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1982)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이시구로의 인터뷰와 그에 관한 연구자료는 지난 주말까지 다 구비해놓았지만 오늘 강의는 작품과 그에 대한 논문 두 편 정도만을 참고했다. 예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지만 전체 강의의 가닥은 잡을 수 있었다. 28살에 첫 작품을 발표한 이시구로의 차기작들은 나도 기대가 된다. 그는 4년 뒤 두번째 작품으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1986)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전작 읽기가 가능한 작가여서 작품은 발표순으로 읽어나갈 예정이지만 부커상 수상작 <남아있는 나날>(1989) 이후에 발표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1995)만 뒤로 미루었다. 분량도 가장 두꺼우면서 가장 난해한 작품. 부커상 수상작가의 ‘갈라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강의에서 이 작품까지 다루게 될지는 다음주에 결정할 예정이다(다루게 된다면 12월의 한 주를 나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과 씨름하며 보내야 한다).

역자도 충분한 고려 끝에 ‘A Pale View of Hills‘를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옮겼지만 일반적인 선택은 ‘희미한 언덕 풍경‘이었을 것이다. 나로서도 더 무난하지 않나 싶은데 ‘창백한‘은 너무 이미지가 강하게 여겨져서다. ‘희미한‘ 내지 ‘흐릿한‘이 작품의 의도와 더 호응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 소설은 ‘창백한‘ 기억이 아닌, ‘희미한‘ 기억, ‘흐릿한‘ 기억을 다루고 있기에 그러하다. 동시에 그렇게 희미한 과거를 더듬으며 재구성하는 것은 화자(에츠코)의 불가피한 전략이기도 하다. 자살한 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기에.

‘전후 소설‘이면서 여성 문제를 다룬 ‘여성 소설‘로 읽히는데, 그 점을 문제 삼은 리뷰가 적은 것은 의외다. 이시구로의 인터뷰나 자료에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인데 이 작가의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처리방식은 충분히 주목거리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어머니와의 관계도 궁금한데, 이런 개인사는 인터뷰에 자세히 안 나올지도 모르겠다.

강의자료에도 넣은,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조각상 사진을 옮겨놓는다. 작품에서도 에츠코가 뜨악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보기에도 원폭과 무슨 상관이 있는 조각상인지 의아하다. 에츠코의 희미한 사적 기억은 이 공적인 기억에 대한 교정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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