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다. 일 년 동안 봤던 영화를 세어보면 가까스로 10편을 넘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집에서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고양이의 서재》(유유출판사, 2015)의 저자 장샤오위안은 영화 DVD를 모으는 영화광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감상법을 ‘디스크파’라고 말한다. 디스크파의 장점은 보고 싶은 영화 장면을 되돌려 보는 것이다. 비록 나는 장샤오위안처럼 영화 DVD를 모으지 않지만, 합법적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내려받아 본다. 이쯤 되면 나는 ‘다운로드파’다. 한 번은 영화 서평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3년 전에 알라딘 블로그에 영화 서평 한 편을 작성하려면 내려받은 영화의 특정 장면을 두세 번 이상 돌려 봤다. 영화를 한 번만 봤는데도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이런 방식이 익숙해지다 보니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편해졌다. 그러나 영화 서평 작성을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무척 지루한 일이다. 봤던 영화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는 것도 귀찮다. 서평을 작성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화는 그저 재미있게 즐기는 영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영화 서평을 쓰지 않아서 이제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흥행 영화 감상문을 종종 보곤 한다. 내가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글이라면 아예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영화를 본 척하려고 감상문에 ‘좋아요’를 누르고 싶지 않다. 댓글에 짤막한 의견도 남기지 않는다. 술자리 대화를 하다가 영화 얘기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영화가 대화의 소재가 된다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듣기만 할 뿐이다. 괜히 아는 척하려고 대화에 끼어들다가 밑천이 드러나면 쪽팔린다. 그래서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의 영화평에 반박하지 않는다.

 

 

 

 

 

인터뷰 전문은 '여기'에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다르다. 영화를 좀 본다는 강신주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모 남성패션잡지에 강신주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영화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취향이 대중의 평균적인 수준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서 강신주는 <어벤져스>를 보는 것은 생각 없이 술집에서 여자랑 노는 것과 같고,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연애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인터뷰어의 진행이 만족스럽지 않다. ‘대중의 평균적인 수준’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개인적 감정을 전체의 감정과 동등하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터뷰어의 말 같지 않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영화에 관한 입장을 피력하는 강신주의 모습도 답답하다. 강신주가 생각하는 ‘영화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벤져스>의 어떤 장면이 강신주의 마음에 안 든 것일까?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미가 모호하다. <어벤져스>를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점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은근슬쩍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무시한다. 혹시 ‘영화를 제대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신 분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그리고 ‘술집 가서 여자랑 노는 것’의 의미도 명확하지 않다.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서 노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 연인 관계가 아닌 친구 사이로 지내는 여자)과 술집에서 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강신주는 전자의 의미에 염두를 뒀을 가능성이 있다. 술집에서 노는 일은 생각 없이 시간을 허투루 쓰는 부정적 행동으로 봤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벤져스>를 보는 것도 생각 없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과 동등한 의미가 된다. 영화 한 편을 재미있게 본 사람은 영화 관람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신주 본인이 <어벤져스>를 안 좋게 봤더라도,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타인의 감정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는 수준 이하의 취향으로 말해선 안 된다. <어벤져스>를 한 번도 보지 않은 나조차도 불쾌하게 만드는 독선적인 발언이다.

 

강신주가 후자의 의미를 생각해서 말했어도 논리성이 떨어진다. 학창 시절 동창이었던 여사친과 오랜만에 술집에서 만나서 놀 수 있다. 사소한 만남을 연애와 거리가 먼 저급한 만남으로 보는 것은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상대방을 비난하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연애를 하면 생각을 한다’는 말의 의미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자신이 마치 ‘생각하는 철학자’라도 된 것처럼 여긴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강신주는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 같다. 결국, 이 인터뷰는 젠체하는 바보들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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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1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군요. 남자 강신주. 인간 강신주이면 좋았을건데..
어벤져스 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취향의 문제이니까요~~ 그것도 여자를 예를 들어서..... 굳이 왜 저런 비유를 했을까요~

cyrus 2015-07-12 21:11   좋아요 0 | URL
작년인가요? 강신주가 칼럼에 노숙자를 ‘좀비’라고 비유해서 비인격적 존재로 표현하는 바람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죠. 강신주는 비유하는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도 문장 하나를 쓸 때 신중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파트라슈 2015-07-13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벤저스 보더라도 연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텐데요..

cyrus 2015-07-13 20: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벤져스> 나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도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