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익을 굽는 여자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 새와물고기 / 199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먹다. 듣기만 해도 좋은 말이다. 음식 먹는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먹는 것’은 삶을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생리적 행위다. 그러나 ‘먹다’가 꼭 좋은 의미의 단어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여자를 (따)먹다’ 현대에 와서 생겨난 단어 같지만, 조선 시대 때 만들어진 불교 찬가인 <월인천강지곡>에 수록되어 있다. 원래는 ‘여자의 정조를 빼앗다’를 속되게 표현한 말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여성과의 성관계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남성은 지배 욕구가 강해 소유와 정복에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과 무관하게 다른 여성에게도 성적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는 정복 욕구와 자손을 널리 퍼뜨리고 싶은 잠재의식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반응이다. 인간, 아니 남성이 이룩한 대부분 문화 속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섹스와 관련된 언어 표현들이 차고 넘친다.

 

만약에 《The Edible Woman》이라는 제목의 영어권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Edible’는 ‘먹다’의 형용사 표현이다. 특히 어떤 음식에 독성 물질이 함유하는지를 확인할 때 사용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의미를 설명하면 ‘독성 성분이 없어서 먹을 수 있는’이 된다. ‘The Edible Woman’을 직역하면 ‘먹을 수 있는 여성’ 혹은 ‘식용 여성’이다. 우리말로 바꾸기가 상당히 곤란한 제목이다.

 

 

 

 

 

《The Edible Woman》는 캐나다 출신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69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작품이다. 그녀의 대표작 《시녀 이야기》가 국내에 널리 알려져서 흔히 이 작품이 애트우드의 첫 장편으로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시녀 이야기》는 애트우드의 여섯 번째 소설이며, 1985년에 발표되었다. 애트우드는 1961년 <Double Persephone>라는 시집을 발표해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녀의 시집은 캐나다 문학비평가 노스럽 프라이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네 권의 시집을 발표한 후에 애트우드는 첫 장편을 선보였는데, 그 작품이 바로 《The Edible Woman》이다.

 

 

 

 

 

 

 

 

 

 

《The Edible Woman》는 의미 있는 애트우드의 첫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93년에 《케잌을 굽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나 많이 팔리지 않았는지 헌책방에서 구하기 힘들고, 심지어 이 책을 소장하는 공공도서관도 많지 않다. 이 책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오랜 탐색 끝에 《케잌을 굽는 여자》가 대구남부도서관 서고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케잌’을 쓰면 안 되고, ‘케이크’로 써야 한다. 여기서는 특별히 책 제목을 언급할 때 ‘케잌’으로, 본문에는 ‘케이크’로 쓰겠다)

 

소설은 주인공 마리안 맥컬핀(Marian MacAlpin)의 1인칭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리안은 세이머 설문조사 회사의 직원인데 설문조사 질문을 만드는 일을 한다. 애인슬리(Ainsley Tewce, 번역본에는 ‘애인슬리’로 표기되었다)는 마리안과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 여성이다. 두 여성이 사는 집에 가끔 마리안의 남자친구이자 약혼자인 피터(Peter Wollander)가 찾아온다. 피터란 인물은 마리안의 속마음을 간파하지 못한 눈치 없는 놈으로 등장한다. 피터와 마리안은 성격 차이로 종종 말다툼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남녀 커플을 보는 것 같다. 마리안과 애인슬리과 같은 대학교 친구인 클라라(Clara Bates)는 죠(Joe)와 결혼하여 벌써 세 명의 아이를 둔 유부녀다. 마리안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두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한다. 애인슬리는 훌륭한 혈통에다가 외모가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낳는 것을 원한다. 마리안은 애인슬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크게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결혼관이 현실적으로 타당한지 고민한다.

 

마리안은 주변 환경에 따른 심적 변화가 유독 큰 인물이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세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클라라를 지켜보면서 마리안은 모성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죠가 클라라 대신에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엄마보다 아빠와 함께 지낸 시간이 많은 아이가 성장하면 정신적으로 혼란이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사실 마리안의 착각은 고정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기우(杞憂)다. 한때 그녀는 모성애가 여자가 꼭 갖춰야 할 여성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마리안은 자신의 여성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여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의 시선과 반응에 점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리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무척 불편하게 여긴다. 그녀 주변에는 피터, 애인슬리, 거기에다가 그녀를 좋아해서 따라오는 대학원생 던컨(Duncan)까지 합세한다. 마리안은 그들에게 둘러싸일수록 예민한 감정을 드러낸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마리안이 겪는 심적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마리안의 심리 상태가 주를 이루는 이야기의 전개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독자는 직접 마리안이 되어 그녀가 무엇 때문에 불만을 느끼는 건지 이해해야 한다. 그녀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고 파악하는 것이 《The Edible Woman》을 읽을 때 독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마리안은 고정된 여성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억압받는 여성을 상징한다. 그녀는 무척 외롭다. 마리안은 혼자 침대 밑에 숨어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녀의 기이한 행동에 실망한 피터는 그녀가 ‘여자다움’을 거부한다고 화냈다. 피터가 생각하는 ‘여자다움’은 ‘정상적인 여성성’이다. 누구나 가구 또는 옷장 안에 숨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다.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가끔 어둡고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혼자만의 자유를 느끼고 싶어 할 때가 있다. 마리안에게 침대 밑 좁은 공간은 편안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일 수 있다. 그런데 피터는 마리안의 행동을 ‘비정상적 여성성’, 속되게 말하면 ‘미친 여자’가 할 법한 일로 생각한다. 여성의 자유를 누리는 공간의 의미 자체를 무시해버린다.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여성의 몸과 정신을 소유한다. 남자는 늘 여자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그 여자가 ‘여자다움’을 가졌는지 눈으로 쓱 확인한다. 남자가 공통으로 생각하는 ‘여자다움’이란 일단 예쁘고, 몸매가 좋아야 한다. ‘여자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면 힘과 폭력을 동원하여 여자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반대로 ‘여자다움’이 없는 여자를 만나면 마치 피하고 싶었던 불량품을 만난 것처럼 불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남성들의 혐오감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여성은 일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진다. 몸매에 대한 집착 혹은 혼자 감당하지 못할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거식증에 시달린다. 마리안도 거식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인다. 여성을 ‘남성을 만족하게 해주는 상품’ 또는 ‘수동적인 인형’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세계를 감당하기 위해서 마리안은 최후의 방법을 실행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과 닮은 케이크를 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먹여 보는 일이다.

 

이제 밋밋한 하얀 육체가 완성되었다. 접시 위에 부드럽고 달콤하게 그리고 뚜렷한 형태가 없이 누워 있는 그것은 약간 음란해 보였다. 그것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케이크 데코레이터에 밝은 핑크색 아이싱을 채웠다. 처음엔 비키니를 칠해 넣었지만 너무 빈약했다. 가운데 몸통 부분도 칠했다. 이제 보통 수영복같이 되었지만 아직도 정확히 그녀가 원하는 모양은 아니었다. 계속 위아래로 넓혀가서 원피스 모양이 되었다. 입만 있고 머리카락도, 눈도 없는 케이크는 괴상하게 보였다. 케이크 장식기를 씻고 초콜릿 아이싱을 채웠다. 코와 속눈썹이 많이 달린 눈, 그리고 양쪽 눈 위에 각각 눈썹을 그려 넣었다.

 

부엌으로 가서 접시를 마치 그것이 미사에 사용하는 신성한 어떤 것인 것처럼, 받침으로 받쳐진 성상이나 화관이나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받쳐들고 돌아왔다. 무릎을 꿇고 접시를 피터 앞에 있는 커피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키려고 했어요.” 그녀(마리안-서평 작성자 주)가 말했다. “나를 당신에게 동화시키려고 했죠. 하지만 난 당신에게 줄 대체품을 만들었어요. 당신이 훨씬 더 좋아할 것으로요. 이것이 당신이 내내 정말로 원했던 것이에요. 그렇지 않은가요? 포크를 드리죠.”

 

(《케잌을 굽는 여자》 397~398, 400쪽 편집 인용)

 

 

 

 

피터는 마리안이 만든 케이크를 먹지 않는다. 마리안은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보는 순간, 한동안 잊어버린 허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케이크를 포크로 떼어내 먹기 시작한다.

 

 

“마리안, 거기 있는 게 뭐지?” 그녀(애인슬리-서평 작성자 주)가 걸어와서 케이크를 내려다 보았다.

 

“여자잖아. 케이크로 만든 여자!” 그녀는 마리안을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마리안은 케이크를 씹어 삼겼다. “좀 먹어봐.” 그녀가 말했다. “맛이 정말 좋아. 오늘 오후에 내가 만든 거야.”

 

애인슬리의 입이 마치 그녀가 본 모든 것의 의미를 꿀꺽 삼겨 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물고기같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마리안!” 그녀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넌 네가 여자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있구나!”

 

마리안은 다시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 여자는 한쪽 다리가 없어진 채 여전히 멍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었다. “당치 않아.” 그녀가 말했다. “이건 케이크일 뿐이야.”

그녀는 몸통에 포크를 찔러넣어 깨끗하게 머리로부터 몸통을 잘라냈다.

 

(《케잌을 굽는 여자》 401~402쪽)

 


유일하게 마리안의 케이크를 먹은 사람은 던컨이었다. 마리안은 던컨이 게걸스럽게 케이크를 먹는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케이크를 다 먹어치운 던컨이 말 한마디를 남기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고마워요.” 그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맛있었어요.” (‘Thank you,’ he said, licking his lips. ‘It was delicious.’)

 

자신의 대체물인 케이크가 남자인 던컨에게 먹히면서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리안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마거릿 애트우드는 독자에게 정확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안은 자신과 닮은 케이크를 만들어 ‘여성이 남성에게 먹히는 관계’를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겠지만, 케이크를 굽는 행위만으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극복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남성 중심 사회에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숙명적인 고난이다. 여자는 언제 어디서든 남자에게 먹히기 쉽다. 남자는 여자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만든 뒤에 ‘골뱅이’로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을 먹은 소감을 영웅담을 들려주듯이 떠벌린다. 이런 세상에 여자들이 누굴 믿고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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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06-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인천강지곡에 그런 말이 있었군요.. 예전에 중세국어문법 공부한다고 형태소 분석 열심히 했었는데 그때는 미처 못 봤네요.. ^^;;

cyrus 2016-06-14 20:29   좋아요 0 | URL
성적 표현의 유래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습니다. 출처가 인터넷이라서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

아무 2016-06-14 20:34   좋아요 0 | URL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하니까 어원으로 월인천강지곡이 나오네요. 제가 학부생 때 공부를 설렁설렁한 걸로.. ㅎㅎ

cyrus 2016-06-15 12:52   좋아요 0 | URL
중세국어문법을 공부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거죠. 그때 배운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없어요. ^^

표맥(漂麥) 2016-06-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음직한... 표현이 바로 떠오르는군요...^^ 윽! 돌 날아오는 ===333

cyrus 2016-06-15 12:53   좋아요 0 | URL
주어가 없어서 오해를 살 뻔 했습니다. ㅎㅎㅎ

페크pek0501 2016-06-1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아들에 비해 딸을 키우기 힘든 세상입니다. 언제가 되면 딸을 마음놓고 키울 수 있는 세상이 되려나요?

cyrus 2016-06-15 12:58   좋아요 0 | URL
어머니가 휴대폰을 놔두고 외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 여동생은 밤늦게 친구 만나고 집에 들어옵니다. 이러면 제가 불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