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공산주의자와 히틀러는 이념적으로는 상극이지만 선전과 선동의 달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일찍부터 ‘말로 하는 전쟁’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들이 즐겨 쓰는 선전술로 상대방에 대한 낙인찍기가 있다. 특히 과거 공산주의자들은 우파들을 ‘제국주의자’ ‘파시스트’ 등으로 규정하면서 민심을 유혹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진보좌파 세력이 득세하면서 보수우파 세력에 대한 낙인찍기가 유행했다. 군사정권 시절에 나왔던 ‘빨갱이’란 단어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빨갱이’는 국어사전에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과 ‘망둑엇과의 바닷물고기’란 두 가지 의미로 나와 있다. ‘빨갱이’란 단어를 쉽게 내뱉는 사람들이 바닷물고기를 비유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단 한국의 현실에서 진보좌파 세력은 배제되어야 할 대상, ‘빨갱이’와 동의어로 통용됐다. 기득권이 친일과 친독재라는 자신들의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애국 보수’를 자처하며 활용해온 낙인이다. 이렇다 보니 ‘빨갱이’뿐만 아니라 ‘인민’, ‘동무’도 우리 사회에서 극히 민감하게 취급되는 단어가 되었다.
인민은 우리말 국어사전에도 있다.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을 의미한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구절을 게티즈버그 공원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귀에 박았다. 본디 ‘인민’이라는 용어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인민’을 쓴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서 인민은 백성을 뜻한다. 북한은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닌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 주입하는 무기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남한에 ‘인민’이 설 자리가 없다. ‘인민’을 ‘공산주의자’와 같은 맥락의 단어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년에 조선일보는 전교조 위원장이 ‘인민’이 들어간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의 사상을 의심하는 내용의 사설을 실은 적이 있다.
기득권으로 눌러앉은 보수우파는 전체적인 맥락보다 단어에 집착하거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뜬금없는 이유를 들면서 사상을 검증하려고 달려든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준이 불명확한 ‘검열’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다닌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생기는 크고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노동자니, 민중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엄청 많은 수의 인구가 사는 중국의 사정도 피차일반이다. 중국 공안당국은 네티즌이 올린 민감한 어휘나 단어들을 죄다 걸러낸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보다 노골적으로 검열에 들어간다. 그곳에 ‘혁명’이란 단어도 쓸 수가 없다. ‘6월 4일’이라는 날짜가 인터넷에 등장하면 공안당국 검열관이 출동한다. 6월 4일은 톈안먼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공안당국의 검열을 피하려고 ‘6월 4일’을 ‘5월 35일’로 바꿔놓았다.
위화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작가다. 그는 어두컴컴한 공안당국의 검열 그림자에 가려진 단어들을 찾아냈다. 그가 제일 먼저 찾은 단어가 바로 ‘인민’이다.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첫 번째 주제가 ‘인민’이다. 톈안먼 사건은 중국 인민의 정치적 열정이 크게 집중되었던 중요한 날이었다. 거대한 탱크 앞에서 중국인들이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단합하여 맞서면 빛보다 더 멀리, 그리고 빠르게 전달되는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그토록 뜨거웠던 민주화에 대한 인민의 열기는 허무하게 식어버렸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인민’에서 ‘국민’이 되었다. 혁명이 지나간 뒤에 국민이 된 중국인들은 정치적 열정 대신에 부에 대한 열정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위화는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정치적 열정을 상징했던 ‘인민’이 점점 잊히는 세태를 아쉬워한다.
‘인민’을 그리워하는 위화의 심정이 이해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여러 차례 정치적 열정을 크게 발산했던 시기가 많았다. 민주화의 꿈이 군부정권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가운데 나라 전체가 정신적 공황기를 맞은 불안정한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소중한 불씨를 지켜나간다는 일념에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민중’이었다.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중항쟁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민중은 이제 먹고살기에 바쁜 국민이 되었다. 국민은 순종적인 성품과 안정적인 생활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리고 ‘민중’뿐만 아니라 ‘민주화’라는 단어를 진보좌파, 운동권 세력들이 즐겨 쓰는 민감 어휘라고 생각한다. 5월 18일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는 ‘폭동’으로 비하한다. 우리나라는 검열 기관이 없는데도 자기들이 똑똑한 검열관인 것처럼 행세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보수우파 쪽 국회 어르신이나 지식인들은 비상식적인 편견을 동원해서 종북주의자 색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선동에 동화된 사람들도 인터넷에서 서식하면서 자칭 검열관 행세를 한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는 자신이 검열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다.
중국과 우리나라, 이 두 개의 국가는 지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빛에 둘러싸여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국민은 이 빛을 받으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너무나도 따뜻한 자본주의의 빛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빛을 영양분 삼아 경제가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빛에 오래 적응한 국민은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과거 ‘민중’ 또는 ‘인민’ 시절처럼 부당한 사회제도를 거부하려는 횃불 같은 열기를 발산하지 못한다.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력보다는 일상에서 수동적인 회피로 일관한다. 심지어 삶의 편의성을 누리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기도 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홀유(忽悠)’라는 말이 유행했다. 홀유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는 행위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로 이해한다. 이렇다 보니 법에 위반된 행위를 저질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버젓이 위반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그냥 뻔뻔하게 변명을 한다. “이런 게 바로 민중의 지혜이지요.” 그것도 민중의 의미를 왜곡까지 하면서 말이다.
햇빛이나 인공조명을 너무 오래 쬐면 몸에 악영향을 끼친다. 자외선이 강한 햇빛은 피부를 상하게 하고, 인공조명의 과도한 빛은 불면증을 일으킨다. 강렬한 자본주의의 빛은 사회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부패지수에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몸은 비대해졌다. 국민 혈압 오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거짓말 일삼는 국민의 도덕심은 시커멓게 변하면서 상하고 있다. 위화는 ‘홀유의 세계’ 속에 사는 심정을 ‘부조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름대로 점잖은 표현을 써가면서 중국 사회를 비판했다. 혹시 위화가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남한 사정도 중국만큼이나 숨 막힐 지경이다. 불과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에 비하면 자유는 넘친다. 그러나 삐딱한 시선이 넘친다. 곳곳에 상대방을 조롱하는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거짓과 위선이 처세술로 변질하였다. 왜곡, 편견의 영향력이 높아지다 보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도 많지 않다. 사회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에 휩싸이면 심리적 탈진상태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건강한 민중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