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  


  - 남진 <님과 함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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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같은 집  

그림 같은 집

   그림 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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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같은 집 ' 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  

남진이 부른 노래 '님과 함께' 에서는 사랑하는 님과 함께 사는 인생이야말로 그 어떤 삶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예찬하고 있다.  ' 멋쟁이 높은 빌딩' 에 사는 어떤 이들은 자신이 더 잘 산다고 떵떵거리고 으시대고 있지만 노래 속 화자는 허름한 ' 반딧불 초가집 ' 이라도 사랑하는 그대, 님과 함께 산다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 초원 위에 지어진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한 그림 같은 집을.    

이 노래가 발표되자마자 남진은 대한민국 명실상부한 톱 스타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남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 님과 함께 ' 이다. 노래가 나온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흥겨운 멜로디 덕분에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부르고 있는 국민적인 애창곡이 되었다. 몇 주전에 올해엔터테이너계에서 많은 핫 이슈를 몰고 온 대국민 오디션 프로젝트 ' 슈퍼스타 K 시즌 2' 에서 장재인이 오디션 본선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됨으로써 그녀의 소름돋는 가창력이 화제가 된 것뿐만 아니라 장재인이 태어나기 전에 나온 남진의 노래는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들은 스피커에 흘러나오는 흥겨운 멜로디를 좋아할 뿐, 노래가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가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백년해로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소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소망하는 지향점은 다르다.  요즘 사람들은 남진의 노래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에 유념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하면 빈곤에 쪼들리지 않고 잘 살아야할지 생각하기 마련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님과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살림보다는 윤택한 살림이 우선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배우자 선택 조건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집' 이다.  하긴, 집은 옷과 음식과 더불어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요소이다.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으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바로 집인 것이다.    

집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한민국에서의 '집' 은 ' 잘 사냐 못 사냐' 식의 기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통과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는 곳에 넓디넓은 정원이 있으며 아름답게 꾸며진 넓은 거실과 화장실이 갖춰져 있는 궁전 같은 집이라면 모든 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집이다.  하지만, 이런 집을 사기에는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을 모은다하더라도 부족하기만 하다. 그리고 화려한 내부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집들은 일명 ' 돈 많고 잘 사는 사람 ' 들이 모여 산다는 서울 강남 쪽으로 몰려있기도 하다. 그래서 강남에 세워져 있는 타워팰리스 가격만해도 정말 '억' 소리가 날 정도로 수억 정도에 달한다.  

사랑하는 님과 가족들이 함께 오손도손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야말로 ' 그림 같은 집' 이라고 남진은 흥이 넘치도록 불렀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강남의 멋쟁이들이 으시댈 수 있는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집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바라는 '그림 같은 집' 이 되고 말았다. 

 

 

  좋은 집을 가지기 위해서는 빚이 늘어나는 대출도 마다하지 않으리 

자신들이 꿈꾸는 '그림 같은 집' 을 가지기 위해서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자신의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어느 정도 살림에 지장이 업없을 정도의 직업을 가진 중산층들에게도 억 소리가 나는 타워팰리스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집도 '돈' 이 되는 시대이기에 중산층들 사이에서는 '집' 은 자신의 부를 축적시키는것뿐만 아니라 상류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투자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부동산 전문가들의 희망적인 조언들은 서민들의 투자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중산층 서민들은 금리가 낮을 때 대출을 함으로써 투기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집을 사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 높은 가격으로 매겨진 집을 보유하고 있는 과거의 부동산 벼락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 시세를 생각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부동산 업계라는 거대한 바다에 뛰어든 레밍이었다.  레밍은 나그네쥐라고 불리우는 집단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인데 떼 지어 이동하게 되면 앞에 있는 동료들 따라 바다로 가게 되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특성을 빗대어 인간이 어느 현상에 대해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현상을 ' 레밍 효과 ' 라고 부르고 있다. 중산층 서민들은 단지 희망적인 예상에 불과하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말과 과거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인 부자들의 비법만을 강조하는 부동산 관련 업체들의 감언에 속아 넘어 가고 말았다.   

전문가의 말과는 반대로 고공으로 치솟아오르게 되는 금리와 주택가격의 폭락은 희망으로 가득찬 삶을 예상했던 중산층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짓밝고 말았다. 최고로 비싼 가격의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중산층들은 화려하고 럭셔리한 삶을 사는 상류층이 되지는 못했다. 과거에 집을 사기 위해서 무리하게 대출을 하여 생긴 빚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집 그리고 어마어마한 빚이었다.  그리고 집 때문에 상류층으로 상승하려다가 되려 가난에 허덕이는 하류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우스푸어 : 부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아파트투자 5적과의 절묘한 만남

이렇듯, 집이 있으면서도 가난한 중산층 서민들을 경제학적 신조어로 '하우스푸어(House Poor)' 라고 말한다.  최근 통계조사에 의하면 집을 보유하는 직장인들 중 30%는 스스로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들은 평균 월 가계 총소득 326만 원 가운데 74만 원을 주택자금 대출이자로 지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에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게 만든 원인에 대해서는 1순위로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고 그 다음에는 개인의 투자 욕심이라고 하였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크게 하락한 통계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작 적은 수준으로 하락한 점으로 분석한 것에 대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허울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부의 정책이 만든 사회적인 문제는 한국경제의 위기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을 동원하여 경제성장에 일시적인 도움이 되었지만 그 뒤에는 서민들의 빈곤 문제와 불안정한 경제 흐름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정부로만 탓할 수 없다. 경제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에 대해서 순위를 매겨서 우선적인 요인만 크게 나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논리이며 하우스푸어는 자본주의 구조가 만들어낸 다차원적인 문제이다. 국가 가계가 안정되기 위해서 정부는 금융기관 및 부동산 정보업체들을 보호해주었으며 이들은 정부의 보호 아래 자신들의 자산 규모를 증식시켜나갔다. 이런 호황에 아파트 건설업체들도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떡고물 만들기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다. 건설업체들은 자신들이 만든 아파트 건물을 무수히 세워놓고 분양가를 높게 잡아버렸다. 이런 상황에 서민들이 높은 분양가를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에는 금융업체에서 가계대출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밑에서 부동산 정보업체-금융기관-건설업체의 자본주의적 공생 관계는 서민들의 빈곤 문제를 야기시키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언론 역시 하우스푸어를 양산해낸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 각종 일간지에서는 아파트 및 부동산 투자 광고들은 경제의 흐름에 무지한 서민들에게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부동산 업계의 상황이 나쁘면서도 일간지에 소개되는 부동산 관련 전문가의 말이나 광고 문구는 서민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매일 아침, 대문 앞으로 도착되는 일간지들 사이에 하나씩 껴있는 부동산 관련 기사 섹션은 경제적인 문제를 수수방관하는 언론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투자 오적의 소굴이 된 강남 및 수도권 지역

하우스푸어의 급증은 단순히 고가의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 강남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의 판교신도시에 대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우스푸어는 단순히 부동산 업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중산층들의 몰락을 낳는 심각한 문제이며 상류층 역시 경제적인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만들어낸 과도한 투기는 안정된 삶을 한순간에 깨뜨릴 수 있다. 결국에는 사회계층의 불균형적인 분포가 형성되게 되며 빈부격차도 늘어지게 된다. 

김지하 시인은 <오적(五賊)>이라는 시에서 '서울' 을 대한민국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라고 하였다. 지금의 서울은 자본 이익에 우선시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오적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악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는 지금의 경제 상황와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고 있어야한다. 사람들은 하우스푸어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부동산 투기라는 놀음에 빠져 있다. 남들에게 으시댈 수 있는 화려한 ' 그림 같은 집' 을 갖기 위해서 말이다. 허황된 정보에 혹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면 또다른 하우스푸어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집' 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며 동시에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을 뜻하고 있다. 집이란 단지 우리가 살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 콘크리트 덩어리일뿐이다.  당신이 바라는 행복한 삶이란 남들에게 과시하는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지내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다. 돈보다는 따뜻한 온정과 사랑으로 가득찬 집이야말로 노래가사 속에서 말하는 '그림 같은 집' 이 아닐까?

 

 

  

 

* 인용 관련기사 출처

[직장인 10명중 3명은 ‘하우스 푸어’] 경향신문 2010년 11월 2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011354321&code=920202

['짝퉁 경제대통령'의 허풍] 미디어오늘 2010년 11월 24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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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0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올해의 책 후보로 손색이 없죠 ㅎㅎ

cyrus 2010-12-08 15:1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워킹푸어>를 진지하게 읽었던터라 이번에 <하우스푸어>를
읽어보니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요즘 이런 사회, 경제 관련 책을
읽고나니 MB정부의 실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이조부 2010-12-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좋지만 작년ㅇㅔ 출판된 선대인 위험한경제학 도 만만치 안게 읽을만해요

그 책은 1탄 2탄 있는데 전 1권 만 읽었는데 소장 가치 있을 정도로.....

하우스푸어 이 책은 위험한 경제학에게 빚진 면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뭐 물론 위험한 경제학 기존의 이미 존재했던 자료에게 빚진 면이 분명히 있겠지만

말이죠~ ㅎㅎㅎ

cyrus 2010-12-08 17:02   좋아요 0 | URL
선대인 씨의 책이라면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심도있게
볼 수 있겠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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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인 18세기 후반 러시아는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8세기 초에 표트르 대제(1672~1725)는 폴란드와의 국토 분쟁 해결, 발트해 진출로 승승장구하면서 러시아는 대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좀더 나은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표트르 대제는 군사, 행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행력 부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강압적으로 밀어부친 인세 제도는 왕정에 대한 귀족들의 반발만 높이 살 뿐이었다. 제국 내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가득차기 시작하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럽게 얻은 병으로 표트르 대제가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러시아 내 정세는 점차적으로 불안정해져만 갔다. 

여제 예카테리나 2세(1729~1796)가 1762년에 즉위될 때까지 그 전에 황제들은 오랫동안 나라를 통치하지 못했다. 특히 예카테리나 2세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남편인 표트르 3세(1728~1762)의 왕위를 찬탈하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재위한지 6개월 만에 부인한테 왕관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리고 부인이 여제로 즉위된지, 1주일 후에 그는 여제의 친위대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예카테리나 2세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 불고 있던 계몽주의 사상에 입각하는 계몽전제군주로서 개혁을 꾀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이 역시 시끄러운 정세를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이전에 표트르 대제가 규정해 놓은 엄격한 종신근무제는 귀족들의 힘을 키워놓고 말았으며 반면, 귀족들에게 예속된 농노들의 힘은 약해져만 갔다. 러시아의 농노들은 사회적인 지위도 보장할 수도 없는 노예가 전락하고 말았다.  농노들은 자신들의 불리한 입장에 불만을 토로하였지만 예카테리나 2세는 귀족의 특권을 보장해주기만 하였다.

자신들의 부당한 지위가 이어지자 농노들은 농노제에 반발하는 농민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그 농민 반란의 핵에는 푸가초프(1742~1775)라는 인물이 있었다. 1773~1775년동안 푸가초프는 러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푸가초프는 자신이야말로 표트르 3세라고 자칭하며 새로운 지도자라고 주장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농노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지주들을 잔인하게 처형하였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땅들은 농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러시아 군사력과 비교하면 수준은 낮았지만 반란군은 반란 초기부터는 전국적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농노들로 주축된 반란군에도 치명적 결함이 있었고 확실한 기동력을 갖춘 러시아 정부군에게 패배하였다. 결국, 농민반란의 우두머리인 푸가초프는 1775년에 처형당하게 된다.  

 

  뿌쉬낀의 펜으로 재탄생된 푸가초프의 난

러시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푸가초프의 난은 18세기 러시아 왕족, 관료, 귀족들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난이 진압당한지 정확히 61년 뒤인 1836년에 러시아의 시인은 푸가초프의 난을 주제로 한 걸작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대위의 딸>이다. 

뿌쉬낀이 활동하던 그 당시 러시아에서도 농노제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부 입장에서는 기억하기 싫은 푸가초프의 난을 주제로 젊은 작가가 글을 쓴다면 아니 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뿌쉬낀은 작품 속 푸가초프를 인간미가 넘치는 순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로서는 푸가초프에 대한 뿌쉬킨의 묘사는 파격적이다. 정부들이 기억하는 푸가초프는 귀족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잔혹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789년부터 1799년까지 유럽 대륙 전역에 불었던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러시아에서까지 미치게 되자 정부는 급진적인 자유 사상가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자유적인 사상이 담긴 글 때문에 유배당한 적이 있었던 뿌쉬낀 역시 정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쓴 글들은 항상 검열의 대상이었다. 뿌쉬낀은 정부의 검열을 교묘히 피하기 위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예카테리나 2세 역시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인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뿌쉬낀은 왕정을 옹호하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집필한 것이 아니다.  뿌쉬낀은 작품 속에서 은근히 러시아 정부의 부패를 비판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농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입장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푸가초프의 난을 중립적인 관점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잔인하기만 했던 푸가초프의 활동에 크게 중점을 두기보다는(이 구성 역시 뿌쉬낀이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문학적 의도라는 점을 배제할 수 없지만) 역사 속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건을 간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믿음 ' 이 만들어낸 해피엔딩  
   
<대위의 딸>은 청년장교 그리뇨프와 사령관의 딸인 마리아 간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도 볼만 하지만, 푸가초프와 그리뇨프의 만남 또한 흥미롭다. 작품 속에 형성하고 있는 그리뇨프-마리아, 그리뇨프-푸가초프와의 관계는 '믿음' 이라는 연결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들 간의 관계에서 드러나고 있는 믿음은 그리뇨프와 마리아뿐만 아니라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바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결말로 이끌도록 하고 있다. 

 

                                     Turst #1  그리뇨프 - 푸가초프 

강압적인 군인 아버지의 명령에 그리뇨프는 어쩔 수 없이 마리아의 아버지인 사령관이 부임하고 있는 요새로 향하게 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씨 속에서도 그리뇨프를 성심껏 모시고 있는 마부와 함께 요새로 향하던 중, 한 농부를 만나게 된다. 농부와의 만남 덕분에 그리뇨프는 무사히 마을에 안착하여 눈보라의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덕분에 그리뇨프와 동행하게 된 농부 역시 다행히 동사를 면할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리뇨프와 농부는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농부의 복장이 안쓰럽기만 하였고 마을을 알려주게 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이 입고 있던 토끼털 외투를 농부에게 건네주게 된다.  따뜻한 토끼털 외투를 선물로 받게 된 농부는 그리뇨프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면서 자기 갈 길로 향한다. 


  부랑자는 나의 선물에 지극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마차까지 나를 배웅한 뒤 허리 굽혀 절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리!  나리의 덕행에 주님의 보답이 있으시길 빕니다. 나리의 은혜는 길이길이 잊지 않겠습니다.」 

  - <대위의 딸> (미스터 노 세계문학) 석영중 역, p 33 -  


이야기 중반부에 이르게 되면서 이 농부의 말은 진짜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푸가초프 반란군의 습격으로 인해서 그리뇨프가 장교로 활동하고 있던 요새는 점령당하게 되며 요새를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들은 처형당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인공 그리뇨프 역시 처형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처형당하기 직전에 그리뇨프는 반란군의 지휘자인 푸가초프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지휘자가 예전에 자신의 토끼털 외투를 줬던 그 농부였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리뇨프 곁에 있었던 마부가 먼저 푸가초프가 예전에 만났던 농부임을 알게 되면서 그리뇨프는 처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뇨프는 러시아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할 수 있는 요새의 장교였지만 푸가초프는 그 때의 만남처럼 거리낌없이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푸가초프는 그 때의 친숙했던 만남을 기억한 것뿐만 아니라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토끼털 외투를 낯선 이에게 선물로 건내준 일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푸가초프는 그리뇨프의 착한 인상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뇨프는 적군에게 속하고 있지만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푸가초프는 젋은 주인공을 끝까지 도와주었다. 그리뇨프와 마리아의 재회 역시 푸가초프가 없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작품 속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이다. 정부군에 의해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푸가초프는 그리뇨프라는 인물을 끝까지 믿고 있었다. 그리뇨프와 동행하는 도중에 푸가초프는 반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서슴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 모스끄바까지 진격할 생각입니까? 」

   참칭자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 나도 몰라. 나는 운신의 폭이 좁다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내 부하놈들은 잘난 척만 하고 게다가 모두 도적놈들 아닌가. 그래서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어. 전세가 역전되면 제 목숨 살리겠다고 당장에 내 모가지를 갖다 바칠걸세. 」

  - <대위의 딸> p 147 -


푸가초프는 농노들을 위한 더 좋은 나라를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군인이 아닌 농민인 본인으로서는 이미 커다란 일로 번지게 된 자신의 반란에 대해서 소신있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이끌고 있는 반란군들의 모함으로 푸가초프의 모가지는 정부군에게  바치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든 허구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잔인하기만 할 거 같은 반란군의 우두머리도 반란 활동의 한계를 깨닫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우면서도 자신의 강력한 우두머리 이미지에 부정적일수도 있는 반란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그리뇨프에게 밝히는 모습은 그리뇨프에 대한 푸가초프의 전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Turst #2  그리뇨프 - 마리아

마리아의 아버지가 부임하고 있는 요새가 푸가초프 반란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마리아의 부모들은 반란군 일당들에게 처형당하며 마리아만 간신히 살아남게 된다. 이전에 그리뇨프의 동료이며 요새 소속 장교였던 쉬바브린은 전세가 푸가초프 쪽으로 흐르게 되자 푸가초프 밑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 역시 사랑하고 있던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푸가초프에게 병든 아내라고 거짓말을 한다. 결국, 그의 거짓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뇨프의 등장으로 들통나게 되고 그리뇨프와 마리아는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푸가초프의 도움으로 마리아는 그리뇨프의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피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뇨프는 또 한 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푸가초프의 난이 진압되기 시작하면서 간사한 쉬바브린은 그리뇨프를 푸가초프와 한 패라고 정부에게 밀고하게 된다.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그리뇨프가 체포당하게 된 사살을 알게 된 마리아는 사랑하는 남자를 살려내기 위해서 예카테리나 여제가 살고 있는 뻬제르부르그로 가게 된다. 자신이 직접 여제를 만나 그리뇨프에 대한 선처를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도 그리뇨프-푸가초프의 만남처럼 마리아 역시 예카테리나 여제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그리뇨프를 풀려나게 할 수 있었다. 여제가 살고 있는 궁정으로 향하던 중 만나게 된 귀족 부인이 예카테리나 여제였던 것이다. 여제는 마리아를 호의적으로 보게 되었고 그리뇨프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면서 그를 석방시키도록 하였다. 초반에 마리아는 요새의 대포 소리에도 크게 놀라는, 요새 안에서만 생활한 어리숙한 여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뇨프의 선처를 구하기 위해서 머나먼 뻬쩨르부그르까지 가서 러시아에서 제일 높은 신분인 여제를 만나려는 무모함을 감행한다. 그 무모함 뒤에는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간절하고도 희망적인 마리아의 믿음이 있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뿌쉬낀, 그리고 농노들의 불신

그리뇨프와 마리아의 두 번째 재회로 작품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행복하게 끝나버리는 바람에 아쉬운 감이 있다.  뿌쉬낀은 이 작품을 통해서 러시아 정부의 농노제를 은근히 비판하고는 있지만,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개선에 대한 일말의 생각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나친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뿌쉬낀은 급진적인 자유 사상을 받아들인 시인이었지 사회 변혁을 꿈꾸는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귀족들만 잘 사는 러시아 사회를 묘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는 대놓고 비판할 수가 없었다.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젊은 시인의 한계이다. 그리고 뿌쉬낀은 귀족 출신이다.  농노들에게는 불리한 입장을 처하게 만들고 있는 러시아 농노제에 대해서는 불신의 입장을 보였겠지만 직접적으로 농노제의 폐해를 고칠 수 있는 사회 개선에 대해서는 귀족 신분인 그에게는 실질적으로는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잘 사는 사회를 위한 개선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마당에 러시아에서만은 사회 개선에 대한 변혁에 대한 생각은커녕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사회는 밑바닥으로 거듭 추락하고 있었다.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은 푸가초프의 난이라는 역사 속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실제 러시아의 사회 분위기는 혼돈 속으로 빠져만 갔다.  농노들을 위한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 반란을 주도한 푸가초프는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1861년에 농노해방령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노들의 생활고는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농노들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절망적인 불신은 날로 커져만 갔다.  절망적 불신이 만들어낸 민중의 시한폭탄과 이를 안일하게 대처한 정부의 태도는 결국 1917년, 레닌과 볼셰비키의 등장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게 되었다. 1613년부터 1917년까지 304년동안 러시아를 지배했던 로마노프 왕조, 그리고 러시아의 카이사르로 자칭하던 지배자인 차르(Tsar)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게 되었다. 자신이 끝까지 러시아의 지배자라고 자칭하면서 처형당한 푸가초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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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2-0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위의 딸은 초등학교 시절에 어린이 문고판으로 읽었는데
참 여간해서 러시아 문학은 손이 잘 안 가요.
재밌게는 읽은 것도 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없고.
마침 저 책은 절판이네요. 새판이 나왔나...?
시루스님 정말 책을 많이 읽나봐요. 하루에 몇 시간? 한 달이면 몇 권?
님 전공이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ㅋ

cyrus 2010-12-05 13:53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일환으로 몇년 전에 'Mr.know 세계문학' 으로
나왔었는데 지금은 그 전집들을 절판된 상태이고 '열린책들 세계문학' 으로
새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중에서도
몇 권은 절판인가 보네요. 뿌쉬낀의 <대위의 딸>은 열린책들 말고도
펭귄클래식에서도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새벽에 아르바이트로 편의점에 일하고 있어서 그 시간에는 카운터에 앉아서
독서나 개인적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퇴근하여 집에 와서
수면을 취하고 점심 시간 이후에는 운동을 하고 그 때에도 틈틈히 책을 읽습니다.

cyrus 2010-12-05 14:00   좋아요 0 | URL
그리고 점심 시간 이후에는 운동 하다가 저녁쯤에도 책을 읽습니다.
제가 TV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컴퓨터는 뉴스 검색,
서재 블로그랑 출판사 공식 카페에 들리는 것 외에는 오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 주에 많아야 5권 읽습니다. 서로 다른 내용의 책이라도
한꺼번에 읽게 되는거죠. 그렇게 읽으면 읽는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렇게 읽어보면 서로 다른 내용의 책들에서도 서로 상호연결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 좋은거 같습니다.

그리고 전공은 행정학입니다. 그리고 저 그렇게 하루종일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평일에는 야간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놀고 있을뿐이지, 일 안하는 주말에는 친구들 만나서 놀기도 합니다.^^

stella.K 2010-12-06 11:17   좋아요 0 | URL
한 달에 5권도 아닌, 한 주에 5권이라구요?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그랬구나. 행정학. 그러고 보니 얼핏 그렇게 쓴 걸 본 것도 같아요.
정신하군...ㅠ
야간에 일하는 거 힘들지 않나요?
댓글이 꼭 하루키를 문득 생각나게 만드는 서술이었습니다.ㅋㅋ

cyrus 2010-12-06 11:25   좋아요 0 | URL
사실 대학교 신입생 때는 한 달에 5권도 안 될 정도로 책을 멀리했었답니다.
학점 관리에다가 과 사람들 만나면서 술 먹게 되다보니,,,^^;;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책을 안 읽었던 시기가 대학교 1학년 때인
2007년인거 같네요. 수험생 시절이었던 고등학생 때에는
입시 성적 관리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대학교 때는
그 때보다 더 책을 읽을 수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저는 반대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어떻게든 읽고 싶은 책은 읽곤 했었는데
대학생이 되서부터는 책을 멀리하고 있었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그 때
시절이 가장 아쉬운 해로 남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복학 때는
일주일에 5권은 못 읽더라도 한 달에 5권 정도를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5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오래 전 푸시킨의 대표작이라는 명성만 듣고 구입해 읽었던 책입니다.드라마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예카테리나의 생애를 알고 싶었어요.그때 그녀의 전기가 번역된 게 있었거든요.하지만 어물어물하다가 못사고 말았습니다.지금도 서점엔 피요트르 대제 전기 번역본은 있어도 예카테리나 여제 전기는 없더군요.

cyrus 2010-12-06 10:58   좋아요 0 | URL
처음에 <대위의 딸>이 그 당시 러시아의 사회상을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그저 지루한 역사소설인줄 알았는데, 막상 읽고나니
러시아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드라마를 보는것같은
극적인 전개가 재미있었습니다. 자이트님이 소개하신 예카테리나의 생애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뿌쉬낀의 소설 속에서는 온화한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남편인 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차지할 정도로
간사하고 궁정 생활이 방탕했다고 하던데, 소설과 같이 읽어보면
흥미로울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6 16:51   좋아요 0 | URL
러시아사를 읽어보면 예카테리나에 대해서 유능하기 하지만 전형적인 전제군주였다고 하는 평가가 일반적이더군요.

모든 독자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은 아니니 그런 건 몰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소설을 쓰는 것도 작가의 역량이라고 봅니다.그런 점에선 이 소설은 잘 쓴 것이지요.

쉽싸리 2010-12-08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죠. 삼중당문고인가? 하여간 문고판,,,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러시아 소설들 참 좋아요. 뭐랄까, 저한텐 코끝이 찡해지는 게 있어요. 언젠가 다시 쭉 읽어봐야하는데, 그때의 감흥과는 다르겠지만,,,

cyrus 2010-12-08 14:58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러시아 소설들이 내용이 재미있고 작품성이 훌륭한거 같습니다.
뿌쉬낀 이외에도 도스또예프스끼나 고골도 재미있고요.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종말 분위기 나는 연말

올해 2010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12월 1일이 된 후부터 슬슬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는 ' 연말 잘 보네세요. '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주로 다니시는 은행에서는 벌써 부모님 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부모님과 동생 이름으로 가입된 보험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 XXX님,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2010년 마무리 잘 하세요. '  

아직 내 휴대폰에는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친구 녀석들은 평소에 자주 만나고 연락을 해서 그런지 아직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12월 31일이 되면 나에게 연말 인사 문자 보내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에게 오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는 많아야 5개다. 몇년 전에 한 번은, 대학교 과 선후배, 동기들에게 거하게, 아니 무식하게(?) 단체 연말 인사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보낸 사람들의 수만 해도 무려 20명 넘었는데 고작 답변 인사해준 사람의 수는 8명이다.  사실, 단체 문자 보내기전에는 20명 넘는 사람들이 답변 문자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평소의 예의 바른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서 보낸거 뿐이다.  오히려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답변 문자 오게 된다면 완전 문자 폭탄 수준이 될 것이다.  연말 인사 혹은 연말 인사 문자 답변을 안 해주는 이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새벽중에 보내는 연말 인사 문자이다. 인간의 약점을 간파할줄 아는, 잔머리 잘 굴리고 약삭 빠른 성격의 친구들이 간혹 보내기도 한다.  문자 메시지 도착 소리에 잠을 깬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12월 31일날에 잠을 자게 되면 항상 휴대폰을 꺼둔다.  그리고 새벽에 보내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와 비슷하면서 역시 짜증나게 하는 것은 생전 모르는 번호가 문자 보낼 때이다.  친구면 당장 전화 걸어서 쌍욕 날려도 무방하겠지만, 낯선 번호가 문자 오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잠결에 문자로 잘못 보냈다라고 폰을 만지작거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처럼 낯선 사람한테 욕을 할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결국에는 연말에만 잠시 폰을 끄고 잠을 자는데 특효약인거 같다. 

휴대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주구창창 받는 것도 괴롭지만, 그래도 연말이 되면 사람의 감정이 즐거워지게 되고, 내년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기분이 들뜬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연말에는 각종 망년회를 통해 한 해동안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들을 어느 정도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고(물론 너무 과하게 술을 마시면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피곤해진다. 이러니 연말이 되면 망년회라는 소리만 들어도 기피하는 사람들 있기 마련이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라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일도 있다. (혼자 사는 솔로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역시 그닥 반갑지 않은 날일 것이다)  이렇듯, 한 해의 기억들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차야지 정말 연말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이번 해는 그렇게 즐겁고 훈훈한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발생한 연평도 습격 사건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마음 속에는 북한 제2의 도발 그리고 전면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연평도에서 살았던 주민들은 그 때의 공포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지금도 좁디 좁은 찜찔방에서 지내고 있다. 

2010년이 끝나는 시점에만 사람들의 감정이 어두웠던 것이 아니다.  올해 초에는 용산 참사 사건으로 인해서 권력 앞에서 굴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TV로 목도했으며 해결되지 않은 4대강 사업 문제 때문에 올해 내내 대한민국은 소란스러웠다.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최근에 성황리에 마친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온 국민이 즐겁고 웃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TV와 신문에 비춰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들, 폭력으로 가득한 학교 교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잠깐 사그러졌던 대한민국 특유의 우울을 또 다시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 요즘 연말 분위기가 아니라 종말 분위기가 나는 듯해요. '  

내가 주로 들리는 인터넷 카페의 어느 회원분이 남긴 댓글 한 마디가 올해 연말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맞는 말이기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만 하다.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 읽게 되는 글

요즘 같은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는 나는 항상 책을 읽는다.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그나마 좋은 위안처이면서도 간혹 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개그맨 행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 독서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책 속 저자의 목소리가 나의 우울하고 상처받은 감정들을 토닥거릴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저자의 글로부터 위안을 받게 되면 잠시나마 흐트려져 있던 감정들을 추스릴 수 있게 된다. 특히 나의 감정을 쉽게 다스리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글이 바로 故 장영희 교수의 글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교수가 번역한 영미문학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생전에 썼던 칼럼을 모은 에세이집과 단상을 곁들인 영문학 시집들을 다 읽어봤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기만 했던 군대 일병 시절에 장영희 교수의 첫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을 접하면서 그녀의 글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첫만남부터 나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긍정적인 마음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그녀의 글이 무척 좋았다. 

작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을 때는 이제 맑디 맑은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워었는데, 최근에 나온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인 에세이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을 읽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또 한 번 '마지막' 이라는 감정이 앞선 나머지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그녀의 글은 나에게 ' 축복과 같은 꽃비' 가 되어 왔다. 마침 어두운 분위기의 연말에 때마침 그녀의 글을 읽게 되나디 정말 축복이다.  

다행히, 이번 글은 전작의 에세이들처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아가야하는 삶에 대한 자조적인 감정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간간히 몇 몇 문장 속에서 은근히 그녀의 어두운 면이 보이기도 했지만  '희망' , '사랑' ,  '웃음' 과 같은 그녀의 글에서 항상 등장하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많은 것은 여전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소개한 영미 시들 역시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해주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숨겨놓았던 눈물 

이번 에세이집에 수록된 모든 글과 시는 다 좋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 한 편은 ' 숨겨놓은 눈물을 찾으세요 ' 라는 이름의 글이었다.  장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는 것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요지는 다른 에세이의 내용과 비교하면 밀리는 감이 있고 읽는 사람마다 글에 대한 감정이 제각각이듯이 어떤 이들에게는 글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짦막한 글을 읽으면서 2010년을 살아가면서 그동안 눈물을 숨겨두었던 감정의 자세가 슬그머니 떠올려졌다.  감정이 뒤흔들 정도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과 책들을 보면서 눈물을 한 번 흘린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머릿속에는 눈으로 입력된 장면과 내용들이 오롯이 기억이 났었지만 정작 그 순간에 내가 눈물을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눈물을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것이다.   

 

 

  눈물 흘릴 줄 아는 방법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현대인들

올해 정말 기억에 남을 감동의 장면은 여름에 온 국민을 하모니의 감동으로 느끼게 해준 '남자의 자격 - 하모니 편' 이었다.  각기 다른 성격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 급조적으로 탄생된 오합지졸 합창단이 처음으로 합창 경연장에서 내는 목소리는 모든 국민들과 관중, 그리고 이들을 지도하는 박칼린 씨마저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의 결정체였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다음으로 눈물이 나올만한 장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비인기 종목이나 다름 없었던 인라인스케이트 선수 우효숙 씨의 금메달 시상식 장면이었다. 낯선 경기장이 있는 중국에 있는 동안 고국에 있는 몸이 불편한 친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서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마음도 굳게 먹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을 따게 되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감독이 조심스럽게 우 선수에게 비보를 전해주었다. 한국에 계시던 할머니가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메달 시상대에 오른 우 선수의 얼굴에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단순히 비인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닌,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애통의 눈물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우리들의 눈가를 촉촉히 할 정도로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의 감정에 동화되면서 나는 그들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니, 흘리지 못했다.  왜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것일까?   

아마도 남자는 세 번 울어야한다는, 깊게 박혀있는 사회적인 시선 탓도 있지만 요즘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방법이 잊혀지고 있었다.   

우리 주변 세상이 너무 어둡고 우울하다보니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과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 안에서 타인과의 만남 역시 우리들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있는 요인이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감정의 표현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한다. 

  " 이 사진 속 장면이 슬퍼요. ㅜㅜ ' , ' 멀쩡하던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ㅠ_ㅠ "  

'슬픔' 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눈물 흘리는 장면의 이모티콘으로 표현한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기 위한 방법으로 이모티콘이 유일하다.  하지만, 아무리 댓글에서 'ㅠㅠ' 를 남발한다고 해도 타인은 내가 진심으로 슬픈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나마 드러내는 언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다 간결하면서도 쓰기 편한 이모티콘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한 채 언어 껍데기들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이모티콘사용이 편하다는 이점 때문에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지 못한다면 ' 감정이 눈꼽만큼도 없는 '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바타' 과 자신의 실명이 아닌 '닉네임' 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감정을 표출하려는 '인간' 으로 보이려고 한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자

  '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이다. '

눈물에 관한 에세이의 마무리를 프랑스의 소설가 생 텍쥐페리의 명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눈물은 꼭 감정적으로 나약한 사람들만 흘리는 것이 아니다. 또 무조건 슬플 때나 화가 날 때 나오는 액체도 아니다.  나보다 못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영화 속 장면이나 책 속 문장을 보면서 생기는 감동적인 마음을 통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남들에게도 보이기 싫다면 혼자서라도 눈물을 흘려보자.  눈물은 사람의 우울한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을 때 눈물샘을 건드리는 순간이 온다면 눈물샘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자. 그러면 두 눈에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될 것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지금과 같은 암울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감정이 메마르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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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0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따뜻한 글이예요. 너무 감사드려요.
사이버 공간도 결국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페르조나(가면)이 훨씬 강화된 공간이기도 하구요. 그게 매력이기도 하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포장된 나로서 살아갈 기회의 제공이라는거.

연말. 사랑의 열매의 단란주점 사건으로 인해
뚝 떨어진 기부 문화 기온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올 연말은 이래저래....... 조금은 서글픕니다. 그래도
우리 멋진 겨울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내볼까요, 화이팅!

cyrus 2010-12-04 20:04   좋아요 0 | URL
많이 바쁘실텐데 제 서재에 들려주시네요.
마고님도 얼마 남지 않은 연말에는 서글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웃음으로 마무리되시길 바라요.

stella.K 2010-12-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일지는 모르겠는데, 안평도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데, 연평도 주민들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독기가 서려있더군요.
그게 더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어렵기는 다 같이 어려운데
사람들 저마다 어쩌면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싶더군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데, 한다면 나라겠죠.
근데 나라는 너무 거창하고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등등.
사는 게 점점 팍팍해서 큰 일이어요.

장영희 교수의 책들은 정말 좋죠.
저는 몇 년 전 모 신문에 칼럼 쓰신 거 보면서 정말 미문이구나 했어요.
그걸 책으로 묶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 아직도 제 책상 책꽂이에 꽂혀있습니다.
다른 책도 읽어봐야 할텐데 말이죠.^^

cyrus 2010-12-05 13:48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작스런 안평도 사건으로 인해 마을에 사는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되었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거기에다가 재벌 2세의 폭력 사태 등
자꾸 눈쌀을 찌푸리게하는 사건들이 연달이 터지니 나라 분위기가
어수선하네요. 내년에는 사회 분위기가 좋게 반전되기를 바랄뿐이네요^^


2010-12-05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1001-174] 지킬박사와 하이드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 이상 <거울> 중에서 - 

 

 

  사회적 인물들의 주먹질과 매질        

최근에 모 대기업 회장의 친척관계인 재벌 2세가 노동자를 구타하고 이에 대한 매 값을 지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적인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자 재벌 2세의 행동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또 한 번 부자들에 대한 대중의 냉소적인 시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돈과 권력이 많은 자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국민들 머리에 뿔이 나고 만 것이다.  자신보다 연세가 많으며 자신의 생존권을 되찾기위해서 홀로 1인 시위를 벌인 노동자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한 것은 문제가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그 자신이 행한 폭행을 금액으로 계산 처리하여 지불한다는 점은 자신의 성숙되지 않은 인격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만 셈이다.

이번 재벌 2세의 폭행 사건 이전에도 사회 내에서 공공의 인물로 알려진 유명인사들의 폭행 사건이 많이 있었다. 최근에 막을 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기 전 쯤에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가 고급 주점에서 여종업원을 성추행하고 경비원들을 폭행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그 선수의 아버지가 유명 대기업의 회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뉴스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이번 폭행 사건만큼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 뉴스가 전파되고나고 한 달 뒤에 문제의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그 선수의 문제적인 행동은 잠잠해졌다.  재벌 2세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바른 자세와 호감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할 연예인들도 자신들이 일으킨 폭행으로 인해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남자 탤런트가 자신의 후배 여성 연기자에게 폭행을 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출연하던 드라마에서 중도 하차를 하고 말았다.  

    

 

  지킬 박사의 고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지킬 박사는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대인의 자아분열 그리고 이중인격자를 우리는 ' 지킬 & 하이드' 라고 비유하면서 부르기도 한다. 이 소설이 발표된지 124년이나 되었는데도 지킬 박사의 이야기는 꾸준히 읽혀지고 있으며 영화, 뮤지컬로 각색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모든 인류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중성을 포착한 작가의 관찰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백년이 지난 소설들은 고리타분하며 진부적인 느낌이 드러나는 고전으로 취급받기 쉽상인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원작으로 읽어도 줄거리를 무척 흥미진진하다.  

특히,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악마의 본성을 지닌 또 하나의 자아에 굴복당하고 마는 지킬 박사의 내면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결국, 자신 고유의 자아인 헨리 지킬로 돌아오지 못한 채 박사는 자살하고 마는데 그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에는 그동안 말 못했던 자아 분열의 고통과 그런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들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18xx년에 태어났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고 그밖에도 훌륭한 신체를 물려받았으며 천성적으로 부지런했다. 학식 있고 훌륭한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일을 기뻐했다. 따라서 당연히 명예롭고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쾌락을 탐하는 성향이었다. 쾌락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고고한 자긍심으로 대중들 앞에서 철저하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을 가진 내게 쾌락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욕망을 감추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p 105 -  

 

지킬 박사는 우리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즐거운 감정을 좋아하는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고 감추려고 하였다. 지킬 박사는 남에게 과시하는 욕망의 감정은 자신의 부조리함 혹은 추악한 본성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하였다. 결국에는 지킬 박사는 자신의 이중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쾌락을 향한 탐욕은 지킬 박사를 선과 악의 본성으로 갈라진 이중성이 만들어낸 은밀하고도 위험스러운 유혹의 늪으로 향하게 하였다. 

저주받은 약물을 복용하고난 뒤, 악의 본성으로만 가득찬 하이드로 변하면서 그동안 마음 속에 감추어두었던 폭력성을 드러낸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가 되어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는 약물 복용을 멈추지 않는다. 타인들에게 드러나기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감추웠던 지킬 박사의 욕망과 쾌락은 하이드라는 제2의 자아의 발현을 통해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통해서 자신의 쾌락을 탐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이중적인 본성을 인정한 지킬 박사의 고백은 나쁜 감정들을 남에게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 살아야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평상시에 생활할 때는 자신의 이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킬 박사처럼 '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 ' 이 되기 위해서 추악한 감정과 본능을 숨기려고 한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정치인, 연예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 사람' 이다.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서 항상 올바른 자세와 밝은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힘든 내색이나 화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문단속한다. 하지만 억지로 감추어두었던 추악한 본성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킬 박사의 친한 동료인 어터슨이 말한 것처럼 숨기려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꼭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악한 본성을 ' 찾아내는 사람 ' 은 자신이 아닌,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한 폭력을 저지른 남자 탤런트는 사건이 알려지게 된 이후에 한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자살하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하이드의 위험성을 알고 난 뒤 지킬 박사는 경찰들로부터 체포당하기 전에 자살을 하고 만다. 인간은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발현하고나서야 자기 자신의 모순적인 이중성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상의 시 구절처럼 현실적인 자아와 내면적 자아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 쾌락과 욕구로 가득한 내면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가 내민 악수를 받지 않을 정도로 귀가 먼 '괴물' 하이드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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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장이나 저랑 남자이니까 이런거 물어봐도 뻘줌하지는 않은데

구매리스트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즐겨가는 타인의 서재중에서 구매리스트 공개하는 사람은 1명밖에 없어서요 ㅋ

물론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으면 할수 없지만, 주인장은 어떤 책을 구입하는지 살짝 궁금하네요

cyrus 2010-12-02 12:30   좋아요 0 | URL
서재 구매리스트를 관심 있어하는 분도 있었군요,
사실은 서재 블로그 시작할 때부터 공개로 해놓았는데,,,
구매한 책들 대부분 주로 건강책들이라서,, ^^;;
제가 읽는 것이 아니라 어머님이 건강책들 읽는 거 좋아해서
구입한거랍니다. 지금 바로 공개 설정으로 하겠습니다.

다이조부 2010-12-0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리스트 잘 보았습니다. 근데 의외의 책이 몇 권 보이네요~ 공병호 책 이라든지 ㅎㅎ

건강책 보면서 무척 효자구나 싶네여. 저희 어머니는 건강이 무척 좋지 않은데 제가 너무

무심한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됩니다.

다이조부 2010-12-0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스트 를 보면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민음사 200권 전집을 구입했다는 소식에~
와우..... 얼마나 매력적인 가격으로 할인을 했길래 눈 찔끔 감고 그런 도전을 했을까
궁금해지네요 ㅎㅎㅎ

근데 주인장이랑 저랑 생각이 갈리는 지점이 있네요. 저는 죽기전에 시리즈를 훝어만 봤지만
세상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든지 꼭 방문할 여행지 라는게 존재하는지 의문이거든요. ^^
저는 책읽기 보다는 더 흥미진진한 일이 세상에 있지 않을까 믿고 싶어요.
아무튼 주인장 문학애호가 인정 ^^

cyrus 2010-12-02 20:36   좋아요 0 | URL
아.. 공병호 책은 제 동생이 읽고 싶다고 해서 구입한겁니다.^^
저와 동생, 어머니가 제 알라딘 계정으로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플래티넘 등급을 넘볼 수 있을 정도로 이번 해는
책을 많이 구입했는데,, 10월달 들어서는 책 구입 횟수가 줄어들어서
일반 회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민음사 전집은 정말,, 군생활하면서 모았던 월급과
군 입대 전에 알바로 모아둔 목돈을 쪼개서 산 거랍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전집을 산게 그게 처음입니다.
다행히 홈쇼핑에서 팔고 있길래 샀습니다.

사실 저도 꼭 죽기 전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문학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로 정할 뿐이지
그렇게 크게 얽매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

oren 2010-12-0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여태까지 원작은 사서 읽어볼 생각조차 못했군요. (아마도 어릴 때 '어린이용'으로는 읽어본 것 같기도..) 이 작품은 뮤지컬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 오히려 원작이 덜 읽혀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동영상으로만 봐도 감동적인 '조승우 버전'은 한 번도 못봤고, 다른 배우가 공연했던 작품과 브래드 리틀의 내한 공연때 가봤네요.)

* * * * *

cyrus 2010-12-04 00: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oren님.

다른 분들 서재에 들리게 되면 oren님의 댓글도 유심히 보게 되던데 서재에
뮤지컬 동영상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제가 동영상을 잘 봤다고 oren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의 동영상을 댓글로
올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

2010-12-04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05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이라는 변수는 상상도 못했나요 ㅋ

아마도 책장은 선물이겠죠? ㅋ

cyrus 2010-12-05 13:44   좋아요 0 | URL
책장은 상품입니다. 그런데 책장 상태와 모양새는 괜찮은데
200권 세트를 다 꽂지 못하더라고요^^:;
할수 없이 열 몇 권은 다른 책장에 꽂아야하는,,-_-;;
그게 좀 아쉬웠더라고요. 200권 모두 한 책장에 꽂혀있으면
폼날텐데 말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12-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소설 굉장히 좋아합니다.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특히 비밀 실험실이 있는 집을 묘사한 대목이 좋더군요.좀 이상한 취향이라고도 하겠지만요.유명하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책을 하나하나 골라 읽는 Cyrus 님 취향이 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cyrus 2010-12-06 11:04   좋아요 0 | URL
뮤지컬로 각색한 것을 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원작을 읽어보니 오히려 뮤지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라도 원전의 내용과 살짝 다르기 마련이거든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원작에는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이 없더군요.
지킬 박사라는 캐릭터를 부각시켜주는 작가의 배경 묘사는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런 점이 괴기소설이나
고딕소설 읽기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계기로
스티븐슨의 소설 말고도 고골이나 모파상이 쓴 괴기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2-06 16:55   좋아요 0 | URL
아하...뮤지컬엔 여자주인공이 있군요.실제로 원작에 비중있는 여자는 안 나오는데 말이죠...

고골의 '코'를 괴기소설로 분류하기도 하더군요.십여년전에는 <모파상 괴기소설선>이라는 책도 나왔지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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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미술사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수없이 등록되는 미술 관련 신간도서를 확인한다거나, 도서관에서 미술 관련 책이 꽂혀 있는 서가를 둘러보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다.  

  ' 우리나라에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양미술사 책이 많은데,  

    유독 우리나라 미술사 책이 많이 나오지 않은걸까? "  

에른스트 곰브리치와 호스트 잰슨의 <서양미술사>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꾸준히 팔리면서도 읽고 있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 개론서이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나 서양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이 꼭 읽게 되는 책이 단언 곰브리치가 쓴 책이다. 900페이지 정도의 양을 자랑하는 이 두꺼운 미술사 책이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에는 수준 높은 미술의 역사와 이론들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저자의 문장력이 한 몫을 하고 있지만, 이런 저자의 의도는 서양미술에 대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도 있었다. 그래서 곰브리치 이외에도 외국의 대중 미술 전문가들이 쓴 책들이 많이 출판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주헌, 한젬마, 이명옥 씨와 같은 ' 대중들을 위한 미술 ' 이라는 포맷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출판된 미술 관련 도서들 중에서는 서양미술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정작 대중들을 위한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출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 많이 출판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홍준 씨는 이전에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조명함으로써 문화재 탐사 붐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밖에도 추사 김정희, 한국의 도자기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을 펴내면서 대중적인 우리나라 미술 저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강우방 씨는 솔 출판사에 기획된 ' 한국 미의 재발견 ' 시리즈에 참여하여 우리나라 불교 조각과 탑의 미적 가치를 소개하였다. 전호태 씨는 고구려 벽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故 오주석 씨는 단원 김홍도 등과 같은 조선 시대의 풍속화가들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하였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이사로 역임하고 있는 진홍섭 씨가 쓴 <한국미술사> 등 우리나라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학술적 시도가 있었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인 단점이다.  우리나라 미술 전공자들에게는 이런 책의 등장은 크게 환영받을 일이었지만 반면 대중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만 하다. (진홍섭 씨가 쓴 이 미술사 역시 900페이지 정도가 된다)  이런 활발한 저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문화는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받은 문화라는 인식을 가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문화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개된 우리나라 미술은 미시적인 내용들이었다. 고구려 미술, 조선 시대의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로 두드러지게 갈라져 있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미술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 보기 드물었다.

 

 

  한국미술의 시작, 빗살무늬토기   

서양미술의 인지도에 밀려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현상이 우리나라 미술의 현주소이다. 메마른 토양이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이번에 유홍준 씨가 출간한 <한국미술사 강의 1>은 '가물에 단비' 와 같은 존재이다.  특히, 그전부터 한국미술사에 관한 책을 고대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이 책의 출간이 무척 반갑기만 하였다. 

이번에 출간된 1권은 선사시대, 삼국시대 그리고 학계로부터 심도 있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발해의 미술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삼국시대부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서 한국미술사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재정립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의 첫 단원이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이 미술의 역사 역시 출발점을 선사시대로 잡고 있었다. 특히, 신석기 시대에 등장한 빗살무늬토기에 대한 내용은 선사시대의 유물에서도 고대의 조상들의 미적 가치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빗살무늬토기  

 


 

번개무늬토기, 신석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전에 교과서에서 본 빗살무늬토기의 사진을 보면서 토기에 새겨진 저 빗살무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냥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고고학적 유물인 토기로만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를 유홍준 씨는 '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새벽 ' (p 30) 이라고 말하고 있다.  토기에 새겨진 빗살무늬가 토기를 쉽게 잡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능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이들이 무늬를 새기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는 고대의 인류에게도 주위의 사물을 파악하고 표시하려는 '의식' 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류가 사물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직립보행 못지 않게 중요한 인류 발전의 획기적인 일이다.  아기들이 흰 종이이든 벽이든간에 손에 쥐고 있는 크레파스나 펜으로 우리의 눈으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없는 기이한 낙서들을 남기는 이유가 자신의 주위에 펼쳐져 있는 사물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낸 행위이다.  현재 인류의 지능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져 보일 것 같은 원시적인 인류에게도 사물을 보려는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의식의 결과물이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라는 점에서 보면 미술이라는 행위는 이미 고대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대로 선사시대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를 아우르는 삼국시대 그리고 백제까지 고대의 미술을 소파에 앉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최근에 밝혀진 연구 결과들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연구 논쟁의 연장성에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정리를 하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이번 <미술사 강의> 저술은 저자의 학술 활동 경력 중 최대 프로젝트이며 이전에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게 해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면서도 충실한 내용을 담으려는 그의 노고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 역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법. 이 책의 2장의 고인돌에 관한 내용에서는 지금까지도 학계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문제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지금까지도 고인돌이 세워진 의도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엇갈린 주장과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 있는 잘못된 내용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고인돌이 지배자를 위한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인돌의 용도가 집단 생활을 하고 있는 공동체사회의 제단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혹은 민간신앙의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유홍준 씨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고인돌의 용도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으며 고인돌이 단순히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일방적인 내용이라고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고인돌의 분류법에 대해서는 저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기념 조형물로서 장중한 멋을 풍긴다. (중략)  

  남방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대개 너럭바위나 큰 바윗덩어리지만 창녕 유리의 고인돌처럼 거대한 메줏덩어리 모양으로 육중함을 과시하는 것도 있다.  

  -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제2장 고조선 또는 청동기시대, p 60~61 -

학창시절 때 국사 시간에서도 배웠듯이 고인돌은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한다고 알고 있다. 탁자 모양으로 생긴 고인돌을 북방식으로,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은 남방식이라고 학생들은 통상적으로 그렇게 배워왔다.  


 

탁자식 고인돌, 경북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바둑판 고인돌, 강원 양구군 양구읍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시리즈로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를 소개하는 저술가로 유명한 박은봉 씨는 2007년에 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하는 고인돌 표기법은 식민사학이 만들어낸 역사학 용어라고 밝히고 있다. 한반도를 북부와 남부 지방으로 임의로 나눈 이유에는 북부 지역의 사람은 위의 중국에 내려온 민족이며, 남부 지역의 사람은 예로부터 스스로 발전하지 못할 정도의 문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항상 외부로부터 지배, 발전했다는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배되어 온 북방식, 남방식 고인돌의 분류는 북방식 고인돌은 탁자식이며, 남방식은 바둑판 모양이라는 이분법적인 정설을 낳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탁자식 고인돌은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며 반대로 바둑판 고인돌도 북부 지방에서도 발견되어 이분법적인 분류법이 주는 효력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2006년판 국사 교과서에서는 고인돌의 분류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고쳤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내용은 저자의 실수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학계의 분류법을 고수하려는 일종의 학문적 매너리즘의 경향일 수 있다. 사실, 새로운 고인돌 분류법 개정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에 대부분 사학자들 중에서는 북방식, 남방식 분류법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의 내용이 검증과 비판 없이 그대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특히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당당한 지분율을 가진 문화적 주주 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만에서 볼 수 있는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미술문화 속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체성이 들어가 있다. 비록 작은 단어이지만 우리나라 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잘못된 역사는 우리나라 한국사뿐만 아니라 미술사의 옥의 티가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미술사의 시작은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일본인의 학자들에 이루어졌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일본인 학자들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마저 말살하려고 하였다.  

즉, 이번에 나온 <한국미술사 강의>에서도 이런 사소한 오류의 내용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거나 지금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면 과거의 식민사관의 미술사의 내용과 별 반 다를게 없다. 이런 문제점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술문화를 대중들에게 정확히 소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 노력에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미술사를 미술 전공자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고정된 학문 인식을 넘어서 고고학자, 사학자들과의 학문적 연계를 통해서 지금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정립하려는 통합의 자세 역시 필요하다.

 

 

* 사진출처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3901&docid=228382&dir_id=10020101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291374&docid=727347&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1013&docid=14363&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5155&docid=14363&dir_id=100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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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들 공부시키다가 고인돌 분류법 오류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나의문화유산답사기>만으로도 거대한 족적이죠.
얼마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오셔서 말씀을 되게 재밌게 하셨어요.
구라계의 계보를 잇는다셨는데 말이죠~

cyrus 2010-11-30 21: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몇 년전에 저자가 문화재청에 근무했을때도
말 많았던게 기억이 나네요, 자신이 지금까지 쓴 책들을
문화재청 건물에 비치하고, 건물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념품도 아닌,, 책을 사라고 간접적으로 홍보까지 했다고하네요.
또 한 번은 문화 유적지 근처에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고기를 구워 먹은 일 때문에 논란이 있었고요.
책 내용과 학문 활동은 높이 살만하지만,, 저자의 인성이
약간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반딧불이 2010-11-3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을 꾸준히 소개해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에 언급하신 내용은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것 같아요.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홍보했다는 내용이요. 그분이 '우리 것'을 사랑하시는 분이 맞다면 인세를 챙기려는 의도보다는 그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다이조부 2010-11-30 21:48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의 태도는 어떤 사람의 언행을 봤을때 가장 선의로 해석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 저도 그런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말이죠~

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만,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을
대할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ㅎ

cyrus 2010-12-01 13:25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말씀을 보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언론에는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으니 언론에 비치는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게 사실이고요. 꾸랑님 말씀대로 선의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는것이 중요한거 같습니다.^^

반딧불이 2010-12-01 13:31   좋아요 0 | URL
무조건 선의로만 보는 건 더 모자란 사람이겠죠.

유홍준에 대해서 저는 아는바가 없어요. 다만 위에 조건을 달았던 것처럼 우리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다면 한번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미천하지만 소문과는 다른 경우들을 참 많이 봐와서요.

다이조부 2010-11-3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홍준의 책을 읽은것은 별로 없지만, 이 사람에 관하여 안 좋은 소문을
들은게 있어서 편견을 갖게 되더라구요. 재수 없다고 말이죠 ㅋ
지난달에 이 책을 가지고 알사탕 이벤트를 해서 리뷰만 쓰면 알사탕 받을 정도로
응모자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감상문을 편집해서 제출해 볼까 하다가 아무리 양심이
털이 났지만, 그건 아닌것 같더라구요.

cyrus 2010-12-01 13: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안 쓰셔서 다행입니다. 표절은 해서 안된 것도 행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표절이라고 걸리게 되면 뒷감당이 두렵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