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썅마이리딩(개썅+My reading) : 남들이 뭐라 건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책을 읽겠다. 단어의 원본은 ‘개썅마이웨이’(남들이 뭐라 건 내 갈 길을 가겠다).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에 가면 바닥에 앉아 그 자리에서 책을 읽는 손님들을 볼 수 있다. 책값 부담이 커지면서 서점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요즘은 나도 교모문고나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면 그 자리에 책 한 권을 읽는다. 물론 꼭 필요한 책은 산다. 식당에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요즘은 혼자서 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서 ‘1인 식당’이 생겨나고 있지만, 다른 손님들의 눈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밥 먹는 일이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식당 내부보다 손님이 더 많이 드나드는 대형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 읽는 일은 여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청결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하루에 엄청나게 많은 손님의 발자국이 남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책을 읽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 번쯤은 대형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원에서 혼자 책을 읽어본 적은 있는가. 공원도 책 읽기에 적합한 장소다. 요즘 같은 활동하기 좋은 날씨에 그늘이 적당히 져 있고, 너무 과하지 않은 햇살이 내려오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원래 사방에 책으로 둘러싼 밀폐된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을 선호했다. 개인 서재에서 책을 읽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요즘은 밖에서 혼자 책을 읽으려고 한다. 하루를 거의 독서실에서 지내다 보니 이제는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서재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었다. 서재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창문을 꼭 열어 둔다. 더운 날씨에 웬만하면 선풍기를 틀지 않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책을 읽어도 충분히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창문 밖에는 우리 집 건물과 맞은편 건물 사이의 경계선이 되는 좁은 면적의 공터가 있다.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공터라서 조용하다. 그런데 작년부터 공터에 찾는 고양이의 수가 늘어났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두세 마리를 무리 지어 공터에 와서 일광욕한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고요한 공터의 분위기를 흩뜨린다. 특히 밤에 고양이가 발정기 때 나는 울음소리를 들으면 마치 억울한 누명으로 원한의 통곡을 하는 노인의 울음소리가 떠올린다. 간혹 갓난아기 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밤중에 사람 우는 소리와 유사한 발정기 고양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다행히 수면 방해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새벽에 책을 읽기가 곤란하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안 들으려고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이런 독서를 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폰으로 음악을 많이 들어서 청각이 좋지 않은 바람에 이어폰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도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원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자동차 소리가 독서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지만, 집 근처에 나는 공사장 소리나 고양이 울음소리에 비하면 참을 만하다. 햇빛과 그늘 그리고 시원한 여름 바람이 소음을 막아주는 것 같다. 공원에 가면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그래서 책 읽으러 공원에 가면 내가 찜을 해둔 벤치 한두 군데만 찾는다. 2, 3주 정도 지속해서 공원을 찾게 되니 내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되더라. 공원에서 책 읽기의 큰 장점은 햇빛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날씨가 덥다고 무조건 선풍기,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방 안에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특히 나처럼 몸이 냉한 사람은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 적당량의 햇빛에 비타민 D가 있어서 최소 10분 이상 햇빛에 노출되면 좋다. 비타민 D는 천연 칼슘 보충제다. 비록 그 효과는 미미하지만, 운동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야외 노출 횟수가 적을수록 비타민 D가 결핍되기 쉽다. 비타민 D 결핍은 비만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공원에서 책 읽기를 방해하는 것도 있다. 어떻게 보면 공원에서 책 읽기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공원의 자연 상태가 좋다 보니 야산에서 볼 수 있는 벌레들을 만난다. 한 번은 주말에 여유롭게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다가 갑자기 책 가운데에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와서 크게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너무 놀라서 읽고 있던 책을 휙 던질 뻔했다. 길바닥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책에 몰입하는 데 방해한다. 벤치에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면 내 옷으로 들어갈까 봐 자꾸 시선이 개미한테로 향한다. 아직은 개미가 옷에 들어가서 피부를 무는 일은 없었다. 한 번은 책을 읽다가 목덜미에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손으로 목덜미를 만지니까 개미 한 마리가 잡혔다. 벌레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공원 독서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공원에도 종교를 전도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혼자 다니는 사람은 매우 접근하기 쉬운 상대다. 실제로 지난 주말에 기독교를 전도하는 목사가 책 읽는 나에게 다가와서 10분 동안 하느님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무교이지만, 질서 있게 전도를 진행하는 신자나 목사의 행동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의 개인 시간을 방해하고, 상대방 배려도 없이 교리를 강요하는 것은 반대한다. 특히 지하철과 시장에서 시끄럽게 ‘불신 지옥 예수 천당’을 외치면서 전도하거나 10분 이상이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하정듣(하느님의 말씀은 정해져 있고 넌 듣기만 하면 돼)’ 식 전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요즘은 세상이 흉흉해서 그런지 낯선 사람이 갑자기 접근하면 일단 겁부터 나기 마련이다.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공원 독서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한 달 동안 공원 독서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책 안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대가 될수록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은 특이한 부류로 취급될 것이다. 작년 독서 커뮤니티 게시판에 지하철 안에서 독서를 하다가 서너 명의 중학생들에게 방해를 받은 사연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욕감을 받았다. 이래서 책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겠나. 바쁜 시간에 틈틈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그들은 시간에 쫓기어 살았으니 개인 시간의 중요성을 알 리가 없다. 책 읽는 사람들을 무조건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시간 부자’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서 책을 읽는다. 이 불쌍한 SNS의 노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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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i 2015-07-08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딸아이랑 놀이터 갈때 책을 들고 갑니다. 그런데 정말 책 읽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져요 ~~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네요

cyrus 2015-07-09 17:4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공원에서 아이와 책 읽는 부모를 저도 본 적이 없어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집에서 스마트폰만 가지고 놀게 되니까 공원에 찾는 가족을 보는 일도 드물어졌어요.

북다이제스터 2015-07-08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처에 대학 캠퍼스 있다면, 그곳도 추천 드립니다.^^ 전 애용합니다. ^^

cyrus 2015-07-09 17:42   좋아요 0 | URL
제가 다녔던 대구대 캠퍼스가 땅이 넓고 광경이 좋은 데가 있습니다. 방학이 되면 캠퍼스 전체가 조용해서 벤치에 앉아서 책 읽기에 딱 좋습니다. 사람들 신경 안 써도 되고요. 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게 되니 학부생 때 술 먹고 놀았던 것이 후회됩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거든요.

해피북 2015-07-0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서 밥먹지 못하는 일인 추가요~~ㅋㅂㅋ,

cyrus님 벌레에 당황하셨다는 글에 큭큭 거리게됩니다 저도 벌레라면 식겁을 하지만, 공원에서 책읽는건 꼭해보고 싶어요 ^~^

cyrus 2015-07-09 17:44   좋아요 0 | URL
의외로 그늘이 있는 공원 벤치에 앉으면 시원해요.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쐴 일 없고, 전기세를 절약할 수 있어요. 진짜 벌레나 말 걸어오는 사람만 아니면 공원에서 혼자 책 읽는 것도 좋습니다.

간서치 2015-07-08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 없죠.. 책 읽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정말.. 걱정이에요.. 앞으로가..

cyrus 2015-07-09 17:47   좋아요 0 | URL
교실에서 고등학생이 책을 읽으면 공부 안 하고, 성적에 관심 없는 무사태평한 아이로 취급합니다. 그 얼마 안 되는 학생의 자유로운 개인 시간을 무시하는 거죠.

sslmo 2015-07-08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공원이랑 다른 의미의 공원이지만, 전 요즘 공원이라면 경기 들 일이 있어서요.전 공원에서 읽을 책을 따로 나누진 않아요.
요즘은 공원이든 어디든 혼자 앉아 있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아서 말이죠~(,.)

cyrus 2015-07-09 17: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보다 더 이상하게 봅니다. ㅎㅎㅎ 여전히 혼자 있는 사람들을 상당히 소심하고, 내향적인 사람으로 생각해요.


qualia 2015-07-08 22: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대형 서점에 가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많이 봅니다. 위에서 cyrus 님도 지적하(시다가 만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셨지만, 서점 바닥에서 완전 통로를 막다시피 하고, 그런 자신의 행동을 전혀 거리낌 없다는 듯이, 오히려 애써 피해가는 사람들을 자기 독서를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 쳐다보듯,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형 서점 바닥에 죽치고 앉아 독서하는 사람들 유형은 남자/여자 가릴 것 없이 한 70~80% 이상은 저런 행태를 보여줍니다. 과연 책 100권 읽어서 어따 쓰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어떤 분들은 아예 진열대 책들 위에 가방과 소지품을 올려놓은 채, 육중한 자기 윗몸까지 신간 서적들 위에 지탱하면서, 필요한 책을 찾는 다른 손님들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잘난 독서 삼매경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운전대만 잡으면 ‘개’가 된다고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한국 사람들은 서점에서 책만 잡으면 안하무인이 되나 봅니다. 과연 책 100권 읽어서 어따 쓰겠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

또 어떤 아주머니들께서는 책방으로 아이들 나들이 시켜주러 왔는지 자기 아이들이 막 여기저기 휘젖고 다니며 소란을 피워도 눈 하나 까딱 않고 책만 읽습니다(아저씨들도). 하도 정신 사나워서 누군가 아이한테 살짝 주의라도 줄라치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뉘 집 귀한 아들딸인데 이래라저래라 하느냐 하는 표정입니다. 도대체 이런 분들 책 100권 읽어서 어따 쓰겠다는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

독서 삼매경에 빠지면 이성/지성이 마비되는가 봅니다~ ^^

cyrus 2015-07-09 17: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을 막으면서까지 독서를 하면 꼴불견이에요. 지나가는 점원들이 말려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냥 듣기만 하고 무시해요. 저는 서점 벤치에 자리가 없으면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서서 책을 읽을 때도 지나가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횟수가 적은 구역을 찾습니다.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서점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5-07-0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의 사진 속 주인공의 배짱이 부러운 걸요.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가겠노라, 잖아요. ㅋ 저 같이 타인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흉내를 내지 못할 일이에요.
저는 침대에 앉아 스탠드 켜고 책 보는 편한 자세가 정해져 있어요. 등을 기대어 앉아야 편해요.
그런데 가끔 가방에 책 넣어 다닐 때가 있어요. 가방 속에 책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지요. ^^

sojung 2015-07-09 01:02   좋아요 0 | URL
중딩때 제 친구중에 아이큐가 140이 정도(?)되는 애가 있었는데.. 확실히 그런애들은 저같은 애랑은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더군요..
그때 워크맨이 유행해서 귀에 이어폰 꽂고 그냥 고래고래 노래부르며 지나가는 어떤 청년을 보면서 저는 `미쳤네 미쳤어` 그러면서 혀를 찼는데..그 친구는 `왠지.. 꿋꿋해...고집이 있어..멋지지 않아?` 그러더군요..
저런걸 보는 것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는거 같아요..

qualia 2015-07-09 01:47   좋아요 0 | URL
저 사진은 걍 연출하고 찍은 거 아닌가요???
‘개썅마이웨이/개썅마이리딩’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연출극 같은데요.
몰겠습니다. 실제 상황일지도~ㅋ

암튼 cyrus 님 덕분에
‘개썅마이웨이/개썅마이리딩’
‘하정듣’ 등등 따위
세태 풍자 재치 만발 신조어 많이 알게 되네요.
책 100권을 읽어도 요런 고급진 정보는 못 얻을 듣요~ㅋ

페크pek0501 2015-07-09 11:54   좋아요 0 | URL
1.happy^-^girl 님
제가 영광스럽게도 아이큐 140인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한 것입니까?
참고로 저는 아이큐가 높지 않아요. 낮을 거예요 아마...
그냥 제가 가지지 못한 점을 가졌다는 점에서 생각한 것이고
저에게도 저런 배짱이 있다면 세상 살기가 좀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따로 생각할 점이고요. 우선 그 배짱이 부러워요.
좋은 하루 되세요.^^


2. qualia 님
실제 상황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저는 실제 상황인 줄 알았어요.
신조어, 저도 배웁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cyrus 2015-07-09 17:55   좋아요 0 | URL
pek님 / 사실 저 사진은 아무 곳이나 공부를 하는 모범생을 희화화한 것입니다. 역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인 습관을 하나씩 가지고 있군요. 저도 가방에 읽을 책 한 권 없으면 허전해요.

cyrus 2015-07-09 17:57   좋아요 0 | URL
happy님 / 학창 시절에 꼭 쉬는 시간마다 크게 노래를 부르는 녀석 한 명씩 있었어요.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노래를 못 부르는 친구들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불렀다죠. ㅎㅎㅎ


cyrus 2015-07-09 18:01   좋아요 2 | URL
qualia님 / 저 사진이 어디서나 공부만 하는 모범생을 희화화한 것입니다. 연출한 사진일 겁니다. ‘개샹마이웨이’는 포털 사이트 게시판 댓글에 종종 볼 수 있고요, ‘하정듣’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요즘 준말로 된 신조어가 많잖아요. 인터넷에 보면 재치 넘치는 신조어가 널렸습니다. 비록 우리말 원칙에 어긋나는 것도 있지만, 진짜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

간서치 2015-07-0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학창시절에 책 읽다가 선생님께 책으로 머리 맞았던 기억 나네요.. 학교에서 배운지식 써먹지도 않는데.. ;;

Bluessom 2015-07-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공감합니다! 조용히 책장의 감촉을 느끼며 공원의 풀벌레 소리나 잔디에서 나오는 벌레의 발자국 소리도 듣고, 그때 부드러운 바람이 뒷목에서부터 돌아 책을 잡은 손까지 훑고 지나가면 저엉말 행복해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cyrus 2015-07-12 20:25   좋아요 0 | URL
Bluessom님도 공원 독서의 장점을 잘 아시는군요. 맞아요, 안 해 본 사람은 잘 몰라요. 공원 독서의 느낌을요. ^^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001-809] 비둘기

 

 

 

비둘기 하면 ‘평화의 상징’이란 이미지가 등식처럼 붙어 다닌다. 그런 긍정적 이미지 덕분에 비둘기는 오랫동안 호의호식했다. 하지만 이제 행복한 시절은 갔다.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이제 배설물,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나 건물에 피해를 주는 비둘기는 누구나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 포획할 수 있어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에서는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조나단 노엘은 소설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노년의 은행 경비병이다. 어느 날 문밖에 앉아있는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극도로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인다. 조나단은 좁은 방 안에서 지내야만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외톨이다. 조나단에게 비둘기는 평범한 새가 아니라 타자의 간섭이 차단된 자유로운 공간을 침범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온전히 이기적으로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상처 입은 마음을 자가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간이 길어지면 문제가 된다. 예컨대 《비둘기》의 조나단처럼 오랫동안 고립 기간이 지속한다면 정상적인 사회적응발달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과 같아진다. 타인과의 소통도 없이 ‘정지’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인간의 뇌는 마치 컴퓨터와 같이 모든 사건을 기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사건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망각이란 방법을 통하여 사라져 간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관하는 모습이 달라져 의식에 잡히지 않을 뿐이다. 인간의 뇌는 기억에 관련된 사실성만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포함된 감정들도 함께 기억한다. 그중에서 어떤 특정한 사건들, 특히 우리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낸 과거의 어떤 일은 고통의 감정과 함께 머릿속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비록 의식 속에서 사건 자체에 대한 사실성과 감정 자체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잠재의식 안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활동성 세균처럼 다른 부위까지 번져나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현재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일상적인 삶에 침범하는 트라우마가 된다.

 

조나단의 트라우마는 가족과의 이별과 사랑의 실패이다. 가족 구성원에 소속되지 못한 경험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감정의 덫이 되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며 비둘기 한 마리 앞에서 겁에 질린 모습에 더욱 자신감이 없어진다. 자신의 처지를 한심하게 여겨 스스로 ‘불쌍한 존재’라는 망상에 시달린다.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고독감에 익숙해진 조나단은 사회 안에서 스스로 규정지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행동으로 실행할 능력이 없는, ‘참아내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조나단의 심리 상태는 자신의 능력을 알 수 없는 수족관의 돌고래와 같다. 수조에 갇힌 돌고래처럼 사람들도 가정환경, 인간관계 등 수많은 수조라는 한계들로 개개인을 옭아맨다. 비둘기조차 일상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어버리는 위험한 고독이 심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살기 위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감정을 마비시켰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 척하는 사람이 더욱 외롭다.

 

일상은 별 생각이나 느낌 없이 익숙해진 채 반복된다. 사소한 감정의 상처에서 오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적당히 마비시킨 채 시간은 무심히 흐른다. 하지만 우리는 조나단의 삶을 기억해야 한다. 오래된 감정의 상처가 곪으면 한 사람의 내면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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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jung 2015-07-07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의 상처로 50살이 되도록 내면의 고독속에서 지내다가 어느날 찾아온 비둘기에게 공포를 느끼나 고독속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는 줄거리네요..
고독은.. 이겨낸다기 보다는..고독을 씹으면서..뭔가 내면의 강함을 다져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물론 이 책의 중년 주인공과는 다른 심정일 수도 있지만요..
조나단이 과거의 감옥에 갖혀 고독속에서 살아왔지만..그 고독 밖으로 자유를 찾아나가고 싶은 갈망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겠죠.. 그리고 그 계기가 비둘기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cyrus 2015-07-08 18:20   좋아요 0 | URL
저는 <비둘기>의 결말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나단이 비둘기가 있었던 자리에 돌아가면서 깨끗해진 상태를 보면서 끝이 이야기가 나잖아요. 다시 읽어봐도 결말이 조나단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된 건지 아니면 여전히 고통에서 못 벗어난 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sslmo 2015-07-0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문이요~^^
리뷰 밑에 죽기전에 읽어야할 책1001 프로젝트는 말이죠.
누구의 프로젝트인가요?
그리고 리뷰 밑에 저런 박스태그가 보이면,
`죽기전에 읽어야할 책`인가요?@@

해피북 2015-07-08 16:23   좋아요 0 | URL
저도 양철나무꾼님 말씀처럼 그게 궁금했어요 어젠 죽기전에 읽어야할 1001책에서 목차도 훑어보기도 했는데 말이죠 ㅋㅂㅋ,,

cyrus 2015-07-08 18:23   좋아요 0 | URL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에 소개된 문학작품들을 읽으려고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에 나오는 책들을 무조건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 독서 분야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계획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찌 보면 단순무식한 독서죠. ㅎㅎㅎ
 
반 고흐 Art Classic 2
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줄리오 카를로 아르간 지음, 이경아 옮김 / 예경 / 200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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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살았지만, 자신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고흐의 소원은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그림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1888년 아를에 있는 노란 집에 네 개의 방을 빌렸고, 유일하게 고갱만이 고흐의 초대에 응답했다. 고갱이 고흐의 화가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봤을 거라고는 당시 동료 화가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이때 당시 고갱은 고흐보다 평판이 좋은 화가였다. 고갱은 동료화가들과 함께 퐁타방 파(Ecole de Pont-Aven)’라는 화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브르타뉴에 있는 작은 마을 퐁타방에 고흐를 중심으로 한 청년화가들이 모여 기존에 유행했던 표현을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퐁타방 파는 인상주의와 점묘주의를 거부하고, 단순한 형태의 화면과 검은 윤곽선을 강조하는 종합주의를 강조했다. 이들의 그림은 상징주의와 유사한 관념적 경향이 보였다. 동생 테오를 통해서 프랑스의 예술 동향을 접했던 고흐가 고갱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흐는 고갱을 선망의 대상으로 느꼈고, 그의 조언을 참고할 생각이었다. 둘이 함께 지내는 동안, 고흐는 고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반 고흐  아를의 원형 경기장의 관람객들」 (1888년)

 

 

 

 

 

폴 고갱 설교 후의 환영(천사와 싸우는 야곱)」 (1888년)

 

 

 

1888년에 고흐가 그린 아를의 원형 경기장의 관람객들은 고갱의 기법을 따른 작품이다. 이 그림이 제작되기 전에 고갱은 설교 후의 환영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구도가 상당히 흡사하다. 두 작품 다 화가의 시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고흐는 수많은 관람객을 세부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스케치를 하듯이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검은 윤곽선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고흐는 고갱의 종합주의 기법을 빌렸을 뿐, 소재 선정에서는 고갱과 다른 노선을 보였다. 고갱은 설교 후의 환영에서 천사와 야곱이 싸우는 환영을 지켜보거나 기도하는 브르타뉴 여자들을 그렸지만, 고흐는 투우 경기가 진행되는 시끌벅적한 경기장 풍경을 그렸다. 이렇듯 두 사람의 관심은 서로 달랐다. 고갱은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중시했다. 모델의 중요성을 외면했다. 반면, 고흐는 고갱처럼 상상해서 그리는 것에 반대했다. 고흐가 생각하는 화가란 모델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고흐는 관념성에 치우친 그림을 그리는 종합주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고흐는 고갱의 표현에 불만을 드러냈고, 자존심이 상한 고갱은 노란 집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둘의 예술적 견해차로 인해 두 달 만에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고갱을 향한 고흐의 열등감과 질두심도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다). 고흐는 분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끔찍한 자해를 일으켰다.

 

아무리 극찬의 평가라고 해도 고흐를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치켜세운다면 고흐가 면도칼로 당장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생전에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에 분류되는 것을 싫어했다. 예경 Art Classic 두 번째 시리즈인 고흐는 고흐가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고흐와 친하게 지냈으며 상징주의 그림을 그렸던 에밀 베르나르도 고흐의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센 고갱에 비하면 에밀은 넓은 아량을 가진 좋은 화가였다. 에밀은 고흐가 잘되기 위해서 친분이 있던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라는 사람에게 고흐에 관한 기사를 청탁했다. 오리에는 고흐의 작품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리에는 상징주의 예술가들을 지지하는 비평가였다. 고흐를 독창성 있는 화가로 주목했으나 그를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오리에의 글 덕분에 고흐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고흐의 그림이 예술계가 공인하는 전시회에 소개되었다. 그렇지만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된 사실을 알게 되자, 오리에와 에밀에게 편지를 보내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고흐는 인상주의의 영향력이 시들어가고, 동시에 상징주의와 점묘주의가 알려지기 직전인 과도기에 활동했어도 유행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고흐를 인상주의라고 분류하고 있으나 사실 고흐는 특정 화파에 속할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고흐의 그림은 추상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의 그림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하고 선한 소재들로 가득하다. 밭을 가는 농부, 해바라기, 정원, 카페, 집배원 룰랭 씨 가족 사 등 고흐는 모든 것들을 단순한 재현에만 머물지 않는다. 평범함과 사실성의 각질을 벗긴 상태에 색채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붓으로 바른다. 인상주의자들처럼 찰나의 빛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았으며 상징주의자들처럼 현실에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고흐는 눈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미적 포장을 과감히 거부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고흐의 눈은 그저 순수하기만 했다.

 

 

 

 

 

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의 고흐의 생애와 예술과 줄리오 카를로 아르간의 예술과 부조리는 고흐의 삶과 회화 스타일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 글이다. 하지만 고흐의 잘린 귀를 오른쪽이라고 적은 오류는 옥에 티다. (49, 162, 222)

 

8쪽에 독일의 작가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의 책이 짧게 언급된다. 1921년에 출간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다. 국내 번역본 제목은 반 고흐, 지상에 유배된 천사(책세상, 1990)이다.

 

알베르 오리에가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 지에 주장한 내용과 정반대였다. 오베르는 반 고흐가 (중략) 상징주의자라고 주장했다. (70) 오베르오리에의 오자다.

 

(고흐)는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가이자 헌옷 철학을 설파했던 토마스 칼라일의 열렬한 독자였다.” (80쪽) 킬라일1836년에 Sartor Resartus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국내에서는 의상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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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jung 2015-07-06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글을 보면 고흐는 고집이 정말 센 사람 같네요..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한것 같고.. 고갱과는 많이 다른 듯 하네요

cyrus 2015-07-07 18: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라서 사람 관계가 서툴렀죠. 그런데 고갱도 고집이 셉니다. ㅎㅎㅎ

에이바 2015-07-06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고흐의 그림이 뿜어내는 진솔한 생명력은 어떤 사조로도 분류될 수 없어요. 고흐의 그림은 반드시 육안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이 익숙하다고 느꼈던 자신을 반성할 강렬함을 선사하니까요..

cyrus 2015-07-07 18:33   좋아요 0 | URL
2013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고흐 전을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직접 고흐의 그림을 보게 되니까 책에서 봤던 것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고흐 특유의 굵직한 붓 터치를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후즈음 2015-07-0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고...그날 저는 좀 눈물이 났습니다. 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고흐의 그림이라니.(우리 나라에서 한 고흐전을 한번도 못 보고 파리가서 봤습니다. 그것도 작품 몇개 ㅠㅠ)
무엇보다 그가 참 쓸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 났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쓸쓸해 지더라구요..

cyrus 2015-07-07 18:35   좋아요 0 | URL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오후즈음님이 오르세에서 보신 그림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

오후즈음 2015-07-07 18:47   좋아요 0 | URL
유명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입니다. 그 그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정말 놀라워 하며 봤구요. 사실은 그림이 엄청 작더라구요..그것도 놀랐네요 ㅋㅋ

cyrus 2015-07-07 18:49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그림을 보셨군요. 직접 보고 싶은 고흐 그림 중 하나입니다. ^^

[그장소] 2015-07-0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하는 것이온데, 랄까...요? (저 그림을 그림이라고 왜 말을 못해!)상징..이란?! ^^ 어디를 봐서 상징주의 라고 느꼈던? 건지..명료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너무 잘 보고 갑니다..

cyrus 2015-07-07 18:37   좋아요 0 | URL
미술 평론가들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나름대로 좋게 포장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간혹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해석한 평론가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기도 해요. ^^;;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5
토마스 다비트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반 고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 (1889년)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 누구나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른 화가가 반 고흐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 반 고흐가 자른 귀가 어느 쪽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해 소동 이후에 그린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자. 그림 속 반 고흐는 붕대를 머리에 두른 상태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반 고흐의 오른쪽 귀가 잘려나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잘려나간 귀는 왼쪽이다.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거울상은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을 깜빡 잊은 채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보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종종 잘린 귀의 위치를 착각한다.

 

이제 반 고흐의 잘린 귀가 어느 쪽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반 고흐를 소개한 책을 읽을 때 저자와 역자가 이 기본적인 사실을 제대로 아는지 꼼꼼히 확인해보자. 의외로 몇몇 책들이 반 고흐의 귀를 잘못 알려주고 있다. 내 손안의 미술관 시리즈 5권인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서양미술 사학자 노성두 씨가 옮겼다. 역자는 이주헌 씨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미술을 알리는 데 노력하는 서양미술 사학자이며 이 책을 만든 출판사는 ‘RHK(랜덤하우스코리아)’. 독자는 역자와 출판사 이름만 믿고, ‘내 손안의 미술관시리즈를 신뢰한다.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판형에, 200쪽 넘지 않는 분량은 청소년 독자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반 고흐라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고 싶거나 그림을 공부하려는 독자에게 입문용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흐의 연보(188)에 반 고흐가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적혀 있다. 잘린 귀를 잘못 소개한 점은 독자에게 틀린 내용을 알리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다비트는 미술사를 전공한 방송작가이다. 그래서 반 고흐의 생애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내용으로 풀어썼다. 첫 장부터 반 고흐가 보리밭에서 자살하는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에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자살하기 직전의 삶을 소개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이 다 그렇듯이 다비트의 책도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토대로 화가의 삶을 추적하고, 복원한다. 반 고흐라는 한 사람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거주했던 지역의 배경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고흐의 그림들은 시대별로 크게 네덜란드 시절파리 시절아를 시절로 구분한다. 고흐는 한 지역에서 정착하기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상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찾아다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는 시대에 유행하는 미술사조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반 고흐가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어떤 대상을 선호했는지, 또 그 대상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지 그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반 고흐를 알기 위한 좋은 공부 방법이다.

 

차례

 

1.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쏜 화가

2. 아를의 다리
3. 아를과 프로방스
4. 고흐의 어린 시절
5. 아를에 도착한 고흐
6. 다리 위에서 단숨에 그림을 다섯 점이나 그린 고흐
7. 화랑 점원이 된 고흐
8. 기독교에 귀의한 고흐
9. 고흐의 노란 집
10. 농부 화가가 된 고흐
11. 파리에서 밝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고흐
12. 정신병자가 된 고흐

 

그런데 다비트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연대기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1장이 반 고흐가 자살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런데 2장과 3장은 갑자기 반 고흐가 아를에서 머물었던 시절을 소개한다. 4장에 어린 고흐가 등장한다. 아를 시절은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 지방인 아를에 지내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으로 그림들을 제작했던 최고의 시기. 원숙기에 해당하는 시절을 앞부분에 배치한 저자의 서술이 다소 이른 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술사 전공자답지 않게 고흐의 창작 시기를 무시하면서 뒤죽박죽 소개했다. 9장은 1888년 반 고흐가 폴 고갱노란 집에서 함께 살았던 시절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다가 10장에서는 1883년 네덜란드에서 지낸 시절로 이야기가 엉뚱하게 과거로 이어진다. 이 시기에 젊은 반 고흐는 농촌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반 고흐의 청년 시절을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소개한 저자의 서술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 정도면 고흐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자격 미달이다.

 

저자가 과연 반 고흐를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문이다. 고흐의 편지를 인용해서 이를 근거로 화가의 미술 세계를 조명하는 방식은 좋지만, 일부 문장만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를 공부하는 독자들도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일반적으로 책과 미디어에서는 반 고흐를 영혼의 내면까지 그려낸 화가라고 소개한다. 이 손발이 오글거리는 문구가 화가가 죽은 뒤 수십 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반 고흐는 죽고 나서야 미술평론가와 미디어의 후광에 힘입어 미치광이 화가에서 천재 화가’로 급부상했. 반 고흐가 특정 대상에 관한 느낌마저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것은 맞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눈앞에 보이는 대상의 실체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즉 대상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고 난 뒤에 그것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대상의 실체를 무시한 채 온전히 화가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은 추상화에 가깝다. 고흐는 추상화가로 볼 수 없다. 사실 반 고흐는 인간의 눈보다 감정을 더 중시하는 상징주의를 눈 여겨 봤을 뿐,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자신의 눈앞에 모델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반 고흐의 생각을 고갱은 부정적으로 봤다. 고갱은 반 고흐와는 반대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상반된 인식 때문에 두 사람 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감추거나 속이지 않았다. 눈과 머리와 몸이 느끼면 느끼는 대로 솔직한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붓을 움직였다. 고흐는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다른 화가 같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겠지만, 고흐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눈에 보이는 것은 가식과 허상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진실이야말로 화가가 참으로 그려야 할 대상이라고 굳게 믿었다. (107)

 

 

그런데 저자는 반 고흐를 눈에 보이는 것을 가식과 허상으로 여기는 화가로 묘사했다. 반 고흐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문장이 멋있다기보다는 그저 우습기만 하다. 저자가 이렇게 표현한 건지 아니면 역자 노성두 씨가 나름대로 멋스럽게 꾸며서 우리말로 옮긴 건지 번역본을 원서와 같이 대조해보지는 않았으나 고흐를 이렇게 과대 포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107쪽에 소개된 반 고흐의 모습은 분명 내가 아는 반 고흐가 아니다. 엉뚱하게도 저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한 '고갱'을 소개했다.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다행히 품절이다. 분량이 얇다고 이 책을 고르지 마시길. 딱히 영양가 있는 책은 아니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이 책은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을 모으고 싶어도 이 책만큼은 돈 주면서 사고 싶지 않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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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흐의 귀
    from 새빨간 활 2015-07-07 11:28 
    고흐가 스스로 자른 귀는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어느 날, 고흐는 광기에 휩싸인 채 칼로 귀를 도려낸다. 귀를 도려낸 것으로 보아 “ 환청 ” 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위 그림은 그가 귀를 도려내고 난 후에 그림 자화상‘이다.
 
 
AgalmA 2015-07-03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레를 흠모해 <씨뿌리는 사람> 등 여러 농촌 풍경을 뎃생하여 그린 것이나, 그의 유명한 모든 그림들(자화상, 정물, 풍경)은 다 뎃생에 기반한 그림들이죠. `영혼의 내면`, `상징주의` 당치 않습니다. 문학 평론 만큼이나 회화 평론도 너무 주관적/지위적 포장의 극대화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cyrus 2015-07-04 21:13   좋아요 0 | URL
고흐를 잘 아시네요. 고흐가 한때 밀레를 흠모했고, 농부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

2015-07-04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7-04 21:16   좋아요 0 | URL
오자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다음부턴 ‘고흐’라고 써야겠어요. 저도 원래 안 좋은 책은 안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곰발님의 ‘주례사 서평’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 악평을 써보고 싶었어요. 책의 단점을 독자에게 타당성 있게 설명해주는 서평이 많이 있어야 해요. ^^

페크pek0501 2015-07-0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정보를 알려 주는 글입니다. 저는 시공사에서 나온 디스커버리 총서로 고흐의 책을 읽었는데 지금 책장을 찾아보니 눈에 띄지 않네요. 붕대를 감은 모습을 제대로 썼는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문고판 형의 작은 책인데, 책 찾기도 쉽지 않네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의 글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글도 잘 쓰는구나 했어요. 어떤 문장이 아주 좋았거든요.

cyrus 2015-07-04 21:22   좋아요 0 | URL
저도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 나온 고흐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고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런지 알라딘에 검색하면 나오는 고흐 책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해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고흐의 편지를 읽다가 좋은 문장이 있으면 메모를 했어요. 사실 고흐는 편지를 쓸 때 자신이 읽은 책이나 성경의 문장을 인용을 많이 했어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5-07-04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비평이 마음에 드네요~ㅎㅎ
전 우연찮게 방금 고갱을 소재로 한 - 하지만 실제적인 차이는 꽤 있는-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요, 읽으면서 고흐와 고갱을 잠깐 생각했었죠.
예술가들의 삶이란...항상 생각해 보아도 경이로워요.

cyrus 2015-07-04 21:28   좋아요 0 | URL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한 책도 의외로 재미있어요. 그림에 관한 일화를 보는 것도 흥미롭고, 특히 예술가들의 연애 이야기는 위인전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이에요. 고갱도 알고 보면 고흐만큼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보면, 어느 그림 보니 고흐는 오른손잡읻군요. 알기는 쉽잖아요. 팔레트를 쥔 손과 붓을 든 손을 보면 아니깐 말이죠. 그가 오른손잡이이므로 당연히 왼쪽 귀를 자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쪽 귀를 자를 수는 없거든요. 자해를 할 때 사람들은 평소 익숙한 손에 칼을 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모르 잘린 귀는 오른쪽 귀...

cyrus 2015-07-06 20:29   좋아요 0 | URL
고흐가 오른손잡이인 것 맞습니다만 마지막에 잘린 귀가 오른쪽이라는 말씀... 실수로 잘못 쓰신 것 아닙니까? ^^;;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7 1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그렇군요. 이거이거... 이상하게 댓글만 달면 오타가...
제가 댓글을 생각없이 빨리 써서 그렇습니다

cyrus 2015-07-07 18:38   좋아요 0 | URL
댓글을 쓰다 보면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알라딘 서재에서 고흐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잘린 귀를 잘못 쓴 적 있었는데요. ㅎㅎㅎ
 
반 고흐 : 빛을 담은 영혼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Art Book 2
안나 토르테롤로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마로니에북스 출판사에서 기획한 화가 시리즈는 총 세 개나 있다. <Taschen 베이직 아트>,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그리고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 Art Book 시리즈는 문고본보다 조금 더 큰 아담한 크기의 판형으로 되어 있다. 분량은 얇아도 내용은 제법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덜 알려진 화가의 그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은 대표작 소개에만 치중하는 미술책과 차별화를 두고 있다. 마치 도슨트가 직접 설명하듯이 그림에 있는 표현 기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또 화가가 활동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종반부에 이르면 화가가 후대에 끼친 미술사적 영향을 설명한다.

 

활자와 그림 크기가 작아서 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에 불만이 있겠지만, 고흐를 공부하는 독자라면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를 그냥 건너뛰면 안 된다. 미술책이 화가를 독자에게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독서도 나름대로 공부의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화가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두 권의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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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7-04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리뷰로는 반고흐를 공부하기 부족한 책에 대해 바로 다음 리뷰로는 좋은 책을 소개해주시니 정말 좋아요 ㅎㅎ

cyrus 2015-07-04 21:30   좋아요 0 | URL
당분간은 고흐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