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나남 셰익스피어 선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성일 옮김 / 나남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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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왕관은 내어 놓겠지만, 내 슬픔은 언제나 내 것이야. 

내 영광과 내 통치권은 자네가 탈취할 수 있겠으나, 

내 슬픔은 안 되지.   나 언제나 슬픔을 거느리는 제왕이니까. 

-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4막 1장 중에서 리처드의 대사 중에서, pp 139 -

 

   

  리처드 2세, 그는 누구인가? 

 

 

플랜태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  리처드 2세 (1367~1400)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국왕들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을 많이 집필하였다. <리처드 2세>는 그가 쓴 사극 중에서 집필 시기상으로는 다섯번째 작품이지만 작품 배경 시기로 구분하면 <리처드 2세>가 가장 앞서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 역시 종종 무대에 올려지고 TV 드라마로도 각색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4대 비극과 희극에 비하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의 사극을 읽기 위해서는 영국의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도 필요하다.   영국 왕조의 직계는 여러 가지 가문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실로 복잡하다.   영국사에서 등장하는 왕가로는 처음에  북유럽에서 건너온 노르만 족의 정복 아래 시작된 노르만 왕조로 시작해서 플랜태저넷 왕가, 랭커스터 왕가, 요크 왕가, 튜더 왕가, 스튜어트 왕가, 하노버 왕가 그리고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재임하고 있는 지금의 원저 왕가로 이어져 있다.   

리처드 2세는 플랜태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이다.  자신의 할아버지인 에드워드 3세(1312~1377)의 뒤를 이어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아직 미성년이었기에 리처드 2세의 숙부인 랭커스터 가의 공작 존 오브 곤트(1340~1399)가 섭정에 나섰다.    존 오브 곤트를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실정이 시작하면서부터 나라 안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의 군비 조달을 위해 정부는 전주민에게 인두세를 부과함으로서 농민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  이는 결국 와트 타일러의 반란이라는 영국 사상 최대의 농민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어린 리처드 2세의 재임 기간 중 최초로 큰 위기를 맞았지만 반란의 주도자의 입장을 타협하는 거짓 약속을 제시하다가 그를 처형시킴으로써 반란세력을 무마시켰다.  

성년이 되면서 리처드 2세는 자신의 왕권을 더욱 강화하였다. 자신의 왕조를 세우겠다는 개인적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존 오브 곤트의 동생인 토머스 우드스톡(1355~1397)을 비롯한 왕권에 도전하는 입장을 보인 의회파와 청원파 소속 귀족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청원파였던 존 오브 곤트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촌인 헨리 볼링브로크(1366~1413)마저 추방한다. 얼마 후 존 오브 곤트가 사망하자 리처드 2세는 헨리 볼링브로크에게 넘어갈 랭커스터 가의 모든 재산과 영지를 몰수하였다.   아직 정국이 불안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적을 제거했다고 안심한 리처드 2세는 아일랜드 침략을 위해서 잠시 영국 조정을 비워두었다.   이는 리처드 2세가 몰락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반란의 기회만을 엿보던 의회파에게 틈을 준 것이나 다름 없었고 헨리 볼링브로크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이 영국으로 침입하여 왕좌 찬탈에 성공한다.  

뒤늦게서야 자신의 위기를 알게 된 리처드 2세는 제대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헨리에게 굴복하게 되며 정식적으로 폐위당하고 만다.    그는 체포되어 폼프레트 감옥에 유폐되어 있다가 감금된 지 4개월 후에 굶어 사망하게 된다.  

리처드 2세의 죽음은  헨리 볼링브로크 아니 헨리 4세의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랭커스터 왕가가 영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무능한 군주' 리처드 2세 vs '마키아벨리즘 군주' 헨리 볼링브로크  

다음과 같은 리처드 2세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인 사실만 이해할 수 있으면 <리처드 2세>를 수월하게 읽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리처드 2세>의 내용이 꼭 역사적 사실에만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사극의 시대적 배경은 리처드 2세가 폐위당하기 전의 시기를 그리고 있다.  오늘날에도 리처드 2세의 죽음에 대해서 다양한 설이 존재하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는 작품의 비극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감옥 안에서 헨리에게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하는 걸로 그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당연히 리처드 2세가 주인공이지만 이 사극을 읽거나 혹은 연극을 보게 된다면 리처드 2세와 헨리 볼링브로크, 뚜렷한 대비의 성격을 가진 두 인물을 비교해서 보는 것이 좋다. 

역사 속에서의 리처드 2세는 전제군주를 꾀한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극 속에서는 국고를 탕진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민중에게 인기가 없는 군주로 그러져 있다.    2막 1장에서는 리처드 2세를 겨냥한 신하들의 뒷담화가 이루어져 있다.

 

무거운 과세로 평민들의 재산을 약탈하였고, 

그네들의 인심을 잃었소.  귀족들에게 해묵은 

분쟁에 대해 벌과금을 부과했고, 인심을 잃었소. 

- 같은 책, 2막 1장 중에서 로스의 대사, pp 67 -

 

3막 2장에서의 리처드 2세는 우리가 생각했던 강인한 군주의 모습과는 상반된다. 헨리가 반란군을 이끌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 다가오게 될 자신의 최후에 대한 불안감에 쉽게 휩싸이는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어디가 무슨 상관이냐?  위로될 말은 하나도 없구나. 

무덤과 지렁이와 묘비명 이야기나 하자꾸나.  

(중략) 

내가 땅에게 남겨줄 게 또 무엇 있단 말인가? 

짐의 국토, 짐의 생명, 그 모두가 다 볼링브로크의 것. 

그리고 짐이 짐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죽음뿐 

(중략) 

제발, 내 이르노니, 우리 땅바닥에 주저앉아  

군왕들의 죽음에 얽힌 슬픈 이야기나 하자꾸나.  

 

- 3막 2장 중 리처드 2세의 대사, pp 104~105 -

  

결국 그는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쉽게 헨리에게 왕관을 넘겨주게 된다. 폐위당한 이후 리처드 2세의 심리는 최악의 비극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미쳐버리고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전형적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착란의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  (5막 5장) 

반대로 헨리 볼링브로크의 모습은 애초부터 전형적인 군주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무능한 리처드 2세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작품 해설에서는 리처드 2세의 모습은 마키아벨리가 강조하던 전형적인 군주형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하고 있다. (작품해설, pp 197) 

오히려 헨리 볼링브로크야말로 마키아벨리즘적 군주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헨리가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왕의 약점을 잡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간사한 인물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마키아벨리즘을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지리 않는 반도덕적, 비열한 군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왜곡된 내용이다.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운(fortuna)와 역량(virtu)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운' 이란 군주가 된다거나 또는 군주로서의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필요한 타인의 호의와 정세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행운을 의미하며 '역량' 은 쉽게 말하면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이끌줄 아는 '능력' , '용기' , '결단력' 등을 의미한다.   

리처드 2세의 무던한 현실적 대응 때문에 폐위라는 운명을 스스로 좌초한 것도 있지만 헨리 볼링브로크가 반란군을 이끌어 왕권을 찬탈하는 과정을 보게 되면 운과 역량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처드 2세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를 포기한 의회파들의 호의에 힘입어 헨리는 반란을 도모할 수 있었으며 그는 처음부터 리처드 2세의 권력을 빼앗기 위한 목적만으로 반란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존 오브 곤트의 죽음 이후로 랭커스터 가의 재산과 땅을 강제적으로 몰수당한 것을 리처드 2세로부터 되찾기 위한 것이다.   

 

제 선친 소유의 기물은 모두 압류되어 팔려 버렸고, 

그뿐 아니라 모두가 다 엉뚱한 데로 가 버렸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신민의 한 사람이고, 

제 권리를 주장합니다.  법적 도움을 받을 길이 막혔고, 

따라서 저는 적자로서의 재산 상속에 대한  

저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입니다.  

 

- 2막 3장 중 헨리 볼링브로크의 대사 중에서, pp 89 -

 

억울하게 실추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반란을 주도한 헨리의 모습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에 등장하는 루셔스 앤드로니커스를 연상케 한다.  뚜렷한 명분과 목적 의식이 있었기에 헨리는 추방당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결단력을 유지했으며 그 덕분에 민심을 잃어버린 왕권을 타파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길 수 있었다.  

  

  

  이 사람을 보라, 권력을 누려본 자의 모습을...  

   

 

조르주 루오 <늙은 왕>  1937년 

 

셰익스피어가 리처드 2세를 무능한 군주로 묘사하기 위한 의도로 집필했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리처드 2세>를 무능한 군주가 몰락하는 과정의 이야기로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헨리 볼링브로크를 통해서 군주로서 갖춰야할 덕목을 강조한 것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및 비극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작품 속 권력자들의 모습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다거나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인해서 내적 번민에 빠져 자괴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 리처드 2세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조부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야했던 리처드 2세는 자신의 머리 위에 놓여있는 왕관과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신하들을 보면서 평생 권력을 누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금소총 권력자들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번에 잡은 권력은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하는 법이다.  거대한 왕국을 자랑하던 왕이 병이 들어 죽으면 왕국은 분열하게 되고 권력 집착에 기인한 자만심 때문에 외부로부터 왕권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리처드 2세는 와트 타일러의 반란으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겪게 되지만 다행히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그토록 믿어왔던 내부 조직에서 비롯된 정치적 위기만큼은 그가 군주로서 극복하기에는 어려웠다.  젊고 생경한 리처드 2세 입장에서는 말이다.  

이미 상황을 역전하기에 어렵다고 판단한 리처드 2세는 자신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권력의 무상함 그리고 권력을 갖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권력자 특유의 불안감에 시달리는데 제4막 1장에서의 거울 앞에서 한탄하는 리처드 2세의 대사와 모습은 권력의 무상함과 권력자라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회한을 더욱 잘 표현해주고 있다.   

 

아, 거울도 아첨을 하는구나. 

나 한창 좋은 세월이었을 때 날 따르던 무리처럼, 

거울도 날 속이는구나.  이 얼굴이,  날이면 날마다 

왕실 지붕 아래에서 일만 명을 거느리던 바로 그 얼굴인가?   

(중략) 

부서지기 쉬운 영광 이 얼굴에 빛나는구나. 

이 얼굴도 영광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 -  [거울을 바닥에 집어 던진다] 

저것 보아,  일백 개의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걸.  

말씀 없으신 임금,  잘 새겨 두시오,  이 장난의 의미를  

내 슬픔이 내 얼굴을 얼마나 빨리 깨드렸는지.  

 

- 4막 1장 리처드의 대사 중에서, pp 143~144 -

  

한때 '왕관을 써본' 리처드 2세는 이제 막 '왕관을 쓰기 시작한' 헨리를 향하면서 거울을 깨뜨렸다.    거울에 비춰진 리처드 2세는 화려한 군주의 모습이지만  그것은 외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권력을 상실한 리처드 2세는 거울을 통해서 그동안 권력에 기대어 자만했던 자신의 어리석었던 모습, 즉 내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게 공들여 얻은 권력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아이러니한 권력의 존재이다.  경험의 진리를 새로운 권력자인 헨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헨리는 거울을 깨뜨린 리처드 2세의 행동을 본인의 허상을 깨드린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4막 1장)      하지만 이미 권력의 달콤함을 누려본 자의 진리는 틀리지 않았다.  헨리 역시 수차례의 전쟁과 반란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왕권을 이을 방탕한 아들(훗날 헨리 5세가 됨)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였다.   이게 다 권력에 의해 생길 수 밖에 없는 권력자가 겪어야 할 인과적인 경험들이다.  

자리가 지도자를 만든다. 하지만 그도 결국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에 몸을 떨고, 공허해하고 좌절하며 번민한다.  <리처드 2세>에는 평범한 인간 혹은 권력과 명예를 누리게 될 권력자의 고뇌와 자질 그리고 삶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P.S>  

1) 이번에 나남출판에서 셰익스피어 선집이 출간된다고 한다.  선집 1차분 번역으로 <리처드 2세>와 <줄리어스 씨저>가 발간되었다.  추후 언제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근간 작품으로는 널리 읽혀지고 있는 4대 비극<리처드 3세><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베니스의 상인><폭풍> 총 10권 출간 예정이다.  

2) <리처드 2세> 말미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영국 왕가(랭커스터, 요크, 튜더 가)의 가계도가 실려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읽기 전에 참고하면 좋은 유용한 자료다. 

3) 나남출판의 셰익스피어 선집은 이성일 연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아무래도 근간 10권 역시 이성일 교수가 번역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일 교수는 자신의 번역을 실제 연극 무대에 염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원작의 시행 전개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였으며 원문 특유의 리듬을 살리는데 배려했다. (참고: 옮긴이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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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1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잘 몰라서 페이퍼를 읽고도 가계도를 그리기 힘들지만 어딜가나 권력의 마력은 거기서 거기인가 봐요. 셰익스피어는 널리 알려진 몇몇 빼곤 대부분 희곡인가요? 너무 많아서 제목과 내용만 보고도 한 시간이 가더라구요.ㅎㅎ

나남출판에서 나오는 건 선집인가 봐요. 저는 옮김까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나온다니 어쩐지 반갑네요.^^

cyrus 2011-08-17 22:00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도 비극과 희극이 어떤건지 구분이 안 가요. ^^;;
사실 영국의 왕들의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생각보다 많아요.
예전에 국내에 방영되었던 영드 덕분에 알려진 헨리 8세 이외에는
정말 남의 나라 국왕 이야기들이에요.

구체적인 발간 계획은 모르겠지만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작품들 위주로 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

마녀고양이 2011-08-1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거울'이라는 대상에 필이 꽂힌단 말이죠.

시루스님, 아이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벙긋 웃기 시작하는 때가
자아 의식이 생기기 시작하는 때라는거 아세요? 침팬지는 거울 놀이를 좋아하지만
사자 새끼는 거울을 가져다주면 또다른 녀석인줄 알고 덤비게 되죠.

리처드 2세의 거울에 대한 독백을 들으니 다시 '거울'에 대해
심상을 모아놓은 책이 없을까 궁금해저버려요. 저, 진짜 읽고 싶거든요.

cyrus 2011-08-17 22:04   좋아요 0 | URL
저도 문학 작품 속에 거울이 언급되는 내용이 참 인상깊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이상의 거울이랑,, 제목이 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에서도 잠깐 거울이 등장한 것도 있었는데,,

저도 급궁금하네요,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울에 대해서요.
기회가 된다면 페이퍼로 작성해보고 싶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8-1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남에서 나오는 것이 10권이라고 하면 전집 같습니다.유명 출판사에서 기획하는데 굳이 선집으로 끝낼 것 같진 않네요.

cyrus 2011-08-18 23:58   좋아요 0 | URL
일단 근간 리스트에는 총 10권의 작품이 있던데,, 이왕이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콜로서스 2011-08-2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책 읽어보고 싶어요.
 
현대사 아리랑 -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김성동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민족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꽃다발도 무덤도 없이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이 땅 위를 떠돌고 계신 어르신들 이야기이다.

 

  독립유공자 인정, '하늘의 별 따기' 

8.15 즈음을 맞이하게 되면 언론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기사들을 보게 되면 독립유공자 선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해방을 맞은지 66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잃어버린 선조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고군분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보훈처가 죽산 조봉암(1898~1959) 선생의 독림유공자 선정 결정을 또다시 보류하여 적잖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조봉암 선생은 이승만 정부 시절에 진보당 사건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씌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올해 초에 재심을 통해서 5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되어 오랫동안 꼬리표가 자리잡은 왜곡된 누명을 떼어낼 수 있었다.  

그동안 공산주의자라는 오해 때문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받지 못했기에 이번 국가보훈처의 결정은 조 선생의 유족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 초 조 선생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수 있게 된 재심 결과와 배치되는 상반된 결정이다.   조봉암 선생은 이번에도 무슨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일까?  

보훈처 측에서는 조 선생의 과거 공산주의적 행적이 서훈 심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다만 일제 말기 때 부적절한 행위가 확인되어서 독립유공자로 선정할 수 없었다면서 보류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의 퇴색이 짙었던 1941년에 조봉암 선생의 이름으로 국방헌금 150원을 기부한 사실을 그 당시 매일신보 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매일신보 단 한 건의 기사 때문에 무기한 보류를 결정한 것이다.   

이번 보훈처의 심사 과정과 결정은 애매모호하다.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에 대해서는 복권됐다는 이유만으로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해 준 최근의 결정과 비교하면 조 선생의 보류 결정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방헌금 사실이 있다고하더라도 올해 복권되었으니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줘야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국방헌금 기부한 사실만 가지고 조 선생이 친일행위 그리고 변절자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 선생 경우는 친일 행위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심사가 보류된 사례이지만 지금까지도 조 선생과 같은 수많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여전히 독립유공자로서 인정을 못받고 있다.  그 중에는 몽양 여운형 선생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심사의 기준이 불공평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보훈처 측에서는 김영삼 정부 이후부터는 이들에 대해 해방 이후 북한과 관련이 없다는 전제하에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있다고 반박하였다. 즉, 독립운동가들의 사회주의 노선 역시 그 당시 독립운동 방식의 일환이며 해방 이전의 사회주의 행적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유족들이 내세우는 자료라는게 전문성이 부족해서 입증하는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보훈처가 내세우는 심사 자료에도 한계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작성된 재판 기록이 포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 이전의 사회주의 행적에만 심사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보훈처의 입장에도 문제가 있다.  해방 이후의 사회주의 행적이 단지 국가 정체성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심사 결정에 불리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거의 이면에는 이승만 정부 시절이 만들어낸 반공 헤게모니의 망령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나친 과장에 불과한 것일까?   

 

  

   이념의 갈등에 희생된 두 민중 해방자, 조봉암과 김원봉   

<만다라>의 소설가 김성동은 <현대사 아리랑>이라는 책 한 권에 그동안 민중의 역사 속에서 떠돌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뻔한 독립운동가 및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을 모았다.  이들의 행적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인생을 바쳤지만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이념 갈등의 역사 앞에 희생되어야만 했던 '어르신들' 이야기이다.  

그래서 <현대사 아리랑>에 소개된 독립운동가 및 예술가들은 근현대사를 배웠다던 학생들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생소하다.   또 절반의 인물들 중에는 해방 이후 스스로 북한으로 향한 사회주의자들도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패망으로 갑작스레 독립을 맞이한 이후 급격한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던 조국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나라 내부의 안정화 및 통일할 수 있는 방편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 이들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조봉암 선생처럼 민중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을 위해서 관념적인 이데올로기에 치중한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 중에 조봉암과 김원봉의 삶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뚜렷한 독립 운동의 공적이 있음에도 불과하고 남한과 북한, 이념으로 인해 갈라 돌아서버린 두 나라로부터 명예를 인정받기는커녕 버림 받아야했던 비극적인 인물이다.  

조봉암과 김원봉. 두 사람의 이름 속 '봉' 은 '받들 봉(奉)' 자를 쓰고 있다.  이들의 호에도 공통적으로 '뫼 산(山)' 자가 들어가 있다.  출생년도도 두 사람 다 1898년이며 남조선과 북조선에서 장관에 부임하면서 해방 이후에도 조선의 안정화를 위해 이바지하였다,  (조봉암은 농림부 장관, 김원봉은 남조건의 국방장관과 동등한 국가검열상)   그러나 두 사람은 이념의 갈등에 눈이 먼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조봉암은 남조선에서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사형당했으며 김원봉은 북조선에서 불었던 김일성을 비판한 연안파 제거의 피바람에 휘말리면서 숙청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의 인생에는 공통적인 악연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장택상(1893~1969)이다. 해방 이후 수도경찰청장 시절에 김원봉을 체포하기도 했으며 이승만 정권이 수립하면서 초대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하여 반공투쟁에 앞장섰다.  그리고 국민장을 치러 국립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조선의 '봉황새' 가 되지 못한 비운의 정치가, 조봉암

 

 

죽산(竹山) 조봉암 (1898~1959)   

 

죽산 조봉암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드라마틱하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조봉암은 원래 이름의 '봉' 을 '봉황새 봉(鳳)' 자를 쓸뻔했다.  사연은 이렇다.  조봉암의 어머니는 봉황새가 나오는 태몽을 꾸었는데 처음에는 봉황새 봉 자를 쓸려고 하다가 평생 가난한 삶을 살았던 부모는 둘째 아들의 이름이 너무 엄청난 것 같아 그냥 '받들 봉' 자로 썼다.    

봉황새는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여긴다. 예젼부터 높은 벼슬의 명칭이나 평화로운 세상을 비유하는 표현 속에는 이 봉황새를 상징하는 봉(鳳) 자가 포함되었다.  만약에 어머니가 둘째 아들의 이름에 봉황새 봉 자를 썼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펴보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그의 불우했던 삶을 생각하면 이름 작명부터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다.   

절은 시절, 3.1 운동 때 참여하기도 했으며 사회주의야말로 조선이 독립할 수 있는 원동력 그 이상으로 모든 조선 민족들이 잘 살 수 있는 완전한 진리라고 생각하여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당시 남조선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지휘하던 박헌영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서 지도노선을 비판함으로써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노선과의 거리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봉암은 '반노반자(反勞反資)' 라는 정치이념으로 전향하였다.    

이승만 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에 역임할 정도로 사회주의 노선과 결별한 조봉암의 정치적 선회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그가 우익 진영으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이 내용 역시 조봉암에 대한 왜곡된 역사적 인식 중 하나이다.

소련의 지배 하에 통제당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면서도 자본계급의 독재로 이루어진 정책도 거부하는 순전히 조선의 민중을 위한 민족주의적 정치적 행보였다.  조봉암은 박헌영의 노선처럼 지하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  좀 더 민중을 위한 현실적인 개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공과 단독 정부를 고집하는 이승만 정권의 막강한 권력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민당으로 대표되는 이승만 정부는 조봉암으로 대표되는 반한민당 세력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 조봉암을 자신들의 정치적 터전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조봉암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호랑이 굴 속에 제 발로 들어가게 된 셈이다.  

민족을 위한 정치적 행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은 그를 '배신자' 라 규정하였으며 남조선에서는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팽팽한 이념의 갈등 사이에서 그 어느 누구도 환영받지 못한 입장이었다.   이승만 정부의 '눈엣가시' 인 조봉암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서 정부가 내세운 농민정책에 반대할 정도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갔다.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 1952년과 1953년에 두 차례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정도로 승승장구하였다.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 번번히 낙선했지만 지지율에서만큼은 이승만보다는 앞섰으며 온갖 부정으로 점칠된 당시 선거 과정을 생각하면 조봉암의 존재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만큼 민중으로부터 인정받던 정치가였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모습 (1958년)

  

조봉암은 낙선의 굴복 속에서도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내건 진보당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여기서도 반노반자 이념이 그래도 진보당 창당에도 적용되었다.  공산독재와 친미수구적인 북진통일이 아닌 민주화의 개혁을 통한 평화통일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점점 세력을 확장되어가는 조봉암의 진보당 활동을 가만히 있을 이승만 정부가 아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는 죄역을 만들어 그를 체포하는 동시에 진보당은 오래가지 못한 채 해산되었다.  조선을 통치할 수 있었던 정치가에서 한순간에 간첩이 되어버렸다.  정치적 모략이 만들어낸 재판으로 인해 조봉암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원대한 꿈의 날개를 펼쳐보지 못한 채 사형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였다.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 김원봉  

 

 

 약산(若山) 김원봉 (1898~1958?) 

 

이 책의 부제는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이다.  민족 해방을 위한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명예의 '꽃다발' 이라는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무덤도 없이 떠돌아야하는 불행한 망령들이다.    특히 약산 김원봉은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늘날에도 공적이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중의 한 사람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의열단을 조직한 무정부주의적 투쟁 노선을 취한 독립운동가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 행적만 가지고 그의 행적을 높이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아니, 의열단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단장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교과서에 단 몇 줄로 거론되기에는 남한에서의 그의 평가는 너무 인색하기만 하다.  그와 함께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여 일본의 관공서나 고급 관리, 심지어 천황에게까지 폭탄을 던지던 김상옥, 김익상, 박재혁, 김지섭 열사는 공적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아마도 김원봉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해방 이후에 펼쳤던 그의 사회주의적 노선 때문이리라.  

 

 

이육사 (1904~1944)

의열단원에는 저항시인 이육사도 활동하기도 했었는데 이육사의 일생을 그린 8.15 특집 드라마  

<절정>에 의열단의 단장인 김원봉이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 

 

의열단은 조국독립을 위해 과감하고 과격한 적극 투쟁을 통해 조선총독부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같은 일제 권력의 중요 근거지와 조선총독과 친일파 등 반민족적인 인물들을 암살대상으로 삼아 활동한 무력 독립운동 단체로 이름을 떨쳤다.  의열단원 중에는 저항시인 이육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과격하면서도 혁명적인 독립 운동은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할 정도로 일본 섬멸에 선봉으로 나섰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소속되어 활동하지만 임정 보수파들과의 갈등으로 임정과 결별하였다.   김원봉은 조선 민족 순수의 힘으로 독립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총과 폭탄을 든 무력 항일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의 뜻을 저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승리로 조선은 해방되었고 그 전부터 준비되어온 무장혁명군을 제대로 조직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였다.    

그 이후로 김원봉은 사회주의 노선으로 걷기 시작하였고 본인 스스로 월북하였으며 북조선에서 국가검열상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에 그의 이름은 공식 석상에서 사라져버린다.   그 당시 김일성을 비판했던 연안파에 연루되어 숙청되었다는 설과 명예로운 은퇴를 했다는 설 등 지금도 김원봉의 사망연도에 대해서 입증할만한 사료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김원봉은 김일성 세력에 의해서 권력의 각축장에서 밀려나간 것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혁명열사들이 안치된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그의 이름이 새긴 묘비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이름 없는 혁명가가 된 것이다.

 

    

  이들의 영혼을 어떻게 달래주랴 

조봉암과 김원봉 이외에도 그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가려졌던 독립운동가들이 최근에 역사가들에 의해서 빛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반공 이데올로기가 남아 있는 어두운 그늘을 이 한반도에 완전히 걷히지 않는 이상 수많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유족들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한 험난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반대로 자신의 위대한 업적은 부각시키고 이면에는 어떻게든 친일 행위를 덮어버리려는 친일파 또는 후손들은 허세를 부리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조국을 위해 몸바친 선조의 명예, 친일파의 후손은 선조의 옛 땅을 찾기 위해서 법정을 드나들고 있다.  그러나 두 집안의 후손의 표정의 명암이 엇갈린다.  사회주의적 또는 친일 행위 때문에 진정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반면에 친일파의 후손은 법정 공방 끝에 어마어마한 옛 땅을 되찾고야 만다.  이것이 해방된지 66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나에게는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 밖에는 없는 것이오. 그러데 나는 이 박사(= 이승만)와 싸우다가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오.  다만 내 죽음이 이 나라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물로는 내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오. 


- 사형당하기 전 조봉암의 마지막 말, <현대사 아리랑> 김성동, pp 299 - 

  

조봉암은 사형당하기 전에 자신의 죽음이 이념의 역사에 억울하게 밀려난 마지막 희생물이 되기를 바랬지만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혐오했던 친일파들에게 밀릴 정도로 영혼이 되어서도 또 다시 희생되어야 했다.   

역사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은 우리 스스로 국격과 정통성을 깎아 낮추는 꼴이다.  <현대사 아리랑>을 통해서 수많은 혁명가들의 업적을 알아주기에는 그리고 무덤 없이 떠도는 망령들을 달래기에는 부족하다.   지금도 역사가들이 잊혀져가는 혁명가들의 삶을 찾아내고는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어르신들이 하는 옛날 이야기로 뜰릴 뿐이다.

역사의 세월 속에서 비굴한 이들의 허세는 날로 커져만가는데 정작 양심적인 영혼들은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채 더욱 더 잊혀져가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 참으로 얄궂게 느껴진다.  

 

   

 

***님,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

 

 

 

* 내용 관련기사 

[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번번히 유공자 탈락…유족들 불만 팽배]  노컷뉴스 2011년 8월 14일 

[‘5공 비리’ 안현태 유해, 국립묘지에 기습 안장]  경향신문 2011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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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1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탁환의 소설 제목인 줄 알았어요. 저 좀...큭!>.<;;

cyrus 2011-08-16 22:04   좋아요 0 | URL
네, 소설 제목을 차용했어요. 제가 본의 아니게 낚시질을 했군요 ^^;;

마녀고양이 2011-08-1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루스님의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이런 글을 쓰려면 얼마나 노력과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할까 궁금해져요.
그리고, 이런 글을 쓰시는 시루스님은 어떤 직업을 가지시려나도 마찬가지로 궁금하구요.

음... 시사인이나 한겨레21의 기자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제 개인적 바람이예요!! 아하하!

cyrus 2011-08-16 22:08   좋아요 0 | URL
어제는 광복절이라서 집에 있었어요. 혹시 마고님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이육사 시인의 일생을 그린 특집극 <절정> 이외에는
TV는 볼 것도 없었고요,, 그렇다고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날(?)을
그저 노는 날도 보기에는 좀 그렇고,, ^^;;
그래서 서재 이웃분님이 주신 책을 읽었어요, 그게 바로
현대사 관련된 <현대사 아리랑>이었어요.

조만간 이웃분님들에게 받은 책들을 읽으려고 해요.
미루다간 못 읽을거 같아요. 책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요.. ^^

2011-08-25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자를 향한 번역자의 충고(?) 

 

 

 

마야꼬프스끼의 시는 확실히 차 한 잔 마시듯 읽을 수 있는 시가 아니다. 

그의 시집은 마음이 울적할 때, 혹은 잠 안 오는 밤에 뒤적거려보는 그런 책은 아니다.  

 - <나는 사랑한다> 머리말 [마야꼬프스끼의 시를 옮기며]  석영중, pp 6~7 -

   

책의 서문을 읽어가면서 이 문구를 보자마자 괜히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독자에게 향하는 번역자의 충고처럼 느껴졌다.      

 

 

 

 

 

 

 

   

 

 

마야꼬프스끼라면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구 소련에 활동했던 시인인데 1993년에 열린책들에서 세 권으로 그의 전집이 출간되기도 했었는데 오늘날에는 선집 형태로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  

으레 시라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읽혀지는 고상함을 느낄 수 있는 장르이다.  또는 마음이 울적할 때나 불면증에 시달릴 때 이를 달래주기 위해서 시를 읽기도 한다.  그런데 차 한 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읽을 시가 아니라니.   마야꼬프스끼가 쓴 시의 내용이 어떻길래 그런 것일까?

  

   

  젊은 시인의 죽음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끼 (1893~1930)

 

   

 

 

 

 

  

   

 

마야꼬프스끼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보게 되면 그 당시 소련이 소비에트 체제 전환으로 물꼬를 트고 있었던 시기다.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을 때, 1917년에 레닌과 볼셰비키 당이 주도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다.  수많은 러시아의 지신인들이 새로운 변화의 물결 속에 뛰어들었듯이 마야꼬프스끼도 소련에 밀어닥친 사회주의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릴리 브릭과 마야꼬프스끼

 

한창 피 끊는 혈기를 주체할 수 없는 젊은이였던 마야꼬프스끼는 심장 속에 품고 있었던 혁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무기 대신에 펜으로 표출한다.  실제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듯이 불같고 다혈질적인 성격이다.  당시 소련 문학계를 주름 잡고 있었던 보수적 소비에트 문학가들과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불행한 연애도 마야꼬프스끼를 더욱 더 고립하게 만들었다.  릴리 브릭과 그녀의 남편 오십 브릭과의 삼각관계적 동거는 연애 스캔들 사상 유명한 일이다.   결국, 현실과 사랑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마야꼬프스끼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고 만다.   젊은 시인에게는 실패한 연애 그리고 혁명의 현실이라는 삶의 무게감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한창 사회주의 사상이 꽃을 피우고 있는 소련 초창기 때에는 마야꼬프스끼의 선동시가 많이 읽혀졌을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 체제를 우의적으로 비판했던 조지 오웰의『동물농장』에 보면 시를 쓰는 돼지 미니무스가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미니무스는 동물농장의 독재자 나폴레옹(스탈린을 상징)을 칭송하는 시를 쓰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그를 마야꼬프스끼로 상징하고 있는 쪽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민음사, 도정일 '동물농장' 의 해설 편)

그러나 마야꼬프스끼는 문학을 통해서 소비에트 체제를 맹목적으로 찬양했던 것만은 아니다. 

문학의 성숙기에 이르게 될수록 소련의 행보는 본인이 원했던 세상이 아니었다.  레닌 사후, 세월이 지날수록 혁명으로서 순수성의 의미가 상실되어가는 소련 정부의 태도에 시인은 실망했던 것이다.    그는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정부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소련이 무너진 오늘날 마야꼬프스끼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엇갈려진다. 소비에트 시대의 두 시인 말고도 러시아 문학사에 언급이 되는 유명한 시인에는 뿌쉬낀과 네끄라소프, 레르몬또프가 있다. 이 3인방들과 함께 견주어 보면 마야꼬프스끼의 인지도와 문학적 평가에서 제일 뒤쳐진다.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러시아 사람들도 선동적인 정서가 강렬한 마야꼬프스끼의 시를 즐겨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독자들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한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조직한 일제 강점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예운동단체)의 문학을 즐겨 읽지 않듯이 말이다.  러시아 인들이 시를 읽는다면 차라리 차 한 잔 마시면 여유롭게 뿌쉬낀을 읽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야꼬프스끼가 자살한 지 62년이 지난 뒤, 그가 사랑하고 칭송했던 레닌의 거대한 동상이 무너짐과 동시에 자신의 문학적 평가도 이제 한낱 돌덩어리에 불과한 레닌 동상의 파편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마야꼬프스끼가 꿈꿔왔던 이상적 사회주의 세계는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함께 사라졌지만 활자로만 남아있는 시집은 지금도 생전에 그가 혐오했던 자본주의 시대의 도서관 서가에 자리 잡고 있으니 그의 기구한 인생만큼이나 문학의 운명도 기구하기만 하다.  

     

 

  강렬한 파도와 같았던 그의 삶 그리고 시


마야꼬프스끼 전집 1권에는 초창기 때 쓰여진 장시 6편, 단시 38편, 가족들에게 쓴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단시라고 명한다고해서 단순히 내용이 짧은 시가 아니다. 단시치고는 내용이 조금 길다. 편지는 대체로 가족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그나마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그러나 마야꼬프스끼의 시가 생소한 독자들에게는 읽기가 무척 불편할 수 있겠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였으며 전투적인 시는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마야꼬프스끼의 시에는 혁명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소련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간혹 쇼비니즘적인 경향도 보이게 된다. [우리는 믿지 않는다!]라는 시에는 노골적으로 레닌을 찬양한다. [브룩클린 다리] [브로드웨이] [마천루 해부도]라는 시에서는 당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미국을 비난하기도 한다. 


1권에서 소개되는 마야꼬프스끼의 초창기 시들은 1922년 발표 기준으로 표현 방식이 분명하게 나누어진다.  1922년 이전에 마야꼬프스끼는 당시에 유행하던 미래주의에 심취하고 있었다.   

 

 

움베르토 보초니 <창기병들의 돌진> 1915년 

 

미래주의의 모토는 과거의 전통을 파괴하고 역동성의 미(美)를 강조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마야의 초창기 시에서는 기존 문학에서 볼 수 없는 난해한 시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면에서는 정형화된 행과 열을 사용하고 있음으로써 아직까지는 문학의 전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1925년에 발표한 [우리는 믿지 않는다!]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해지고 보다 파격적인 형식의 시작(詩作)을 시도하고 있다.     

 

 

                             비처럼 퍼붓는다. 

그리고 파도는  

                             전해상의 중앙 집행 위원회에게   

승리의 순간까지  

                             폭풍의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노라.    

(항해)한다.

이제 승리의 순간이 찾아왔다ㅡ 

                                          물방울 소비에트 전권(全權)이 

(적도)를 에워싼다.

마지막 파도의 소규모 집회가

무언가에 관해
                             고상한 어조로  

                                                           토론을 벌인다. 

이제

                             깨끗이 찢겨진 대양이

                                                           미소를 지었고  

당분간  

                             고요와 평화 속에 빠져들었다.

나는 난관 너머를 바라본다.

                                         동지들이여, 전진하라!  

 

-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끼 <대서양> -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마야꼬프스끼의 시 전문 내용이다.  노어문학 전공이 아니다보니 실제로 원문에도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지만 우리가 많이 봐온 시의 형식이 아닌 들쭉날쭉한 형태이다.   

하나의 연에는 문장은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였으며 연과 연 사이의 행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전 시에서 볼 수 있었던 애매모호한 상징주의적 표현을 배제하는 대신에 작가의 주관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감정 진술의 노출이 잦아지고, 영탄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강렬한 시의 내용만큼이나 표현 형식도 강렬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시를 통해서 거대한 파도와 같은 마야꼬프스끼의 강인한 성격도 엿볼 수 있다. 비록 그의 시는 뿌쉬낀과 비교하면 문학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표현 형식의 시도에 대한 평가는 마땅히 받아야한다. 마야꼬프스끼 본인의 초창기 시와 그가 활동하던 동시대의 소비에트 문학이 사회주의적 구호 나열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과 비교해본다면 1922년 이후에 발표된 마야의 시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고무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기존 문학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행간의 파괴법은 정치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추도록 하고 있다.

   

 

  강철 언어의 연금술사
 

그의 시구에는 유난히 ‘철’ 과 연관된 단어가 많이 발견된다. 마야꼬프스끼는 강철의 파도와 같은 자신의 시를 통해서 앞으로 펼쳐질 사회주의 사회의 무한한 영화를 노래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도 ‘힘겹게 시간의 암석을 뚫고 묵직하게, 거칠게, 생생하게 살아남을 것’  이라고 자신감에 가득 찬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역사는 원대한 포부가 담긴 젊은 시인의 기대감을 저버렸으며 그의 시 역시 급변하는 시간의 암석을 뚫지 못했다. 

고대 연금술사들은 구리, 납과 같은 비금속으로 금과 같은 귀금속과 영원히 늙지 않는 영약(靈藥)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했던 방식은 과학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마야꼬프스끼가 꿈꿔왔던 사회주의 세계도 역사상 발전할 수 없는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현실적이면서도 냉정하게 마야의 문학적 평가에 걸맞은 별칭을 붙여준다면 영원히 번영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꿈꾸었던 ‘강철 언어의 연금술사’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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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1-08-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읽고 '금'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야꼬프스키는 '철'인가 보네요. 관심이 갑니다.

cyrus 2011-08-15 16: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dreamout님 ^^

마아꼬프스끼의 시가 선동적인 어조에다가 시를 읽을 때마다 강렬한
여운이 있어서 강철 같은 분위기가 났었어요. 저는 프리모 레비의 책은
아직 안 읽어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감은빛 2011-08-2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전에 종종 끄적이던
블로그 제목이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였어요.
시루스님 서재에서 마야꼬프스끼를 만나서 아주 반갑네요!
오늘은 집에가서 그의 시를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cyrus 2011-08-25 19:49   좋아요 0 | URL
마야꼬프스끼의 시가 전투적이면서도 읽으면 읽으수록
알 수 없는 힘이 생긴다고 해야될까요..? ^^;;
시도 좋지만 생전에 그가 가족에 보낸 편지글도 좋았어요 ^^
 
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여성들이 매월 주기적으로 겪는 월경.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치러야만 하는 이 생리 현상은 ‘여성으로 거듭나는 아름다운 불결함’ 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불쑥 맞게 되는 첫 생리, 초경은 여성 입장에서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초경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감춘 채 입밖에 내기를 꺼려한다.

여성의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성하지 못하거나, 부정타고, 불결하고, 재수없고, 더럽고, 귀찮은 등 부정적이고 금기시하는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여성 자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특히 '순결, 깨끗함' 을 강조하는 생리대 광고는 여성들로 하여금 월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부추기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이는 생리란 원래 불편하고 지저분한 것이라는 전제에 기인한다. 생리대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들을 보라.  한결같이 순결한 20대 여성들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말할 수 없는 것, 감춰야 되는 것, 부끄러운 것, 불결한 것.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한 여러 가지 월경에 대한 오해와 금기들이 형성되어져 왔다.

  

 

  초경에 대한 두려움

    

 

에드바르드 뭉크 <사춘기>  1895년

  

유년기는 혼자만의 공포든, 사회 속에서의 공포든 두려움 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어쨌든 모든 것은 중학생의 끔찍한 머릿속에서 나온다.  아이들은 비열해지고 10대 시절에 느끼게 되는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취약해진다.  사춘기 또는 사춘기의 두려움 때문이다.  젖멍울이 맺히기 시작한 소녀들은 가슴이 절벽인 소녀들 앞에서 거만을 떤다.  탐폰이나 생리가 뭔지 모르는 아이는 지진아 취급을 받는다.  

- 에리카 종 [열네 살의 두려움] 중에서, <마이 리틀 레드 북> pp 35 -   

 

소설가 에리카 종의 표현은 초경을 마주하게 된 여성들이 갖게 되는 원초적 두려움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의 초반부에 갑작스레 샤워실에서 월경을 하게 되는 캐리를 비웃고 놀리는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 단지 캐릭터의 특징을 부각하기 위한 설정은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또래 여자아이들끼리 월경을 시작하는 특정 여자아이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장면이 에리카 종의 에세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변의 환경에 영향 받기 쉬운 사춘기 시기의 소녀들. 특히 입시 스트레스 및 교우관계 등에 얽매이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월경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고 심하면 피로와 불안감 그리고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다.   

<마이 리틀 레드 북> 속에 담겨진 월경과 관련된 추억담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모두 초경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 미지의 것이 적대적인 존재일지라도 일단 정체가 밝혀지면 인간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하면, 상상을 통해 두려움을 부풀리는 과정이 촉발된다 ' 라고 말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표현대로 자신의 몸에서 기인된 신비스러운 첫 만남이 여성에게는 두려움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대개 이런 경우의 증상들을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부모들은 초경 시기가 사춘기와 겹쳐 '질풍노도의 시기' 라 그러려니 하고 오해하거나 그냥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초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아버지 입장에서는 초경이라는 신체적 증상은 여성만 통하는 금기인마냥 내심 수줍어하기도 한다.    

내가 생리를 시작하자 아버지는 식물이 죽는다면서 물을 주지 말라고 했다.  

- 델마 캔들 [화분 물주기여 안녕], 같은 책 pp 42 -  

 

월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게 되면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왜곡된 금기마저 생기게 된다.  실제로 1920년대에는 생리 중인 여성의 몸에는 식물을 죽이는 '메노톡신' 이라는 물질을 분비한다는 학설이 존재하기도 했다.   

 

     

  초경, 여성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엄마는 흑인 여성으로서 우리의 초경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엄마가 될 수 있으며, 몸과 감정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의 중요한 날에 아빠는 덕담을 건넸다.  나는 개인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덕담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빠는 내가 더는 꼬마가 아니라 어엿한 여성이라는 뜻으로 축하한 것이리라.   

- 자넷 루이스 [초경과 책임감] 중에서, 같은 책 pp 62 -

 

하지만 초경은 징조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다.  이 시기에는 초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미리 미리 생리대를 준비시키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등 초경과 월경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부모의 역할은 올바른 상식을 상세하게 알려줘야 하는 법이다.   

<마이 리틀 레드 북> 속 월경 이야기에는 단지 초경에 대한 두려움만 기록되어 있는 건 아니다. 자넷 루이스의 경험처럼 초경을 맞이한 자녀를 위해 부모가 적극적으로 초경에 대해 이해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특히 자녀의 초경을 막연히 두려운 증상이 아닌 어엿한 여성이 되었다는 의미로운 기억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성대한 축하 파티도 열어주기도 한다.  

 

나는 결혼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자신이 이 지구라는 태양계의 제3혹성에 사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실감하게 됐다. 나는 지구에 살고 있고,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회전하며, 그 지구의 둘레를 달이 회전하고 있다. (중략)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내가 거의 정확하게 29일을 주기로 생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달의 참·이지러짐과 완전하게 호응하고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중에서 -

  

모든 여성들의 깊고 깊은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월경 때문에 잠시나마 고통을 겪어야하는 그들에게는 이런 마음을 한번쯤은 가져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구절처럼 생리를 하게 되면 힘겨운 하루를 보내면서도 속 시원하게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여성들의 말 못하는 고민을 이해할 줄 알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남편이나 애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에게 있어서 월경이라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생활의 일부이다. 월경 기간 중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생리통과 심리적 변화 등이 일어나 고생을 하지만, 이것이 월경 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에 특히 남성에게 알려질까봐 심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초경을 맞이한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살펴보고 지켜보고 아낄 수 있는 권리,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 역시 자신의 몸을 알고 소중히 할 수 있는 권리. 아직도 이런 권리를 여성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여성의 생리를 이해하면 여성이 보인다.  소중한 생명을 낳기 위해 28일을 주기로 신체에서 반복되는 여성생리를 잘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여성자신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몫이기도 하다.  여성의 생리가 정상이라는 말은 곧 여성이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여성의 생식기계가 특별한 이상없이 모든 기능이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월경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여성인권 보호차원에서 여성의 주장이나 권리의식이 신장됨으로 이제는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사회 변화와 함께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아지면서 월경은 더 이상 ' 말 못하며 말해서는 안 될 대상 ' 은 아니다.  정작 여성으로서의 몸에 대해서 모른 채 살아간다면 월경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오랫동안 강하게 자리잡을 것이고 자칫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초경과 월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충만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인생의 첫 관문인 것이다.     

    

 

P.S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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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3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8-14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책을 거리낌없이 읽어내시는 시루스님, 요즘 독서력이 최강이군요. 얼마 안남은 방학도 화이팅! 이 책 주제 참 흥미롭네요. 사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많이 읽어야 할 책인 듯한데.. 원래 남자분들 대상으로 나온 책은 아닌 거죠?

cyrus 2011-08-14 15:33   좋아요 0 | URL
시간이 많은 방학이라서 학기보다는 편한거 같아요. 벌써 다음 주에
2학기 수강신청 기간이네요. 방학도 얼마 안 남았네요.

남성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보다는 아무래도 여전히 월경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위한 책이라고 봐도 좋을듯해요.
물론 남성도 읽으면 참 좋고요 ^^
 
휴버먼의 자본론 -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리오 휴버먼 지음, 김영배 옮김 / 어바웃어북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춰주는 오래된 거울

책을 읽다보면 어떤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분명 해외의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시감을 보이며 나타나는데, 이상하게도 좋은 사례보다는 나쁜 사례의 유사성일 때가 많다.  특히 리오 휴버먼의 <자본론>를 읽을 때 그랬다.    

'휴버먼' 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책 제목에 달지 않았더라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고 착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자만 다를 뿐 내용은 여러 모로 비슷하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오 휴버먼의 <자본론>은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들을 통해서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  비록 60여 년 전의 미국 사회를 분석한 책이지만 '자본주의' 가 전 국민적 종교가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첫번째 거울:  자본가 vs 노동자,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다 

 

출처: 미디어오늘  

 

노동소득 분배율이 이명박 정부 들어 급격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임금 인상률도 하락 또는 정체 상태고 임금 격차와 불평등도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3일 발표한 이슈 페이퍼에 따르면 기업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난해 국민가처분소득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가계와 기업의 소득 증가율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노동소득 분배율은 외환위기 이전 1996년 62.6%까지 올라갔으나 2000년에는 58.1%까지 내려갔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면서 2006년 61.4%까지 회복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추락, 지난해에는 59.2%까지 떨어졌다. 기업의 영업이익과 비교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 성장의 과실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하 생략)

- [성장의 과실, 노동자에게 안 돌아온다] 미디어오늘  2011.8.3 -

 

' 자본가들은 돈 벌 기회를 포착했을 때 투자를 한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 작동 방식이다. '  

휴버먼의 <자본론>에 인용된 미국의 정치평론가 월터 리프만의 지적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자본가들을 이익에만 집착하는 속물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작동 방식' 은 생전에 리프먼이 살았던 1930년대랑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랑 별반 다를게 없다.  

자본가들은 자신이 투자한 이윤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노동자들의 대가로 지불하는 '임금' 이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그저 일을 해야 하는 기계체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편안하면서도 건강에 무리가 오지 않는 좋은 노동조건 및 시간 그리고 이에 걸맞은 임금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입장과 다르다.  이들에게는 기업의 성장, 이윤을 올리는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성공은 ‘얼마나 더 많은 이윤을 얻었는가’ 로 가려지게 된다. 이익을 많이 남기려면 재료를 더 싸게 구하고 상품을 더 넓은 시장에 팔아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행위를 정당화하게 만든다.  그러나 생산능력이 좋다고해도 팔리지 않는 상품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경기 불황이 찾아오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가들은 임시방편으로나마 돈을 더 들여가며 추가로 사람을 고용하지 않지만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취직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은 점점 더 쪼들리게 된다.   이렇다보니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풀타임으로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근로 빈곤층, 즉 워킹 푸어(Working Poor)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가진 자(부르주아지)와 못 가진 자 (프롤레타리아) 간의 갈등 관계 즉, '계급투쟁의 역사' 라고 지칭하면서 부르주아지를 ' 종교적인 외경심, 기사도의 열정, 속물적인 감상주의도 몽땅 이기적인 계산이라는 얼음물 속에 처박은 ' 존재로 냉담하게 비판을 했다. 

하지만 리오 휴버먼은 자본가를 노동자들과 비교해 탐욕스로운 존재로 매도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자본가들을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단지 자본가와 노동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인과적인 문제로 이해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가와 노동자들 간의 대립 관계를 서로 ' 목에 칼을 겨눈 ' 관계라고 비유하고 있다.   단지 자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상호이해와 조화보다는 대립과 갈등이라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 거울 :  노동조합과 투쟁의 필요성      

 

    

사진 출처: 프레시안

 

2011년 5월 24일 유성기업 공장 안에서 농성하던 530여 명의 노동자들은 "주·야간 맞교대근무제를 주간 연속2교대 근무제로 전환하고, 시급제 대신 월급제를 시행하라" 면서 회사 측에 대항하다가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조그마한 공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연행된 셈이다. 그동안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해 많은 노동자가 주야 맞교대제와 야간노동을 없애고 주간 연속2교대를 시행하자고 요구하던 상태여서 이번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야간노동 철폐투쟁은 노동자들의 오랜 염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현재 전 세계 노동인구의 약 20%가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제 근무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 이래 계속 24시간 맞교대제를 하던 철도노동자들은 2004년에서야 비로소 3교대제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 조립 공장들과 거기에 딸린 수많은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들, 조선업을 비롯한 많은 대규모 제조업체들에서는 아직도 주야 맞교대 근무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간호사뿐 아니라 간병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야간노동이 증가하는 추세다.     (중략)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도입된 이래, 교대제가 계속 지속하며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가 계급의 이윤추구에 있다. 자본가계급이 교대제를 지속적으로 도입하는 이유는 첫째, 불변자본의 절약을 위해서이고, 둘째, 교대제로 야간노동시간을 증대시켜 절대적인 노동시간을 연장해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다.   

- [" 야갼노동은 발암물질이다! "]  프레시안  2011년 6월 15일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상반된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열셤히 일을 해도 최저 생계비 수준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자본가들은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제품(goods)을 만들기보다는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상품(commodities)을 생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리오 휴버먼 <자본론> pp 30)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많은 노동자와 노동시간이다.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는 노동자는 그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으면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최저 생활비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최저 수준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이다.   리오 휴버먼은 노동조합 결성과 같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투쟁을 임금을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경제적 법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길'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같은 책, pp 35)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전태일을 필두로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민주적인 노동조합 투쟁을 끊임없이 지속시켰다. 그러나 자본가와 정권은 그러한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성과 투쟁성을 무력화하고자 해 왔으며 그 목표가 노동조합을 경제적 투쟁에 가두려고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자본가에게 파는데 그것은 결코 공정한 거래일 수 없다는 것과 이 불합리한 거래를 그만두기 위해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힘은 다수라는 점이지만, 이 힘도 단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보면 리오 휴버먼의 노동조합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입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번째 거울 :   살림살이 좀 나아 지셨습니까?  

지출 가운데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저소득층 엥겔계수가 8년 만에 최고치로 높아졌다.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소득하위 10%(1분위)의 올 1분기 엥겔계수는 전년동기 대비 0.9%포인트 상승한 17.9%로 조사됐다. 이는 1분기 기준으로 지난 2003년 1분기의 18.3%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1분위 엥겔계수(1분기 기준)는 지난 2008년 16.4%까지 하락했으나 환율 급등에 따른 물가대란이 발발하면서 2009년 17.5%까지 올랐다. 2010년에는 17.0%로 소폭 하락세를 타는 듯하다가 구제역 사태와 국제원자재값 폭등으로 올해 8년만에 최악의 상태로 악화됐다.

1분위 도시 근로자의 소득은 전년동기대비 0.3%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소비지출은 물가폭등으로 2.2% 증가하면서 엥겔지수가 높아졌다.

전체 도시 근로자의 1분기 엥겔계수는 12.6%로 전년동기대비 0.5%포인트 상승하는 등 물가대란으로 전체 근로자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 [저소득층 엥겔지수, 8년 만에 최악으로 급등]  뷰스앤뉴스 경제  2011년 5월 23일 -

 

언론과 방송에서는 경제 관련 지수와 코스피 지수 등을 통해서 경제성장의 낙관론을 끊임없이 거론되곤 한다.  게다가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이유만으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한발짝 앞선 것처럼 한껏 고무된 내용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허영심은 휴버먼이 생존하고 있었던 1920년대의 미국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로 풍요로운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지만 1929년, 미국 역사상 가중 부유했다던 그 해에 경제 대공황을 맞아야했다.  하지만 심각한 대공황의 현실 속에서도 미국인들은 경제회복과 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죽 했으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풍요로운 사회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허한 인식, 즉 '거짓말의 안개' 를 걷어내려고 했을까?       

나는 풍부한 자연 자원의 축복을 받은 거대한 대륙에 자리한 위대한 나라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 국민들 가운데 3분의 1은 열악한 주거와 의복 및 영양 상태에 빠져 있음을 나는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 1937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연설문 중에서, <휴버먼의 자본론> pp 87~88 -

경제 수준에 대한 우리나라의 정부 모습과는 상반된다.  도저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실업률과 무섭게 치솟아오르는 물가상승 앞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의지와 태도만 보일 뿐 실체적인 문제의 이면을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경제에 대한 '거짓말의 안개' 를 만들어내 경제 문제 해결에 대한 신뢰성을 낮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거짓말의 안개' 를 걷어내고 보면 우리나라 경제 수준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올해 집계된 엥겔지수 측정의 결과는 경제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보도문일수도 있지만 이번 수치 결과가 8년 만에 나온 수치들 중 최악이라면 물가 상승 문제가 사뭇 심각한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료품은 필수품으로서 소득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반드시 얼마만큼은 소비하여야 하며, 동시에 어느 수준 이상은 소비할 필요가 없는 재화이다. 그러므로 저소득 가계라도 반드시 일정한 금액의 식료품비 지출은 부담하여야 하며, 소득이 증가 하더라도 식료품비는 그보다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까닭에 식료품비가 가계의 총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즉 엥겔계수는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면 엥겔지수는 높아지면 이는 저소득층 가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단순히 식료품비 비율만 높다고 해서 심각한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데 식료품비만 지출하는 것이 아니다.  주택, 의복, 의료비, 교육비 등 가족 구성원들을 먹여살리는데 지출되는 비용 역시 많기 때문에 저소득층 가계의 생활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물가는 끊임없이 치솟고 있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 마당에 정부가 시행한 성형수술 및 애완동물병원비 부가세 도입은 도리어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키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불된 비용 항목 중에 '플라자 동물병원' 에 쓰인게 125달러였다.  '글로리아' 의 애완 고양이를 돌보느라 11월부터 그 다음 해 1월 사이에 들어간 돈이었다.  

- [뉴욕타임스] 1936년 1월 28일자, 같은 책 pp 99 -   

  

시대마다 화폐의 가치가 다르지만 오늘날 환율 수준에서 따져보면 125달러는 우리 돈으로 1천 3백 51만 2천 500원(=1,35,125,00)이다.   실제로 세 달동안 반려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지출한 비용이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심각한 사실은 글로리아라는 고양이한테 들인 비용이 온 가족의 옷을 장만하는데 쓴 돈보다 15달러 더 많았다는 점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어느 20대가 지신의 블로그에 반려견 치료비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었는데 대략 이렇다.

하루 입원비 5만원, 진료비 5천원, 약값 5천원, 골절 수술비 100만원대, 주기적인 엑스레이 2만원, 2차 수술비 80만원대 정도.

거기에다가 앞으로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면 비용과 부가세를 더 부담해야 될 것이다. 휴버먼의 표현대로 반려 고양이 글로리아나 변려견은 서민들보다 높은 경제적 사라디의 꼭대기에 여유롭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거울을 보고 난 뒤:  자본주의의 나르키소스는 되지 말자 

 

 

카라바조 <나르키소스>  1594~1596년

 

자본주의의 맹점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는 휴버먼의 분석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과 권력 그리고 노동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자본의 속성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마르크스처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윤 동기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는 음울한 종말을 맞을 운명이라고 진단하고 대안으로 사회주의로서의 대체를 예견하고 있다.  그에게 사회주의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즉 이전의 문제를 해결된 새로운 체제의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이를 사회주의적 접근 방법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휴버먼은 책의 제목을 처음부터 '사회주의의 ABC' 라고 지으려고 생각할 정도로 그동안 곡해되었던 사회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소개하려고 하였다.    

사회주의적 이상향이 건설되기를 믿었던 마르크스의 예언이 그렇듯이 그의 예언 역시 현실적으로 빗나가버린 사상적 유물로 전락되었지만 또 다시 전 세계가 경제 위기의 가시밭길에 걷고 있으며 전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목도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의 종말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겠다.     

 

거울은 우리의 겉모습인 표면만 보여줄뿐 우리의 내면 속에 감춰진 자아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외부적인 표면에만 집착하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의 화려한 이면만 볼 수 있는 자본주의의 거울 앞에 서 있다.  자본주의의 거울만 보다가는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버린 나머지 탈진해 죽어버린 나르키소스처럼 언젠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에 사로잡혀 휴버먼의 예언대로 경제의 종말이라는 재앙을 맞이할지도 로른다.

휴버먼의 <자본론>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허영을 그대로 비춰주는 가장 불온한 거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함을 역설한 휴버먼의 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방대한 분량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휴버먼의 <자본론>을 통해서 자본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본주의의 나르키소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불편한 속성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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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8-1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결국 마르크스와 휴버먼의 진단이 같군요. 자본주의는 말기암환자라는 것. 곧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점. 그러나 또 거기에는 '어떻게'의 문제도 있겠지요. 과연 '혁명'이 도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이 일어날 것인가.
웃..이거 조금은 위험한 포스트군요. 여기에 제가 혁명 운운하는 댓글까지 달았으니 더 위험해졌군요. (웃..농담입니다.^^;)

cyrus 2011-08-12 20: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휴버먼의 책 같은 경우에는 확실한 형태로 자리잡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어서 분석면에서는 지금도 봐도 유효한 내용들이
많았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8-1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오 휴버만과 폴 스위지는 모두 자본주의를 상업이나 유통 방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경제사 분야에선 유통주의자라고 하지요.자본주의의 개념정의를 둘러싼 논쟁을 공부하는 쪽으로 나아가면 사회과학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cyrus 2011-08-15 16:36   좋아요 0 | URL
유통주의자라는 단어 처음 들어봅니다. 군 복무 시절에
휴버먼의 <자본주의 바로 알기>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쉽게 잘 안 읽혀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 책이 내무반 책장에 꽂혀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그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못해서 그런데 그 책에도
자본주의를 비판한 내용이 있을거라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나온 <자본론> 같은 경우에는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고 있어서 좋았어요. 공상적 사회주의에서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까지, 이 책 덕분에 사회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8-15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스 베버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관을 비교하는 것도 좋고,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공부하는 것도 좋습니다.국사책에서 배우는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이것을 강조하면 유통주의자가 됨)이 과연 자본주의의 맹아냐 아니냐 하는 논쟁과도 연결되어 있으니 깊이있게 공부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