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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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와 히틀러는 이념적으로는 상극이지만 선전과 선동의 달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일찍부터 말로 하는 전쟁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들이 즐겨 쓰는 선전술로 상대방에 대한 낙인찍기가 있다. 특히 과거 공산주의자들은 우파들을 제국주의자’ ‘파시스트’  등으로 규정하면서 민심을 유혹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진보좌파 세력이 득세하면서 보수우파 세력에 대한 낙인찍기가 유행했다. 군사정권 시절에 나왔던 빨갱이란 단어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빨갱이는 국어사전에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망둑엇과의 바닷물고기란 두 가지 의미로 나와 있다. ‘빨갱이란 단어를 쉽게 내뱉는 사람들이 바닷물고기를 비유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단 한국의 현실에서 진보좌파 세력은 배제되어야 할 대상, ‘빨갱이와 동의어로 통용됐다. 기득권이 친일과 친독재라는 자신들의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애국 보수를 자처하며 활용해온 낙인이다. 이렇다 보니 빨갱이뿐만 아니라 인민’, ‘동무도 우리 사회에서 극히 민감하게 취급되는 단어가 되었다

 

인민은 우리말 국어사전에도 있다.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을 의미한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구절을 게티즈버그 공원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귀에 박았다. 본디 인민이라는 용어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인민을 쓴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서 인민은 백성을 뜻한다. 북한은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닌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 주입하는 무기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남한에 인민이 설 자리가 없다. ‘인민공산주의자와 같은 맥락의 단어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년에 조선일보는 전교조 위원장이 인민이 들어간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의 사상을 의심하는 내용의 사설을 실은 적이 있다.

 

기득권으로 눌러앉은 보수우파는 전체적인 맥락보다 단어에 집착하거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뜬금없는 이유를 들면서 사상을 검증하려고 달려든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준이 불명확한 검열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다닌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생기는 크고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노동자니, 민중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엄청 많은 수의 인구가 사는 중국의 사정도 피차일반이다. 중국 공안당국은 네티즌이 올린 민감한 어휘나 단어들을 죄다 걸러낸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보다 노골적으로 검열에 들어간다. 그곳에 혁명이란 단어도 쓸 수가 없다. ‘64이라는 날짜가 인터넷에 등장하면 공안당국 검열관이 출동한다. 64일은 톈안먼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공안당국의 검열을 피하려고 ‘64‘535로 바꿔놓았다.

 

위화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작가다. 그는 어두컴컴한 공안당국의 검열 그림자에 가려진 단어들을 찾아냈다. 그가 제일 먼저 찾은 단어가 바로 인민이다.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첫 번째 주제가 인민이다. 톈안먼 사건은 중국 인민의 정치적 열정이 크게 집중되었던 중요한 날이었다. 거대한 탱크 앞에서 중국인들이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단합하여 맞서면 빛보다 더 멀리, 그리고 빠르게 전달되는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그토록 뜨거웠던 민주화에 대한 인민의 열기는 허무하게 식어버렸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인민에서 국민이 되었다. 혁명이 지나간 뒤에 국민이 된 중국인들은 정치적 열정 대신에 부에 대한 열정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위화는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정치적 열정을 상징했던 인민이 점점 잊히는 세태를 아쉬워한다.

 

 

 

 

인민을 그리워하는 위화의 심정이 이해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여러 차례 정치적 열정을 크게 발산했던 시기가 많았다. 민주화의 꿈이 군부정권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가운데 나라 전체가 정신적 공황기를 맞은 불안정한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소중한 불씨를 지켜나간다는 일념에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민중이었다. 518일 광주민중항쟁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중항쟁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민중은 이제 먹고살기에 바쁜 국민이 되었다. 국민은 순종적인 성품과 안정적인 생활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리고 민중뿐만 아니라 민주화라는 단어를 진보좌파, 운동권 세력들이 즐겨 쓰는 민감 어휘라고 생각한다. 518일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는 폭동으로 비하한다. 우리나라는 검열 기관이 없는데도 자기들이 똑똑한 검열관인 것처럼 행세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보수우파 쪽 국회 어르신이나 지식인들은 비상식적인 편견을 동원해서 종북주의자 색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선동에 동화된 사람들도 인터넷에서 서식하면서 자칭 검열관 행세를 한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는 자신이 검열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다.

 

 

중국과 우리나라, 이 두 개의 국가는 지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빛에 둘러싸여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국민은 이 빛을 받으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너무나도 따뜻한 자본주의의 빛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빛을 영양분 삼아 경제가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빛에 오래 적응한 국민은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과거 민중또는 인민시절처럼 부당한 사회제도를 거부하려는 횃불 같은 열기를 발산하지 못한다.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력보다는 일상에서 수동적인 회피로 일관한다. 심지어 삶의 편의성을 누리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기도 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홀유(忽悠)’라는 말이 유행했다. 홀유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는 행위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로 이해한다. 이렇다 보니 법에 위반된 행위를 저질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버젓이 위반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그냥 뻔뻔하게 변명을 한다. “이런 게 바로 민중의 지혜이지요.” 그것도 민중의 의미를 왜곡까지 하면서 말이다.

 

 

 

    

햇빛이나 인공조명을 너무 오래 쬐면 몸에 악영향을 끼친다. 자외선이 강한 햇빛은 피부를 상하게 하고, 인공조명의 과도한 빛은 불면증을 일으킨다. 강렬한 자본주의의 빛은 사회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부패지수에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몸은 비대해졌다. 국민 혈압 오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거짓말 일삼는 국민의 도덕심은 시커멓게 변하면서 상하고 있다. 위화는 홀유의 세계속에 사는 심정을 부조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름대로 점잖은 표현을 써가면서 중국 사회를 비판했다. 혹시 위화가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남한 사정도 중국만큼이나 숨 막힐 지경이다. 불과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에 비하면 자유는 넘친다. 그러나 삐딱한 시선이 넘친다. 곳곳에 상대방을 조롱하는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거짓과 위선이 처세술로 변질하였다. 왜곡, 편견의 영향력이 높아지다 보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도 많지 않다. 사회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에 휩싸이면 심리적 탈진상태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건강한 민중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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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6-1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 프로파간다가 강할수록 변질되는 현상...다 그렇더라구요. 오늘도 역시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6-17 11:29   좋아요 1 | URL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루쉰P 2016-06-18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준만 교수님이 말한 `증오산업주의`가 생각이 나요. 철저하게 적을 가르지 않으면 정치하는 사람들..음 그러니까 권력자들 혹은 출세주의자들이라고 할까요? 권력자들은 적을 만들고 그들을 공격하는 언어를 만들고 그래야지 만이 `인민`들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기름진 배를 배불리 찌울 수 있으니까요.

전 아직 `위하`를 읽어 보지는 못 했어요. 시루스님께서 중국의 현실이나, 지금 우리의 현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을 얘기해 주셨듯이 전 체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민주주의적(?)체제는 필요하다고 보기는 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체제안의 사람들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위하는 중국의 체제가 검열도 심하고 민주주주의 국가와 중국을 비교해서 비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를 보면 그리고 미국도 보면 과연 민주주의라는 국가가 중국의 체제와 달리 뭔가 더 나은 점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거든요. 부정은 더 어둠으로 숨고, 인민을 속이는 솜씨는 더 교묘해 졌죠.

그렇다고 중국의 체제가 낫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의 체제 역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어떤 체제든 그 안의 인간들의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그 사상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체제를 인간을 위해 움직일 수 있게끔 힘 써야 할까? 그런 것이 각각 현실의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체제가 낫고, 그 체제가 아니니까 우리는 문제가 많다 그런 것은 좀...받아 들이기 어렵다고 할까요? 전 그런 생각이에요. ㅎ

시루스님의 좋은 글을 읽으니 여러모로 긴 댓글을 썼네요 ㅋ

cyrus 2016-06-20 00:10   좋아요 0 | URL
진지한 생각이 담겨 있는 이런 댓글, 환영합니다. ^^

좋은 말씀 하셨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에서 내부의 혼란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요. 미국도 예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래드 다이아몬드가 이번에 나온 신작에서 미국의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미국에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알려지던 미국도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간이 만든 ‘~주의’는 절대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장점이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단점도 있으니까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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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딴 방에 홀로 불안감에 벌벌 떨면서 택배 직원을 기다린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상품이 배송되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뜬다. 택배 직원의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대체 어떤 상품이 오는 걸까. 딩동! 택배 왔습니다! 택배 직원이 오는 소리가 썩 반갑지가 않다. 나이 한 살 더 얹은 택배를 받았다. 반송 불가다. 나이 앞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것이 공포라는 것을 그때 느꼈다.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괜히 읽었다. 8컷으로 이루어진 만화를 금방 다 읽고 나니까 묘한 느낌이 불쑥 생겼다. 참으로 묘한 스물여덟. 조금 있으면 ‘아홉수’가 된다. 영원한 솔로로 남느냐와 결혼의 막차를 타느냐의 분기점이 되는 시기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30, 40대 독신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받아야 했고, 누구나 받아야 할 ‘나이 한 살 더 택배 상품’을 안고 가는 어른들의 애환이다. 

 

 

 

 
 


마스다 미리는 결혼하고픈 욕망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여 울렁거리는 어른의 마음을 사실적이고 진지하게 그려냈다. 수짱과 사와코는 자신의 삶과 선택이 끊임없이 ‘가족 안에서 수행해야하는 여성역할’이라는 시험대 위에 오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혼이라는 것은 한 가족 내 딸의 역할과 더불어 또 다른 가족의 며느리, 남편의 아내라는 역할을 더 부여받게 된다. 수짱과 사와코, 그리고 결혼한 마이코의 삶을 들여다본 독자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란 친밀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기보다는 나의 자아실현과 자유를 속박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스다 미리는 독자에게 세 가지 물음표를 던진다. 이 물음표들에는 일, 결혼, 몸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수짱은 책임질 가족이 없어서 편하다는 생각과 비빌 언덕이 없어서 외롭다는 복잡한 심정을 느낀다. 결혼에 관한 결정적 선택, 남들은 모두 끝낸 고민을 오늘도 계속한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게다가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몸은 벌써 청춘이 아니다. 서른은 자기 인생을, 마흔은 가족을 책임진다. 세대마다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의 껍질은 다를지라도 속은 늘 ‘책임감’으로 꽉 차 있다. 한 살이라도 젊었던 ‘그때는’ 변화에 대한 의지와 선택의 폭이 넓었지만 ‘이제는’ 그러기엔 책임져야 할 것도 많다. 이렇게 보면 삶은 항상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달려간다. 

 

 

 

 


 
그렇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는 다소 어둡고 절망적 기운이 감돌지 않는다. 현실은 세 여자에게 고민거리를 많이 안겨주지만,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만화는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마스다 미리는 ‘오춘기’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거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또한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만 매달리는 고민을 지나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티베트 속담 중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별로 없다는 말이다. 좋은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쩌랴. 걱정은 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걱정이 크면 행복은 떠나가게 된다. 서른, 마흔을 코앞에 두고 저마다의 부담스러운 ‘나이 택배’를 짊어진다. 매년 지날수록 삶의 무게감이 점점 늘어만 간다.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순 없다. 기억할 한 가지. 쉰이 되면 ‘내가 마흔 살만 됐어도....’라고 말하리란 사실. 인간은 늘 같은 고민을 하고, 또 그 고민을 망각한다. 삶이 지속하는 한 삶에 대한 고민은 끝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심각하게 걱정하면 더 힘들어진다. 서른이나 마흔은 그런 나이다. 어떤 이유로도 제 행동에 따르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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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5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15 21:48   좋아요 0 | URL
이 좋은 말씀을 왜 가리십시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취업 문제 때문에 대인 관계를 소홀히 한답니다. 저도 좀 그런 경향이 있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이성과 어울릴지도 모르고, 결혼 고민에 무감각해집니다. 결혼을 해도 배우자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만큼 대인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저절로 몸에 배는 것 같습니다.

:Dora 2016-06-1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에 대한 답을 드립니다 ☞당근 괜찮아

cyrus 2016-06-16 16:42   좋아요 0 | URL
비혼은 고심 끝에 결정한 사람의 개인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는 사람을 아니꼽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는 비혼자들도 있는데, 당사자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비혼자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불편합니다.

북프리쿠키 2016-06-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질문 드립니다>>이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cyrus 2016-06-16 16:43   좋아요 0 | URL
제가 미혼자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떠올리지 않네요. ^^;;

cyrus 2016-06-16 17:49   좋아요 0 | URL
몇 분 전에 댓글을 남기셨던데 사라졌군요, 북프리쿠키님 생각이 저랑 비슷하네요.

북프리쿠키 2016-06-16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곰곰히 생각해보니 논리적인 글이 아닌듯해서 황급히 삭제했답니다.ㅎㅎ 머쓱하네요

cyrus 2016-06-16 18:13   좋아요 0 | URL
편하게 생각을 밝혀줘도 괜찮습니다. 댓글이 삭제되어도 북플 알림, 이메일 알림에 남아요. ^^

또 봄. 2016-07-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cyrus 2016-07-09 08:10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blog.aladin.co.kr/eventWinner/8453063

(‘오늘의 작가상 독자 심사위원 모집 리뷰 대회 이벤트’ 당선자 발표 게시판)

 

제가 4월 26일에 서재지기 게시판에 의견을 올렸습니다. 리뷰 대회 우수상 당선작을 볼 수 있도록 링크를 걸어달라고요. 거의 두 달 정도 지났는데, 제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어요. 지금 이벤트 당선작 발표 게시판에 들어가면, 우수상에 당선된 세 분의 알라딘 회원 서재 주소만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은 당선자 발표 게시판에 들어가셔서 한 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우수상 당선작 링크가 없습니다)

 

우수상 당선자 모두 알라딘에 글을 꾸준히 쓰는 분들입니다. 글도 잘 씁니다. 이 분들도 최우수상에 당선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고, 충분히 수상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수상 당선작 링크 기능을 해주지 않은 알라딘이 실망스럽습니다. 회원의 사소한 제안을 가볍게 무시하고, 열심히 쓴 글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서재 활동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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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6-15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공감되는 의견..모르면 찾기가 참 어렵거든요....
좋은 서평이 뭍혀 버리는 게 안타까운 일인데,
이걸 발굴하는 것도 서재지기의 업무중 하나일 것입니다....

다른 일이 많이 바쁜가 봐요...

알라딘에 서재 전담요원이 없는거 아닌지 의심스럽죠.

보통 회사생활 업무에 불요불급한 일 아니고
영향이 내재되어 보이지 않고 들어나지 않는 일은
뒤로 미루어지는 경향은 어디서나 비슷할겁니다.

cyrus 2016-06-15 17:03   좋아요 0 | URL
혹시 제가 글을 올렸던 시간에 이벤트 게시판 확인해보셨나요? 방금 이벤트 게시판 봤는데 링크가 수정되어 있었어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수정 작업하는 것 보고 소름 돋았습니다.

2016-06-15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15 17:10   좋아요 0 | URL
두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해놓다가 두 시간 만에 바로 수정하는 알라딘 작업 클라스.

진짜 여기 이상한 곳입니다. ㅋㅋㅋㅋㅋ

2016-06-15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5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5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5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lummii 2016-06-15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링크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걸까요 너무 좋은의견인데 왜 안들어주는 걸까요 개인 사생활보호때문에? ㅋㅋㅋ

cyrus 2016-06-15 17:07   좋아요 0 | URL
서평 이벤트에 응모하는 글은 ‘전체 공개’ 글입니다. 사생활 보호라는 이유로 비공개 글로 응모하면 서평 이벤트에 당첨될 수 없어요. 그러므로 당선작은 공개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린 지 두 시간 정도 지났는데 우수작 당선자 링크가 수정되었습니다. 그것도 어떠한 말도 없이요. 황당합니다. ^^;;

알라딘도서팀 2016-06-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도서팀입니다.
고객께서 요청하신 내용을 응모 페이퍼 전체 url로 이해하지 못해, 해당 서재의 url을 링크했었습니다. 제안해주신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안하신 내용 재확인해 수정 게시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yureka01 2016-06-15 17:24   좋아요 1 | URL
독자들과 피드백..소통..자주 자주 부탁드리겠습니다.
노고에 수고 많아요..
바쁘시더라도 그래서 즉시할건 해야 합니다.
알라딘에 실망하지 않고 이쁨 받아야 오래가잖아요.

cyrus 2016-06-15 17: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게시판 수정된 내용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수정 작업하기 전에 먼저 이 사실을 제게 알리는 것이 올바른 대응 방식 순서 같은데요. 솔직히 십분 전에 수정된 게시판을 확인했을 때 황당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수정하면, 제가 뭐가 되겠습니까?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입니다. 그렇지만 회사의 어설픈 일처리 방식을 이미 눈으로 확인한 분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점을 조용히 고치고 난 뒤에 뒤늦게 사과하는 태도는 앞으로 없었으면 합니다. 이러면 회원들이 회사를 믿고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알라딘도서팀 2016-06-15 17:28   좋아요 2 | URL
예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변명을 드리자면, cyrus님 서재에 작업 완료 후 내용 설명을 드리려는 와중에,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페이퍼 수정을 먼저 확인을 하신 상황이라 오해하실 수 있었겠습니다. 불편 끼친 점 사과드립니다.

2016-06-15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5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5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15 20:27   좋아요 1 | URL
네. 좋은 점은 칭찬하고 널리 알리겠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6-1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도서팀이 댓글 남기는거 첨 봅니다.
Cyrus 님, 응원합니다. ^^

cyrus 2016-06-15 20:28   좋아요 0 | URL
응원이라는 표현까지 듣게 되니까 제가 거대 회사와 맞서 싸우는 전사 같습니다. ^^;;

오거서 2016-06-1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덕분에 알라딘 도서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응원합니다!!

cyrus 2016-06-15 20:28   좋아요 0 | URL
윗분 댓글 복붙입니까? ㅎㅎㅎ

오거서 2016-06-15 21:42   좋아요 0 | URL
이런…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네요. 쓸데없는 짓을 했군요. ^^;

cyrus 2016-06-15 21:42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오해 없었으면 합니다. ^^

오거서 2016-06-15 21:47   좋아요 0 | URL
앞선 달린 댓글을 찬찬히 읽지 못하고 댓글을 쓴 탓에 복붙처럼 보이더라도 좋은 뜻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cyrus 2016-06-15 21:51   좋아요 0 | URL
네. 댓글 남기면 못 볼 수도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쪼님 2016-06-1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덕분에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당~

cyrus 2016-06-16 16:44   좋아요 0 | URL
제가 크게 잘한 일은 아닌데,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서 의외입니다. ^^;;
 

 


 

냉장고에 관한 책은 정말로 드물다.

제목에 냉장고가 들어간 책은 대부분이 요리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냉각 기술을 대표하는 냉장고를 둘러싼 온갖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는 물건을 뜨겁게 하는 방법을 비교적 빨리 배웠다.

마찰을 일으키거나, 불을 지르면 된다.

그러나 차갑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갑게 하는 방법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근대 과학이 거의 성숙 단계에 들어간 뒤의 일이다.


ㅡ <냉장고의 탄생> 에서


 


( 냉장고의 탄생 / 톰 잭슨 지음 / 김희봉 옮김 / 352쪽 )

 

 

냉장고의탄생_표지시안.jpg

 

 

 

차가움을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류는 불을 통제하고, 차가움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강가에 얼어있는 얼음을 채취해 교역하기 시작했고, 부를 축적하기도 했으며, 더 오랫동안 얼음을 온전한 상태로 저장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냉장고로 가는 길목에는 최초라는 과학적 발견이 따라붙었으며, 이러한 발견은 냉장과학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차가움에 대한 갈망은 단순한 호기심에서부터 학문적 고찰과 연구, 우연성과 영리 목적 등으로 다양하게 표출되었으며, 인류의 흥망성쇠와 같은 맥락으로 좀 더 세분화되고 치밀해졌다.

 

1883년, 캘커타 사람들은 프레데릭의 배에 실린 얼음이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갈망했지만 1880년 디쿠기스는 '냉장혐오증'에 시달리는 파리 사람들을 대신해 사악한 냉장고를 거리로 끌고 나와서 산산조각냈다. 차가움이 마법에서 과학으로 넘어갈 시점부터, 사람들은 차가움에 대한 열망과 두려움이라는 양분된 모순에 빠진 듯하다.

 

어떤 도시건 세끼 식사를 공급하지 못하면 무정부 상태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인즉슨 냉장 체인이 끊어지면, 사회는 붕괴된다는 뜻이다. 냉장고의 전원을 끄는 것이, 그 어떤 테러보다 더 강력하고 빠르게 이 사회를 무너뜨릴 것이다. 이토록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안하게 냉장고에 길들여져 있다. 현대 문명은 냉장고에 의존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수많은 사람과 과학, 인류의 역사가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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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시원한 과학 이야기에 도전하세요!

<냉장고의 탄생>은 고대 문명이 시작된 수메르에서부터

현대를 지나 미래까지 냉장고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가늠합니다.

냉장고의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지금 바로 신청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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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15분을 모시며, 모집 마감은 6월 19일 일요일입니다.

서평 마감기한은 7월 10일 일요일, 우수서평 마감기한은 7월 3일 일요일입니다.

7월 3일 일요일까지 서평을 남겨주신 분들 가운데,

우수서평자 두 분을 선정하여 원하시는 MID 도서 한 권을 선물해드립니다.


신청은 본 게시물 하단에 댓글로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서평은 1곳 이상의 개인 SNS와 2곳 이상의 온라인 서점에 남겨주셔야 합니다.

올려주신 서평은 MID 온라인 채널(독자서평 코너 등)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참고해 주세요.

(특히 처음 지원하시는 분께서는 꼼꼼하게 읽어주신 후, 신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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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루 2016-06-1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장고의 기원과 원리, 미래까지 생각하게 되는 재미있는 과학교양서 같네요. 신청합니다.

cyrus 2016-06-15 21:41   좋아요 0 | URL
여기 신청하는 것이 아니고, MID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신청해야 됩니다.

물루 2016-06-15 21: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케익을 굽는 여자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 새와물고기 / 199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먹다. 듣기만 해도 좋은 말이다. 음식 먹는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먹는 것’은 삶을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생리적 행위다. 그러나 ‘먹다’가 꼭 좋은 의미의 단어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여자를 (따)먹다’ 현대에 와서 생겨난 단어 같지만, 조선 시대 때 만들어진 불교 찬가인 <월인천강지곡>에 수록되어 있다. 원래는 ‘여자의 정조를 빼앗다’를 속되게 표현한 말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여성과의 성관계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남성은 지배 욕구가 강해 소유와 정복에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과 무관하게 다른 여성에게도 성적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는 정복 욕구와 자손을 널리 퍼뜨리고 싶은 잠재의식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반응이다. 인간, 아니 남성이 이룩한 대부분 문화 속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섹스와 관련된 언어 표현들이 차고 넘친다.

 

만약에 《The Edible Woman》이라는 제목의 영어권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Edible’는 ‘먹다’의 형용사 표현이다. 특히 어떤 음식에 독성 물질이 함유하는지를 확인할 때 사용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의미를 설명하면 ‘독성 성분이 없어서 먹을 수 있는’이 된다. ‘The Edible Woman’을 직역하면 ‘먹을 수 있는 여성’ 혹은 ‘식용 여성’이다. 우리말로 바꾸기가 상당히 곤란한 제목이다.

 

 

 

 

 

《The Edible Woman》는 캐나다 출신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69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작품이다. 그녀의 대표작 《시녀 이야기》가 국내에 널리 알려져서 흔히 이 작품이 애트우드의 첫 장편으로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시녀 이야기》는 애트우드의 여섯 번째 소설이며, 1985년에 발표되었다. 애트우드는 1961년 <Double Persephone>라는 시집을 발표해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녀의 시집은 캐나다 문학비평가 노스럽 프라이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네 권의 시집을 발표한 후에 애트우드는 첫 장편을 선보였는데, 그 작품이 바로 《The Edible Woman》이다.

 

 

 

 

 

 

 

 

 

 

《The Edible Woman》는 의미 있는 애트우드의 첫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93년에 《케잌을 굽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나 많이 팔리지 않았는지 헌책방에서 구하기 힘들고, 심지어 이 책을 소장하는 공공도서관도 많지 않다. 이 책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오랜 탐색 끝에 《케잌을 굽는 여자》가 대구남부도서관 서고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케잌’을 쓰면 안 되고, ‘케이크’로 써야 한다. 여기서는 특별히 책 제목을 언급할 때 ‘케잌’으로, 본문에는 ‘케이크’로 쓰겠다)

 

소설은 주인공 마리안 맥컬핀(Marian MacAlpin)의 1인칭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리안은 세이머 설문조사 회사의 직원인데 설문조사 질문을 만드는 일을 한다. 애인슬리(Ainsley Tewce, 번역본에는 ‘애인슬리’로 표기되었다)는 마리안과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 여성이다. 두 여성이 사는 집에 가끔 마리안의 남자친구이자 약혼자인 피터(Peter Wollander)가 찾아온다. 피터란 인물은 마리안의 속마음을 간파하지 못한 눈치 없는 놈으로 등장한다. 피터와 마리안은 성격 차이로 종종 말다툼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남녀 커플을 보는 것 같다. 마리안과 애인슬리과 같은 대학교 친구인 클라라(Clara Bates)는 죠(Joe)와 결혼하여 벌써 세 명의 아이를 둔 유부녀다. 마리안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두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한다. 애인슬리는 훌륭한 혈통에다가 외모가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낳는 것을 원한다. 마리안은 애인슬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크게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관이 현실적으로 타당한지 고민한다.

 

마리안은 주변 환경에 따른 심적 변화가 유독 큰 인물이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세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클라라를 지켜보면서 마리안은 모성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죠가 클라라 대신에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엄마보다 아빠와 함께 지낸 시간이 많은 아이가 성장하면 정신적으로 혼란이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사실 마리안의 착각은 고정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기우(杞憂)다. 한때 그녀는 모성애가 여자가 꼭 갖춰야 할 여성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마리안은 자신의 여성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여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의 시선과 반응에 점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리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무척 불편하게 여긴다. 그녀 주변에는 피터, 애인슬리, 거기에다가 그녀를 좋아해서 따라오는 대학원생 던컨(Duncan)까지 합세한다. 마리안은 그들에게 둘러싸일수록 예민한 감정을 드러낸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마리안이 겪는 심적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마리안의 심리 상태가 주를 이루는 이야기의 전개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독자는 직접 마리안이 되어 그녀가 무엇 때문에 불만을 느끼는 건지 이해해야 한다. 그녀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고 파악하는 것이 《The Edible Woman》을 읽을 때 독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마리안은 고정된 여성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억압받는 여성을 상징한다. 그녀는 무척 외롭다. 마리안은 혼자 침대 밑에 숨어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녀의 기이한 행동에 실망한 피터는 그녀가 ‘여자다움’을 거부한다고 화냈다. 피터가 생각하는 ‘여자다움’은 ‘정상적인 여성성’이다. 누구나 가구 또는 옷장 안에 숨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다.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가끔 어둡고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혼자만의 자유를 느끼고 싶어 할 때가 있다. 마리안에게 침대 밑 좁은 공간은 편안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일 수 있다. 그런데 피터는 마리안의 행동을 ‘비정상적 여성성’, 속되게 말하면 ‘미친 여자’가 할 법한 일로 생각한다. 여성의 자유를 누리는 공간의 의미 자체를 무시해버린다.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여성의 몸과 정신을 소유한다. 남자는 늘 여자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그 여자가 ‘여자다움’을 가졌는지 눈으로 쓱 확인한다. 남자가 공통으로 생각하는 ‘여자다움’이란 일단 예쁘고, 몸매가 좋아야 한다. ‘여자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면 힘과 폭력을 동원하여 여자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반대로 ‘여자다움’이 없는 여자를 만나면 마치 피하고 싶었던 불량품을 만난 것처럼 불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남성들의 혐오감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여성은 일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진다. 몸매에 대한 집착 혹은 혼자 감당하지 못할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거식증에 시달린다. 마리안도 거식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인다. 여성을 ‘남성을 만족하게 해주는 상품’ 또는 ‘수동적인 인형’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세계를 감당하기 위해서 마리안은 최후의 방법을 실행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과 닮은 케이크를 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먹여 보는 일이다.

 

이제 밋밋한 하얀 육체가 완성되었다. 접시 위에 부드럽고 달콤하게 그리고 뚜렷한 형태가 없이 누워 있는 그것은 약간 음란해 보였다. 그것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케이크 데코레이터에 밝은 핑크색 아이싱을 채웠다. 처음엔 비키니를 칠해 넣었지만 너무 빈약했다. 가운데 몸통 부분도 칠했다. 이제 보통 수영복같이 되었지만 아직도 정확히 그녀가 원하는 모양은 아니었다. 계속 위아래로 넓혀가서 원피스 모양이 되었다. 입만 있고 머리카락도, 눈도 없는 케이크는 괴상하게 보였다. 케이크 장식기를 씻고 초콜릿 아이싱을 채웠다. 코와 속눈썹이 많이 달린 눈, 그리고 양쪽 눈 위에 각각 눈썹을 그려 넣었다.

 

부엌으로 가서 접시를 마치 그것이 미사에 사용하는 신성한 어떤 것인 것처럼, 받침으로 받쳐진 성상이나 화관이나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받쳐들고 돌아왔다. 무릎을 꿇고 접시를 피터 앞에 있는 커피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키려고 했어요.” 그녀(마리안-서평 작성자 주)가 말했다. “나를 당신에게 동화시키려고 했죠. 하지만 난 당신에게 줄 대체품을 만들었어요. 당신이 훨씬 더 좋아할 것으로요. 이것이 당신이 내내 정말로 원했던 것이에요. 그렇지 않은가요? 포크를 드리죠.”

 

(《케잌을 굽는 여자》 397~398, 400쪽 편집 인용)

 

 

 

 

피터는 마리안이 만든 케이크를 먹지 않는다. 마리안은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보는 순간, 한동안 잊어버린 허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케이크를 포크로 떼어내 먹기 시작한다.

 

 

“마리안, 거기 있는 게 뭐지?” 그녀(애인슬리-서평 작성자 주)가 걸어와서 케이크를 내려다 보았다.

 

“여자잖아. 케이크로 만든 여자!” 그녀는 마리안을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마리안은 케이크를 씹어 삼겼다. “좀 먹어봐.” 그녀가 말했다. “맛이 정말 좋아. 오늘 오후에 내가 만든 거야.”

 

애인슬리의 입이 마치 그녀가 본 모든 것의 의미를 꿀꺽 삼겨 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물고기같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마리안!” 그녀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넌 네가 여자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있구나!”

 

마리안은 다시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 여자는 한쪽 다리가 없어진 채 여전히 멍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었다. “당치 않아.” 그녀가 말했다. “이건 케이크일 뿐이야.”

그녀는 몸통에 포크를 찔러넣어 깨끗하게 머리로부터 몸통을 잘라냈다.

 

(《케잌을 굽는 여자》 401~402쪽)

 


유일하게 마리안의 케이크를 먹은 사람은 던컨이었다. 마리안은 던컨이 게걸스럽게 케이크를 먹는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케이크를 다 먹어치운 던컨이 말 한마디를 남기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고마워요.” 그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맛있었어요.” (‘Thank you,’ he said, licking his lips. ‘It was delicious.’)

 

자신의 대체물인 케이크가 남자인 던컨에게 먹히면서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리안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마거릿 애트우드는 독자에게 정확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안은 자신과 닮은 케이크를 만들어 ‘여성이 남성에게 먹히는 관계’를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겠지만, 케이크를 굽는 행위만으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극복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남성 중심 사회에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숙명적인 고난이다. 여자는 언제 어디서든 남자에게 먹히기 쉽다. 남자는 여자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만든 뒤에 ‘골뱅이’로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을 먹은 소감을 영웅담을 들려주듯이 떠벌린다. 이런 세상에 여자들이 누굴 믿고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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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06-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인천강지곡에 그런 말이 있었군요.. 예전에 중세국어문법 공부한다고 형태소 분석 열심히 했었는데 그때는 미처 못 봤네요.. ^^;;

cyrus 2016-06-14 20:29   좋아요 0 | URL
성적 표현의 유래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습니다. 출처가 인터넷이라서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

아무 2016-06-14 20:34   좋아요 0 | URL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하니까 어원으로 월인천강지곡이 나오네요. 제가 학부생 때 공부를 설렁설렁한 걸로.. ㅎㅎ

cyrus 2016-06-15 12:52   좋아요 0 | URL
중세국어문법을 공부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거죠. 그때 배운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없어요. ^^

표맥(漂麥) 2016-06-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음직한... 표현이 바로 떠오르는군요...^^ 윽! 돌 날아오는 ===333

cyrus 2016-06-15 12:53   좋아요 0 | URL
주어가 없어서 오해를 살 뻔 했습니다. ㅎㅎㅎ

페크pek0501 2016-06-1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아들에 비해 딸을 키우기 힘든 세상입니다. 언제가 되면 딸을 마음놓고 키울 수 있는 세상이 되려나요?

cyrus 2016-06-15 12:58   좋아요 0 | URL
어머니가 휴대폰을 놔두고 외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 여동생은 밤늦게 친구 만나고 집에 들어옵니다. 이러면 제가 불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