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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 ㅣ 내 손안의 미술관 5
토마스 다비트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반 고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 (1889년)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 누구나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른 화가가 반 고흐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 반 고흐가 자른 귀가 어느 쪽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해 소동 이후에 그린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자. 그림 속 반 고흐는 붕대를 머리에 두른 상태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반 고흐의 오른쪽 귀가 잘려나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잘려나간 귀는 왼쪽이다.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거울상은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을 깜빡 잊은 채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보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종종 잘린 귀의 위치를 착각한다.
이제 반 고흐의 잘린 귀가 어느 쪽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반 고흐를 소개한 책을 읽을 때 저자와 역자가 이 기본적인 사실을 제대로 아는지 꼼꼼히 확인해보자. 의외로 몇몇 책들이 반 고흐의 귀를 잘못 알려주고 있다. ‘내 손안의 미술관’ 시리즈 5권인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서양미술 사학자 노성두 씨가 옮겼다. 역자는 이주헌 씨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미술을 알리는 데 노력하는 서양미술 사학자이며 이 책을 만든 출판사는 ‘RHK(랜덤하우스코리아)’다. 독자는 역자와 출판사 이름만 믿고, ‘내 손안의 미술관’ 시리즈를 신뢰한다.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판형에, 200쪽 넘지 않는 분량은 청소년 독자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반 고흐라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고 싶거나 그림을 공부하려는 독자에게 입문용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반 고흐의 연보(188쪽)에 반 고흐가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적혀 있다. 잘린 귀를 잘못 소개한 점은 독자에게 틀린 내용을 알리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다비트는 미술사를 전공한 방송작가이다. 그래서 반 고흐의 생애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내용으로 풀어썼다. 첫 장부터 반 고흐가 보리밭에서 자살하는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에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자살하기 직전의 삶을 소개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이 다 그렇듯이 다비트의 책도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토대로 화가의 삶을 추적하고, 복원한다. 반 고흐라는 한 사람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거주했던 지역의 배경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반 고흐의 그림들은 시대별로 크게 ‘네덜란드 시절→파리 시절→아를 시절’로 구분한다. 반 고흐는 한 지역에서 정착하기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상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찾아다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는 시대에 유행하는 미술사조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반 고흐가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어떤 대상을 선호했는지, 또 그 대상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지 그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반 고흐를 알기 위한 좋은 공부 방법이다.
※ 차례
1.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쏜 화가
2. 아를의 다리
3. 아를과 프로방스
4. 고흐의 어린 시절
5. 아를에 도착한 고흐
6. 다리 위에서 단숨에 그림을 다섯 점이나 그린 고흐
7. 화랑 점원이 된 고흐
8. 기독교에 귀의한 고흐
9. 고흐의 노란 집
10. 농부 화가가 된 고흐
11. 파리에서 밝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고흐
12. 정신병자가 된 고흐
그런데 다비트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연대기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1장이 반 고흐가 자살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런데 2장과 3장은 갑자기 반 고흐가 아를에서 머물었던 시절을 소개한다. 4장에 어린 고흐가 등장한다. 아를 시절은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 지방인 아를에 지내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으로 그림들을 제작했던 최고의 시기다. 원숙기에 해당하는 시절을 앞부분에 배치한 저자의 서술이 다소 이른 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술사 전공자답지 않게 고흐의 창작 시기를 무시하면서 뒤죽박죽 소개했다. 9장은 1888년 반 고흐가 폴 고갱과 ‘노란 집’에서 함께 살았던 시절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다가 10장에서는 1883년 네덜란드에서 지낸 시절로 이야기가 엉뚱하게 과거로 이어진다. 이 시기에 젊은 반 고흐는 ‘농촌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반 고흐의 청년 시절을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소개한 저자의 서술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 정도면 반 고흐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자격 미달이다.
저자가 과연 반 고흐를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문이다. 반 고흐의 편지를 인용해서 이를 근거로 화가의 미술 세계를 조명하는 방식은 좋지만, 일부 문장만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를 공부하는 독자들도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일반적으로 책과 미디어에서는 반 고흐를 ‘영혼의 내면까지 그려낸 화가’라고 소개한다. 이 손발이 오글거리는 문구가 화가가 죽은 뒤 수십 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반 고흐는 죽고 나서야 미술평론가와 미디어의 후광에 힘입어 ‘미치광이 화가’에서 ‘천재 화가’로 급부상했다. 반 고흐가 특정 대상에 관한 느낌마저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것은 맞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눈앞에 보이는 대상의 실체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즉 대상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고 난 뒤에 그것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대상의 실체를 무시한 채 온전히 화가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은 추상화에 가깝다. 반 고흐는 추상화가로 볼 수 없다. 사실 반 고흐는 인간의 눈보다 감정을 더 중시하는 상징주의를 눈 여겨 봤을 뿐,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자신의 눈앞에 모델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반 고흐의 생각을 고갱은 부정적으로 봤다. 고갱은 반 고흐와는 반대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상반된 인식 때문에 두 사람 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감추거나 속이지 않았다. 눈과 머리와 몸이 느끼면 느끼는 대로 솔직한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붓을 움직였다. 고흐는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다른 화가 같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겠지만, 고흐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눈에 보이는 것은 가식과 허상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진실이야말로 화가가 참으로 그려야 할 대상이라고 굳게 믿었다. (107쪽)
그런데 저자는 반 고흐를 ‘눈에 보이는 것을 가식과 허상’으로 여기는 화가로 묘사했다. 반 고흐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문장이 멋있다기보다는 그저 우습기만 하다. 저자가 이렇게 표현한 건지 아니면 역자 노성두 씨가 나름대로 멋스럽게 꾸며서 우리말로 옮긴 건지 번역본을 원서와 같이 대조해보지는 않았으나 고흐를 이렇게 과대 포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107쪽에 소개된 반 고흐의 모습은 분명 내가 아는 반 고흐가 아니다. 엉뚱하게도 저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한 '고갱'을 소개했다.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다행히 품절이다. 분량이 얇다고 이 책을 고르지 마시길. 딱히 영양가 있는 책은 아니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이 책은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을 모으고 싶어도 이 책만큼은 돈 주면서 사고 싶지 않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