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The Catcher in the Rye》(‘호밀밭’)는 사춘기 소년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의 방황을 그린 소설이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는 학교 밖 ‘어른들의 세계’에 눈 떠가는 소년의 감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공허함을 보여준다. 몇몇 독자와 비평가들은 《호밀밭》을 ‘청소년들의 필독서’라고 추켜세운다.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은 까닭은 ‘참을 수 없는 젊음’을 분출하는 홀든의 모습이 같은 세대의 공감을 얻기 때문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정치적으로 우파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방황하는 홀든의 여정은 소년에서 성인으로 거듭나는 ‘성인식’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호밀밭》은 성장소설(Bildungsroman)의 형식을 빌린 소설이다. ‘청소년 독자를 위한 성장소설’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샐린저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가 청소년 독자를 겨냥한 소설을 쓸 리가 없다. 샐린저는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그는 1963년에 발표한 작품집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문학동네)에서 “난 집필이 좋고, 집필하는 것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 자신만을 위해,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쓸 뿐이다”라고 언급했다[주]. 샐린저는 사춘기의 불안정한 정서와 반항적 행동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싶어서 《호밀밭》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떨게 한 내밀한 두려움과 불안, 자신을 슬프게 한 외로움과 좌절 등을 문장들 뒤에 살짝 숨기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전 세계 청소년들이 홀든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열광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호밀밭》은 대중문화 속에서 ‘반항하는 젊음’을 상징하는 책으로 등장한다. 1980년 존 레넌(John Lennon)을 암살한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의 손에 들려 있었던 《호밀밭》은 그의 암살 동기가 바로 거짓과 위선에 대한 주인공의 절규 때문이라는 증언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지고, 급기야 서구 문화권에 기성 사회에 향한 냉소와 반항심을 뜻하는 ‘콜필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홀든이 본 ‘어른들의 세계’는 공허하고 모순적이고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어른이 만들어 놓은 규범을 거부하고 순수함을 간직한 어린아이, 특히 자신의 여동생을 지켜주는 Catcher(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는 선수 또는 무엇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 싶어 한다. 홀든은 희망 없는 세상 속에 ‘순수’라는 것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홀든의 소망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순수한 세상’, ‘순수한 삶’은 허상(fantasy)에 불과하다. 홀든은 ‘순수함’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현실에서 멀찍이 떨어져 순수성에 집착하는 그의 태도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순수’에 집착하는 욕망은 엄청난 편협성과 배타성을 낳기 때문이다. 여동생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홀든의 몸부림은 ‘여성’의 순수성을 찬양하는 ‘서양 백인 남성’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서양 백인 남성’의 남성성은 여성의 순수함이 변질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남성성이 부추기는 저항성과 폭력성은 외부의 오염과 위험으로부터 여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중요 수단이 되고, 소년이 ‘어른 남자’가 되기 위해 당연히 한 번쯤 허용할 수 있는 ‘통과의례’가 된다. 순수성에 집착하는 남성의 심리는 이중적이다. 순수성을 좀먹고 오염시키는 타자를 공격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그 순수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차지(지배)하려고 한다. 사회적 지휘가 낫거나 자신이 권력이 없다고 느끼는 남성은 폭력을 통해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한다. 부모와 교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홀든은 여성을 (성적으로) 지배함으로써 ‘어른’이 아닌 ‘남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여느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매춘부를 만나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 또는 확인한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의 주인공은 ‘남자다움’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 홀든은 매춘부 포주 모리스에게 돈을 빼앗긴 후에 그를 총으로 죽이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소심한 복수를 하는데, 그 판타지에는 ‘승자’와 ‘강자’로서의 남성이 되고 싶은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그동안 독자들(특히 소년들)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홀든의 반항을 ‘듬직한 백인 남성’과 동일한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반항하는 태도를 ‘멋진 남성’의 표본으로 찬양하면서 그것에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내가 바로 홀든 콜필드다’라고 주장했고, 《호밀밭》을 읽어보라고 말했던 존 레넌 암살범의 말이 ‘미친놈의 헛소리’로 들리는가. 내가 보기엔 코웃음 치면서 가볍게 흘러 들릴 말은 아닌 것 같다. 공격 성향, 무언가를 지배하려는 성향의 남성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 ‘마초’가 되고 싶은 홀든 콜필드는 더 많아질 것이다. 홀든 콜필드를 ‘저항의 상징’, ‘매력적인 성장소설의 주인공’으로 보는 진부한 평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콜필드 신드롬’은 지배적 남성성이 만들어 낸 신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무조건 남자들이 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저항하는 건 아니잖은가. 여성들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답답하게 만드는 세상에 맞서 반항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남성들은 그런 여성을 히스테리 부리는 ‘위험한 존재’, 상종하기 싫은 사람으로 생각할까.

 

 

 

 

 

[주] 심상욱, 《J. D. 샐린저 생애와 작품》, 동인, 2011,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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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03 12:21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요약된 줄거리만 이해하면 누구나 읽은 척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이런 책을 줄거리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건 아까워요. 이 소설의 사소한 대화나 장면들은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나오게 만들거든요.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인간 내면의 변화를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했던 작가다. 이런 이유로 헤세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석가, 공자, 노자 등 중국의 사상가들과 인도 사상에 심취하는데 이는 소설과 시, 그림을 넘나든 그의 예술혼의 원천이 됐다.

 

 

 

 

 

 

 

 

 

 

 

 

 

 

 

 

 

 

* [품절] 알로이스 프린츠 《헤르만 헤세》 (더북, 2002)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밑에》 (현대문학, 2013)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문학동네, 2013)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2001)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열린책들, 2014)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을유문화사, 2013)

* 헤르만 헤세 《데미안》 (현대문학, 2013)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문학동네, 2013)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2000)

 

 

 

 

헤세와 동양사상의 만남은 그의 가족사와 연관돼 있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사로 인도에서 활동했고 어머니는 인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 헤세의 모습은 국내 유일의 헤세 평전인 알로이스 프린츠(Alois Prinz)《헤르만 헤세》(더북)에 잘 나와 있다. 헤세는 열두 살 때부터 시인이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헤세의 부모는 아들의 포부를 무시했다. 1891년 헤세 가족은 스위스의 바젤로 이사했다. 그해 헤세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일 년 만에 학교에서 도망쳐 하루 뒤에 벌판에서 발견되었다. 그런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열다섯 살 때 헤세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썼다가 부모에게 발각되었다. 부모와 잘 알고 지내던 한 목사가 운영하는 조현병 환자들을 위한 사설 요양소에 지냈다. 요양소에 퇴원한 후 일 년 만에 김나지움(Gymnasium: 독일의 인문계 중등교육기관)을 졸업했다. 그 후 헤세는 시계 만드는 공장의 수습직원, 서점 직원을 전전했다. 헤세의 문학을 키운 건 ‘방랑’이다. 젊은 날의 고통과 방황은 헤세 문학의 영양분이 되었고, 그 영양분으로 열매를 맺은 작품이 《수레바퀴 아래서》《데미안》이다.

 

 

 

 

 

 

 

 

 

 

 

 

 

 

 

 

 

 

 

 

* [품절]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인도 여행》 (푸른숲, 1999)

 

 

 

이 두 작품은 인간의 내면세계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 이 두 편의 성장소설에서 주인공들(《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 《데미안》의 에밀 싱클레어)의 입을 빌려 인간의 사명은 진정한 ‘나’를 찾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헤세는 ‘나’를 찾는 내면의 길을 가기 위해 현실에 맞서 싸웠다. 동양사상은 세계와 자아를 섬세하게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줬다. 헤세의 회상에 따르면 집에 동양인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헤세의 외할아버지는 알 수 없는 말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헤세의 집은 동서양 학문이 만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의 문학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것은 집안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마리아 베르누이(Maria Bernoulli, 헤세의 첫 번째 부인)와 결혼한 헤세는 독일과 스위스의 접경 지역에 있는 가이엔호펜(Gaienhofen)에 정착하여 글쓰기에 전념했다. 1911년 서른네 살의 헤세는 가이엔호펜을 떠나 아주 긴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인도였다. 그러나 그는 인도 본토에 가지 못했다. 인도의 숨 막히는 더위와 습한 기후, 열악한 위생상태, 그리고 적지 않은 여행비 등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면서 인도 본토를 여행하려는 계획을 포기한다. 그 대신 실론 섬영국령 말레이반도,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을 둘러본다. 실론 섬은 1948년에 인도로부터 독립하면서 ‘스리랑카’로 불리게 됐고, 말레이반도 일부는 독립 이후 싱가포르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헤세는 실론 섬과 말레이 반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수필, 시, 일기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적었다. 그의 기록은 1913년에 출간되었고, 이 책은 《인도 여행》(원제: Aus Indien)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의 기행문은 식민지 통치하에 비참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원주민들, 낙후된 문명, 관광지로 전락한 고대 신전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미화나 첨삭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인도 여행》 번역본은 지리적 여행기인 1부 ‘헤세의 인도 여행’과 동양사상을 탐구한 정신적 여정을 정리한 2부 ‘여행 후의 기록들’로 구성돼 있다. 1부와 2부 중간에 헤세의 여행 일지와 메모를 번역한 글이 있다. 책의 2부는 헤세의 저작들을 편집 · 정리한 폴커 미헬스(Volker Michels)가 엮었다. 번역본에는 헤세와 마리아 베르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하이너 헤세(Heiner Hesse)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그는 헤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스위스 몬타뇰라(Montagnola)에 ‘헤세 박물관’이 들어서는 데 동참했으며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 [절판] 헤르만 헤세 《영혼의 수레바퀴》(이레, 2002)

* 헤르만 헤세 《인도 기행》(범우사, 2006)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 인도의 이력서 / 동방순례》(이유, 2014)

* 헤르만 헤세 《헤세의 여행》(연암서가, 2014)

 

 

 

 

《인도 여행》은 ‘Aus Indien’의 완역본이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지만, 책의 내용 일부는 따로 번역되어 나왔다. 《인도 기행》(범우사), 《헤세의 여행》(연암서가)‘Aus Indien’의 1부를 번역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영혼의 수레바퀴》(이레)‘Aus Indien’의 2부 일부를 번역한 책이다. ‘Aus Indien’ 2부에 있는 『인도의 이력서』는 헤세가 1937년에 쓴 글인데, 《싯다르타 / 인도의 이력서 / 동방순례》(이유)에 수록되어 있다. ‘Aus Indien’ 번역본이 여러 권 있긴 하지만, 헤세가 바라본 ‘20세기 인도’의 풍경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완역본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범우문고 시리즈의 《인도 기행》은 ‘Aus Indien’ 1부를 제대로 번역했다고 보기 어렵다. 《인도 기행》의 목차로만 봐서는 ‘Aus Indien’ 1부에 수록된 11편의 시가 빠져 있는 듯하다. 《영혼의 수레바퀴》마저 절판되면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Aus Indien’ 2부는 『인도의 이력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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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02 18:35   좋아요 1 | URL
헤세의 인도 여행기에 보면 신전 주변에 장사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행지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관광지’가 됩니다. 이러면 여행을 즐기지 못해요.

레삭매냐 2019-01-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 책 사냥꾼 싸이러스님에게 제가
원하는 책도 한 번 의뢰해 봐야겠습니다 ㅋㅋㅋ

알라딘 중고매장에서는 오래된 책들은
아예 취급을 하지 않아서 구할 수가
없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19-01-02 18:37   좋아요 0 | URL
제가 갖고 싶은 책이 서울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에 서울 알라딘 중고서점에 제가 원하는 책이 있으면 부탁 드려도 될까요? 그에 대한 보답을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저도 레삭매냐님이 원하는 책이 발견하면 사서 보내드릴 수 있어요. ^^

레삭매냐 2019-01-03 09:18   좋아요 0 | URL
싸이러스님 아쉽게도 제가 서울에 거주하지
않는 관계로 싸이러스님의 제안은 들어 드리
지 못할 것 같습니다 ㅠㅠ

한달에 한 번 서울에 나가는데, 그것도 종로점
밖에 안되어서러리요...

아쉽네요 참말로. 예전 같이 자유로운 시절이
라면 모르지만 - ㅋㅋㅋ

cyrus 2019-01-03 12:26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레삭매냐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자유로운 시절에는 종로점, 대학로점, 신촌점에 갔어요. 이중에 자주 가는 곳은 종로점입니다. ^^

혹시 ‘대구동성로점’, ‘대구상인점’에 사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말씀해주세요. 그 책을 사서 보내드리겠습니다. ^^

안녕반짝 2019-01-0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에서 얼마 전에 <싯다르타>가 출간되었더라고요.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 173번으로요.
아주 오래전에 읽은 터라 나중에라도 다시 읽어보려고요^^

그리고 또 오래전에 지인에게 헤르만 헤세의 <나비>란 책을 선물 받았어요.
그 지인도 헤르만 헤세 팬이었는데 이 책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선물해 주었는데 전 아직도 안 읽고 있네요.^^

cyrus 2019-01-02 18:40   좋아요 0 | URL
인도 여행기에서도 헤세의 나비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도 여행>을 읽으면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를 이어서 읽어야하는데, 당장 읽어야 할 게 많아서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
 

 

 

 

 

 

 

 

 

지난 주 목요일 ‘서재를 탐하다’ 책방에서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송년회가 열렸습니다. 2018년을 마무리하는 ‘우주지감’의 마지막 모임이었습니다. 우주지감, 그리고 책방 ‘서재를 탐하다’와 ‘읽다 익다’를 알게 된지 일 년 정도 됐습니다. 작년 11월 24일에 ‘서재를 탐하다’에서 로쟈 이현우님의 첫 번째 강연이 있었고, 그 다음 달에 ‘읽다 익다’에서 두 번째 강연이 있었습니다. 두 번의 강연을 참석하면서 ‘우주지감’을 알게 됐고, 그때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돌베개, 2013)

* [품절] 헤르만 헤세 《인도 여행》 (푸른숲, 1999)

 

 

 

 

‘우주지감’ 송년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진행되었습니다. 1부는 12월 선정 도서(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라면, 2부는 ‘우주지감’ 송년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행사들이 진행되는 시간입니다.

 

 

 

 

 

 

‘우주지감’ 송년회는 올해 들어 여섯 번째입니다. 송년회에 참석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책 나눔’을 연례행사로 펼쳐오고 있습니다. 각자 가져온 책을 서로 교환하는 행사입니다. 그래서 송년회에 참석하려면 책 한 권을 반드시 가지고 와야 합니다. 저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인도 여행》(푸른숲)을 챙겨 왔습니다. 헤세가 30대에 인도를 여행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기록한 글입니다. 《인도 여행》은 나온 지 오래된 헌책이고, 서점에 구하기 힘듭니다. 저는 이 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우주지감 회원 중에 헤세의 글을 좋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을 위해서 헤세의 책을 가져 왔습니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1998)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에이도스, 2017)

 

 

 

이 날 모임에 내년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선정 도서가 공개됐습니다. 제가 추천한 두 권의 책 모두 선정됐습니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호밀밭의 파수꾼》(문예출판사, 민음사)웬다 트레바탄(Wenda Trevathan)《여성의 진화》(에이도스)입니다.

 

 

 

 

 

 

 

 

 

 

 

 

 

 

 

 

 

 

 

 

* 나쓰메 소세키《그 후》 (현암사, 2014)

* 나쓰메 소세키《그 후》 (민음사, 2013)

 

 

 

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내년 1월 지정 도서여야 한다고 추천했는데요, 2월 지정 도서로 결정되었습니다. 1월 지정 도서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장편소설 《그 후》(현암사, 민음사)입니다. 이 책은 2013년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세 번째 지정 도서였습니다. ‘우주지감’의 1월은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기간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모르고, 1월에 샐린저를 읽을 수 있다면서 설레발을 쳤습니다. 이제 막 ‘우주지감’ 일 년 째 활동한 제가 주제를 모르고 1월에 샐린저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요구했으니 부끄럽습니다.

 

책방 공간이 협소해서 저를 포함한 열다섯 명이 송년회에 참석했습니다. 음식은 책방지기 두 분이 준비했습니다. 올해 송년회의 드레스코드는 ‘빨강’이었습니다. 빨간 색 옷을 입거나 빨간 색과 관련된 장신구를 착용해야 합니다. 저는 여름, 가을에 입는 빨간 색 상의를 입었는데요, 하필이면 송년회가 있는 그 날이 가장 추운 날씨였어요. 점퍼를 입었는데도 그 날 겨울 칼바람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보리, 1997)

 

 

 

2부에는 ‘책 나눔’ 행사뿐만 아니라 ‘베스트 분위기 메이커’ 상과 ‘올해의 베스트 도서 추천’ 상을 뽑는 행사도 진행되었습니다. 올해의 책은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로 선정되었습니다. 급조된 행사였지만 ‘베스트 드레서’를 뽑는 시간을 가졌고, ‘우주지감 사행시 대회’도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우주지감’ 사행시를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우주지감은 내년부터

주경야독(晝耕夜讀)합니다.

지인짜(진짜)

감동받았습니다. 내년에도 책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내년부터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모임은 저녁에 진행됩니다. 그래서 낮에 일하고, 저녁에 책방에서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상황을 ‘주경야독’으로 표현했습니다. ‘지인짜’는 ‘진짜’를 강조하기 위한 ‘시적 허용’입니다. 사실 ‘우주지감’의 ‘감’ 자는 ‘감동’을 뜻합니다. 재미있게 쓴 사행시는 아니지만, ‘우주지감’에 향한 진심을 담아서 써봤습니다. 저보다 재미있게 사행시를 썼거나, 시인으로 빙의해서 감동적인 사행시를 쓰신 분들이 있었는데도 제가 쓴 사행시가 ‘우주지감 사행시 대회’ 1등이 되었습니다. 1등 수상자의 특혜는 책방에 있는 책 중에 한 권을 무료로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무슨 책을 골라야할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몇 분 동안 생각한 끝에 제가 고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니코마코스 윤리학》(길)이었습니다.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니코마코스 윤리학》 판본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길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은 안 읽어봤어요. 사실, 퇴근하고 책방에 오기 전에 헌책방과 알라딘 서점에 들렀어요. 헌책방에서 책 세 권, 알라딘 서점에서 책 네 권(두 권은 이미 ‘픽업 서비스’로 주문한 것입니다)을 샀고, 책방에서 책 두 권을 얻었습니다. 그 날 하루 동안 제 가방 안에 들어있는 책은 총 아홉 권이었습니다.

 

저의 첫 ‘우주지감’ 송년회는 푸짐한 음식과 책들로 채워진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즐겁게 마무리된 송년회에 몇 번 참석했지만, 그 중에 가장 즐거웠던 송년회는 ‘우주지감’ 송년회였습니다. 이 특별했던 날의 감동을 오래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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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31 11:28   좋아요 0 | URL
송년회가 주말에 했으면 새벽 4시까지 이어졌을 거예요.. ㅎㅎㅎㅎ

서니데이 2018-12-31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올해 두 개의 오프라인 모임 하시고, 알라딘 서재에도 글 쓰시는 바쁘고 좋은 한 해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좋은 일들 많은 2018년 보내셨나요. 내년에는 더 좋은 일들과 기쁜 일들 가득한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제 서재에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연말 따뜻하게 보내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cyrus 2019-01-01 14: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올해에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

syo 2018-12-31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 박사님, 언제나처럼 박사님이 있어서 든든한 알라딘의 2018년이었어요.
2019에도 한결같이 알라딘의 든든이로 활약해주시기를 바라면서,
2019에는 어떤 경로로든 얼굴 한 번 봐요ㅎㅎ
이게 2017부터 나온 말이니 햇수로 3년째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의 숙원사업이로구만요?ㅎ

cyrus 2019-01-01 14:26   좋아요 0 | URL
올해는 덜 아픈 알라딘의 튼튼이가 되고 싶습니다.. ㅎㅎㅎ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십니까? 그 날 스몰토크가 문 열진 모르겠습니다만 거긴 말고 편안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없어요. ^^

syo 2019-01-01 15:3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뭐 괜찮습니다. 아시잖아요. 저 시간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모자란 사람인걸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8-12-31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 소설집을 반복해 읽었습니다. 단편 하나가 짧아서 반복해 읽는 재미가 있더군요.
역시 반복 독서는 좋은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해에도 변함없이 좋은 이웃이길 바랍니다.

cyrus 2019-01-01 14:28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샐린저의 단편소설을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샐린저의 문학 세계를 분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ㅎ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

겨울호랑이 2018-12-31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8년 한 해동안 꾸준하게 활동하는 독서가의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cyrus 2019-01-01 14:39   좋아요 1 | URL
연희 돌보랴, 고양이 돌보랴 쉴 틈이 없을 텐데 책을 많이 읽고, 글 쓰는 겨울호랑이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올해도 많이 읽고, 건필하세요. ^^

카알벨루치 2018-12-31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 둘러보다 시루스박사란 책을 봤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Happy New Year!

cyrus 2019-01-01 14:40   좋아요 1 | URL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저를 조금이나마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목나무 2018-12-31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의미있는 송년회를 보내셨네요.
꾸준히 이어갈 그런 모임이라 그저 부럽습니다. ^^
cyrus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숨은 좋은 책 많이 소개해주셔요.^^

cyrus 2019-01-01 14: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설해목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카스피 2019-01-01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cyrus 2019-01-01 14:42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psyche 2019-01-01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함께 한 사람들과 이런 송년회라니. 정말 부럽습니다! 내년에도 cyrus 님의 수준 높고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9-01-01 14:46   좋아요 0 | URL
저의 지루한 글에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프시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blueyonder 2019-01-01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지난 한 해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9-01-01 14:48   좋아요 1 | URL
오히려 제가 blueyonder님께 감사합니다. blueyonder님 덕분에 최신 과학 정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과학 도서들을 소개해주세요. ^^

AgalmA 2019-01-0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부지런은 정말 우주지감? ㅎㅎ
독서모임에 페미니즘 모임에 서재 댓글의 달인까지ㅋㅋ
2019년엔 어떤 책 독파로 또 달려가실지 기대됩니다^^

cyrus 2019-01-02 13:37   좋아요 0 | URL
이번 달에도 읽어야 할 책이 많습니다. 읽어야 할 책 리스트의 50% 지분은 우주지감과 레드스타킹입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9-01-0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하 ~ 역시나 의미 있는 송년모임이었네요.
달궁도 마지막 모임을 가졌는데 저는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열심으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cyrus 2019-01-02 13:39   좋아요 0 | URL
달궁 멤버들은 지금도 뒷풀이 시작하면 새벽까지 달리나요? ㅎㅎㅎ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
 

 

 

아이슬란드는 인구 30만 명 안팎의 작은 나라지만 가진 것이 많고,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눈부시도록 하얀 만년설과 빙하, 지금도 활활 끓어오르는 화산들, 거기에 ‘밤하늘의 커튼’ 오로라까지 볼 수 있다.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밤하늘의 오로라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아이슬란드는 북극권 바로 아래에 있는 곳이라서 국토의 절반이 빙하로 덮여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실내 생활에 익숙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했고, 아이슬란드는 세계적인 ‘애서가의 나라’가 되었다. 온 국민이 책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슬란드에서는 1년 내내 책 관련 행사가 이어진다. 크리스마스 인기 선물로는 언제나 책이 1위를 차지한다.

 

내 독서 습관은 아이슬란드 사람들과 비슷하다. 휴일에는 방에 책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보다는 나 혼자서 노는 것(책 읽기)을 좋아한다. 휴일에 내가 주로 가는 곳은 도서관, 서점, 헌책방이다.

 

 

 

 

 

 

 

 

 

내일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모임 겸 송년회가 있어서 주말과 크리스마스에 가오싱젠(高行健)《창작에 대하여》(돌베개) 1부까지만 읽었다. 가오싱젠은 200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출신의 프랑스 작가다. 그는 극작가, 무대 연출가, 소설가, 화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 문화혁명이 일어난 이후에 가오싱젠은 마오쩌둥 정부에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 때문에 그는 중국당국의 밀착 감시를 받게 됐다. 당국의 감시가 심해지자 가오싱젠은 1987년에 중국을 떠나 이듬해에 정치적 난민 신분으로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고 곧이어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창작에 대하여》는 가오싱젠이 생각하는 ‘문학’, ‘소설’, ‘미학’, ‘예술’의 의미를 정리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술과 문학이 국가 권력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되며, 예술가와 작가 개인의 독자적인 목소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예술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돌베개, 2013)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 심상욱 《J. D. 샐린저 생애와 작품》 (동인, 2011)

* 김성곤 《J. 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살림, 2005)

 

 

 

 

가오싱젠의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돼서 오랜만에 J. 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호밀밭의 파수꾼》(민음사)도 읽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은 여러 종이 있는데, 민음사 판본은 오역이 많은 편이다. 수중에 있는 번역본이 민음사 판본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읽었다. 샐린저의 책을 펼친 이유는 샐린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된다. 1월 1일은 샐린저가 태어난 날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 읽을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추천했다. 올해 모임에 꾸준히 참석(9월에 딱 한 번 불참했다)한 덕분에 문학 분야 책 1권과 비문학 문야 책 1권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됐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내년 1월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하면서 추천했다. 1월은 샐린저의 달이다. 1919년 1월 1일에 태어나 2010년 1월 27일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한 두 권의 책(나머지 한 권은 《여성의 진화》)을 포함해서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후보 도서는 총 15권이다. 한 사람당 4권의 책을 골라서 투표할 수 있고 투표 결과에 따라 총 8권의 책이 내년에 읽게 될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로 결정된다. 12월 20일부터 24일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사흘 동안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 9표를 받았다. 당연히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여성의 진화》(에이도스)에 한 표씩 투표했다. 아직 결정이 난 건 아니지만, 내년 1월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확실하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아홉 가지 이야기》 (문학동네, 2004)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문학동네, 2004)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프래니와 주이》 (민음사, 2015)

 

 

 

지난주부터 어제 크리스마스까지 샐린저의 작품들과 샐린저의 문학론을 정리한 책들을 연달아 읽었다. 예전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샐린저의 진가와 그동안 과장되어 왔던 평가에 가려진 ‘한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달에는 샐린저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써보려고 한다. 일단 1월 1일에 《호밀밭의 파수꾼》 리뷰를 공개하는 것이 내 첫 번째 과업이다. 몇 년 전에 《호밀밭의 파수꾼》 리뷰와 샐린저의 소설들에 대한 감상문을 쓴 적이 있지만, 지금 이 두 편의 글을 다시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주관적인 해석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과거의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한 권만 가지고 샐린저를 단정적으로 평가했다. 샐린저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아홉 가지 이야기》(문학동네), 《프래니와 주이》(민음사),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문학동네)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을 읽어야 하는데, 그 중에 ‘글라스 일가(Glass Family)’ 사람들이 나오는 작품들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 샐린저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인 『하프워스 1924년 16일』까지 포함하면 읽을거리가 많다. 샐린저를 알기 위한 독서 코스는 《호밀밭의 파수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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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8 16:49   좋아요 0 | URL
오늘 새벽 12시 조금 넘어서 송년회가 마무리되었는데, 잠을 늦게 자서 그런지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ㅎㅎㅎㅎ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ㅎㅎㅎ 그래도 어제 정말 즐거웠어요. ^^

페크pek0501 2018-12-2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인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디오로 들었어요. 한 달 가량 쭉 들었었죠.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내년 1월에 읽을 책으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을 택했어요. 이미 사 두었고 6백쪽이 넘어서 부담은 되지만 올해 9백쪽 가량의 위대한 유산 1, 2를 읽었으니 그것도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있어요.
내년 1월 1일의 리뷰, 파이팅입니다.

cyrus 2018-12-31 11:06   좋아요 1 | URL
주말에 놀아서 글을 쓰지 못했어요. 1월 1일에 글을 공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혐오와 매혹 사이 -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
이문정 지음 / 동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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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똥. 정량 30g.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됨.

 

 

 

1961년 이탈리아의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는 자신의 똥을 90개의 깡통에 담아 ‘예술가의 똥’이란 이름을 붙여 전시했다. 이 전시 작품(?)은 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매겨져 팔려나갔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고 싶어질 것이다. “이게 미술이냐?” 당신이 『예술가의 똥』 앞에 서 있다면 그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할까? 우선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미술을 이것저것 떠올리다가 그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미술 작품을 시각적 쾌락을 주는 대상으로만 생각해서 이런 지저분한 미술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알 수 없는 작품을 하물며 내 삶과 관련한 그 무엇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것, 사진을 찍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작품이다. 그래서 고전미술은 이해가 쉽다. 반면 현대미술은 그렇지 않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두개골(데미안 허스트), 박물관 전시실 바닥에 놓은 침대(트레이시 에민), 심지어 예술가의 똥도 미술 작품으로 인정된다. 현대미술은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 ‘의미’에 방점을 찍어 해석하고 분석하며, 관객 스스로 이해해야 하는 조형 세계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대미술, 즉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한 지점을 차지하는 예술가들은 작품의 생경함 때문에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이들의 작품은 산뜻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추하고, 혐오스럽고, 엽기적이다.

 

《혐오와 매혹 사이》는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현대미술을 집약한 책이다. 작년 말에 나온 《불편한 미술》의 개정판이다(알라딘에는 구판에 관한 정보가 없다). 비위가 약한 독자는 책을 펼치기 전에 읽을지 말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책에 실린 도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시각적 충격’을 주는 미술 작품의 도판 몇 점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포르말린 수조에 동물 사체를 넣은 작품을 선보였다. 마크 퀸(Marc Quinn)은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모은 것을 굳혀 자신의 두상을 만들었다.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는 시체 안치소에 있는 시체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작품을 선보였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거부감과 두려움. 피하고 싶지만 어쩐지 끌리는 두 갈래 길에 직면한다.

 

인간의 혐오 심리를 분석한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이론을 연구한 저자는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섹스, 괴물 등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재들이 어떻게 현대미술에서 표현되는지 소개한다. 작가들이 유독 추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 있는 현실의 이면을 바라보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인간에게 있어 혐오를 유발하는 대상은 단지 아름답지 않거나 청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떤 대상이 적절한 자리에 있지 않으면 기성 체계나 기존 정체성에 벗어난 것이 된다. 크리스테바는 혐오를 유발하는 대상을 ‘애브젝트(abj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불쾌한 애브젝트를 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어도 우리가 죽지 않는 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이를테면 우리는 몸을 씻을 때마다 때를 민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때는 목욕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소중한 몸의 일부였다. 때는 애브젝트다. 우리는 이 애브젝트를 벗겨 내서 몸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씻어도 때는 다시 생긴다. 역설적으로 애브젝트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기호이다.

 

데미안 허스트와 안드레 세라노 등은 ‘죽음’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들은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무관심과 냉소로 끔찍한 살육을 보여주는 작품 이면에 어떤 숭고함과 비장함이 어려 있어 죽음에 대한 경고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대미술은 작가의 다양한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형 세계이다. 이 조형 세계에는 과거 미술의 단골 인물이었던 신, 영웅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주인공은 작가와 관객이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것, 죽은 것, 폐기물도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된다. 과거 미술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조형 세계라면, 현대미술은 관객들에게 더럽고 불편한 ‘현실’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조형 세계이다. 현대미술에서의 애브젝트는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상태이자 물체들이다.

 

이 책을 본 독자들은 엇갈린 반응이 내놓을 것이다. 어떤 독자는 ‘그래도 이걸 미술이라고 하다니. 요즘 예술가들은 미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독자는 ‘아름답지 않지만, 계속 보니 이 작품이 관객에게 무얼 전달하고 싶은지 알겠어’하면서 수긍할 것이다. 전자의 반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움이 동시대 미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사실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알려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당대 사람들은 ‘추한 그림’이라고 놀리면서 비난했다. 지금 난해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이 시간이 좀 지나지 않으면(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으로 새롭게 인정받을지 모른다.

 

 

 

 

 

※ Trivia

 

* 103, 105쪽

허스트는 주물을 떠 백금으로 만든 해골에 1106.18캐럿에 달하는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어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빛나는 투명한 수정으로 조각된 고대 아즈텍의 두개골의 연상시킨다.

 

→ 고대 아즈테카인이 만들었다는 일명 ‘크리스탈 해골’은 영화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한 불가사의한 유물로 알려졌으나 오래 전에 ‘가짜’로 판명되었다.

 

 

* 221쪽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1819)이다.

 

→ 작품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1866년에 나온 작품이다. 1819년은 쿠르베가 태어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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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21 2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에다가 이런 댓글 달기가 좀 웃기긴 하지만, 시루스 박사님.
2018 당연한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구요.
2018 레드스타킹 만나서 인생 이모작(??) 시작하신 것도 축하드리구요.
2018 하여간 축하드려요 ^-^

카알벨루치 2018-12-21 23:51   좋아요 0 | URL
웃긴다 쇼님 ㅋ

cyrus 2018-12-23 15:53   좋아요 1 | URL
인생 사모작입니다. 일반인 최 씨, 알라딘 cyrus, 레드스타킹, 우주지감... ㅎㅎㅎㅎㅎ syo님도 축하드립니다. 서재의 달인, 댓글왕 2관왕이네요.. ^^

2018-12-2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5:56   좋아요 0 | URL
깡‘똥’을 왜 90개나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많이 팔려고 만든 거겠죠? ㅎㅎㅎㅎ

2018-12-2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6:01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예술가의 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겁니다. 가령, <예술가의 똥>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거나,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겠죠. 이러한 여러 가지 반응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미술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관객의 반응을 거부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12-24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박사님, 메리 크리스마스^^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 늘 우리에게 큰 도전 계속 주시길 바랍니다 시루스박사님 뵈면 체호프와 전쟁과평화가 생각납니다 ㅎㅎ 늘 감사해요

cyrus 2018-12-25 08:41   좋아요 1 | URL
메리 크리스마스~ 카알벨루치님처럼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 올해도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18-12-25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탄절이네요...

저도 싸이러스님 덕분에 램프의 요정
에 안착할 수 있었네요 ㅋㅋ
아무도 찾지 않는 블록 시절에도 꾸
준히 덧글도 달아 주시구...

감사하고 메리 크리스마수입니다.

cyrus 2018-12-26 17:16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의 진가를 알아 봐주는 알라디너들이 늘어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레샥매냐님이 알라딘에 활동하지 않았으면 독서 욕구가 많이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

서니데이 2018-12-25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크리스마스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어제보다는 덜 춥지만 날씨가 차갑습니다.
따뜻한 성탄절 휴일 보내시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