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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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딴 방에 홀로 불안감에 벌벌 떨면서 택배 직원을 기다린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상품이 배송되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뜬다. 택배 직원의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대체 어떤 상품이 오는 걸까. 딩동! 택배 왔습니다! 택배 직원이 오는 소리가 썩 반갑지가 않다. 나이 한 살 더 얹은 택배를 받았다. 반송 불가다. 나이 앞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것이 공포라는 것을 그때 느꼈다.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괜히 읽었다. 8컷으로 이루어진 만화를 금방 다 읽고 나니까 묘한 느낌이 불쑥 생겼다. 참으로 묘한 스물여덟. 조금 있으면 ‘아홉수’가 된다. 영원한 솔로로 남느냐와 결혼의 막차를 타느냐의 분기점이 되는 시기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30, 40대 독신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받아야 했고, 누구나 받아야 할 ‘나이 한 살 더 택배 상품’을 안고 가는 어른들의 애환이다. 

 

 

 

 
 


마스다 미리는 결혼하고픈 욕망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여 울렁거리는 어른의 마음을 사실적이고 진지하게 그려냈다. 수짱과 사와코는 자신의 삶과 선택이 끊임없이 ‘가족 안에서 수행해야하는 여성역할’이라는 시험대 위에 오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혼이라는 것은 한 가족 내 딸의 역할과 더불어 또 다른 가족의 며느리, 남편의 아내라는 역할을 더 부여받게 된다. 수짱과 사와코, 그리고 결혼한 마이코의 삶을 들여다본 독자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란 친밀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기보다는 나의 자아실현과 자유를 속박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스다 미리는 독자에게 세 가지 물음표를 던진다. 이 물음표들에는 일, 결혼, 몸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수짱은 책임질 가족이 없어서 편하다는 생각과 비빌 언덕이 없어서 외롭다는 복잡한 심정을 느낀다. 결혼에 관한 결정적 선택, 남들은 모두 끝낸 고민을 오늘도 계속한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게다가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몸은 벌써 청춘이 아니다. 서른은 자기 인생을, 마흔은 가족을 책임진다. 세대마다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의 껍질은 다를지라도 속은 늘 ‘책임감’으로 꽉 차 있다. 한 살이라도 젊었던 ‘그때는’ 변화에 대한 의지와 선택의 폭이 넓었지만 ‘이제는’ 그러기엔 책임져야 할 것도 많다. 이렇게 보면 삶은 항상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달려간다. 

 

 

 

 


 
그렇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는 다소 어둡고 절망적 기운이 감돌지 않는다. 현실은 세 여자에게 고민거리를 많이 안겨주지만,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만화는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마스다 미리는 ‘오춘기’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거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또한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만 매달리는 고민을 지나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티베트 속담 중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별로 없다는 말이다. 좋은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쩌랴. 걱정은 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걱정이 크면 행복은 떠나가게 된다. 서른, 마흔을 코앞에 두고 저마다의 부담스러운 ‘나이 택배’를 짊어진다. 매년 지날수록 삶의 무게감이 점점 늘어만 간다.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순 없다. 기억할 한 가지. 쉰이 되면 ‘내가 마흔 살만 됐어도....’라고 말하리란 사실. 인간은 늘 같은 고민을 하고, 또 그 고민을 망각한다. 삶이 지속하는 한 삶에 대한 고민은 끝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심각하게 걱정하면 더 힘들어진다. 서른이나 마흔은 그런 나이다. 어떤 이유로도 제 행동에 따르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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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5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15 21:48   좋아요 0 | URL
이 좋은 말씀을 왜 가리십시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취업 문제 때문에 대인 관계를 소홀히 한답니다. 저도 좀 그런 경향이 있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이성과 어울릴지도 모르고, 결혼 고민에 무감각해집니다. 결혼을 해도 배우자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만큼 대인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저절로 몸에 배는 것 같습니다.

:Dora 2016-06-1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에 대한 답을 드립니다 ☞당근 괜찮아

cyrus 2016-06-16 16:42   좋아요 0 | URL
비혼은 고심 끝에 결정한 사람의 개인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는 사람을 아니꼽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는 비혼자들도 있는데, 당사자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비혼자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불편합니다.

북프리쿠키 2016-06-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질문 드립니다>>이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cyrus 2016-06-16 16:43   좋아요 0 | URL
제가 미혼자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떠올리지 않네요. ^^;;

cyrus 2016-06-16 17:49   좋아요 0 | URL
몇 분 전에 댓글을 남기셨던데 사라졌군요, 북프리쿠키님 생각이 저랑 비슷하네요.

북프리쿠키 2016-06-16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곰곰히 생각해보니 논리적인 글이 아닌듯해서 황급히 삭제했답니다.ㅎㅎ 머쓱하네요

cyrus 2016-06-16 18:13   좋아요 0 | URL
편하게 생각을 밝혀줘도 괜찮습니다. 댓글이 삭제되어도 북플 알림, 이메일 알림에 남아요. ^^

또 봄. 2016-07-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cyrus 2016-07-09 08:10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