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7
에드몽 로스탕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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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

이 이야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밥과 책, 이 두 존재 없이는 살 수 없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좋은 대학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인생을 위해서 학교 공부에 죽어라 매달렸다.  

집안 형편도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아서 남들이 다 가는 입시학원을 못 다녔고 고액 과외도 꿈도 못 꾸었다. 하지만 ‘ 노력만이 살 길이다’ 라는 막연한 마음을 품은 채 학교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가 되어도 귀가하기보다는 깜깜한 골목길을 지나서 독서실로 향했다.  

그리고 또 앉아서 공부했다. 몇 몇 사람들은 공부만 하는 학창 시절은 너무 재미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입으로 내 학창 시절, 재미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학창 시절에 공부만 한다면 재미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학창 시절에 즐거움의 단비도 있었다. 공부하다가 지루하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학교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대체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이공원에 간다거나 부모님 몰래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남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는 혼자서 책 읽는 것이 좋았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책 읽는 게 좋았다. 이런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게 된 것도 학교 환경도 영향이 컸다. 중학생 3년, 고등학교 1학년. 총 4년을 남학생들과 부대끼는 생활을 해왔었다. 

그러다가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시기가 찾아왔다. 2학년에는 남녀공학 교실로 배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교실 총원 30명, 그 중에 여학생이 20명. 남학생보다 10명 보다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한 교실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생활하게 되면 남학생은 평소에 예쁘지 않던 동급 여학생을 예쁘게 보인다는 속설이 있다. 속설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남자이다 보니 모든 여학생이 예뻐 보일 수 밖에 없었으며 이성에 대한 솟구치는 관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런 공부와 책 밖에 몰랐던 필자가 큐피드는 너무 딱해보였는지 나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았는가 보다. 그것도 강렬한 사랑에 취하도록 만든 화살을.

결국에는 같은 교실의 여학생 K를 좋아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심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고백할 자신이 없었다. K가 공부 밖에 모르는 사랑의 백면서생인 나를 좋아할까? 몸도 비쩍 마르고, 이마도 넓어서 내 얼굴이 그렇게 잘 생긴 것도 아닌데 K가 내 고백을 받아줄까?  

나는 내성적인 성격인 반면에 K는 명랑하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괜스레 성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퇴짜 맞을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같은 교실 친구이며 연애 고수인 A에게 나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A는 나보다 잘 생겼으며(당시 나를 포함한 10명의 남학생 중에서 그나마 잘 생겼다) 연애 경험도 풍부했다. 사실은 연애 비법을 전수받고자 해서 속마음을 A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나름 도움이 되고 희망적인 내용을 얻기를 바랬건만, 막상 연애 고수 A가 추천하는 비법은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A의 여심을 사로잡는 비법은 이렇다. 먼저 K에게 주말을 잡아 단 둘이 놀자고 제안한다. 만약에 K와의 즐거운 시간이 확정되면 나는 하루동안 놀아야 할 일정을 정하고, 당일에는 멋진 옷을 입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놀 때는 놀이공원에서 놀고, 식사는 외식 전문 식당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이 무르익었다면 고백하라는 것이다. 연애에 젬병이었던 필자는 A의 비법을 100% 믿지 않았다. 그리고 A가 말한 대로 실천하는 것도 두려웠다. K가 흔쾌히 승낙해줄 건지 미지수이며, 재미있게 노는 경험이 전혀 없었던 필자에게는 막상 그렇게 말할 자신도 없었다. 필자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냥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으로 접어야만 했다. 그리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서 손 때 묻은 거무칙칙한 수학의 정석을 끼적거렸다.  

.

그리고 2주 뒤에 연애 고수 A와 여학생 K는 핑크빛이 우러나오는 교내 커플이 되었다. 
 

   

  

 

 

  사랑도 모르고 표현할 줄도 모르는 남자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원작이라는 것도 있었고, 나름 연애에 대한 비법(?)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반신반의로 에드몽 로스탕의『시라노』을 읽었건만... 역시 읽고나서 얻은 건 이야기의 재미였을 뿐 정작 얻고자하는 소득은 없었다.

‘사랑을 모르지만 표현하는 일을 하는 남자’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사랑은 알지만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 크리스티앙이라면

나는 ‘사랑도 모르고 표현할 줄도 모르는 남자’ 였다.

『시라노』를 읽기 전에는 나는 크리스티앙형인줄 알았는데 읽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시라노는 남들보다 큰 코라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얻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남들과의 미움의 벽을 쌓아야 했다. 그러나 묵묵히 록산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마음속에 꾹 눌러 지켜나갔다. 사실, 뼈아픈 짝사랑의 실패 이후 나도 시라노처럼 괜히 여학생들에게 무뚝뚝하면서도 냉정하게 대하곤 했었다.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고백하지도 못하는 소심남 주제에 한 번 겪은 사랑의 실패 원인을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일부러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었다. 왜곡된 마음이 삐딱한 시선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연애 비법을 찾는답시고 책을 읽었다가 도리어 지금까지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 인생에 찾아온 짝사랑의 기회를 스스로 인고하면서 쉽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감도 들었다. 

   

 

 

  '사랑 고백 조작단 ' 되기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감은 눈을 억지그레 떠야하는 피곤한 마음속에도
나른함속에 파묻힌 채 허덕이는 오후의 앳된 심정 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층층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속에도
십년이 휠씬 넘은 그래서 이제는 삐걱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앞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눈속에도
당신의 사랑스러운 마음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비록 그날이 우리가 이마를 맞댄채 입맞춤을 나누는
아름다운 날이 아닌 서로의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잊혀져 가게 될 각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슬픈 날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당신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느끼는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유영석 <사랑 그대로의 사랑> 전문 -

 

케이블 방송에서 S 방송국 심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가수 유영석 씨가 출연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유영석 씨가 미모의 미스코리아 부인을 둔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했다. 평소에 ‘사랑’에 대한 감정을 틈틈이 글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영석 씨는 많고 많은 미완의 글을 갈고 닦아서 ‘사랑 그대로의 사랑’ 이라는 노래를 탄생시켰다.    

 

사랑의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한 가사와 피아노 건반에서 울려나오는 잔잔한 멜로디는 유영석 씨 본인이 꼽는 최고의 자작곡인 동시에 지금도 연인들이 고백할 때 사용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유영석 씨 본인도 부인에게 이 노래로 고백을 했다고 한다. 사실, 까놓고 말하면 유영석 씨는 잘 생긴 외모와 거리가 먼 평범한 얼굴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외모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적극적인 태도를 동시에 살려서 아리따운 피앙세를 얻었던 것이다.  


『시라노』에는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서로의 장점을 보완하여 록산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시라노는 이성을 유혹하게 하는 달콤한 화술, 크리스티앙은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 뒤에 숨어서 그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록산을 유혹하게 한다. 크리스티앙은 그냥 시라노의 말에 입만 뻥긋거리면 되었다. 두 사람이 스스로 ‘사랑 고백 조작단’이 된 것이다. 간혹 이 둘의 행동이 맞지 않아 록산이 의심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게 만들면서도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잘 생긴 외모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격이 착해서 이성이 좋아할 수도 있으며 유재석 씨처럼 재치있는 말솜씨와 편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다. 각자 나름의 장점을 살려서 이성에게 어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제대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용기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라노와 크리스티앙, 그리고 유영석 씨처럼 이성을 사로잡는 자신만의 사랑 고백 조작만이 커플이라는 꿈의 등급으로 상승(?)될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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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영석님의 <사랑 그대로의 사랑> 이 곡 너무 좋죠.
음악에 깔려서 나직한 목소리로 읽어가는 시.....

남녀간의 사랑이란게 밀고 땡기기를 잘해야 한다는건 농담이 아닌듯 해요. 지금 바라봤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과 성실인데도, 그 시점에 호르몬의 영향을 무시 못 한단 말이죠. 사람은 자기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사람을 제일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나 없이도 잘 살거 같은 사람이 꼭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거죠... 이건, 아마도 그런 사람을 소유함으로서 내 가치가 올라갈 것 같은 환상 때문일까요? ㅎㅎ.

cyrus 2011-01-06 15:26   좋아요 0 | URL
제가 컴맹이라 동영상을 올리지 못했네요. ^^;;
아직 저에게는 사랑이란 정말 어려운 단어인거 같아요.

stella.K 2011-01-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책 덕분에 시루스님의 쓴 첫 사랑 이야기도 알게 됐군요.
K 양이 털털하다면 무난히 시루스님을 받아줬을지도 모르는데 넘 소극적이었던 건
아닙니까?ㅋ 하긴 지난 일인걸요. 어쨌든 누구나 첫 사랑은 실패한다지 않습니까?
저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루스님 나름 알찬 청소년기를 보내셨군요. 저도 청소년기를 다시 산다면
시루스님 같이 살아보고 싶은데, 문제는 인생을 다시 살아도 청소년기만큼은
절대 노라는 거죠.ㅎㅎ

cyrus 2011-01-06 15:28   좋아요 0 | URL
가끔 고등학생 동창회로 만나게 되면 항상 나오는게 실연 이야기랍니다.^^;;
막상 이야기가 나오게되면 창피스럽기도 하지만, 스텔라님 말씀대로
청소년 때 내가 헛으로 살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하지만 저도 그 때로 돌아가기 싫어요. 군대 또 가야되잖아요^^:;

감은빛 2011-01-07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첫사랑!
저는 사실 친구 A와 비슷한 경험은 있습니다.(조금 다릅니다!)
정말 쑥맥이었던 친구녀석이 전화번호를 하나 갖고 와서,
전화를 해서 말을 좀 걸어달라고 해서,
실컷 물밑 작업을 해주고, 녀석에게 직접 전화하고 만나라고 했는데,
이 녀석이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냥 포기해버리는 겁니다.
덕분에 내가 전화를 계속 하다가 만나게 되고,
결국 사귀게 된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고딩이었고, 여자애는 중딩이었어요.
나름 재밌었습니다.
아, 써놓고 보니 자랑처럼 들린다거나,
기분나빠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절대 자랑하려거나, 기분 나빠하시라고 쓴 건 아닙니다. 아시죠 ^^

cyrus 2011-01-07 12:37   좋아요 0 | URL
아니요, 오히려 감은빛님의 러브스토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 용감한 사람만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진리가 맞는거 같습니다.
 
조선 왕을 말하다 2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2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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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의 ' 조선 왕 ' 슈퍼스타 King

작년 기억이 남는 대한민국 방송 핫 트렌드를 꼽으라면 바로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일 것이다.  특히, 작년에 두 번째로 케이블 방송에서 기획한 <슈퍼스타 K 시즌 2> 같은 경우에는 케이블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크게 뜰 수 있었던 것은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1인의 우승자에게 부여되는 어마어마한 상금과 '가수' 로 단숨에 성장할 수 있다는 메리트 덕분이었다.  유독,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우승자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슈퍼스타 K 시즌 2> 같은 경우에는 우승자 허각 뿐만 아니라, 준우승자 존박을 포함한 ' Top 11 ' 안에 든 참가자들도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슈퍼스타 K>에 채널을 고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디션 참가자들을 향해 독설과 함께 냉정한 심사평을 날리는 <슈퍼스타 K> 심사위원 연예인들의 발언이다.   특히, 2009년 시즌 1과 작년 시즌 2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이승철은 우스갯소리로 2010년 케이블 TV 독설상에 수상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독설 심사로 숱한 화제를 몰고 왔었다. 가수 뺨치는 훌륭한 실력을 갖춘 참가자라도 이승철의 독설 작렬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설과 가까운 심사평을 날린 이승철의 한 마디 한 마디 뒤에는  '가수' 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후배들을 위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들이 자신보다 더 훌륭한 가수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진심어린 충고를 한 것이다.  

이승철이 2010년 케이블 TV 최고의 독설가라고 한다면, 2010년 역사계 최고의 독설가라면 이덕일이었다.   그에게 '독설가' 라는 수식어를 붙기에는 억지스러운 감은 있긴 하다.  원래, 국어사전에서의 ' 독설가 ' 라는 의미는 '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잘하는 사람 ' 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독설가' 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으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하지만, 이덕일의 '독설' 은 국어사전의 정의와 같이 나쁜 의미에서 붙여준 것은 아니다.  역대 조선 왕들을 향한 이덕일의 ' 독설 ' 은 수많은 문헌들을 철저히 고증하여 균형적인 시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성군이라도 이덕일은 문헌에 남아 있는 성군 치세의 작은 흠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책의 앞부분 ' 저자의 글' 에서 이덕일은 고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오늘날의 역사학계에 대해 반문을 하고 있다.   

한편 근래 들어 고종은 ‘개명 군주’ 이자 ‘ 근대화를 앞장서 이끈 군주’ 라는 식으로 호평받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종은 전제왕권을 꿈꾸며 많은 인재를 죽였는데, 급진 개화파 김옥균은 물론 온건 개화파 김홍집도 죽이고, 농민의 리더 전봉준도 죽였다. 독립협회도 강제로 해산시켰다. 근대국가 수립에 목숨 걸 인재와 세력을 모두 제거한 결과 주위에는 이완용 같은 출세주의자만 남게 되었다. 또한 고종은 실현 불가능한 전제 국가 수립에 집착하면서 모든 변화를 거부했다.   

- 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 2> ' 저자의 글 ' 중에서 -

   

 

  나쁜 왕 :  ' 벌거벗은 임금님 ' 이 된 고종   

  

고 종 (1852~1919, 재위 1863~1907)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인 ' 고종 ' 편 464 페이지를 보게 되면 위의 고종 사진 밑에는 이렇게 단 한 줄의 글이 적혀 있다.  

재위 44년 간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다.
 

아무리 수많은 문헌을 토대로 고종의 업적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고 하지만, 고종에 대한 이덕일의 평가는 심사위원으로서의 이승철의 독설 못지 않다.  특히, 고종을 ' 망국 군주 ' , ' 무능력한 왕' 등 부정적인 수식어들을 언급할 정도로 그의 무능력한 치세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있다.  ' 개명 군주 ' 에서 한순간에 나라를 망쳐버린 ' 망국 군주 ' 로 격하되고 있다.  

고종 재위 시기에는 근대화 발전으로 앞당기고 있었던 이웃나라 일본의 ' 메이지 유신 ' 과 문호 개방을 목적으로 호시탐탐 조선을 노려왔던 서양 열강들의 내정 간섭이 잦았다. 고종이 세상 물정에 대한 눈치가 없었고 무능력했다지만, 그도 분명히 한반도 내외의 시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으로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여 새로운 서양 문물을 시찰하게 한 점과 미국과 영국 간의 수호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서양 문호 개방을 위한 근대화의 씨앗이 이제 막 움트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자기 스스로 ' 근대화 ' 라는 씨앗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전제군주제라는 기존 사회 유지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먼저 인용된 ' 저자의 글 '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정 내에서 김옥균, 김홍집 등을 필두로 한 개화세력의 힘이 날로 커지게 되자 고종은 이들을 제거하였고,  이완용과 그 밖의 친일파들을 등용되게 하였다. 고종은 자신의 왕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싹을 제거하다보니 친일파라는 잡초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결국 친일파라는 잡초를 그대로 놔둔 고종은 허무하게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을 봐야만 했다.   

역대 선조 왕들과의 업적과 평을 점수로 환산해본다면, 고종의 점수는 아마도 최하위권일 것이다. 그의 업적은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에 나오는 어리석은 왕을 연상케 한다.  동화 속의 왕은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투명 옷 ' 이라는 재단사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올누드로 백성들 앞에서 ' 투명 옷 ' 을 뽐낸다.  재단사가 말한 ' 투명 옷 ' 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 100% ' 뻥 ' 이었던 것이다.  

고종은 재위 시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보수 사대부 세력 그리고 개혁을 주장하는 친러파, 친일파 세력들의 달콤한 말에 쉽게 휘둘러다니는 왕이었다.  특히, 재위 초기 때는 아버지 흥선 대원군의 섭정의 영향이 무척 컸다.  왕권 강화 목적으로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실시하였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이었다. 공사 자금이 부족해지자,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강제로 원납전을 징수하도록 하였다.  경복궁 중건에다가 원납전으로 이어지는 대원군의 시대착오적인 정치제도 콤보(?)는 국가재정의 혼란을 가중시켜버렸으며 공교롭게도 아들 고종 역시 정책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고종은 사회 분위기가 좋으면 대세의 흐름을 따랐으며 반면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게 되면 다른 세력으로 선회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근대화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고종이 스스로 차 버렸던 이유도 ' 전제군주 ' 라는 유명무실한 ' 투명 옷 '  하나에 집착해서 생긴 고종 최대의 정치적 실수였던 것이다.  

  

 

  좋은 왕 : 슈퍼스타 King 1등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세종 

고종이 '망국 군주' 라는 꼬리표 때문에 역대 왕들 중에서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면, 반대로 최고의 군주 1위는 단언 제4대 왕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호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세종의 업적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한자 앞에서 우매한 백성들을 위해서 훈민정음을 반포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집현전을 통해 나라를 이끌어 갈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동시에 학문 진흥에도 앞장섰다.  그리고, 능력 위주의 등용을 중요시하여 관노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세종 역시 고종처럼 왕권의 힘을 강화할 수 있는 중앙집권 체제로 운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자신의 정치적 모토를 실현된 반면에 고종은 무능한 왕이라는 오명만 얻고 말았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교과서 하나 제대로 보지 않은채 공부를 아예 하지 않은 사람보다 시험성적이 당연히 좋게 나오는 것처럼 세종과 고종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치적 모토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당연히 서로 엇갈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세종은 단순히 왕권 유지에만 치중하기보다는 항상 나라의 안정과 발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공법상정소를 설치하여 토지에 따라 세율을 달리하는 정책을 내세웠지만 조정에서는 이 제도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세종에 대한 문헌 중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세종 치세의 오점이기도 하다. 조정의 쓴소리를 듣는 세종 입장에서는 무척 귀가 따가웠을터지만, 세종은 이들의 충언을 깊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제도를 새롭게 시정한 전제상정소를 설치하여 보다 나은 전세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간언일 수도 있는 신하들의 목소리를 세종이 제대로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공부 덕분이었다. 세종에게는 공부는 자기수양의 일부였으며 배운 것들을 정치 현안 해결에 응용하려고 시도하였다.   특히, 세종은 학자들에게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하였으며 경연을 통해서 학자들과 함께 학문 토론을 즐겼다.  

조선 사회라고 하면 항상 먼저 연상되는 것이 ' 유교 ' 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유교 사회 이데올로기는 많은 이들에게도 세종의 학문수양이 유교와 관련된 공부라고 오해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종은 유교 공부에만 편식하지 않았다. 정작 그는 경서보다는 역사에 대해 많이 배울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가 선호하면서 자주 읽었던 역사서는 <좌전>과 <자치통감>이었으며 세종은 학자들과 함께 <자치통감>을 통해서 강론을 펼치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다.  

책과 학문을 향한 세종의 무한 애정은 사가독서라는 제도를 만들게 되었다. 사가독서는 학자와 관리들에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이다.  일종의 독서 휴가제인 셈이다. 공부는 자기수양하는 동시에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밑바탕이라고 생각하는 세종의 학문관을 엿볼 수 있는 제도이다.  

재미있게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재위 1837~1901)도 관리들에게 3년에 한 번씩 ' 셰익스피어 베케이션 (Shakespeare Vacation)’ 이라는 독서 휴가제를 부여하였는데 휴가 동안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을 정독하여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라고 해서 권장하는 차원에서 휴가를 내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보면서 민중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인들이 보다 나은 선정을 펼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중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세종과 빅토리아 여왕, 두 군주의 독서 휴가제는 서로 내용은 다르지만 의도와 목적은 같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와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은 나라의 발전 및 선정과 연계되는 끊임없는 공부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세종이 빅토리아 여왕보다 수백년 전부터 실용적인 공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독서 휴가제를 세계 최초로 실시했다는 점에서 세종의 업적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어중간한 왕 :  국운이 따라주지 못했던 현종  

현종 시대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하는 기묘한 시기였다. 지배층인 사대부는 자의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이란 형이상학적 문제를 가지고 격렬하게 논쟁했다.  반면에 피지배 백성은 개구 이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흉년과 대기근에 시달렸다.  

- <조선 왕을 말하다 2> '현종' 편, p 70 -   

역대 조선 왕들 중에서 제 18대 왕 현종(1641~1674, 재위 1659~1674) 은 인지도가 낮은 축에 속할 것이다.  현종의 대표적인 업적을 꼽으라면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하는 대동법을 실시한 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종의 업적을 제대로 아는 이는 극소수이다.  

현종에 대한 후세의 역사가들의 평가 역시 그리 좋지 못하다. 아니, 그의 치세가 잘했다고 볼 수 없으며 그렇다고 잘못했다고 딱히 말할 수도 없는, 정말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 효종(1619~1659, 재위 1649~1659)의 갑작스런 승하는 아직 정치적 능력이 미숙하지 않은 젊은 현종에게는 나라를 다스려야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정신적인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현종의 치세동안 죽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따라다녀야만 했으며 때때로 현종의 발목을 잡기도 하였다. 

효종은 인조(1595~1649, 재위 1623~1649)의 둘째아들이었지만, 장자였던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자 그가 대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효종이 죽은 뒤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복상(服喪) 문제로 대두된 예송논쟁(기해예송)은 서인과 남인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만드는 정치적인 문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암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효종은 종법상 인조의 둘째아들이기 때문에 종법에 따라 1년상을 입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남인 계열의 윤선도 등은 비록 차자이지만 왕위의 계승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3년상을 입어야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결국, 현종은 1년상을 주장한 서인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송시열의 서인 계열은 집권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74년 현종의 어머니가 죽자 또다시 한 번 예송논쟁이 불거지게 되자, 현종은 이번에는 남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으며 서인은 실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두 차례의 예송논쟁은 서인과 남인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하지만, 예송논쟁은 현실상으로는 무의미한 쓸데없는 논쟁이었다. 서인과 남인이 이토록 복상 문제 가지고 대립을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유교적 이념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유교적 이념의 확립은 곧 사회 정국의 변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변수였다.   자신들의 세력 집권을 위해서 이론 논쟁에 치중해야했던 서인과 남인 간의 갈등의 실마리를 현종은 냉정하게 해결의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리고, 현종은 어떻게 보면 시기를 잘못 타고 태어난 왕일지도 모른다. 그가 살았던 16세기에는 전세계적으로 소빙기라는 기후변화가 찾아왔었다. 이전과 다른 기후변화는 조선 팔도에 가뭄, 홍수, 냉해, 태풍이 잦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병충해까지 찾아와 한반도의 오재(五災)는 장기간 흉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은 끼니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갑작스런 자연재해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현종은 백성들의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강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전시를 대비하기 위해 저장한 군량미를 일시적으로 방출하였으면 왕실에 바치는 공물과 관리의 녹봉을 삭감시켜 백성들을 먹여 살린 쌀을 확보하도록 마련하였다. 그리고, 현종 자신도 금주를 하는 등 어떻게든 민심 회생을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이제 막 자신이 꿈꿔왔던 정치적 이상의 날개를 활짝피려던 현종은 34세의 젋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현종은 어중간한 임금으로 기록에 남기게 되었다.  

    

  

  지금 MB에게 필요한 건 , , ,

재미있게도 ' 좋은 왕, 나쁜 왕, 어중간한 왕' 이 세 명의 왕들의 이야기에는 요즘 우리나라 현실과 유사한 면이 보이고 있다.   

고종과 흥선 대원군이 끝까지 고집했던 경복궁 중건과 원납전 징수 그리고 백성들의 반발과 뒤이어 찾아온 경제적 파탄은 정부가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4대강 사업의 암울한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 4대강 살리기 ' 라는 명목 아래에 진행되는 사업에만 치중하게 된다면 작년에 주장했던 ' 서민 살리기 ' 는커녕 본사업에 투입되는 비용으로 거둬들이는 세금 때문에 민심이 추락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강화 목적으로 1700억원을 들여 자신만의 초호화 주택을 신축했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들의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 전체에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축산업자들의 시름은 가면 갈수록 깊어져만 가고 있는 마당에 구제역 확산 방지에 대한 정부의 늑장 대응은 이미 확산된 구제역의 손길을 막을 수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구제역 확산이나 작년과 같은 배추 파동과 같은 특수적인 재해에 대해서 국민들이 2차 피해를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2011년 신년사로 MB는 신년화두로 ' 일기가성(一氣呵成)' 을 언급하면서 올해에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 성장이 확신되는 해이므로 국운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살려 선진국 문턱을 단숨에 넘어야한다고 강조하였다.   

신년사에 걸맞게 희망적인 분위기만 돋구는 처음 들어본 어렵기만한 사자성어를 화두로 제시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다 알면서도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걸맞는 화두를 제시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지금 MB에게 필요한 건 이것이다. ' 옛 것을 알면서 새 것도 안다 '  

세종이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곧 마주하게 될 정치적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던 것처럼 MB와 모든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겪어온 사회적 쟁점들을 되돌아보면서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선정을 베푸는 능력이 함양되어야 할 것이다.  

남은 임기동안 MB가 어떻게 정치적 능력을 보이는가에 따라서 훗날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정당하게 내려질 것이다.     

좋은 대통령이 될지, 아니면 나쁜 대통령이 될지 지켜봐야할 것이다. 뭐라고 단정적으로 평가내릴 수 없는 어중간한 대통령이 되지 말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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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0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리뷰 정말 마음에 드는군요. 맞아요!!!
세종 때 얼마나 나라가 태평성세를 구가했습니까?
그런 대통령 좀 안 나오나요?
오늘 책을 읽다가 문득 어느 나라든 정부는 정의롭지 못하구나
이익만을 추구하다 나라를 말아먹을지도 모를 정부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ㅜ

cyrus 2011-01-03 15:18   좋아요 0 | URL
세종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군인 이유도 있지만,
정말 이 책에서 세종의 업적들을 살펴보니, 요즘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더군요,
MB 이외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이런 책을 읽어보면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녀고양이 2011-01-0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 님 책 중에 이 책은 일부러 안 샀는데,
사이러스님이 급 땡기게 만드시는군요.

이덕일 님은 편파적이고 너무나 독자적인 시각이라고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머,, 이러나 저러나 역사에 흥미를 이끌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잼난 책을 쓰시는 분이니 저는 좋아합니다만....

MB는....... 시궁창으로? 아하하.

사이러스님 즐거운 새해 되셔요!

cyrus 2011-01-03 16:0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마고님이 자세하게 내용을 간략하세 살펴보시고
사는게 나을거 같아요. 마고님 말씀대로 고종에 대한 이덕일 씨의 관점은
독자적이고 편파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구요.
특히, 고종의 무능함을 고종 시기에 활동했던 일본의 메이지 천황을
자주 비교하여 부각시켜서 내심 불편하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다른 왕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눈속임 그림 - 트롱프뢰유, 실재를 흉내 내고 관객을 속이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명탐정 셜록 홈즈는 그의 절친한 동료인 왓슨 박사와 함께 사건 의뢰인이 살고 있는 집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홈즈가 맡게 된 사건은 사건 의뢰인의 언니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홈즈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아무리 조그만한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방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 저 초인종의 끈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나요? "  

홈즈가 사건 의뢰인에게 물었습니다.  침대 위에 매달린 초인종의 끈은 그 끝이 베개 위에 닿아 있었습니다.  

 " 2년 전에 달았는데, 가정부의 방으로 통해 있을거에요. " 

 " 언니가 달게 했나요? "  

 " 아니에요.  언니나 저는 가정부에게 일을 시킨 일이 없어요. 가정부는 우리 집에 오래 있지도 않았구요. "  

 " 그렇다면 이런 초인종 끈은 별로 필요가 없었을 텐데 , , , , , " 

홈즈는 침대가 다가가 잠시 관찰한 후, 초인종의 끈을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 아니, 이건 초인종 끈이 아니잖아 ! "     

홈즈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 울리지 않나요? " 

 " 울릴 리가 없죠.  자, 잘 보십시오. 끈 끝이 환기 구멍 바로 위 고리에 묶여 있죠? "  

 " 어머, 이상하군요!   전 여태껏 몰랐어요. 아마 언니도 몰랐을 거에요. "   

 " 이상한 건 이것뿐이 아니오. 환기 구멍은 바깥쪽을 향해 뚫려 있어야 원칙인데, 이건 옆방으로 통했군요. 별 얼간이 같은 건축가도 다 있었군그래. "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얼룩 띠의 비밀] 중에서 -

     

 

  추리소설의 법칙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간략하게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이성적인 사고 능력과 지식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는 소설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의 시초에는 오귀스트 뒤팽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추리소설들을 쓴 에드거 앨런 포 이며 한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서 추리 소설을 이루게 하는 공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법칙에다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추리소설을 확립한 작가는 아서 코난 도일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추리소설들도 다양한 주제와 캐릭터 그리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복잡한 트릭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추리소설들에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과 같은 다양한 플롯과 캐릭터들로 무장된 추리소설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 추리소설은 이렇게 써야한다' 는 식의 불문율은 무의미하겠지만,  추리소설이라는 텍스트를 성립되게 하는 조건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출간된 문고판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 추리소설의 법칙에 대한 내용이 소개된 걸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에 이런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추리소설이라면 독자들은 텍스트에 대한 몰입을 하지 못할 것이다.

 1)  수수께끼의 해결에 이르러서는 모든 단서가 명백히 그려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것을 간파당하지 않도록 트릭을 써야 한다.  

  2)  범인은 추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우연에 따른다든지,  

       자백에 의해 결정되서어는 안 된다. 

  3)  작가는 독자를 상대로 지혜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소개된  

       법칙은 독자와 작가 사이에 맺어진 일종의 신사 협정인 셈이다. 함부로 이 협정을  

       깨뜨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문고판 <셜록 홈즈 시리즈>를 편역한 역자는 코난 도일이야말로 추리소설의 법칙을 충실히 지켜진 작품이라고 평을 하고 있다.  특히, 법칙 3 과 같은 내용은 추리소설 성립에서 중요한 골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추리소설을 읽기 위해 책을 집어든 독자는 소설 속의 범인을 찾아내려는 탐정이 되는 동시에 작가가 만들어낸 트릭을 간파하려는 작가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도전은 쉽지기 않다. 작가는 독자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생각지도 못하는 트릭들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의 텍스트를 통해서 작가와 독자가 서로 머리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추리소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게 만드는 진정한 매력인 것이다.

   

 

  관객을 속이는 그림, 트롱프뢰유  

작가와 독자 간에 머리싸움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추리소설이라면, 반대로 그림으로 화가와 관객이 서로 머리싸움을 할 수 있는 미술에서의 유일한 장르가 바로 트롱프뢰유다. 

트롱프뢰유( trompe-l'œil)는 프랑스어로 '눈속임' 을 뜻하는 단어이다. 지금은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가리키는 미술 용어로 사용한다. 지금까지 그려진 트롱프뢰유 그림들을 소개하는 이 책의 제목인 <눈속임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객의 눈을 속이는 그림인 것이다.  신라 때 활동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화가 솔거의 소나무 그림이 트롱프뢰유라고 볼 수 있다.  솔거는 황룡사 벽에 거대한 소나무 그림을 그렸는데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앉으려다가 부딪쳤다고 한다.   

전설 속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솔거의 일화를 통해서 솔거의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강조하기보다는 존재하는 대상을 실물 그대로 그려야한다는 화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 뒤에는 미술가의 능력은 아무도 부여받을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며 현실을 그대로 그리려는 모든 화가들의 원초적인 야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가의 일반적이면서도 확고한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 트롱프뢰유이다. 그릴려고 하는 대상을 완벽히 묘사하되, 캔버스 안에서 담을 수 있는 현실을 왜곡하며 관객들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트롱프뢰유의 법칙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 & 프란스 판 미리스 <꽃이 있는 정물>, 1658년 

(p 194)

 

만약에 당신 앞에 이 그림이 놓여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림에는 많은 꽃들이 놓여져 있다. 화가들이 주로 그리는 보편적인 정물화이다.  

그런데, 꽃 옆에 오른쪽에는 파란 커튼이 달려 있다. 당신은 커튼으로 반쯤 가려져 있는 꽃을 보기 위해서 커튼을 좀 더 걷어내기 위해서 무심코 캔버스 쪽으로 손을 뻗는다.    

커튼 부분에 손을 닿는 순간, 당신은 당황하게 된다.  꽃을 가리고 있는 파란 커튼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보니, 파란 커튼은 꽃과 함께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그림인 것이다.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와 프란스 판 미리스가 그린 <꽃이 있는 정물>은  트롱프뢰유의 대표적인 그림이다.  이 두 화가는 캔버스에 커튼을 그리게 함으로써 그림을 보는 관객들에게 캔버스를 가릴 때 사용하는 커튼인양 속임수를 쓴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추리소설에도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가 독자들을 속이기 위한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텍스트는 결말이 뻔하기만한 싸구려 B급 소설이 된다. 트롱프뢰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알량한 방식만으로 관객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트롱프뢰유를 그리게 된다면 그것은 실력이 미숙한 화가의 그림으로 치부된다. 이것은 그냥 눈속임일 뿐이다.  즉,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관객들을 제대로 속일 수 있는 진짜 ' 트롱프뢰유' 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트롱프뢰유 제작에도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있었으며 화가들은 이를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였다.  

  1) 그리기 용이한 것 

  2) 그렸을 때 효과가 좋은 것 (화려하고 다채로운 것) 

  3) 주변에서 쉬이 보고 접할 수 있는 것  

  - <눈속임 그림> p 122 -

 

<꽃이 있는 정물>은 트롱프뢰유의 성립 조건을 충분히 갖춰져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물화는 화가들에게는 그리기 쉬우면서도 많이 그리는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꽃과 커튼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꽃들이 놓여져 보이게 하는 2차원적인 구도는 커튼을 3차원의 입체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얀 판 데르 파르트 <바이올린>, 1700년경 

(p 18~19)

얀 판 데르 파르트가 그린 <바이올린>이라는 그림 역시 트롱프뢰유 특유의 조건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문을 열어본 순간, 바이올린 한 개가 걸려져 있는 또 다른 문이 있다. 관객들에게는 문 뒤에 또 다른 문을 열어보고 싶은 호기심 혹은 저 바이올린을 떼어내려고 한다면 이것이 사람을 속이는 그림, 즉 트롱프뢰유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처음에 문은 실제이지만, 바이올린이 걸려 있는 또 다른 문은 벽에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관객이 이길 것인가?       

 

 


페레 보렐 델 카소 <비평으로부터 도망치기>, 1874년 

(P 167)

트롱프뢰유의 어원에는 사람을 속이다는 뜻의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미술에서의 트롱프뢰유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화가들은 트롱프뢰유를 그리면서 관객들을 속이는 동시에 평소 그림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눈 앞에 놓여진 그림 한 점을 보면서 ' 좋다, 나쁘다 ' 라는 식으로 그림에 대해서 평가적인 감상을 하게 된다.  만약에 자신이 보고 있는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면 제일 먼저 화가의 실력을 의심하게 된다.  그림을 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든 말든, 그림에 대한 좋지 않는 평가는 다른 직업과는 다르게 자존심이 강한 화가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화가들 입장에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그림이 절친한 동료인 폴 고갱에게 지적당하자 이에 대한 분노로 반 고흐가 면도날로 귀를 잘라 버렸겠는가?   그리고, 델 카소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쓴쏘리만 하는 비평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캔버스 밖으로 탈출하려고 한다.  

어쩌면, 트롱프뢰유는 자신의 그림 실력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위선적인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제대로 골탕 먹일 수 있는, 화가들만의 유일한 스트레소 해소법일지도 모른다.  관객이 자신의 눈 앞에 놓인 트롱프뢰유의 속임수를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면 관객은 화가에게 완벽히 패한 것이다.  트롱프뢰유는 단지 관객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을 수 있는 어퍼컷이다. 보이지 않는 화가의 어퍼컷에 맞은 관객은 그림 앞에서 한 순간에 얼간이가 되고 만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그렇게 불쾌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화가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게 되면 누구나 다 재미있어 하게 된다.  트롱프뢰유는 화가들의 해학적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화가의 속임수에 당한 일부의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 뭐야,  이거 너무 시시하잖아. 별 것도 아닌거 가지고 속아넘어 갔네. ' 

제발, 트롱프뢰유를 볼 때는 그런 말은 하지 않도록 하자.  

추리소설에서도 작가와 독자 간의 신사 협정이 있듯이 트롱프뢰유에도 화가와 관객 간의 신사 협정이 존재한다. 관객들은 트롱프뢰유는 단순히 시시한 눈 속임수에 불과하며 누구나 다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 협정을 파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관객들은 그림 보는 안목이 낮아서 문제가 아니다. 트롱프뢰유 보는 재미를 모르는 '진짜' 얼간이들이라서 문제이다.  

 

 

* 그림 출처:  

출판사 아트북스 http://blog.naver.com/artbooks21?Redirect=Log&logNo=6011695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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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0-12-3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롱프뢰유, 재밌어요^^ 그림도, 리뷰도.

cyrus 2010-12-30 19:0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메리포핀스님^^ 긴 글인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0-12-30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셜록 홈즈 이야기로 시작해서, 추리 리뷰인가 했네요.
그런데 정교하게 트롱프뢰유로 유도하다니. 대단하십니다, 정녕. ^^

올 여름 방학에 일산 킨텍스에서 트릭아트전 했잖아요. 그게
이런거네요. 사진 찍기 좋았는데... ^^
그림의 커튼... 저두 언뜻 보고 속았다는. 진짜 흥미로운 리뷰였습니다!

앞으로 리뷰 못 쓰게따,, 사이러스님이 점점 멋지게 쓰셔서. 크.

cyrus 2010-12-30 20:23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어떻게 보면 트롱프뢰유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림들입니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제가 소개한 그림들 외에도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미술 도서치곤 내용도 그리 어렵게 되어 있지 않구요.
약간 흠이라면,,, 책 크기가 작을뿐더러, 분량도 적답니다.
크기도 조금 더 크고, 내용도 더 소개되었더라면
트롱프뢰유 그림 보는 눈도 즐겁고,
재미있는 내용의 책이 될 수 있었을겁니다.
마고님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104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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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8월 말에 썼던 글입니다.  열린책들에서 주최한 리뷰 대회 때 쓴 글이었는데 이 글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카페 올린 글들 읽다가 이 글이 서재 블로그에 올리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뒤늦게나마 글을 올려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이 만화가 김태권 씨가 추천한 책이기도 하네요, ^^   

http://blog.aladin.co.kr/celebrities/4316651 

이 때가 서울에 열렸던 퓰리처 상 사진전에 가기 전 쓴 글이었는데 , , ,  지금도 그 때 사진전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몇 달 지나고서야 제가 사는 대구에서도 퓰리처 상 사진전이 열리는 아픈 기억도 있기도 합니다. 

 그 때 왕복으로 KTX 타고 간 비용만 생각하면 , , ,  ㅠ_ㅠ

오랜만에 카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들 보니,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손발이 오글거리네요. 무수히 많은 오타 투성이에다가,  제가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모순어법들 ^^;; 

그래도 예전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몇 몇 책은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0년에 올해 썼던 글들을 다시 한 번 보는 것도 좋은거 같네요.  

 

  

 

 

  잊지 못할 퓰리처 상 사진 전시회 
 

수많은 관람객들이 찾아 큰 인기를 끌었던 퓰리처 상 사진전이 이제 4일 밖에 안 남았다.(전시회는 29일까지다) 이번 사진 전시회가 다음에도 열릴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사진 전시회의 흥행기록만 따져보면 언젠가는 다시 우리나라에 찾아올 것이라고 희망의 기대를 해본다. 필자는 한 달 전에 전시회 관람을 했다. 그것도 큰 맘 먹고 혼자서(!) 한 번 타는데 5만 원 정도 드는 KTX를 타고 서울의 전시회에 갔다. 사실 이런 대형 전시회를 관람해보는 것이 평생소원인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홀로 전시회에 간 이유는 주변 지인들이 이런 문화적 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다보니 서울에 같이 동행할 사람이 없었다. 교통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도 그렇고 완전 대구 토박이 혼자서 서울에 가는 것이 불편해서 그냥 포기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안 간다는 게 너무 아쉬워서 미지의 서울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전시회에 찾았다. 전시회가 열리는 예술의 전당에 처음 와봤는데 건물 내부도 좋고 TV로만 봤던 건물을 보니 한편으로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전시회에 찾은 관람객들이었다. 그 때가 방학 기간이다 보니 관람객 중에서 초, 중학생 자식들과 같이 온 가족들도 많이 있었다. 서울에서의 일정이 당일치기였고 전시회 내부에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무척 아쉬웠지만 평소에 책에서 봤던 유명한 사진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사진에서 전하고 있는 현장의 생생함과 어두웠던 역사의 이미지를 통해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무모했던 서울 당일치기는 외로웠기 보다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보람찬 하루였다.


 Truth or Lie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 전시회에 가보셨다거나, 혹은 안 가보셨더라도 이 사진은 많은 매스컴과 책을 통해서 많이 보셨을 것이다.  

  


 

1945년 수상작인 조 로젠탈의 <수리바치 산에 게양되는 성조기>라는 사진이다. 역대 퓰리처 상 수상작 중에서 베스트 포토로 꼽히는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제임스 브래들리의 소설 『아버지의 깃발』의 책 앞표지와 소설을 원작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동명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이 사진이 변주되었다. 사진의 배경과 장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이오지마 섬의 수리바치 산 정상에서 미군들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이 사진은 연합군의 승리, 곧 미국의 승리로 상징되는 사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진의 제목과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되면 이제 막 미국이 일본에게 승리하여 승리의 상징인 성조기를 세우고 있는 역사적인 장면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 사진은 100% 자연스러운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다. 사진작가의 연출이 만든 장면인 것이다. 조 로젠탈이 이미 사진을 촬영하러 수리바치 산에 올라왔을 때는 미군 병사들은 이미 성조기를 게양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병사들에게 다시 한 번 그 장면을 재연해줄 것을 요구하여 이 장면을 토대로 사진 작품이 나온 것이었다. 전쟁 종결 이후 연출된 사진은 본의 아니게 의기양양한 전쟁의 승리자 미국의 얼굴과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숨겨진 사실은 이 사진이 미국이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난 뒤에 찍은 것도 아니다.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오지마 섬에서의 전투 기간은 가장 치열했고 미국과 일본을 통틀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 속 미군 병사들 중 3명은 사진 촬영 이후 전투 중에 전사하고 만다. 



 역사는 역사다?

우리는 역사를 증명해주는 사진뿐만 아니라 문헌자료, 그림만 봐도 역사 그 자체를 단순히 믿어버리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조 로젠탈의 사진을 통해서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은 세계대전을 승리한 미국의 우월감과 자기도취를 확인하게 된다. 진실 되지 않는 사진 덕분에 조 로젠탈은 퓰리처 상을 받았고, 사진 속 병사들 중에서 생존한 병사는 조국으로 귀환하여 대중들에게 전쟁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그만큼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향수를 잊지 않은 미국인들에게는 이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 호의 뗏목>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174~175페이지 사이에 그림 사진이 있음



줄리언 반스의 소설『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에서도 로젠탈의 사진과 같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제5장「난파」라는 제목의 장인데 테오도르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 호의 뗏목』에 대해서 작가가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내용이다. 제리코의 그림은 실제로 난파된 메두사 호의 생존자들이 구조되는 사건을 토대로 한 그림이다. 그림 속 장면에는 뗏목 위에 죽은 사람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데 생존자들이 죽어가는 사람의 인육을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로젠탈의 사진을 보는 관람객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과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라는 이분법적 이미지가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제리코의 그림도 관람객에게 승자를 강조시켜주는 이분법적 관점을 불러일으키도록 의도하고 있다.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결국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는 죽은 자는 살아남은 자에게 먹히고 마는 약해 빠진 인물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그 약한 자들의 시체를 먹으면서까지 목숨을 유지한 강인한 인물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자들은 쓸모가 없는 약한 자들을 뗏목에서 내다버리고. 심지어 인육을 먹기 위해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 인륜적인 행동을 했지만 관람객들은 그림 속의 처참했던 현장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불편한 진실을 간과한 채 그림을 감상한다.

「난파」의 내용 중에는 제리코의 그림에 대한 주해가 나오는데 나폴레옹 파들은 메두사 호가 좌초되는 장면을 그리지 않은 것을 빌미로 이분법적 이미지의 구도를 당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빗대어 투영하였다. 그리고 메두사 호의 좌초가 결국에는 무능한 왕당파의 모습이라고 비꼬아서 공격하기도 한다. 당시 기득권자인 왕당파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리코는 그림 제작에 약간의 설정을 가했던 것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역사 다큐멘터리나 박물관에서 보고,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가 줄리언 반스의 소설 제목처럼 기득권자들이 조작하고 남은 불과 10과 1/2 정도일지도 모른다. 반스가 세계 역사를 임의대로 10과 1/2장으로 축약한 것처럼 좁은 시야로 보고 있는 10과 1/2의 역사가 진짜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삭제시키고 화려했던 환락의 역사는 항상 보존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역사의 범위와 관점이 10과 1/2로 줄어들게 된다. 


   

 반스가 만든 역사의 미로 속에서 찾은 것

반스의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10장의 역사는 픽션 또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내용이다. 그러나 제목의 1/2로 상징되는「삽입장」은 에세이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각 장의 내용들이 독립적으로 따로 놀다보니 각 장이 미로로 된 역사를 보는 듯하다. 하나의 장을 읽으면 다음 장들과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각 장은 헤어날 수 없는 하나의 폐쇄된 줄거리 공간이다. 그래서 그나마 허구가 없는 내용이라는 삽입장마저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열린책들 세계문학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다음으로 난해한 작품인거 같다) 삽입장의 내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화자(아마도 작가 본인)가 사랑하는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주제가 ‘역사’로 전환된다. 그리고 어느새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다 가 결말에는 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으로 끝난다. 작가가 언급했던 ‘사랑하는 그녀’, ‘역사’, ‘사랑’이 결국에는 역사를 비유하여 사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제목 그대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삽입장을 써서 독자들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된 장난인지는 알 수 없다. 역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답다. 정형적인 소설 형식의 틀을 거부하고 있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작품의 각 장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도 복잡한「삽입장」속 내용에서 그나마 인상 깊었던 것은 역사에 대한 언급이다. 역사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맹점을 작가 는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객관적 진실은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수많은 주관적 진실을 끌어내고 이것들을 평가하고 우화화해서 역사를 만들고, 어떤 신의 이름으로 <실제의> 사건을 각색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렇게 신의 이름으로 각색한 것은 속임수이다. (중략) 이렇게 객관적 사실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객관적 진실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줄리언 반스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삽입장」p 337 -



역사가 기록된 문헌이나 이미지 등은 당시 사회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서 사건의 불필요한 잔상들을 거둬내고 진정한 하나의 역사로 가공된다. 하지만 왜곡되어 삭제된 불필요한 잔상들 속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의 내용도 있을 수가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단순히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믿고 넘어가기보다는 보이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 사진  출처

http://www.segye.com/Articles/News/People/Article.asp?aid=20060821000284&ctg1=02&ctg2=00&subctg1=02&subctg2=00&cid=0101120200000&dataid=200608212052000309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590409&docid=700897&dir_id=090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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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30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역사가 많이 취약하여 요즘 세계사와 국사를 다시 들춰보고 있는데요.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때로 '관점'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0-12-30 14:07   좋아요 0 | URL
역사를 공부할 때 무조건 글자 그대로 보려고 하는것보다는
균형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의 안목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김태권 씨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일거구요^^

다이조부 2010-12-3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태권 관심저자인데 그이가 추천했군요 ^^

아참 그리고 퓰리처 사진전을 못 봤는데 어마어마했나 보네 ㅎㅎㅎ

근데 대구에서 몇 달 후에 전시가 있었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듯

작품이 똑같이 전시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리고 몇 달 먼저 볼 기회가 있었잖아요

그리고 막상 동네에서 했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못갈 확률이 높아요 ㅋ

cyrus 2010-12-30 14:0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듣고보니 그런거 같네요. 예전에 저도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12-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TX를 타고 퓰리처 사진전을 보러온 사이러스님을 보니
오늘 넘 춥다고 코 끝 하나 베란다 내밀어보고
샤갈 전을 포기하려는 제가 좀 한심하다눈..........

아아, 역시나 나가볼까요?

cyrus 2010-12-30 14:12   좋아요 0 | URL
시간이 되시면 코알라 손 잡고 꼭 보러 가보세요.
춥다고 계속 미루다보면 못 갈 수도 있어요^^
아직 안 가봤지만, 내년에 꼭 가보고 싶은 전시회거든요.
열린책들에서 매월 리뷰 대회가 진행중인데
12월 리뷰 대회 상품이 샤갈 전 초대권이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벤트만큼은 당첨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
 
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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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 양희은 노래, <작은 연못> 중에서 -

 
   

 

 

  " 혹시 소금꽃나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요? "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 소금꽃나무  , , , ?   

처음 들어본 생소한 나무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답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왠지 그런 나무가 있을 것이라는 반신반의한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 그런 나무는 없다 ' 고 말한 사람이 정답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식물도감들을 샅샅이 뒤져봐도 나올 수 없는, 아니 이 지구상에 그렇게 부르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이 소금꽃나무는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 , ,    

  

 

  노동자들이 피워내는 소금꽃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나 역시 소금꽃나무의 존재를 며칠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소금꽃나무를 본 적도 없다.  대한민국 최초의 '처녀 용접공' 으로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들어가 지금도 민주노조운동을 하고 있는 김진숙 씨가 쓴 <소금꽃나무>라는 책에서 알게 되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침 조회 시간에 쭉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에는 하얀 가루가 묻어있다. 그들이 뼈 빠지게 일하면서 뿜어져 나온 땀들이 소금 결정체로 굳어버린 것이다.  김진숙 씨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시절 그 모습을 자주 보면서 등짝에 묻어 있는 하얀 것들을 소금꽃이라고 생각했다.  소금꽃을 주렁주렁 달린 채 서 있는 노동자들은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인 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소금꽃나무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소금꽃나무가 ' 노동자 ' 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가 지금도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이유  

김진숙 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검색 포털 사이트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였다. 나는 그녀의 근황까지 알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뉴스는 2010년 2월 달로 멈춰져 있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반대하여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일 오전 7시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문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희망적인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굳센 심지 같은 성격을 그녀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지금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 비정규직 ' 이라는 이름 아래에 아직도 일 할 권리를 얻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위해서.  

그들이 붙잡고 있던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가 제법 그늘까지 드리운 산별노조라는 고목나무가 되도록 피를 섞어 물을 주어 살을 깎아 비료를 주며 알뜰살뜰 가꾸어 갈 사람들. 투쟁의 시기가 되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집행부의 실천 지침을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한 번도 앞서거나 빛나지 않은 채 3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 <소금꽃나무> 김진숙, 후마니타스, p 77 -  

그녀는 그동안 참고 지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있다. 특히, 그녀에게는 거대한 세상에 부딪혀 쓰러져야만 했던 동지들이 못다 이룬 한을 풀어줘야만 했다. 2003년에 한진중공업에서 장기 노사 갈등을 겪다가 김주익, 곽재규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김주익 지회장이 35m 크레인 위에서 129일 간 농성을 하다 스스로 목을 맸고, 뒤이어 곽재규 씨가 도크로 뛰어내려 사망했다. 산재사고가 워낙 많은 조선소라지만, 순식간에 두 명의 동료의 죽음은 가족이나 다름없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그리고 김진숙 씨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의 기억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흩날리는 눈발과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지금도 김진숙 씨는 현대중공업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 노동자 ' 란 . . .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 노동자 ' 라는 단어에 대해서 거리감을 갖기 마련이다. 쥐꼬리만한 수당으로 왠만한 사람들도 하기 힘든 고역에 쉬지도 않고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에 학생기록부에 장래희망을 적을 때도 '노동자' 라고 적는 사람이 있었던가?   

거기에다가 오늘날에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 노가다 () ' 라고 경시하면서 부르게 된다. 토목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높여서 부르는  どかた는 원래는 ' 토가다 ' 로 읽지만, 변형되어 사용하면서 ' 노가다 ' 로 읽게 된 것이다.

 ' 할 일 없으면 노가다라도 뛰지. 뭐 , , , '  

젊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 노가다 ' 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지금은 힘들고 고된 일을 지칭하는 은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앞에서 제시된 예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가다는 할 일 없을 때 하는 힘든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할 일 없어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힘든 일을 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다.  김진숙 씨가 생각하는 ' 노동자 ' 는 그동안 우리가 왜곡되어 알고 있었던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버리고 있다. 

그 나무들이 500여 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집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전화를 만들고 , , , , ,  (중략)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 <소금꽃나무> 책을 내며, p 9 -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가 지금까지도 수천년 세월의 모랫바람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왜구의 침략을 막아 조선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거북선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름 없는 수많은 일꾼들, 즉 노동자들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단순히 일만 하는 그런 하찮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 중에서도 故 김주익, 곽재규 씨처럼 스스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세상과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스마트폰, 컴퓨터, TV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었는지, 그것을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겪는 말 못하는 고충과 자존심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노동자' 에 대한 김진숙 씨의 정의는 노동자에 대한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

양희은 씨의 노래 가사 속 이야기처럼 ' 대한민국 ' 이라는 작은 연못에  ' 정규직' 이라는 붕어와 ' 비정규직 ' 이라는 붕어가 함께 살고 있다.   ' 정규직 ' 붕어가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비정규직' 붕어를 억압하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 비정규직 ' 붕어는 죽게 된다. 죽은 ' 비정규직' 붕어의 시체가 썩어가면서 ' 대한민국 ' 연못 역시 썩어가게 된다.  하지만, '정규직' 붕어는 자신의 연못이 썩어가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이런 최악의 상황이 생겼는지도 영영 모른채 자신도 오염된 물 때문에 죽게 된다.  

현재 정규직뿐만 아니라 대다수 대중들에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운동은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남 이야기일뿐이다.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투쟁을 부르짖어도 정규직들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비정규직들의 투쟁은 노동운동에서조차 소외되고 있으며 정규직뿐만 아니라 정부 그리고 시민들까지 스스로 회피하고 침묵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낳은 사회적인 갈등의 상처가 깊어가는 것도 모른채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낸 불신의 병은 깊어만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우리가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갈등의 폭이 커져버린 정규직, 비정규직간 격차의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아빠, 그런데 내가 일자리 구해줄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되요? 

  그래야지 운동회, 학예회도 보잖아요!  

  다른 애들은 아빠자랑도 하는데 . .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화이팅!  

  참!  어제 무서웠죠?  우리는 오빠가 아빠 노릇 잘 해요.  

  사랑해요!  

  - 크레인 위에 있는 아빠에게, 故 김주익 씨의 딸이 쓴 편지, P 111 -  

오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를 산별노조라는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 자신들의 피와 살을 스스로 깎아가면서까지 비료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희망적인 노동자들을 위한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자신들이 희생하면서 비료로 만들기에는 지금 현실로서는 턱없이 부족하기만하다.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화이팅! '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이 순진한 아이가 쓴 편지 속에 있는 이 구절처럼 아버지 故 김주익 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격려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작은 격려와 관심이 이들이 가꾸는 희망의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훌륭한 비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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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세상과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아, 갈길도 멀고 별로 실현될거 같지도 않은 제 목표네요.
한방에..... 라고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불안해요. 막판까지 온 듯 한 느낌. 아마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부는 자유 시장이라는 개념의 부작용이 커질대로 커진 느낌입니다.
크게 한번 흔들릴거 같은 생각도 들구요. 그럼 나는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지
재테크는 어떻게 하여 쥐꼬리만큼 가진 재산이라도 보호할지 그런 걱정도 하구요.
온갖 상상이 머리를 들끓고 있는 요즘입니다. ^^

cyrus 2010-12-29 20: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 비정규직의 애환을 바라보면서 병든 사회에 대해서
지적하고 한탄을 해도 먹고사니즘의 미련을 못 버리는게 사실이죠.

양철나무꾼 2010-12-3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분 책 못 읽어요, 가슴이 메어 와서...

참 외롭게 우뚝 서신 분이죠.
이 겨울 춥지 않아야 할텐데...

님 리뷰 덕분에,
저 혼자 넘 호사스러웠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cyrus 2010-12-30 14:0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편의점 카운터에 앉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어서 불편했고, 저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친분이 있는 출판사 카페 매니저님의 소개를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 분 역시 나무꾼님처럼
가슴 아프게 읽었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비록 불편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는 것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다이조부 2010-12-3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은 목록리스트에 있는데 먼저 읽었군요~ 배신자 ㅋㅋㅋ

제가 주인장 또래에 친구랑 서준식선생의 뚱땡이책 옥중서한 을 읽은 기억이 있어요.

지금은 원래 두꺼운 책이었는데, 더 퉁퉁해진 책인데 님이 읽으면 분명 만족할거라 확신합

니다. 김규항 인터뷰집에서 김진숙씨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구절에서 걸리더군요


다이조부 2010-12-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주의자 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김규항의 발언에 저는 유감스럽더군요!~

새해에도 주인장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네요. 대구 내려가면 막창 먹어요 ㅋㅋㅋㅋ

cyrus 2010-12-30 14:05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꾸랑 형^^;;
꾸랑 형이 소개하신 서준식 씨의 책뿐만 아니라 김진숙씨를 비판하는
김규향 씨의 글도 읽어보고 싶네요.

글샘 2011-01-1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숙 씨 지금 타워 크레인에 올라가서 고공 농성중입니다.
마음이 쓰리고 시리고 그렇네요. ㅠㅜ
고 김주익 생각도 나고...

cyrus 2011-01-14 20: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제 곧 날씨가 추워질텐데 그 분의 건강이 악화될까봐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