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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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 양희은 노래, <작은 연못> 중에서 -

 
   

 

 

  " 혹시 소금꽃나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요? "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 소금꽃나무  , , , ?   

처음 들어본 생소한 나무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답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왠지 그런 나무가 있을 것이라는 반신반의한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 그런 나무는 없다 ' 고 말한 사람이 정답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식물도감들을 샅샅이 뒤져봐도 나올 수 없는, 아니 이 지구상에 그렇게 부르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이 소금꽃나무는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 , ,    

  

 

  노동자들이 피워내는 소금꽃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나 역시 소금꽃나무의 존재를 며칠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소금꽃나무를 본 적도 없다.  대한민국 최초의 '처녀 용접공' 으로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들어가 지금도 민주노조운동을 하고 있는 김진숙 씨가 쓴 <소금꽃나무>라는 책에서 알게 되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침 조회 시간에 쭉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에는 하얀 가루가 묻어있다. 그들이 뼈 빠지게 일하면서 뿜어져 나온 땀들이 소금 결정체로 굳어버린 것이다.  김진숙 씨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시절 그 모습을 자주 보면서 등짝에 묻어 있는 하얀 것들을 소금꽃이라고 생각했다.  소금꽃을 주렁주렁 달린 채 서 있는 노동자들은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인 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소금꽃나무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소금꽃나무가 ' 노동자 ' 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가 지금도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이유  

김진숙 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검색 포털 사이트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였다. 나는 그녀의 근황까지 알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뉴스는 2010년 2월 달로 멈춰져 있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반대하여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일 오전 7시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문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희망적인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굳센 심지 같은 성격을 그녀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지금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 비정규직 ' 이라는 이름 아래에 아직도 일 할 권리를 얻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위해서.  

그들이 붙잡고 있던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가 제법 그늘까지 드리운 산별노조라는 고목나무가 되도록 피를 섞어 물을 주어 살을 깎아 비료를 주며 알뜰살뜰 가꾸어 갈 사람들. 투쟁의 시기가 되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집행부의 실천 지침을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한 번도 앞서거나 빛나지 않은 채 3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 <소금꽃나무> 김진숙, 후마니타스, p 77 -  

그녀는 그동안 참고 지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있다. 특히, 그녀에게는 거대한 세상에 부딪혀 쓰러져야만 했던 동지들이 못다 이룬 한을 풀어줘야만 했다. 2003년에 한진중공업에서 장기 노사 갈등을 겪다가 김주익, 곽재규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김주익 지회장이 35m 크레인 위에서 129일 간 농성을 하다 스스로 목을 맸고, 뒤이어 곽재규 씨가 도크로 뛰어내려 사망했다. 산재사고가 워낙 많은 조선소라지만, 순식간에 두 명의 동료의 죽음은 가족이나 다름없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그리고 김진숙 씨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의 기억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흩날리는 눈발과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지금도 김진숙 씨는 현대중공업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 노동자 ' 란 . . .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 노동자 ' 라는 단어에 대해서 거리감을 갖기 마련이다. 쥐꼬리만한 수당으로 왠만한 사람들도 하기 힘든 고역에 쉬지도 않고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에 학생기록부에 장래희망을 적을 때도 '노동자' 라고 적는 사람이 있었던가?   

거기에다가 오늘날에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 노가다 () ' 라고 경시하면서 부르게 된다. 토목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높여서 부르는  どかた는 원래는 ' 토가다 ' 로 읽지만, 변형되어 사용하면서 ' 노가다 ' 로 읽게 된 것이다.

 ' 할 일 없으면 노가다라도 뛰지. 뭐 , , , '  

젊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 노가다 ' 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지금은 힘들고 고된 일을 지칭하는 은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앞에서 제시된 예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가다는 할 일 없을 때 하는 힘든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할 일 없어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힘든 일을 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다.  김진숙 씨가 생각하는 ' 노동자 ' 는 그동안 우리가 왜곡되어 알고 있었던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버리고 있다. 

그 나무들이 500여 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집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전화를 만들고 , , , , ,  (중략)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 <소금꽃나무> 책을 내며, p 9 -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가 지금까지도 수천년 세월의 모랫바람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왜구의 침략을 막아 조선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거북선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름 없는 수많은 일꾼들, 즉 노동자들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단순히 일만 하는 그런 하찮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 중에서도 故 김주익, 곽재규 씨처럼 스스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세상과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스마트폰, 컴퓨터, TV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었는지, 그것을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겪는 말 못하는 고충과 자존심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노동자' 에 대한 김진숙 씨의 정의는 노동자에 대한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

양희은 씨의 노래 가사 속 이야기처럼 ' 대한민국 ' 이라는 작은 연못에  ' 정규직' 이라는 붕어와 ' 비정규직 ' 이라는 붕어가 함께 살고 있다.   ' 정규직 ' 붕어가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비정규직' 붕어를 억압하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 비정규직 ' 붕어는 죽게 된다. 죽은 ' 비정규직' 붕어의 시체가 썩어가면서 ' 대한민국 ' 연못 역시 썩어가게 된다.  하지만, '정규직' 붕어는 자신의 연못이 썩어가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이런 최악의 상황이 생겼는지도 영영 모른채 자신도 오염된 물 때문에 죽게 된다.  

현재 정규직뿐만 아니라 대다수 대중들에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운동은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남 이야기일뿐이다.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투쟁을 부르짖어도 정규직들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비정규직들의 투쟁은 노동운동에서조차 소외되고 있으며 정규직뿐만 아니라 정부 그리고 시민들까지 스스로 회피하고 침묵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낳은 사회적인 갈등의 상처가 깊어가는 것도 모른채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낸 불신의 병은 깊어만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우리가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갈등의 폭이 커져버린 정규직, 비정규직간 격차의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아빠, 그런데 내가 일자리 구해줄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되요? 

  그래야지 운동회, 학예회도 보잖아요!  

  다른 애들은 아빠자랑도 하는데 . .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화이팅!  

  참!  어제 무서웠죠?  우리는 오빠가 아빠 노릇 잘 해요.  

  사랑해요!  

  - 크레인 위에 있는 아빠에게, 故 김주익 씨의 딸이 쓴 편지, P 111 -  

오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를 산별노조라는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 자신들의 피와 살을 스스로 깎아가면서까지 비료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희망적인 노동자들을 위한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자신들이 희생하면서 비료로 만들기에는 지금 현실로서는 턱없이 부족하기만하다.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화이팅! '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이 순진한 아이가 쓴 편지 속에 있는 이 구절처럼 아버지 故 김주익 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격려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작은 격려와 관심이 이들이 가꾸는 희망의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훌륭한 비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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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세상과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아, 갈길도 멀고 별로 실현될거 같지도 않은 제 목표네요.
한방에..... 라고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불안해요. 막판까지 온 듯 한 느낌. 아마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부는 자유 시장이라는 개념의 부작용이 커질대로 커진 느낌입니다.
크게 한번 흔들릴거 같은 생각도 들구요. 그럼 나는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지
재테크는 어떻게 하여 쥐꼬리만큼 가진 재산이라도 보호할지 그런 걱정도 하구요.
온갖 상상이 머리를 들끓고 있는 요즘입니다. ^^

cyrus 2010-12-29 20: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 비정규직의 애환을 바라보면서 병든 사회에 대해서
지적하고 한탄을 해도 먹고사니즘의 미련을 못 버리는게 사실이죠.

양철나무꾼 2010-12-3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분 책 못 읽어요, 가슴이 메어 와서...

참 외롭게 우뚝 서신 분이죠.
이 겨울 춥지 않아야 할텐데...

님 리뷰 덕분에,
저 혼자 넘 호사스러웠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cyrus 2010-12-30 14:0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편의점 카운터에 앉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어서 불편했고, 저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친분이 있는 출판사 카페 매니저님의 소개를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 분 역시 나무꾼님처럼
가슴 아프게 읽었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비록 불편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는 것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다이조부 2010-12-3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은 목록리스트에 있는데 먼저 읽었군요~ 배신자 ㅋㅋㅋ

제가 주인장 또래에 친구랑 서준식선생의 뚱땡이책 옥중서한 을 읽은 기억이 있어요.

지금은 원래 두꺼운 책이었는데, 더 퉁퉁해진 책인데 님이 읽으면 분명 만족할거라 확신합

니다. 김규항 인터뷰집에서 김진숙씨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구절에서 걸리더군요


다이조부 2010-12-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주의자 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김규항의 발언에 저는 유감스럽더군요!~

새해에도 주인장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네요. 대구 내려가면 막창 먹어요 ㅋㅋㅋㅋ

cyrus 2010-12-30 14:05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꾸랑 형^^;;
꾸랑 형이 소개하신 서준식 씨의 책뿐만 아니라 김진숙씨를 비판하는
김규향 씨의 글도 읽어보고 싶네요.

글샘 2011-01-1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숙 씨 지금 타워 크레인에 올라가서 고공 농성중입니다.
마음이 쓰리고 시리고 그렇네요. ㅠㅜ
고 김주익 생각도 나고...

cyrus 2011-01-14 20: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제 곧 날씨가 추워질텐데 그 분의 건강이 악화될까봐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