이성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성의 시대를 거스르는 인물형이다. 월폴은 만프레드 대공을 통해 이성을 강조하는 문명인 속에 숨겨진 삶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려고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대공의 똥고집(?)은 인간이야말로 똑똑하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자신감 넘치는 계몽주의자들에게 향하는 반발심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번역 문장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문장 몇 개 보인다. 새로 번역한다면 매끄럽지 않은 문장을 다듬었으면 좋겠다.

 

 

“should pass from the present family, whenever the real owner should be grown too large to inhabit it.”

 

오트란토 성과 영주권은, 합법적 소유주가 너무 커져서 더 이상 거기서 살 수 없게 되는 날, 현재의 혈통으로부터 박탈될 것이다.” (26)

    

 

“Do I dream?” cried Manfred, returning; “or are the devils themselves in

league against me? Speak, internal spectre! Or,if thou art my grandsire, why

dost thou too conspire against thy wretched descendant, who too dearly pays for- ”

 

당신이 나의 조상이라면 왜 당신은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당신의 불쌍한 후손에게 대적하려고...” (39)

 

 

번역본의 역자는 프랑스 저작물을 번역한 불문학 전공자. 어째서 불문학 전문 역자가 영문학의 고전 번역을 맡게 되었을까?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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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cyrus 2017-12-23 11:5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

2017-12-22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3 11:56   좋아요 1 | URL
‘취업’이 중요하니까 취업 준비에 유리한 학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전공’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졌어요.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학과를 선택하는 예비 대학생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

2017-12-23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7-12-23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오트란트 성같은 작품은 아무래도 후대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닥 재미없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지요.왜냐하면 후대로 갈수록 그런 장르가 더 발전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불문학 전공자가 영문학을 번역하는 것은 그분이 영어도 잘하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래도 불어번역보다는 영어번역의 일이 더 많아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네요.

cyrus 2017-12-23 11:5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트란토 성> 번역자가 번역한 책 중에 민음사에서 나온 <시뮬라시옹>과 들뢰즈의 책 한 권 있었어요. 이 분이 번역한 책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중에 유일한 영문 번역서가 <오트란토 성>입니다. ^^;;

깐도리 2017-12-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친구 추가합니다...

cyrus 2017-12-27 13: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깐도리님도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신거 축하드립니다. ^^

saint236 2017-12-2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요즘 알라딘 서재에 뜸했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여전히 계시기에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납깁니다.

cyrus 2017-12-27 13:2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세인트님. 잘 지내시죠? 먼저 반가운 인사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분들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게 되니까 그 전에 만났던 분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뜸해집니다. 아무 말없이 서재 활동을 멈춘 분들이 많아요. 이럴 때 기분이 묘해요.

2017-12-25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7 13: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성탄절에 집에서 푹 쉬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