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채널에 하는 <차트를 달리는 남자>를 보게 됐다. 내가 본 방영분은 54미확인 생물체이다. 방송 중간 부분부터 봤는데 두 MC가 미확인 비행물체 로드(Rod)’를 소개하고 있었다. 로드가 7위로 소개됐고, 6위는 반인반수 박쥐 인간악어 인간이었다. 방송은 박쥐 인간과 악어 인간 미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들의 출처는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였다.

 

위클리 월드 뉴스가짜 뉴스를 진지하게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미국의 신문이다. 1979년에 창간된 주간지였으나 2007년에 폐간되었고 현재는 인터넷 신문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신문을 인용한 기사가 있으면 믿고 거르면 된다. 그리고 위클리 월드 뉴스에서 나온 사진은 조작된 것이다. 작년에 위클리 월드 뉴스를 짧게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 [인간의 변신] 20161022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851097

 

 

 

이 신문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위클리 월드 뉴스의 엉터리 기사를 진짜라고 믿는다. 국내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8, 90년대 해외 사정을 잘 몰랐던 국내 언론들은 이상하고 재미있는 해외 토픽을 전달하기 위해 위클리 월드 뉴스를 자주 인용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수준 미달의 기사가 나오고 있다.

 

 

 

* [박쥐소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재포획’] (코리아헤럴드, 2015112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44&aid=0000164138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박쥐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웃긴 건 탈출한 박쥐 인간이 다시 포획된 해가 1997년이다. 코리아헤럴드 소속 기자는 십 년이나 지난 가짜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뻔뻔하게 기사를 썼다.

 

 

 

* [오바마-레이건, ‘큰바위 얼굴조각상 합류 각축전?] (연합뉴스, 201312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057815

 

연합뉴스가 인용한 위클리 월드 뉴스 기사 내용이 황당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모어산에 자신의 얼굴 조각을 새기는 작업을 착수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네티즌 한 명이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연합뉴스 소속 기자의 글에 비판 댓글을 달았으나 기자는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

 

 

 

* [23세 유명 여가수, 5세 연하 아이 임신설] (문화일보, 2012121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2138027

 

2012년에 위클리 월드 뉴스는 두 번이나 최악의 기사를 퍼뜨렸다. 하나는 2012구탄 행성지구 종말설, 또 하나는 미국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임신설이다.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버젓이 인용한 국내 기사가 한 두 개가 아니다.

 

 

 

* [러 푸틴, “내가 오바마 조종할 것”] (매일경제, 20123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659317

 

위클리 월드 뉴스는 러시아의 푸틴 총리가 오바마를 위해 1억 달러의 대선 자금을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 [신출귀몰 칠면조에 동네 발칵12명이나] (매일경제, 201231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659020

 

칠면조를 무시무시한 괴물로 둔갑한 위클리 월드 뉴스 클라스‥….

 

 

 

* [독일 정부, ‘UFO·외계생명체극비 문서 공개할까] (서울신문, 2011123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2246947

 

서울신문 기사에 히틀러와 외계인과 만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설마 이 사진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 있으려나?

 

 

* [코카콜라 맛의 비밀이 인간의 침이라고?] (한겨레, 201112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078322

 

이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이젠 펩시만 마셔야겠군.” 이래서 가짜 뉴스는 위험하다.

 

 

 

 

 

위클리 월드 뉴스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 설립된 특이한 언론사이다. 위클리 월드 뉴스 창간한 제네로소 포프(Generoso Pope Jr.)는 타블로이드 가십 매체인 <내셔널 인콰이어러(The National Enquirer)> 소속 언론인이었다. (악이 악을 낳는다?) 위클리 월드 뉴스 편집장을 맡은 에디 클론츠(Eddie Clontz)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기사를 전달하는 것이 위클리 월드 뉴스의 일차적 목표라고 밝혔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로 시작된 요지경 박물관시리즈는 위클리 월드 뉴스에 보도된 내용들을 소개한 책이다. 요지경 박물관 1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악어 인간 미라에 관한 내용이 있다. 어렸을 때 그 책을 보면서 정말로 악어 인간이 있는 줄 알았다. 이 책이 잘 팔렸는지 출판사는 제목을 은근슬쩍 바꿔 가면서 후속 작을 냈다.

 

 

 

요지경 박물관 1: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2: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3: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요지경 박물관 4: 아니, 세상에 또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5: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6: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7: 아니, 세상에 정말로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8, 9: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출판사가 새로운 제목을 정하는 것이 귀찮았는지 8부와 9부 제목은 1부 제목과 똑같다.

 

 

 

 

 

 

 

 

 

 

 

 

 

 

 

 

 

* 요지경 신문(하나로, 1997)

 

 

 

요지경 박물관 시리즈를 만든 출판사는 신문지 형태로 편집한 요지경 신문을 펴내기도 했다.

 

 

 

 

 

 

 

 

 

 

 

 

 

 

 

 

 

 

* 노아 스트리커 (니케북스, 2017)

 

 

 

노아 스트리커의 에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내용이 나온다.

 

 

 

2012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는 자신들만의 이론을 발표했다. “적대적인 흰올빼미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미국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외계 군단과 손을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흰올빼미들은 201111월에 지구에 착륙하여, 페루 돌고래의 떼죽음을 일으키기도 한 구탄 행성인들과 내통하고 있었다. (146~147)

    

 

 

2012년 지구 종말설이 슬슬 유행하기 시작할 때 위클리 월드 뉴스도 대중을 속일 수 있는 '떡밥'을 던졌다. 이 언론사는 구탄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2012년에 지구를 침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흰올빼미들이 미국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구탄 행성 외계인들과 손을 잡았다는 황당한 소설도 썼다. 의 저자는 위클리 월드 뉴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황당한 주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 진중권 아이콘(씨네21북스, 2011)

* 진중권 이미지 인문학 1(천년의상상, 2014)

 

 

 

 

가짜만 전달하는 위클리 월드 뉴스가 못마땅해도 그들의 뚝심 있는 행보에 긍정성을 읽어낼 수 있다. 가짜를 양산해 내는 위클리 월드 뉴스 소속 기자들은 파타피직스(Pataphysics)’의 유희를 즐긴다. 파타피직스는 형이상학(Metaphysics)를 패러디한 것으로, 진짜와 가짜가 섞인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지향한다. 파타피직스는 인간을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로 돋보여주는 이성에 반발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가짜에 익숙해지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파타피직스 세계에 있는 자는 상상력을 하나의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난다. 현실의 한계를 깨뜨리는 전복적 상상력은 예술 창작의 힘이 된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 ‘가짜를 악용하는 자들은 현실을 왜곡하여 사회 불안을 조장한다. 우리가 사는 파타피직스 세계에 악마가 있다. 그 악마란 바로 우리를 속이고 위협하는 가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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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해요.. 이 많은 기사와 자료들을 어떻게?

cyrus 2017-11-21 18:52   좋아요 0 | URL
작년에 처음 위클리 월드 뉴스를 알게 되면서 관련 자료를 스크랩했어요. 사실 검색만 하면 한 시간 안에 기사 네다섯 개 금방 찾아낼 수 있어요. ^^

서니데이 2017-11-2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뉴스인 걸 알고서 보면,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일들에 대한 창의적인 기사를 매일 써야하는 기자의 어려움도 이해할 수 있을지도요.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 덜 춥습니다. cyrus님 좋은 오후 보내세요.^^

cyrus 2017-11-21 18:55   좋아요 1 | URL
창작 재능이 가짜 뉴스 만드는 일에 낭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클리 월드 뉴스 소속 기자들은 마음대로 기사 내용을 꾸밀 수 있어서 만족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일이죠.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해요.. ^^;;

2017-11-21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1 18:55   좋아요 1 | URL
그 노래가 히트했을 때, 요지경 박물관 시리즈가 나왔어요. ^^

이하라 2017-11-2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전에 빌클린턴 미전대통령이 그레이 외계인과 악수하고 있는 시진을 본 기억이 있어요. 진짜라고 믿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런 식의 뉴스들을 필터링을 거치지않고 진짜로 믿어버릴만큼 정교하게 유통시키는건 정말 문제가 큰 것 같아요. 그런 재치는 좋지만 확실히 가짜뉴스인걸 알수 있도록 명시해 주어야 하지않나 싶어요.

cyrus 2017-11-21 19:02   좋아요 0 | URL
빌 클린턴과 힐러리. 위클리 월드 뉴스가 좋아하는 먹잇감(?)입니다. 힐러리가 정계 활동을 하고 있었을 때 힐러리 외계인 아기 임신설이 보도된 적이 있어요. 위클리 월드 뉴스는 자신들의 임무가 가짜 뉴스 전달하는 것이라고 알렸어요. 문제는 국내 언론 기자들이 가짜 뉴스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행태입니다. 그래서 외신 기사를 보면 반드시 출처를 확인해야 됩니다.

transient-guest 2017-11-22 0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런데 일부 교회들이 전도나 종말론을 피력하면서 사용한 찌라시를 보면 이런 신문들의 기사를 모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찌라시에서 제가 기억하는 건 모두 미국에 와서 타블로이드 신문들 일면에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1) 천문학자가 먼 우주에서 천국의 실제 사진을 찍었다 (그리스/로마양식의 조잡한 합성사진), (2) 땅을 파들어가다가 지옥을 발견했다, 소리가 난나, (3) 천사나 악마를 봤다, (4) 타 종교에 대한 공격, 등등. 그 전에는 아마 소년중앙이나 새소년 같은 어린이잡지에서 기획기사에 이런 것들을 많이 가져다 쓴 것 같아요 맥락상.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는 영국과 미국에서 발행되는 황색신문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cyrus 2017-11-22 14:17   좋아요 0 | URL
우주에 예수 형상이 찍힌 조작 사진도 있어요. 어렸을 땐 순수해서 실제로 있다고 믿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별 희한한 내용들이 많았어요. ^^;;
 

 

 

손에 쥐고 있는 물체를 놓아 보자. 당연히 물체는 땅 밑으로 떨어진다. 이 현상의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구 중심으로 향하는 중력때문에 물체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중력이라는 이름만으로는 힘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과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게 만드는 학문이다. 중력의 실체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면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면서 우주의 구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 오정근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 2016)

 

 

 

중력파의 실체를 규명하는 연구는 아인슈타인이 남긴 큰 숙제였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조차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블랙홀들이 충돌할 때 중력파가 방출된다. 이때 우주의 시공간이 연못의 물결처럼 일렁이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중력파는 중력과 관련된 파동이다. 그런데 중력은 세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중에서 가장 약하다. 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한 이후로 100년 동안 중력파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 긴 세월 동안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최첨단 실험 장비를 총동원하여 중력파 검출을 위해 노력했다. 결국,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중력파 검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세 명의 과학자(라이너 바이스, 킵 손, 배리 배리시)들에게 돌아갔다.

 

마침내 아인슈타인의 숙제가 해결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확인한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경탄했다. 그러나 중력파를 예언한 아인슈타인만 치켜세울 수 없다. 중력파를 알기 전에 중력을 먼저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중력의 실체를 확인한 과학자들도 경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갈릴레오 갈릴레이(낙하운동)와 아이작 뉴턴(만유인력과 세 가지 운동 법칙)의 업적도 분명 위대한 발견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두 명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넓은 시야로 광활한 과학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 뉴턴 역학과 만유인력(뉴턴코리아, 2011)

* 중력이란 무엇인가?(뉴턴코리아, 2013)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것보다 먼저 땅에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직관에 의존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그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근거로 진공의 실체마저 부정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복잡한 실험 장치를 준비하지 않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뒤집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반증하는 일명 피사의 사탑 실험은 갈릴레오를 유명하게 만들어줬으나 실제로 진행되지 않았다. 갈릴레오는 기다란 판자를 비스듬히 세워 경사면을 만들어 공을 굴리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무거운 공이든 가벼운 공이든 같은 속도로 굴러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진공 상태의 공간 속에 쇠공과 깃털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사고 실험을 했다. 그는 깃털이 공기 저항을 받아 천천히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 모두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새로운 두 과학(사이언스북스, 2016)

 

 

 

갈릴레오의 새로운 두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 이론을 반박한 책이다. 이 책에 세 명의 등장인물이 과학과 수학을 주제로 사흘 동안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필리포 살비아티조반니 프란체스코 사그레도는 갈릴레오의 친구로 갈릴레오의 이론을 소개한다. 심플리치오는 가공인물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 이론을 믿으며 진공의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새로운 두 과학은 지금 보면 지루한 책이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이론에 대한 설명이 다 나오는 시대에 케케묵은 고전 이론들을 보는 것은 지루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에 유클리드의 기하학 이론까지 나온다. 사실 과학 비전공 독자가 읽기엔 버겁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은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첫째 날 토론셋째 날 토론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 이론을 반박하고, 진공과 중력의 존재를 주장한 내용이 있는 중요한 장이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적용하여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의 크기를 계산했다. 그는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남긴 두 개의 숙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갈릴레오는 땅 위에 떨어지는 물체의 운동을,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 운동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지구와 우주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못했다. 뉴턴은 두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했고, 그 이론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알려지게 됐다. 힘의 원리를 증명한 뉴턴의 이론은 19세기 말까지 물리학을 지배한 고전 역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뉴턴의 고전역학은 시간과 공간, 즉 시공을 절대적인 개념으로 설정했다. 다시 말하면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은 평평한 상태이며 이곳을 지나는 빛은 오직 직선을 따라 일정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시공이 휘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통해 갈릴레오와 뉴턴이 미처 보지 못했던 중력의 존재,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볼 수 있게 했다.

 

 

 

 

 

 

 

 

 

 

 

 

 

 

 

 

 

 

 

 

 

 

 

 

 

 

 

 

* 조지 가모브 조지 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승산, 2001)

*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승산, 2003)

* 리처드 파인만 물리법칙의 특성(해나무, 2016)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서커스, 2017)

 

 

 

중력파가 뭔지 알고 싶어서 중력파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력의 실체까지 공부하게 된다. 리처드 파인만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물리법칙의 특성은 복잡한 수식 없이 뉴턴이 중력 이론을 증명해내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독자는 조지 가모브조지 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80~81을 참고하면 된다. 여기에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 그리고 갈릴레오의 낙하 운동 법칙까지 세 가지 중요 이론을 한 번에 설명한 내용이 있다.

 

 

무엇이 공간을 이처럼 휘게 해서 이런 이상한 효과를 일으키는 건가요?”

 

질량을 가진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을 때, 중력이 그저 보통의 힘인 줄만 알았어. 예를 들어 두 물체가 고무줄 같은 것을 당기고 있을 때 작용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힘(만유인력의 법칙)인 줄 알았던 거야. 하지만 뉴턴이 간과한 신비한 사실이 있었지. 모든 물체는 그 무게나 크기에 상관없이 중력장 안에서 동일한 운동을 하고 동일한 가속도를 갖는다(낙하 운동에 대한 갈릴레오의 사고 실험)는 게 그거야. 물론 공기 마찰(좀 더 쉽게 말하면 공기 저항이다) 등을 배제했을 경우의 얘기지. 이걸 뉴턴은 몰랐던 거야. 질량을 가진 물질이 일차적으로 휘어진 공간을 만들어내고, 공간 자체가 휘어져 있기 때문에 중력장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의 궤도는 휘어질 수밖에 없어(일반상대성이론). 이런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지.”

 

괄호 속 문장은 책의 저자(가모브)가 아닌 글쓴이(cyrus)가 쓴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절친한 동료 레오폴트 인펠트가 같이 쓴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는 물리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아니다. 세상을 지배한 과학 법칙들이 과학자들의 도전을 받는 굵직한 투쟁의 과정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이 책의 서문에서 물리학 교과서를 쓰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읽어 보면 교과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지 가모브와 파인먼의 책과 비교하면 아인슈타인의 책은 재미가 떨어진다.

 

우리나라 과학 교육은 과학 이론이 증명되는 과정을 생략한 채 바로 결과로 나온 과학 이론을 가르친다. 그러니까 과학 이론의 탄생 과정을 알지 못한 채 그냥 과학 이론 그 자체를 외운다. ‘결과중심의 과학 학습에 익숙한 독자는 하나의 과학 이론이 과거의 과학 이론을 넘어서는 과정을 설명한 내용을 진득하게 읽지 못한다. 아무리 잘 쓴 과학책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과거 이론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얕은 독서는 과학책을 읽는 데 단점이 될 수 있다. 과학은 최신 이론만 알면 그만이다?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론위에 또 하나의 이론이 얹어지는 과학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 과거 이론은 쓸모없으면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현재의 과학을 견고하게 세워주는 주춧돌이다.

 

중력파에서 중력으로 거꾸로 이해하면서 공부하는 방식은 현재에서 과거로 향하는 과학의 길을 되돌아가는 여행과 같다. 과학의 길은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등 과학의 거인들이 산책했던 곳이다. 과학의 길을 거꾸로 걷다 보면 오늘날 이룩한 과학의 진보가 언젠가는 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 나와도 과학에는 절대적인 이론이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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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1-2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릴레오의 「새로운 두 과학」이 「대화」와는 또 다른 갈릴레오의 저작인 듯 하네요..

cyrus 2017-11-21 13:29   좋아요 1 | URL
네. 《대화》는 천문학을 다룬 책이라면 《새로운 두 과학》은 물리학과 수학을 다룬 책입니다. ^^

2017-11-20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1 13:32   좋아요 1 | URL
학창 시절에 받은 과학 수업이 왜 재미없는지 알았어요. 교과서보다 쉽게 설명한 과학책들이 많았어요. 좋은 과학책 두 세 권 읽으면 교과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거예요. ^^

나비종 2017-11-20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아이들에게 과학책에 적힌 내용을 100% 믿지 말라고 합니다. 시험볼 때에는 교과서대로 답해야 하지만, 이건 단지 ˝현재의 진실˝ 일 뿐이라고.
<어쩌다 어른>에 나온 김미경 강사가 그러더군요. 실패에도 에너지가 있다고. 그걸 딛고 더 나아가야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80%까지 갔다가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말고 관점을 바꾸라고 하더군요. 그건 실패가 아니라 20% 모자란 성공이라고.
과학사에서 소개되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패담을 읽을 때마다 자주 뭉클합니다. 과연 그들이 없었어도 이 이론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하구요.

cyrus 2017-11-21 13:34   좋아요 0 | URL
실패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제일 중요합니다. 실패의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여 포기하거나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유형이 있어요. 이러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어요.

transient-guest 2017-11-22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덜덜 합니다. 제가 이공계쪽 공부가 약해서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기회가 되면 계속 책은 구해서 모아놓고 있습니다. 이담에 이형렬씨 (예전에 알라딘 US현지법인 사장/잠깐 팟캐스트도 했었어요)처럼 한 2000권 정도를 읽으면 이공계에도 눈이 좀 떠지려나 모르겠어요.ㅎ 시공간의 왜곡은 저로서는 참 힘든 주제입니다. 공간이 휘는 건 상상이 가능한데 시간이 휘는 건 그 효과나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우주공간을 위/아래/좌/우로 놓고 큰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 그림을 보면 제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의 바깥 같아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글 읽고나니 다시 과학책을 열심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자라고 힘든 걸 해야 운동이 되는 것처럼 책도 지금 편한 책이 좋지만, 좀더 어려운 책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에서 두뇌활동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11-22 14:22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시공간 왜곡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막연하게 생각하니까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뉴턴 하이라이트> 같은 그림이 있는 과학책을 참고했어요.
 
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인간은 기쁨보다는 슬픔을, 즐거움보다는 아픔을 기억에서 더 쉽게 떠올린다. 굴곡진 삶의 여정에서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이 유독 더 선명한 상처로 남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세상은 불완전하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상처는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으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매우 많은 것들이 생략된 소설이다. 독자들은 에츠코가 영국인 남편과 재혼하기 전에 낳은 게이코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게이코가 왜 자살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게이코는 죽은 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거부한다. 그 대신 일본 나가사키에 살았을 때 만났던 사치코와 그녀의 딸 마리코를 기억한다. 작가가 인물 심리의 흐름에 충실하게 서술하는 만큼, 창백한 언덕 풍경에서는 외부와 내면,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는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츠코의 기억을 재생시키고, 지우고 싶은 상처에 대면하게 한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서평가 이현우창백한 언덕 풍경전후 소설이면서도 여성 소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1]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시종일관 에츠코, 사치코, 마리코, 이 세 여성의 삶을 교묘히 병치시킨다. 따라서 하나의 단선적 사건이 인과관계를 따라 풀려 가는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에게 소설은 다소 지루하며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창백한 언덕 풍경여성 소설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소재가 여성 문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는 전후 세대 여성의 삶과 심리상태를 조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 신경을 놓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여성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에츠코 :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난 지금 아주 행복해요. 남편의 일도 잘 풀리고 있고, 원할 때 아기를 갖게 되었지요…‥.”

 

사치코 : “저 애는 사업가가 될 수도 있고, 영화배우가 될 수 있어요. 미국은 그런 곳이에요, 에츠코. 많은 일들이 가능해요. 프랭크 말이 나 역시 사업가가 될 수 있대요. 그곳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요.”

 

에츠코 : “그렇겠지요. 다만 난 개인적으로 현재 삶에 무척 만족해요.” [2]

 

 

나가사키에 살았던 시절, 에츠코는 일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첫째 딸인 게이코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에츠코는 가부장 사회에서 착한 여자로 인정받는 순종형 여성상이다. 그녀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츠코가 어엿한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영위하며 행복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에 커다란 상처가 남아 있다. 상처의 원인은 자살한 딸에 대한 기억이다. 에츠코는 죽은 딸의 방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치코는 엄마가 가정을 위해서 해야 할 임무라는 환상에 휩싸여 과도한 몫을 떠안으려고 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개인 사업과 딸 양육을 병행하는 슈퍼 우먼을 꿈꾼다. 장밋빛 미래가 보장될 거로 믿는 사치코는 직업적 성취와 모성의 의무가 대립하면서 느끼게 될 갈등을 예상하지 못한다. 사치코와 마리코는 엄연히 말하면 난민이다. 난민이란 본래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곤궁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사치코와 마리코 모녀는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나가사키에 정착한다. 그러나 나가사키 주민들은 모녀를 외지인으로 인식하여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회가 불안해지고 규범이 와해하면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지목해 분노를 키우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는 관계 단절로 이어진다. 모녀는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된 약자에 속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이다. 모녀가 사는 허름한 오두막 내부는 외부와 소통이 잘 안 되는 고립되고 자폐적인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내 관심은 사치코의 찻주전자에 가 있었다. 연한 빛깔의 도기로,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좋은 물건이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찻잔 또한 같은 재질의 섬세한 다기였다. 그렇게 사치코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 진흙이 노출된 툇마루 바닥과 다기 세트의 대조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난 좋은 그릇을 쓰는 데 익숙해요, 에츠코. 알다시피 언제나 이렇게 살았던 건 아니거든요.” [3]

 

 

사치코가 소유한 찻잔 세트는 고립된 삶을 살던 사치코의 억압된 욕망을 자극한다. 빈곤한 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원천봉쇄한다. 가난한 사치코가 화려한 다기 세트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잠재의식을 읽을 수 있다.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 동경이 숨어 있다. 사치코는 영어를 유창하게 쓸 줄 안다. 그러나 그녀의 전남편(사치코가 만나는 미국인 프랭크와 다른 인물이다)은 그녀의 외국어 공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쪽의 언어(일본어)가 다른 쪽 언어(외국어)의 발화를 제한하는 방식은 여성의 입을 말할 수 없는 입으로 만든다. 미국의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의 말을 빌리자면 남편의 강압에 밀린 사치코가 사용하는 일본어는 압제자의 언어이다. 가부장제 안에서 압제자 역할에 있는 남성은 젠더권력뿐 아니라 언어 권력조차 오랫동안 쥐어 왔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압제자의 언어는 여성의 욕망을 억압한다.

 

마리코는 세 여성 중 가장 불행한 인물이다. 전쟁의 폭력성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흔적을 남긴 채 또 다른 폭력의 온상이 된다. 마리코는 전쟁 중에 아기를 살해하는 여자를 목격한 이후로 오랜 세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숨결이 예민한 마리코의 마음에 배어들었다. 미래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 사치코는 과거에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딸의 심리 상태를 예사롭게 본다. 과거를 잊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자(사치코)와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미래를 거부하는 자(마리코)에서 생기는 괴리감은 불편함을 낳는다.

 

 

 

 

에츠코가 보는 앞에서 거미를 먹는 시늉을 한 마리코의 돌발행동은 자신의 절망적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사치코의 모성애를 거부하는 저항 행위이다. 거미는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모성을 상징한다. 설치미술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초대형 거미 형태의 작품에 마망(maman: 엄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르주아는 알을 품는 거미를 통해 어머니의 모성애를 형상화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상처받기 쉬운 여성의 내면을 표현했다. 거미를 위협하는 마리코의 돌발행동에서 에츠코가 인지하지 못한 정신적 외상(trauma)’을 포착할 수 있다. 에츠코는 마리코의 행동을 바보 같은 짓으로 생각한다.[4] 그녀의 태도는 우리가 타인의 비정상적 행동에 거부감을 느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마리코의 돌발행동은 혐오스러운 미친 행동이 아니다. 사치코에 대한 분노감을 표출하는 동시에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은 구조 요청 신호이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생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작가는 전쟁의 비극성과 더불어 개인의 정신적 외상과 기억을 집요하게 다룸으로써,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작가는 에츠코와 사치코가 원했던 가정이 결코 상처받은 여성들의 안식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춰낸다. 다만 창백한 언덕 풍경여성소설이라고 해서 페미니즘 소설로 단정할 수 없다. 영국의 언론인 로잘린드 카워드(Rosalind Coward)[5]는 막연하게 여성 중심의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로 보는 비평 방식을 경계한다.[6] 작가는 저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사연이 있는 여성들을 위한 섣부른 치유책을 내놓지 않는다. 거짓 희망에 매달리지 않고 고통을 직시하는 것은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에츠코는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 살아있음의 강력한 증거라는 숙명을 받아들인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볼 때 정치적 관심사를 부각하여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페미니즘 소설과 거리가 멀다. 창백한 언덕 풍경이 전달하고자 한 여성의 감정과 정서가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페미니즘 소설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시구로의 문체와 언어는 규정짓기 어려운 불안과 혼돈의 심리도, 스쳐 지날 법한 찰나의 상황조차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숨이 막힐 정도로 섬세한 언어로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헤집는 이야기의 전개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도 치유의 방법이다. 외면하고 싶어도 담담하게 대면하는 것. 그것이 이시구로의 첫 소설을 접한 독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1] 출처: [희미한 언덕 풍경](로쟈의 저공비행, http://blog.aladin.co.kr/mramor/9682147)

 

[2] 58~59

 

[3] 25

 

[4] 108쪽

 

[5] 그녀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푸드 포르노(Food Porno)’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푸드 포르노1984년 로잘린드 카워드가 자신의 저서 <여성의 욕망>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6] 로잘린드 카워드 여성 소설은 페미니스트 소설인가?, 페미니스트 비평과 여성 문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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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1-20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서평인가에서 보니 가즈오 이시구로 선생
의 데뷔작을 나비 부인에 비교하는 글도 있더
군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 않나 싶더군요.

아무래도 작가의 데뷔작이라 그런지 개연성이나
핍진성에서 상대적으로 대표작에 비해 부족하
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cyrus 2017-11-20 14:24   좋아요 0 | URL
제 나름대로 그럴듯한 해석을 제시했지만, 이 소설을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야기 곳곳에 독특하면서도 모호한 묘사들이 있어서 속독하기 힘든 소설입니다.

2017-11-20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0 19:43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렇습니다. 이시구로가 쓴 작품들의 제목이 독특해서 제목만 보고 줄거리를 추측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소설을 다 읽고난 뒤에 제목의 의미가 뭔지 생각해야 합니다. ^^
 
새벽에 생각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6
천양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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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는 인생을 나이별로 정리했다. 10대는 충년(沖年), 20세는 약관(弱冠), 30세는 이립(而立), 40세는 불혹(不惑), 50세는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이순(耳順), 그리고 70세는 고희(古稀) 또는 종심(從心)이라 했다. 고희는 시인 두보(杜甫)가 읊은 곡강(曲江)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시에서 두보는 인생 칠십에 이르는 삶은 드문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백 세 인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균수명이 길어졌다. 종심은 논어에 나오는 단어이다. 공자는 칠순이 되면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성숙해진다고 말했다. 그만큼 삶이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거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청춘만이 아름답고 특별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칠순도 좋은 나이임이 분명하다. 천양희 시인을 보면 그렇다. 10대의 순수함과 20대의 열정을 품고 있는 시인의 글은 매력적이다. 간결한 문장에서 강력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아마도 시인의 나이에 대한 질문은 우문(愚問)일 수 있겠다. 나이가 많아서 무엇을 못 한다는 것은 핑계이다. 시가 잘 써지는 때는 있어도 시가 잘 써지는 나이는 없다. 시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틀려도 배짱 있게 시를 쓴 칠곡 할매들이 있다. 올해 구순을 맞은 김남조 시인은 열여덟 번째 시집 충만한 사랑(열화당)을 냈다.

 

일흔의 나이에 접어든 시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 나이에도 생에 대한 미련이 얼룩처럼 자잘하게 번져나, 아직도 쓰고 싶은 시나 못다 한 말들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과거에만 매달린 채 허송세월하는 모습일까. 천양희 시인은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정립해 나간다.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는 연륜에서 우러난 지혜와 성숙한 삶의 교훈으로 치장하고 있다. 시집에는 원로 시인의 권위나 위엄은 찾기 어렵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느낌을 허물없이 표현한 시인의 모습에서 공자가 말하는 종심의 경지, 즉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도 자기 스스로 돌아볼 줄 아는 원숙한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일흔 살의 인터뷰전문, 56~57)

 

 

모든 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통과의례를 거친다. 여러 번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서야 최종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청춘의 시기를 평탄하게 넘어서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냥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 현실을 받아들 것인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난 뒤에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곧 찍게 될 인생의 종점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시인은 달관의 자세로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인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일흔 살의 인터뷰)라고 말하는 시인의 유연한 고백은 세월의 흐름을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안정된 문단의 원로의 그늘에 벗어나 아무도 돌보지 않는 깊은 고독에 바치는”(시작법) 시 쓰기에 몰입한다. 안주(安住)를 포기하고 외로운 마음으로 시 쓰기의 고단한 길을 걷는 셈이다. 그것은 곧 그녀가 아무 것에도 귀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생 동안 시 쓰기란 나에게는

진창에서 절창으로 나아가는 도정이었고

삶을 철저히 앓는 위독한 병이었다

그래서 의연하게 고독을 살아내면서 나아가지만

 

시는 달리는 이들에게 멈추기를 요구하네

빠름보다는 느림을 준비하네 그러므로 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깊은 고독에 바치는 것이네

그게 좋은 시를 읽어야 할 이유

이 세상에 눈물 가득한 예지는 이것뿐이네

 

 

(시작법(詩作法)부분, 100)

 

 

고독을 인내하는 의연함이 그녀의 시를 가능케 한다. 그녀의 시 쓰기는 창작을 위한 고통, ‘좋은 시를 얻기 위한 수고로움이다. 그녀의 시는 고단함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야시를 써야할 이유를 찾는다.

 

 

잘못 자란 생각 끝에 꽃이 핀다지요 그것이 시()라지요

 

 

(이처럼 되기까지부분, 70)

 

 

쓸쓸한 영혼이나 편들까 하고

슬슬 쓰기 시작한 그날부터

왜 쓰는지를 안다는 말 생각할 때마다

세상은

아무나 잘 쓸 수 없는 원고지 같아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

 

쓴다는 건

사는 것의 지독한 반복 학습이지

치열하게 산 자는

잘 씌어진 한 페이지를 갖고 있지

 

 

(시라는 덫부분, 88)

 

 

시는 시인의 마음에 난 상처에서 피는 이다. 문학은 인간의 불완전성, 불행과 실패에 맞서는 과감한 항변이다. 삶을 몸서리치게 체험한 시인은 남모르는 곳에 홀로 숨어, 남모르는 상처를 제 혓바닥으로 핥아 몰래 치료한다. 독자는 시를 써본 적이 없어도 천양희 시인의 시에서 공감 이상의 감동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불행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만이 삶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시인의 저항에 감동한다. 시인에게 고독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철저한 작문은 곧 문학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정신적 성숙을 의미한다. 나는 시를 위해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고, 치열하게 시를 쓰려는 의지를 드러낸 시인의 ‘자기 선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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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6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7 16:52   좋아요 0 | URL
그때 저는 뭐하고 있을까요? 70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sprenown 2017-11-16 1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는 시인의 마음에 난 상처에서 피는 ‘꽃’이다‘ 아주 훌륭한 표현입니다. 고독을 좀 더 견뎌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cyrus 2017-11-17 16:55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면 고독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니까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마음이 통하는 지인과 친하게 지내는 일이 어려워요.

서니데이 2017-11-16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행과 실패를 만나도 역경을 이겨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늘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듣더라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7-11-17 16:58   좋아요 1 | URL
살면서 미래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여기서부터 마음이 흔들리면 극복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

페크pek0501 2017-11-1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끝문장처럼 저도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cyrus 2017-11-20 11:08   좋아요 0 | URL
시인은 대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직업입니다. 우리나라가 시를 애독하는 사회가 아니라서 그런지 시인을 그저 그런 직업, 소설가보다 못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로마가 등장하기 전 이탈리안 반도에 에트루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고대 국가다. 에트루리아인의 역사를 알려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들의 기원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역사(도서출판 숲, 2009)

* 헤로도토스, 김봉쳘 역 역사(, 2016)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에트루리아인의 선조가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의 고대 왕국 리디아(Lydia)인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 유전자 DNA 검사 결과 헤로도토스의 견해가 사실임이 확인되었다.[1]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1(푸른역사, 2013)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2(푸른역사, 2014)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은 이탈리아 초기 민족을 이아퓌기아인’,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인으로 분류했다. 로마에 에트루리아의 문화 및 관습을 전파한 로마의 전설적인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는 에트루리아인으로 알려졌는데, 몸젠은 이 전설적인 내용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인에 대한 몸젠의 평가가 야박하다.

 

몸젠의 역사관은 실증주의 역사학이다.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가 이끈 실증주의 역사학은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료에 주목한다. 랑케는 오로지 실재했던 사실만을 기술하고자 했다. 사료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통해 그는 문헌 안에서 역사적 사실만을 가려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랑케의 후계자들은 실증주의 역사관을 교묘히 이용하여 애국심을 강요하는 민족주의를 표방했다. 몸젠은 실증주의에 입각해 로마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지만, 역사적 상상력이 반영된 전설이 연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몸젠은 그리스 정신을 이어받아 발전한 로마를 치켜세우는 반면 에트루리아를 그리스 정신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2% 부족한 나라로 평가했다. 그는 실증주의라는 학문적 외피를 쓴 채 로마 문명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에트루리아 문화를 저평가했다.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1(이학사, 2005)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2(이학사, 2005)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종교가 있었고, 주술적 성격을 갖는 종교의식이 성행했다. 고대 그리스 도시 엘레우시스 주민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를 숭배했고, 1년에 두 번씩 여신을 숭배하는 축제를 벌였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그리스인들의 관심은 엘레우시스 비의(Eleusinian Mysteries)’라는 비밀종교를 탄생했다. 로마에는 주신(酒神) 바쿠스(Bacchus,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에 해당)를 숭배하는 밀교가 유행했다. 바쿠스는 이탈리아 남부와 로마 및 에트루리아 등의 이탈리아 전반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에트루리아 인들은 전조와 기적을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번개 해석법과 내장 해석법 등 비의(悲意) 해석법이 생겨났으며,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복채를 뜯어내려는 욕심을 엿볼 수 있다. (1권 제12258~259)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인간이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종교 행위라고 말했다. 고대의 종교 제의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풍요로운 희망을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다. 에트루리아의 주술 문화를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부정적인 문화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무역과 해적질로 일찍이 커다란 부를 축적한 에트루리아에서만 오직 예술이, 혹은 그렇게 부르길 원한다면 기술이 일찍이 뿌리내렸다. (1권 제15336)

 

 

에트루리아 인들의 작품은 라티움이나 사비눔 사람들에 비해서 그 합목적성이나 실용성뿐만 아니라 내면성과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 트루리아 사람들은 희랍의 호화 건축을 모방했으되 저열한 수준이었다. 에트루리아 예술은 수공업적 훈련과 적응의 숙련도를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증거일 뿐, 중국 사람들처럼 천재적 수용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 예술의 역사에서 에트루리아를 맨 앞자리에서 맨 뒷자리로 밀어내 버릴 것을 단호하게 결심해야 할 것이다. (1권 제15339~340)

 

 

에트루리아 예술 작품의 일반적 성격은 재료와 양식에 있어 일정하게 나타나는 지나친 천박함과 내적 발전의 완전한 결여다. 희랍 장인이 대강 소묘한 곳에 에트루리아의 제자는 학생다운 땀을 쏟았던 것이다. 희랍 작품들의 가벼운 재료와 절제된 비례 대신 에트루리아 작품들에선 과시적 크기와 사치스러움 혹은 단순한 진기함만이 강조된다. (2360)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로마 미술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했다. 특히 로마사 1에서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이탈리아 예술사의 뒷자리로 밀어내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견해만 보고 에트루리아 미술을 후진적 문화로 평가해선 안 된다.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리스 미술을 로마에게 전해준 에트루리아 미술의 영향력를 무시할 수 없다.

 

 

 

 

 

 

 

 

 

 

 

 

 

 

* 낸시 H. 래미지, 앤드류 래미지 로마 미술(예경, 2004)

* 토마스 R. 호프만 로마 미술, 어떻게 이해할까?(미술문화, 2008)

 

 

 

몇몇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들과 무역을 한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문화를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축적한 부를 통해 사치스러운 예술품 또는 장신구를 제작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스에 대리석과 석회암이 풍부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보존성이 뛰어난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는 대리석과 석회암처럼 단단한 재질의 암석이 부족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흙벽돌과 목재를 건축물 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온전한 형태의 에트루리아 시대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고, 겨우 파편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에 에트루리아가 대리석과 석회암 지대였다면 그리스와 로마 중심으로 서술된 고대 미술사의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다. 에트루리아의 조각 예술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표현과 양식을 발전시켰다. 에트루리아 등신상은 그리스 등신상보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에트루리아 미술이 로마 미술의 발전 양상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에트루리아 미술의 수준을 확인해보면 에트루리아 미술과 로마 미술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역할과 개성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한 시대에 등장한 예술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개성에 대한 이해이며, 그 시대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의 가치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한다. 몸젠은 사실과 해석이 공존하는 절충주의 방식으로 에트루리아 미술을 평가했으나 자신의 감상에 치중한 주관적 견해에 머무르고 말았다.

 

 

 

[1] [연구팀 결국 헤로도투스 견해가 맞았다”] 연합뉴스, 200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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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이병도를 비롯한 실중주의 사학자가 득세한 이후 아마 지금까지도 주류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7-11-16 17:09   좋아요 0 | URL
이병도를 비판하는 사회주의 역사학자들은 서울대학교에서 활동한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의 권위주의적 활동을 비꼬기 위해서 ‘서울대 학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AgalmA 2017-11-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지적을 해 주셨네요. 많은 예술 사관들이 문화의 특정 부분의 우수성을 강조하는데, 그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사는 환경과의 관계를 간과하는 게 꽤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에트루리아인이 흙벽돌과 목재로 건축물을 지은 것이나 기타 등등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특수성을 더 중심으로 봐야겠지요. 비교가 객관성이나 정확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가치 판단적일 때가 많죠.

cyrus 2017-11-17 17: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예술사를 논할 때 과거 예술사조를 후대의 예술사조와 비교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짜라투스트라 2017-11-1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에트루리아까지... 역시 멋져요!!

cyrus 2017-11-17 17:04   좋아요 0 | URL
역사학에서 로마가 워낙 많이 언급되는 주제라서 에트루리아를 살피지 못하고 간과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책을 다시 읽으니까 처음 읽었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

transient-guest 2017-11-17 0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저의 로마라고 할 만큼 훌륭한 해상문명을 이룩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로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에서는 대부분 로마를 셋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몸젠을 (지루한 책) 권위자로 내세우며 quote하기를 즐긴 시오노 나나미나 몸젠의 자세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결국 비슷한 성향과 목적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고대 중근동을 얘기할 때 유대민족/유대신에 대한 책은 많지만 다곤, 바엘, 아세라를 숭배했던 부족/국가/문명에 대한 책은 얼마 없는 것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도 드네요.

cyrus 2017-11-17 17:07   좋아요 1 | URL
몸젠의 《로마사》가 완역되면 로마를 바라보는 몸젠의 시선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1, 2권만 봐서는 로마를 치켜세우는 몸젠의 서술 방식을 판단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지만, 일단 저는 그게 불편하게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