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년 만의 재회 
 

오랜만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권을 읽었다. 8년 만이다.
많은 시간을 흘러 사람이 성장하면 키도 커지고 체형도 변하듯이 

이 책도 그런거 같다.
구판의 책표지에는 김정희의 ‘세한도’ 였으나
개정판에는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로 되어 있다.
책 크기도 구판보다 조금 켜졌고, 디자인도 Simple하면서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하얀 색 바탕에 중간에 한국화를 배치하여 여백의 미(美)를 보여주고 있다.
꼭 박물관에 그림이 전시되어 보는 거 같다.

그리고 2권도 출간되었다.
한창 1권을 읽고 있을 때 2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5년 전에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
투병 생활 중에서도 우리나라 그림에 대한 연구를 손에 놓지 않았다.
아마도 2권 출간을 위한 구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생전에 구상하고 있었던 자료들을
한국미술을 연구하는 그의 지인들이 완성한 것이다.
지인들 덕분에 2권의 유고 자료들은 빛을 보게 될 수 있었다. 
 

 

 

 미술 교과서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8년 전, 그 때는 중학생이었다.
1권에는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이 있었고
당시 미술 선생님께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셨기에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그림에 대해 쉽게 설명했다고는 하지만,

중학생의 나이에 한자어의 문장과 동양 사상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비록 내용은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계기로 우리나라 옛 그림들에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1권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다.  

  


 

깎아지른 절벽의 배경, 바위 위에는 선비가 편안히 턱을 괸 채 흐르는 물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시끄러운 속세를 떠나 편안하게 자연을 감상하는 선비를 그린 것이다.
항상 이 그림을 보게 되면 나도 선비처럼 편해지기도 하면서도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미소 지으면서 물을 바라보는  

그림 속 선비가 부러운 느낌도 들게 된다.  

 

미술 교과서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사진 속 그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교과서와 같은 사진 속 그림이었는데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왜 보는 것의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산수화와 이 책의 산수화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교과서의 그림들은 크기가 작은 반면에  

이 책은 그림 한 점 시원하게 한 페이지 전체를 장식한다.
그러니 이 책만 읽어도 전시회 안 가도 그림 한 점 제대로 감상하는 셈이다.
미술 교과서에는 모든 나라와 모든 인류의 역사를 대표하는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즉, 동, 서양의 유명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을 그림들이 교과서 한 권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다. 단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내용일 뿐이지
감상용으로 쓴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험 기간만 되면 학생들은 잠깐이나마 예술 애호가가 된다.
‘~주의’ 에는 무슨 화가의 그림, 이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림의 표현 기법 등등.....
그림과 그림 제목, 화가 같은 세세한 정보들을 달달 외운다.

문제 형식은 객관식이라서 답 찾는 것이 쉽다.
시험지에 흑백으로 처리된 그림 사진이 나오면
기억력을 발휘하여 바로 망설임 없이 보기에 답을 고른다.
이제 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동시에 공부했던 미술 지식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예술 애호가에서 성적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요즘은 중,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예전 우리가 공부한 것보다 내용과 구성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예전 교과서보다 수록된 그림 자료가 많다든지
내용면이 훨씬 더 나아졌다고 해서 무조건 교과서가 좋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를 봐도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옛 그림을 보고 즐기는 것은 갑자기 생기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이 창조한 게임 캐릭터가 꾸준히 레벨 업 상승을 시켜 능력을 키우는 것처럼
옛 그림에 대한 심미안(審美眼)을 가지는 것도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자주 그림을 보면서 느낄 줄 알아야 키워지는 능력이다.  
  

 

 

 선비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

1권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나는 가끔 ‘고사관수도’ 가 있는 페이지를 찾아 다시 본다.
언제나 이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선비의 미소가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동, 서양화에 나오는 인물 중 최고의 미소일 것이다.  

                                                                 


        
단연 미술 작품 중 최고의 미소라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가 있다.
그녀의 미소는 
보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알 수가 없다.  

일반적인 기분이 좋아서 웃는 거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뭔가 우울한 기분이 감도기도 한다. 

보는 사람마다 미소를 보는 입장이 달라진다.
결국 그녀는 관객에게 사악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사람들이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한 것을 비웃기라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고사관수도’ 의 선비는 다르다.
선비의 미소는 모나리자보다 아름답다.
우리는 그림만 봐도 선비가 왜 웃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나리자처럼 비웃지도 않는다.  

그림 속 주인공인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는
그림 속을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절벽과 절벽에 자라고 있는 식물,  

그리고 바위와 흐르는 물.
그것은 관객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감상하자는 장면을 연출한다.
선비의 미소는 자연을 보는 즐거움에 취하여 웃는 동시에
그림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함께 즐거움을 느끼자고 권하는 것 같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合一)과 동시에
그림 속 인물과 그림 밖의 관객의 합일을 이루고 있다.

요즘 대형 미술 전시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서 영국 근대 화가, 그리고 조각가 로댕까지.....
올해에는 외국에서 온 미술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찾아왔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안 보면 후회할 전시회들이다.
하지만 왜 우리나라와 관련된 대형 전시회는 자주 열지 않은 걸까?
그리고 전시회 홍보도 많이 차이가 난다.
외국에서 온 다양한 색상의 그림들은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 왔다고 법석거린다.
반면 터주대감인 우리나라 그림들은 조용히 관객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외국 그림들처럼 소란스럽게 자랑하며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관객에게 여유를 주면서 천천히 음미하며 바라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관객도 그림과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옛 그림에만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 시공 아크로 총서 6
브라이언 매기 지음, 박은미 옮김 / 시공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 사상과 미술 그림과의 조화로 어렵지 않게 읽혀지는 철학의 역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도시생활자의 백서
하승우.유해정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한 달 전, 우리 동네 길거리에는 엠프에 울려나오는 음악 소리 때문에 무척 시끄러웠다.
그것은 6.2 지방 선거 후보들의 홍보용 음악이었다.
선거 후보 홍보차 한 대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싶으면 10분도 채 안되어
또 다른 후보의 홍보차가 ‘이때다’ 하듯이 선거 후보자 이름이 들어가는 음악을 틀어댔다.
주말과 같은 집에서 조용히 보냈고 있을 때는 선거 홍보 음악이 들리면 짜증이 났다.
공교롭게는 우리 집은 1층이다. 그래서 거실에 큰 발코니 창문이 있는데
가끔 선거 홍보차가 동네 몇 바퀴 돌다가 쉴 때 우리 집 발코니 창문 쪽에 주차하곤 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홍보 좀 더 하려고 그곳에서 엠프를 켠다는 것이다.
오래 켜지는 않았지만 10~15분 동안 홍보차 덕분에 음악 한 번 제대로 감상 잘 했다. 
1층 가정 집 코 앞에 떡하니 차를 세워놓고 홍보 음악을 켜는 것은
몰상식한 행동이다. 아무리 평일 날에 집에 사람이 없을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집에 소리에 예민한 아기가 있다고 생각해봐라.
시끄러워서 아기는 울고 있고, 그 아기를 달래느라고 엄마는 스트레스 꽤나 받을게다.

하긴, 이번 선거는 투표할 후보가 많기 때문에
지난 선거보다 동네방네 홍보차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당시 천암함 사건에다가 故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 등
굵직한 일들이 겹쳐서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여당과 대통령은 천암함 사건 이후로 북한에 대해 나쁜 감정을 드러냈으며
야당은 노 태통령 기념식을 이용하여 예전의 영화를 상기시켜 이번 선거 우승을 노렸다.
드디어 D-day인 6월 2일이 다가왔고, 선거 개표 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여당이 우승한 것이다.
야당과 대통령은 뜻밖의 선거 결과에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고,
여당은 좋은 결과에 승리의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6.2 지방선거는 야당의 승리라는 결과만으로는 역사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이 상승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물론 선거 전부터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유도를 하기 위한 홍보를 하긴 했다.
하지만 젊은 층의 투표율을 높인 결정적인 요인은
트위터로 인해서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게 되었다.
트위터는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컴퓨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투표를 먼저 한 젊은 유권자들이 트위터에 투표 후기를 알림으로써
동시간에 트위터에 참여하고 있던 전국의 모든 젊은이들도 투표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거 전에는 젊은 유권자들의 저조한 투표 참여율 때문에 걱정을 했었으나
오히려 뚜껑을 열어보니 정치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와 버렸다.
통신 기술이 정치 선거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된 선거였다. 
  

 

 

 과연 젊은 세대들은 정치에 관심이 있는가 
 

사실, 나는 이번 6.2 지방선거에 투표를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 달 초에 전역을 했는데,
어이없는 점은 전역하고 나서야 6월 2일에 선거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이 원인이다.
우리나라 선거를 참여할 수 있는 나이는 만 19세부터다.
내가 직접 글로 올리기에는 민망하지만 만 19세 되어서 지금까지
선거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6.2 선거의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높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점에 대해 후회한다. 
 

그런데 선거 이후에 나온 각종 언론 매체와 매스컴의 기사들을 보면서 공통점이 있었다. 
모든 매체들은 하나같이  

갑자기 오른 투표율 현상의 결과와 원인에만 다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트위터로 인해 젊은 사람들의 투표 참가는 증가했고,

트위터로 각기 다른 젊은 사람들이 동시간에 모여
우리나라 정치에 관해서 논쟁의 메시지를 주고 받는 등

정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트위터나 블로그에
투표하고 나오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연예인이나 젊은 사람들도 있다.
젊은이들끼리 유행하는 언어로는 일명 ‘인증샷’.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자신이 선거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미니 홈피에 올리면 그 가수를 좋아하는 젊은이들도
사진을 보고 선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인기 가수는
자신도 투표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사진에는 자신이 받은 투표 용지와 함께 자신의 얼굴이 드러났다.
투표장 안에서 투표 용지를 찍는다는 것은 선거법상 위반이다.
그리고 400만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결국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만천하에 인증하는 꼴이 되었다. 
사진 게시 이후로 가수의 행동에 대해 논란이 일어났으며
그 후로 그 가수가 벌금을 냈는지 알 수가 없다.

과연 젊은 세대들은 선거 투표를 해야하는 이유를 알고 하는 것일까?
투표를 하고 나온 자기 자신을 찍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투표를 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었기에 하는 것인지,
내가 투표를 했다는 점을 단순히 알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떻든 간에 최신 정보 통신을 이용한 젊은 세대들의 활약(?)으로
이번 선거에 아주 의미 있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면 다음 선거에도 그런 좋은 장면이 계속 연출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제 막 정치에 관심을 갖는 도시생활자를 위한 책 
 

나는 6.2 지방선거 이후
스스로 정치적 무관심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정치는 어렵기만 하고 전혀 아무 상관없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 관심을 가지기 위해 모르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막히게도 나의 그런 정신적 갈증을 충족시켜준 책이 등장하였으니,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책 사이즈는 평소 책보다 조금 작고 내용도 그리 두껍지 않아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내가 궁금했던 정치의 모든 것들이 이 책 안에 있었다.
투표를 하는 방법부터 NGO, 여론
신문에 많이 나오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는 내용들이

쉽게 정리되어 소개되었다.
나 같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제 막 20대에 들어설 사회 초년생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특히 자신은 절대로 정치와 관련 없다거나
정치인들을 하는 짓거리를 봐서 선거를 해봤자 피차일반(彼此一般)이라는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거와 관련된 챕터의 내용 중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자신이 선거 전에 후보들에 대해서 분석을 했는데도
정작 뽑을 정치인이 없으면 집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차라리 선거장에 와서 무효표를 만들어라고 한다.
저자가 나름 책 내용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엉뚱하면서도 자칫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요즘도 몇 몇 정치인들이 간혹 국민들의 뒤통수를 치기는 하지만

선거는 국민이 자기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인을 직접 선택하는
아주 중요하고도 신성한 임무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다른 나라에는 시민 위주로 구성되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운동도 전개한다고 한다.
그리고 선거 이후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인데,
선거 투표 용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모두 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특히 이번 선거는 1인 8표인 걸 감안하면
평상시 선거 투표 용지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저자 말대로 정치에 관심 없다는 핑계로 투표를 안 하고 집에 있다는 것은

‘난 정치에도 관심도 없고요, 내가 내는 세금이 어디에 쓰든 상관 없어요.’ 라고
말하는 셈이다.

투표를 안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도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여, 정치에 조금 더 관심을..... 
 

내가 대학 전공이 행정학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여태까지 정치에 무관심했다는 것은 아주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행정학에서도 정책학, 지방행정, 정치 등도 포함되고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행정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하는 것은 모순된 사고방식이며 아주 잘못된 것이다.
나와 같은 과 친구들도 보면 나와 똑같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투표를 안 한 몇 몇 녀석들도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혹시나 그들에게 책을 소개하게 되면 진짜 이 책만큼 꼭 추천하고 싶다. 

정말 정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가  

갑자기 정치에 좀 관심을 가진답시고 이 책을 읽는 것은 무리수일 수도 있다.  

좀 더 진지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차라리 이 책은 도서관에 빌려 읽는 것보다
직접 구입해서 읽는 것이 훨씬 낫다.
집에 소장하고 있으면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읽고 싶으대로 원하는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정치 제도가 바뀌게 되면

언젠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에는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영어에 노출하듯이

평소에 신문을 즐겨 보고  

정치면에 자주 나오는 용어와 내용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 밖에 없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직접 검색 사이트나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이상한 사이트(?)나 들락거리지 말고,
우리나라 정치 관련 단체 홈페이지를 한번이라도 들어가 살펴보는 것도 좋다.
몇 몇 인터넷 홈페이지는 관리가 엉망이거나 미흡하여 부실한 것도 있겠지만
요즘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국민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은 다양하면서도 뭔가 서로 따로 노는 거 같아 보인다.
일시적인 감각을 중요시하며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
취업을 위해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젊은이들,
천안함 사건 이후로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든 말든
관심 없고 커피숍에 앉아 스타벅스를 마시는 젊은이들,
정치에 관심을 가져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젊은이들. 
 

이 글을 읽고 있을 젊은이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에 속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이 닭을 낳는다 - 생태학자 최재천의 세상보기
최재천 지음 / 도요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대중적인 과학자들

우리나라 대표적인 대중적인 과학자를 뽑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정재승 카이스트 박사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은 이 분들의 책들 말고도 대중들을 위한 과학 도서가 많이 출간되고 있다.
다만, 두 분이 썼던 책들은 스테디셀러를 기록 중이다.
정재승 교수는 <과학 콘서트>는 9년 전에 초판이 나온 뒤로
M 방송사 선정 도서 이후부터 더욱 더 인기를 끌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정 교수의 <과학 콘서트>와 같은 대박 도서는 없다.
하지만 <과학 콘서트>와 같은 해에 출간된
<생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구입하고 읽고 있으며
책 속의 글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다.
고등학교 1학년용 국어(상)의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다.
그리고 <생명이...> 출간 2년 전에는
<개미제국의 발견>이라는 책을 쓰기도 하셨는데
당시 한국 출판계를 휩쓸고 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개미 관련 대중 도서'로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두 분의 공통점은 과학의 대중화를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 있으나,
이 밖에도 사회, 문화, 예술 등 서로 다른 분야를 과학 분야와 접목하여
경계 없는 학문을 드나들며 넓은 식견을 자랑한다.
정 교수는 최근에 소설가 김탁환 씨와 공동으로 과학소설을 펴냈으며
최 교수는 그 이전에 인문학의 도정일 영어학 교수와 함께한 대화를 책으로 옮긴

<대담>(휴머니스트, 2005)이라도 책도 출간하여
과학과 인문학에 대해서 논하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느낀 것이지만 최 교수의 글은 과학 교수답지 않게 문학적이다.
본인도 어렸을 때 글 쓰는 것이 좋아서 백일장에 상을 타봤다고 하셨는데
그때부터 문학적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예전에 호주제 폐지 문제에 대해서 
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하여 폐지 찬성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폐지 반대에 있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인신공격 및 인터넷 테러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호주제 폐지 판결을 이끌어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재미있게도 호주제 폐지 찬성에 관여한 인사들 중에는
최재천 박사의 동명이인이 前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며 변호사인 최재천 씨도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다

가끔 그의 에세이집을 읽다 보면
호주제 폐지와 관련된 내용부터 시작해서 남녀 차별과 여성 권익 보호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전공인 생물학 지식들을 버무려
생물학도 공부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독서를 할 수 있다.
비록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난 것이라서 글의 신선함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의 재미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에세이집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시 한 번
사회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기에 아직도 유효하다. 
 

<알이 닭을 낳는다>는 역시 2001년에 첫 출간되어
5년 뒤에 개정판이 나왔으며 이듬해에는 개정 2판이 출간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난 글들을 읽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책에도 역시 9년 전 사회 핫 이슈였던 호주제와 관련된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때 미국 대선에 출마한 조지 W. 부시와 엘 고어도 등장한다.
그 중에 선거 운동 중에 엘 고어가 부인과의 키스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설명한 글이 있다.
최 교수는 부인과의 키스를 통해 가족 사랑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부각시켜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글에는 엘 고어와 같은 환경주의자가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알다시피 엘 고어는 투표 때문에 억울하게 선거에 패하게 되었다.
또 최근에는 엘 고어와 그의 부인은 이혼을 했다.
새삼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이 닭을 낳는다>의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타임머신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듯이 

그의 글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사회문제들을 볼 수가 있다.
비단 타임머신은 시간을 거꾸로 갈 수 있을뿐만 아니라
시간을 앞당겨서 미래의 사회 모습을 볼 수도 있다.   

  

 

 

 9년 후, 지금은..... 
   

최 교수는 남자도 미래에는 여자처럼 화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 생물 번식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권이 있다는
성 선택론을 기반으로 미래에 남자들은 여자의 선택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화장과 성형 수술을 할 것이며
이에 더불어 남자 전용 성형외과가 생길 것이라며 미래에 나올 신종 사업도 예상한다.
최 교수가 이 글을 쓴 지 9년 후, 지금 그가 예언한 것이 적중되었다.
과거 여성들은 취업의 첫 관문인 면접 시험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성형 수술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들도 성형 수술을 하고 있다.
바늘 구멍만한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이다.
예전보다 여자의 권위가 상승되어 일방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여 짝을 짓는 시대는 끝났다.
요즘 30명의 여자들이 출연하여 한 명의 남자를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새로운 미팅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요즘 남자들, ‘결못남’이라는 한다.
결혼과 출산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자들이 이제는 ‘선택’ 으로 받아들이면서
결혼을 못하는 남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이 결혼하는데 필요한 자금이 1억이 넘는단다.
결혼 자금 대부분은 신혼집 마련에 사용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결못남’ 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벽이 자금이다.
자금이 없어서 ‘결못남’ 이 생기는 것이다.
안 그래도 우리 나라 인구, 남자가 여자보다 많아서
결혼할 여자도 부족하다는 마당에 여자들은 결혼을 하기 싫어하고,
결혼하려고 하면 턱없이 부족한 돈 때문에 어려워지고.....
앞으로 남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알면 사랑한다

미래의 모습을 예상하는 글을 보면서
몇 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안목이 놀랍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 앞에서 펼쳐진 글 속의 미래 모습이 그리 밝지 않아서 씁쓸하다.
이런 사회는 남자들만 좋은 것은 아니다.  

결혼률이 하락하면 동시에 출산율도 떨어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둘러싼 남녀의 상반된 입장을 그대로 방관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딱히 구체적인 대책 방안은 없다.   

그 전부터 정부의 출산율 하락에 대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이다. 

그리고 여성의 결혼 기피는 정책학적으로 접근한다고해도  

금방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결혼을 안 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단순히 사회경제적 요인보다는 여성들의 심리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남녀가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세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봐야만 할 뿐이다.

 

최 교수가 항상 말하는 것이 있다.
“알면 사랑한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 대해 알고 이해해주면 사랑이라는 큰 결실을 맺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1-87] 코

 

 

 

 

 코의 행방불명 
 

만약에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자신의 얼굴에 코가 사라졌다면?
상상만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서 난감하면서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 기겁할 것이다.
한 개의 호흡 통로는 사라지고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할 것이다.
축농증이나 비염과 같은 코와 관련된 질환에 걸려본 사람을 알 것이다.

코가 막혀서 입으로만 숨을 쉬는 것도 불편하다는 것을.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꽃들의 냄새를 맡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코가 사라지게 되면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다.
코 없이 밖에 돌아다녀 봐라.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코 없는 당신에게 집중할 것이다.
그러면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집에만 있는 폐쇄적인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이 가상의 이야기의 결론은
코 하나의 상실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존재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야기를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완벽한 과학적(?) 성형 의술의 힘을 빌어  

어떻게든 인조 코를 만들어 다닐 수도 있다.
냄새를 맡지 못하고 숨 쉬는 것이 불편해도
인조 코 하나만 달고 있어도 사람 만나는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코가 없어진다는 가정 하의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는데
비약이 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새 발의 피다.
이것보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사라진 코가 사람처럼 살아 움직이고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콧대 높은 자의 콧대 꺾기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소설인 <코>에는
앞에서 상상했던 ‘코의 행방 불명 + 살아 움직이는 코’ 라는  

주제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소설에 나오는 러시아의 관리 꼬발료프는 낮은 계급이지만
관리’ 라는 꼬리표가 있어서 허세를 부리는 인물이다.  
어느 날, 면도 후 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코를 찾아야한다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코를 찾았지만..... 꼬발료프는 눈 앞에서 펼쳐진 황당한 장면에 까무러친다.
코가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 아닌가.
그것보다도 더 황당한 것은 코가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관리라는 점이다.
꼬발료프는 공손하게 고급 관리 코에게 자신의 신체 일부분임을 설명하나
코는 자신보다 낮은 계급인 꼬발료프의 말을 무시한다.
퇴짜 맞은 꼬발료프는 코에게 무시당했다는 점에 분통을 느낀다.
코의 상실감으로 인해 낙심한 가운데 엉뚱하게도
거리를 지나가던 경찰관 덕분에 잃어버린 코를 되찾았다.
일단 코를 되찾기는 했으나, 문제는 원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코를 붙이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코는 얄밉게도 자신의 얼굴에 붙여지지 않았다.
의사를 만나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의사의 처방은 그냥 코 없이 살아라고 말한다.
코를 원래대로 붙일 수 없다는 사실에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코발료프는
잠을 자게 되는데, 다음 날 아무 일 없었다듯이 코가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완전한 형태의 얼굴로 돌아온 모습에 꼬발료프는 무척 기뻐한다.
그리고 며칠 전 코가 없어서 쩔쩔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소대로 면도를 하면서 관리 특유의 허세를 부린다.

이야기는 짧고 설정도 황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가볍게 볼 소설은 아니다.
고골은 코를 비유하여 당시 러시아 관리들을 조롱하였다.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관리나 사람들 앞에서는 콧대 높이면서 위풍당당하다가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위축해지고 아부를 떠는  

러시아 관리들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꼬발료프의 행동은 계급 사회에서는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직장에서는 보다 높은 직책으로 승진하기 위해서  

윗사람 앞에서 굽실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TV에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던 사람이
막상 카메라가 없어지면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으려하고,
자신의 정치 행적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입 막으려고 한다.
단지, 자신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쓰고 싶은 거 쓰면서 자신의 배만 채우기에 급급하다.

고골은 <코>를 통해 희화적으로 콧대 높은 자들의 콧대를 꺾고 있는 셈이다. 
 

  

 

 주종(主從) 관계의 전복

<코>의 황당무계한 플롯은 한편으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소설을 보는 거 같다.
그의 글도 우리가 평소에 상상하지 않았던 요소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모음집 <나무>(열린책들, 2003)에 보면
‘조종(操縱)’ 이라는 소설이 있다. 거기에는 왼손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고골의 코처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왼손은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글을 써서 나타낸다.
소설 속의 왼손은 주인이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에 실망하여 반란을 일삼는다.
주인이 왼손으로 무엇을 할려고 하면 행동을 거부한다거나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저지른다. 심지어 잠을 자는 주인의 목을 조르거나
주인이 깊은 잠에 빠진 사이에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결국 왼손에 굴복한 주인은 왼손과 오른손에게  

서로 협력 계약을 맺어주고 양손잡이가 된다.
그리하여 왼손이 그 주인을 마음대로 조종하게 되면서
결국 왼손이 인간의 ‘주인’ 이 된다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고골의 <코>와 비슷한 장면이 떠올린다.

얼굴에 붙어있었던 코의 주인은 꼬발료프였다.  

하지만 코가 떨어져나가고 고급 관리가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된다. 코가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주종(主從) 관계의 전복’ 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고골의 작품은 1836년에 발표되었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의 독특함은 둘째 치더라도, 수백 년 전에 고골이 이미 
베르베르式 플롯의 소설을 썼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무관심당한 자들의 반란

고골의 <코>는 환상적이며 일반적인 소설 플롯과 다른 특이한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내용이 뭔가 부실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코>를 읽으면서
이야기 전개상에 나타난 공백에 대해 다양한 상상과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있다.
나도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꼬발료프의 코는 왜 이유 없이 사라지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읽어보면 코가 꼬발료프의 얼굴을 떠난 정확한 이유에 대한 장면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코>가 러시아 관리들을 조롱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코가 허세 부리는 관리 꼬발료프에게 ‘X 먹어라’ 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베르베르 소설의 왼손처럼 무관심만 받고 있던 코가
관심을 자기에게 집중시키려는 주인에 대한 역행적 행동일 수도 있다.
베르베르의 <조종> 결말과의 차이점으로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조종>의 왼손은 반란 투쟁에 성공하여 결국에는 주인을 지배하는 반면,
꼬발료프의 코는 일시적인 반란일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주인이 오른손잡이라서 자신을 무시하는 왼손이 제멋대로 행동하듯이
코도 다른 신체 부위보다 관심을 받지 못해 질투가 나자
‘나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세요’ 하듯 가출을 한 셈이다.
코가 가출하고 나서 고급 관리로 변신하고 나서야
꼬발료프는 평소에 느껴보지도 못했던 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드디어 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꼬발료프는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종용하지만
코가 예전의 서러움이 생각나서 주인 꼬발료프를 무시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것은 숨 쉬고 생각하고 말하면서 움직이면서도 
평소에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신체 일부가 없어지고 나서야
신체 존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는다.
코 말고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신체 부위가 있다.
눈은 작지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부위다.
눈이 없으면 어둠만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된다.
우리는 손톱에 때가 끼거나 좀 길어지면 깎아야한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게 마련인데
손톱이 없으면 손발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손은 물건을 집을 때 손에서 발생하는 힘을 받쳐주는 작용을 하는데
없어지게 되면 물건을 집을 수가 없다.
발톱도 그렇다. 발 다리가 있어도 발톱이 힘을 받쳐주지 못해 서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새끼발가락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서 있을 때 새끼발가락의 부재(不在)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진다.
그러면 오래 서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몸에 이루어져 있는 모든 신체 기관과 부위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인간’ 이라는 하나의 집합체가 구성되고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베르베르의 소설처럼
모든 신체 부위들이 인간의 주인이고
인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냥 신체 부위가 움직이고 싶은 것에 따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종이 아닐까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