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에밀리오 살가리 지음, 유향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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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12] 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산도칸과의 첫 만남

산도칸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피터 박스홀 외, 마로니에북스)이라는 책이었다. 100명의 외국의 문학가, 교수, 언론인들이 죽기 전까지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북 버킷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말로는 ‘북 버킷 스트’이지 1001권이 모두 문학 작품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에서부터 문학의 변방인 제3세계와 북유럽, 동양 문학 작품들 까지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 작가의 작품 비율이 80 대 20이다. (또 동양 작가의 작품에서 한중일로 따지고 들어가면 일본 작품들이 조금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버킷 리스트에 있는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故 박경리의『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뿐이다) 사람들에게 세계의 모든 문학 작품들을 알린다는 취지는 좋으나 잠잘 때 베게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두께에 비하면(900페이지 넘는다) 내용과 구성 면은 그리 좋다고는 볼 수 없다. (소설, 희곡, 수필까지 장르를 아울러 작품들을 소개하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유독 ‘시’는 딱 한 편이 있다. 로트레아몽의『말도로르의 노래』가 유일하다. 보들레르와 롱펠로, 프로스트와 같은 유명 시인들의 작품은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노벨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T.S. 엘리엇조차도 버킷 스트 명단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 덕분에 세계 문학이라는 넓은 대륙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된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부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번역되어가는 작품들이 출간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에밀리오 살가리의『산도칸』이다. 3년 전에『1001권』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그 때는『산도칸』이 출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듬해에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 무시무시한 해적 . . . 맞아 . . . ? 

 

그런데 『산도칸』을 읽면서, ‘정말 잔인하고 냉철한 해적이 맞냐?’ 하는 의문이 느꼈다. 작품 속 동명이름의 주인공은 말레이시아에서 맹위를 떨치는 해적으로 등장하는데 별명이 몸프라쳄의 호랑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깐 몸프라쳄의 호랑이가 아니라 그냥 '종이'호랑이 같다.

짝사랑을 하지만 원수 국가인 영국의 여인 마리안나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참 가관이다. 만약에 자신의 연인이 되어준다면 왕국은 물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년 내내 빛나는 황금과 보석으로 샤워시켜주겠다는 등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큰소리를 친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들 중에서 읽기 민망하게 느껴졌던 문장이었다. 필자도 남자이지만 사랑에 빠져 눈에 콩깍씌면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지 모르겠다.  

 

산도칸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서 앞으로 전개될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러브 스토는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과연 도칸이 그 때의 약속을 마리안나에게 지켜줄지 궁금하기만 하다. 황금과 보석을 그녀에게는 바치는 것은 산도칸에세는 식은 먹는 일이겠지만, 그의 절친이자 동료인 야네스와 헤어지지 않는 한 말레이시아를 지키기 위한 해적 활동은 포기 못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시리즈에는 산도칸은 또 한번 자신의 본분과 마리안나를 사이에 두고 고민할 것이다. 혹은 몸프라쳄의 호랑이 시절의 향수 때문에 산도칸과 마리안나가 부부싸움을 하는 상황도 상상할 수가 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의 줄거리를 통해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탈리아의 쥘 베른  


산도칸 시리즈의 첫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잔인한 해적과 자신이 싫어하는 원수 국가에서 태어난 여자의 불꽃같은 사랑을 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국가 간의 대립을 뛰어넘어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대체로 통속소설의 전형적인 줄거리이다. 그래서 산도칸 시리즈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에 충분한 줄거리 위주의 내용으로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후대의 문학가들이 그의 작품을 애독하는 것과 동시에 찬사를 보낸 점은 무시할 수 없는 평가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가인 에밀리오 살가리는 산도칸 시리즈의 배경인 말레이시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말레이시아 관련 자료들을 통해서 최대한 야생의 나라를 표현한 것이었다. 사족 하나 달자면 살가리는 ‘이탈리아의 쥘 베른’ 이라는 별명을 가지있다. 많은 독자들이 알다시피 쥘 베른도 대중적인 모험소설을 남긴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이다. 그의 작품 배경은 19세기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세계 일주, 해저 밑, 지구 속 심지어 우주까지 배경이 참으로 폭넓다. 그런데 놀랍게도 쥘 베른은 우주나 지구 속, 바다 밑에 가본 적도 없으며 그 역시 영국 밖으로 나가서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과학, 지리학에 관한 식견, 탐험가들에게 얻은 생생하고 풍부한 자료들, 그리고 자기만의 특유의 상상력으로 100여 편의 모험소설들을 써왔던 것이다. 

  

 

  

 

  체 게바라가 산도칸을 읽은 이유

 

내용은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사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산도칸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말레이시아의 보호를 위해 해적으로 활동하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역시 산도칸 시리즈의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반 제국주의적인 관점서 읽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와 싸우는 자신을 제국주의 유럽 열강과 싸우는 무모하면서도 혈기왕성한 청년 산도칸에 투영함으로써 한평생동안 쿠바의 혁명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산도칸 시리즈가 유행했던 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자극하는 모험소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동방의 취미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오리엔탈리즘 문화도 한몫 했다. 19세기 말 유럽의 오리엔탈리즘 문화는 미술 분야에서 먼저 두드러진 발전을 했다. 화가들은 이국적인 동양의 여인과 장식품들을 화폭에 담아내어 동양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화가들도 역시 동방에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여행가들에게 들은 동방에 대한 내용과 자신의 상상력만 있으면 대중들을 사로잡는 오리엔탈리즘 그림을 완성해냈다. 에밀리오 살가리도 당시 유럽 전역을 떠돌고 있는 문화의 유행에 심취했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높은 관심은 작가의 죽음에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살가리는 일본 사무라이식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대중들의 취향을 그는 제대로 포착하여 자신의 작품 구상에 잘 반영하였다.『산도칸』이 시작하는 페이지에도 보게 되면 산도칸이 이끄는 몸프라쳄 해적단의 본거지 내부가 묘사되어 있는데 문장은 오리엔탈리즘 미술의 영향을 받았을만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사방 벽은 두툼한 붉은 비단과 브로케이드(무늬가 있는 직물)로 덮여 있었는데, (중략) 그래도 아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자개로 상감 처리하고 은제 프리즈(띠 모양의 조각)로 장식한, 흑단으로 만든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위에 진짜 크리스털로 만든 술병과 잔이 놓여 있었다. 방의 세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선반들은 지난날 선상 습격에서 약탈한 전리품들로 빽빽하였다. 다양한 크기의 항아리들이 제각기 내용물을 과시하고 있었으니, 진주 목걸이, 금 목걸이, 귀고리, 반지, 로켓, 메달 등 신성한 성물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거기에다 귀중한 보석들 또한 빠지지 않았으니 진주,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등등 이 천장에 매달린 금박을 입힌 등불 아래에서 별처럼 반짝거렸다. 

                - 에밀리오 살가리『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p 10~11

    

 

이국적인 고가(高價)의 장식품들에 대한 열거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무려 23줄이나 이루어져 있다. 첫 페이지부터 오리엔탈리즘적 문장의 도입은 이제 막 산도칸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을 읽는 대중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20세기로 오게 되면서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은 동방 국가에까지 지배권을 확대시키려는 제국주의로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전에 꿔왔던 동방에 대한 동경을 문화재 약탈이라는 야욕으로 변질되었다. 지금의 유럽 국가들은 과거에 식민지에서 약탈했던 문화재들을 단지 전리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반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대국이라는 명함을 내세우면서 세계무대에서 떵떵거리는 미국과 유럽 국가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과거의 제국주의의 허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적의 총알이 언제 자신의 심장에 박힐지도 모를 위험한 전장 속에서 체 게바라가 유독 산도칸 시리즈를 열심히 읽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죽었다 

  

산도칸과 마리안나는 몸프라쳄 해적단과 영국 군과의 치열한 전투 도중에 몰래 빠져나와 사랑의 도피(?)하는 장면으로 결말을 짓게 된다. 산도칸의 마지막 독백 중에서 ‘이제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죽었다’ 라는 말로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다. 결국 기나긴 고민 끝에 조국을 위한 해적 활동을 잠시 접어두고 마리안나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선택하고 말았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분명히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다시 살아남아 해적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 현실에는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진짜로 사망하였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1786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무려 171년이 지난 1957년에 독립한다. 말레이시아대한 상세 역사를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을 한 산도칸과 같은 인물들이 치열한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을 찾기 위해서 싸웠던 시간은 100년을 훌쩍 넘게 되었다. 에밀리오 살가리마무리 지었 몸프라쳄 호랑이의 잠정적 사망선고가 결국은 오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 말레이시아에게는 백년 동안의 죽음은 그들에게는 가혹한 사망선고였던 것이다. 유럽의 독자들이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재회를 원했던 것과 재회를 통한 해피엔딩에 열광한 것이 어쩌면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당연하게 여겼던 제국주의자들의 염원과 열광이 아니었을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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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3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겹낫표까지 꼼꼼히 챙겨 주시는 리뷰.
그 책의 리스트에 시가 그렇게 없다니.. 좀 안타깝네요.

^^. 이렇게 열정적으로 책만 보실 것이 아니라 책 너머의 누군가에도 좀 열정적으로 시선을 돌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추워지는데.. ㅎ

2010-10-30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0-3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베고자기에 딱인 두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북 버킷 리스트'가 왕 부러운 걸요~^^

전 몇권이나 꼽을 수 있을까요?

cyrus 2010-11-0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다기보다는(양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읽기에는 버거워요^^;;)
.. 훑어봤답니다. 정말 책베게하기에는 좋더라고요ㅎㅎ

나무꾼님 같은 경우에는 학생 시절부터 외국고전 작품들을 읽으셨을거 같은데요.
저는 열 손가락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꽤 읽으셨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너무 문학작품들을 안 읽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회생활 하면 언제
이런 작품들을 읽어보겠습니까? ^^;;

2010-11-0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02 12:59   좋아요 0 | URL
ㅎㅎ 이건 나무꾼님 댓글에 답글로 설정해야했었는데,,
제가 실수로 안 하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비밀글 설정 해제할께요, 뭐 그닥 비밀스러운(?)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해서 비밀글로 설정했던거랍니다.

2010-11-05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05 19: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이트님. 다시 읽어보고 수정했습니다.
살가리가 산도칸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썼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국내에 번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내에 산도칸이라는 시리즈가 생소하지만,
국외에서는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체 게바라 이외에도 움베르토 에코와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산도칸 시리즈를 즐겨 읽었다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1-0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선 에코의 소설에 언급되어서 유명해졌다고 하죠.작가들의 인생역정에 관심이 많은데 살가리는 그렇게 책이 인기가 있었는데도 가난 속에서 자살했다고 하니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cyrus 2010-11-06 16:14   좋아요 0 | URL
산도칸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에 대한 인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거기에다가 빚도 불어나고요. 그런 환경이 작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살가리처럼 유명 문학가나 예술가들 중에서는
생전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실생활에서는 가난에
허덕이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06 17:20   좋아요 0 | URL
어쩐지 슬프군요.
 
셔동지젼 지만지 고전선집 554
작자 미상 지음, 최진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디케의 말 못하는 고충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우리나라에 매년 270명이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270명이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떡하다 보니 자신이 범죄자로 몰릴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TV속 드라마나 문학 작품들에는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려 옥에 갇힌 인물이 등장하곤 한다. 대부분동료의 거짓된 밀고나 비윤리적인 인물의 뇌물 혹은 증인의 엉터리 증언 때문에 한순간에 범죄자로 지목받게 된다. 그리고 단지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보니, 범죄에 대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재판관들에게는 이런 복잡한 상황들 속에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눈을 가리고 있겠는가?  눈을 가림으로써 하나의 사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모두 완벽할 수가 없다. 정말 불행하게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수십년을 감옥에 살아야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뇌물을 받아서 올바르지 못한 판결을 내린다거나 부당한 집단들과 손을 잡아서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비윤리적인 재판관들이 있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 반국가단체 인사로 몰아 넣어 사형 판결을 내린 '인혁당 사건' 이 그 예이다. 8명의 인혁당원들은 사형 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이 사형당한지, 무려 32년 만에 사법부는 인혁당 사건의 재판 결과는 잘못된 판결이었으며 8명을 무죄로 선고하였다.  

2년 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디케의 눈>에서 저자이자 변호사인 금태섭 씨는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가 실제 현장에서 법이 진실을 찾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무리 뛰어난 신이라 할지라도 디케는 현실 앞에서 진실다운 판결을 내리는데 말 못하는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동물판 '실화 극장, 죄와 벌'

하지만, 악의 세력에 맞서서 힘 없는 선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금태섭 씨가 말하고자 한 것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판관은 진실다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런 디케의 진리는 동서고금 모든 재판관들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부당한 재판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야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동지전>은 흥미롭게도 이솝 우화처럼 동물들이 등장하는 고전소설이면서도 내용은 오늘날의 재판처럼 억울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올바른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서동지전>은 조선 후기 때 쓰여져서 작품 속 인물들도 시대상의 인물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는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서로 구도적인 캐릭터가 있듯이 <서동지전>에는 성격이 착하나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는 쥐 '서대주' 와 그를 모함하는 다람쥐가 등장한다. 다람쥐는 예전에 서대주로부터 양식을 빌려 큰 은혜를 입었으나, 또 한 번 그에게 양식을 구걸하다가 퇴짜를 맞게 되자, 이에 원한을 품고 재판관인 호랑이 '백호산군' 에게 거짓으로 소송을 건다. 그러나 슬기로운 재판관인 백호산군은 서대주와 다람쥐의 말을 들어보고 다람쥐가 허위로 고발하였음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이 세운 계략에 의해서 궁지에 몰린 다람쥐는 그 허위 신고라는 죄목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착한 서대주는 백호산군에게 다람쥐에게 선처해 줄 것을 간청한다. 이에 탄복한 백호산군은 서대주의 간청대로 다람쥐를 용서해주었고, 이에 다람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서대주에게 사과를 한다. 그러자 서대주는 쿨하게 다람쥐에게 황금을 주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작품에서 서대주는 과거에 큰 공을 세워 벼락부자가 된 인물이며, 다람쥐는 살림이 부유했으나 성격이 무능하여 가난에 허덕이는 인물이다.  작품 배경을 비추어 보면 서대주는 조선 후기 때 새롭게 부상한 신흥 상공인 계층이며 다람쥐는 허위 의식에 젖어 있는 몰락한 양반층을 상징하고 있다.  유교적 조선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는 줄 알았던 양반층들에게는 갑자기 등장한 신흥 상공인 계층들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자신들의 유지 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눈치 챈 양반층들은 유교 사상의 이념과 자신들의 권위를 앞세워 이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넘보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공정히 사건을 처리해야 할 관리들이 그 부정적인 수단에 눈이 먼 나머지 제멋대로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악의 연결 고리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선량한 상공인 계층 또는 힘 없고 가난한 서민들은 부당한 양반들이 지배하는 세력 앞에서 억울하게 죄값을 대신 치뤄야 했다.   

    

 

  뇌물이 오고가는 사회

그러나, 여기서 소개된 줄거리만 가지고 서대주를 올바른 인물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작품을 읽는 독자에 따라서 한 인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서대주는 자신이 처한 억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뇌물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서대주라는 인물은 갑자기 찿아온 예상 밖의 상황에 대해 민첩하게 대응할 줄 아는 명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억울한 누명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보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뇌물을 이용하는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서동지전>을 읽게 되면 서대주의 이런 행동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서대주가 다람쥐가 모함한 거짓된 죄목을 받았다하더라도 공명정대한 사회에서는 뇌물은 부정적인 방법이다.  어차피 백호산군의 명판결로 서대주가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서대주가 뇌물을 주는 행동만큼은 옳은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서대주의 이런 모습은 비단 조선 후기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뇌물은 판결의 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부정한 거래도 오래 가지 못한 채 발각되기는 하지만, 이런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뇌물의 위력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뇌물이 오고 가는 현상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뇌물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동지전>에서도 뇌물의 위력을 맛 본 인물이 등장하는데, 평소에 서대주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오소리는 백호산군의 명령에 따라 서대주를 체포하러 가는데, 자신의 동료인 너구리에게 서대주로 하여금 뇌물을 요구할 것을 결탁을 꾀하기도 한다.  서대주의 죄를 따지기 전에 뇌물부터 챙기려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서대주와 오소리를 통해서 뇌물이 사회를 지배하여 점점 부패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조선 후기나 100년 뒤의 지금의 모습이나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은 여전하기만 하다.

 

  

  백호산군다운 호질(虎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대주, 다람쥐, 오소리는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치더라도, 그나마 긍정적인 인물은 다람쥐의 아내인 계집 다람쥐와 백호산군 뿐이다. 

자신의 남편이 서대주를 위시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집 다람쥐는 남편을 충고하다가 도리어 모욕을 당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그 모욕감에 분하여 집을 뛰쳐나가는 모습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계집 다람쥐의 행동 역시 지금의 현실을 비추어 보면 눈 앞의 부당한 행동을 막으려는 바람직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계략을 막지 못한 채 훌쩍 남편 곁을 떠나고 만다. 이를 통해 부당한 행동에 맞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그 힘이 미미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정한 사회 현실 속에서도 백호산군 같은 훌륭한 재판관들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 고전 속 일화를 예를 들어 공정한 판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백호산군의 말은 부정부패와 비리에 물들인 법조계 인사들에게 일침을 가할만하다.   

   
 

 " 대개 만물이 가볍고 무거움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을 사용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바르고 그릇됨을 아는 데는 양쪽의 말을 듣는 것만 같음이 없나니, 한편의 말만 듣고 좋고 나쁨을 경솔하게 판결치 못하리라. " 

 - <셔동지전> 최진형 역, 지만지고전천줄, p 89 -  

 
   

백호산군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판결할 때에는 일방적으로 한쪽의 이야기만 듣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공정한 판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당연히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일부는 이 진리를 실제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디케가 '공정한 판결' 을 상징하는 서양의 인물이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서동지전>의 백호산군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공정한 디케의 눈을 가진 미래의 재판관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법을 공부하고 있는 법학도들은 백호산군의 호질(虎叱)은 한 번쯤은 새겨 들어야할 것이다.            

 

  

P.S   

이 소설을 원문 그래도 직역하다보니, 너무나 많은 한문과 중국 고사들이 등장한다. 비록 얇은 분량에다가 독자들을 위해서 수많은 각주들을 달았지만 이 작품을 가볍게 읽기에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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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펭귄 클래식이랑은 할말이 없는데,
지만지는 좀 애정해요~

근데,고전을 두루 섭렵하시는군요~

양철나무꾼 2010-10-29 20:54   좋아요 0 | URL
제가 서가여서,저 서동지전 애착이 가요~^^

2010-10-30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0-31 11:50   좋아요 0 | URL
네,제가 徐가 라는 얘기였어요~^^
 
무도회가 끝난 뒤 펭귄클래식 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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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이냐, 인간이냐 

   
 

" 지금 여러분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무언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모든 게 환경에 달려 있고 환경이 인간을 해칠 수 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우연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    

 -  [무도회가 끝난 뒤]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187 -  

 
   

 

톨스토이가 쓴 <무도회가 끝난 뒤>라는 단편소설에서는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의 대화부터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다. 

17쪽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내용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톨스토이는 소설 속 인물인 이반 바실리예비치로 투영하여 환경이 무조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환경결정론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독자들에게 이 논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반은 자신의 인생은 절대로 환경에 지배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경결정론을 부인하게 된 계기를 그린 이반의 경험담이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인데 실제로 톨스토이의 형이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단 하루 만에 썼다고 한다. 역시 러시아의 대문호답다.  

  

 

  대령의 두 얼굴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반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이 시작된다. 젊음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대학생의 이반은 상류층 귀족들이 모이는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여자 바렌카 B를 만나게 된다. 이반은 그 여자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곳에서 여자와 같이 무도회에 참석한 그녀의 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바렌카 B의 아버지는 전정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대령이었다.  이반은 첫만남에서부터 두 부녀의 자상한 마음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이반은 우연히 목격한 장면을 보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도망가는 타타르 인(톨스토이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영토 확장을 위해서 러시아 변방에 살고 있는 부족들 간의 전쟁이 잦았는데, 그 부족들 중에는 터키계 민족인 타타르 인들도 있었다) 사나이를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는 병사들의 장면을 보게 된다. 그 병사들 사이에는 전날 밤, 무도회장에서 호감을 가졌던 바렌카 B의 아버지인 대령도 있었다. 그리고 대령 역시 그 타타르 인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이었다. 대령의 폭력은 병사들보다 심했다. 자신의 부하인 병사들에게 새 곤봉을 가져오라고 시키면서 풀리지 않은 분을 폭력으로 해소하고 있었고, 심지어 타타르 인을 세게 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힘 없는 병사 한 명에게도 손찌검을 가하였다.   

대령의 잔혹한 면을 보게 된 이반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군 입대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바렌카 B에 대한 애정도 식어져갔다. 자신은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된 이유는 단지, 세상의 우연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 이반 바실리예비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인간이 악하게 된 것이 다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환경결정론을 부정하기에는 이반의 인식 과정은 잘못 되었으며 이치에 맞지 않다.  

그 당시로서는 이반은 이제 막 세상을 알려고하는 대학생이었다.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기에는 그는 세상이 일부분만을 봤을 뿐이다.  그는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우물 벽을 보고 세상은 어두컴컴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무엇보다도 이반에게 제일 심각한 것은 중년이 되어도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왜 대령 같은 인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그 해답을 알아내지 못한 채 결론은 자신은 세상에서 쓸모 없는 '잉여인간'이라고 단정짓고 만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포기하기에는 성격이 너무 나약하기만 했다.  아니,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기에는 자신 스스로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해보려는 일말의 적극성이 보이지 않아서 아쉽기만 하다. 대령의 잔인한 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야 하는 것도 어리석은 처사이다.

 

  

  당신이 어리석다오, 이반 바실리예비치 씨

이반이 생각하고 있는 '잉여인간' 은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우연성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라는 것인가?  작품의 결말에 보면 이반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이반의 생각을 반박하고 있다.  

   
 

 " 하지만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반 바실리예비치) 같은 사람이 아무 쓸모가 없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모가 없다는 건가요? " 

- [무도회가 끝난 뒤] p 202 -

 
   

그러나 이반은 반박자의 말이 어리석다면서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대화를 얼버무리고 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이반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말이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가 보다.  

이 세상에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처럼 세상 앞에서 그리 쉽게 어리석어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시끄러운 속세에 아직도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이상,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행한 일이 옳은건지, 나쁜건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분별하는 능력 뒤에는 인간을 지배하는 환경의 영향을 외면할 수 도 없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이 나쁘고 부당한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선을 긋는다. 그것은 악한 환경에 물들이게 되면 자신의 본성도 악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말이 잘못된 사실이라는 것을 이반이 알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잉여인간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그는 세상의 이면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가리기 위해서 세상의 우연성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상이 단순히 우연적으로 돌아가고, 인간이 이반처럼 선과 악을 구분 못하는 '바보' 잉여인간이었다면 이 지구에는 악한 사람들만 판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 P.S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는 동명 단편소설 이외에도 또 다른 단편소설인 [벌목][폴리쿠시카][위조 쿠폰]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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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나 스탕달보단 톨스토이가 나은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요즘 기준으로 좀 더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근데 환경일까요,인간일까요?

cyrus 2010-10-29 14:01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기는 하지만,
인간들도 스스로 환경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 , 봅니다.
어쨌든, 작품 속 대령처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격이 바뀔줄 아는 사람처럼요.
(제가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번 글은 좀 내용이 부실하구요-_-)

maribell 2011-03-2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이러스님이네요~ 말테의 수기를 구매할지 고민하더 보게 됨~ ^^;

cyrus 2011-03-21 08: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리벨님. 반가워요. 잘 지내고 계신거죠? ^^
 
백야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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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끼 읽기의 어려움

지금까지 읽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의 수는 『백야 외』를 포함해서 세 권이다. 도스또예프스끼라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거봉(巨峰)을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소설(백치, 악령, 죄와 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주 애용하는 도서관에는 최근에 나온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의 신판이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10년 전에 나왔던 구판은 소장되어 있지만 먼지가 풀풀 날리는 보존서고에 있는 터라 대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 대출횟수가 적은 책들이 보존서고로 향하기 마련인데 며칠 전에 읽었던 1993년에 출간된『마야꼬프스끼 전집』(최근에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No. 64『마야꼬프스끼 선집』으로 출간) 세 권이 자료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그저 썩소만 날 뿐이었다.

보존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지만 사서 입장에서는 도서관 지하에 있는 보존서고에 내려가는 것이 여간 귀찮을뿐더러 대출하려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사서가 그 한 권의 책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 10~15분 정도 대출. 반납 데스크 앞에서 뻘쭘하게 서서 기다려야만 한다. 보존서고에서 책을 대출한다는 것은 양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보존서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도스또예프스끼를 간절히 읽고 싶어 하는 열망을 이길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백야 외』의 서지번호를 적은 쪽지를 사서에게 건넸다. 다행히 사서가 인상도 좋은 분이라서 쉽게 대출할 수가 있었다. 어두운 보존서고 속에서 도스또예프스끼를 구원해줬다는 기쁨(?)이 느껴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보존서고에 있는 다음 시리즈들을 대출해야한다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두, 세 권 대출했어야 하는 뒤늦은 후회감도 밀려왔다. 올해 안에 도스또예프스끼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나의 코끝 찡하게 만든 정직한 도둑   

 

그 전까지 읽었던 작품들이 장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아직까지도 도스또예프스끼를 제대로 음미하지 않은 채 독서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읽은 단편 모음집인 『백야 외』는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도스또예프스끼를 읽기 시작한 지 고작 3권 읽고 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서 각각의 8편의 줄거리들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았다.

「정직한 도둑」의 아스따피 이바노비치와 같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배려를 가진 마음씨 좋은 캐릭터를 보니, 이런 캐릭터를 설정한 도스또예프스끼가 색다르게 보였다. 이전에 발표한『가난한 사람들』(열린책들 세계문학 No.117)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가난한 생활을 하는 러시아 시민들이다. 가난 때문에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제부쉬낀-알렉세예브나 커플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정직한 도둑」에 나오는 두 주인공 이바노비치와 에멜리얀 일리치도 가난한 사람들이며 일리치는 가난 때문에 도둑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정직한 도둑」의 결말은 비극적이지가 않다.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팔라는 일리치의 유언은 자신을 돌봐주고, 바로잡아 줄려고 했던 은인 이바노비치에게 해 줄 수 있는 작은 보답이었다. 도둑질을 일삼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여 이바노비치의 품 안에 숨을 거두는 장면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읽으면서도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의 여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초식남의 슬픔 대처법,「백야」  

 

「백야」는 우연한 기회에 네프스끼 거리에서 아름다운 여인 나스젠까를 알게 된 ‘나’라는 인물이 은근하고 격한 사랑을 품었으나, 나스쩬까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자 말없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뚜르게네프의 시를 인용한「백야」의 제사(題辭)의 문장처럼 나스쩬까는 ‘나’의 가슴에 단 한순간 가까이 있다간 일몽(一夢)의 여인이었다. 소설의 제목의 백야(白夜)는 밤에 어두워지지 않는 현상이다. 서로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뜨겁게 무르익지 못한 두 주인공의 사랑을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스쩬까와 함께한 나흘 동안 시간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스쩬까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빈다.  

 

요즘 시선으로 보면 '나'는 초식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뭐 본인은 나스쩬까와의 만남을 만족한다지만, 가슴 속에 품어 왔었던 나스쩬까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그의 소극적인 자세가 아쉽기만 하다. 제 2의 나스쩬까를 찾을 수 있다는 몽상에 빠져 백야의 네프스끼 거리를 방황할지도 모를 일이다.

   

 


 뚜르게네프 데자부 

 

「꼬마 영웅」은 11살 소년인 화자가 연상의 M 부인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다. 나이 차이도 많거니와 화자가 사랑하는 여자도 기혼녀라서 어린 화자의 짝사랑은 유년 시대의 추억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플롯과 줄거리 전개가 전에 어디서 읽어본 느낌을 받게 되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데자부라고 한다는데... 뚜르게네프의 중편소설『첫사랑』과 흡사했다.  

 

『첫사랑』의 남녀 주인공은 블라지미르와 지나이다인데, 여주인공 지나이다가 블라지미르보다 5살 연상인 21살이다. 두 작품의 주된 내용도 청춘기의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을 그리고 있다. (11살이 사랑을 알 성숙한 나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사춘기가 빨라지는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11살도 충분히 그런 감정을 느낄 법하다) 「꼬마 영웅」의 M 부인에게는 M이라는 남편도 있으나, 사교계에서는 그녀에게 관심 있는 남자들이 많다. 그 중에 그녀를 짝사랑하는 N 청년이 등장한다. 『첫사랑』의 지나이다 역시 아름다운 외모로 그녀 주위에 남자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블라지미르의 아버지가 그녀를 사랑하기도 한다. 두 여주인공은 주위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정작 마음속에는 폭풍우와 같은 사랑의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두 작품 속 여주인공의 인물 설정과 복잡한 인물 관계가 유사하다. 11살 화자와 블라지미르는 자신들이 좋아하고 있는 여주인공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마초 기질을 발휘한다. 11살 화자는 M 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람들이 아무도 타지 않으려는 사나운 말 딴끄레드를 타고 달림으로써 주위로부터 남성다운 ‘영웅’으로 칭찬받는다. 반면에 블라지미르는 11살 화자보다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블라지미르는 지나이다가 보는 앞에서 4m 담장(!) 위에서 뛰어내린다.   

 

예전에 읽었던『분신』(열린책들 세계문학 No. 116)에서 고골의 단편소설『코』와 유사한 점을 느꼈는데, 과도기를 겪고 있었던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로서는 좀 더 나은 창작을 위해서 당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고 있던 고골의 작품을 모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뚜르게네프는 문학관이 서로 다른 앙숙이었으면서 러시아 문단의 라이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표절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꼬마 영웅」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옥중에 있을 때 창작했으며, M이라는 익명으로 1857년에 발표되었다. 뒤이어, 1860년에 뚜르게네프의『첫사랑』이 발표되었다. 그렇다고 뚜르게네프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표절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자신의 본명이 아닌 익명으로 발표했기에, 뚜르게네프가 이 작품을 읽었어도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이라고는 생각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백 년 전, 명작을 가지고 표절했다, 안 했다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만 할 뿐이다.

8개의 단편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 작품들을 쓰고 있었던 시기는 젊은 도스또예프스끼가 문학적 성장통을 겪고 있을 무렵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다음 작품을 위해 구상하고 있었던 모든 문학적 재료들을 볼 수 있는 소품들이라는 점에서 과도기적 단편소설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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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 속의 '나'가 초식남이라는 거죠?cyrus님이 아니고...^^

책을 도서관을 통해서도 읽으시는군요.
전 도서관 갈 시간이 없어요.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늦게까지 했음 좋겠어요~
아웅,도서관 관계자들에게 돌 맞으려나?

전 도스또예프스끼,읽기는 읽었나 모르겠어요~

cyrus 2010-10-27 21:14   좋아요 0 | URL
네, <백야>라는 단편의 남자 주인공이 '나'로 등장합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저도 약간 초식남 기질이..^^;;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어느 잡지에서 초식남 테스트 해봤는데..
그렇게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답니다.

주5일제 도입 이후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월요일에 휴관하는 것은
이해한다지만, 저도 시간 좀 연장을 해줬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7시까지지만,, 이제 겨울이 되면 한 시간 일찍
문 닫는데 말이죠.

반딧불이 2010-10-2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를 투르게네프와 비교해 놓으니까 투르게네프는 읽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안읽은 제게 선명하게 와닿네요.

저희동네 도서관 도서대출은 8시까지로 연장이 되었고, 11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도서관에 건의를 해보시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cyrus 2010-10-28 17:14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이 살고 계시는 동네가 어딘가요??
제가 그 쪽으로 이사를 해야겠네요ㅎㅎ

예전에도 도서관 홈피에 연장 건의에 대해서 게시판에
말이 많았던데,,, 제가 군생활 2년 하고나서도
변한게 없었습니다^^;; 괜찮은 도서관장이 새로 부임하지
않는 이상 아마도 지금 체제로 유지할 것만 같네요.


2010-10-29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2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투르게네프를 되게 싫어했지요.성질이 괴팍한 사람이라서 투르게네프 같이 교양있는 점잖은 사람을 견디지 못했나봐요.<악령>에 나오는 등장인물(갑자기 이름 생각이 안 나네요)중에 투르게네프를 희화화한 게 있죠.

cyrus 2010-10-28 17:1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악령> 이야기는 처음 안 사실입니다.
요즘 초창기 작품부터 천천히 읽고 있답니다.
대망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완독하는게 저의 목표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30 16:53   좋아요 0 | URL
성공하시길 빕니다.
 
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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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학당에 모여든 이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 

 


그림에 담긴 목록 - 라파엘로 <아테네의 학당>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한 라파엘로의 <아테네의 학당>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학당에 한 자리에 모여 학문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 그림에는 학당의 문 정중앙에 서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다가는 글이 삼천포로 빠질 우려가 있으니 간략하게 이름만 소개하자면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기하학의 창시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재미있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라파엘로 본인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을 알기 전에는 이 그림 속에 학당에 모여든 학자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였다.  이들은 무엇에 대해 토론을 하려고 학당에 모여든 것일까? 어떤 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열심피 학문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추상적인 철학 문제 때문인지 혼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림 속 수많은 인물들이 최근에 와서야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한 학자들이라는 것을 밝혀졌지만, 모든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인물들은 이름 없는 학자 또는 학자의 강의를 듣으려는 학생들인 것이다.  

이 그림 한 폭이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불리어지는 이상, 그림을 보는 감상자들은 라파엘이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들을 그린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화폭에 담겨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서 감상자는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함의를 파악하는 것일뿐, 그림 속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나처럼 그림 속 학자들 하나하나 확인하며 알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감상자들이 그림의 중앙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안다고 해도, 나머지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나머지 학자들은 감상자의 시선 밖에 있게 된다.   

그러면, 라파엘로는 20명 정도의 학자와 학생들만 그려 넣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이보다 더 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렸을까?  아무리 이렇게 한 사람씩 세세하게 노가닥으로 그린다고 해도 감상자들은 그림 속 인물 전부 알려고 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아예, 이 그림 제목을 <아테네의 학당>이 아닌,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수학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 , , 와 그 밖의 나머지 학생들>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감상자들은 라파엘로가 그린 인물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로는 그런 긴 제목을 붙이기보다는(진짜로 그림에 긴 제목을 붙였다면 감상자 입장에서는 그림 볼 맛이 떨어질 것이다) 스스로 수고를 하면서 화폭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 넣는 쪽으로 택했다.

  

    

  예술가들의 무한성 극복하기   

 


무한성 극복하기 - M.C. 에셔 <천사와 악마>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이번 신작인 <궁극의 리스트>에서 고대애서 현재까지의 문학과 예술 속에서 등장하는 목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에코는 대부분 문학가와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목록을 삽입한다고 말한다.  문학가는 소설이나 시에서 수많은 사물이나 인물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언어적 목록,  화가는 붓으로 캔버스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넣는 시각적 목록을 취한다는 것이다.  작가나 화가들은 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의 작품에 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무한성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와 같은 '현실, 그 이상을 뛰어넘는' 속성이었다. 그래서 무한성이라는 속성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무한성의 존재들을 목록화하여 열거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엄청나게 크거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어떤 것에 마주하게 된 호메로스는 

하나의 표본, 예, 또는 지시로서 목록을 제시하면서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 버린다.  

- <궁극의 리스트> p 49 -

 
   

라파엘로가 <아테네의 학당>에서 수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린 이유도 에코의 주장을 비추어 보면 그의 본의를 짐작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성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장소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를 함축하여 말하고자 하였으며, 비록 이름 없는 학자와 학생들일지라도 라파엘로는 학당 내부에는 많은 인물이 가득히 있다는 점과 저 수많은 인물들 틈에서도 학문에 대해서 토론하는 학자와 학생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결국, 감상자들은 이 그림 하나로 아네테 학당 속 인물들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그 이상의 존재들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목록(List)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수집물 그리고 호기심의 창고 - 프란스 프랑켄 2세 <예술과 호기심의 컬렉션>
 

시대가 변화갈수록, 목록의 용도도 변화하였다. 15~16세기 신항로 개척 시대가 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지리와 자연에 대한 학문으로 쏠리게 되었다.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서 신대륙의 문물들이 서양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학자들과 상류층 귀족들은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수집한 희귀한 자연물과 고고학적 유물들을 목록화시키게 된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박물관, 동물원 등이 만들어졌으며 스웨덴의 린네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을 확립하여 분류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 다양한 학자들이 이 모여 여러 학문을 집대성하기 위해서 <백과전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런 학문적 결과물이 있기에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여 나열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이런 목록화의 습성은 현대의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목록과 같은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난해한 작품으로 정통이 나있다. 이들은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떠나서 단지 수많은 개념들을 분류, 나열할 수 있는 목록에 대한 과잉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실용적 목록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


실용적인 목록 - 대형마트 할인용품 광고 전단지
 

하지만, 역사 속에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예술가들에게만 목록에 향한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목록화'되고 있으며 우리는 스스로 목록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목록들을 즐기고 있다.  

에코는 목록에도 중요한 차이의 구분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실용적인 목록과 시적 목록으로 나누고 있다. 실용적인 목록은 우리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식당 메뉴표, 국어사전, 전화번호부, 그리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할인품목 광고 전단지 등이다. 반대로 시적 목록은 앞에서 언급한 라파엘로나 라블레, 조이스처럼 예술 형태를 통해서 탄생된 목록을 말한다.   

마르크스<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엄청난 상품들의 축적으로 그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하였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실용적인 목록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있는 근대에서는 백화점의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이 자본주의가 만든 실용적 목록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목적과 취향에 따라서 직접 상품을 구입하려는 소비 의사가 반영된 자신만의 실용적 목록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 쇼핑에서 볼 수 있는 장바구니 기능이다.  소비자가 구입하기를 원하는 상품들을 자신의 장바구니 기능에 입력함으로써 자신만의 목록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장바구니 목록에서도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심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물건을 바로 살 수는 없지만, 그 물건을 찜하여 장바구니 목록에 입력하게 되면서 소비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을 구입했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고 싶은 상품만 있으면 무조건 장바구니 목록에 담으려는 특성이 있는 인터넷 쇼핑 중독자의 모습은 실용적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집착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무한한 소유욕을 조금이나가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실용적 목록에 향한 인간의 욕망은 자본주의,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의 등장은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욕망을 더욱 더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통해서 앱스토어에서 관심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자신만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목록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여러가지 신의 이름들이 나열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부터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을 저장할 수 있는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인류는 공통적으로 '목록 만들기'를 추구하였고 List-holic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목록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역사의 발전, 그리고 지금의 세상이 있기까지에는 어쩌면 목록이라는 특수적 용도의 기록물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상은 목록화되고 있다. 그 목록화의 발전에 의해서 생긴 사회적, 문화적 산물들이 또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구축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목록화되고 있는 세상의 중심에는 우리 인간이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List-holic이면서도 Cataloger(목록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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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로도 유명한데,그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기호학자라는 프로필이 왜 필요한가 갸우뚱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님의 리뷰랑 페이퍼를 읽으니,이 책 꼭 읽어주고 싶어요~^^

cyrus 2010-10-27 00:01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책입니다. 사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다가
기호학적 지식의 어려움에 좌절한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다양한 그림들과
문학 작품 텍스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제 글에 사용한 그림 중에서 프랑켄 2세의 그림만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책 속 내용과
관련된 그림들을 골랐고요.

saint236 2010-10-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바로 보관함에 보관합니다. 에코는 정말...걸물인것 같아요.

cyrus 2010-10-27 12: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aint236님^^

가격은 좀 착하지 않은게 흠이지만,,,
이전에 출간된 <미의 역사><추의 역사>의 가격과 비교하면
조금 착해진 편입니다. 그리고 구입하고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내용이 참으로 흥미롭고
책 속에 수록된 그림들도 볼만하고요.

반딧불이 2010-10-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블레나 조이스의 목록이 대체 어떤 리스트인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인간이 모두 리스트홀릭이라면 저도 이참에 실용적인 리스트든 시적 리스트든 하나 만들어야할까봐요.

cyrus 2010-10-27 12:0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 있는 마이리스트가 실용적인 리스트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실용적
도움이 되는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라블레와 조이스의 텍스트를 읽어보시면..
감당하지 못할겁니다. 비록 2페이지 정도 소개하고 있지만
정독하기가 부담스러울겁니다. 참고로 텍스트 출처는
라블레<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조이스는 <율리시스>
<피네건의 경야>입니다. 특히 조이스는 난해한 문학성으로
유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