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 시대를 위로한 길거리 고수들 이야기
안대회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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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희노애락을 느꼈을까?  

요즘은 텔레비전을 켜면 TV 프로그램들을 부족함 없이 볼 수 있다. 케이블 방송과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TV 프로그램들을 방영하고 있다.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저 찾는게 리모컨이고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을 키게 된다. 모든 이들이 잠든 새벽에도 텔레비전을 켜면 케이블 방송에서는 오락 프로그램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들이 재방영된다. 텔레비전은 컴퓨터와 더불어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 되었다.  시청자의 눈과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텔레비전은 '바보 상자' 라는 좋지 않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조건 좋은 효과를 주는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 시청자들의 교육에 유해할 수 있는 잘못된 언어 남발과 단순히 방송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설정된 요즘 방송 프로그램의 등장은 TV의 대표적인 단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TV가 시청자를 '바보' 로 만드고 정서에 좋지 않은 고철 덩어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TV를 통한 유용한 교양 및 지식 전달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TV를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TV를 통해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면서 시청자인 우리도 운동선수들처럼 승리의 열광을 맛보게 되고, 인기 드라마 속 착한 주인공을 끝까지 괴롭히는 악역 캐릭터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에 감정에 몰입되어 화가 나게 된다.  부모 없이 동생과 단칸방에 사는 불우이웃을 보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펼쳐지는 희극인들의 개그는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이렇듯, TV는 우리 생활에 땔래야 땔 수 없는 필수품인 것이다.  TV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지,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다. 

TV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았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들의 삶에도 우리들의 삶처럼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을법한데 희노애락의 감정을 전달해준 그들이 누구였을까?   

 

 

   18세기 조선시대의 ' 스타킹 '

 일요일 오후에 모 방송국에서 하는 시청자 오디션을 표방하고 있는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스타킹' 이 있다.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나 독학으로 악기 연주를 배움으로써 전문가 수준 실력을 갖추게 된 40대 주부 등 우리 삶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숨겨왔던 재능을 우리는 시청자로서 보고 있다. 

우리는 TV로 전파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재능과 끼를 보면서 웃음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조선 시대 사람들도 자신들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구경하면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의 등장은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유교 계급의 영향이 붕괴되고 신흥 상인들의 등장으로 도시와 시장이 형성된 18세기 때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양반 계층의 몰락과 동시에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기존의 양반 중심의 문화는 18세기에 이르러 평민들도 참여하는 문화로 변화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양반 중심의 유교사회에서 '책' 은 양반 식자층들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서민들은 책이란 것을 읽어볼 수도 없었으며 평생 조선 시대의 사람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모르는 문맹으로 살아가야만 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남녀노소 모든 이들도 책을 읽을 수 읽게 되었다. 특히, 지금 ' 고전소설 ' 이라고 불리우는 <홍길동전><춘향전><심청전> 등의 등장은 양반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읽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조선의 문맹률 때문에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평민은 극소수였다.  

<홍길동전><춘향전> 등은 조선 후기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평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평민들이 대중적인 소설을 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자들의 등장이다. 평민들은 한문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 말 ' 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 당시만해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번화가 곳곳에서는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자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 대다수 문맹자인 평민들에게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으며 이들에게도 교양과 지식을 제공하는 ' 지식 교류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평민들은 이들 덕분에 '독서' 라는 행위를 할 수 있었으며 조선 후기 특유의 대중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老 = 怒

  내 이름은 삼월이, 조선의 당찬 老처녀    

주위 시선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노처녀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 내 이름은 김삼순 ' 이 '김삼순 신드롬' 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노처녀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못한) 채 ' 노처녀, 노총각 '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달고 살아야 하는 30대를 넘어선 남녀들은 주위 시선에 부담스러워 했듯이, 혼인할 시기를 넘어선 조선남녀들도 사회로부터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었다.  

요즘 대한민국 남녀들에게는 결혼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부담스러워 한다. 결혼을 함으로써 짊어져야 할 가정을 먹여살려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결혼 기피 1순위로 꼽고 있는 것은 경제 사정이 썩 좋지 않은 현실이 만들어낸 대한민국 남녀의 결혼관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결혼 기피도 역시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특히 평민들에게는 결혼이라는 삶의 관문은 우러러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높았다. 혼인을 하는데 필요한 혼수를 마련할 경제적 여건이 없으면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노처녀, 노총각 평민들이 많아지게 되자, 조정 관리들도 근심할 정도로 하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조정에서는 결혼 못하는 백성들의 증가는 사회적 안정을 훼손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가난한 노처녀, 노총각들을 장가갈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주는 사회적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적인 제도 도입만으로 이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런 결혼 제도는 조선남녀들로 그리 탐탁치 않게 여겼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결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제도까지 마련했음에도 결혼을 하지 못한 조선남녀들은 평생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결혼 못하는 남녀는 곧 ' 돈 없는 가난한 사람 ' 이라는 이미지가 성립되었다. 특히 노처녀들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관점은 그 때 당시 천시받았던 과부와 맞먹을 정도로 심하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 노처녀 ' 라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는, 요즘 말로 말하는 '용자' 가 있었으니, , ,   일부 문헌 속에 등장하고 있는  ' 삼월이 ' 라는 여자이다.  

조선 시대에서 존재했던 독특하고 기이한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는 삼월이를 50살의 노처녀로 기록하고 있다.  조수삼의 기록에 의하면 삼월이는 언제나 처녀 복장을 한 채 시장 한가운데서 떡 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입으로 화장품을 구입하여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사용하였다.  50살의 할머니나 다름 없는 삼월이가 처녀처럼 화장을 하고 다닌 것은 조선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남자들을 남편으로 여기는 그녀만의 독특한 가치관에서 반영된 것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눈길을 안 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게 되었으며 그녀와 관련된 민요도 나오게 되었다.   돈이 부족할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부족했던 조선의 노처녀, 노총각과 다르게 삼월이는 직접 스스로 돈을 벌어 연애보다는 자신의 외모 가꾸는데만 인생을 살았는데, 어떻게 보면 조선 시대의 'OL족' 였던 것이다.  OL족이란 소득수준은 중간계층이면서도 소비수준은 최상류층에 맞먹게 행동하는 직장여성을 가리키며 이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한다.   

처녀인데 남편이 많다는 / 동구 밖 삼월이. 

   -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안대회, 한겨레출판, p 149 -  

 

삼월이에 대한 조수삼의 기록은 단 몇 줄 밖에 안 되어서 그녀의 자세한 일대기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삼월이에게도 '노처녀 = 가난한 여자' 라는 콤플렉스를 시달리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경제적 자립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땅에 제대로 박혀버린 노처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 혼자서 상대하기가 버거웠을 터이다. 그녀에 대한 <추재기이>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술에 취한 삼월이가 교수형에 처해져서 목만 덩그러이 매달려 있는 죄수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삼월이의 일화를 통해서 조수삼은 삼월이 특유의 다부진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처녀' 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받아야 하는 조선 사회에 향한 일종의 분노 표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외모만 가꾸는데만 좋아하는 삼월이의 마음 속에도 한 여자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녀의 기이한 행동은 50살 할머니가 되어서 진정 자신을 사랑해준 이성을 찾지 못해서 일어난 히스테리일 수 있겠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장애인 노래꾼, 통영동이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에는 자신의 과오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유일한 혈육인 동생을 찾아 배따라기를 부르면서 전국을 떠도는 나그네가 등장한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서 배따라기를 구슬프게 부르면서 전국을 방황하는 소설 속 나그네처럼 조선 역사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인물이 실제로 살았었다. 

자신의 성과 이름 대신에  스스로 '통영동이' 라고 불렀던 무명씨는 자신이 열 살 때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면서 전국을 떠돌게 되었는데, 무명씨는 생활하는데 온전치 못한 장애인이었다.  전해내려오는 기록에 의하면 통영동이는 두 눈은 실명하였으며 한 쪽 다리를 절고 있는 불구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가 실명된 이유에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밤낮동안 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영동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수많은 노래들을 부르고 구걸 행위를 하였다.

'통영동이' 라는 별칭에는 통영 출신이라는 뜻만 있을 뿐, 그에 대한 기록은 너무 간략할 정도로 자세하지 않다. 그리고 그가 전국을 떠돌아 구걸을 하면서 불렀다는 노래는 온갖 새를 묘사한 <백조요>라는 곡만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가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동생을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통영동이는 김동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 배따라기 ' 나그네처럼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자신만의 구슬픈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가 불렀다던 노래들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쉽지만, 통영동이의 애절한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불우한 인생사를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다.  

  

 

 

  무뚝뚝한 조선을 웃게 만든 유쾌한 예능인들, 길거리 재주꾼  

<추재이재>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길거리 재주꾼들에 대한 묘사가 많다.  앞에서도 언급한 소설 읽어주는 낭독자처럼 도시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보여줌으로써 돈을 벌면서 살아갔다.   

입 하나만으로 온갖 새 종류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구기(口技)의 달인,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하는 재담꾼, 훌륭한 기교를 갖춘 길거리 악기 연주자 등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특기를 직업 삼아 살아갔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정도로 조선의 '인기 스타' 였다. 

요즘과 같으면 그들은 '연예인' 과 유사하다. 입으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조선의 구기 연기인들은 1970년대 성대 모사의 달인이었던 원로 개그맨 남보원이나 연예계에서 가장 다양한 소리를 구사할 줄 안다는 개그맨 정종철를 보는거 같다. 그리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자신들의 말을 귀 기울이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입담을 가진 재담꾼은 대한민국 최고의 MC 유재석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김제동 급인 것이다.

  

 

   ' 조선의 폴 포츠' 달문, 추남 거지에서 조선 최고의 광대가 되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다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는 연예인의 굴곡된 인생 경로 역시 조선 시대의 재주꾼들에게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 양반들과 기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광대 달문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못생긴 외모를 가진 추남 거지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얼마나 못 생겼으면 연암 박지원도 자신의 글에서 자신이 직접 본 달문은 못 생겼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못생긴 외모와 거지라는 천한 신분은 달문의 출세에 커다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겉모습은 추했지만 속은 무척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달문은 주위 거지들과 어울리는 동안 그 당시 유행하던 각종 연희들을 습득하였다.  그래서, 그의 재능에 대한 소문은 길거리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달문은 조선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광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착한 성품과 전국으로 떠도는 소문통에 의해서 달문은 조선 최고의 스타 광대가 된 이유도 특이하지만, 결혼도 못할 법한 못생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최고의 광대가 된 과정 역시 예전에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을 연상하게 한다. 이 두 사람에게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가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회의 선입견을 깨뜨리고 오랫동안 갈고 닦은 실력 하나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광대 달문은 조선의 ' 폴 포츠 ' 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향하는 대중들의 시선과 인기가 너무 과하게 되면 자칫, 자신의 연예인 활동 혹은 인생 전부를 한 순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독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전국 연희 공연을 통해 나름 짭짤한 수입을 거둔 달문은 주위의 권유로 인해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달문은 돈의 달콤한 맛에 맛들어버렸다. 그리고 기방에 자주 드나들어 기생의 치마폭에 둘러싸이는 일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큰 인기에 비해서 그는 그렇게 부유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공연에서 얻은 어마어마한 수익만으로도 달문도 양반층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완전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문에 대한 기록에서는 그가 부유한 생활을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대부분, 그의 공연과 기방에서 노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로 인해서 인기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가십거리 역시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고 심지어 왜곡되어 전해지기 마련이다.  

달문은 생뚱맞게도 역모 사건에 휘말려 체포되었다.  역모를 꾀한 이들이 당시 달문의 스타일을 흉내낸 것도 있었지만, 그들 중의 주모자가 자신이 달문의 동생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관련 없는 달문은 설상가상으로 곤혹을 치러야 했다.  오랜 심문 끝에 달문은 역모 사건에 관련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역모를 일으키게 할 정도로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죄목으로 달문은 귀양(!)을 가게 되었다.  가벼운 형벌이었기에 그의 귀양살이는 짧았으며 풀려난 뒤에도 다시 광대 활동을 했지만,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무슨 이유 때문에 달문이 종적을 감추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간히 전해져 내려오는 달문의 인생은 연예인으로서의 인생사를 보는 거 같기도 하다.  한 순간의 경험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마는 불행한 연예인들처럼 말이다.

 

   

  조선 후기를 장식한 조선 문화의 아웃사이더

이 책에서 소개된 조선의 길거리 재주꾼들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 인용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조수삼의 <추재기이>와 같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으로 통해 전해내려오는 소문들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어서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아서 아쉬운 단점이기도 하다. 평민들을 주체로 한 살아 숨쉬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조선 후기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여전히 조선의 사대부 의식의 잔재는 남아 있었다. 이렇다보니 길거리 재주꾼들은 대중들의 많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례하는 대접은 부족하였으며 역사적 기록에서도 의도적으로 많이 배제되어야만 했다.  

세계적인 명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인생은 가까이서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라고 말하였다.  조금 떨어져 있는 거리를 통해서 이들의 재주를 지켜본 조선 시대 사람들은 무척 즐거운 희극으로 보았지만, 반대로 타인에 의해 기록되어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내밀한 일상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되면 조선 문화의 ' 아웃사이더 ' 로 살아간다는 인생의 서러움과 자조감이 묻어나 있는 비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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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1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좋은 리뷰!

조선 시대 하면, 머랄까 국사 책에서 배운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허구의 대상처럼 느껴지잖아요. 이야기 속 인물같고, 우리같이 자잘한 고민을 했을까 싶구. 그런데 <엽기 조선왕조실록>을 엄청나게 웃으면서도 한층 가까와진 느낌을 받았었답니다.
지금 읽으신 책에 대한 리뷰도 그런 느낌이네요. ^^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서 덜 하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모두 책=지식=(돈 또는 혁명) 등의 공식이 가능했잖아요. 그래서 금했나봐요. 책이란 곧 힘인거잖아요. 아마, 인류가 홀랑 망하고, 몇 안 되는 사람만이 남으면 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희안한 상상 중~)

cyrus 2010-12-17 17:22   좋아요 0 | URL
사실 이런 역사책 리뷰는 지루하기 마련인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고님의 상상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보는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멸망에서 살아남은 인간이 책을 소유하고,
또 그 책은 특권층만의 소유물이 될 수 있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2-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거리가 왕조사나 제도사에 치중한 역사보다 더 재밌지요.어차피 생활사를 모르면 역사는 맹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장터 같은 데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성대보호를 위해 무슨 약을 먹었을까요...

일제시대만 해도 20대 초반이 넘으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고 80년대만 해도 20대 후반에 접어들면 노처녀였죠.요즘은 애기 낳을 수 있는 마지막 연령까지도 노처녀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아무래도 평균수면이 길어질수록 노처녀 연령도 더 느슨해진 것 같아요.환갑도 못넘기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옛날엔 노처녀의 기준이 훨씬 더 엄격했겠지요.

cyrus 2010-12-19 19:37   좋아요 0 | URL
저도 한국사 같은 경우에는 풍속사, 생활사가 더 끌리더군요. 선조들의
삶을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그러고보니 저 역시 노자님의
궁금중에 대해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 책의 저자인 안대회 교수가 옮긴
<추재기이> 역시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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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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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게, 젊은이들 잘 들어 두게나.
 우리 늙은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 러시아 노래, 알렉산드르 뿌쉬낀 <대위의 딸>에서 인용 -  

  

  

  양치기 소년의 네 번째 거짓말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양치기를 하는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사는 마을에는 방목으로 양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마을의 넓은 초원에는 수많은 양들이 모여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소년 역시 수많은 양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마을 내에서 나이가 어린 편이라서 마을사람들의 양까지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우르르 몰려 있는 양들을 지키는 것뿐이었습니다.  양을 잡아 먹기 위해서 종종 마을에 내려오는 늑대 때문이었습니다. 양 한 마리라도 늑대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 마을사람들이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양을 지키기로 하였던 것이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양치기 소년이 초원에 있는 양들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양을 돌보는 날에는 늑대가 내려온 적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년은 점점 늑대에 대한 긴장감이 풀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 떼들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초원 위에서 딴 짓거리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이 일에 대해서도 지겨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소년은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싶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한 끝에  마을사람들에게 늑대가 온다고 거짓 신호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소년은 마을사람들이 있는 밭을 향해 아주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 " 

밭을 갈다가 때마침 멀리서 소년의 외침을 들은 농부들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괭이와 몽둥이를 둘고 양 목장 쪽으로 허겁지겁 올라왔습니다.  늑대를 잡지 않으면 자신들의 양이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년의 외침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목장 쪽으로 왔지만 소년이 말한 늑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들은 아무 일 없다는듯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요. 마을의 농부들은 소년의 외침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이 소년 때문에 속아넘어갔다는 사실에 당황하였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어른들의 멍한 표정에 속으로 낄낄거리면서 웃었습니다.  어른들은 다음부터는 이런 쓸데없는 거짓말이나 하지 말고, 양들이나 잘 지키라고 엄중히 경고만 하고 다시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거짓말 한 마디로 많은 어른들을 속아넘어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거짓말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동을 일으킨지 얼마 안 되어 소년은 또 다시 외쳤습니다.  

  " 늑대가 나타났다!  이번엔 진짜 늑대다! "  

' 늑대 ' 라는 단어에 민감해진 농부들은 어김없이 목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소년이 또 한 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온 모습을 본 소년은 그저 배를 잡고 구르며 웃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소년의 장난에 또 다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다시 한 번 경고를 했습니다.

  " 이번에도 이런 거짓말을 하기만 해봐라. 그랬다간 크게 혼날줄 알아라. "  

분을 삭히지 못한 채 농부들은 다시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소년은 두 번이나 어른들한테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늑대가 왔다' 는 거짓말로 외쳤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거짓말에 재미들린 것이거죠.  소년의 외침을 듣게 된 농부들은 속는 셈 치고 다시 목장으로 냉큼 달려왔지만 소년이 또 거짓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소년에게 세 번이나 속은 농부들은 이번에도 화가 난 채 밭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년은 다음부터는 이런 거짓말은 안 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예전처럼 양 떼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무시무시한 늑대 한 마리가 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번엔 진짜 늑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소년은 생전 처음 보는 늑대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는 양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밭 쪽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 이번엔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 " 

그러나, 농부들은 소년의 외침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있던 밭 일을 계속 했습니다. 

   ' 저 녀석, 또 다시 거짓말을 하고 있네. 우리가 또 속을 줄 알아? '  

 ' 지금 식구 먹여 살리기 바쁜 마당에 저 녀석은 거짓말이나 하고 있다니,, '

하지만, 소년의 네 번째 외침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려 있던 늑대는 배 터지도록 양들을 잡아 먹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소년은 간신히 숨어서 늑대의 포식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배부를 정도로 제대로 포식한 늑대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사라졌으며 소년은 선혈이 낭자한 초원을 보면서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했다고 후회를 하였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밭일을 마무리하고 자신들이 키운 양을 확인하러 농부들은 소년이 지키고 있던 목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죽은 양들의 사체와 핏빛으로 물든 초원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였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농부들에게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세 번의 거짓말을 하고 난 뒤에 얼마 안 가 진짜 늑대가 나타나서 진짜로 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한 거짓말에 대해서 크게 반성하고 있으며 그 전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뒤늦은 사과로는 소년은 잃어버린 신뢰의 이미지를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평생 '거짓말 하는 양치기 소년'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답니다.  

  

 

 

  ' 진보 주치의' 조국, 몸살 앓는 조국(祖國)의 병세를 진단하다  

나는 지금까지 20년 정도를 살면서 ' 정책 ' 이니 ' 진보 ' , ' 보수 ' 니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신문을 즐겨 보기는 하지만,  국정에 관한 기사 부문을 진지하게 읽어본 적도 없었다.  정치인들이 ' 꼴통 보수' 니 ' 빨갱이 좌파 ' 라고 서로 육두문자까지 나오면서 으르렁거리는 걸 보게 되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작태를 보면서 한심하다는듯이 혀를 차고 눈살을 찌푸렸으면서도 나는 한 번도 '진보' 와 '보수' 의 정의 그리고 침을 튀겨가며 주장하는 그들의 생각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왜 싸우는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신문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하기도 하였다. 하루에 배달되는 신문을 꼬박꼬박 읽어도 국내 사회의 흐름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시간만 낭비인 셈이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진지하게 알고 싶었지만 정치적인 색깔이 없는, 입장의 핵심을 제대로 꿰뚫어 쉽고,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무척 간절했다.   

운이 좋게도,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책이 나옴으로써 우리나라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진보집권플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이름이 범상치 않은 조국 서울대 교수와 인터넷뉴스 <오마이뉴스> 소속 기자인 오연호 씨가 만나 지금 현재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동시에 진보가 다시 한 번 정권을 탈환하는(?) 방법에 대해서 대담을 펼치고 있다.  

제목부터 두 사람의 대담의 주제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진보가 대한민국을 집권하기 위해서 준비해야할 플랜(Plan).  그래서 이들의 대담을 읽게 되면 현 정권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해서 진보측 정당에 대해서 정말 노골적으로(?) 까대고 있다.  이전부터 쭉 진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했으며 더 나은 진보를 위해서라면 비판도 서슴치 않았던 조국 교수의 경력이 그의 대담에 묻어나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조국 교수와 오 기자의 대담이 그렇게 딱딱하지가 않았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의 대담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질문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말발은 환자에게 병명에 대해서 요목조목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친철한 의사와 같았다.  오랫동안 병들어 골골거리고 있던 '대한민국'이 앓고 있던 병명을 진단하여 이를 나을 수 있는 치유법과 함께 예방법마저 제시하는 '진보' 주치의였다.  

  

 

  '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이 되어버린 현 정부  

조국 교수는 진보를 먼저 비판하기 전에 현재 정부의 실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 세력이 지지를 받는 MB 정부는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는 중도적인 정책에 대해서 조국 교수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수시로 친서민, 중도실용, 관용과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행동이죠.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친서민이라는 구호 아래 실제 어떠한 정책이 이루어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 <진보집권플랜> 조국 & 오연호, 오마이북, p 30 -

지금까지 시행한 정책 사례들까지 열거하면서 그토록 강조했던 친서민 정책을 정부는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 ‘보금자리 주택’,  ‘미소금융’ , ‘전문계 고교의 교육비 전액지원’  등 지금까지 친서민들을 위한 정책들이 쏟아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보금자리 주택' 의 경우, 서민보다는 건설회사를 위한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의 여론이 생기고 있으며 '미소금융' 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여전히 빈곤과 금융채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정부는 나름 친서민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여러 개 도입을 했지만, 도리어 서민들 입장에서는 정책의 효과를 접하지 못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하나같이 체계적이지도 않고 진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마을사람들' 이 된 진보 세력 

조국 교수는 진보 세력이 허무하게 보수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 점,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차갑게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을 현 정부의 문제점과 결부시켜서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비현실적인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입장에 서 있는 진보 세력이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점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진보 세력 입장에서는 화려하고 달콤했던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 집권은 오히려 독(毒)이 되어버린 것이다. 

진보 집권 시기의 말기였던 2007년 대선 시즌에는 진보 세력이 한 번 더 집권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차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너무 안일하게 낙관적으로 전망하였다. 대선 시즌 도중에 이명박 대통령 후보과 관련된 BBK 비리가 터지게 되면서 진보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희망적인 예상을 뒤엎고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고 말았다.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과 현재 걷고 있는 정당의 노선 등이 부족한 점 투성이고, 실제적이지 않음을 알면서도 너무 착한(?) 진보 세력은 눈꼴사나운 장면을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국민들의 볼멘소리가 나기 시작난다거나 혹은 눈에 보이는 허점이 드러나면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언성만 높은 비난을 할 뿐이었다.  

조국 교수는 현재의 진보 세력은 과거의 김대중, 노무현 집권 세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말로만 진보 집권 세력을 비판을 가하면서도 이를 대응할만한 혁신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소년에게 세 번이나 거짓말에 속아넘었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준 소년을 제대로 꾸짖지 못하고 소또 다시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어떤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마을사람들의 안일한 대응방식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의 병명 : 뭐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신종 복합 질병

 

 희망으로 가득찬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TV에서 전파되는 어느 공익광고의 문구이다. 문구 앞에 있는 '희망으로 가득찬' 이라는 부분을 빼버리고 읽어보자. (아니면 그 부분을 손으로 가리든지...) 

그러면 '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 라는 문구의 반이 남게 된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정말 이상한 나라이다. 국민들은 현 정부 집권 전부터 터진 이명박 후보의 불법비리에 화를 냈으면서도 표심은 이명박 후보로 향했다.  그러고는 집권한 지금, MB 정부에 대해서 한층 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은 여당인 진보 세력으로 민심이 향하기 마련이지만, 진보 세력 역시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들을 추모하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진보 세력은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독재 정권 시절에 이루어낸 민주화운동의 족적을 내세워 대중들에게 어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진보, 자신들의 정치적 어필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대중들을 무턱대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중들이 왜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지, 그리고 대중들이 혹할 수 있는 생각들을 내놓고 있는지 과거의 집권 시절을 비추어 진보 스스로 반성해야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진보집권플랜이라는 나무를 자라기 위한 한 개의 씨앗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진보 세력 스스로 DJ와 盧가 남긴 영광을 쿨하게 이별해야만 한다.  

대중들은 지금 자신들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  어느 누가 가만히 앉아서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는가?   대중들에게 필요하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는 취업이 우선이다.  보수든 진보든 대중들을 위한 좋은 정책을 내세운다고해도 대중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막상 그들의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할거라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과거의 경험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살기에 바쁜데 정치인들의 허무맹랑한 목소리에 들어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양치기 소년이 진실의 목소리를 외쳤음에도 세 번이나 속은 농부들이 소년의 외침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농부의 무관심이 재산이나 다름없던 양들의 희생으로 이어진 것처럼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훗날 좋은 정책에도 큰 호응을 낳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대중들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훌륭한 정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진보 세력이 다시 집권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대중들이 피부로 공감할 수 있는 핵심 정책안을 구상하고 있어야 한다.  

집권 예상 하에 정책 플랜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를 꼭 바꿔야 한다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한다.  그런 간절함이 언젠가는 대중들도 통할 날이 오리라. 

조국 교수는 진보 세력이 다시 집권하게 된다면 이미 처음부터 대중들에게 깊이 확신을 주는 동시에 세력을 공고히 하게 만드는 '제도적 말뚝' 을 박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과 보다 나은 국정 개선을 위한 '제도적 말뚝' 이 필요한 시점인 마당에 지금 진보 세력은 정당의 이익에 눈이 먼 나머지 '주먹' 부터 내밀고 있으니..... 

'진보 주치의'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이 그냥 사회문제 개선을 위해 구상된 희망적인 '시나리오' 로 남게 될지, 아니면 훗날 새로운 집권을 통해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극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 P.S  서문의 '양치기 소년' 이야기는 기본적인 이솝 우화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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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1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 과격한가 봐요.
진보로는 심심해서 거짓말 하는 양치기의 마인드를 바꿔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양도 잃어 보고, 목숨이 위태로워 보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마인드를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cyrus 2010-12-14 21:46   좋아요 0 | URL
현재 집권하고 있는 보수나 권력을 재탈환하려는 진보 입장이 지금
필요한 것이 우리나라 국정의 현실이나 민심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아직 사회 물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터라 나무꾼님 댓글에 대한 답글로는 부족한거 같네요.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맥거핀 2010-12-1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MB정권의 연이은 삽질이 진보를 결집하도록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실제로 진보 정권(그런데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책에서 말하는 '진보 세력'이란 어느 범위를 지칭하는지..)이 집권에 이르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벽이 많아 보입니다. 진보 세력이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안을 구성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유연성에만 휘둘려 핵심을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0-12-14 21:46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조국 교수가 언급하는 진보 세력에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진보 입장의 정당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막 쓰다보니
중요한 정의를 빼먹어버렸네요..^^;;

마녀고양이 2010-12-1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으려 했는데,
양철나무꾼님, 아이리시스님에 이어 사이러스님의 리뷰까지 읽고 나니,
봐야겠어요. 그리고 진보의 순수한 이상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더 현실적일 필요와 영악해질 필요는 있는거죠.
또한 카리스마나 능력이란게 조금 구리다 할지라고,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중도 성향이 맞죠. 우리나라 보수가 엉터리거든요. ^^

cyrus 2010-12-14 21:24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조국 교수도 마고님처럼 현재 진보의 모습을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수가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나 삼성 재벌 특권 같은
문제에 대해서 비난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요. 그래서 지금의 진보는 본의 아니게 보수에게 손을 들어주는
입장이 되었다고 해야되나요? 신자유주의의 장점을 진보 세력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진보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거 같습니다. ^^

다이조부 2010-12-15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프가 이 책을 읽고 했던 감상이 너무 쎄게 다가와서 패스할라고요~

친구도 너까지 굳이 읽을 필요는 없겠다고 하네요 ㅎ

근데 제 친구는 심드렁했던 책인데 알라딘에서 평은 상당히 호의적이네요.
진보 와 보수 프레임 설정에서 국민참여당이 진보로 분류될수 있는가? 의문이 드네요 쩝

cyrus 2010-12-15 09:31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막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알고 있느 걸음마 수준이라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진보와 보수와 관련된 정치 도서를
자주 읽어봐야겠습니다.

이 책에서 조국 교수가 유시민에 대한 평이 흥미로운데,
유시민을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대권주자라고 평가하면서도
단점이라면 남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 유시민 특유의 비판적 태도를
지적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아직도 노무현에 대한 애착이 큰 것도
문제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cyrus 2010-12-15 09:39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혹시 이번 주 토요일 시간 되신다면
제가 소개한 <시학> 강연에 참석해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저 지금,,, 어떻게든 강연회 한 번 가보려고
변명거리를 모색하고 있답니다...^^;;

지금, 알라딘 문화초대석 서재에 가보면 <시학> 강연 참여 댓글다는
곳이 있을 겁니다. 참고로, 강연 참여 댓글을 다신 분들 중에서
펭귄클래식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 분들도 좀 있어서,,,


cyrus 2010-12-15 09:39   좋아요 0 | URL
강연이 끝나고 나면 카페 가입한 분들끼리 다과회도 할 예정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 입장에서는
서먹하실 수 있을겁니다. 강연회 참가하는 이유 역시
그동안 온라인 공간에서 친분을 쌓아왔던 회원분들을
만나기 위한 것도 있거든요.

혹시 강연에 참여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가 올렸던 강연 관련 페이퍼에 꼭 댓글로 남겨주세요.^^

2010-12-1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16 20:48   좋아요 0 | URL
아,, 서울 물가 좀 쌔다고 들었는데,,,
왠만하면 소소한 곳이면 좋을거 같아요^^

다이조부 2010-12-1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만 춥지 않으면 노상 까는것도 나쁘지 않을 듯 ㅋㅋㅋ

아 진짜 나도 큰일이다 ㅎㅎ

cyrus 2010-12-17 00:23   좋아요 0 | URL
아,, 이거 큰일났네요. 이제와서야 안 간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인데요^^;;
 
<바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  

 


 
 

   

  바다와 인간 

김기림의 시에 등장하는 ' 흰 나비 ' 는 바다의 무서움을 모른채 바다에 다가가는 순진하고 연약한 존재이다. 자신이 꿈꾸던 ' 청 무우밭' 인줄 알고 다가가지만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은 채 그냥 돌아오고 만다.  미처 알지 못했던 거대한 바다의 깊은 수심을 경험하고 그 차가운 현실 앞에서 좌절된 꿈을 안고돌아온 지친 ' 나비 ' 의 슬픈 비행은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에 맨 몸으로 뛰어든 인간의 모습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 바다 ' 는 광대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항해를 한 마젤란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유럽인들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게 되면 언젠가는 지구의 끝으로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세이렌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여 잡아먹는 인어(人魚),  거대한 몸집과 수많은 긴 다리로 커다란 배를 습격하여 침몰시키는 크라켄의 전설은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바다에 대한 숙명적인 공포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바다에 대한 공포감에 지배를 당한 인간은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기와 조롱 섞인 말 뒤에는 항해가들의 업적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항해에 성공한 콜럼버스를 시기했던 당대 사람들처럼 말이다. 인간에게는 원초적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차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펭귄 한 마리가 바다에 뛰어들면 또 다른 펭귄 무리들도 역시 바다에 같이 뛰어드는 것처럼  바다의 세계를 경험한 모험가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인간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직접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황금과 보석을 가득한 대륙을 찾기 위해서는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다리를 건너가야만 하였다. 수많은 항해가들이 모험에 대한 로망을 품은 채 바다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지만, 깊은 수심에 빠지지 않은 채 살아 돌아온 이는 미지수였다. 바다 위에는 그들이 무서워하던 인어와 크라켄은 없었지만, 무시무시한 파도와 전염병은 많은 항해가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목숨을 건 이 미지수의 항해가들이 남긴 바다의 흔적들은 서양문명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고 광대한 상업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제, 바다는 무시무시한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다. 문명 근대화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 푸른 길' 이었다. 

    

 

  모네의 점묘법처럼 묘사한 미슐레의 바다  

마음만 먹으면 배를 타고 수만 km나 떨어진 곳으로 갈 수 있게 된 인류는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바다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근대화로 진입할수록 유럽인들은 바다의 세계 역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고도의 지능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만은 달랐다. 그는 직접 바다를 거닐면서 바다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바다의 새로운 면모들을 발견하게 된다. 미슐레는 단순히 '바다' 를 전체적인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다.  

바다에 대한 그의 관찰은 현미경을 살펴보듯이 세밀하며 집요하기까지 하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붓으로 캔버스에 하나씩하나씩 점을 찍어 하나의 형상을 그려내듯이, 미슐레가 바라보고 묘사하는 바다는 바다에서 가장 작은 생물인 해조류부터 제일 큰 고래에 대한 기록을 통해 ' 바다 ' 라는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미슐레에게 바다는 해류(海流), 물고기, 조개, 해파리, 산호, 고래 라는 개성 있는 생물의 원소로 이루어진 거대한 자연의 집합체인 것이다.

  

 

  자연보호법의 표본을 제시하다 

이런 야만 상태를 대신할 문명 상태를 위해 여러 나라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인간이 심사숙고하여 자원을 더는 낭비하지 않도록,  그렇게 스스로를 해치지 않도록 말이다. 프랑스, 영국,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게 ' 바다의 권리 ' 신장 운동에 동참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 <바다> 쥘 미슐레, p 297 -  

미슐레는 바다 덕분에 인류의 발전과 종족 보존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가 인류에게 번영의 풍족감을 가져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바다를 천시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비판하기도 한다.  바다를 천시하는 인간의 경향은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무분별하게 잡아들이는 채집 행위로 이어졌다.  미슐레가 살았던 그 당시 근대 유럽이나 지금이나 바다의 생물들을 인류의 생활에 필요한 '자원' 으로 잡아들이고 있다. 철갑상어의 알이 값비싼 요리재료로 사용하다보니 철갑상어가 멸종 위기를 처하게 되었으며 국제 단체에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름을 얻기 위해서 여전히 고래들를 포획하고 있다.      

미슐레는 그 당시, 채집꾼들 사이에서 불 붙기 시작하였던 바다 생물 포획을 '야만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바다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바다의 권리' 확립의 중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서구적 근대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슐레의 '바다' 

하지만, 미슐레의 '바다 예찬'을 환경운동과 자연중심주의를 주창한 ' 해양계 ' 의 H.D. 소로우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여주지는 못할 거 같다.  미슐레의 ' 바다의 권리 ' 는 자연보호 목적보다는 인류 문명의 긍정적인 미래를 위한 일시적인 방편으로 주장하고 있다. 

   

야만적, 맹목적 어획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더는 잡히지 않을 만큼 죽이고 있다. 어린놈까지 무익하게 살육하고 있다. 1년 뒤면 훌륭한 식량이 될 텐데, 그 한 마리의 죽음으로 수많은 놈을 죽이는 남획의 결과를 초래한다.  

  - p 297 -   

  

어떤 종도 번식의 과잉으로 위협받는 적은 없다. 종교적으로 그 순간을 존중해야 한다. 나중에 죽더라도 얼마나 좋은 순간인가!  그들을 잡아야 한다. 잡자! 하지만 우선은 살려두어야 한다.  

  - p 299 -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남성 중심주의적 입장이 살짝 비춰지기도 한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대한 공을 남성들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사회사 저작 시리즈인 <여성의 역사>와 <여성의 삶>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남자는 그 자신이 예술품이요, 인간적 예술이다.  (중략)   세계를 위해 땀 흘리고 봉사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힘을 하느님의 거대한 수영장에서 다시 취하는, 발명가, 창작가, 제조가인 이 남자들을, 이 지상의 엘리트를 과연 보게 될까!  모든 인류가 그 혜택을 누린다.  인류는 남자들의 어마어마한 수고로 꽃을 피운다.  인류는 남자들에게 그 모든 기쁨과 아름다움과 이성을 빚지고 있다. 

  - p 363~ 364 - 

 

자본주의적 근대화로 가고 있었던 유럽 사회에 살았던 미슐레 역시 인류의 진보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진보와 문명을 강조하는 근대적인 사회 속에서도 가려질뻔한 자연환경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다.  근대성이라는 넓은 모래밭 속에서 미슐레는 '바다' 라는 아무도 찾지 못했던, 작고 고귀한 진주를 혼자서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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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1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자의 이름이 저랑 똑같네요 ㅋ

다이조부 2010-12-1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장은 근데 트위터 안해요? ㅎ

cyrus 2010-12-13 12:25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꾸랑님 성함과 비슷하네요ㅎㅎ

처음에 군 제대하고나서 관심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아직 구입하지 못했고, 관리하기가 여건상 안될꺼 같아서
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게 된다면 트윗질 좀 해보려고요^^


다이조부 2010-12-1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입은 작년에 하고, 활동은 시작한지 얼마 안됬는데 저는 so so 에요~

보통 트위터에 관한 평이 극단적으로 호응과 야유로 갈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딱히 의미부여하게 되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그냥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해요 ㅋ

꽃도둑 2010-12-2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겨우 읽기를 마쳤는데 아주 살짝 실망했어요...
기대를 너무 했어나봐요, 사이러스님 서평 읽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서평이 종합선물세트 같아요. 저는 그 책 내용에만 집중하는 편인데(종합적으로 폭 넓게 쓰려면 자료 조사에서부터 전에 읽었던 관련 도서 뒤지기 등등 해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 정말 대단해요. 암튼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오랜만에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도 반가웠구요...

cyrus 2010-12-22 18: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왜 도덕인가?>가 진도가 안 나가서 애먹고 있습니다.
기한 내에게 글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실 저도 <바다>를
읽고나서 실망했었답니다. 바다에 대한 작가의 묘사나 초반에 수록된
바다 그림은 좋았는데,, 후반부에 바다 문명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살짝 김이 빠지더라고요.^^;;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요일의 즐거움, <무한도전>과 <세.바.퀴>

 

  

 

평소에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무한도전><세.바.퀴>다.  (공교롭게도 같은 M 방송사이다)   

내가 <무한도전>과 <세.바.퀴>를 즐겨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 두 프로그램에서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연예인의 입담과 유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찮은'  박명수 옹 때문에 시청률이 저조하든 말든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단 한 가지 이유이다. (<세.바.퀴>에서는 '조자룡' 조혜련을 좋아한다. 그녀의 입에서 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배꼽을 빠지게 한다) 

박명수는 '호통 개그' 로 스타덤에 오른 코미디언이다. 일반적으로 연예인은 방송에 같이 출연하는 동료 연예인들 앞에서 예의를 보여주지만 박명수만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막말' 작렬은 물론이고, 고래고래 호통을 치는 까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평소의 방송 이미지가 ' 악마의 아들 ' 이라는 못된 별명을 가지게 되었으며 몇 달 전에는 '부당거래' 할 것 같은 연예인 1위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예의에 어긋나 보이는 행동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박명수의 개그에 웃기도 하며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그의 이런 유머가 비호감으로 느껴져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박명수식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나 역시 박명수의 개그를 무척 좋아한다.  괜히 다른 연예인들에게 무섭게 호통을 치면서 허세를 부리지만, 자기 입으로 했던 말과 다르게 어수룩한 행동을 한다. 호통을 치고 있는데 말을 더듬거리기도 하며 무식한 소리 들을 정도로 잘못된 단어들도 내뱉고 한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별명 중에는 '하찮은' 이라는 것이 있다. 방송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하찮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적인 모습으로 일관되는 그의 개그 코드를 재미있어 한다.  

  

 

  MC 유가 없으면 웃기지 못하는 하찮은  

그런데, '박명수' 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게 된 또 다른 이유에는 '유재석' 이라는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박명수가 확실한 버라이어티 방송인으로 뜰 수 있었던 시기의 프로그램이 <무한도전>과 한 때 출연했던 <놀러와>와 <X맨>이었고, 그 때 같이 출연한 유재석과의 아웅다퉁하는 모습은 박명수에게 ' 무한도전 2인자 ' 라는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게 하여 박명수라는 존재를 부각시켜주었다. <무한도전> 외에도 <해피 투게더> 역시 '유재석-박명수 콤비' 덕분에 높은 시청률이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박명수는 유재석이 출연하지 않는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의 예능감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한창 그의 인기가 승승장구했을 때, 단독 MC로써 방송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저조한 시청률 성적만 나온 채 조기종영해야만 했다.  최근에는 <뜨거운 형제> 이외에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2개에 출연하고 있어서 뒤늦게나마 그의 예능감이 폭발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전만해도 박명수는 '2인자' 라는 별명답게 유재석에게 가려진 연예인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재석만 없으면 결코 뜨지 못하는 연예인이라는 (본인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소리일 수 있겠다) 좋지 못하는 평가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박명수의 개그가 활짝 필 수 있는 근원에는 유재석의 존재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예가 작년에 <세.바.퀴>에 출연했던 그의 방송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 때는 같은 <무한도전> 출연동료인 정준하, 정형돈과 함께 출연하였다. 박명수는 지금까지도 밀고 있는 자신의 ' 호통+ 막말 ' 개그를 <세.바.퀴> 스튜디오에도 펼쳤다.  그런데, <세.바.퀴>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연예인들에게는 박명수의 개그가 먹히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박명수의 호통 개그가 쉽게 웃음으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명수는 자신의 방송 선배인 이경실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었다.  

박명수는 선배 이경실 앞에서 X가지 없으며 센 척하는 후배 이미지로 웃음을 유도하였지만 이경실은 도리어 후배 박명수에게 정색을 하며 꾸짖는 애드리브를 하였다.  이 때 방송에서 보였던 이결싱과 박명수의 모습이 실제인지 아니면 웃기기 위한 연출인지 모르겠지만, 박명수는 이경실의 개그를 받아치기가 어렵다고 스스로 속내를 밝혔다.  <무한도전>의 유재석 같은 경우에는 박명수의 호통과 막말을 부드럽게 다그쳤지만 이경실은 유재석과는 정반대로 강인한 느낌이 드는 개그로 응수하였다. 이렇다보니, 이경실-박명수의 대화는 재미있는 만담이라기보다는 실제로 서로에게 감정 상하는 대화로 끝나고 말았다. <무한도전>에서는 ' 악마의 아들 ' 로 방송 분량을 확보하던 그가 <세.바.퀴>에서는 정말 '하찮은' 박명수가 되어버려서 TV에서 그의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이 장면을 TV로 시청하고 있던 나 역시 두 코미디언의 만담이 재미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상대방이 박명수처럼 행동을 하게 된다면 재미있어 하기보다는 오히려 빈정이 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박명수는 방송에서는 바르지 못한 행동으로는 웃길 수 있는 연예인이다. 그리고 웃기기 위해서는 유재석은 그의 개그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존재이다.  

   

 

  진화심리학으로 풀어낸 웃음의 유래  

전중환이 펴낸 <오래된 연장통>은 일상적인 행동과 생활에서 발견한 진화심리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전공하는 유일한 학자이기도 하며 권위 있는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알라딘 검색창에 ' 데이비드 버스 ' 를 검색하면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을 볼 수 있다.  한번쯤은 눈 여겨 본 책일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의 대표적인 저서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는 최근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저작물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심리를 찰스 다윈의 진화 이론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진화심리학 이론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은 생물 개체들 간의 생존경쟁 속에서 자연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생물 개체가 오래 생존하고 종족을 번영한다는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론의 기본적인 이론이다.

이 책에는 남녀의 서로 다른 심리와 행동, 여성이 쇼핑을 좋아하는 이유, 사람들이 육식을 즐기는 이유, 동성애의 기원 등 일상 속에 숨겨진 진화심리학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웃음' 과 관련된 진화심리학 이론을 통해서 진화심리학적인 시선으로 웃음의 기원과 웃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웃음의 유래는 인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확인된다. 수백만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날짐승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종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남자들은 짐승들을 사냥해야 했는데 운이 없으면 짐승들로부터 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리고 동굴에 터를 잡아 정착 생활을 한다고해도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날짐승의 출현과 그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질병이 조상들의 삶을 위협하였다. 이들이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갔는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들에게는 이런 삶은 일상적인 삶의 일부일뿐이다. 그들도 살다가 편안한 휴식을 취할 때도 있을 것이다. 휴식은 이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었으며 안정의 즐거움을 웃음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웃음이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긍정적인 약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웃기 시작하면 자신도 따라 웃게 되는 것이 웃음의 전염적인 특징이다. 상대방이 웃는 것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라 웃게 된다.   

결국, 웃음은 즐겁고 긍정적인 정서를 전달해주는 사회적 신호로 진화하였다. 처음에는 휴식을 취할 때 내는 이해불가한 소리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감정을 즐겁게 해주는 좋은 신호로 진화한 것이다. 

 

 

  박명수의 호통과 막말을 보면서 사람들이 웃는 이유 

사람들이 웃는 이유는 즐겁고 유쾌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 진짜 ' 웃음과 ' 가짜' 웃음으로 구별하는 과학 이론이 있다.   

TV 속에서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개그를 보면서 ' 너무 웃기다 ' . ' 재미있다 ' 라는 감정이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되는데, 동시에 얼굴의 입 주변이나 눈가의 근육에 변화를 주게 된다.  이를 '뒤셴 웃음' 이라고 학계에서 부르고 있는데 이 과학적 현상을 발견한 생리학자의 이름에 따온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뇌에서 발현되는 즐거운 감정 때문에 웃게 되는 뒤셴 웃음이 '진짜 웃음' 인 것이다.  반대로 웃기지도 않는데 억지로 웃는다거나 속으로는 화가 나지만 이미지상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하는 웃음은 '비(非) 뒤셴 웃음' 이라고 한다.  즉, ' 억지' , ' 가짜 ' 웃음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웃긴 개그맨이 나온다는 것만으로 뒤셴 웃음이 유발 되게 하는 상황은 아니다. 서로 모순된 관계의 상황 역시 사람들에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막말과 호통을 일삼는 까칠한 이미지이지만, 유재석은 박명수과 정반대로 방송 진행을 능숙하게 하며 '국민 MC'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들로부터 호감을 주는 바른 이미지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는 유재석의 진행에 대해 시기하면서 막말을 퍼붓는다. 하지만 유재석은 박명수의 말과 행동에 대해 꾸짖어 지적하기보다는 항상 웃으면서 진정시킨다.  만약. 유재석이 이경실처럼 웃지도 않은 채 지적하였다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들의 만담을 재미있어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세.바.퀴>에서의 이경실과 박명수의 만담을 보는 것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웃으면서 나긋이 지적하는 유재석의 진행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이들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박명수의 막말과 호통이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즉, 원래는 정색하면서 꾸짖어야 할 상황을 유재석은 반대로 웃으면서 지적하여 시청자가 예상하고 있는 상황을 비틀어서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웃음의 중요성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웃음이 나오는 근원적인 유래와 진화 과정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수많은 이론들 중에서 ' 성선택설 ' 이라는 것이 있다. 유머와 웃음은 성선택에 의해서 진화되었다는 내용의 가설이다. 쉽게 말하자면,  여성은 유머 센스가 넘치는 남성을 선택하여 종족을 보존한다는 내용이다.  남성에게 '유머' 란 여성에게 과시를 하면서 유혹할 수 있는 짝짓기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비록 가설이지만 성선택설은 실제 사례에서 입증이 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성은 자신을 웃기게 해주는 남성을 배우자로 선호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남성은 여성의 입장과 반대이다. 남성은 자신의 유머에 대해 바로 반응하고 웃어주는 여성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개그맨의 유머에 웃음을 잘 떠뜨리게 되고 일부 여성들이 선호하는 이상형에도 유머 센스가 있는 남성형이 있다.  얼굴이 그리 잘 생기지 않은 유재석이 왜 대한민국 호감 연예인에다가 신랑감 1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남성은 상대방의 유머와 개그에도 잘 웃지 않는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보다 웃음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성선택설은 가설일 뿐이다. 웃음은 짝짓기를 위한 수단만으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편안한 감정을 만들게 하는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선택설 이론 뒤에는 남녀차별적 시선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남성은 여성보다 유머 센스라는 유전적 특질을 가지고 있는 월등한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여성 코미디언, 개그우먼이 브라운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남성들 중에서도 남을 잘 웃기는 여성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 남성 배우자와 결혼하는 개그우먼과 여성 코미디언이 있다. (조혜련, 박경림)   

웃음의 진화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들이 많이 있지만 몇 몇 이론의 내용들은 우리 일상 생활이 방식을 통해서 그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결국, 웃음은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라는 말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웃음이 많은 집은 복이 온다는 뜻이다. 뜻을 더 깊게 풀이하자면 웃음이 많은 사람은 복이 많이 들어오고 결국에는 남들보다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은 진화심리학으로 밝혀지기 전에 훨씬 전부터 웃음의 진화를 이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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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1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연장통은 책 내용 보다도 표지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드문 경우에요~
무진장 관심 많은 분야인 예능과 관련된 리뷰를 썼네요.ㅋ 평소보다 10배는 눈을 부라리고
보게 되네요.ㅋㅋ 무도 는 그럭저럭 좋지만, 저는 세바퀴는 도저히 못 보겠어요. 김구라의
열혈팬을로 의리로 보고 싶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힘들더라구요 ㅎㅎ
여자..섹스..저자의 이름이 데이빗 버스 군요. 한 번 들으면 잊혀지기 쉽지 않은데요 ㅋ

cyrus 2010-12-10 22:5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서 이번 글의 댓글에는 길게 쓰셨군요.
제 친구 같은 경우에는 세바퀴가 아저씨, 아줌마들이 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거 같습니다. 제대로 보게 되면 꼭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뭐,, 사람마다 좋아하는 유머의 취향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저희 어머니도 세바퀴 열혈 시청자이신데 평소 이미지와는 다르게
조권의 깝을 떨 때 무척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군대 가지 전에는
그런거 좋아하는 분이 아니었는데,,, ^^;;

아,, 그리고 참고로 이 책은 진화심리학 이론을 일상 생활을 통해 풀어내서
약간은 전문적인 내용들로 채우고 있지 않답니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심도 있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덮고 데이비드 버스나 다른 진화심리학자들의 책을 읽으라고 경고(?)하고 있답니다.

사실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진화심리학 관련 책을 리스트로 작성하려고 했었는데 제가 이제 일 하러 가야되서 내일 쯤이나 리스트를 올려야겠네요. ^^;;


다이조부 2010-12-11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바퀴가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될줄은 몰랐어요.

뻔한 구성에 고만고만한 출연자들... 한달에 1번 봐도 그 나물에 그 밥 같은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라는 말이죠~ 세바퀴가 나쁜 저질 프로 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시시하고 안일하다는 생각은 종종 들었는데, 그러니까 그걸 보고 난 다음에는
기분이 나빠지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면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만 스쳐 지나가서요 ㅋ

cyrus 2010-12-11 16:14   좋아요 0 | URL
저도요ㅎㅎ
군대에 있을 때는 몰랐었는데, 전역하고 나서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부모님이 재미있게
보시길래 저도 한 번 보게 되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꾸랑님 말씀대로 이제는 식상한 면이 있긴 있지만,,,
중년층분들에게는 젋은 10대 연예인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세바퀴의 특성 때문에 즐겨 보는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1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경실 아줌마가 좀 무섭게 생겨서...박명수와 이경실은 둘 다 전북이 고향이라 친할 것 같은데도 어쩐지 이경실 기에 박명수가 눌리는 것 같아요.


cyrus 2010-12-12 00:04   좋아요 0 | URL
네, TV 속 이경실이 좀 기가 세 보이긴 하죠. ㅎㅎ
이경실이랑 박명수랑 데뷔 년도 차이는 10년도 채
안 된걸로 알고 있고,,, 며칠전에 방송에서 자신에게 버릇 없이
굴었다는 연예인 후배에 대한 소식이 나온 걸로 봐서는
연예계에서 '경력'이 주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거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2-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선택설이라고 시작하셔서,깜짝 놀랐어요.
진화심리학은 성선택설이죠~

데니얼 대빗이랑 제프리 밀러는 좀 다른 시각에서 얘기하는 데,이것도 흥미로워요~
암튼 전중환에서 웃음 코드를 추려내시다니,,,멋지십니다~^^

cyrus 2010-12-13 12:48   좋아요 0 | URL
사실, 자연선택설이랑 성선택설의 차이가 궁금하기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자가 진화심리학을 설명하는 시작 부분에서
자연선택설의 개념에 대해서 언급하다가, 중반부에 성선택설이
자연선택설의 일종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애매하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서문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자신의 책보다는 제프리 밀러나 데이비드 버스가 쓴 책을
읽어라고 하더군요. ^^

마녀고양이 2010-12-13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네요. 흥미진진합니다.

진화심리학 재미있죠?
특히 자신의 유전자 전달을 위해, 성 선택을 하는 부분... 참 생각 건덕지가 많죠.
그런데 유머가 배우자 선택의 한 요소가 된다는 가설은 첨 들어보네요?
여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줄 남성이 필요한데,
유머는 바람둥이의 요소가 될거 같단 말이죠. 흠. 조금 더 열심히 생각해보겠습니다!


cyrus 2010-12-13 23:28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면서 유머의 진화 가설에 대해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남녀 코미디언끼리 결혼하고 잘 사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_-
어쨌든 진화심리학은 흥미로운 학문인거 같습니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 - 성장을 위한 철학 에세이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영원히 풀 수가 없었던 시험문제

 

나는 어느 학교의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칠판, 그리고 회색빛 교탁과 수많은 책상들. 

확실하지는 않지만 몇 년 전에 졸업한 고등학교 교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고등학교 교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걸까? 

갑자기 교실에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한 손에는 하얀 종이 뭉치가 들려져 있었다.  

선생님은 하얀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면서 

아무 말 없이 하얀 분필을 잡아 칠판에 크게 ' 시험 ' 이라고 썼다. 

그러고는 맨 앞에 있는 학생에게 자신이 가져온 하얀 종이를 전달하였다.  

 

' 아 . . . 이것은 시험인가 보다. '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도 갑자기 이 곳에 있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아무런 예고 없이 시험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두려움이 엄습 해왔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시험지 한 장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샤프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황이면서도 

이상하게도 나는 어떻게든 책상 위에 놓인 시험지의 문제를 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시험지에는 알아보기 힘든 문자와 기호들이 뒤죽박죽 나열되어 있었다.  

도저히 풀 수가 없는 문제들이었다.  

 

시험지가 잘못 인쇄된 줄 알고 나는 손을 번쩍 들었지만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시험을 치고 있는 학생들을 멀뚱히 쳐다볼 뿐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의 행동.  

나는 어떻게든 시험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험시간임에도 소리를 질렀다.  

 

" 이거 시험지가 잘못 나왔어요.  빨리 다른 시험지 주세요.  

지금 시험문제 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 

 

소리라도 질러봤지만 여전히 선생님은 팔짱만 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부터 시험문제를 풀고 있던 학생들 몇 몇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외친 소리가 그들의 귀에는 들렸는가보다. 

 

그런데,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의 얼굴들이 무척 낯이 익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녀석들인 것이었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만나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니 , , ,   

 

친숙한 얼굴들을 본 순간,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시험감독인 선생님이고 뭐고, 자리에 벌떡 일어나 친구 한 명 곁으로 다가갔다.  

중학교 때 내신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으며  

나와 같은 반이 되면서 친했던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가 풀고 있는 시험지를 봤다. 

하지만, 그 친구가 풀고 있는 시험지 역시 오류투성이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내 눈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기호로 나열된  

시험문제를 그 친구는 일말의 생각도 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친구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시험문제 푸는데 여념이 없었다.

시험을 치고 있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이나  

교실 속에 있는 이들은 나의 말, 아니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딩동, 딩동, 딩동 

  갑자기 교실 안에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종소리가 울러 퍼졌다. 

이는 분명 시험시간이 마감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종소리였다. 

선생님은 종소리가 나오자마자  

학생들이 풀고 있던 시험지를 재빠르게 거둬들이고 있었다.  

 

빈 자리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아무것도 풀지 못한 시험지마저도 . . .  

나는 그런 모습을 서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었다.  

  

 

  갑자기 재발한 마음의 상처      

내년에 복학을 앞두고 있는, 요즘 잠을 자게 되면 가끔씩 꾸게 되는 꿈이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밤과 낮의 생활이 반대인 지금, 아침에 퇴근하여 집에 오게 되면 낮에는 잠만 자게 된다.  그런데 낮잠에도 기억이 또렷한 꿈을 꿀 수 있는가 보다.  잠을 깨고 난 뒤에도 꿈 속 장면들이 기억이 날 정도 꾼 것은 이례적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요즘에는 자주 예전에 다녔던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 시험을 보는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항상 시험문제들을 풀지 못한 채 꿈에서 깨고 만다. 자다가 꿈에서 깨고 나면 시험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기게 되지만 얼마 안 가 ' 아, 이것은 꿈이구나 ' 하고 뒤늦게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도 졸업한 상태인데도 꿈 속 고등학교 시험문제에 얽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나 자신 스스로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가볍게 웃음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꿈이 아니었다. 꿈은 살아가면서 겪어가는 경험들, 그리고 느끼게 되는 감정과 의식들을 상징, 형상화되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한 일이 꿈에 나타나는 현상을 심리학적 용어로 타게스레스트(Tagesrest)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경험과 감정, 의식에 대한 억압적 욕망이나 불안이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 꿈이라고 정의하였다. 자의적으로 꿈을 풀이해본다면 스스로 감추고 억압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불안정한 감정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년이 지나서야 꿈 속에서나마 등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 죽어라 공부했었다. 특히 고등학교 3년은 오직 '수능' 이라는 목표를 내다보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10분이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도 나는 책상에 앉아서 <수학의 정석>에 있는 문제들을 풀곤 하였다. 수학은 다른 과목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유독 성적이 썩 좋게 나오지 못했던 과목이였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몇 몇 주위 친구들의 시선에는 나의 이런 모습이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 때 친구들의 농담이 생각이 난다.  

  " <수학의 정석> 책만 보다가는 진짜 책에 구멍 나겠다. "  

  " 공부하는 자세랑 시간만큼은 정말 넌 전교 1등감이다. "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 아, 나도 고등학생 때 너처럼 그렇게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대학 갈 수 있었을텐데, , , "   

성적은 공부의 양만큼 좋게 나오지 못했지만, 모든 학생들은 그런 공부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은근히 시기를 하기도 했었다. 좋은 의도인지 나쁜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나의 공부하는 모습을 칭찬 일색으로 치켜세우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꼭 이런 말도 했었다.

  "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니야?  그러다가 쓰러지겠다. "   

그들이 친구로써 나를 위해 진심어린 말을 했었지만 듣는 나를 속으로는 무척 가슴이 쓰리듯이 언짢았다.  ' 너네들이 뭘 안다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야.'  

그들의 칭찬과 위로가 죽도록 공부해도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를 은근히 비웃는거 같았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살갑게 물어보곤 했었지만 마음 속에 조금씩 열등감이 쌓아져 갔다.  처음에는 성적 결과에 대한 열등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는 존재에 대한 열등감으로 커져만 갔다.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이성 친구를 사귀는 '멀티 플레이어' 친구를 보면 무척 부럽기도 하였다. 

요즘 학교 교실에 있는 꿈을 꾸고나니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했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에 묵혀왔던 열등감과 분노가 나의 심기를 툭툭 건드렸던 것이다. 사춘기 시절도 지났건만 별 이상한 내용의 꿈 하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니 , , , 

  

 

  열일곱살이 된 철학교사 안광복

이런 불안의 나날을 겪고 있는 속에 때마침 철학교사 안광복 씨가 쓴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라는 얇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의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꿨던 꿈을 이야기해주면서 자신의 학창시절동안 겪은 사춘기로서 형성하게 되는 열등감이나 그 때의 고민들을 거리낌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학창시절에 자신보다 잘난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생겼으며 그 때의 괴로움을 치유하지 못했다고 저자 스스스로 밝히고 있다.  마음 속에 생긴 감정의 상처들을 독자들 앞에서 고백하기기 쉽지 않았을텐데 어린 독자들을 위해서 서슴없이 고백하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의 말할 수 없는 속내들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 한번쯤 마주치게 되는  ' 돈, 열등감, 사랑, 인생, 가치관 ' 등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책의 부제를 ' 성장을 위한 철학 에세이' 라고 하는 것을 보면 무척 딱딱하고 어렵게 여기기 쉽상이다.  

하지만, 안광복 씨의 글은 어렵게 쓰지 않았으며 그렇게 '철학적' 이지가 않았다. 학창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인용하여 저자 자신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사춘기의 고민거리와 각종 문제들을 함께 공유하고 성찰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마흔 살의 안광복은 23년 전으로 돌아가 열일곱살의 안광복이 되어 있었다. 철학교사답게 철학자들의 지혜를 빌려 청소년 시절에 겪게 되는 고민과 생각의 문제들을 스스로 성찰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고 있다. 

 

 

  열등감을 열등감으로 극복하기  

열등감에 대한 그의 입장과 극복 방안은 독특하다. 열등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의 독을 오히려 인생의 성장을 위한 약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열등감이 크면 클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에 그의 주장이 깊게 와닿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3년동안 줄곧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도 이에 비례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음을 물론이고 오히려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짓눌려 스스로 괴롭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곧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열등감의 원인에는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와 남이 자신보다 잘하면 생기는 질투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나면 주위 시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못한 상대방 역시 나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게 되고 미워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생기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순간적인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나쁜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난 과거의 열등감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할 현재의 삶에 발목을 잡고 있는 부정적인 요인이다.

 

  

  성숙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학창시절에 생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온 나로써 2010년이 저물어가고 있는 끝자락에서야 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고 무척 고마웠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나도 열일곱살이 되어 있었다. 저자가 풀어내는 학창시절의 경험들이 나 역시 겪어본 일이었기 무척 공감이 갔었다.   

피부의 상처나 염증을 오래 방치하게 되면 피부조직이 썩어 누런 고름이 생기게 된다. 과거의 쓰라린 감정의 상처 역시 그래도 놔두게 되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의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괴로움에 살아야하며 30대,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 성숙되지 못한 채 정서의 성장은 저하될 것이다. 몸은 어른이며서도 마음은 청소년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저자는 어른 독자들에게 철학적인 물음을 통해서 스스로 10대와 '직면' 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이게 저자가 권하고 있는 '직면' 의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동안 마음 속에 굳어져 있었던 학창시절의 열등감 응어리를 감상문에서 낱낱이 밝혔다.  

글을 쓰고나니 책을 다 읽고 난 뒤보다 속이 후련하다. 이번 글쓰기는 내 마음 속에 숨어있던 못된 감정들의 기(氣)를 풀어 없애는 살풀이가 되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시험지를 푸는 꿈을 꾸지 않게 된다면 이번 살풀이는 성공인 것이다.  과연 성찰적(?) 살풀이가 먹혔을지 앞으로 잠 잘 때 두고봐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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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2-0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기회되시면 <스무살의 철학>도 읽어 보세요.
문장도 좋고, 생각할 꺼리를 주기도 하죠.
17세. 전 그때 뭐했을까요?
학교 안 가고 독학으로 문리를 깨우치고 싶어했었다능...ㅋㅋ

cyrus 2010-12-08 15:00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텔라님이 소개하신 책 내용이
무척 궁금합니다^^

2010-12-08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08 15:01   좋아요 0 | URL
일단 며칠 정도는 두고봐야할거 같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오래 잠을 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름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12-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가 읽어봐야할 책이군요.
열등감.. 참 심했어요, 저.

사이러스님 복학을 앞두고 계시는군요. 오늘 글 너무 이뻤어요.
사실... 요즘 사이러스님의 서재 글을 보면, 보석 하나 발견한 기분으로 즐겁습니다.

사이러스님 시험지의 문제 묘사를 보면서,
왜 이렇게 인생 살이와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합니다.
정말이지 모를 문자들과 정리되지 않는 상념들, 체계들, 정답이 없는 그런 문제들.
차라리.. 답과 목표가 확실한 고교 학창시절이 더 행복한거 같다 싶으면서도
다시 가라면 가기 싫은. ^^.
역시 나의 선택이 보장된 어른 시절이 나은거 같기두 해요, 더 어려운 길이긴 하지만.

복학하시면, 이제 앞일에 대해 진정 고민하시겠네요.
우리...... 천천히 가요. 한번씩 뒤두 돌아보고 주위도 돌아보면서.
그리고 오늘처럼 눈오는 하늘도 즐기며. ^^

cyrus 2010-12-08 15:05   좋아요 0 | URL
복학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꿈을 꾸고나니
내년 학업 관리뿐만 아니라 적성 준비까지 고민들이 많네요.
하지만 마고님의 댓글을 마음에 깊이 새겨 넣어야겠습니다.
오늘 마고님 댓글도 이뻤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12-08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08 15:12   좋아요 0 | URL
오탈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탈자 지적하신 분들 덕분에
저는 우리말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은데요.^^
나름 올바르게 쓸려고 주의를 하게 되지만 막상 쓰게 되면 쉽지가 않네요.
사실 저도 가끔 예전에 썼던 글이나 다른 알라디너의 댓글을 보게 되면,
간혹 옥의 티가 있어서 혼자 속으로 부끄러워하곤 했었는데,
다음부터는 맞춤법에 유의해야겠습니다.^^

굿바이 2010-12-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살의 인생론,이라니.... 잠깐 10대의 저를 복기해보니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일은 죽는 날까지 숙제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영 극복은 힘들 것 같고, 그저 잘 달래면서 살아가는 것이 쉬울 듯 싶어서 요즘은 살살 달래면서 살고 있습니다.
좋은 책 정보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0-12-08 17:0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고나니 감정을 추스르고 있답니다. 굿바이님 말씀대로
완전한 극복은 힘들거 같고, 나쁜 마음이 재발하면 다시 한 번 이런 책들을
읽어보고 좋은 문장들을 곱씹어봐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의 순수한 마음은 없어지고 그 미성숙함만 남으니 나이는 먹어도 미성숙한 인간이란 정말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내가 못한 것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심리가 그런 경우지요.

cyrus 2010-12-08 17:07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미성숙한 인간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점을
자식들로부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