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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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이 저에게 양말을 줬어요! 도비는 자유로운 집요정이에요"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도비가 하는 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올해도 고객의 구매 기록을 수치화한 통계 내역을 공개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알라딘 홈페이지 위에 ‘당신의 총 구매 금액은 얼마일까요? 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가 보인다. 알라딘 구매 고객이라면 그동안 구매한 책이 총 몇 권이며 월평균 구매 금액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구매한 작가가 누구인지, 거주지에서는 몇 번째로 책을 많이 구매했는지 등 다양한 구매 관련 통계도 확인할 수 있다. 서비스 오픈 16주년 기념 이벤트 기간 중 이벤트 대상 도서를 포함해 5만 원 이상 구매하면 책 표지로 만든 북 스탠드를 받는다. 알라딘 측에서는 구매 고객을 위한 16주년 특별 선물이라고 하는데 이 선물을 받으려면 지갑을 과감히 여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구매 과정에서 선택한 증정품에 따라 구매 마일리지가 차감된다. 도서정가제의 최대 할인 폭인 ‘정가의 15%’를 넘지 않기 위해서다.

 

 

 

 

 

알라딘은 구매 고객의 눈에 속삭인다. 당신은 16년간 알라딘과 함께했다고. 그러면서 당신의 구매 기록을 보여준다. 램프의 요정 지니(genie)는 알라딘의 소원을 다 들어주는 신령이다. 알라딘은 디지털화로 탈바꿈한 거대한 지니다. 일명 ‘디지털 지니’다. 알라딘 홈페이지를 접속하는 구매 고객이 지니에게 명령하는 알라딘이다. 그래서 알라딘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알라디너’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부터는 구매 고객을 ‘알라디너’로 부르겠다) 디지털 지니는 알라디너가 가지고 싶은 것을 보여준다. 알라디너는 매달 디지털 지니가 선보이는 증정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책을 주문한다. 디지털 지니는 책을 구매한 알라디너에게 선물을 준다. 5만 원 이상 책을 사지 않은 사람은 선물을 받을 수 없다. 디지털 지니는 16가지나 되는 알라니더의 기록들을 상세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알라디너에게 지금과 같은 독서 패턴을 쭉 유지하면, 80세까지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자신의 구매 기록을 타인에게 공개하도록 권유까지 한다. 알라디너는 자신의 구매 기록에 흡족해하면서 수치화된 독서량을 블로그나 SNS에 공개한다. 16가지의 맞춤형 기록을 다 보여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디지털 지니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알라딘과 함께해 주세요!”

 

심리정치 시대에 사는 대중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착각한다. 신자유주의는 대중에게 자유를 허용한다고 약속을 하나, 현실은 자유를 얻으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즉, 자유를 누리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얻은 자본을 지불해야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노동에 투입되다 보니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자유마저 희생하는 상황을 감수한다. ‘디지털 지니’ 알라딘이 운영되는 방식은 디지털 심리정치의 원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하고 싶다’라는 욕망을 창출하고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심리정치라고 한다면, 알라딘의 디지털 심리정치는 알라디너에게 ‘책을 사고 싶다’라는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메피스토펠레스다. 독서를 권장하는 세련된 악마는 알라디너의 지갑과 구매 마일리지를 담보로 증정품을 준다. 알라디너는 매년 달라진 게 없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알라디너는 알라딘에서 읽고 싶은 책을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제한적이다.

 

‘알라딘 추천마법사’는 알라디너의 구매 내역, 클릭 내역, 블로그 활동 등을 기반으로 고객의 취향을 분석해 그에 맞는 최적의 도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이다. 추천마법사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 영향을 수집하는 빅테이터를 기반으로 한 추천 시스템이다. 알라디너의 구매 성향이나 관심사 등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알라디너에게 책을 추천한다. 최고의 책을 투표로 선정하는 ‘제6회 독자 선정 이 분야 최고의 책’ 이벤트에 알라디너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최고의 책을 뽑을 수 있다. 추천마법사에 근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빅데이터는 우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패턴, 무의식적 욕망까지 읽어 낸다. 한병철은 인간의 행동을 정량화하는 빅데이터가 자유의지의 종언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북플의 마니아 지수는 북플 내 모든 활동을 수치화한 것이다. 관심 있는 책에 별점을 주거나, 서평을 작성하면 누구나 특정 분야의 마니아가 된다. 결국, 지수를 높여서 어떤 분야의 첫 번째 마니아가 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책을 구입하고,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알라딘의 스마트 권력은 소통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지만, 알라디너는 '자유'라고 착각한 채 글이나 사진을 블로그에 채움으로써 스스로 노출하고 전시한다. 자기 노출의 정보는 더 많은 구매욕을 생성한다. 북플은 마니아 지수가 높은 알라디너와의 소통을 유도하여 마니아가 소개한 책을 읽도록(구매하도록) 장려한다.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 안에 욕망을 창출하는 심리정치가 작동된다.

 

한병철은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벗어나려면 내면을 비우는 백치 상태가 되라고 말한다. 지폐를 가지고 놀다가 찢어버린 그리스의 아이들처럼 자유를 착취하는 대상을 멀리하자는 의미인 셈인데 대안이 현실적인 면에서 떨어진다. 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 속에 자본의 속박을 벗어나서 해탈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글에서 나는 알라딘의 마케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심리정치의 손아귀에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적으로 여유 있게 살아야지” 하고 큰소리를 치지만, 어느새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게 나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멀리하여 디지털 문맹으로 살겠다는 현대판 러다이트 족이 되고 싶지 않다. 디지털 사회를 거부할 수 없지만, 냉정하게 손익계산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신을 차리려면 이런 중심 잡기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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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7-1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적 사유룰 알라딘 데이타에 비유하셧군요 ...이주 적절한....

cyrus 2015-07-13 18:49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쓰느라고 억지로 끼워 맞췄습니다. 논리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7-1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그 선물 받고싶지 않아요~~ 근데 자꾸 받아가래요~~

cyrus 2015-07-13 18:50   좋아요 0 | URL
신간도서보다는 선물의 유혹 때문에 많이 흔들립니다. ^^;;

:Dora 2015-07-1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지름신은 나에게 유일신

cyrus 2015-07-13 18:51   좋아요 0 | URL
저도 책지름신의 교리를 신봉하는 1인입니다.

조선인 2015-07-1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알라딘은 나빠요. 그래도 알라딘을 못 버리겠어요. 유혹에 진 어리석은 이의 고백이랍니다.

cyrus 2015-07-13 18: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지금은 참고 있지만, 마음에 드는 증정품이 있으면 바로 구매하려고요. ㅎㅎㅎ

해피북 2015-07-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5만원 이상이라고 해도 이벤트 도서가 포함되지않으면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없어요.그리구 알라딘 앱을 구동할 때 보여지는 추천 도서 책장 목록을 살펴보면 이미 구입한책과 전혀 관심이 없는 책들이 많아 그닥 활용성도 없는거 같더라궁노 그냥 컴퓨터 메인 화면 처럼 다양한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면 좋겠다는 푸념을 하게 되더라구요 ㅋㅂㅋ

cyrus 2015-07-13 18:55   좋아요 0 | URL
첫 번째 문단에 ‘이벤트 대상 도서를 포함해 5만 원 이상 구매하면’이라고 썼어요. 제 생각이지만, 추천마법사 서비스가 알라디너들에게는 환영받지 않는 서비스인 것 같아요. 나름대로 알라딘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을 서비스 같았는데, 저도 해피북님이 겪었던 것처럼 추천마법사에 소개되는 책들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굳이 알라딘이 읽으라는 권하는 책은 읽고 싶지 않았어요. ㅎㅎㅎ

stella.K 2015-07-13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너의 리뷰는 나날이 진화하는구나!
모르긴 해도 다음 달 이달의 당선작이 되지 않을까 싶네.ㅋ

솔직히 난 이 빅 데이터가 싫어.
지난 16년 동안의 기록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이런 식으로
감시 당하고 있었구나 해서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
물론 그렇다고 안 들춰 볼 수도 없고 해서 보긴 봤다만
무엇을 근거로한 수치일까 의문스럽기도 하더군.
솔직히 난 요즘 알라딘에서 책을 거의 사지 않거든.
개인 중고샵이나 예스24에서도 사는데 이것을 포함시킨 수치는 아닐 것 아냐?
그래놓고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몇 권을 읽을 거다란 게
장난하나 싶더군.
뭐 이런 건 알라딘만 하는 짓은 아닐테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이렇게 사람을 수치화하고, 5만원에 현혹시키고 그럴 줄 알았으면
알라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예전에 알라딘은 참 인간적이었는데...ㅠ
언제 적 옛날 추억담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알걸?
옛날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ㅉ
그런데 책 검색은 알라딘이 좋더군. 중고샵하고. 아직은...ㅋ

cyrus 2015-07-13 18:57   좋아요 0 | URL
몇 년 전부터 알라딘에서 활동 내역을 수치화하는 서비스가 많이 생겼어요. 어찌 보면 16주년 기록을 공개하는 서비스도 정말 잘 만든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저도 결과를 완전하게 믿지는 않아요. 또 활동 내역을 공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북다이제스터 2015-07-1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병철 책 다신 안 읽는다고 하셨으면서... 또 속으신거예요? ^^

cyrus 2015-07-13 18:59   좋아요 0 | URL
사실은 상반기 베스트 도서 서평을 작성하면 하반기 기대작 한 권을 선물로 준다기에, 일단 분량이 얇은 한병철 씨의 책을 선택해서 읽었어요.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5-07-13 22:02   좋아요 0 | URL
어쩔수 없이 저처럼 이벤트에 약하시군요. 실망입니다. ㅠㅠ

cyrus 2015-07-14 21:22   좋아요 0 | URL
제가 서평 이벤트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요. ^^
 

 

 

나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다. 일 년 동안 봤던 영화를 세어보면 가까스로 10편을 넘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집에서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고양이의 서재》(유유출판사, 2015)의 저자 장샤오위안은 영화 DVD를 모으는 영화광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감상법을 ‘디스크파’라고 말한다. 디스크파의 장점은 보고 싶은 영화 장면을 되돌려 보는 것이다. 비록 나는 장샤오위안처럼 영화 DVD를 모으지 않지만, 합법적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내려받아 본다. 이쯤 되면 나는 ‘다운로드파’다. 한 번은 영화 서평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3년 전에 알라딘 블로그에 영화 서평 한 편을 작성하려면 내려받은 영화의 특정 장면을 두세 번 이상 돌려 봤다. 영화를 한 번만 봤는데도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이런 방식이 익숙해지다 보니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편해졌다. 그러나 영화 서평 작성을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무척 지루한 일이다. 봤던 영화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는 것도 귀찮다. 서평을 작성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화는 그저 재미있게 즐기는 영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영화 서평을 쓰지 않아서 이제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흥행 영화 감상문을 종종 보곤 한다. 내가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글이라면 아예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영화를 본 척하려고 감상문에 ‘좋아요’를 누르고 싶지 않다. 댓글에 짤막한 의견도 남기지 않는다. 술자리 대화를 하다가 영화 얘기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영화가 대화의 소재가 된다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듣기만 할 뿐이다. 괜히 아는 척하려고 대화에 끼어들다가 밑천이 드러나면 쪽팔린다. 그래서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의 영화평에 반박하지 않는다.

 

 

 

 

 

인터뷰 전문은 '여기'에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다르다. 영화를 좀 본다는 강신주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모 남성패션잡지에 강신주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영화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취향이 대중의 평균적인 수준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서 강신주는 <어벤져스>를 보는 것은 생각 없이 술집에서 여자랑 노는 것과 같고,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연애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인터뷰어의 진행이 만족스럽지 않다. ‘대중의 평균적인 수준’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개인적 감정을 전체의 감정과 동등하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터뷰어의 말 같지 않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영화에 관한 입장을 피력하는 강신주의 모습도 답답하다. 강신주가 생각하는 ‘영화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벤져스>의 어떤 장면이 강신주의 마음에 안 든 것일까?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미가 모호하다. <어벤져스>를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점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은근슬쩍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무시한다. 혹시 ‘영화를 제대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신 분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그리고 ‘술집 가서 여자랑 노는 것’의 의미도 명확하지 않다.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서 노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 연인 관계가 아닌 친구 사이로 지내는 여자)과 술집에서 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강신주는 전자의 의미에 염두를 뒀을 가능성이 있다. 술집에서 노는 일은 생각 없이 시간을 허투루 쓰는 부정적 행동으로 봤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벤져스>를 보는 것도 생각 없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과 동등한 의미가 된다. 영화 한 편을 재미있게 본 사람은 영화 관람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신주 본인이 <어벤져스>를 안 좋게 봤더라도,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타인의 감정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는 수준 이하의 취향으로 말해선 안 된다. <어벤져스>를 한 번도 보지 않은 나조차도 불쾌하게 만드는 독선적인 발언이다.

 

강신주가 후자의 의미를 생각해서 말했어도 논리성이 떨어진다. 학창 시절 동창이었던 여사친과 오랜만에 술집에서 만나서 놀 수 있다. 사소한 만남을 연애와 거리가 먼 저급한 만남으로 보는 것은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상대방을 비난하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연애를 하면 생각을 한다’는 말의 의미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자신이 마치 ‘생각하는 철학자’라도 된 것처럼 여긴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강신주는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 같다. 결국, 이 인터뷰는 젠체하는 바보들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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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1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군요. 남자 강신주. 인간 강신주이면 좋았을건데..
어벤져스 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취향의 문제이니까요~~ 그것도 여자를 예를 들어서..... 굳이 왜 저런 비유를 했을까요~

cyrus 2015-07-12 21:11   좋아요 0 | URL
작년인가요? 강신주가 칼럼에 노숙자를 ‘좀비’라고 비유해서 비인격적 존재로 표현하는 바람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죠. 강신주는 비유하는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도 문장 하나를 쓸 때 신중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파트라슈 2015-07-13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벤저스 보더라도 연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텐데요..

cyrus 2015-07-13 20: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벤져스> 나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도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3
엔리카 크리스피노 지음, 정지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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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생(소묘 혹은 드로잉)은 화가의 미적 표현이 구체화하여 나타난 최초의 조형표현이다. 이 때문에 거칠기는 하지만 생생하고 원초적인 작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르이다. 앵그르, 드가, 피카소 등 서양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가들도 데생을 통해 작품의 아이디어를 수정해나갔던 것을 보아도 데생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데생은 유화의 그늘에 가려진 채 밑그림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흐는 100점이 넘는 유화를 남겼다. 우리는 고흐를 멋진 유화를 남긴 화가로만 기억할 뿐, 그가 1000점 이상의 데생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고흐의 그림이 컬렉션들에 주목받으면서 그의 데생 또한 값어치가 제법 상승했다. 만약에 고흐가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데생은 홀대를 받았을 것이다.

 

 

 

 

 

고흐  「삽질하는 사람」 (1882년)

 

 

극빈했던 고흐에게 데생은 최고의 화가가 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목사의 꿈을 포기하고, 무작정 전업 화가의 길로 뛰어들었던 고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목사였던 아버지와 갈등을 더욱 깊어져만 갔고, 고흐를 위한 경제적 지원도 줄어들었다. 미술도구를 살 돈이 없어서 마음껏 유화를 그릴 수 없었던 고흐는 데생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881년에서 1885년 사이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데생을 남겼는데, 고흐의 작품 연보를 논할 때 이 기간을 네덜란드 시기라고 말한다.

 

 

 

 

 

고흐  「손수레 끄는 여인」 (1883년)

 

 

 

색채의 효과를 처음으로 알기 시작했던 파리로 이주하기 전이라서 네덜란드 시기의 고흐 작품들은 화려하지 않다. 1880년대 유럽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활력 넘치는 도시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던 반면, 시골은 마치 정지한 듯 거의 변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흐는 가난한 농민과 광부, 직조공들의 생활상을 그렸다. 특히 인물화는 고흐가 특히 매력을 느꼈던 장르였다. 가끔 보이는 어설픈 인물처리나 묘사는 입문 초기 표현기법의 미숙함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투박한 모습을 꾸밈없이 묘사하려는 정직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고흐는 한때 종교에 심취했었던 시절에 성경과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탐독했으며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비록 목사의 꿈은 접었어도 고흐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종교적 감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었다. 고흐는 도덕적 신념을 예술에 반영했다. 밀레를 흠모했던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십여 차례나 반복적으로 모사하며 그를 닮아가고 싶어 했다. 네덜란드의 고흐는 밀레처럼 소박한 그림을 그리는 농촌화가가 되고 싶었다.

 

 

 

 

 

고흐  「잡초를 태우는 농부」 (1883년)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는 고흐의 데생 작품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사실 초창기 작품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흐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고흐의 예술적 황금기라고 일컫는 아를 시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고흐의 데생은 그의 삶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데생을 고집하는 이유를 밝혔다.

 

 

내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데생을 한다는 점을 네가 알아주기 바란다. 첫 번째 이유는 보다 정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어서고, 두 번째 이유는 유화와 수채화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야.” (18927, 44쪽 인용)

 

 

고흐는 모델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사진과 같은 정확한 묘사를 싫어했다. 하지만 타고난 성정(性情)에 의해 세상을 도덕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고흐는 그림의 대상을 인생이라는 상징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취급했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이름 없는 농촌 이웃들, 가난하게 사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아놓았다. 그래서 고흐의 데생은 차분하게 감정을 드러낸 캐리커처에 가깝다.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귀를 자른 고흐의 자해 사건과 자살 사건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고흐가 잘린 귀를 창녀에게 주는 이유를 고흐가 소의 귀를 잘라 미녀에게 선사하는 투우사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고흐의 광기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칼 야스퍼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야스퍼스는 고흐가 정신분열증에 앓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자해 소동 이후에도 비판적 분별력이 남아있었던 고흐의 정신 상태를 고려한다면 야스퍼스의 주장이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고흐가 보리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 겨누었던 사건의 당시 정황을 설명하면서 가셰 박사를 의심하기도 한다. 고흐와 친분이 있었던 가셰 박사가 총상을 입은 고흐에게 어떠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고흐와 가셰 박사의 우정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고흐는 박사의 능력을 의심했고,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했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싸고 완벽한 자살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학계에서도 밝히지 못한 상황이다.

 

 

 

 

※ 저자는 고흐의 그림을 ‘예술 작품과의 완전한 합일과 예술의 삶의 융화로 표현되는 독특한 상징주의’(110쪽)라고 말하면서도 그다음 문장에서 고흐가 상징주의 미술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후 문장의 의미가 상반된다. 저자는 고흐를 독특한 상징주의자로 평가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자로 소개한 평론을 읽고 나서 평론가에게 편지를 보내어 반박했다. 

 

※ 37쪽은 고흐에게 영향을 준 헤이그파를 소개한 글이 있다. 여기서 헤이그파 화가들을 소개하는 과정에 ‘야코프 형제(1837~1899), 마테이스 마리스(1839~1917), 빌렘 마리스(1844~1910)’이라고 적혀 있다. 마리스 삼 형제 중 장남인 야코프 마리스를 ‘야코프 형제’라고 잘못 적었다.

 

※ “태양이 내 방의 노란 커텐을 스쳐 지나갈 때 이 꽃들은 금빛으로 넘치고...” (76쪽) ⇒ ‘커텐’을 ‘커튼’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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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7-1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 하신것 처럼 고흐에게 초기 중기 데생은 실력 향상과 유화의 비쌈을 피해갈 수 있는 안식처 같더군요. :) 그리고 농민들과 광부들의 투박하고 정감가는 모습들이 배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

cyrus 2015-07-12 20:16   좋아요 0 | URL
고흐가 남긴 데생 작품들도 훌륭한데 유화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 때문인지 책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페크pek0501 2015-07-1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고흐에 대한 글 시리즈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
한때 제가 고흐의 그림을 흉내 내고 싶어서 그의 스케치를 따라서 연필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때이기도 했고 그림을 그릴 때의 화가의 정서를 알고 싶었던 이유도 있어요. 아직도 그 연필화를 가지고 있는데 우습답니다. 엉터리라서 말이죠.ㅋ

cyrus 2015-07-12 20:19   좋아요 0 | URL
고흐는 모델을 구하기 힘들어서 길을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바로 스케치를 했다고 합니다. 페크님처럼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기도 했고요. 페크님은 화가의 정서를 근접하게 이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sslmo 2015-07-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님의 글들이 다 좋은데 말이죠. 특히 이렇게 그림 관련, 화가얘기... 깊이와 애정이 느껴져서 더 좋아요~^^

cyrus 2015-07-12 20:20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고흐 책 한 권만 봐도 고흐를 다 아는 느낌이었는데, 관련 책을 더 찾아보게 되니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화가의 삶에 대해서 더 애정이 느껴졌어요. 고흐의 편지를 읽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져요.
 
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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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한다. 터키는 유럽에 속하지만 터키어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족으로 어순이 같다. 터키 군인들이 6·25전쟁 때 참전했기 때문에 터키에서는 한국을 아주 친밀한 형제의 나라로 여기고 있다. 식사 때 가장 웃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는 것, 나이 많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또한 같다. 그런데 한국을 친밀하게 여기는 터키에서 최근 한국인 여행객들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중국의 위구르 족 무슬림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한국인 관광객들을 중국인으로 오인하여 벌어진 일이다. 위그르 족은 중국 서북부 신장위구르 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다. 터키와 신장위구르 자치주는 지역상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터키는 왜 중국에 반감을 품게 된 것일까?

 

터키는 무슬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인 데다 위구르족 공동체와 언어적, 종교적 연계를 공유하고 있다. 터키 내 민족주의자들은 중국 측이 위구르족들의 라마단 준수를 금지했다는 터키 언론 보도가 나오자 항의 시위를 벌였다.  중국 측에서는 무슬림들이 이슬람교의 가치를 따르는 것보다는 ‘중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갖춰야한다고 맞대응했다. 아직 한국인의 인명 피해는 나오지 않았지만, 주요 관광 지역 곳곳에서 시위가 잇따르면서 터키를 찾는 동양인 관광객들의 안전이 우려된다. 이슬람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터키에서 일어나는 반중 시위의 원인이 중국 소수 민족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터키의 반중 시위를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하게 된다.

 

이제 곧 100세를 코앞에 둔 중동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자서전 《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터키의 반중 시위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소식으로 봤을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이슬람교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고, 위구르 족을 둘러싼 터키와 중국 간의 대립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를 민족의 정체성이나 애국심보다 더 우위에 둔다. 무슬림들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낯선 개념이다. 이러한 무슬림들의 인식은 반중 감정을 가진 터키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아예 위구르족을 강제로 중국 국민으로 포섭하려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터키 무슬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비무슬림(중국)이 무슬림(위구르족)을 지배하는 상황은 이슬람 율법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비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터키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과격한 시위대가 형성되었다.

 

《100년의 기록》은 학자로서의 업적과 그동안 살아온 과정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치열하게 펼쳐진 중동의 역사까지 소개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번역된 루이스의 책은 중동의 역사를 공부하는 독자들이 많이 찾는 역사서로 알려졌다. 중동 역사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루이스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가 《100년의 기록》을 먼저 읽는다면 중동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과 유대인 및 중동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루이스는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참여한 여러 가지 중동문제들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이에 대한 비평을 곁들였다. 반면 루이스의 책을 좀 읽어본 독자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비판하는 대목에 흥미를 더 느낄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책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 서양의 동양학자(orientalist)들이 동양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학계를 뒤흔들었던 오리엔탈리즘 논쟁에 루이스도 비껴갈 수 없었다. 그러자 루이스는 《100년의 기록》에서 자신과 관련된 오명에 반박한다. 사이드를 '중동의 역사뿐만 아니라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지한 학자라고 비판한다.

 

이슬람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거의 중동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우리 머릿속에는 '이슬람=중동'이라는 등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 세계를 가볍게 보는 인식이 만들어 낸 고정관념일 뿐이다. 유럽에서도 이슬람 세력이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루이스조차도 최근 무슬림 공동체가 늘어나는 유럽의 미래를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이슬람화 유럽 아니면 유럽화한 이슬람 세계가 나올 수 있다. 현재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옛 영화를 되살리려고 한다.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이하 IS)’가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살상행위 역시 '비무슬림은 적'이라는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디어와 학계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일삼는 과격한 무슬림들을 ‘이슬람 원리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루이스는 이 명칭이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원리주의'는 원래 성서를 절대적으로 믿는 일부 개신교를 가리켰으나 1980년대부터 이슬람 부흥 현상이 일어나면서 급진적 이슬람 세력들을 '원리주의자'로 통칭하게 되었다. 이슬람 과격파와 미국 개신교 원리주의자들 사이에는 어떠한 유사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리주의’는 이슬람 과격파에만 적용되었다.

 

루이스를 미국의 중동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미적 전문가로 보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서구의 개입이 중동의 혼란을 더 악화시켰으며 중동 문제나 중동 역사는 중동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들어가는 말’에 루이스는 올바른 역사가의 책무를 강조한다.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과거의 진실을 정확히 밝혀내어 파악한 그대로 설명하는 것. ‘5장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는 역사학도라면 꼭 읽어봐야 할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중동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역사학도가 많았으면 좋겠다. 루이스의 회고를 보면서 민감한 중동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대학교마다 중동 관련 학과 및 연구소를 설립하고, 각국의 전문가를 초청하고 조언을 들으려는 정부기관의 태도가 얼마나 부럽던지. 한국인이 중동에서 피살당하면 해당 국가를 관광 금지 국가로 규정만 하고 일단락 짓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비교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된 중동을 전 세계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겁 먹은 어린아이처럼 혼자 저 멀리 떨어져서 힐끗 쳐다보기만 한다.

 

 

 

 

※ 《100년의 기록》은 훌륭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이드를 비판하는 루이스의 입장에 판단 보류하는 차원에서 별 네 개만 줬다. 이 책이 별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평가하려면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중동의 역사를 다룬 루이스의 책을 같이 참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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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7-0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키 이슬람과 위그르족 사이에 그런 관계가 있었네요. 오늘도 감사하며 배웁니다. ^^

cyrus 2015-07-10 20:57   좋아요 0 | URL
저도 기본적인 사실만 알게 되었어요. 관련된 정보를 더 찾아보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

에이바 2015-07-09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났던 위구르족들은 진짜 신비롭고 아름답게 생겼어요. 터키랑 중국 여권 둘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최근 몇 년 간 자치구 독립운동으로 유혈상황이 빚어졌었죠..

cyrus 2015-07-10 20:57   좋아요 0 | URL
어제 위구르족이 궁금해서 처음으로 검색을 해봤는데 정말 예쁜 위그르족 여인 사진을 봤어요.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7-1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지 않은 역사들이 많이 있죠~

cyrus 2015-07-10 20:58   좋아요 0 | URL
네, 알려주지 않은 역사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죠.

라스콜린 2015-07-1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 좋은 책이군요~! 읽어봐야겠네요 .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cyrus 2015-07-10 20: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중동에 관심이 있다면, 책을 읽을 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

stella.K 2015-07-1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봐야겠네.
작년부터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 모임에 나가고 있거든. 지역별로 모이고 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중동 지역 모임을 나가게 됐지.
그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나가면서 관심을 갖게 되더군.
그런데 뭐 중동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김경집 교수는 중동이라고 부르지 말고 서아시아라고 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 이유에 대해 뭐라고 설명을 했다만 내가 기억할리는 없고
암튼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에서 그랬어.ㅋㅋ

cyrus 2015-07-10 21:00   좋아요 0 | URL
중동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보니까 잘못된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를 반쯤 정도 읽다가 말았는데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 이미지는 황금가지 출판사 공식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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