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물고기 - 연어 이야기
고형렬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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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고향은 그리운 서정의 공간이요,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풍요로운 서사의 공간이다. 동시에 언젠가는 죽어서 되돌아가야 할 영혼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고향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여울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우리의 지친 영혼에 손짓하여 정화하는 소중한 장소이다. 마찬가지로 연어도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머나먼 북태평양에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온다. 이러한 현상을 모천회귀(母川回歸)라고 한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살던 연어가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는지 그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강원 양양군 남대천은 가을이면 연어가 회귀하는 모천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연어의 70%가 이곳을 찾기 때문에 ‘연어의 고향’이라 손꼽힌다. 예전에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산란과 죽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했지만 이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연어가 거의 없다. 남대천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에 돌아오는 연어들은 대부분 인공수정을 해서 방류한 것들이다. 인간들이 연어의 생명활동 일부를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다. 연어의 귀향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어서 대부분 연어잡이 선단이나 바다표범 등 천적에 희생되고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아 남대천으로 돌아온다.

 

고형렬 시인의 《은빛 물고기》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회귀하는 한 마리 연어처럼 은빛 몸체를 드러낸다. 회귀를 꿈꾸는 건 연어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그를 낳아준 어머니의 땅으로 돌아가려고 온 몸을 던진다. 시인은 고향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씨줄로 삼아 ‘연어’라는 날줄과 함께 엮는다. 오래 두고 써 왔던 낡은 글감을 전혀 다른 새것으로 빚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서두르지 않고 시간 속에 흘러가는 기억들을 건져낸다. 자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연어의 숭고한 죽음 앞에서 과연 누가 이들을 하찮은 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인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삶의 길을 묻고 또한 삶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고향으로 향하는 연어의 역류 과정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시인은 험난한 삶의 여정을 막 시작하려는 치어의 모습을 어린 시절 추억의 장면과 병치한다.

 

 

치어들은 성어가 되어 모천으로 되돌아오는 기억을 갖기 위하여 모천의 흙내와 물내를 후각에 담는다. 그들의 모습은 코흘리개들이 가슴에 아버지의 성을 따른 자신의 이름을 쓴 명찰을 달고 어머니 손을 잡고 쌀쌀한 3월의 바람 속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모습이다. (91쪽)

 

 

굶주림과 긴 항해에 지친 연어는 산란 후 힘을 모조리 빼앗긴 채 흐르는 물에 상처투성이 몸을 맡긴다. 장엄하고 숭고한 순간이다. 시인의 문장은 떠나고 없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회귀 본능을 따스한 시선으로 전환하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연어들의 회귀 장면은 연어의 희생이 왜 아름다운가를 생각하게 한다.

 

 

어미 연어들은 어미다웠다. 그들은 움직임이 관음의 딸들처럼 어머니 같았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큰 구덩이에 수정란들을 강돌로 덮어놓고 서서히 몸에서 사라져가는 의식의 희미한 등불을 떠나보내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먼 항해를 마치고 오늘에서야 생의 소명을 마친 그들의 어디론가 떠나가던 일들도, 수많은 ‘나’를 낳은 어미도 오기는 했지만 알지 못할 그 먼 곳으로 떠나간 일들도 생각이 난다. (324쪽)

 

 

스스로 은빛 물고기로 변신한 시인의 글을 따라가면 마치 고향을 대하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우리네 굴곡진 인생사라는 거대 서사와 연어의 은밀한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들여다보게 한다. 어느 힘센 사내가 있어 저 아스팔트를 쭉 잡아당기면 고구마 덩이처럼 고향의 정다운 추억이 딸려 나올 것도 같지만, 모천회귀는 언제나 고통스러워 영광스럽다. 연어를 보러 멀리 갈 것 없다. 연어의 치열한 일생을 이 책 한 권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 딴죽걸기

 

* 이 책에 ‘스몰트(smolt)’라는 단어가 나온다. 북태평양으로 이동하는 젊은 연어를 의미한다. 118쪽에 스몰트가 들어간 문장이 처음으로 나온다. 그런데 스몰트의 주(註)가 131쪽에 있다.

 

* 「오십천과 남대천은 두견이, 뙤꼬리, 산제비, 파랑새 등 여름 산새들이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태백산맥 속에서 흘러온다.」 (262쪽) : 여름 철새로 알려진 꾀꼬리가 ‘뙤꼬리’로 잘못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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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2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2-26 15:4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나는 문장을 수집한다. 그러니까 책을 수집해서 그 속에 들어있는 보물 같은 문장도 모은다. 문장을 수집하면 즐겁다. 좋은 문장을 흉내 내기 위해 모으는 것이 아니다. 좋은 문장 속에는 힘이 있다. 문장의 힘은 독자에게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간다. 그 힘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서 기록한다. 하나의 문장에서 똑같은 문장이 복제된다. 벤야민은 복제가 아우라를 잃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문장의 아우라는 어디를 옮기든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하는 행위야말로 문장의 아우라를 잃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다. 독자의 눈에 띄지 못한 문장은 자신의 아우라를 보여줄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문장 수집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장 수집가는 거대한 바다 같은 책 속에 항해한다. 그는 활자로 이루어진 섬들 사이에 이리저리 지나간다.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문장은 독자의 눈길이 무수히 찍힌 섬이다. 이 섬은 되도록 피하자. 낯선 문장은 태초의 섬이다. 항해가인 문장 수집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문장의 매력을 새로이 발견한다. 문장 수집가는 의미 있는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노트에 기록한다. 아니면 그 문장을 소유하는 의미로 연필로 밑줄을 긋는다.

 

모험심 넘치는 문장 수집가들이 제일 선호하는 바다(책)는 무엇일까. 하나하나 열거하면 너무나도 많다. 아무래도 명언 모음집에 단골로 등장하는 작가의 글일수록 빛나는 문장들이 종이에 숨겨져 있다. 칼릴 지브란은 명언 모음집에 자주 나오는 대표적인 작가다. 사실 그의 글은 지나치게 명상적이고 초월적이어서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글 속에 있는 하나의 문장은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지브란의 문체는 평이하고 간결하다. 산문 형식으로 갖춘 글 속에서 시어에 가까운 운율이 살아 있다. 그래서 지브란의 글은 여러 번 읽어야 문장의 함축성까지 이해할 수 있다. 속독은 지브란의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문장 하나의 깊은 의미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약칭 ‘보여줄 수 있는 사랑’)는 지브란의 경구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지브란과 메리 엘리자베스 해스켈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글에서 발췌한 문장을 잠언시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그래서 해스켈이 지브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발췌한 문장도 몇 개 있다. 편지글에서 발췌한 문장뿐만 아니라 지브란의 대표작들에서 발췌한 문장과 지브란이 직접 그린 그림(크기가 작다)도 있다. 판형은 시집과 비슷하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의 초판은 1988년에 나왔다. 당시 초판의 가격은 3000원이었다. 알라딘에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을 검색하면 출판연도가 1991년으로 나온다. 1991년은 2판이 나온 해이다. 1995년에 3판을 찍었으나 판형과 표지는 동일하다. 2003년에 새 표지로 개정판이 나왔다. 구판과 개정판 모두 절판되었지만,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에 힘입어 초판본 형태로 재출간되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을 읽고 나면 지브란의 여자관계가 궁금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 뒤편에 지브란과 메리 해스켈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독자의 궁금증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내용이 부족하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알렉상드르 나자르의 《칼릴 지브란》(작가사랑, 2007)을 읽으면 된다. 알렉상드르 나자르는 지브란의 고국인 레바논 출신의 작가다. 나자르는 지브란의 편지와 각종 기록들을 바탕으로 지브란 평전을 완성했다.

 

지브란과 해스켈은 1904년 미국 보스턴에서 처음 만났다. 이 때 지브란은 보스턴에서 생애 첫 그림 전시회를 열었다. 지브란은 전시회의 그림을 보는 헤스켈의 모습에 한 눈에 반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지브란 : 이 그림, 내가 그렸다능.
해스켈 : 웬열? 정말 님이 그렸다고?
지브란 : ㅇㅇ 내가 님을 위해서 이 그림에 대해서 설명해줄게.
해스켈 : 와, 정말! 님 좀 짱인듯. ♡♡

 

 

지브란은 그녀를 위한 큐레이터로 나섰고, 해스켈은 지브란의 예술적 감각을 눈여겨 봤다. 해스켈은 지브란보다 열 살이나 더 많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여학교를 세웠을 정도로 지적인 여성이었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다. 지브란도 해스켈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면서 마음껏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해스켈 덕분에 지브란은 일 년 동안 파리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지브란은 자신이 쓴 글을 출판하기 전에 해스켈에게 퇴고를 부탁했다. 그녀의 도움을 거쳐 간 지브란의 책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예언자》다. 지브란은 그녀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자신의 작품에 메리 엘리자베스 해스켈의 약자 ‘M.E.H’으로 시작하는 헌정사를 남겼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 사이를 놓고 오락가락했다. 지브란은 해스켈의 소개로 알게 된 그녀의 친구 에밀리 미첼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해스켈은 그 두 사람의 애정 관계가 지속하기를 바랐다. 지브란의 여자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어머니의 존재를 갈망했던 그는 자신보다 연상이거나 예술을 좋아하는 지적인 여자들을 좋아했다. 1910년에 지브란은 해스켈에게 청혼을 해보지만, 거절당한다. 그녀는 생각을 바꿔 지브란의 청혼을 받아들였으나, 며칠이 지나서 자신의 승낙을 번복했다. 해스켈이 지브란의 청혼을 거절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해스켈은 결혼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을 것이다. 해스켈은 지브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그리고 그를 물심양면 살펴주는 후원자 역할이 되고 싶었다. 지브란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브란을 도와주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 해설에 의하면 지브란의 또 다른 후원자로 ‘메리 쿠리’(나자르의 지브란 평전에는 ‘마리 엘 쿠리’로 표기되었다)라는 여성을 거론했다. 그러나 이 설은 메리 쿠리의 주치의에서 나온 증언에 불과하다. 물론, 메리 쿠리도 지브란이 만난 여성 중의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메리 쿠리가 헤스켈만큼 지브란을 도와줬는지 알 수 없다. 나자르는 메리 쿠리를 단 한 번만 언급했다. 해스켈에 비하면 존재감이 없는 지브란의 여자로 본 것일까. 레바논 출신의 기자(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지브란과의 관계를 증명해주는 메리 쿠리의 편지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참고로 지브란이 마이 지아데라는 여류 수필가에게 보낸 편지글만 모은 책은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 명진출판사, 2001)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에 있는 문장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 보물 하나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유년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 우리네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영혼이 추억의 자리를 더듬는 것이다. (36쪽)

 

뜨겁게 사랑했던 작가의 글이 있는가.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구석진 곳에 잠들고 있을 추억의 책을 더듬어보자. 오랜만에 책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 그러면 당신이 밑줄로 남겨 둔 보물 문장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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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09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칼릴 지브란의 문장들을 무수히 베껴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그의 이름만 기억에 남아 있네요. 응팔에 책이 나오는거 보면서 너무 반가웠는데 다시 출간되었군요.
얼마전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던데.... 역시나 워낙 개봉관이 적다보니 못 보고 놓쳤어요 ㅠㅠ 애니메이션도 꽤 좋은 평을 받은 것 같던데 말이죠.

cyrus 2016-01-10 17:31   좋아요 0 | URL
칼릴 지브란의 책들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저도 그때 만화가 나온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지브란의 작품도 필사할 때 사용하기 좋은 책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1-09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칼릴 지브란... 예전 무슨 만화에서 충격 받았던 느낌 있는데요... 혹시 아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cyrus 2016-01-10 17:34   좋아요 0 | URL
만화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오로라님이 댓글에 언급한 `예언자`를 보셨습니까? 제가 지브란 평전을 읽으면서 충격적인 사실은 지브란의 여자 관계입니다. 이름만 열거하면 열 명 넘게 나옵니다. ^^;;

AgalmA 2016-01-10 0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에서 시뮬라크르(복제)는 제 스스로 아우라를 가진다고 말하죠..
이를 ˝문장˝에 적용해 볼 수도 있죠.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모방과 복제의 형태로 가져온 것이 ˝문장˝이니까요.
현재는 정말 복제의 왕국이죠. 문장들도. 인용, 표절, 리트윗...

칼릴 지브란이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영감을 받아 <예언자>를 썼다는 걸 알고 다시 읽으니 다가오는 바가 다르더라는^^
칼릴 지브란이 최종적으로 꿈꾼 건 <성경> 같은 글이었다지만, 지금의 성과도 놀라운 것이죠.

마지막 인용 문장은 프루스트 같기도^^...프루스트 읽기 끝날 때까지 제 눈은 이런 식으로 계속 프루스트 난시 현상ㅎ;;

cyrus 2016-01-10 17:39   좋아요 0 | URL
Agalma님 댓글을 읽으니까 문장의 복제가 악용될 수 있겠어요. 신 모 작가처럼요. ^^;;

지브란이 가장 많이 읽고,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성경입니다.

제가 인용한 문장의 출처는 모르겠어요. 책에 출처가 없는 점이 아쉬워요.

페크pek0501 2016-01-1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면서도 자유를 택해 청혼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그 속마음이 궁금하네요.

흥미롭게 읽었어요. 재밌게 쓰셔서 긴 글을 짧게 읽은 느낌입니다.^^

cyrus 2016-01-10 17:43   좋아요 0 | URL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메리 해스켈의 삶과 업적을 재평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글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달걀부인 2016-01-10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 글 안 읽은 상태에서요. 이 책 보자마자 이 구절이 확, ˝보이지않는 사랑에 견주어보면˝ . 이런구절이 뒤에 이 시집 제목 뒤에 덧붙어있지않나요?

아..어릴적 새겨진것들은 안 잊어버리나봐요.

cyrus 2016-01-10 17:47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밖이라서 직접 확인해보고 다시 답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

달걀부인 2016-01-10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비슷하게 맞췄네요. (책 표지에 적혀있군요)

cyrus 2016-01-10 19:29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책 앞표지에 적힌 글입니다. ^^


해피북 2016-01-1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스켈과 지브란의 대화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그런데 생뚱한 질문이지만 `웬열`이 무슨 뜻 일까요? 늘 궁금했거든요 ㅎ

cyrus 2016-01-10 17:48   좋아요 0 | URL
`웬일이야`의 줄임말입니다. ^^

stella.K 2016-01-1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대화가 웃겼는데 가끔 보면 넌 참 엉뚱하게 웃기는 것 같아.
안 웃길 것 같으면서 말이지.ㅎㅎ

네가 문장수집가였구나. 난 글에 줄은 치겠는데 베껴쓰지는 못하겠더라.
게으른 게 젤 큰 이유겠지만 나이가 드니 어깨가 너무 아파 차미 베껴쓰기까지는
못하겠더라구.ㅠ

웬열은 분명 그뜻이 있긴 하지만 `일`을 짖꿎게 부르기 위한 그들만의 반란은
아니었을까 싶어. 그것도 키치라고 해야하는 건가? 10대들만의 반항적 언어
뭐 그런 게 있지 않겠어?ㅋ

cyrus 2016-01-11 19:13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손으로 베껴썼어요. 지금은 한글 워드로 입력해서 파일로 저장해요. 그런데 손으로 자판기를 두드리는 것도 힘들어요. ^^;;

`왠열`의 정확한 뜻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네이버 오픈사전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확한 뜻이 뭔지 모르겠어요. 은어를 좀 더 자세히 해석하자면 저도 누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말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감탄 아니면 비꼬는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단발머리 2016-01-1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 수집가, 너무 근사하네요.

저도 문장 수집가 되고 싶어요.
필사는 자신없지만, 자판으로 옮기는 것에는 자신 있는... ㅎㅎ

cyrus 2016-01-12 19:25   좋아요 0 | URL
자판으로 옮겨 쓴 문장들은 저장하기가 편합니다. 직접 손으로 베껴써서 정리한 문장 노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전자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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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點心).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보면 ‘마음에 점을 찍듯이 조금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 된다. 점심이란 말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선종(禪宗)에서 공복에 점을 찍듯 먹던 소식(小食)이 전파되어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옛사람들의 식사 횟수는 하루 두 번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왕족과 귀족 들이 하루에 세 끼를 먹었다. 한 끼를 더 먹는 것은 권력의 표현이다. 자신들이 충분히 배불리 먹고 살아간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 이때부터 잘 먹고 잘산다는 표현이 나왔던 것일까. 평민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지 안 봐도 뻔하다. 이들은 하루 세끼 챙겨 먹는 귀족들이 눈꼴사나워서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원망 섞인 악담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래도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은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안심의 표시였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하루에 한 끼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삼순구식(三旬九食) 시절에는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어도 풍족하다고 여겼다.

 

옛사람들은 그저 먹었다는 기분을 내려고 점심을 먹었다. 마음에 점을 찍듯이 가볍게 먹는 소소한 시간. 이게 점심의 원래 의미였다. 시대가 변할수록 식량 사정이 나아지고, 노동량이 늘어나자 낮에 먹는 끼니가 필요했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몰려오는 시장기를 달래야 했다. 그렇게 해서 점심은 평범한 의미로 변신한다. 살고 있다는 기분을 내려고 점심을 먹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점심은 과중한 업무를 접어두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중요한 휴식 시간이다. 아침 식사를 거르거나 늦게 퇴근해 저녁 식사가 늦어지는 직장인이라면 점심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점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절반 이상은 10분도 채 안 돼 식사를 끝낸다. 식사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점심에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팍 줄어든다. 직장인들은 공감하리라. 빨리 먹고 일한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면 굉장히 빨리 먹게 된다. 아예 5분 안에 다 먹으면 동료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생긴다. 밥을 늦게 먹는 동료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 눈치에 쫓기어 입안에 음식물을 허겁지겁 넣는다. 학생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1시간 내외 점심시간 안에 휴식을 취하려면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한다. 그런데 평상시 식사를 15분 이내로 짧게 끝내면 위염 발생 확률이 높다는 연구 발표가 있다. 흡연·음주 여부 등 이외에도 식사시간 역시 위염에 영향을 준다. 빨리 식사를 하게 되면 식욕 억제 호르몬이 분비되기 전에 열량이 늘어난다. 몸속에 남은 열량은 지방이 된다. 밥을 빨리 먹어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밥벌이가 힘든 마당에 밥 먹는 것마저도 괴롭다. 일하기 위해서 밥을 얼른 먹어야 하고, 밥을 먹기 위해서 밥을 벌어야만 한다. 이 지긋지긋한 순환의 삶을 유일하게 버틸 수 있는 점심마저 위태롭다. 마음에 점을 찍어가면서 여유롭게 음식을 먹는 점심은 옛말이 되었다. 자꾸만 움직이는 시계 초침을 눈빛으로 찍어가면서 급하게 음식을 삼켜야 한다.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직장인들이 먹는 모든 밥에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낚싯대를 쥐고 있는 자는 ‘시간’이다. 시간은 직장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근로감독관이다. 이 사람들아, 얼른 먹고 일해야지. 시간은 먹음직스러운 미끼로 자신의 노예들을 유혹한다. 어제도, 오늘도 시간의 노예들은 낚인다. 월척! 5분 만에 라면 국물을 깨끗이 비운 직장인이 자리에 일어선다.

 

김훈은 『라면을 끊이며』라는 글에서 김밥을 씹을 때의 느낌을 표현했다. 김밥의 속은 동그랗게 모은 재료의 에센스들로 채워져 있다. 김훈은 그런 김밥 한 개를 입안에 쏙 집어넣으면 경쾌함이 느껴진다고 썼다. 김밥도 ‘밥’이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김밥 하나를 입 안에 넣을 때 밥벌이의 비애를 느낀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 뱃속이 서늘하다. 얼마 남지 않은 휴식 시간이 줄어들수록 목구멍으로 침만 삼킨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필사적으로 일해야 한다. 만드는 과정이 빠르고, 빨리 먹을 수 있고, 조금이나마 배를 채울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은 라면이다. 센 불로 라면을 끓이면 면발이 금방 익는다. 뜨거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이라면 면발을 빨리 먹을 수 있다. 면발을 씹어 먹는다기보다는 후루룩 빨아들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직장인들은 조리가 간편한 라면을 선호하고, 밥벌이를 재촉하는 시간도 라면을 빨리 먹는 직장인을 좋아한다. 먹을 장소를 찾지 못한 직장인은 급한 마음에 편의점으로 가서 컵라면을 호출한다. 시간은 미리 편의점에 가 낚싯바늘을 설치하고 노예들을 기다린다. 완성된 라면을 먹으려고 용기 뚜껑을 열면 낚싯바늘을 흔들어대는 시간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어서 와, 라면 먹고 일할래?

 

김훈은 열심히 일하라고 부추기는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싫어한다. 이런 세계에서 스스로 도망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시간의 노예들은 이미 자각했다. 끝도 시작도 없는 종신 고문 같은 밥벌이 생활에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밥벌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한번 그런 감정을 가져보지 않았겠는가. 주머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벌려고 눈칫밥을 먹는다. 주머니 한 개만 있나. 내 주변 사람들의 주머니, 특히 자식들의 배에 최고로 맛있는 음식으로 채워주고 싶어 한다. 목숨 가진 사람이라면 감내해야 할 ‘밥’에 대한 원초적 책임이다. 김훈의 말처럼 ‘먹는’ 동작에 비애가 느껴진다. 밥 먹기의 애잔함이 더할수록 목구멍이 눈물을 삼킨다. 음식 맛이 짜다. 음식이 짠 건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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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5-12-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도 왜 김밥과 라면은 아무리 먹어도 안 질리고 맛있는 걸까요?

cyrus 2015-12-25 21:42   좋아요 1 | URL
라면과 김밥은 최상의 조합이예요. 뜨끈한 라면 국물만 마시는 것이 허전할 때 김밥을 먹으면 속이 든든해요. ^^

yureka01 2015-12-24 2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 공감..점심 ..정말 5분이 걸리지 않아요. 밥을 30번씹어야 좋다고 하던데..30번 씹고 앉아 있으면 가만안둘듯한 눈치를 주는 감독자들이 많아서 일까 싶더군요. 한끼를 먹더라도 여유롭고 편안하게 오손도손 나눠먹을수 있는 시간이 그립네요....그래서 인스튼트 음식을 정크식품이라고 하는 거.....노비에게는 먹는 시간도 아까운 것이었나 싶습니다.허급지급 먹다보면 몸이 점점 망가지는거야 당연한 이치겠지요.

cyrus 2015-12-25 21:45   좋아요 0 | URL
아침 출근, 등교 시간 때문에 직장인, 학생은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요. 직장인 같은 경우 일 끝나고 회식. 집밥 먹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12-25 0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국시대부터 귀족들이 세 끼를 먹었다,에 깜짝 놀랐어요. 저도 꼬박꼬박 챙겨서 먹는 타입은 아니지만, 맞아요... 두 끼만 먹어도 괜찮은것 같아요.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cyrus 2015-12-25 21:47   좋아요 0 | URL
저는 가끔 점심 식사를 거릅니다. 아침 식사를 든든히 먹으면 점심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

서니데이 2015-12-2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점심은 맛있게 드셨나요,^^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cyrus 2015-12-25 21:49   좋아요 1 | URL
소중한 휴식날이 이렇게 금방 지나가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
 
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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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 소리는 묻지 않고서도 듣기 좋아하면서, 그림만은 왜 그토록 물으려 하는가.”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이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책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저렇게 투덜대는 사람이 없다. 그림을 감상하는 대신 바삐 스마트폰을 꺼내 그림을 사진으로 찍고 저장한다. 인상 깊은 이미지를 고이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겠으나 그 순간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놓쳐버린다. 원하는 이미지를 언제 어디서나 저장하고 다시 열어 볼 수 있는 이면에 진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는다. 아름다움은 지식과 관계없는 직관에 의한 반응이다. 사물이나 감정은 그것이 무형의 것과 관계가 깊을수록 그 매력은 더욱 강하고 오래 지속한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속 깊은 곳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더 깊게 느껴질 수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 이것은 어렸을 때 보았던 상냥하고 온화한 색깔들로 동산이 그려져 있던 동화책 표지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잘 알아볼 수 없는 아픔과 같이한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어릴 적 책 속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움보다는 좀 가혹하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정지시켜 그 ‘껍질’만 마음 곳곳에 저장할 뿐, 진짜는 늘 놓치고 만다. 우리가 저장한 것은 사물의 잔영이고 기억일 뿐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우리는 그 잔영이 많고 적음에 따라 우리의 교양과 인격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그 잔영을 씻고 말리고 포장하여 쉽게 돈과 맞바꾼다. 사실 ‘예술’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바로 이 앎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색채는 건반이다. 눈은 현을 두드리는 망치다. 영혼은 많은 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서 사람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그림에 음악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누군가는 칸딘스키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면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사진을 보면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유병찬의 《소리 없는 빛의 노래》는 우리가 살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그가 카메라 렌즈에 담은 것들을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다. 건물 창문(「창문」), 누군가가 옷 수거함 위에 버린 곰 인형(「반전 곰돌이」)이 찍힌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침 바다, 산골짜기 같은 멋진 자연 풍경 사진도 몇 장 있지만, 전율과 감탄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작가의 사진은 내적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만나면서 특별한 노래가 된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여러 가지 빛의 음표로 이루어진 거대한 악보다. 작가의 카메라가 피아노라면, 셔터는 건반이다. 글은 감미로운 노랫말이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신선한 화음을 잘 구현해 낸 작품이 바로 「맛 좋은 연주」다. 작가는 닭 콩팥 꼬치가 불에 구워지는 과정을 보면서 노랫소리를 들었다.

 

 

노변(路邊)의 이름없는 피아노 연주자는 자극적인 향을 피웠다. 그의 건반은 쉴 새 없이 두드리듯 뒤집고, 리듬의 멜로디 대신 향이 가득한 연기로 익혀내며 단음으로 능숙한 손놀림의 연주를 한다. 어느 누군가가 꼬치로 된 건반의 연주를 듣고 군침을 흘려 본 적이 있었던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맛이 익어가는 연주의 유혹에 발걸음이 붙잡혔다. (「맛 좋은 연주」 중에서, 20쪽)

 


사진만 봐도 꼬치구이가 불에 익힐 때 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동안 군침을 돋게 하는 노변의 피아노 연주자의 꼬치 건반 연주 공짜로 들으면서, 꼬치구이를 음미하고 있었다. 노변의 연주자는 시즐 효과(Sizzle effect)의 힘을 알고 있었다. 꼬치 익는 소리만 내도 손님의 발길을 멈출 수 있다. 이런 맛 좋은 연주를 작가가 놓치지 않고, 피아노와 같은 사진기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만 봐도 ‘지글지글’ 꼬치 건반 소리가 들려오고, 입안에 침이 고인다.

 

작가가 부르는 사진 노래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조용하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 작가가 발견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작가에게 사진과 글은 그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다. 농부가 모내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쌀 한 톨이 주는 생존의 의미를 깨닫고(「쌀 한 톨의 의미」),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자세를 잡아준 나무 한 그루에 애정과 존경심을 드러낸다(「애목」). 이러한 사진과 글은 작가의 내면에 오랫동안 남게 될 소중한 추억의 문신이다. 성찰의 계기로 나타나는 자연은 쉽게 사라져도 그것을 매개로 한 사진 작품은 오랫동안 빛이 난다. 작가가 카메라를 통해 모방하고자 하는 것은 피상적인 자연미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현실적인 자연 그 자체다. 유병찬 작가의 사진 작품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맑고 깨끗한 거울이다. 사진으로 부른 작가의 노래를 들었으니, 나도 그 노래를 한 번 불러본다. 감히 카메라를 목에 걸면서 허튼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빛의 음표를 찾아보련다.

 

 

 

※ 저자로부터 받은 책이라서 별점 다섯 개를 주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몇몇 분들이 있을까 봐 굳이 이 책에 대해 아쉬움 하나 알리고자 한다. 책 35쪽에 「침묵에 대한 저항」 사진은 입을 한껏 벌린 마른명태들을 찍은 것이다. 근접하게 찍어서 그런지 입 벌린 명태들의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명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을 분들에게 알린다. 35쪽을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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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1-01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론 시와 같고 한편으론 수채화 같은 리뷰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책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cyrus 2015-11-04 21:10   좋아요 0 | URL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

yureka01 2015-11-14 00:1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이웃인데..왜 주소를 안주셨어요? 재고 몇권있는데 보내드려야겠습니다..ㅎㅎㅎ(전문적 작가는 아니라 밥벌이로 하지 않고 나눠 볼려고 만든 책이라서 ^^_)

:Dora 2015-11-0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태사진 앞에 놓고 피아노 연주해드리고 싶네요

cyrus 2015-11-04 21:10   좋아요 1 | URL
어떤 음악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

2015-11-01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5-11-0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지만, 전 `명태`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ㅎㅎ

cyrus 2015-11-04 21:13   좋아요 0 | URL
저는 명태 사진의 글이 좋았어요. ^^

yamoo 2015-11-0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리뷰가 인상깊네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지만, 제겐 쌓여 있는 책이 산더미인지라...리뷰로 대신~^^;;

cyrus 2015-11-04 21:13   좋아요 0 | URL
분량이 얇아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 읽으면 좋습니다. ^^

인디언밥 2015-11-04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은 잘 알아볼 수 없는 아픔과 같이 한다는 말씀 참 와닿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님을 만나고 온 뒤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 책 꼭 봐야겠습니닷
 
로산진의 요리왕국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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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누구를 만나든지 주된 화젯거리는 음식과 요리다. 방송에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가 대세다. 차려주는 밥상만 받던 남자들이 요리를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사랑받는 남편의 조건으로 요리를 꼽는 것이 이젠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음식은 더 이상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눈과 혀로 즐기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굳이 미식가에게만 국한된 즐거움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즐길 수 있는 인생의 낙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활동을 통해 특별한 미학적 즐거움을 얻듯 미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술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화가의 화풍을 연구하고 공부하듯이 진정한 맛을 즐기기 위해서도 다양한 경험뿐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물론 굳이 음식 만드는 일에 이렇게 꼼꼼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작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음식재료가 좋은지 어떤 메뉴가 어떠한 그릇에 담겨야 하는지 등을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요리에 대한 열정, 인내와 재능도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자격을 모두 갖춘 진정한 요리사가 바로 기타오지 로산진이다. 일부 독자에게는 아직 생소한 이름이다. 일본의 요리 만화 <맛의 달인>의 주인공인 가이바라 유잔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로산진은 요리를 맛으로만 즐기던 개념에서 벗어나 음식, 그릇, 장식 등이 하나의 통합된 예술로 태어나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요리사다. 그는 일본 요리뿐만 아니라 일본의 도예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음식가 멋드러지게 돋보여주는 효과를 그릇에서 찾은 것이다.

 

《로산진의 요리왕국》(정은문고, 2015)는 로산진의 요리 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글을 읽어보면 요리에 대한 지론이 지극히 평범하다. 일단 그는 재료를 중시한다. 이것은 모든 요리의 기본이다. 이를 간과하여 원가를 줄이기 위해 나쁜 재료를 사용한다면 아무리 정성 들인 요리라도 그것은 음식이 아니다. 로산진은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료를 소홀히 여기는 요리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의 미각에 무신경하다. 로산진이 들려주는 일화 한 꼭지는 기본이 충실하지 못한 이류 요리사의 예를 잘 보여준다. 로산진은 일류 요리사를 구하는 면접시험에서 지원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무엇을 좋아하느냐?’ 아주 간단한 질문에 지원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재료를 좋아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는 지원자는 절대로 로산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로산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가 왜 맛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맛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흔히 일류 요리사가 되려면 처음에 하는 일이 손에 칼을 쥐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담을 접시를 닦는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일류 요리사를 위해 허드렛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기도 한다. 밥 짓는 일은 음식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일류 요리사는 밥 짓기를 자신의 조수 요리사에게 맡겨도 된다. 일류 요리사는 중요한 음식을 잘 만들면 된다. 그런데 로산진은 밥 짓기를 신경 쓰지 않는 요리사의 행태를 지적한다. 이런 요리사는 자신의 명성이 밥 짓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밥 짓기도 요리다. 로산진은 자신의 요리 철학을 고수하면서도,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서 권위적이지 않다. 다만, 화학조미료나 설탕 사용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으며 일본의 국민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초밥을 ‘남자의 먹을거리’로 비유한 대목에서 그의 단호한 고집스러움과 남성우월주의가 드러나기도 한다. 잔반도 음식재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위생 문제를 생각하면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힘들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500cc 맥주잔에 따른 맥주가 맛있다고 생각한다. 500cc 맥주잔으로 맥주를 마셔야 청량감이 더 느껴진다고 한다. 사실 종이컵으로 맥주를 마시면 확실히 맥주 특유의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로산진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릇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음식의 맛을 살리는 셈이다. 《로산진의 요리왕국》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과연 모든 음식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절대미각’이 존재할까 하는 의심을 하여본다. 아무리 산해진미를 먹어도 당대에 심오한 음식 맛을 제대로 깨닫기는 어렵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미각과 맛난 요리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받쳐주어야 음식에 대한 눈이 뜨인다. 그만큼 예민한 미각을 갖기란 어렵다. 나는 로산진이 절대미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각에만 의지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촉각, 후각, 청각, 시각이 미각을 받쳐주고 적절히 조화시킨 음식에서 진정한 맛을 느껴볼 수 있다고 믿는다. 어찌 보면 미각 하나만으로 맛을 감지하기에는 인간의 감각은 그리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는 한계를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모 일간지에 실린 《로산진의 요리왕국》 서평을 우연히 봤는데 제목이 이렇다. ‘한국에 슈가보이 백종원이 있다면 일본엔 이 사람이 있다!’ 셰프테이너 열풍에 맞춰 나온 책이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제목을 쓰면 곤란하다. 서평 제목이 마치 로산진과 백종원의 요리 철학이 비슷하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로산진이 살아 있다면 설탕을 첨가하는 백종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서평 제목만 보고 로산진이 백종원처럼 훈훈한(?) 성품을 지닌 요리사로 착각하는 독자가 없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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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lf 먹을거면 마요네즈 왜 먹는지 이해 안 된다는 백주부 요리 썩 반기지 않지만, 원재료의 맛만이 중요하다는 식의 요리도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cyrus 2015-08-23 16:26   좋아요 1 | URL
사실 맛으로만 음식을 좋다 나쁘다고 구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이 내 입맛에는 별로일 수 있고, 반대로 맛없는 음식이 누군가에는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만병통치약 2015-08-22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이 절대미각에 가까와요. 아이들이 다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식당가서 조금 맛이 없다 싶으면 절대 손도 안대요. 어디가서 밥먹을 때 아이들먹는거 보고 따라 먹으면 정확합니다. ㅋㅋ

cyrus 2015-08-23 16:27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님의 아이들이 먹을 만한 맛있는 음식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 같습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8-2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의 달인은 정말 열심히 봤었는데.. 재료에 대한 열정은 맛의 달인에서도 충분히 알수 있었어요. 그릇에 얽인 일화도 기억나고 우메보시도 기억나네요. 요리의 재료에 대한 이해가 요리의 시작이라는 말. 공감가네요~
요즘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조합의 요리들이 좀 많아 당황스러워서요~ ㅎㅎ

cyrus 2015-08-23 16:30   좋아요 0 | URL
맹꽁치라는 별명이 붙게 된 셰프처럼 경험과 실력이 아직 부족한 상태에서 방송에 나온다면 평생 욕을 안고 가야합니다. 셰프테이너 열풍 때문에 그들이 만드는 퓨전 요리가 무조건 좋다고 보는 사람이 있어요.


stella.K 2015-08-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구나. 모르면 정말 일본의 백종원은 아닐까 싶은데
옳은 지적같다.
나는 최근까지도 요리엔 관심도 재주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엄마 간호하면서 새삼 관심을 갖게 되더라구.
그전까진 주로 난 설거지 담당이었거든.
게다가 여기저기 요리쿡 방송이 나가고 있으니,,,ㅋ
이책 읽어보고 싶어지는군.^^

cyrus 2015-08-23 16:32   좋아요 0 | URL
글의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서 요즘 시대와 맞지 않은 내용도 있고, 국내 독자에게 생소한 일본 음식 재료가 나와요. 이 책에 일본 음식 재료 사진이 없어서 아쉬워요. 독자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책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