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Art Classic 2
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줄리오 카를로 아르간 지음, 이경아 옮김 / 예경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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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살았지만, 자신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고흐의 소원은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그림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1888년 아를에 있는 노란 집에 네 개의 방을 빌렸고, 유일하게 고갱만이 고흐의 초대에 응답했다. 고갱이 고흐의 화가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봤을 거라고는 당시 동료 화가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이때 당시 고갱은 고흐보다 평판이 좋은 화가였다. 고갱은 동료화가들과 함께 퐁타방 파(Ecole de Pont-Aven)’라는 화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브르타뉴에 있는 작은 마을 퐁타방에 고흐를 중심으로 한 청년화가들이 모여 기존에 유행했던 표현을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퐁타방 파는 인상주의와 점묘주의를 거부하고, 단순한 형태의 화면과 검은 윤곽선을 강조하는 종합주의를 강조했다. 이들의 그림은 상징주의와 유사한 관념적 경향이 보였다. 동생 테오를 통해서 프랑스의 예술 동향을 접했던 고흐가 고갱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흐는 고갱을 선망의 대상으로 느꼈고, 그의 조언을 참고할 생각이었다. 둘이 함께 지내는 동안, 고흐는 고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반 고흐  아를의 원형 경기장의 관람객들」 (1888년)

 

 

 

 

 

폴 고갱 설교 후의 환영(천사와 싸우는 야곱)」 (1888년)

 

 

 

1888년에 고흐가 그린 아를의 원형 경기장의 관람객들은 고갱의 기법을 따른 작품이다. 이 그림이 제작되기 전에 고갱은 설교 후의 환영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구도가 상당히 흡사하다. 두 작품 다 화가의 시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고흐는 수많은 관람객을 세부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스케치를 하듯이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검은 윤곽선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고흐는 고갱의 종합주의 기법을 빌렸을 뿐, 소재 선정에서는 고갱과 다른 노선을 보였다. 고갱은 설교 후의 환영에서 천사와 야곱이 싸우는 환영을 지켜보거나 기도하는 브르타뉴 여자들을 그렸지만, 고흐는 투우 경기가 진행되는 시끌벅적한 경기장 풍경을 그렸다. 이렇듯 두 사람의 관심은 서로 달랐다. 고갱은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중시했다. 모델의 중요성을 외면했다. 반면, 고흐는 고갱처럼 상상해서 그리는 것에 반대했다. 고흐가 생각하는 화가란 모델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고흐는 관념성에 치우친 그림을 그리는 종합주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고흐는 고갱의 표현에 불만을 드러냈고, 자존심이 상한 고갱은 노란 집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둘의 예술적 견해차로 인해 두 달 만에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고갱을 향한 고흐의 열등감과 질두심도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다). 고흐는 분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끔찍한 자해를 일으켰다.

 

아무리 극찬의 평가라고 해도 고흐를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치켜세운다면 고흐가 면도칼로 당장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생전에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에 분류되는 것을 싫어했다. 예경 Art Classic 두 번째 시리즈인 고흐는 고흐가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고흐와 친하게 지냈으며 상징주의 그림을 그렸던 에밀 베르나르도 고흐의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센 고갱에 비하면 에밀은 넓은 아량을 가진 좋은 화가였다. 에밀은 고흐가 잘되기 위해서 친분이 있던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라는 사람에게 고흐에 관한 기사를 청탁했다. 오리에는 고흐의 작품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리에는 상징주의 예술가들을 지지하는 비평가였다. 고흐를 독창성 있는 화가로 주목했으나 그를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오리에의 글 덕분에 고흐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고흐의 그림이 예술계가 공인하는 전시회에 소개되었다. 그렇지만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된 사실을 알게 되자, 오리에와 에밀에게 편지를 보내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고흐는 인상주의의 영향력이 시들어가고, 동시에 상징주의와 점묘주의가 알려지기 직전인 과도기에 활동했어도 유행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고흐를 인상주의라고 분류하고 있으나 사실 고흐는 특정 화파에 속할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고흐의 그림은 추상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의 그림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하고 선한 소재들로 가득하다. 밭을 가는 농부, 해바라기, 정원, 카페, 집배원 룰랭 씨 가족 사 등 고흐는 모든 것들을 단순한 재현에만 머물지 않는다. 평범함과 사실성의 각질을 벗긴 상태에 색채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붓으로 바른다. 인상주의자들처럼 찰나의 빛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았으며 상징주의자들처럼 현실에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고흐는 눈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미적 포장을 과감히 거부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고흐의 눈은 그저 순수하기만 했다.

 

 

 

 

 

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의 고흐의 생애와 예술과 줄리오 카를로 아르간의 예술과 부조리는 고흐의 삶과 회화 스타일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 글이다. 하지만 고흐의 잘린 귀를 오른쪽이라고 적은 오류는 옥에 티다. (49, 162, 222)

 

8쪽에 독일의 작가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의 책이 짧게 언급된다. 1921년에 출간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다. 국내 번역본 제목은 반 고흐, 지상에 유배된 천사(책세상, 1990)이다.

 

알베르 오리에가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 지에 주장한 내용과 정반대였다. 오베르는 반 고흐가 (중략) 상징주의자라고 주장했다. (70) 오베르오리에의 오자다.

 

(고흐)는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가이자 헌옷 철학을 설파했던 토마스 칼라일의 열렬한 독자였다.” (80쪽) 킬라일1836년에 Sartor Resartus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국내에서는 의상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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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jung 2015-07-06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글을 보면 고흐는 고집이 정말 센 사람 같네요..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한것 같고.. 고갱과는 많이 다른 듯 하네요

cyrus 2015-07-07 18: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라서 사람 관계가 서툴렀죠. 그런데 고갱도 고집이 셉니다. ㅎㅎㅎ

에이바 2015-07-06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고흐의 그림이 뿜어내는 진솔한 생명력은 어떤 사조로도 분류될 수 없어요. 고흐의 그림은 반드시 육안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이 익숙하다고 느꼈던 자신을 반성할 강렬함을 선사하니까요..

cyrus 2015-07-07 18:33   좋아요 0 | URL
2013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고흐 전을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직접 고흐의 그림을 보게 되니까 책에서 봤던 것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고흐 특유의 굵직한 붓 터치를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후즈음 2015-07-0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고...그날 저는 좀 눈물이 났습니다. 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고흐의 그림이라니.(우리 나라에서 한 고흐전을 한번도 못 보고 파리가서 봤습니다. 그것도 작품 몇개 ㅠㅠ)
무엇보다 그가 참 쓸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 났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쓸쓸해 지더라구요..

cyrus 2015-07-07 18:35   좋아요 0 | URL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오후즈음님이 오르세에서 보신 그림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

오후즈음 2015-07-07 18:47   좋아요 0 | URL
유명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입니다. 그 그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정말 놀라워 하며 봤구요. 사실은 그림이 엄청 작더라구요..그것도 놀랐네요 ㅋㅋ

cyrus 2015-07-07 18:49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그림을 보셨군요. 직접 보고 싶은 고흐 그림 중 하나입니다. ^^

[그장소] 2015-07-0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하는 것이온데, 랄까...요? (저 그림을 그림이라고 왜 말을 못해!)상징..이란?! ^^ 어디를 봐서 상징주의 라고 느꼈던? 건지..명료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너무 잘 보고 갑니다..

cyrus 2015-07-07 18:37   좋아요 0 | URL
미술 평론가들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나름대로 좋게 포장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간혹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해석한 평론가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