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썅마이리딩(개썅+My reading) : 남들이 뭐라 건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책을 읽겠다. 단어의 원본은 ‘개썅마이웨이’(남들이 뭐라 건 내 갈 길을 가겠다).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에 가면 바닥에 앉아 그 자리에서 책을 읽는 손님들을 볼 수 있다. 책값 부담이 커지면서 서점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요즘은 나도 교모문고나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면 그 자리에 책 한 권을 읽는다. 물론 꼭 필요한 책은 산다. 식당에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요즘은 혼자서 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서 ‘1인 식당’이 생겨나고 있지만, 다른 손님들의 눈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밥 먹는 일이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식당 내부보다 손님이 더 많이 드나드는 대형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 읽는 일은 여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청결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하루에 엄청나게 많은 손님의 발자국이 남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책을 읽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 번쯤은 대형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원에서 혼자 책을 읽어본 적은 있는가. 공원도 책 읽기에 적합한 장소다. 요즘 같은 활동하기 좋은 날씨에 그늘이 적당히 져 있고, 너무 과하지 않은 햇살이 내려오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원래 사방에 책으로 둘러싼 밀폐된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을 선호했다. 개인 서재에서 책을 읽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요즘은 밖에서 혼자 책을 읽으려고 한다. 하루를 거의 독서실에서 지내다 보니 이제는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서재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었다. 서재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창문을 꼭 열어 둔다. 더운 날씨에 웬만하면 선풍기를 틀지 않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책을 읽어도 충분히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창문 밖에는 우리 집 건물과 맞은편 건물 사이의 경계선이 되는 좁은 면적의 공터가 있다.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공터라서 조용하다. 그런데 작년부터 공터에 찾는 고양이의 수가 늘어났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두세 마리를 무리 지어 공터에 와서 일광욕한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고요한 공터의 분위기를 흩뜨린다. 특히 밤에 고양이가 발정기 때 나는 울음소리를 들으면 마치 억울한 누명으로 원한의 통곡을 하는 노인의 울음소리가 떠올린다. 간혹 갓난아기 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밤중에 사람 우는 소리와 유사한 발정기 고양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다행히 수면 방해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새벽에 책을 읽기가 곤란하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안 들으려고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이런 독서를 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폰으로 음악을 많이 들어서 청각이 좋지 않은 바람에 이어폰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도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원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자동차 소리가 독서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지만, 집 근처에 나는 공사장 소리나 고양이 울음소리에 비하면 참을 만하다. 햇빛과 그늘 그리고 시원한 여름 바람이 소음을 막아주는 것 같다. 공원에 가면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그래서 책 읽으러 공원에 가면 내가 찜을 해둔 벤치 한두 군데만 찾는다. 2, 3주 정도 지속해서 공원을 찾게 되니 내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되더라. 공원에서 책 읽기의 큰 장점은 햇빛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날씨가 덥다고 무조건 선풍기,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방 안에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특히 나처럼 몸이 냉한 사람은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 적당량의 햇빛에 비타민 D가 있어서 최소 10분 이상 햇빛에 노출되면 좋다. 비타민 D는 천연 칼슘 보충제다. 비록 그 효과는 미미하지만, 운동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야외 노출 횟수가 적을수록 비타민 D가 결핍되기 쉽다. 비타민 D 결핍은 비만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공원에서 책 읽기를 방해하는 것도 있다. 어떻게 보면 공원에서 책 읽기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공원의 자연 상태가 좋다 보니 야산에서 볼 수 있는 벌레들을 만난다. 한 번은 주말에 여유롭게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다가 갑자기 책 가운데에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와서 크게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너무 놀라서 읽고 있던 책을 휙 던질 뻔했다. 길바닥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책에 몰입하는 데 방해한다. 벤치에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면 내 옷으로 들어갈까 봐 자꾸 시선이 개미한테로 향한다. 아직은 개미가 옷에 들어가서 피부를 무는 일은 없었다. 한 번은 책을 읽다가 목덜미에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손으로 목덜미를 만지니까 개미 한 마리가 잡혔다. 벌레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공원 독서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공원에도 종교를 전도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혼자 다니는 사람은 매우 접근하기 쉬운 상대다. 실제로 지난 주말에 기독교를 전도하는 목사가 책 읽는 나에게 다가와서 10분 동안 하느님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무교이지만, 질서 있게 전도를 진행하는 신자나 목사의 행동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의 개인 시간을 방해하고, 상대방 배려도 없이 교리를 강요하는 것은 반대한다. 특히 지하철과 시장에서 시끄럽게 ‘불신 지옥 예수 천당’을 외치면서 전도하거나 10분 이상이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하정듣(하느님의 말씀은 정해져 있고 넌 듣기만 하면 돼)’ 식 전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요즘은 세상이 흉흉해서 그런지 낯선 사람이 갑자기 접근하면 일단 겁부터 나기 마련이다.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공원 독서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한 달 동안 공원 독서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책 안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대가 될수록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은 특이한 부류로 취급될 것이다. 작년 독서 커뮤니티 게시판에 지하철 안에서 독서를 하다가 서너 명의 중학생들에게 방해를 받은 사연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욕감을 받았다. 이래서 책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겠나. 바쁜 시간에 틈틈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그들은 시간에 쫓기어 살았으니 개인 시간의 중요성을 알 리가 없다. 책 읽는 사람들을 무조건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시간 부자’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서 책을 읽는다. 이 불쌍한 SNS의 노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