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세트 - 전2권 - 신영복 1주기 특별기획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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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한반도의 키를 맡길 사람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왔다. 정치판의 승자와 패자는 선거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상대방에게 더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면, 자기가 손해 보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경쟁 구도이다. 본능적으로 상생의 질서보다는 상극의 구도를 더 선호하는 게임이다. 우리는 여전히 지역주의와 사상적 대립, 세대 간 갈등이라는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후보 지지자들 간에 사회적 · 이념적 갈등까지 확대 증폭되는 정도다. 선거 이후에도 두고두고 정치 · 경제 · 사회 각 분야에 걸쳐 갈등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정 대선 후보자의 지지 세력은 이념적 · 정책적 순수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함으로써 강력한 이념적 지지그룹의 활동을 암묵적으로 방조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들의 활동 영역이 점점 커질수록 정치적 · 이념적 틈새가 갈수록 넓혀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틈새에 피어난 '검은 꽃'에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힘을 발산한다. 그 검은 꽃이 바로 ‘갈등’이다. ‘갈등’이라는 검은 꽃은 사회 곳곳마다 군집 형태로 자라고 있다.

 

이 불쾌한 꽃들을 모조리 확 꺾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검은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만 없다. 신영복 선생의 말대로 ‘아픔을 외면하기보다는 일단 직시하고 나서 새로 시작하는 것’[1]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독자는 선생의 문장을 보면 볼수록 약간 짜증이 난다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외세의 침략에 무기력했던 뼈아픈 과거의 역사-를 언급한 선생의 글에 다소 비극적이고 비관적인 분위기를 감지했다. 살아생전에 선생도 이 점에 공감했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또한 보기 나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픔을 직시한 선생의 글에도 긍정적 측면이 있다. 선생의 글에 선험자의 깊은 성찰과 반성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희망의 근거가 된다. 선생의 글을 비판한 독자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사람일 수 있다. 그 독자처럼 비극적 인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다. 일상이라는 핑계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급기야 다 같이 보듬어야 할 아픔의 눈물을 혐오하도록 강권하는 그들의 새까만 심장 한가운데에 ‘검은 꽃’의 뿌리가 깊게 자리 잡혀 있다. 그들은 ‘평화로운 사회’를 조성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신념 혹은 편견에 충실한 나머지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을 멋대로 재단한다. 그들의 위협적인 가위질은 권력의 이름을 빌린 무자비한 ‘검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은 꽃 애호가들이 지지하고, 그들을 암묵적으로 두둔하는 권력자는 우리가 투표로 뽑은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뼈아픈 반복을 겪게 되는 걸까. 그 이유가 새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개개인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끌어올린 능력들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상호 조정되면서 사회전체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성 없는 이상론'에 불과할 뿐 한국사회에서 이것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확신한 나머지 이상론에 매달렸다. 대선 후보자들은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구체성이 결여된 야심만만한 이상론을 내세웠다.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촛불 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후보라고 주장한다. 20대의 청년 신영복은 민주주의를 긍정하는 이상주의적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어설픈 결합을 긍정하는 이상론을 경계했다. 그가 학자가 되어서도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을 늘 경계했다.

 

민주주의를 긍정하는가. 더구나 그것의 자본주의와의 결합을 긍정하겠는가? 이 양자의 결합을 승인하는 것은 자본의 무제한한 횡포를 승인하는 게다. 자본측근자(資本側近子)를 제왕(帝王)으로 모시는 것이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141쪽)

 

자본측근자는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옷을 잠깐 입힌 ‘포퓰리즘(populism)’을 내세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어설픈 결합이 포퓰리즘을 만들어 사회를 퇴보시킨다. 포퓰리즘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국민은 우민화되어 사회를 주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변혁 역량이 줄어든다.

 

단순한 이익집단 간의 갈등이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실천의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 능력이 우리 삶을 침투하지 못하다 보니 이해관계자 간의 타협이 논리와 관용 그리고 인내에 입각한 연대 과정에서 벗어나고 있다. 연대감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최대한 강경한 자세로 자신의 전략적 위치를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는 민주적인 합리적인 조정절차는 무시되며, 힘 있는 소수에 의해 다수가 볼모로 잡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힘 있는 소수는 ‘승리자’가 된다. 선생은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모호한 모두가 ‘더불어 이기는 강한 승리자’[2]가 되라고 당부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밝힌 선생의 당부가 이상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더불어 이기는 강한 승리자’는 사회 변혁을 위한 이론에 주목하는 동시에 실천을 병행한다. 누구나 혼자서 ‘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외로운 패배자’가 된다. ‘더불어 이기는 강한 승리자’가 되려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선생이 자주 강조했던 ‘하방연대(下方連帶)’의 정신이다. 물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우리는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손을 잡아야 한다. 낮고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놀랍게도 작년에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하방연대’를 이루어냈다. 성별과 나이 구분 없이 사람들이 광화문에 거대한 촛불을 만들어 그동안 청와대의 지붕에 가려졌던 권력의 폐단이 보이도록 훤히 밝혔다. 그 연대의 중심에는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도 있었다. 선생이 지금도 살아계셨더라면 아주 멋진 광경을 보면서 흐뭇해하셨을 텐데.

 

이틀 뒤에 결정될 새로운 지도자가 임기 내내 ‘검은 꽃들’을 전부 꺾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든 보수든 이념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 쉽지 않다. 지도자의 능력에만 의지할 수 없다. 지금부터가 ‘우리부터 잘해야 되는 시기’[3]이다. 우리가 갈등을 유발하는 ‘검은 꽃들’을 직접 꺾어야 한다. ‘검은 꽃들’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갈등’이 살아남지 않게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숲’을 가꾸어야 한다. ‘더불어 숲’을 조성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손과 마음에 묻은 흙먼지, 즉 상대방을 미워하게 하는 ‘갈등’의 앙금까지 말끔히 털어내야 한다. ‘갈등’의 앙금이 묻은 더러운 손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서로를 미워해선 안 된다. '너나 잘해', '너는 틀렸어'라는 말을 삼가해야 한다. 근본적인 반성과 차분한 성찰은 ‘더불어 숲’이 잘 자라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준비 기간이다. 5월 9일 이후부터가 지도자의 실전이라면, 우리는 사회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실천에 임해야 한다. 정말로 우리부터 잘해야 되는 시기가 왔다. 이 시기마저 또 놓치게 된다면...

 

 

 

 

 

 

[1] 『수많은 현재, 미완의 역사 - 희망의 맥박을 짚으며』 (대담: 홍윤기, 1998년, 《손잡고 더불어》 145쪽)

 

[2] 『모든 변혁 운동의 뿌리는 그 사회의 모순 구조 속에 있다』 (대담: 정운영, 1992년, 《손잡고 더불어》 113쪽)

 

[3] 『소소한 기쁨이 때론 큰 아픔을 견디게 해 줘요』 (대담: 이진순, 2015년, 《손잡고 더불어》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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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08 11:06   좋아요 1 | URL
차기 지도자가 야당 인물이 되어도 대구 어르신들의 새누리 ᆞ자유한국당 사랑은 여전할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7-05-07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제가 선거에 나간 것도 아닌데 많이 긴장되네요.. ㅋ

cyrus 2017-05-08 11:09   좋아요 2 | URL
촛불을 들었던 분들의 마음도 겨울호랑이님과 같을 겁니다. 대선 투표는 늘 중요한 일이지만, 내일은 역대 대선 중 가장 중요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향후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까요. ^^

dellarosa 2017-05-07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했으면 합니다. 불가능할까요 ?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가 미래에는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가 되어 있으리라는 점입니다. ^^

cyrus 2017-05-08 11:19   좋아요 2 | URL
모두가 행복해하는 사회가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놓고 보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적으로 대하고, 혐오하는 상황은 사회통합에 반하는 일입니다.

나비종 2017-05-07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빛은 매질을 경계로 굴절합니다. 있는 자리에서 어떤 매질을 향해 달려가느냐에 따라 꺾이는 방향이 달라진다죠.
결국 방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낮은 곳,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도. 시선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 누구를 향하느냐에 대한 선택이니까요.
시험을 앞두고 D- 를 헤아리는 학생이 된 듯 긴장되네요, 저 역시.

cyrus 2017-05-08 11:22   좋아요 2 | URL
저는 우리 사회에 하상연대의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촛불 집회가 하상연대 정신이 만들어낸 변혁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일 대구 투표 결과가 더 궁금합니다. ^^

transient-guest 2017-05-08 0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적 갈등과 충돌은 당분간 피할 수 없겠지만, 잘 정리되어 미래로 가는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cyrus 2017-05-08 11:24   좋아요 1 | URL
내일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 험난한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생길 것 같습니다. 첫 단추를 잠그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걸 막는 세력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stella.K 2017-05-0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윤복 교수의 글이 그런데가 있었나?
오래 전 <더불어 숲>을 읽고 감동했었는데
그동안 한번쯤 더 읽어 보고 싶었는데
마음만 그렇다뿐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촛불 집회 봐서라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신 바짝 차리고
잘 해 줬으면 좋겠다. 정신 못 차리고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딴주머니 차고하면 이건 단순히 국민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민족에 대한 반역이지.
지금이야 저리 눈에 불을 키고 대통령이 못되 안달을 내겠지만
되고 나서도 정말 잘할 건지 의문일뿐이다.

cyrus 2017-05-08 22:57   좋아요 0 | URL
《손잡고 더불어》는 신영복 교수의 생전 인터뷰한 내용들을 정리한 책이고요, 《냇물아 흘러흘러...》는 미발표 글이 있는 유고집입니다. 역시 신 교수의 책을 읽으면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납니다. ^^

저는 박근혜 싫어하던 사람들이 유승민이든 안철수든 누굴을 뽑아주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홍준표(혹은 조원진)를 믿고 뽑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일 대구 투표 결과 기대됩니다. 내일은 대구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는지 못 차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프로작 네이션 - 우울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 보고서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김유미 옮김 / 민음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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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울증은 웃고 있는 사람들의 가면이다. 우울증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특히 가면을 쓴 우울증은 가벼운 우울증, 일시적인 슬픈 감정과 달리 심각한 양상일 가능성이 높다. 증세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워 방치된 채 악화하기 쉽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 채 마치 가면 뒤에 꼭꼭 숨어있는 듯 내면 깊숙이 틀어박혀 있다. 우울증이 전염병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가장 맞닿아 있는 가정에서는 그 어둠의 그림자가 그대로 가족들을 힘들게, 고통스럽게 한다.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 네이션》은 우울증을 가장 정확히 기록한 책이다. 변호사로 활동 중인 워첼은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상세하게 서술하여, 과소평가된 이 병이 한 인간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실감 나게 소개하고 있다. 《프로작 네이션》이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약으로도 치유 불가능한 병’임을 제대로 알려준 책이라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하고 싶다.

 

 

 

 

 

 

프로작(Prozac)은 우울증 치료제이다. 미국에선 프로작 같은 우울증 치료제가 우리나라 감기약만큼 유명하다. 그만큼 환자가 많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2004년에 프로작을 포함한 모든 항우울제에 대해 복용 시 청소년들이 자살 충동이나 행위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지시했다. 항우울제를 복용할 경우 자칫하면 청소년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과거에는 아동기에 우울증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하여는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80년에는 타당성이 인정돼 아동의 정신질환 분류에서 공식적으로 아동기에도 우울증이 존재함이 받아들여졌다. 어린이도 우울증을 앓는다. 어린이들은 자존심 저하, 자기 비하 등의 인지적인 요소가 전혀 동반되지 않은 슬픈 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부모가 이혼하면 일반 아이들은 단순히 슬픈 감정을 표현하지만,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기질책 또는 부모들에 대한 원망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워첼은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이혼으로 갈라서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워첼의 사례처럼 어린 시절 경험은 우울증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워첼은 열두 살 때부터 십 년 넘게 우울증의 늪을 헤맸다. 약물치료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의사와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겪었던 고통 등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자서전은 우울증의 심리적 증상에 초점을 맞춘 우울증 자가 진단서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의 정도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세상 모든 일에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기분, 세상이 끝난 것처럼 미래를 비관하는 태도,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는 가슴 사무치는 고독감 등을 느낀다. 우울증에 빠진 워첼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과 어머니는 워첼의 우울을 ‘약을 복용하면 재발하지 않는 증상’으로 반응하며 우울증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그저 사소한 투정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반드시 약물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우울 증상으로 문제가 생긴다거나 자살사고가 심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 하는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은 저절로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히 긴 기간이 소요된다. 그 기간 환자가 받아들여야 할 불이익은 크다. 자살시도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으므로 일정기간 심각한 증상이 지속한다면 빨리 치료를 받아 불행한 결과를 막아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위로다. 그다음이 격려다. 이는 관심과 공감과 이해에서 나온다. 심적 고통의 늪에 빠졌다가도 누군가가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내밀면 대부분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다. 워첼은 우울증에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적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정신력’에 믿음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내 마음이니까 반드시 내가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는 끔찍한 상상에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울증 환자의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은 삶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시키고,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우울증 환자들의 몸부림을 이해한다면, 극단적인 절망의 낭떠러지까지 내몰려 있는 몸과 마음을 살릴 수 있다. 우리의 관심과 포용력은 우울증의 늪에 빠진 이에게 생명을 구하는 귀한 밧줄이 된다.

 

 

 

 

 

 

* Trivia #1

 

 

홍보 문구를 만든 출판사 관계자가 워첼의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 Trivia #2

워첼의 글에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 등 유명 작가의 책이 잠깐 언급된다. 306쪽에 마거릿 앳우드(애트우드)의 《떠오르기(surfacing)》에 대한 워첼의 짤막한 평이 나온다. 《떠오르는 집》(서숙 역, 지학사, 1987)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늦은 후기’에 워첼은 우울증 체험을 자전적으로 기록한 윌리엄 스타이론의 《가시적 어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책은 《보이는 어둠》(임옥희 역, 문학동네, 2011)으로 번역되었다.

 

 

* Trivia #3

 

 

 

 

 

워첼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병이 있었고, 그녀가 복용했던 조증 치료제인 ‘리튬’은 갑상선에 문제가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 20대 시절 모습과 최근 모습을 비교하면, 외모에 큰 변화가 있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녀의 얼굴에 오랜 투병 생활과 약물 복용의 후유증에 시달린 흔적이 남아 있다. 2015년에 워첼은 유방암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 Trivia #4

 

 

 

 

2015년에 열두 살 연하의 제임스 프레드와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워첼은 만나던 남자에게 실연당했고, 자연 유산까지 겪는 등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가 오랫동안 쭉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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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8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20 15:15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여전히 우울증을 가벼운 증상으로 생각합니다. 항우울제만 먹으면 금방 다 낫는 줄 압니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합니다. 한 번 걸린 감기는 감기약 먹으면 완치 가능하지만, 다시 감기가 찾아옵니다. 우울증도 그렇습니다. 평생 약물 치료로 살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건강이 악화될 수 있어요.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가 우울증 환자들을 더욱 괴롭게 합니다.

캐모마일 2017-03-1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저자가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유명한 분이었군요.... ㅎㄷㄷ 원서는 1994년에 출간됐고, 2001년에는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까지 나왔었네요. 꼭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그리고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cyrus 2017-03-20 15:17   좋아요 0 | URL
동명 영화에서 워첼을 분한 연기자가 젊은 시절 워첼과 무척 닮았어요.

라온 2017-03-20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먹는 약이네요
 
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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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여기서는 좋은 ‘리뷰(혹은 서평, 독후감)’로 표현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뷰란 일상 경험을 책 속 이야기와 버무려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리뷰는 책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글에서 살며시 배어 나오는 진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다. 글을 자주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한다. 그런데 막상 써보면 어렵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글쓰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은 논술이 중심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폭넓은 배경지식, 논리적 구성력 등을 습득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강조한 대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지적 재료들을 가지고 좋은 글로 아웃풋(Out put, 출력)을 내면 모를까 우리나라 논술문 쓰기는 지식 입력과 출력 과정 양쪽이 완만하게 작용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학생들은 단기간 내에 전혀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논술 고사 당일 날에 머릿속에 담은 재료들을 하얀 시험지 위에 일목요연하게 쏟아낸다. 결국, 그 날 하루를 위해 학생들은 제대로 뜻도 모르는 현학적 용어를 써가며 자신 목소리가 아닌 누군가 가르쳐준 내용을 형식적 논리만을 시험지 위에 옮겨 적는다. 글 쓰는 일 자체가 ‘시험문제’로 직결되는 교육 환경은 자칫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막연한 두려움만을 안겨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사소한 경험에서부터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을 담아 표현해보는 ‘생활 속 글쓰기’에 적응되면, 자연스럽게 논리적 글쓰기로 이어진다. 필자는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신문 칼럼을 많이 봤고, 사람들과 어울려 부대끼며 지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생활 속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몇 차례 시도를 해봤으나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미미했고, 억지로 과거 경험을 떠올려 조금 과장해서 쓴다는 게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필자의 리뷰가 재미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필자는 이 상황을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알라딘이 망할 때까지 꾸준히 리뷰를 쓸 생각이다.

 

 

 

생활 속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며 자기 자신을 ‘글의 중심’에 세워보는 경험, 즉 ‘독서를 통한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룬 글쓰기’를 실천한 사람이 박균호이다. (물론, 아주 능숙하게 ‘생활 속 글쓰기’를 실천하는 작가와 독자 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작가가 ‘마태우스’ 서민이다) 최근에 그가 새로 선보인 《독서만담》의 부제를 한 번 보시라.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다. 그의 글은 리뷰인지 에세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건 나쁜 의미의 말이 아니다. 저자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글에서만 갖춰진 특색이다. 리뷰와 에세이라고 하면 책 또는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교훈을 담아 쓰는 글이라는 공통된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리뷰와 에세이에 거창한 담론을 담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독서만담》에 가득 담은 글을 읽어보면 리뷰와 에세이의 고정관념이 보이지 않는다.

 

책의 1장은 애서가들이 무릎을 탁 칠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글 제목은 ‘절판본과 탐욕의 끝’, 두 번째 글 제목은 ‘책 수집의 괴로움’이다. 애서가들은 이 글 제목들을 보자마자 벌써 어떤 내용이 나올지 짐작하리라. 1장 제목이 ‘하나도 쓸모없는 책 이야기’이지만, 이는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반어법이다. 애서가들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지금까지 어떤 희귀한 절판본을 구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된다. 헌책과 절판본을 소유하게 된 작가의 무용담을 듣노라면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즐겁다. 그리고 귀한 책을 쉽게 양도하지 않으려는 주인들의 태도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책에 미친 이 남자도 계속 사도 끝없는 책 욕심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알고 있다. 저자는 새 책을 사기보다는 오래된 친구와 같은 헌책을 재회하기로 결심한다.

 

2, 3장은 《독서만담》의 부제에 딱 어울리는 글들이 포진되어 있다. 솔직히 필자는 미혼이라서 부부나 가족 이야기에 관심 없다. 여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혼자 지낸 일상에 익숙한 탓이다. 그래도 SNS에 길들어져 버리는 바람에 남의 사소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 못된 심리가 남아 있어서 계속 끝까지 보게 된다. 다행히 이 책을 끝까지 보길 잘했다. 역시 작가의 글은 경험담으로 시작해서, 책 소개로 자연스럽게 마무리 짓는다.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가 ‘야구를 아무리 싫어해도’라는 글을 읽으면 ‘맞다, 맞아!’라고 연신 속으로 외치게 될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와 딸이 ‘리모컨 컨트롤을 손에 꽉 쥔 주인’이 되어 거실 한가운데서 버틴다. 이 두 사람의 힘에 밀려 야구 TV 중계를 시청하지 못해 인터넷 중계로 시청하는 저자의 상황이 딱해 보인다. 필자는 서른이나 먹고 다 컸음에도 ‘거실의 여왕’으로서 오랜 세월 군림하는 어머니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다. 고집은 자신의 입지를 더욱 위축하게 하는 필패의 지름길이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한발 물러나서 양보하는 것이 좋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야구를 볼 수 있는 세상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아내와 딸처럼 야구를 잘 모르는 여성들을 야구 팬으로 만들 수 있는 책 세 권을 선보인다.

 

 

 

 

잠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작가는 아내와 딸이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 여자들의 것이 아니다(107쪽)’라고 썼다. 개인의 경험을 근거로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으로 규정하는 말은 요즘 야구에 향한 여성들의 관심 수준을 생각하면 ‘일반화의 오류’에 가깝다. 작년 잠실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여성 관중의 함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그만큼 야구를 직관(직접 경기장에 가서 관람)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야구장에 분 ‘여풍(女風)’이 없었으면 작년 ‘한 시즌 관중 800만’이라는 기록이 오지 않았다. 지금의 야구는 남자, 여자 모두의 것이다.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 여자들의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필자의 눈에 걸린다.

 

아, 리뷰를 쓰다 보니 오늘도 재미없는 내용이 되어버렸군. 내 리뷰야말로 ‘하나도 쓸모없는 책 이야기’이다. 그래서 읽어보면 무겁고 딱딱하지 않는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다. 생활 속에서 길어낸 작고 소소한 작가의 책 이야기는 솔직담백해서 좋다. 글쓰기 공포증이 있거나 편안하게 자기만의 글을 써보고 싶은 분에게 박균호의 《독서만담》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가벼운 동기 부여는 글쓰기의 열쇠가 된다. 그리고 작가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글감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사실 《독서만담》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1권 3득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두 개의 이득은 앞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개의 이득은? 그것 또한 글 초반부에 이미 언급했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모르면 어쩔 수 없다. 독자들이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아무튼 《독서만담》이 내 리뷰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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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3-08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의 잡문이 이토록 긴 논의을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글을 쓸 때 교훈이나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을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 제 글의 단점이기도 하고 ‘일부 독자‘에게는 장점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래도 야구를 극협하는 두 여자와 살다보니 요즘 야구장의 여성팬들을 등한시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나 봅니다. 뼈와 살이 되는 좋은 리뷰 정말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cyrus 2017-03-09 08:25   좋아요 1 | URL
책 잘 읽었습니다. 글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논의할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을 겁니다. 박균호님의 글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

yureka01 2017-03-08 2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웃분에게 책 선물 받았습니다..이책이었어요.저도 다 읽으면 리뷰 올려볼께용~~~ㅋ

박균호 2017-03-09 00:22   좋아요 0 | URL
앗...그 고마운 분은 누구신지...ㅎㅎ 소중한 리뷰 미리 고맙다는 말씀 드려요.

cyrus 2017-03-09 08:25   좋아요 1 | URL
‘이웃분‘이 누군지 압니다. 유레카님도 자식을 둔 아버지라서 박균호님의 글에 많이 공감하실 겁니다. ^^

곰토낑 2017-03-0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가 재미 없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굉장히 논리정연해서 정독하고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봐야할 책이네요. 야구가 남자의 것이라는 저 문장이 나오면 화낼지도 모르겠지만요.

cyrus 2017-03-09 08:2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 글이 너무 딱딱해보여서 나름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평소대로 글 쓰는 게 편했어요. 저보다 글 잘 쓰는 분들 따라하니까 힘들었어요.

제 글을 잘 읽어보면 허점이 보입니다. 저보다 똑똑한 분을 만나면 털립니다.. ㅎㅎㅎ

제 글도 비판 대상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비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비판을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

stella.K 2017-03-0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망하면 그동안 좋은 인맥을 쌓아왔던 우리 알라디너들은
흩어져야 하잖아.
글 못 써도 좋으니까 당췌 그런 생각일랑 말고 열심히 쓰기나 하셔.ㅋㅋ

이 책 리뷰에 좋아요가 유독 많더라구. 그러니까 난 같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은 쓰기가 부담되더라. 그래도 올리긴 올려야겠지?ㅠ

cyrus 2017-03-09 15:33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사라져서 흩어져도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겠죠. ^^

‘좋아요‘ 수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거 생각하면 글 못 써요.. ㅎㅎㅎ
 
독서한담 - 오래된 책과 헌책방 골목에서 찾은 심심하고 소소한 책 이야기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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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리된 서가 앞에 서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애서가에게는 절로 호감이 간다. 그래도 현실은 절대 유쾌하지 않다. 이사할 때 책과 책장이 가장 큰 짐이 된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애지중지하던 책들을 과감하게 솎아내야 한다. 사실 자식처럼 소중한 책들을 판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얼마 전에 깨달았다. 서가에 빽빽하게 꽂힌 채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숨 막혀 보였다. 팔기로 한 책 여러 권을 빼고 나니 수납공간은 기대 이상으로 넉넉해졌다. 책값이나 책 읽을 시간이 문제일 뿐, 당분간은 꽂을 자리를 걱정하지 않고도 책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소설가 이태준은 자신의 수필에 책을 ‘冊’으로 썼다. 그는 책을 ‘冊’으로 써야 제격이라 했다. ‘冊’은 정말 책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冊’이 아름답다고 해도 차렷 자세로 고단하게 서 있어야 하는 모습에서 장서가의 독단적인 고집이 느껴진다. 이젠 슬그머니 짝을 지어 옆으로 드러눕기도 하고, 친구처럼 옆의 책에 비스듬히 기댈 수 있는 여유로운 서가의 모습이 이태준의 ‘冊’보다 더 아름답다. 생각해보면 워낙 없이 살아서인지 책을 빌려주는 데 참 인색하다. 그러하다 보니 상대방에게 책을 빌리는 일 자체도 어색하다. 애서가일수록 책을 빌려주는 일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건 책을 본능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국문학자 이희승은 빌려준 책에 낙서나 조금이라도 구겨진 책장을 발견하면, 그렇게 만든 사람의 뺨을 갈기고 싶다고 표현했다. 이희승 선생은 나와 비슷한 ‘궁정식 애서가’이다.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에 따르면, 궁정식 애서가는 책의 내용뿐 아니라 종이와 활자로 된 책의 외양을 엄숙하게 떠받드는 독자를 의미한다. 궁정식 애서가에게 책에 밑줄을 긋는다거나 읽던 책장을 접는 신성모독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간혹 장서가를 ‘고서 수집가’와 동등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고서 수집가는 고서의 매력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냥 막연히 고서를 모으는 것이 아니다. 고서를 수집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서의 내용을 분석하는 감식안까지 갖추기도 한다. 고서 수집가들 사이에서 소장 가치도, 학문적 효용성도 없는 고서를 순우리말로 ‘섭치’라고 부른다. 고서라고 해서 수집가들에게 환영받는 것이 아니다. 섭치 더미 사이에 귀중한 고서를 고르는 수집가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특히 연구를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하는 학자들은 수집가 기질이 다분하다.

 

책을 모으는 학자인 강명관 교수는 고서를 사 모으는 일에 애착이 없다고 밝혔다. 연구를 위해 참고해야 하는 고서는 대개 영인본으로 나와 있다. 큰돈을 들이면서 원본을 사지 않아도 된다. 강 교수의 생각은 고서 수집가들의 활동과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과거에는 고서 수집가와 학자가 장서가를 상징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희귀한 고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그들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무리하게 고서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고서에 대한 강 교수의 확고한 주관은 고서를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물로 여기는 사회 풍토에 맞서는 데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값비싼 고서가 아니더라도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모으려고 한다면 누구나 장서가가 될 수 있다. 희귀 고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장서가의 자격이 될 수 없다. 장서가는 책을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 없어도 된다. 나는 장서가를 ‘책 전문가’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다. 책은 머리가 똑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분야에 가리지 않고, 절판본에 관심이 많다. 가끔은 쓰레기통에 처박아도 할 말이 없는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채운 절판본도 산다. 나는 남들이 찾지 않는 섭치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를 한 번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다. 섭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장서가다. 섭치도 가치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 먼지 속에 묻힌 섭치의 매력을 끄집어내는 일이 정말 좋다. 강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절판본을 모으는 일만으로도 내 공부는 충분히 하는 셈이다. 고서가 아닌 심심하고 소소한 책도 장서가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책에 귀천(貴賤)이 없다. 결국, 책의 귀천은 책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장서가의 마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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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12-28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희승 선생에게 뺨을 맞겠네요. 요즘 제가 책을 읽는 방식이 밑줄 치며 읽는 방식이라.. ㅎㅎ 물론 제 책에만 그렇긴 하지만..
장서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수납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간이 없으면 책을 계속 쌓는 사태가 발생하여.. 최근에 책 정리를 하면서 마흔 권 정도를 빼놓았는데, 그래도 책을 꽂을 수는 없더라구요^^;; 아 물론 제 방이 워낙 좁은 게 원인이겠지만..

cyrus 2016-12-28 20:18   좋아요 1 | URL
남의 책에 밑줄 긋지 않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ㅎㅎㅎ

저는 책에 밑줄 긋는 독서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책 읽는 방식에도 각자 선호하는 취향이 있으니까요. ^^

책을 빼도 새 책을 장만하는 바람에 수납 공간은 영원한 고민이 되어버렸습니다. ^^;;

심성 2016-12-28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 귀천이 없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세상의 섭치가 누군가에겐 소중한 책이 될 수 있고 세상이 좋다고 말하는 책이 나에게는 섭치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죠. 책에는 귀천이 없고 책의 가치는 스스로 정하고 주관적이며 유동적이고 또 갇혀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정한 잣대에 책마저 갇힐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의 책은 많고 독서가는 그 책의 가치를 주관적으로 정하고 그 책을 사랑하는 애서가로...이북의 발전으로 책의 자료양이 더이상 부피로 계산되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기도 하고 뭔가 아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ㅎㅎ

cyrus 2016-12-28 20:32   좋아요 0 | URL
오늘도 좋은 말씀해주시는군요. 심성님이 말씀하신 애서가의 의미를 보면서 제가 책을 대한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남이 좋다고 말한 책들을 모으는 바람에 정작 제 스스로 발견한 책 수가 적었습니다. 전자북이 완전히 정착되더라도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겁니다. ^^

stella.K 2016-12-28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도 읽었구나. 의외로 재미가 별로 없어. 그지?
그렇긴 한데 요즘엔 출판 환경 좋아져서 그런지 정말 종이가 아까운 책도
많아. 그건 좀 분리를 해야할 것 같아.ㅋ

cyrus 2016-12-29 11:13   좋아요 0 | URL
독서 에세이를 좋아해서 읽었는데요, 고서 이야기 외에는 특별한 내용은 없었어요. ^^;;

2016-12-29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29 11:18   좋아요 0 | URL
쓰레기로 취급받는 책은 불쏘시개로 써야합니다. ㅎㅎㅎ

제가 저자 입장이라면 책이 절판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16-12-2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사 다닐 때마다 종종 책이 너무 짐스러워서 처분하고는 하는데, 그렇게 처분하고 몇 년 흐른 뒤 그 책이 절판되어서 중고 시장에서 값이 풀쩍 뛰어있으면 좀 아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ㅎ 아주 오래 전, 사드의 <소돔120일>을 읽고는, 청소년 때라 엄마한테 들키면 혼날 것 같아서 길에 내다버렸는데 그 책이 절판되고는 나중에 10만원 호가하게 중고시장에서 판매되는 걸 보고는 땅을 친 적도 있습니다. ㅋㅋㅋ

cyrus 2016-12-29 11: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 정리할 때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파는 책이 절판본이 될 지 안 될 지 모르는 점입니다. ㅎㅎㅎ

헌책방에서 구한 절판본의 양이 많아서 줄이고 싶어도 줄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레삭매냐 2016-12-29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다음달 이사를 앞두고 책을 부지런히 솎아내고
있긴 한데 지지부진하네요.
더 독하게 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cyrus 2016-12-29 17:42   좋아요 0 | URL
저는 주말에 다시 책장을 정리하려고요. 책장 받침대가 책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비뚤어진 것 같았어요. ^^;;

transient-guest 2016-12-30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치워도 어차피 다시 채우게 될 터, 그냥 모두 갖고 살기로 했습니다.ㅎㅎ 제가 읽은 많은 장서가들의 이야기가 결국 그렇게 되더라구요...책을 읽는 방법도, 분야도, 사들이는 것도 왕도는 따로 없고, 지금의 시대라면 사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한 형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ㅎ

cyrus 2016-12-30 16:11   좋아요 0 | URL
아주 바람직한 마음입니다. 역시 알라딘 서재에서 뵙는 분들을 보면 동질감이 느껴져서 기분이 편안해져요. 그래서 알라딘 서재에 글을 남깁니다. ^^

transient-guest 2023-09-2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이번에 구입하네요 글을 남긴 건 7년 전의 저인데 구매는 7년 후의 제가 하니 세상이치가 참 재미있습니다 ㅎ

cyrus 2023-10-01 15:56   좋아요 1 | URL
정말 오래전에 쓴 글이네요. guest님이 댓글 안 남기셨으면 이 글을 다시 볼 일이 없었을 거예요.. ㅎㅎㅎㅎ 남은 연휴 잘 보내세요. ^^
 
책 도둑의 최후는 교수형뿐이라네 - 애서가들의 장서표 이야기
쯔안 지음, 김영문 옮김 / 알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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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표는 책의 속표지에 붙여 소유자의 이름을 나타내는 표시다. 책의 소유자를 알리는 장서표는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의 징표이기도 하다. 장서표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우표만 한 크기지만,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 장서표에는 ‘Ex Libris’라는 라틴어가 들어가는 게 불문율로 돼 있다. 영어권에서는 ‘Bookplate’라고도 쓴다. 또 장서가의 이름이나 연대를 쓰기도 하고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시, 격언들을 넣어 장서표의 무게를 더해주기도 한다. 문자와 그림이 한데 어우러진 장서표는 판화로 제작되는 게 보통이다. 판화로 만든 것이 예술작품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책이 그리 귀하지 않은 지금 장서표는 하나의 예술작품이 됐다. 장서표 문화가 일찌감치 자리 잡아 수집 문화의 하나로 성장해온 유럽, 미국, 중국,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실정이다.

 

 

 

 

장서표를 소개한 책 제목이 살벌하다. 책 도둑의 최후는 교수형뿐이라네. 평생 책 읽기와 장서표 수집에 탐닉해온 한 중국 애서가의 반어적 욕망이다. 저자는 책에 대한 탐닉이 장서표에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지를 진지하게 전달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독서광의 공감을 사고 평균적 독자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새삼 강조한다. 저자의 장서표 사랑은 장서표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서표 안에 새겨진 상징을 해독한다. 장서표의 내용은 장서가의 직업, 취미, 세계관 등이 압축되어 있다. 장서표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은 당연히 책이다. 현재는 발전된 제지술과 인쇄술 덕분에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흔한 물건이 책이지만, 과거엔 특별한 사람이나 소장할 수 있는 귀중품이었다. 그래서 장서표에는 그 귀한 책에 소유와 애정의 표시를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새겨져 있다.

 

세상은 남자에 의해 움직이고, 그들은 여자의 보호자로서 소유권을 주장했다. 남성 애서가들은 책과 여자가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독과 결핍을 느끼는 남성 애서가들을 위해 벌거벗은 여성이 그려진 장서표가 제작되었다. 극소수의 여자들만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책을 읽었고, 자신만의 장서표를 이용했다.

 

 

 

 

미국의 판화가 록웰 켄트는 부부애를 기념하기 위한 장서표를 제작했다. 장서표에는 켄트와 아내 샐리(Sally)가 맞잡은 손동작이 그려져 있고,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샐리가 독서를 좋아하는 여성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책과 거리가 먼 전통적 여성이었다면, 장서표에 이름이 새겨진 사실이 특별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여성은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서표를 찬찬히 살펴보면 샐리를 향한 켄트의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장서표에 자신의 아내를 록웰 켄트의 아내 샐리가 아닌 샐리 켄트, 자신의 이름보다 먼저 나온 형태로 새겼다. 이 장서표에 책은 중요하지 않다. 장서표의 진정한 주인공은 샐리다.

 

장서표 수집가가 소개한 다양한 장서표를 보면 저마다 장서표 주인들의 삶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서표는 단순히 문자와 그림이 조화를 이룬 예술 작품이 아니라 인류의 삶 전체를 문자와 그림으로 형상화한 기념비다. 책 속에 있는 작은 기념비. 자신의 물건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건 자연스럽다. 장서표는 애서가를 위해, 책에 의해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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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13 18:15   좋아요 1 | URL
장서표, 장서인조차 없습니다.. ㅎㅎㅎ

국내에 남궁 산님의 장서표가 유명합니다. 저는 장서인을 갖고 싶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12-13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서표는 소장용책에만 사용해야할 것 같네요. 그렇지 않으면 중고서점에 팔 때 제 값 못 받을 거 같네요^^

cyrus 2016-12-14 08:11   좋아요 1 | URL
정말 운이 좋으면 중고서점, 헌책방에 유명인의 이름이 있는 장서표가 붙은 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로또에 당첨될 확률에 가깝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12-15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서표 참 멋지네요. 저런 것을 만들어서 가진 책마다 하나씩 넣어두는 것인가요?? 가끔 보면 비슷하게 책에 그냥 쓴 건 봅니다만, 디자인해서 따로 만든건 못 봤어요..저는 책제목이 참 맘에 듭니다.ㅎㅎ

cyrus 2016-12-15 07:46   좋아요 0 | URL
네. 책 속표지 안에 붙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소유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책 제목이 장서표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