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임 그림 - 트롱프뢰유, 실재를 흉내 내고 관객을 속이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명탐정 셜록 홈즈는 그의 절친한 동료인 왓슨 박사와 함께 사건 의뢰인이 살고 있는 집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홈즈가 맡게 된 사건은 사건 의뢰인의 언니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홈즈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아무리 조그만한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방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 저 초인종의 끈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나요? "  

홈즈가 사건 의뢰인에게 물었습니다.  침대 위에 매달린 초인종의 끈은 그 끝이 베개 위에 닿아 있었습니다.  

 " 2년 전에 달았는데, 가정부의 방으로 통해 있을거에요. " 

 " 언니가 달게 했나요? "  

 " 아니에요.  언니나 저는 가정부에게 일을 시킨 일이 없어요. 가정부는 우리 집에 오래 있지도 않았구요. "  

 " 그렇다면 이런 초인종 끈은 별로 필요가 없었을 텐데 , , , , , " 

홈즈는 침대가 다가가 잠시 관찰한 후, 초인종의 끈을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 아니, 이건 초인종 끈이 아니잖아 ! "     

홈즈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 울리지 않나요? " 

 " 울릴 리가 없죠.  자, 잘 보십시오. 끈 끝이 환기 구멍 바로 위 고리에 묶여 있죠? "  

 " 어머, 이상하군요!   전 여태껏 몰랐어요. 아마 언니도 몰랐을 거에요. "   

 " 이상한 건 이것뿐이 아니오. 환기 구멍은 바깥쪽을 향해 뚫려 있어야 원칙인데, 이건 옆방으로 통했군요. 별 얼간이 같은 건축가도 다 있었군그래. "  

 
 -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얼룩 띠의 비밀] 중에서 -

     

 

  추리소설의 법칙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간략하게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이성적인 사고 능력과 지식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는 소설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의 시초에는 오귀스트 뒤팽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추리소설들을 쓴 에드거 앨런 포 이며 한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서 추리 소설을 이루게 하는 공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법칙에다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추리소설을 확립한 작가는 아서 코난 도일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추리소설들도 다양한 주제와 캐릭터 그리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복잡한 트릭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추리소설들에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과 같은 다양한 플롯과 캐릭터들로 무장된 추리소설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 추리소설은 이렇게 써야한다' 는 식의 불문율은 무의미하겠지만,  추리소설이라는 텍스트를 성립되게 하는 조건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출간된 문고판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 추리소설의 법칙에 대한 내용이 소개된 걸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에 이런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추리소설이라면 독자들은 텍스트에 대한 몰입을 하지 못할 것이다.

 1)  수수께끼의 해결에 이르러서는 모든 단서가 명백히 그려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것을 간파당하지 않도록 트릭을 써야 한다.  

  2)  범인은 추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우연에 따른다든지,  

       자백에 의해 결정되서어는 안 된다. 

  3)  작가는 독자를 상대로 지혜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소개된  

       법칙은 독자와 작가 사이에 맺어진 일종의 신사 협정인 셈이다. 함부로 이 협정을  

       깨뜨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문고판 <셜록 홈즈 시리즈>를 편역한 역자는 코난 도일이야말로 추리소설의 법칙을 충실히 지켜진 작품이라고 평을 하고 있다.  특히, 법칙 3 과 같은 내용은 추리소설 성립에서 중요한 골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추리소설을 읽기 위해 책을 집어든 독자는 소설 속의 범인을 찾아내려는 탐정이 되는 동시에 작가가 만들어낸 트릭을 간파하려는 작가에 대한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도전은 쉽지기 않다. 작가는 독자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생각지도 못하는 트릭들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의 텍스트를 통해서 작가와 독자가 서로 머리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추리소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게 만드는 진정한 매력인 것이다.

   

 

  관객을 속이는 그림, 트롱프뢰유  

작가와 독자 간에 머리싸움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추리소설이라면, 반대로 그림으로 화가와 관객이 서로 머리싸움을 할 수 있는 미술에서의 유일한 장르가 바로 트롱프뢰유다. 

트롱프뢰유( trompe-l'œil)는 프랑스어로 '눈속임' 을 뜻하는 단어이다. 지금은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가리키는 미술 용어로 사용한다. 지금까지 그려진 트롱프뢰유 그림들을 소개하는 이 책의 제목인 <눈속임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객의 눈을 속이는 그림인 것이다.  신라 때 활동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화가 솔거의 소나무 그림이 트롱프뢰유라고 볼 수 있다.  솔거는 황룡사 벽에 거대한 소나무 그림을 그렸는데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앉으려다가 부딪쳤다고 한다.   

전설 속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솔거의 일화를 통해서 솔거의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강조하기보다는 존재하는 대상을 실물 그대로 그려야한다는 화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 뒤에는 미술가의 능력은 아무도 부여받을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며 현실을 그대로 그리려는 모든 화가들의 원초적인 야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가의 일반적이면서도 확고한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 트롱프뢰유이다. 그릴려고 하는 대상을 완벽히 묘사하되, 캔버스 안에서 담을 수 있는 현실을 왜곡하며 관객들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트롱프뢰유의 법칙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 & 프란스 판 미리스 <꽃이 있는 정물>, 1658년 

(p 194)

 

만약에 당신 앞에 이 그림이 놓여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림에는 많은 꽃들이 놓여져 있다. 화가들이 주로 그리는 보편적인 정물화이다.  

그런데, 꽃 옆에 오른쪽에는 파란 커튼이 달려 있다. 당신은 커튼으로 반쯤 가려져 있는 꽃을 보기 위해서 커튼을 좀 더 걷어내기 위해서 무심코 캔버스 쪽으로 손을 뻗는다.    

커튼 부분에 손을 닿는 순간, 당신은 당황하게 된다.  꽃을 가리고 있는 파란 커튼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보니, 파란 커튼은 꽃과 함께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그림인 것이다.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와 프란스 판 미리스가 그린 <꽃이 있는 정물>은  트롱프뢰유의 대표적인 그림이다.  이 두 화가는 캔버스에 커튼을 그리게 함으로써 그림을 보는 관객들에게 캔버스를 가릴 때 사용하는 커튼인양 속임수를 쓴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추리소설에도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가 독자들을 속이기 위한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텍스트는 결말이 뻔하기만한 싸구려 B급 소설이 된다. 트롱프뢰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알량한 방식만으로 관객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트롱프뢰유를 그리게 된다면 그것은 실력이 미숙한 화가의 그림으로 치부된다. 이것은 그냥 눈속임일 뿐이다.  즉,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관객들을 제대로 속일 수 있는 진짜 ' 트롱프뢰유' 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트롱프뢰유 제작에도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있었으며 화가들은 이를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였다.  

  1) 그리기 용이한 것 

  2) 그렸을 때 효과가 좋은 것 (화려하고 다채로운 것) 

  3) 주변에서 쉬이 보고 접할 수 있는 것  

  - <눈속임 그림> p 122 -

 

<꽃이 있는 정물>은 트롱프뢰유의 성립 조건을 충분히 갖춰져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물화는 화가들에게는 그리기 쉬우면서도 많이 그리는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꽃과 커튼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꽃들이 놓여져 보이게 하는 2차원적인 구도는 커튼을 3차원의 입체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얀 판 데르 파르트 <바이올린>, 1700년경 

(p 18~19)

얀 판 데르 파르트가 그린 <바이올린>이라는 그림 역시 트롱프뢰유 특유의 조건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문을 열어본 순간, 바이올린 한 개가 걸려져 있는 또 다른 문이 있다. 관객들에게는 문 뒤에 또 다른 문을 열어보고 싶은 호기심 혹은 저 바이올린을 떼어내려고 한다면 이것이 사람을 속이는 그림, 즉 트롱프뢰유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처음에 문은 실제이지만, 바이올린이 걸려 있는 또 다른 문은 벽에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관객이 이길 것인가?       

 

 


페레 보렐 델 카소 <비평으로부터 도망치기>, 1874년 

(P 167)

트롱프뢰유의 어원에는 사람을 속이다는 뜻의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미술에서의 트롱프뢰유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화가들은 트롱프뢰유를 그리면서 관객들을 속이는 동시에 평소 그림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눈 앞에 놓여진 그림 한 점을 보면서 ' 좋다, 나쁘다 ' 라는 식으로 그림에 대해서 평가적인 감상을 하게 된다.  만약에 자신이 보고 있는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면 제일 먼저 화가의 실력을 의심하게 된다.  그림을 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든 말든, 그림에 대한 좋지 않는 평가는 다른 직업과는 다르게 자존심이 강한 화가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화가들 입장에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그림이 절친한 동료인 폴 고갱에게 지적당하자 이에 대한 분노로 반 고흐가 면도날로 귀를 잘라 버렸겠는가?   그리고, 델 카소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쓴쏘리만 하는 비평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캔버스 밖으로 탈출하려고 한다.  

어쩌면, 트롱프뢰유는 자신의 그림 실력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위선적인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제대로 골탕 먹일 수 있는, 화가들만의 유일한 스트레소 해소법일지도 모른다.  관객이 자신의 눈 앞에 놓인 트롱프뢰유의 속임수를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면 관객은 화가에게 완벽히 패한 것이다.  트롱프뢰유는 단지 관객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을 수 있는 어퍼컷이다. 보이지 않는 화가의 어퍼컷에 맞은 관객은 그림 앞에서 한 순간에 얼간이가 되고 만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그렇게 불쾌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화가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게 되면 누구나 다 재미있어 하게 된다.  트롱프뢰유는 화가들의 해학적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화가의 속임수에 당한 일부의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 뭐야,  이거 너무 시시하잖아. 별 것도 아닌거 가지고 속아넘어 갔네. ' 

제발, 트롱프뢰유를 볼 때는 그런 말은 하지 않도록 하자.  

추리소설에서도 작가와 독자 간의 신사 협정이 있듯이 트롱프뢰유에도 화가와 관객 간의 신사 협정이 존재한다. 관객들은 트롱프뢰유는 단순히 시시한 눈 속임수에 불과하며 누구나 다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 협정을 파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관객들은 그림 보는 안목이 낮아서 문제가 아니다. 트롱프뢰유 보는 재미를 모르는 '진짜' 얼간이들이라서 문제이다.  

 

 

* 그림 출처:  

출판사 아트북스 http://blog.naver.com/artbooks21?Redirect=Log&logNo=6011695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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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0-12-3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롱프뢰유, 재밌어요^^ 그림도, 리뷰도.

cyrus 2010-12-30 19:0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메리포핀스님^^ 긴 글인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0-12-30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셜록 홈즈 이야기로 시작해서, 추리 리뷰인가 했네요.
그런데 정교하게 트롱프뢰유로 유도하다니. 대단하십니다, 정녕. ^^

올 여름 방학에 일산 킨텍스에서 트릭아트전 했잖아요. 그게
이런거네요. 사진 찍기 좋았는데... ^^
그림의 커튼... 저두 언뜻 보고 속았다는. 진짜 흥미로운 리뷰였습니다!

앞으로 리뷰 못 쓰게따,, 사이러스님이 점점 멋지게 쓰셔서. 크.

cyrus 2010-12-30 20:23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어떻게 보면 트롱프뢰유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림들입니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제가 소개한 그림들 외에도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미술 도서치곤 내용도 그리 어렵게 되어 있지 않구요.
약간 흠이라면,,, 책 크기가 작을뿐더러, 분량도 적답니다.
크기도 조금 더 크고, 내용도 더 소개되었더라면
트롱프뢰유 그림 보는 눈도 즐겁고,
재미있는 내용의 책이 될 수 있었을겁니다.
마고님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