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회화로 우키요에가 있다. 17세기 일본 에도 시대에 나타난 회화 양식으로 통속적 정서를 담았으며, 감각적이고 장식성이 강한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19세기 말 유럽에 번진 자포니즘 열풍의 선봉에 섰던 것도 우키요에였다. 고흐와 모네, 드가 등의 인상파 화가들은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 과감한 시선 처리에 완전히 매료됐다.

 

 

 

             

 

모네는 방안을 우키요에로 가득 채울 정도로 열렬한 수집광이었다. 말년에 그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짓고 연못에 일본식 다리가 놓인 정원을 가꾸었다. 이러한 연관성에 의미를 부여해서인지 지베르니를 일본식 정원혹은 일본풍 정원으로 잘못 소개하는 책이나 칼럼니스트, 기자가 많다.

 

 

 

 

 

 

 

 

 

 

 

 

 

 

 

 

 

 

작은 침실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의 소음을 등 뒤로 한 채 내려다본 바깥 정원 풍경은 온통 푸른색과 흰색, 붉은색 등의 갖가지 색들이 뒤엉켜 강렬한 빛을 발하여 5월의 따사로운 햇볕에 더욱 발랄하게 느껴졌다. 정원으로 나와 청보라색 라벤더와 연분홍색 튤립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예쁜 꽃밭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며 지하통로를 통과하니, 모네의 명작 '수련'이 탄생된 일본풍 정원과 연못이 나타난다.

(서유럽 자동차 여행중에서)

    

 

지베르니에는 모네와 친분이 있는 화가와 미술상들이 방문했는데, 그중에 다다마라 하야시라는 일본 출신의 미술상도 있었다. 다다마라 하야시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알려줄 정보가 한 개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모네에게 우키요에를 공급한 인물로 추정된다. 하야시는 수련이 있는 물의 정원이 일본식 정원을 모방했다고 주장했는데, 모네는 그의 주장을 부정했다. 아치형 다리는 일본의 양식을 따랐지만, 모네가 직접 고르고 심은 꽃들 중에 일본에서 가져온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베르니 토착종이거나 유럽에 자라는 것들이다. 모네가 정말로 일본식 정원을 만들 계획이었으면 일본에 직접 들여온 식물 위주로 심었어야 했다. 하야시는 지베르니 정원을 방문했음에도 정원에 대한 모네의 생각과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야시처럼 국가의 문화를 과도하게 부각해서 미화하는 태도를 국뽕’(국수주의를 뜻하는 은어)이라고 한다. 모네가 일본 문화에 애착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지베르니 정원을 일본식 정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모네는 정원이 딸린 작업실을 만들고, 정원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지만, 정원에서 예술미를 발견한 최초의 화가는 아니다. 모네 이전 혹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파리 근교에 있는 시골에 살면서 풍경화를 그렸다. 특히 파리에서 북서쪽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는 화가들의 근거지였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데,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거리상으로 파리와 가깝다. 모네의 정원의 명성을 알고 있었던 폴 세잔과 카미유 피사로도 오베르에서 작업했는데,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상태가 된 네덜란드 출신 화가도 조용한 오베르에 정착했다. 그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정신병원에 퇴원한 빈센트는 자신의 주치의 폴 가셰 박사의 집에 딸린 정원과 화가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의 정원을 그렸다. 빈센트가 오베르에 머물던 최후의 시기에 그려진 까마귀가 남긴 밀밭이 걸작으로 알려졌지만,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정원 그림도 훌륭하다. 빈센트는 십 년 동안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개인 정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가 정신병원 생활을 하면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 모네는 지베르니의 정원 속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두 화가의 행보가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빈센트도 정원을 사랑한 화가였다. 그는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의 정원을 잊지 않았다. 영국에 살았을 때 정원 조경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고흐는 정원 속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그림을 그릴 때 큰 행복감을 느꼈다. 고흐와 모네 두 사람 모두 생각하기 싫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마주했다. 고흐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모네는 가족들의 죽음에 실의에 빠졌고, 두 눈이 백내장에 걸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마음을 크게 다친 두 사람은 정원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찾았으며 위로를 얻었다.

 

만약에 빈센트가 지베르니에 정착했다면, 아니면 반대로 모네가 오베르에 정원이 딸린 작업실을 세웠다면 과연 두 사람은 역사적인 조우가 이루어졌을까? 주관적인 상상력을 덧붙이자면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을 것 같다. 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빈센트의 건강이 좋지 않았고, 정원을 찾는 손님이 부쩍 늘어나자 모네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아무래도 서로 친해지기가 무척 힘들었을 듯하다.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www.wikiart.org/)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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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7-2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리에 갔을 적에 다들 지베르니 타령을
하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군요.

아마 차가 없으면 고생 엄청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만.

cyrus 2016-07-21 17:33   좋아요 0 | URL
정원의 일본식 다리 때문인지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
 

 

 

※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가 작성한 글입니다.

 

 

자음과모음 사측의 사과 발표 이후, 지역출판지부는 사측과 계속된 교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현재 어떻게 문제 해결이 진행되고 있는지, 앞으로 윤정기 편집자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 교섭의 결과가 나온 상황은 아니지만 간략히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윤정기 편집자의 원직 복직과 관련된 사항은 어느 정도 논의가 정리되었습니다. 사측은 정상적인 편집 업무와 (주)자음과모음 본사로의 출근 등을 약속했습니다. 다만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노측은 노사협의회 등 상설 기구의 마련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구체적인 기구의 명칭이나 시기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입니다.


모든 논의의 결과는 노사합의안에 명시될 예정입니다. 노사합의안이 체결되는대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음과모음 사태는, 그 내용이나 경중을 막론하고 이미 출판노동자에게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독자/저자/출판노동자 등 여러분이 보여주신 관심과 연대, 그리고 분노까지 모두 잊지 않겠습니다. 자음과모음 사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시선을 끝까지 거두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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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9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럼요..지켜봐야죠..독자가 출판사를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경영자들에게 달렸습니다...

cyrus 2016-07-20 06:46   좋아요 2 | URL
회사가 윤정기씨를 쪼잔하게 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를 완전히 믿지 못하겠습니다.

오거서 2016-07-19 2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시하고 있어요 …

cyrus 2016-07-20 06:47   좋아요 2 | URL
출판사들도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각성했으면 좋겠습니다.

:Dora 2016-07-2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들 무셔운 줄 모르는 악덕인들

cyrus 2016-07-20 13:28   좋아요 1 | URL
저런 악덕인들은 독자를 순진한 호구로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부터 이 출판사 유명했습니다. 사건 터지기 전부터 말이죠... 출판계에서는 자모`를 좋게 안 보더라고요..

cyrus 2016-07-20 16:06   좋아요 0 | URL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자모만큼 문제 많은 출판사가 더 있을 거예요.

레삭매냐 2016-07-2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모에서 나오는 책을 꾸역꾸역 보고 있는데
참 끊어야 하는지...

시공사도 그렇잖아요 왜.

cyrus 2016-07-21 17:31   좋아요 0 | URL
저는 문제 많은 출판사의 책은 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요, 책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으려고 해요. 특정 출판사의 책을 완전히 멀리한다는 게 힘든 일이죠. 제가 시공사출판사의 책을 서평 작성 목적으로 받긴 하는데, 사실 좋게 볼 행동은 아닙니다. 이번에 시공사에서 부코스키의 책 세 권 나왔던데, 부코스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상당히 고민되겠어요.
 
모네가 사랑한 정원 -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
데브라 N. 맨코프 지음, 김잔디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인상파 화가는 시간에 쓰러져가는 존재의 풍경을 날카롭게 포착한 사람들이다. ‘인상이란 단어는 중요하지 않다. 클로드 모네가 주목한 것은 모든 존재는 허물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보이는 모든 것은 사라져 곧 안 보이게 된다. 그가 순간적으로 잡아낸 것은 아름다움의 진실이다. 모네는 생애 말년에 수련 연작을 발표하면서 화가의 열정을 불태웠다. 파리에 멀리 떨어진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는 센 강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손수 수련을 키우며 그것을 즐겨 그렸다.

 

 

 

 

모네의 정원을 보기 전에는 모네를 이해할 수 없다. 모네의 걸작들은 모두 그가 살던 지베르니 정원에서 그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네는 자신의 그림을 보려는 손님들이 아틀리에를 찾으러 오면 가장 먼저 정원을 구경시켰다. 걸작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싶었던 손님들은 정원을 자랑하는 화가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렇지만 정원을 둘러보는 일은 모네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다. 수련은 여름에 피는 꽃이다. 모네의 수련 그림에서 넘실거리는 아련한 물너울은 여름의 열기를 닮았다. 어쩌면 모네는 일반 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단번에 사로잡을 수 없는 눈부신 빛의 아우라를 그림으로 완벽히 재현했음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모네는 자신의 삶에 따사하게 비춰주는 빛이 간절한 사람이었다. 모네는 부질없이 사라지고 마는, 끊임없이 달아나는 빛을 붙잡고 싶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말년의 모네는 절망적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 명이나 먼저 떠나보냈고, 유일한 혈육인 아들의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아폴론 신은 빛과 태양의 약동을 관장하고, 시와 음악을 사랑했다. 아마도 신은 빛을 모조리 그림에 담는 비범한 능력을 갖춘 지상의 화가에 질투심을 느꼈을 것이다. 폴 세잔이 격찬했다는 모네의 위대한 눈은 백내장에 손상되고 말았다. 그러나 모네는 정원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하얀 캔버스에 옮긴 빛의 아우라에 영원성을 부여했다. 시력이 많이 약해진 이후로 색채에 대한 감각도 변했다. 모네의 수련 그림은 점점 더 추상으로 다가갔다. 이 시기에 그린 지베르니의 연못 풍경은 형상이 거의 사라진 채 색채와 터치만 남아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에너지로 꽉 차 있다.

 

 

 

     

수련은 모네가 평생 추구한 빛과 색채의 철학을 집약한 마지막 정화다. 그는 하늘과 주변 풍경이 잠긴 거울 같은 물 위에 무리 지어 뜬 채 빛과 대기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수련에 매혹됐다. 그것은 빛과 물, 대기의 흐름을 끈질기게 탐구해온 그에게 최상의 소재가 됐다. 지베르니 정원은 깊은 슬픔에 빠지지 않기 위한 수단이자 예술가로서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모네의 유일한 안식처다. 말년에 그려진 모네의 그림에서는 사람보다 정원 풍경이 더 많다. 자연을 향한 애정과 빛을 향한 열정이 모네를 거장의 반열에 올렸다. “날씨가 참 좋군요. 먼저 정원을 둘러보겠소?” 정원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하는 모네의 첫인사말이다. 이제는 빛의 안내자의 부드러운 인사도, 화초를 심는 늙은 화가의 애틋한 모습은 없다. 그가 일평생 화폭에 옮기려고 애쓴 빛의 마술이 찡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정원의 빛은 먼지가 되어 공중 분해된다. 그렇지만 모네의 그림 속에 있는 빛은 푸른 불꽃이 되어 내뿜고 있다.

 

 

초판 1쇄의 230쪽에 모네의 딸 마르테 오슈데 버틀러의 생몰 연도가 잘못 나왔다. 버틀러의 출생연도가 ‘864’로 되어 있다. 숫자 1이 빠졌다.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www.wikiart.org/)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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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7-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네가 소실점과 입체감을 무시한 평면적 그림의 선구자라고 하던데요. 그림을 봐선 당최 모르겠습니다. ㅠㅠ

syo 2016-07-18 21:15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화가는 아마 마네일거에요^^

북다이제스터 2016-07-18 22:1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마네입니다. 제가 좀... ㅠㅠ

syo 2016-07-18 22:20   좋아요 2 | URL
마네의 ˝올랭피아˝하고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비교하면 궁금하신 부분에 대한 답을 얻으실수 있으실거같아요. 그 두개 비교해주는 책이 많더라구요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07-18 22:28   좋아요 0 | URL
정말 진짜 감사합니다. 티치아노 그림은 퍼득 떠오르지 않네요. 꼭 찾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yureka01 2016-07-1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진 찍기 전엔 모네 그림을 이해 못했죠..
그런데 빛에 따라 변하는 그의 그림스타일이
놀랍더군요.

cyrus 2016-07-19 16:51   좋아요 0 | URL
예전에 서울에 열린 인상파 그림 전시회에 가서 직접 그림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책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느낌이 달랐습니다. ^^

표맥(漂麥) 2016-07-1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베르니 정원길을 보니 문득 <검은 수련>이 떠 오릅니다. 아무 것도 읽기 싫을 때 한번 읽어 보시길... 모네의 지베르니 마을이 무대입니다...^^

cyrus 2016-07-19 16:52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

프레이야 2016-07-1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었던 지베르니 수련이 핀 정원과 연못을 보고 와서 더욱 감회가 ^^
책 담아갑니다. 무더위도 즐거이 누리시길요 ^^

cyrus 2016-07-19 16:54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프레이야님. 잘 지내시죠? 프레이야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7월 마지막 여름 잘 보내세요. ^^
 

 

 

 

※ 이 글을 작성하는 데 영감을 준 Postumus님과 syo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호모소셜은 우리말로 옮기면 ‘동성 사회성’이라고 한다. 미국의 비평가 이브 세지윅이 사용한 것으로 같은 성(性)끼리 독특한 가치 문화 체계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 동성사회적 유대가 강조할수록 여성 혐오에 대해 도덕적으로 나쁘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동성 사회성’을 바탕으로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여성의 존재를 미미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객체화를 여성 혐오라 정의한다.

 

 

남자가 군대에 가기 전에 ‘다 같이 한번 가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첫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안 간다고 빠지면 친구들은 절대로 있어서 안 되는 분위기로 몰고 간다. 다행히 나는 친구들보다 군대를 늦게 들어가게 돼서 훈련소 가기 전날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은 혼자보다는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는 과정을 통해 성매매하러 간다. 친구 따라 사창가에 가는 날은 남성성이 발현되고, 남성 간의 유대감을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다. 성매매 경험이 있으면 동성 사회성이 강한 군대 생활에 유리하다. 여자와 잤던 경험은 ‘여자를 정복한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훈장과도 같다. 입대 전에 획득한 훈장의 개수가 많은 남자는 선임에게 ‘유능하고 멋진 군인’으로 인정받는다. 선임들은 여자 경험이 없는 군인에게 ‘총각 딱지’라는 수치스러운 훈장을 수여한다.

 

 

 

 

 

 

 

 

 

 

 

 

 

 

 

 

 

 

동성 사회성은 남자 어른들이 모여 있을 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기에 동성 사회성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된다. 특히 남중, 남고로 이어지는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면 여자를 전혀 모르게 된다. 남성은 여성보다 사회집단 내에서 인정받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사춘기에 들어선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또래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한다. 교실에 남자들이 서로 어울리다 보면 ‘강한 남자’와 ‘약한 남자’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된다. 힘이 센 친구는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상습적으로 괴롭히거나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꼬붕’(부하를 뜻하는 은어)을 만든다. 힘이 센 친구 주변에 그를 충실히 따르고, 같이 어울리는 녀석들이 있다. 이들이 모이면 끈끈한 우정으로 만들어진 권력을 한껏 과시한다. 자신들이 교실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우월감에 빠지면 종종 무모하고도 대범한 행동까지 한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 선생님의 말씀을 무시한다. 친구들 잘 만나서 담배의 맛을 일찍 알게 된다. 담배를 피우면서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본다. 소년들은 또래 앞에서 어른처럼 행세한다. 그래서 약한 친구만 골라 괴롭히고, 선생님에게 대들고, 수업을 밥 먹듯이 빠진다.

 

 

힘센 친구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 소년들은 그들의 행동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용기와 대범함에 부러워한다. ‘아, 나도 덩치가 크고, 힘셌으면 저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을 텐데.’ 힘센 친구들의 괴롭힘을 받는 소년들도 그들을 부러워한다. 이때부터 동성 사회성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알게 된다. 그래서 비도덕적 행동을 한번 따라 해보고 싶은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착각하게 되는데 탈선행위의 위험성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아이들은 학교 폭력을 목격하면서도 이 사실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부 고발자로 알려지면 학교 폭력을 행사하는 놈들에게 보복당할까 봐 의도적으로 피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평범한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해 늘 배제된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는 자신과 피해자 간의 동등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부당한 상황을 지켜본 친구들은 자신도 피해자처럼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못 본 척한다.

 

 

 

 

 

 

 

 

 

 

 

 

 

 

 

 

 

 

인지 관련 연구 전문가인 맥스 베이저만은 하나의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사건을 무시하고,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을 ‘동기화 맹시’라고 말했다. 청소년기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동성 사회성에 익숙해진 남자는 동기화 맹시에 쉽게 빠진다. ‘남자다움’과 끈끈한 유대감이 동기화 맹시를 유발한다. 그래서 여성 혐오와 성매매, 성희롱이 잘못되었다고 누누이 말해줘도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동성 사회성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남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들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이상 여성 혐오와 성폭력이 완전히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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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대목에도 나오죠.

cyrus 2016-07-17 17:58   좋아요 0 | URL
원래 이문열의 소설과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까지 언급하려다가 내용이 길어져서 뺐습니다. 두 편의 소설이 청소년기의 동성 사회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하버드 관찰 수업
맥스 베이저만 지음,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읽었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제에 있는 ‘하버드 관찰 수업’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미끼에 불과하다. ‘하버드 수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내용을 기대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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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놈의 하버드 마케팅은 끝이 없군요. ^^

cyrus 2016-07-17 15:53   좋아요 0 | URL
이제는 식상한 문구가 되어버렸어요. ^^

transient-guest 2016-07-1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소개 읽고나서 그냥 그렇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버드는 역시 좋은 미끼네요

cyrus 2016-07-18 16:50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 제목이 아닌 부제에 ‘하버드’가 많이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