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고 있는 물체를 놓아 보자. 당연히 물체는 땅 밑으로 떨어진다. 이 현상의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구 중심으로 향하는 ‘중력’ 때문에 물체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중력’이라는 이름만으로는 힘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과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게 만드는 학문이다. 중력의 실체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면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면서 우주의 구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 오정근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동아시아, 2016)
중력파의 실체를 규명하는 연구는 아인슈타인이 남긴 큰 숙제였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조차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블랙홀들이 충돌할 때 중력파가 방출된다. 이때 우주의 시공간이 연못의 물결처럼 일렁이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중력파는 중력과 관련된 파동이다. 그런데 중력은 세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중에서 가장 약하다. 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한 이후로 100년 동안 중력파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 긴 세월 동안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최첨단 실험 장비를 총동원하여 중력파 검출을 위해 노력했다. 결국,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중력파 검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세 명의 과학자(라이너 바이스, 킵 손, 배리 배리시)들에게 돌아갔다.
마침내 아인슈타인의 숙제가 해결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확인한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경탄했다. 그러나 중력파를 예언한 아인슈타인만 치켜세울 수 없다. ‘중력파’를 알기 전에 ‘중력’을 먼저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중력’의 실체를 확인한 과학자들도 경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갈릴레오 갈릴레이(낙하운동)와 아이작 뉴턴(만유인력과 세 가지 운동 법칙)의 업적도 분명 위대한 발견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두 명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넓은 시야로 광활한 과학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 《뉴턴 역학과 만유인력》 (뉴턴코리아, 2011)
* 《중력이란 무엇인가?》 (뉴턴코리아, 2013)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것보다 먼저 땅에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직관에 의존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그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근거로 ‘진공’의 실체마저 부정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복잡한 실험 장치를 준비하지 않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뒤집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반증하는 일명 ‘피사의 사탑 실험’은 갈릴레오를 유명하게 만들어줬으나 실제로 진행되지 않았다. 갈릴레오는 기다란 판자를 비스듬히 세워 경사면을 만들어 공을 굴리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무거운 공이든 가벼운 공이든 같은 속도로 굴러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진공 상태의 공간 속에 쇠공과 깃털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사고 실험’을 했다. 그는 깃털이 공기 저항을 받아 천천히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 모두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새로운 두 과학》 (사이언스북스, 2016)
갈릴레오의 《새로운 두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 이론을 반박한 책이다. 이 책에 세 명의 등장인물이 과학과 수학을 주제로 사흘 동안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필리포 살비아티와 조반니 프란체스코 사그레도는 갈릴레오의 친구로 갈릴레오의 이론을 소개한다. 심플리치오는 가공인물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 이론을 믿으며 진공의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새로운 두 과학》은 지금 보면 지루한 책이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이론에 대한 설명이 다 나오는 시대에 케케묵은 고전 이론들을 보는 것은 지루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에 유클리드의 기하학 이론까지 나온다. 사실 과학 비전공 독자가 읽기엔 버겁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은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첫째 날 토론’과 ‘셋째 날 토론’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 이론을 반박하고, 진공과 중력의 존재를 주장한 내용이 있는 중요한 장이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적용하여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의 크기를 계산했다. 그는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남긴 두 개의 숙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갈릴레오는 땅 위에 떨어지는 물체의 운동을,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 운동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지구와 우주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못했다. 뉴턴은 두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했고, 그 이론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알려지게 됐다. 힘의 원리를 증명한 뉴턴의 이론은 19세기 말까지 물리학을 지배한 ‘고전 역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뉴턴의 고전역학은 시간과 공간, 즉 시공을 ‘절대적인 개념’으로 설정했다. 다시 말하면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은 평평한 상태이며 이곳을 지나는 빛은 오직 직선을 따라 일정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시공이 휘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통해 갈릴레오와 뉴턴이 미처 보지 못했던 중력의 존재,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볼 수 있게 했다.
* 조지 가모브 《조지 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 (승산, 2001)
*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2003)
* 리처드 파인만 《물리법칙의 특성》 (해나무, 2016)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트 인펠트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서커스, 2017)
‘중력파’가 뭔지 알고 싶어서 ‘중력파’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력’의 실체까지 공부하게 된다.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물리법칙의 특성》은 복잡한 수식 없이 뉴턴이 중력 이론을 증명해내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독자는 조지 가모브의 《조지 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 80~81쪽을 참고하면 된다. 여기에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 그리고 갈릴레오의 낙하 운동 법칙까지 세 가지 중요 이론을 한 번에 설명한 내용이 있다.
“무엇이 공간을 이처럼 휘게 해서 이런 이상한 효과를 일으키는 건가요?”
“질량을 가진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을 때, 중력이 그저 보통의 힘인 줄만 알았어. 예를 들어 두 물체가 고무줄 같은 것을 당기고 있을 때 작용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힘(만유인력의 법칙)인 줄 알았던 거야. 하지만 뉴턴이 간과한 신비한 사실이 있었지. 모든 물체는 그 무게나 크기에 상관없이 중력장 안에서 동일한 운동을 하고 동일한 가속도를 갖는다(낙하 운동에 대한 갈릴레오의 사고 실험)는 게 그거야. 물론 공기 마찰(좀 더 쉽게 말하면 ‘공기 저항’이다) 등을 배제했을 경우의 얘기지. 이걸 뉴턴은 몰랐던 거야. 질량을 가진 물질이 일차적으로 휘어진 공간을 만들어내고, 공간 자체가 휘어져 있기 때문에 중력장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의 궤도는 휘어질 수밖에 없어(일반상대성이론). 이런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지.”
※ 괄호 속 문장은 책의 저자(가모브)가 아닌 글쓴이(cyrus)가 쓴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절친한 동료 레오폴트 인펠트가 같이 쓴 《물리는 어떻게 진화했는가》는 물리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아니다. 세상을 지배한 과학 법칙들이 과학자들의 도전을 받는 굵직한 투쟁의 과정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이 책의 서문에서 ‘물리학 교과서를 쓰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읽어 보면 ‘교과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지 가모브와 파인먼의 책과 비교하면 아인슈타인의 책은 재미가 떨어진다.
우리나라 과학 교육은 과학 이론이 증명되는 ‘과정’을 생략한 채 바로 ‘결과’로 나온 과학 이론을 가르친다. 그러니까 과학 이론의 탄생 과정을 알지 못한 채 그냥 과학 이론 그 자체를 외운다. ‘결과’ 중심의 과학 학습에 익숙한 독자는 하나의 과학 이론이 과거의 과학 이론을 넘어서는 ‘과정’을 설명한 내용을 진득하게 읽지 못한다. 아무리 잘 쓴 과학책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과거 이론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얕은 독서는 과학책을 읽는 데 단점이 될 수 있다. 과학은 최신 이론만 알면 그만이다?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론’ 위에 또 하나의 ‘이론’이 얹어지는 과학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 과거 이론은 쓸모없으면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현재의 과학을 견고하게 세워주는 주춧돌이다.
‘중력파’에서 ‘중력’으로 거꾸로 이해하면서 공부하는 방식은 ‘현재’에서 ‘과거’로 향하는 과학의 길을 되돌아가는 여행과 같다. 과학의 길은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등 과학의 거인들이 산책했던 곳이다. 과학의 길을 거꾸로 걷다 보면 오늘날 이룩한 과학의 진보가 언젠가는 ‘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 나와도 과학에는 절대적인 이론이라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